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성령과 오행

청향고은 2023. 6. 27. 13:11

서양에선 성령成O, Holy CIRCLE이라 하고 동양에선 오행 O幸(行)이라 한다.

그대가 동의하거나 말거나 언어이전엔 이런 개념들 개의치 않고 언어너머 영계로 가면 이런 해석이 나오게 된다.

예수를 중심으로 기원전(B, C)과 후(A.D)로 나누게 되는데 언어이전과 이후라고 이해하면 더 쉬울 듯하다.

 

예수라는 좌표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나 하지 않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몸이 예수니까

내 몸이전에 태안에 있었다는 것이고 태어나 언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고 살고 있는 것이

태안의 태아가 양수에서 성장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본다면 언어바다에서 성장하면 어디로 태어나는 것일까..로

생각하면 예수가 그리스도가 된다는 메타포가 이해되겠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인데 이 스토리에서 동화를 당겨오면 라푼젤이라는 것과 연결을 할 수 있다.

라푼젤동화와 붓다의 법화경과 연결을 하는 내가 얼마나 독창적인가.. 탑에서 황금머리카락을 줄로 하여

아래로 내려뜨려 마녀를 오르내리게 하는 것이나 법화경을 설하실 때 지상에서 허공으로 오름 하셔서

설법하실 때 다보탑이 드러났다는 것이나..

 

불가의 정보가 태안에서 태아가 생성되는 언어이전의 세계를 설하는 것이라고 내가 설명을 하는데

라푼젤이라는 동화의 라푼젤 Rapunzel. 독일의 채소. 양배추, 양상추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마타리와 친척뻘이다. 임신했을 때 먹으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하듯이 태아와 상관이 되는 것이고

라푼젤의 황금머리카락은 정보를 전달하는 소통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푼젤 이야기를 대략 하면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임신한 아내가 상추가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가난해서 상추를 구매할 돈조차도 없었던 남편은

불가항력으로 옆집의 텃밭에서 상추를 훔치는 일을 몇 번 하다가 운나쁘게도 밭주인인 마녀에게 그만 들키고 만다.

그러나 마녀는 이 밭의 상추를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다 가져가도 좋다고 쿨하게 허락해 주었지만,

대신 그 대가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자기에게 넘겨 달라는 거래를 제안한다.

남편은 "만약 저희 부부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한다.

그 후 을 얻게 되었는데, 아내가 먹은 채소의 이름을 따 이름을 라푼젤이라 지었다.

하지만 곧 마녀가 찾아와 종전 약속을 잊지 않고 언급하며 라푼젤을 데려가 입구도 계단도 없는 높은 탑에 가두어 버린다.

 

로 전개가 되는데 임신한 아내에게 공급할 정보가 상추 또는 양상추 양배추라고 하게 되는 것은

뇌가 생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수정란이 착상하여 꼴을 갖추는 기간에 임신느낌은

잠을 많이 잔다는 것이고 잠을 자는 동안 아기의 뇌파가 생성된다는 것을 라푼젤에서 설명하는 것이고

탑에 갇힌 라푼젤의 황금머리카락을 통하여 마녀가 오간다는 발상인데 라푼젤의 황금머리카락은

탯줄을 의미하는 것이라 읽으면 마녀는 태반 황금머리카락은 탯줄 라푼젤은 태아 탑은 자궁이라고

연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라푼젤의 황금머리카락이 소리선으로 또는 붓글로 해석이 되는 것이어서

몽블랑만년필은 라푼젤을 어린 왕자를... 등등을 캐릭터로 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지

소리줄은 영계의 줄이고 만년필로 대표되는 글줄은 혼계의 줄이다고 나는 이해한다.

육의 탯줄을 자르고 그 자른 자리에 영계에서는 소릿줄이 혼계에서는 글줄이 싹을 낸다는 것이고

소리줄 영계와 글줄 혼계가 뜻과 맛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 가동되는 것을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육신은 밥을 힘으로 하고 영혼은 법을 힘으로 한다고 하는 것인데 밥에도 찬이 필요하듯이

법에도 현장이 필요한 법이지. 그래서 영의 그릇을 혼이라 하는 것이고 영을 담아내는 그릇을 血(피)라고 하는 것이다.

영은 신경을 딛고 다니는 정보이고 혼은 피를 딛고 다니는 정보다.

 

부정모혈이라는 말을 풀고 풀어가면서 부정은 물(水)이고 모혈은 피(土)여서 정자를 담는 그릇으로 난자가 되는 것이고,

난자가 정자를 성장시키는 밭이 된다는 것이지. 육체를 흙이라 하고 흙 안에서 길러지는 영을 생령이라

숨이라 프시케라 아가페라 사랑이라 등등으로 설명하는 것이지 육체란 토기그릇 안에 담겨야 하는 내용이

다르마 법,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의 육체가 어떤 언어를 가름하여 쓰는가에 따라

그대의 태가 생기며 그대의 품격이 그대의 차원이 정해지는 것이다. 언어에 완전한 사람을 의인이다

성령이다 신이다.. 고 하는 이유다.

예수를 말Word씀Make이라고 하니 말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고 해석을 하게 되면 개념을 만들기가 좋다는 것이지

말 이전은 문자이고 말 이후는 뜻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디테일하게 분석을 다시 하지.

말씀은 말의 쓰임으로 뜻만들기라고 하게 된다. 그래서 언어 이전은 태 안이라 언어 없음이고

언어 이후는 언어가 담았던 내용 뜻이 되는데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지.

말을 어디에 어떻게 쓰임 했던가를 아는 것이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이라 하고 말그릇에 담았던

본디 뜻을 아는 이를 의인義人이라거나 신인이라고 했다는 것이지. 神人은 신이며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말의 쓰임을 찾아내기 위하여 말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고 나는 이제 설명을 한다는 것이지.

神은 시신示申, 영어로는 see sin(죄, 허물을 보다) 자기의 실체를 보는 눈을 뜬 자라는 것이다.

신이라는 것은 어둠에서 나온 빛이라는 뜻. 빛을 가져오는 자를 루시퍼라고 했는데 루시퍼를 빛천사,

광천사라고 하게 되고, 또는 악마樂摩(소리갈이)라고 하는데 그대도 해보면 알겠지만 조용한 자리에서

소리가 나오게 되면 에너너지가 움직인다. 소리를 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가동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소리音을 보면 해가 뜬다가 된다. 소리를 내면 몸이라는 어둠에서 해가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지.

본심본태양이라고 하는 것. 그대의 몸은 어둠이고 그 몸에서 소리가 일어나는 것을 해가 뜬다고 하는 것이라고..

사주에서 병정사화라고 하는 것이 천간의 병정은 외연의 에너지라면 사화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로

이 객과 주가 만나서 생기는 시너지를 악마라고 한다는 것이지. 외연의 파동이 내면의 주파수와 하나가 되는 과정에는

소리가 반드시 생기고 소리를 내지르는 과정을 조용한 이들이 판단할 때 귀신 들린 것 같다 악마 같다

사탄이다 미친 짓이다.. 등등으로 표현을 하는데 악을 쓴다고 하는 것을 악마..라고 한다는 것이지.

그대가 소리를 질러봐라 조용함을 좋아하는 이들은 기겁을 하면서 귀를 막고 그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미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반대상황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불이 활활타오르는 곳에서 불더러 물처럼 흐르라고 하는 것이 미친 짓이지..

그래서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고 불기운이 강한 병정사오에너지와 물기운이 강한

임계해자의 에너지가 음양처럼 있다는 것이지.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치솟는다.

목은 상하좌우로 벌어지고 금은 수축한다. 그래서 목과 금은 반대에너지라고 하는 것이지.

목극금이라고 하는 것이고 목의 묘와 금의 유가 도화라고 하는 것이고...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소식을 전하는 헤르메스라고 하기도 하거나 메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라고 하고

메시아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 메시아는 정보를 실어 나르는 빛이다. 어둠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다.

 

그대의 무지가 앎으로 바뀔 때를 메시아라고 한다. 어느 날 문득...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그 순간을 메시아라고 하는 것이지. 알겠는가? 메시아라거나 구원자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대 안에서 무엇인가 축적이 되어 용량을 넘게 될 때,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에서

정보가 넘치면 흘러나오게 되는 현상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반복에 반복을 하게 되면

점점점.. 선선선.. 면면면..으로 정보가 자라게 되고 어느 날 아홉 달을 채우게 되면 태아가 산도를 밀고 나오듯이

어떤 정보가 태어나게 되고 그 태어남의 체험을 깨달음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넘쳐야 흘러내린다. 그것을 분수효과라고 했고 법화경에서는 지상에서 허공으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옴이라고 했으며

예수 역시 승천하였다가 재림할 것을 말했다. 불가의 설명과 예수의 설명이 같은데...

이해를 하지 못하는 좁음이 붓다와 예수의 언어를 나눈다.

습관을 카르마라고 한다는 것 알고 있는가? 카르마지 업식이지 하는 말이 반복을 통하여 익숙해져서

무의식이 된 상태를 말한다. 그대의 언어습관이 있고 생활루틴이 있고 몸짓이 있다.

얼굴표정도 있다. 내가 동영상을 녹화하여 늘 분석하는 것은 내 몸짓이고 표정이다.

내가 나를 녹화하여 분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 습관이기에 불편해도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

나를 관찰하고 관조한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내 목소리는 녹음하여 듣게 될 때 얼마나 낮선 내 목소리인지..

내가 낯설어지지.. 하여간 녹음도 하고 동영상으로도 녹화하고 그렇게 나를 보고 보고 본다.

그리고 내 몸짓을 만들고 내 얼굴을 살핀다.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얼굴표정도 관찰하여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입꼬리를 올리는 훈련으로만으로도

동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동영상을 꾸준히 녹화하고 소리를 발하고 춤을 추고..

그런 몸짓들을 반복함으로 내 태도를 만들어간다. 너에게도 그렇게 훈련을 하라고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몸짓이나 노래를 자랑하려 함이 아니다. 내 훈련이 이러하게 어리숙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한다.. 반복으로 하다 보면 어느 날 멋진 몸짓이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열심이다는 것이지.

 

잘하는 사람은 잘하도록 훈련을 한 과정이 있고 못하는 사람은 못한다고 멈추기 때문이라는 것.

누구나 반복에 반복을 하면 익숙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인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다.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도 그대의 선택이다.

나는 얼마나 고함을 잘 지를 수 있는 가를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에서 나온 빛..그대의 머릿속에 습화된 루시퍼에 대한 종교적인 개념은 벗겨내라고 권한다.

천사는 샛별을 악마는 저녁별로 뜨는 금성을 일컫는 말일뿐인데 惡이라는 것은 亞心으로 구성된 한자로

버금 아는 샛별이 아니라 저녁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 종교적인 눈으로 언어를 보지 말고

언어를 말간 눈으로 보라는 것이지 길들여진 생각을 버리고 언어가 어떤 구조로 쓰임이 되어서

나에게 닿았는가를 살피는 것이 말씀공부라고 나는 설명하는 것이지.

 

영지라는 것은 바벨탑이후 흩어져 왜곡 오류가 나는 언어생활을 바벨탑이전으로 복귀시키는 지식이다고 내가 생각한다.

라푼젤의 탑과 타로카드 16번의 탑과 인체의 탑인 머리(숨골)의 관계, 언어이전은 태 안의 세계이고

언어 이후는 뜻 밖(意外)의 세계이다. 남들이 새겨준 뜻이라는 것에 갇힌 것에서 벗어나면 나만의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기존 뜻에서 확대되거나 가벼워지는 정보가 드러난다는 것이지.

 

내가 있는 여기에 알맞은 나에게 합당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이 영적인 지식이고 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의 해석은 남의 것이다. 너의 것을 내 신경으로 다니게 하지 말라는 것이지.

내 샘의 물을 바깥으로 흐르게 하지 말고 남의 짐을 내가 지지 말라는 것이지.

언어 뜻이 무거우면 신경을 누른다 신경질이 나는 상황을 생각해 봐라 너의 언어에서 오는 에너지다.

기분 좋아짐도 너의 언어에서 오는 것이다. 신경질이나 기분 좋음은 네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의 언어에 내가 반응하는 효과비용이다 너의 말에 신경이 쓰이거나 너의 말에 들떠거나 다 내 반응이지

그러니 언어에 배려한 그대의 지식현상이라 보면 되리라

 

너의 말에 기분이 신경이 좌우되는 것은 어릴 때의 성장할 때의 반응이고 성장하고 나면 너의 언어에 무관심하게 된다.

냉담하다거나 냉정 또는 차갑다는 표현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말을 해놓고

돌아오는 반응에 관심이 없다. 너의 반응이기때문이다 내가 말을 한 의도가 전해지면 그것으로 족하고

아니면 아닌 대로 너의 반응이니 그것도 좋은 것이지 그래서 내게 관심 갖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는 것을

인식하면 세상이 참 재미나게 보인다.

너가 내게 흥미를 보이는 것은 네가 나에게서 얻을 것이 있다는 계산이 있어서다. 나에 대한 너의 반응

이것을 내가 분석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사람에게 반응하는가? 그것을 본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얻으려 접근을 하고 대화를 하고.. 시간을 같이하는 것일까?

얻으려는 것이 있어서일까 나눔 해봄으로 내 정보를 검증하려 함일까..

내 경우는 내가 파악한 정보를 객관화해 봄으로 정보의 가치를 매겨보려고 하는 것이 의도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정보를 제공하고 너의 반응을 살피고 반응값이 내가 얻은 값과 같은가를 확인한다는 것이지.

소리를 질러봐라..이것을 반복하여 훈련하면 속이 시원해진다..

이 상식을 나는 일상에서 훈련하도록 한다는 것이지 이론으로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아는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이고 나처럼 이렇게 같이 소리하자고

붙들고 설명하고 같이하는 이는 나 외에는 없다는 것이지.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은 익숙한 것을 낮설게 하기 놀이다.

성령이란 개념도 동그라미 이룸이라 해놓고 혼자 뿌듯해서 나를 대견해한다

야 이런 생각이 나오네 대단하네 으쓱으쓱 이렇게 만들어진 개념에 그간 모아둔 구슬꿰기 놀이를 하면 이 또한 즐겁지.

 

개념을 만들어가는 창조놀이를 하다 보면 야 이렇게 동, 서가 만나 하나가 되는구나 하는 신기함을 누린다

구슬이 보배가 되는 놀이가 된다는 것이지. 내가 제공하는 이런 정보는 새로운 시대의 초석이자

황금시대를 이끌어갈 혁명적인 정보다.

 

지금까지 지구를 이끌던 낡은패러다임이 정리되고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시기인데 5차원으로

진화하는 시대라고 한다. 아니 육 차원이다. 육망성으로 나아가는 정보세계

유란시아라는 통합된 지식이 나왔고 스마트폰이라는 도구가 나왔으며 이젠 검색기능이 아니라

대화기능으로 챗봇이 등장하여 그대와 소통한다. 모든 것이 주어진 시대로 어떻게 쓸 것인가는 그대의 선택이다

 

누구는 새로운 철학이 나와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낡고 좁은 마당에서 놀고 있을 뿐이지

이미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고 이미 있는 것에서 새로운 해석을 만드는 재창조가 있다.

무엇인가 도전이 생긴다면 그것이 감사한 일이다. 다만 너의 우주엔 간섭하기 없기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게 십계명 제1 계명이니까

 

붓다의 재해석이 예수이고, 예수의 재해석이 성령이고 성령의 재해석할 일이 내가 할 일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년주를 붓다에 월주를 예수에, 일주를 성령에 잇기가 된다면 시주는 성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것이

그대와 나의 시대를 초월한 위버맨쉬 의지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최정상에는 성령을 해석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

 

신을 해석자라고 하는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해석이 있고 그것과 반대편에 있는 해석이 있어

그것을 빛과 그림자 음양이라 하는데 영은 영으로 해석한다는 룰이 있는 차원으로 이 차원을 카발랴세피로트에서는

아인계라고 하고 동양에서는 ‘무’라고 했다.

 

점을 찍으면 점이다. 그 점을 더하여 360도 원을 그리는 것을 성령이라 하고 반지름이 180이 있어야

빛과 그림자가 나타나고 각을 잴 수 있다. 360도를 오행이라고 하고 180을 음양이라 한다 고 내가 이해한다

예수의 오병이어가 음양오행이라는 영계를 설명하는 메타포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행은 동그라미로 상생이라 하고, 음양은 각을 만드는 도수로 상극이라고 역에서는 설명한다.

 

상생만 있는 것이 모음이다. 상극이 만드는 것이 자음이다.

소리를 하다보면 모음은 풍선을 불듯이 불어서 원을 팽창시키는 상생이라면 자음은 풍선이 넓어지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풍선예술이 되게 할까 즉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거나 기능이 된다는 것이지. 모음은 힘이지만 자음은

기능이라는 이런 당연한 지식을 아하 그렇구나 하고 감탄한다

 

정자가 상하운동을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핀운동을 하면서 나아간다는 것이

자음과 모음의 역학관계이기도 하지 모음안을 헤엄치는 정자는 스핀운동을 한다는 것.

그것이 상생동그라미 모음과 상극 각도의 자음에너지다 상생만 있으면 그것을 공이라 했고

그 공안에서 자음 하나님의 아들이 스핀운동을 하는 것을 영이 성령이 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

그것을 가르친 것이 예수의 성령화이고 복음이니까 성령을 공부하라는 시대의 소명을 따라 태어난

그대와 내가 할 공부는 예수가 그린 그림 성령을 나는 어떻게 따라 그릴 것인가 라는 화두를 시주로 받은 것이다.

 

사주팔자에서 일주까지는 다 해석이 되었고 남은 것은 예수가 다 이룸한이 룸 한 오행과

음양으로 그린 성령을 나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예수는 예수의 영을 성령으로 이 룸 한 인간 즉 점에서 360도 동그라미 그리기를 완성함으로

신으로 등극한 것이니 나 또한 점유에서 성령으로 나를 완성하여야 신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이

예수가 남긴 영이 성령 되는 비결이 겟세마네 복음이다 고 내가 이해한다.

육체가 성장하듯이 영체도 성령이 되기까지 성장한다는 것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년주보다 월주가 더 강력하고 월주보다

일주가 더 막강하고 일주보다 시주가 액설런트하다. 안으로 들어오면 시주가 열매가 되고

안에서 나가면 연주가 열매가 되는 것인데 공부하다 보면 년주와 시주가 만나게 되면 동그라미가 이룸

즉 성령이 되었구나 한다. 성령이 되면 다시 말해 모음계를 클리어하게 되면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자음계 즉 수학공부마당이다. 모음계는 상학이라 하고 자음계를 수학이라 하여 상수학이라 한다

상수를 공부한다는 것이 음양오행을 성령을 해석한다는 것이고 부모가 그리다가 멈춘 동그라미를 이어

그리기를 하는 것이 대물림이고 윤회의 고리 라고 한다.

 

이 동그라미그리기를 오행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이름을 보면 항렬을 따라 짓는데

이 원리가 오행의 상생방향을 따라가는 것으로 목화토금수라는 순서로 글자로 하면 ‘O'이고

오행이라는 말로 동양에선 동그라미를 설명하고 서양에서는 성령이라고 한 것이 된다.

상생 동그라미는 모음원리를 상극 각도는 자음에너지를 계산하게 한다 상수학을 공부한다는 것

그게 면류관을 쓰는 일이기도 하지

예수에게 씌운 가시관이라는 메타포 그대 이해하는가 뇌 신경 뉴런이라는 것을?

목 즉 봄 씨앗이 발아하는 자리에서 출발하기때문에 인류는 목(자두 리, 이)에서 시작한다.

나무의 아들이라는 뜻의 도 리, 또는 오얏(오야지) 리는 우주 빅뱅이 드러낸 비물질의 물질화

이원론의 출발이기도 하다 태초의 천지창조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는 것인데

빛이 있기 이전은 흑암이였다는 것이지 흑암을 진공묘유라고 하거나 공이라 하는데

이 흑암에서 빛이 생긴 현상을 빅뱅이라 하는 것이고 음에서 양이 나왔다고 음양론이 된다.

양음론이 아니다는 것 음에서 양이 나왔고 그것을 창조라고 하였다

 

음은 비물질상태이고 양은 물질상태이다는 것이지 그래서 보이는 모든 것은 ‘양’이라 빛이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음’이라 흑암이라 하는 것이지. 흑암에서 빛으로 드러난 것은 드러나게 하는 힘이 작용한 것이고

그 힘을 우리는 ‘신’이라 한다. 새벽에 그렇게 비가 붓더니 잦아들어 우산을 가지고 나섰다

오늘은 봉무동 동네 둑에서 여사님들 만나 인사하고

불로천에서 김옥자 채순자님 만나인사하고 주욱 가는데 이상례 님 만남

 

그간 비운 사이 윤선생님이 남천나무를 손봐놓으셔나보다 벤치에 앉아 초벌글을 두드리고

일어서려는데 김경순여사님 손잡고 이름 부르기를 하고 설명 헤어져 풀 뽑으며 걷다가

상례님 다시 만나 오늘도 화잇팅하고 나서 가다가 아하 우산을 놓고 왔구나 되돌아감.

우산을 보는데 정다움이 느껴지더라 나랑 같이 다니는 비친구구나 놓고 갈 뻔했구나

환하게 개인 하늘과 햇살을 보며 걷는 즐거움, 그리고 다리아래 앉아 쉬는데 목을 스치는

바람 바람 시원한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 신의 몸빛도 바람

비가 디딘 대지위로 스치는 바람의 향기가 말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