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봄뜨락

아이들이 묻는 질문만이 진실한 물음이다

청향고은 2021. 6. 12. 13:36

00님은 글을 참 귀엽게 쓰시는 것 같아요. 귀요미체..
혹시 듣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지만 유튜브이에 일당백이라는 코너가 있어요
일생동안 반드시 읽어야하는 백권의 책이라는 말을 줄여서 일당백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재밌어요. 사람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생각이라는 것이 항상 따라다니고 기억이라는 것이 떠오르고 상상도 하고...
혼자일 때 더 많은 사회생활을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00님의 그림실력을 보면 손끝이 상당히 여물고 단정하신 것 같아요
머리가 좋으신 분들이 손재주가 좋다고 해요..무엇을 하시든지 잘 하실 수 있을 것
00님의 글을 보면서 제가 좀 젊어지는 듯..감사함을 전합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요.
2021.6.11. 16:44 
 
답글
블로그주인
어멋나!! 칭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ㅎㅎ
일당백 채널 이름만 들어보고는 영상을 보지는 않았어요^^ 추천해 주시니 보아야겠어요~~~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 교류를 사회생활이라고만 생각을 하였는데 다르게 생각을 할 수 있군요! 와... 하고 감탄이 나옵니다!!
2021.6.11. 21:13 
 
답글
사회라는 낱말을 보면 社會이고 영어로 쇼셜 Social 이라고 하잖아요
쇼셜은 소설...이 되겠지요. 社는 示+土 라고 해서 속을 토해낸 무엇들을 모은 것이고 會도 人一罒曰인데 세 사람人이 하나 一를 두고 저마다 관점罒으로 떠들어내는 것曰들..즉 객관적인 이야기가 되기 전에 사적인 견해들을 모아서 공감각이 된, 즉 보편적인 기준이 된 정보를 모은 것이 會이다는 설명이 나와요. 일단 자기 속 示을 토해내는土 것이 사社이고 그 사가 셋이 모여서 같은 값을 만들어낸 정보가 사회를 이루는 출발이 되는 것이되지요. 개인적인 소회라고 하는데 개인의 속을 토해내도록 하는 것이 췌장에서 하는 역할이래요. 췌장膵腸에서는 모든 것을 토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위장으로 들어온 에너지를 소화하여 당糖을 주에너지로 하는 뇌로 에너지를 올리고 남는 당은 지방으로 축적하는데 그것도 많으면 췌장에 쌓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해서 성인병이거나...그런 병이 되는 출발이 된다고 해요.
췌장의 기능을 제대로 가동시키려고 하면 뉴런이 스스로 분비하는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내인성마약이 필요한데 이 마약호르몬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늘 발출하기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기분이 좋아지고..그렇게 되지요. 기분이 무거우면 걸으면 가벼워지는 것은 걸으면 뉴런에서 카나비노이드를 발생시켜서예요. 걷기만 해도 병의 90%는 치유된다고 하잖아요. 순설후를 하는 것은 췌장의 기능, 즉 태아시절부터 뉴런과 연동하여 마약호르몬을 발생시키는 길을 뚫어놓는 방법이예요. 말을 배우기 전에 순설후부터 하는 이유..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언어에서 비롯되니까요. 사회생활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언어를 오가게 하는 것인데 언어이해력이 같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는 것이라는 것이죠. 코로나시국이 되면서 비대면 사회생활이 심층적으로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 
 
 
내가 소통하는 20대 가운데를 거치고 있는 귀여운 분과의 댓글인데 이 분을 통해서 젊은세대의 흐름을 보고 내 감각으로 소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댓글로 소통을 하는데 댓글을 두드리다보면 이분의 내공이 내 안의 정보를 끌어내는 것인지 댓글을 한 것을 다시 내 카스토리로 옮겨와서 궁구하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정보와 연동되는 기제가 있어서이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는 이들은 나에게 무엇인가 정보를 제공하여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나를 끌어당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로 윈윈WinWin이 아니라 윙윙WingWing하게 하는 인연은 그렇게 생기는 것이구나..ㄴ과 ㅇ의 에너지가 얼마나 다른가를 알게 되는 윈윈이냐 윙윙이냐..윌윌이냐 윅윅이냐. 윔윔이냐 윕윕이냐 윗윗이냐 윞윞이냐....이렇게 응용을 해보는 것이 어휘력확장훈련이고 한글경의 원리를 훈련하는 방법이지  
 
나의 뇌세포든지 내세포든지 체세포든지..어느 세포에 담긴 정보가 출산하게 되면 같은 주파수와 파동을 가진 정보체를 찾아 공명하고자 하는 것..자기와 맞는 정보를 가진 인연을 찾아서 공명하고자 하는 것이 인연이 된다는 것이지. 이 젊은 인연을 보고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고 이 인연을 어떻게 발화시켜 아름다웁게 꽃피우고 열매를 맺음하여 서로 윙윙윙..자유의 날개를 활활하게 할 수 있도록 먼저 태어난 나로서 정보를 앞서는 이 인연에게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지 강 길을 다니면서 책콕을 하고 다니시는 손선생님을 내가 콕찍었다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에서이고 나의 성격이 반영된 그림자라는 인식이 작용하였다는 것이고 책에 몰입하게 되는 이면에 작용하는 무엇을 이해하기때문이듯이..잊기위해서 책에 몰입한다는 말에 그렇겠지..라는 연민이 생긴 것도 내가  책에 몰입했던 이유와 같아서라는 것이지. 그러한 연민에서 내가 지나온 과정을 통해 찾아낸 원리를 건네줌으로 허무의 바다에서 뭍으로 오름할 수 있도록 지푸라기라도 건네고자 하는 것이겠다. 동기들이 많이 죽었다..는 그 말 뒤에 있는 그리고 책을 보는 이유..잊고자 함. 무엇을? 그것을 나는 파들어가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을 파들려면 이 분의 심층을 이루고 있는 바다를 먼저 유영해봐야 한다는 것이고..   
 
어제 손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삼氵를 기체 액체 고체라는 물의 세 가지 형태를 설명하는 기호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물 水로 쓰는 기호와 삼氵로 쓰는 기호값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 水는 말 그대로 H2O 이고 삼氵는 물의 세가지 기능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앗싸...앗싸는 '아사'의 센말이고 '아사'는 아침'朝'을 뜻하고 아침은 새로운 해'新陽'가 오름'出'이듯이 새로운 해석이 열림이라는 것이다. 물 수와 삼 수의 차이, 물 수는 객관적인 상태, 삼수는 그것의 작용을 이해하는 가치. 
 
서정적인 물 水과 서사적인 삼 氵 서정적인 물은 반경을 넓히는 것이고 서사적인 심층을 만드는 것이고..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것, 서정과 서사적인 개념으로 물과 삼을 이해하게 되는 것. 여자의 난자에너지는 서정이라면 남자의 정자에너지는 서사에너지라고 하는 것일까나 머리와 몸통과 꼬리로 이뤄진 삼 氵, 그리고 丶丿亅丿丶의 구조로 구성된 水. 왜 갈고리 궐을 썼을까? 라고 의문을 하고 밑줄을 치고..생각을 넓히거나 깊게 파들면서 나만의 새로운 풀이를 만들어본다. 水는 난자의 구조라고 하고 氵는 정자의 구조라고, 정자의 구조 머리를 기체, 몸통은 액체, 꼬리는 고체로.. 
 
손선생님의 내 이야기에 대한 평가, 알아듣는 것도 있고 추구하는 분야가 다름으로 언어가 달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도 있지만 쉬운 언어로 설명을 하니 잘 이해하게 된다고 하시더라. 아이에게도 통하는 말을 구사할 수 있을 때, 아이가 묻는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그 질문이 진실한 질문이라고 한다는 것처럼...아이는 무엇을 어떤 표정으로 어떤 언어로 물을까? 내 아들이 어렸을 때 즉 6살 때 물었던 질문이 아기는 어떻게 생겨서 어떻게 태어나는가? 였다. 지금도 아이들의 질문은 동일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어떻게 어디서 생겨서 어떻게 태어난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이게 근원적인 질문이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질문은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이다. 이 질문에 자기만의 언어로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이를 아버지라 한알이라 한얼이라 하늘이라 하나님이라.. 어른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제 이해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여야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왜 아버지에게 묻지 않고 어머님에게 묻는가...이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까.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그 씨알은 아버지의 것이였으니 아버지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부정모혈인데 어머님에게 물어서 답이 나올까나..아버지에게 물어야 답이 나올까나

 

성격은 타고나고 기질은 길러야 한다 성격은 자존심이라고 하고 기질은 자존감이라고 한단다 내가 나를 살피면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이 약했던 것인데 자존심=지기싫어하는 마음=승기심이고 자존감=두루 아우르는 마음=포용심이라고 한다 슬픔은 형식角이고 행복은 내용感이다는 문장을 마주하면서 밀란쿤테라의 슬픔이라는 개념은 형식이고 행복이라는 개념은 내용이라고 했는데 형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형식이 다른만큼 내용도 다르지 않을까?  
 
슬픔이라는 언어는 몸이 드러내는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언어이지만 슬픔의 색깔은 눈모양만큼이나 다르고 지문만큼이나 다르니까 슬픔哀 Sad-새드, 우리말 싸하다와 통하는 말이겠지 코끝이 ' 싸'하거나 가슴이 싸아하거나 목이 싸아하여 아프거나라는 느낌이라는 것 싸하다 즉 열기가 사라지다는 것. 열기가 사라지면 남는 느낌은 차갑거나 무겁거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기온같은 냉기가 들게 되는 상태, 그래서 가을의 기운을 숙살지기라고 했고, 가을하늘을 민천旻天, 슬픈하늘 안타까운 하늘 애처러운 하늘등으로 표현을 했다. 여름의 그 열열한 열기, 즉 신록이 우거지고 세상이 푸러지던 열기가 스러지고 온도가 내려가는 계절의 느낌, 즉 피가 식어가는 , 열이 사라지는 느낌을 슬픔이라고 한 것이겠지 슬픔이란 결국 나의 인정욕구나 너의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거나 생의지가 과열되었다가 식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겠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고 채움이 있으면 비움이 있다 이 과정에서 채움은 행복이라고 하는 내용이라면 비움은 형식이라고 하는 슬픔이겠지  들숨과 날숨같은 것이 슬픔과 행복으로 관계겠구나. 행복은 숨을 들이쉴 때의 만족이 내용이라는 것이고 숨을 내쉴 때의 형식이고 슬픔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래서 옛사람들이 한숨을 쉬면 한숨쉬지 말라고 한 이유가
슬픔을 표현하는 형식이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코끝이 싸하거나 가슴이 먹먹하거나 목울대가 아프면 자동적으로 숨을 길게 들이쉬고 깊게 내쉬게 되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 몸의 무의식이듯이  
 
더 나아가 설명하자면 아웃사이드에 있다가 인사이드로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소용돌이거나 관심의 중심에 있다가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면 생기는 감정의 오르내림이 슬픔이라는 개념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인정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태가 슬픔이라는 형식이 되겠다. 누구나 소통하고자 하는 즉 자기인정욕구를 발동시키고 산다.
그것을 생의지라고 한다. 그 의지가 소통되지 않을 때 쓸쓸함 사비시이  「寂しい ​さびしい」 '허전하다', '쓸쓸하다', '외롭다', '섭섭하다', '서운하다' 라는 언어가 나타나는 것이고 새드나 사비시이나 쓸쓸하다나 슬프다거나 같은 울림이지 않을까나. 내가 보는 세계를 표현하는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현장을 인식하고 그 현장에서 발을 빼고 나오면서 느끼는 것이 슬픔이겠지. 그래서 왜 소통이 되지 않는가?를 스스로 묻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는 것을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겠다 슬픔이라는 형식이 없으면 행복이라는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지 
 
더 풀어보자 슬픔은 죽음에 대한 반응이다 행복은 삶에 대한 가치부여이다 . 죽음은 슬픔이라는 언어로 옷갈이 입고 나오고 삶은 행복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슬픔은 죽음, 즉 자기의 감정과 이성의 작용과 반작용에 대하여 무지함이고 행복은 자기의 감정과 이성의 작용과 반작용을 감각하고 표현할 수 있음이다. 아웃사이드에서 인사이드로 들어간다는 것은 객관적인 문제라고 인식하는 죽음을 주관화한다는 것이고 인사이드에서 아웃사이드로 나아간다는 것은 삶이라는 현장을 객관화한다는 것이다 삶은 손등이라면 죽음은 손바닥이다. 손바닥에 손금이 있고 지문이 있다 손등을 보면서 행복을 만들고 손바닥을 보면서 손금으로 그어진 거미줄같은 운명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대의 손바닥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그대의 손등을 어루만져주라 손등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행복의 빛은 손등에서, 슬픔의 어둠은 손바닥에서 손등에 키스를 하는 것과 손바닥에 키스를 하는 차이 손등에서는 아테나(필로소피아)가 나오고 손바닥에서는 아프로디테(아가페)가 나온다는 것을 아시는지 손에 손을 잡는 것은 손바닥과 손바닥이 만나는 것이지 손등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손등은 자존심의 현장이고 손바닥은 자존감의 현장이다.


그대의 손바닥에서 자존감을 보고  그대의 손등에서 자존심을 읽어라. 그래서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라고 한 것에서 오른뺨은 손바닥으로 치지만 왼뺨을 치기위해서는 손등으로 쳐야 한다고 한다. 손등은 자존심을 손바닥은 자존감을 상징한다는 것을 안다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이 상징하는 것은 왼뺨을 치게 되면 치는 자의 자존심이 뭉개진다는 뜻이다. 손바닥으로 치는 것과 손등으로 치는 것의 역학관계. 손등으로 치게 되면 등이 깨어져버린다는 것이지. 꽃으로도 치지말라고 하는데 등으로 치면 어떻게 하나 어둠이 생길 뿐이지 너와 나의 관계를 단절한다는 말이 왼뺨을 돌려대라 절교선언이 된다는 것이지.  
 
에고 이 글을 쓰는데 손정민군의 얼굴에 좌열창이 생기었다는 사진을 보면서 정민군때문에 비나리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나를 생각하는데 아들을 기루고 있는 엄마로서 슬픔때문이겠지 이 사건이 나라를 새롭게 하는 불씨가 되기를 기도한다 내 아들이 살아가야 하는 나라이기때문에 정의의 불씨가 되기를 그래서 정민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생명나무라고 하는 것이고 소통을 위하여 문자언어를 창조하고 씀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들을 선악과라고 하지 않았을까나 불협화음을 거치면서 울림이 열림이 되고 어울림이 되는 것이 소통의 열매지 않을까 울림에서 열림으로 열림에서 어울림으로 진화하는 것이 소통이라는 씨알이 열매로 드러나는 과정이겠구나.  
 
창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고 그 본능을 성격이라고 하는 것이겠다. 너와 내가 소통하고자 하는 인정욕구의 강도에 따라 너에게 집착하는 퍼센티지가 나오는 것이겠다. 너에게 내가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가 100일때 내가 없다고 하고 너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가 0일때 나외에는 없다고 하게 되는데 이론이야 이렇게 나오지만 너에게 100%의지하게 되거나 의지하지 않게 되는 성격을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없는 상태와 나 외에는 없는 상태 이런 경우보다 대부분의 존재들은 49:51의 비율에서 50:50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성격이 강하다는 것과 기가 세다는 것의 개념을 딸에게서 듣고 아하 하게 된 오늘 
 
나는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 센 내 중심을 살아온 것이라면 이제부터 기가 센 자존감이 강한 나로 위치변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구나 그래서 여태 기와 성격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가 기가 센 사람은 모든 사람을 보담을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것이고 성격이 강한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을 보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이 정리에서 요즘 내 성격이 기로 변환이 되면서 복남씨와도 손선생님과도 내 주장도 하지만 상대방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거나 상대방의 권함에 같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기가 세어지는 과정이구나 두려움이 사라지면 기가 세어지고 두려움이 강하게 되면 성격이 강해진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의 반작용이 기가 세어짐. 기운 찬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엇그제 강 길에서 심, 한여사님과 같이 순설후를 하고 소리를 매기는 훈련을 하면서 고함을 질러내었더니 쇳소리가 나네 하길래 쇳소리가 나는 것을 대신해서 무당들이 방울을 울린다고 나는 내 소리로 쇳소리를 함으로 방울을 대신한다고 했더니 무당인가 했더니 춤추고 노래하고 손뼉치고 신나면 다 박수무당이지 않냐고 박수무당이 아닌 사람이 어디있냐고 그랬더니 맞는 말이네 하시면서 고함도 따라 지르시고 기가 세진다는 것은 순설후를 통하여 소리선을 강화시킴으로 가능한 영역이다 자존감이 강해지면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욕구가 사라진다 스스로 존재함을 만족하는 내공이 생기기때문에 너의 손뼉침을 연연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