2023, 계묘

기분과 느낌

청향고은 2023. 7. 28. 16:07

 

기분과 느낌

 

기분 mood은 이성 rationality, Sense, Reason영역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뭉쳐있는 기를 나눔으로 풀어지는 과정 즉 막힌 것이 뚫리면서 생기는 에너지다

 

문제가 해결이 되면 시원하다고 하는데 기분은 외연의 문제, 외연의 문제는

물의 문제이고 정보 인식력이다. 객관적인 정보에 대한 인식이 만드는 기분 좋음

무드라는 것은 뭉쳐있던 氣가 풀림分이라는 것이고 뭉쳐있던 것의 실체는

이성이라고 하는 문자가 만들어내는 의혹이고 그 의혹을 풀어내게 되는 것에서

얻게 되는 얻음을 기분 좋다 Excited, 얻음이 없으면 기분 나쁘다 Apprehensive. 고

한다는 것이지

 

내가 의문하던 무엇이 풀어지게 되면 무드, 기분이 좋아가 되고 의문의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때는 기분이 나쁘다고 하게 되는 것이지

한글로 무드를 분위기라고 하고 이모션을 느낌이라고 한다면 기분이 좋음과 느낌이 좋음을 표현하는 것이 풀린다, 解, 필링 Feeling이 된다는 것이구나

 

분위기가 좋아야 그다음의 행보, 즉 남녀상렬지사로 가거나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을 몰입하게 되는 것이고 남녀상렬지사의 목표는 느낌이 풀어지는 것이고 다른 목표가 있으면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 남녀상열지사든 공부든 먼저 기분이 좋아야 그다음의 단계 느낌을 풀어내는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 기분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느낌이라는 것이지. 기분은 외연의 문제이고 느낌은 내면의 문제라는 것이니 외연부터 해결해야 그 다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이 순서를 제대로 알고 접근하고 있는가? 그대는 기분을 먼저 좋게 하려 하는가 느낌을 먼저 제시하는가? 이 순서를 바꾸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기분을 먼저 풀어야 하고 그다음에 느낌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지.

 

나는 좌뇌형이어서 인지 일단 뇌파에서 문자언어영역이 만들어내는 이성적인 문제를 풀어낼 때 기분이 좋다. 내가 문제를 풀어내어 기분이 좋았지만 이 기분을 너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왜냐 기분은 외연적인 것이라 전염이 되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기분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따라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지. 하품을 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하품이 나오듯이..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은 상태이기때문에 내가 지나가는 길에서 스치는 이들이 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하게 된다. 기는 외연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기분이 좋은 사람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나쁜 사람 옆에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지. 그래서 그대가 기분 좋은 사람이 되든지 기분좋은 사람과 인연을 하든지.. 하는 것이 현명한 인간관계가 된다. 내 곁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나면 내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고 내가 기분이 나쁘면 그 시간에 나를 만나는 사람도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내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너도 기분이 좋아지도록.. 그렇게 내가 지나가는 길에 웃음이 피어나고 새댁은 언제나 활발하고 생기 넘치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고 하는 말을 듣는다.

 

매듭이 있는 것을 풀어내고 나서 오는 것 기분이 충전이 된다. 에너지가 가득해진다 행복하다 만족하다 감사하다 고맙다는 언어가 저절로 송출되는 것은 기분이 좋을 때이다. 하나씩 흩어져있던 사건들이 한 줄로 쪼롬히 꿰어질 때 아하 이 일은 이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구나 스토리텔링이 될 때 기분 좋음이다

 

기분이 좋음은 객관정보에 대한 내 인식이 타인들이 풀어놓은 정보보다 더 설득력이 있고 현실과 괴리가 없는 나만의 풀이가 될 때라고 나의 기분 좋음은 나만의 지각에 뛰어남을 누림이다. 기분이 좋은 사람에게선 빛이라는 아우라라는 광배라는 포스라는 어떤 기운이 감돈다. 기분은 빛에너지 방사로 나타난다. 그대가 기분 좋은 사람이라면 옆의 사람에게도 그 기분좋음이 전달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물러간다는 것이지. 빛을 비추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내가 너에게 웃음을 만들어주는가 아닌가이지.

 

나는 어디를 가도 기분좋은 에너지여서 나를 만나는 이들은 늘 즐거워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빛인간 光人이다 고 한다. 광인을 미친 사람으로 인식하는 이도 있으니 그것도 좋다. 늘 즐거운 에너지로 돌아다니니 그러하지 않은 이들은 미친 사람인가 보다 하는 것도 알지.. 그래서 빛사람으로 미친 사람으로 둘 다 나는 만족한다. 무엇엔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아니까 내가 무엇에 얼마나 미치고 있는가.. 를 너의 평가를 통해 인식하는 것이지 기분은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외부로 방사되는 것이어서 너의 평가가 중요하다. 내가 너에게 무엇으로 평가를 받는가? 결국 소통하는 능력이다. 너의 문제 매듭들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풀면 기분이 가 좋아진다는 것을 설명하고 같이 매듭을 풀어내는 방법을 설명하게 되니까. 그래서 이성적인 문제, 논리회로, 진리라고 하는 문자언어공부는 늘 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이름 석자를 풀어내는 것으로 기분 좋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너의 이름을 내가 풀어줄 때 너는 꽃이 된다는 것도 아니까..기분 좋게 만드는 것..너를 기분좋게 하는 것.. 이름을 풀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매듭으로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름을 풀고 그다음의 매듭인 사주를 풀어주게 되는 과정.. 너의 이름과 사주를 풀어가려면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주를 공부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나지.

이름공부 성명학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나고.. 내가 요즘 이해하게 되는 것이 '본다'라는 언어값인데 남들이 공부하지 않은 영역을 공부하게 되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하는 것이라는 것.. 즉 일반인들이 하지 않는 공부를 하게 되면 눈이 생기는 것이지. 귀신을 본다고 하는 이 말 때문에 도대체 귀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서 본다고 하는 것일까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그 영역에 관심이 없었기에 알지 못하였기에 본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고 그 영역을 공부한 이들은 공부를 하기 때문에 본다고 말하는 것이구나..

 

오늘 불로천을 건너가는데 김점분 여사님과 정곡지 여사님이 계셔서 허리 돌리기를 하고 계시는 김점분 여사님의 옆에서 같이 허리를 돌리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주당이 걸린다는 것과 객귀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그간의 관찰에 의하면 김점분여사님은 성정이 맑고 밝고 고우신 영성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고 그간 대화를 통하여 소녀처럼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기에 이 여사님의 정보를 꺼내어볼 생각을 한 것인데 내 질문에 김점분여사님은 자기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으신다고 하시더라. 사람마다 기가 있는데 자기는 상가에는 가면 안 되는 기라고 하시더라. 불심이 깊으면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하시면서 부모형제의 상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하시더라. 내가 이 영역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주당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는데 그런 것 저기 저 사람에게 물어라 저 사람이 환하다고 하시는데 여소원여사님.. 그래서 여여사님과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 분도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갔다가 본인이 갈 뻔해서 끄을려 나오시고 그 이후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으신다고 하시더라 나더러 그런 쪽 공부를 안 했나 하시길래 이쪽은 이제 공부하는 중이라고 그래서 묻는 것이라고 했더니 이상례언니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빙그시 웃더라

 

주당과 객귀의 차이를 설명해 주시면서 본인이 객귀 들었을 때와 사위가 객귀들었을 때 어떻게 풀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시더라. 여소원여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에삿분은 아니시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공부하지 못한 영역을 먼저 공부하시었고 이제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영역이라 물어보게 된다고 객귀와 주당을 어떻게 가려내고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오늘 알게 된 것이 된 주당과 느린 주당인데 된 주당은 주당이 걸리면 바로 죽은 무거운 것이고 느린 주당은 주당이 걸려 시름시름하여 드러눕는 것이라고 하더라. 객귀가 걸린 것인지를 파악하는 방법이 생콩을 씹어보면 그렇게 비린 콩이 고소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객귀퇴치하는 방법도 설명을 해주셨는데 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느낌은 감정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다 기분과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기분은 상상이고 느낌은 실제라고 하던데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하게 된다

내 기분과 느낌을 먼저 명확하게 구별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기분은 문자(의식, 'consciousness'의 conscious는 'know'라는 의미를 지닌 어원 'sci'에서 유래한 단어)와 연결이 되고 느낌은 언어(의지 will)와 연결된다.

문자는 객관적인 정보이고 언어는 주관적인 상태가 되니까. 기분은 의식이 성장함에 따른 자기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고, 느낌은 자기 위치를 아는 것에서 오는 힘이라고...

기분이 좋으면 너에게 한턱을 낸다고 하지만 느낌이 좋으면 자기에게 한턱을 내는 것이다. 기분은 외연적인 것이라 외연으로 투사를 하지만 느낌은 내면적인 것이라 내면으로 투사하게 되는 것이고 기분은 자기 인정욕구라고 한다면 느낌은 자기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기분 좋은 사람은 타인에게 무엇인가 주려하고, 느낌이 좋은 사람은 늘 자기를 잘 가꾸고 보살피고 존중하려고 한다는 것이지. 내가 무엇이든 너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기분이 좋아서인데 느낌공부를 하게 되면서 내 몸을 내가 관찰하게 되더라는 것이고 그래서 요즘 새롭게 몸짓을 훈련하면서 자기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몸을 마주하여 몸짓, 즉 글몸을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하게 된다. 기분은 너에게서 만족할 수 있는 나눔이지만 느낌은 너에게서 만족하지 못하는 자기 사랑의 채움이라는 것이지. 내가 너에게 나눔 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이다. 문자.. 그리고 내가 나를 채움 하는 것은 의지 즉 내 몸짓을 통하여 내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네가 해주지 못하는 것이 느낌이다.

 

물이 만드는 것이 기분이지만 피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흐름이 느낌이니 이 느낌은 너에게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그래서 혼자 가라고 하는 영역이다. 가슴이 느낌의 바당으로 피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물길은 이성이고 나는 숨골에서 용천혈까지의 순리를 열어놓았을 때 기분 좋음이 이뤄진 상태라고 본다. 그리고 낮아져 모인 바다에서 생명의 불씨가 일어나는데 단전이라는 곳 즉 말쿠트라는 곳에서 불씨가 일어 불길을 만들게 되는데 불길은 단전에서 가슴으로 올라가는 길을 간다

 

오늘 봉무동에서 몸짓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종순 씨를 기다리는데 종순 씨가 와서 어이 몸짓훈련하자 하고 몸공부를 했다 구령에 맞춰서... 재미난 놀이지 내가 대책 없는 놀이꾼이니까 내 추임새에 같이하면 건강한 소리통 건강한 핏돌이 건강한 몸짓이 되는 것이지. 기분이 좋은 만남이 느낌이 좋은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내 공부법이기도 하지.

 

이론설명도 한다 십자가라는 원리가 수직 물길과 단전에서 가슴으로

올라가는 불길의 관계로 가슴이 중심센터가 되어 새처럼 날개를 내어 날아오르기를 훈련하는 자리를 열십十에 사람인人을 더한 나무 목木이라고. 나무 목의 자리를 티페레트, 또는 아나하타 또는 胸(가슴 흉)이라고 하게 되는 곳이라 단전에서 불씨가 붙어서 가슴으로 올라오게 되면 火라는 글자처럼 팔을 움직이는 훈련을 하게 된다고 팔을 많이 훈련하게 되는 것이 팔자를 풀어가는 것이고 팔동작을 반복훈련함으로 팔팔한 에너지 만들어 자유의 날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종순 씨 팔 품을 넓게 펴고 크게 돌리라고 나도 움츠리고 살았던 몸짓에서 어느 날인가부터 팔 돌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서 소리크기와 몸짓이 같이 가게 되는 것이 되더라고 소리력을 기루어가는 것이 몸짓과 같이 가는 것이더라고 그래서 둘이 벤치에서 보건체조처럼 구령을 붙여가면서 땀나게 팔을 돌리고... 즐거운 몸놀이를 하고 설음을 순음을 가동하면서 순음에 대한 설명을 한 번 더 하게 되더라 그간 내가 공부한 공부를 디딤하고 들어선 공부자리가

살아있는 글 생글 몸짓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글공부라는 것이고 영체의 외연화라는 것이지 무형의 영체가 유형으로 나타나는 방법이 몸짓이라는 것이지 태도라고 하는 것

 

내가 요즘 하는 말이지만 소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종순 씨도 이렇게 소리를 하는 것도 해야 하는 명을 타고난 것이어서라고.. 그렇게 소리를 하고 오늘은 산에 오랜만에 들어가 보자 하고 화담마을까지 다녀왔다. 화담마을 산자락에서 자기 확언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 보니 나무꼭대기에 말벌집이 있어서 저 말법집이 우리의 말벌집에너지인가 보다. 하고 말벌집 화잇팅도 하고.. 오늘은 늘 나를 다라아래까지 데려다주는 종순 씨에게 더운데 여기서 집에 가라.. 이시아로 들어가는 길에서 헤어졌다. 폰을 보면서 오는데 뒤에서 누가 불러 보니 권 선생님. 새벽 4시에 나오셔서 학봉에 오르면 6시라고 하시더라 오늘 제피를 따서 가져가신다고.. 불로천에서 헤어지는데 더운데 한 참 더 가야 되네요 조심해서 가라고 하시더라. 불로천 건너 다리아래서 몸글쓰기 한번 더하고 돌아오는 길에 윤대원선생님이 인사를 건네시더라. 씩씩한 선생님.

 

기분의 세계는 너와 내가 나눔 할 수 있는 객관정보를 딛는다.

느낌의 세계는 너와 내가 공유할 수 없는 주관정보이다. 그래서 내 느낌을 너에게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정은 스스로 해결하는 영역이지

타인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느낌을 너에게서 해결 받으려 하는 것에서 오류가 생긴다. 한자를 봐도 感은 咸心으로 심이 가장 깊은 곳이든 가장 아래이든 자리가 정해져 있다. 네가 드나드는 자리는 咸이지만 너가 드나들 수 없는 곳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고유한 영역이고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의 지성소라고 하는 곳이다. 너를 들여놓으면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지. 즉 너는 기분의 대상이지 느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이것을 기억하자

너에게 내 느낌을 투사하지 마라. 투사하는 만큼 느낌은 무거워지고 탁해지고 어두워진다. 마음은 비워두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느낌이 생기는 그 느낌은 무게임으로 토해내라는 것이지. 피가 무거워지면 답답하고 무겁고 짜증이 나고.. 그렇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의 능력과 메시아의 능력을 설명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능력은 물의 능력이고 메시아의 능력은 피의 불의 능력이다.

물이 탁해지면 수살귀가 채워지면 어깨가 아프다. 그래서 팔을 많이 돌리고

설음을 하라고 한다. 피가 탁해지면 가슴이 아프다.그래서 고함을 지르라고 하는 것이다. 물과 불의 쓰임을 제대로 훈련을 하고 나야 예수의 공생애 3년에 하신 일들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이제 비로소 무속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 예수가 귀신을 다루셨다는 것. 나도 귀신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지. 귀신의 세계를 모르고 정신의 세계를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함이 있고 나서 돌무덤을 열고

부활을 하신 것이듯이.. 내가 그렇게 벽을 쳤던 무속언어들, 귀신세계를 이제 열린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변화기도 하겠다.

일상의 오가는 언어는 과학언어가 아니라 샤머니즘 즉 무속언어다

샤먼이란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빛을 어떻게 가져오는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부르짖으면 된다. 그러면 몸이 열리고 땀이 난다.

그렇게 빛은 이론이 아니라 내 몸에서 송알송알 맺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종순 씨와 같이 설음 순음을 하면서 얼굴 가득 송알송알 올라오는 땀방울을 보면서 이렇게 우리는 빛을 가져오는 굿을 매일 하고 있다. 몸짓을 공부한다는 것이 참 재미나다 나처럼 해봐라 요렇게..처럼 내가 이렇게 몸짓을 하고 따라 같이하고.. 소리에서도 내가 선창을 하면 종순 씨가 따라오고.., 그렇게 공부를 이어간다.

 

몸치던 내가 유연하게 몸을 다루듯이 종순 씨의 몸치도 소리와 같이 유연하게 되는 것

벤치에서 오가는 이들을 개의치 않고 용기 있게 우리의 공부를 하는 것. 즐겁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HkdEgRZ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