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성령의 역할 중 영분별에 대한 소고

청향고은 2023. 6. 25. 13:51

 

성령의 역할 중 영분별(Spiritual Discernment)에 대한 소고 蘇顧 

 

고전 12:10에서 KJV는 '영들 분별함'이라 했고, NIV는 '영들 사이에 구별함'이라 번역했다. 분별함에 대한 헬라어는 '판단하다'라는 동사인 헬라어 'krino'에서 온 'diakrisis'이다. 그것은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귀신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은사가 아니라, 선악을 분변 하는(히 5:14) 판단 능력을 말한다. 생각은 선과 악을 판단하여 분리한다.

 

'성령'이란 낱말의 개념을 '영'을 '완성'하다로 세운다면 '영'들 '분별'이라고 하게 되는 개념을 쉽게 세울 수 있다. 즉 365도로 구성된 동그라미를 그리는 미션을 완료하는 것을 성령成O이라고 하는 것이라면 영분별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1도에서 시작하여 도수를 넓혀나가는 과정을 풀어내는 것인데 천궁도를 보면 365도로 이뤄진 일년의 흐름을 설명하는데 이 천궁도를 성령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구나. 일년 열두달 365일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을 영분별이라고 한다는 것이된다. 내 글이 상학 즉 이미지로 설명하다가 수학 숫자로 설명하게 되는데 수비를 설명하게 되면 동그라미를 이루는 도수를 말하게 되는데 사주에서 귀문관살은 150도로 이뤄지거나 270도로 이뤄진다. 도수로 설명을 하는 것을 삼합 방합 육합..들로 설명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1도에서 각도수를 모아서 365도 원이 되는 것을 성령이다고 한다는 것이다.  는 내 이해다. 그대가 성령이라고 하는 그 성을 이룰 성成으로 하고 령을 영O으로 하면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지. 내가 영을 그리려고 시도를 시작하는 자리를 점령이라고 하지 점점점을 더해 동그라미를 그리게 되는 것이 성령..참말로 이런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분별이란 分別은 八刀로 칼로 잘라서 여덟조각이 되게 했다는 것이지. 別은 구도도口刀刂로 단도刀와 장도刂로 동그라미口를 잘라내는 것이다. 영분별이라는 것은 저마다가 가지고 온 O(씨알)을 칼로 잘라내는 것(칼로 자르려면 열매가 되도록 했다는 것이 전제된다)이다. 그대가 씨알로 있는가 씨알을 기루어 열매가 되게 했는가를 아는 지식이 영분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홉 가지 성령 은사와 열매의 차이를 그대가 이해하고 있는가?

 

물론 은사恩謝라는 말과 열매라는 낱말 자체가 다르니 개념도 다를 것이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낱말마다 어떤 개념인가 설명해 보라에 어... 하게 되면 그대는 은사와 열매라는 영혼을 모른다 그리고 입으로 떠든 수만큼 구업이 되어서 아는 줄 착각하고 있었구나 하게 된다면 그대는 말의 쓰임을 모르고 말을 쓴 허물 구업 카르마를 업게 된다. 사람을 미워말고 죄를 미워하라고 했는데 그 죄가 언어개념(디아키리시스 'diakrisis')을 모르고 쓰는 상태라는 것이니 모르던 '죄'를 공부함으로 '의'로 바꾸자는 것 모름은 어둠이고, 앎은 빛이다 그래서 어둠에서 빛으로 옮기려고 말의 쓰임 말씀공부를 하는 것이다. 문장공부이전에 언어개념을 만드는 공부를 말씀 공부라 한다

 

자, 이제부터 말씀공부 시작이다. 죽을 때까지 공부라는 말이 개념없이 쓴 말을 찾아 개념을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호리라도 갚지 못하면 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말씀이 전달하는 것은 그대가 쓴 언어에 대하여 그대만의 개념을 만들지 못하면 남이 만든 개념에 갇혀있는 것이다. 즉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너의 언어나 나의 언어는 나의 너의 신경을 타고 다닌다는 것을 기억하자. 언어가 다니는 길이 신경이다. 신경神經이 약하면 너의 말에 눌리고 신경이 강하면 내가 너의 말을 지배한다. 어떤 위치에 있는가? 언어개념을 만들어 부자가 되면 너의 언어에 내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하다고 할 때는 언어에 민감하다는 뜻이고 신경에 뭔가 거슬림을 느낀다는 것이고 무신경하다는 것은 말에 대한 느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예각으로 날카롭다는 뜻이고 둔감하다는 것은 둔각으로 무디다는 것이다. 예각이 좋은 점이 있고 둔각이 아름다울 때가 있는 것이지. 신경이 날을 세우는 대상이 객관언어가 되면 말씀공부가 되고, 신경이 날을 세우는 대상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되면 '사람공부'가 되는데 사람의 말이 거슬리게 되는 경우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개념과 전혀 다른 개념으로 말을 하게 되는 때이다. 같은 개념의 언어를 소통하게 되면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이고 서로 걸림이 없는 대화를 하기위해서는 서로의 낱말에 대한 이해를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언어값을 같은 값으로 소통하게 되는 것을 언어에 온전하다고 하고 의인이라고 했다. 의 義를 옳다고 하는데  옳다는 것은 거슬림이거나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말에 걸림이 없어지거나 풀이에 막힘이 없는 레벨이 되는 것을 숫타파타니에서는 그물을 지나가는 바람같이..라고 성서에서는 신이 수면위를 운행하신다고 하는 것이지.

 

언어중추신경에 걸림이없는 의식이 되는 것. 언어중추에서 벗어나고자 하게 되면 그대는 대뇌번연계를 활용해야 하고 대뇌번연계를 활성화하는 방법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에너지로 중추언어신경이 습득한 언어지식을 갈라 대뇌번연계에서 그 언어를 계산하도록 하는 에너지를 영분별이라고 한다 고 내가 이제 이해하게 된다. 내 이해라고 .... 성령은 말의 쓰임을 공부하도록 이끌어가는 에너지임으로 말씀이 중심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말씀이라고 하면 그대는 경전들을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이전을 생각해야 한다. 낱말을 떠올리고 그 낱말이 어떤 의미를 담기위하여 만들어진 것인가 와 그 낱말들이 어떤 경우에 어떻게 쓰여서 어떤 힘을 드러내었는가를 스스로 체험해가면서 배우는 공부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두드리는 글을 그대가 만나면 나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간접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도전을 받아 나도..해보자..하게 되면 그때를 나는 그대의 영이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고 내 글이 그대에겐 가브리엘의 수태고지가 된다고 하는 것이지.  성령의 사람이 영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대의 봉인되어 있는 가능태로서의 영을 자극하여 성령이 되고자 하는 의지에 불을 붙이는 것..그것을 나는 '복음사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게 나는 그간 길을 다니면서 사역을 시도하곤 하였다.  

 

그러니 내가 세우지 못한 언어개념이 있는데 누군가 만든 개념이 마음에 딱 들거든 값을 지불하고 그 개념을 사라 개념을 사는 값은 겟세마네 복음이다만 그래서 남이 세운 개념을 내 것으로 사 오기가 값없이 돈 없이 와서 사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는데 그대가 언어개념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의 겟세마네에 동의하였을 때이다.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었다는 문장이 겟세마네라는 복음이 그대의 언어를 갈라낸다 즉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현상, 언어를 분리하여내는 과정을 체험한다는 것이지. 언어중추신경에서 언어를 분리하는 과정을 체험할 때 머리가 하얗게 된다..고 한다. 언어뇌를 수술하는 작업이 되는 것인데 이 작업을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그리스도 성령에너지다. 그 외에는 길이 없다.

 

남이 세운 개념을 먹은 척 하자하게 꼬드기는 것이 사탄의 역할이다 사탄의 선함은 루시퍼라고 할만큼 성서에 대해서는 예수보다도 더 밝았다는 것을 기억하라 대천사였고 말씀담당이었다는 것도 기억해라. 루시퍼는 오직 빛만 있는 에너지로 무한긍정 마인드콘트롤 생각 다스리기의 주인이다. 예수의 비하라는 것은 빛에서 어둠으로 내려왔다는 의미이고 루시퍼는 빛에 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대가 잘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예수와 같이 무덤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니까..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형수, 이 세상에서는 없는자..가 된다는 것이라는 것...예수를 만났다고 빛의 일꾼이라고 떠드는 자들은 사탄의 하수인이다. 예수를 만나면 일단 죽어야 된다. 무덤까지 간다. 지장보살이라고 하는 것 사주의 지장간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내 안의 첫상처자리 탯줄을 자른 그 시점으로 회귀한다는 뜻이라는 것..

 

예수는 빛이 필요한 현장으로 이끌어가며 어둠, 지옥의 영들이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지옥의 영들이 있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복음은 지옥의 영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무덤에 장사지냄이라는 것이니 그대여..주를 위하여..라고 아름다운 이론으로 펼쳐주는 루시퍼의 빛남에 미혹되지 말라. 그리스도는 주의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이 성령이 되라고..성장하여 온전한 자가 되라고 한다. 모름이라는 어둠이 있기에 빛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맞지?

어둠은 어둠을 모르고 빛은 빛을 모른다 그래서 빛은 어둠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지

은사는 말 그대로 은혜은 감사 사라고 한자로 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은혜 은이 뭐여 하게 되지? 은혜를 카리스마라고 한다면 이해가 쉬우려나? 그 사람 카리스마가 있다고 할 때 그대는 어떤 때 그 말을 쓰나? 생각해 보시라. 은사는 카리스마 즉 현장 기운을 지배하는 힘 아우라 디아키리시스 즉 분별력이다. 분별하는 포스 파워...라고 한다면 쉬운 설명이 되려나? 다스리고 지키는 힘을 은혜라고 카리스마, 또는 디아 키리시스라고 한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 있든 주인의식으로 행동하는 에너지를 은혜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령의 은사는 나로 나되게 하는 힘이지 그 외의 것은 그다음에 떨어지는 떡에 바른 고물 같은 것이다.

 

아홉 가지는 내가 태안에서 가지고 나온 씨앗이다. 갖출 구具라고 하는데 구성령이란 아홉이란 숫자이기도 하지만 생명력으로 가득 찬 씨앗이란 의미도 있다 즉 보시기에 좋았더라인 한 알의 밀알엔 아홉 달의 에너지가 충전되었다는 것

 

발아시켜 열매가 되게 하는 힘을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이지 누구나 아홉 달을 태안에서 자라고 나온 과거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드라마줄거리가 출생의 비밀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태안의 과거를 예수는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문장으로 설명한다 예수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홉달 자궁에 머물러 있었지 않았는가? 그때의 정보를 알려고 열두 살 때 성전에서 토론을 했던 이야기. 열두 해 한 바퀴를 돌아보니 태안 아홉 달이 궁금해진 것이렸다 아버지를 알고자 한다는 것은 씨를 알고자 한다이지. 태어나 자라고 보니 아버지 즉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성령이 궁금해진 것이지. 자기 정체성을 알고자 한다는 의지는 누구라도 가지고 있고 예수는 자기의 출발인 성령을 알고자 한 것이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니 성령이 예수에겐 아버지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성전에서 아버지를 찾으려 한 열두 살 예수가 등장하는 것이고 이 나이를 나는 언어를 의문하는 시기라 게슈탈트붕괴현상이 일어나는 시기라 설명한다

 

자기만의 언어를 찾고 구사하고자 하는 욕구를 사춘기에너지라고 하는 것이고 예수의 사춘기가 성전에서 아버지를 찾음이지

영의 실체가 무엇인가 엿볼 수 있는 정보인데 예수를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그리고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서 다시 오마 할 때 성령으로 온 것도 이해되지? 자기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니 성령으로 잉태되도록 하는 카리스마라는 것이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영이 얘수와 연합하여 성령이 되어 다시 성령을 낳는다는 과정을 걷는다는 말이 된다.

 

예수는 말씀원리를 아버지 즉 성령이라고 인식하였다는 것이고 지옥의 영이라는 것도 태안의 과정을 빌어 언어가 생성되는 원리를 이야기한 것이라 내가 이해한다네. 이런 이해가 생긴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성령이 된 것이지. 어렵던 성령의 개념이 이룰 성을 쓰면서 365한바퀴 도는 데 성공함이라는 것이 되고, 성공이란 낱말도 공을 이룸이 되니 같은 뜻이지. 태어나 365일을 살았다는 것이 성령 성공 완성인데 365일을 살았다는 기록이 우리에겐 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봉임 된 영생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 성령, 영을 이룸 동그람을 만듦. 성령이 어린 내 영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함이고 열매는 공급받은 에너지를 소화하여 자라서 온전해짐 즉 성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은 온전한 영인데 어린 영은 유영이라거라 유령幽靈이라고 하게되는데 어리다는 것은 골격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형태나 질서가 없는 상태라고 하면 된다. 어리다는 것을 사주에서는 癸水라고 하여 안개 구름 습기..들로 설명한다. 안개나 구름이나 습기가 단단해지면 물방울이 되어 무게가 되어 하방낙하한다. 계수를 이슬이나 빗방울이 되게 하여 떨어지게 하는 에너지를 금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성령은 골격을 갖추게 된 것을 뜻하고 유령은 골격이 갖추어지지 않아 성장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영가를 본다고 하는 경우 대부분 구름같이 안개같이...뿌옇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정보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다고 하는 것. 그런 과정을 성서에서도 소경이 눈을 뜨면서 나무같은 것이 걸어갑니다..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유령이 성령으로 자라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정보이기도 하다. 유령이 성령이 되는 과정, 즉 동그라미..정자가 스핀 운동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과학..유령이 성령이 되는 과정도 스핀운동을 하면서 된다는 것, 나선환을 그린다고 하게 되는 것이지.  우주가 나선환을 그리며 돌듯이 정자또한 스핀운동을 하면서 난자로 향한다는 것이지. 우리의 편견이 과학에 의하여 교정이 되는 것도 즐겁지. 인간의 편견이 인간에 의하여 교정이 된다는 것이 신비롭다. 

 

은사는 객관적인 기능이고 열매는 주관적인 능력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하는데 그 은혜가 나에게 주어져 내가 받음이란 인식이 가동되었을 때를 은사 받음이라고 하고 은사를 받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거나 눈물이 난다거나 환희봉송한다거나 하는 대부분 체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새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지. 배고프고 헐벗었던 이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어 배를 불리고 몸을 감싸게 되었을 때 먼저 느끼는 체험은 누구나 동일하다 그리고 베풀어준 대상에게 향하는 감사의 마음이 눈물이기도 하지

 

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은 체험은 누구라도 같다는 것이지. 그래서 성령의 은사냐 자기의 망상이냐를 구별하는 방법이 영분별이라고 하는데 성령의 은사, 디아키리시스를 체험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반면 자기 망상이 발현된 사람은 주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성령이 오면 자기의 언어를 살피게 되지만 악령이 오면 너의 언어를 판단하게 된다는 이 사소한 차이에서 공부가 시작이 된다. 내 꿈에 등장하는 타인은 내가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정보라고 해석한다 꿈에 나타나는 싸인들을 이해하는 것..그것을 내 언어와 연결하여 풀어가는 것이 영적인 성장을 하는 방법이라는 것

영은 꿈이라는 현장을 통하여 성장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육신의 놀이터는 낮 자연이지만 영의 놀이터는 밤 꿈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이다고 했는데 꿈을 꾸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 꿈을 꾸지 않는 이는 없다. 꿈이 선명하게 남는 것은 영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지 꿈이 영의 목소리라고 하는 것이지.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는 공부과정을 꿈으로 보고 꿈을 꾸면 현실에서 그 정보값을 확인한다. 풀어지지 않는 꿈은 풀릴 때까지 궁구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내가 나되는 일이 목적이 되고 내가 온전한 영이 되도록 자라 가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는 반면 자기 망상이 가동되면 너를 구원하고 주의 종으로 나서겠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예수성령을 팔아 유명해지겠다는 이생의 자랑에너지가 현시화된다. 내 욕망이라 말하지 않고 그 앞에 명패를 주의 사역이라 붙인다. 사깃꾼의 전매특허가 남의 명의 도용하는 것이지 예수이름 팔고 석가 이름 팔고...너의 다리를 긁지마라..다리라고 하는 것이 다르마 달마 너의 언어다. 너의 언어는 너의  하울링이지 나의 성향이 되지 않는다. 내 글이 나의 기록이고 너에게는 참고는 될지언정 너의 뼈가 되지는 않듯이..

 

영 분별이라고 하는 은사는 내 욕망을 마주하여 정직한가의 문제다. 너의 이름에 내 욕망을 숨기고 예수 이름을 붙이고 내 욕망을 챙기는 것을 십계명에서 내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마라와 거짓증거하지 마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령의 은사는 너를 위하여라는 허구를 벗겨내고 ‘나’를 위하여 라는 기치를 세우게 한다. 너를 위하여 에는 수많은 감언이설이 있지만 ‘나’를 위하여라고 하려면 먼저 ‘나’라는 언어값을 찾아야 한다.

 

‘나’를 알아야 ‘나’를 위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지 않겠는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나’를 위하여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지 하여 성령의 은사 중에서 가장 먼저 가동하는 은사가 영분별이다. 즉 오순절 성령의 임재현상을 보면 불의 혀같이 갈라짐이라고 하는데 갈라짐이라는 것이 분별이다. 영분별이라는 천사옥대를 미카엘의 검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영분별은사는 방언을 딛고 활동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예수가 로고스 말씀이라고 하였으니 말의 씀씀이를 풀어내는 수단이 방언은사인 것을 이제 전하게 되는 것이구나.. 그래서 성령을 받았는가 아닌가를 체크하는 방법이 방언을 하는가 아닌가로 가름하는데 방언을 분별한다고 하여 영분별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성령의 은사를 그대로 복사 붙이기를 하는 것이 악령의 영역이기 때문에 방언을 한다는 현상을 놓고 영분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오래 전 내가 부모의 영향아래에 있을 때 겪은 체험인데 당시 부모님은 목요기도회라는 모임을 이끌어 가시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모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이따금 참여하였는데 나는 단체모임보다 개인적인 기도나 묵상을 선호하였기에 당시 내 관점에서는 그렇게 내키지 않는 모임이었는데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기도 하지만 왜 기도회의 목적이 기도제목이 유교언어로 하자면 출발단계인 앞의 격물치지, 성심성의라는 자기의 가치와 위치를 먼저 인식하는 네 단계를 이유 없이 혹은 이미 갖추어진 것이라 서로 착각하자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든지 뛰어넘어 즉 위버맨쉬 초월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게 나에겐 걸렸다.

아니 격물치지성심성의는 우짜고???라는 의구심 때문에 모임자체를 빼딱하게 보고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때 내가 생령과 악령이 방언을 두고 한껏 차이구나 깨달았던 사건이 생겼는데 그 상황을 간략하자면 방언이 목에서 나올 때와 단전으로 자리를 내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였다. 한껏 차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차이다. 방언을 열심히 하는데 단전위에서 나오는 소리값이 만드는 현상과 단전으로 내려와서 발하는 방언이 만드는 현상의 차이..그 현상을 놓고 내가 소리를 가르치면서 항상 소리자리는 단전이어야 한다고 하게 되었고 소리를 들어보면서 소릿자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자세를 낮춰서라도 소리자리를 내리게 하는데 그것을 따름하지 않으면 나로서는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소리자리는 단전이다. 즉 배꼽자리가 탯줄자국이듯이 그 자리에서 소릿줄 영의 젖줄인 방언이 출발한다는 것이라고..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레벨이 나온다. 내가 상대방을 파악하는 방법이고 소리를 기루게 되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단전을 단단하게 하라...단전에서 소릿줄이 출발하게 하라..는 것이 나의 가르침의 기본이다. 방언은 자기의 영을 성장시키는 에너지를 당겨 쓰는 탯줄이라는 인식을 해야 골방기도를 하게 된다. 방언은 영에게 영이 영양을 공급하는 줄이기 때문에 남에게 자랑용도가 아니라는 것이지. 방언은 영이 자라 성령이 되면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듯이 방언도 그치고...가 된다. 영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방언이라는 영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래서 방언을 많이 함으로 감사하다고 한 바울의 이야기를 이해하게되지 

 

바울이 방언은 골방에서 하라고 했다 개인의 영역 영이 성장하고자 필요한 은사를 공급받는 젖줄이라는 것이지 젖은 자기가 먹어야지. 자기가 자라서 영을 기루게 될 때 자기가 젖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영이 젖줄을 만들어 스스로 젖을 공급받는 길, 소릿줄을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 나는 소리를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젖을 먹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이지. 그래서 소리를 가르쳐 익숙하게 익히게 되면 너의 영은 너가 기루는 것이니 나에게 기대지 말라 하고 거리를 준다. 홀로서는 것..그렇게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공부하는 자의 자세라고..

 

주의 일 한다고 나서게 되면 그 시점에 루시퍼에게 코가 걸린다 내가 태어나 성령이 되고 하는 선택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이 사탄 루시퍼다 그것이 대부분 속는다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니까 예수는 빛으로 오지 않고 어둠으로 온다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즉 내가 살아온 날들을 마주하도록 당긴다 숨긴 상처 들을 하나씩 다 드러내어 내가 나를 알게 된다는 것. 그렇게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 내 안의 나를 은사를 공급받으면서 성장하여야 성령이 되기까지 나를 인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성령의 역할이다. 보혜사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가르치신다고 했다. 내가 무지함으로 허물 속 무덤 안에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 허물을 벗겨 돌문을 열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게 하시는 것이지

 

내가 성령이 되도록 길을 안내하는 것은 예수가 영에서 성령이 되는 과정을 걸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해 본 것을 너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이지 않겠나. 나 역시 내가 해본 것 하는 것을 너에게 가르쳐주는 것이고. 하여간 이번 유월의 미션은 엉덩이꽝에서 그것이 풀리는 동안 낙단루 주변의 풀을 다 뽑았다는 것이고 이것을 나는 내 안에 남은 쓴 뿌리를 걷어낸 것이라 해석을 한다. 비물질이 물질화되는 것, 생각이 실천이 되는 것,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 그것을 체험함의 레벨이 높아갈수록 카리스마가 생긴다는 것도 이젠 안다

 

내가 행하지 않은 앎은 카리스마가 피드백하지 않는다. 아는 것을 행하는 그 행함이 만드는 것이 카리스마다는 것. 낙단루로 가서 웃소리 훈련을 하고 망우당 계단에서 이름 불러 액설런트 하기를 하고 내려오는데 최순옥언니 만나 손잡고 즉 운촉하여 이름 부르기를 했다 기감과 운촉공부에서 내가 정리함 것도 설명하고 언니가 주변 어른들 공양한 이야기도 듣고... 계단에서 만난 인연이다. 즐거운 만남인데 이 언니는 에너지가 참 이쁘다 하기사 내가 만나는 인연인데...

 

효목동에서 후프를 돌리면서 글을 두드리는데 어제 후프를 돌리고 있는 나에게 하루종일도 돌리겠다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후프 돌리면서 글을 쓰는 일석이조. 점점 요령이 생기네. 허리를 돌리니 요령이라 요령은 도사들의 도구라 하더구먼 나는 후프를 돌리면서 글을 두드리네 이 또한 재미남이구나. 도사앞에 붙는 기능이 글문이라고 하더라. 글문도사의 에너지가 어디에 있는가? 허리에 있다는 것이되겠다. 

 

어제저녁 경자의 전화가 있었다 농장 다녀왔는데 양배추랑 감자 좀 나눔 하겠다고 하여 월병을 샀을 때 경자에게 나눔 해야지 했는데 주파수가 잘 맞는다. 밤바람 서늘한데 잠시 만나 선물을 받아 돌아와서 챙겨 넣는데 남편이 귀가 다리 아프다고 아이스크림을 한 박스 사서 왔다 들고 오기 힘들었다고 남편의 아이스크림 사 오기는 결혼 초부터 주욱 이어오는 술 마시면 하는 이벤트이다. 냉동실 채워놓고 남편에게 힘썼다 고생했다 감사하다 덕분에 입호강하겠다 등등 남편의 수고에 대한 입보살 하고 남편은 흐뭇해하고

 

어제 빛결의 입국날 테크에서 빛결이름부르기로 생일송을 했더라 빛결이 보낸 웃소리 마중물 삼아 오늘 웃소리 올리면서 내가 날아야 할 날개 달기 열심히 해야겠다 웃소리에서 어딘가 걸리는 부분 하여간 즐거운 6.25구나

전쟁의 에너지는 나로서는 다 뽑은 셈이다 해석하고 있으니까 하여간 유월 불타는 에너지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풀 뽑기를 함도 즐겁지만 영남제일관에서 했다는 것이 좋다. 국난을 극복하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공중전을 한 것이라고

 

아침 경자 복숭아밭에 가지 않을래 톡이 왔는데 나는 낙단루에 있었다네 영분별에 대한 소고라고 제목을 붙이고는 마중물이 길었네. 일단 영분별은 방언으로 한다는 것 방언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파악하는 것. 단전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 방언은 영에게 영양소를 공급하지 못한다. 배꼽에서 세 치 아래를 단전이라 한다는데 방언소리가 단전에서 나와야 영에게 공급이 된다 그래서 영분별을 한다는 것이 방언을 어디의 힘으로 하는가를 파악함이다는 것. 단전부터 먼저 만들어야 그다음 방언이 터진다 단전 없는 방언을 악령이 부리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늘 자기의 기돗자리 단전점검부터 하는 것이지

 

'2023, 계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과 오행  (0) 2023.06.27
유월, 장마의 시작  (0) 2023.06.26
강江 저편에서 이편을 보는 관경觀景  (0) 2023.06.24
개념의 힘  (0) 2023.06.22
오인월병, 다섯가지 씨앗 달떡  (0) 2023.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