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본성과 생명..

청향고은 2020. 9. 23. 14:46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니 샛별이 희미하다. 대기가 탁하다는 것이겠지. 어제도 희뿌옇게 샛별만 보이더구먼
오늘도 샛별만 보이더라 
 
공부 진도가 수우욱 수우욱 나가니까 기분이 짱이다. 모르던 세계를 열어가는 것은 내가 등을 들고 불을 붙이고
기름이 준비되어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불빛의 밝기만큼 보이는 반경이 넓어지는 것이 되니까
그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정보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정보인데 내 등불 빛에 드러나는 반경이 넓어져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이지..
해 아래 새것이 없는데 나에게는 온통 어둠이었다가 등에 불을 밝히고 보니 남들이 보고 지나간 것들이 나에게도 이제 보인다는 것이지.
네가 등빛을 밝히면서 자기 발끝을 살피면서 지나가면 등을 들고 간 그 사람의 빛은 그 사람과 같이 가버려
어둠으로 다시 감추어지는 것이지 그러하길래 선각들이 자기등빛을 밝혀서 본 것들을 구전으로나 기록으로 남겨 수트라(經,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되어 내 앞에 그대 앞에 배달되어 있는 것이고 그 수트라가 필요한 이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동시킨 자들이다 
 
내가 풀기로 자기는 생명, 자신은 본성으로 생명은 공간(장소)의 협소함에서 벗어나 공간을 확보함에 성공한 것이 태어남이니 생명이 성불한 것이다. 즉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운 것이다 생명체가 공간(장소)의 협소함을 태어남으로 해결을 했는데 청년의 때가 오면 시간(언어)이 만들어내는 현상, 사성제에 대하여 알고자 함이라는 본성체가 발동된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 본성체 밀알이 싹을 틔우는 것이다 
 
즉 공간이동을 하여 몸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생명의 성장기라고 하고 성장이 완성되는 시기를 성인이 되었다고 하게 되는데 성인이 되면 성경에서는 청년의 때라고 하게 되고, 본성이 활동하게 되는 시기라고 하는 것이다. 태안에서 태밖으로 태어남으로 생명은 공간이동을 했다. 지구라는 환경에서 머리를 받칠 수 있는 몸을 성장시켜서 머리와 몸이 균형을 갖추게 되면 성불한 몸에 불성을 탐사할 조건이 된다  
이 시기에 조물주를 기억하라고 하는데 청년의 때가 되면 태안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눈에서 당긴 빛의 활동이 시작된다 태어나면 생명은 공간이동을 성공한 성불이지만 성불하여 몸을 온전하게 성장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성장이라고 한다 청년의 때가 되도록 자라는 과정을 부모의 슬하에서 기루 어진다고 하게 되는데 부모의 무릎에서 벗어나게 되는 때를 청년의 때라고 한다. 청년의 때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몸의 나이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를 알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의 다름은 남자는 사춘기를 통하여 본성을 추구하고 여자는 생명을 추구한다
남자는 본성, 즉 빛, 눈을 통하여 정보를 인식하는 구조로 지어졌다면 여자는 생명 즉 결 느낌感을 통하여 정보를 인식하는 구조로 지어졌다는 것이지 남자와 여자가 같은 피조물이지만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빛으로 인식하도록 지음 되었다면 여자는 하나님의 모습을 결로 인식하도록 지음이 되었다는 것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는 것과 깊이 잠들게 하사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과 이 정보를 어떻게 그대는 이해하고 그대의 공간인 대상과 시간인 그대의 일상에서 확인하고 체험하는가 전승되는 정보를 카발랴라고 하는데 그대의 몸이, 내 몸이 전승되는 살아있는 카발랴다.


그리고 이 몸이 마주하는 문자는 죽은 카발라다 그래서 살아있는 카발랴인 몸이 죽은 카발라를 살려내려고
하게 되는 것을 본성이라고 하게 된다. 살아있는 것은 모든 것을 살아있게 하려고 하는 것.. 그게 본성이다.
남자의 본성은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 하려고 하는데 본성인 정자가 살아있으려면 살아있도록 해 주는 '길'이 있어야 한다 본성 정자에게 살아있게 하는 길이 '여자'의 난자 다. 남자의 길은 여자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를  자기의 진리로 인식한다는 것이 쉬울까? 여자가 남자의 길이라는 것을 부인한 것이 지구의 역사다 여자가 남자의 살아있음을 , 영생하도록 해 주는 대를 잇는 길임을 안다면 엉뚱한 길을 찾는다고 헤매지 않고 여자가 어떻게 길이 되는지 알고자 '여자'공부를 하지 않을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그 수정란을 빛알(십오진주, 圭)이라고 하는데 이 빛알에는 정자와 난자의 23개씩의 유전자가 더해져 46개의 세포가 되어 하루 한 번씩 엿새를 굴러서 세포의 크기는 변함이 없지만 46개가 64개의 세포가 된다. 이 과정을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변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세포가 46개에서 64개로 바뀌지만 수정란의 크기는 변하지 않음.. 이게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지..  
 
어제 다시 카발랴세피로트를 대하면서 난자와 정자가 수정란이 되는 과정은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흐름이지만 남자의 정자나 여자의 난자는 남자는 남자의 정소에서 여자는 여자의 난소에서 일어나는 본성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자와 난자일 때는 본성체이고 이 두 개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생명체가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카발랴 세피로트가 정소에서 정자가 생성되는 과정을 빛의 길이라고 하여 위에서 내려오는 패스웨이 거나 난소에서 난자가 생성되는 과정을 결의 길이라고 하여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패스웨이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 빛의 길은 수소로 결의 길은 철로 표현을 하자, 전기력과 자기력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자신은 정자의 본성이고 자기는 난자의 본성이다. 수정란이 되어 생명체가 되기 이전의 정보 그것을 본성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생명정보는 하나이지만 본성 정보는 정자와 난자로 나뉘는 것이라고 하나님에서 음양으로 나눠지는 것. 
정자는 하늘로 난자는 땅으로 상징이 되는 것이고 정자는 하늘이라고 하듯이 시간의 압축체이고 난자는 땅이라고 하듯이 공간의 압축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이야기 
 
살아계신 하나님은 수정란으로 그의 보내신 자 예수는 수정을 분화시키면 나타나는 본성, 정자와 난자이고, 그리스도는 정자와 난자를 결합시키는 기름이라고 
 
청년의 때에 궁구 하는 것이 본성이다. 남자건 여자건 자신의 본성을 맞추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서 살아가는 의미라거나 가치라거나 사명이라거나..라는 소망이 된다 태안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온 길을 딛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자 하게 되는 것이 정자는 빛임으로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거나 여자는 결임으로 생명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정자는 자궁에 착상하여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눈의 정보, 빛을 추구하고 난자는 심장박동이 시작되면서 만들어지는 피의 정보, 즉 느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지.   
 
금성증론을 보면 숨을 풀무질하듯이 하는 호흡을 통해서만 금액 환단(정자) 옥액 환단(난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자와 난자가 생성되는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을 선도의 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선도의 정보를 이렇게 이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내가 여태 해온 기도가 선도에서 신선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은밀하게 전수되는 은비임을 알게 된다.
사실 빛 결과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와 같은 이 기도 살 이를 누가 하겠니 미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풀무질 기도
풀무 기도를 巽風이라고 한다.  강 길을 걸으면서 팔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팔을 운동하는 것이 풀무질이구나 하는 생각
팔을 흔들며 걸어보라 걸음이 빨라지고 신나지 본성을  마주하는 것은 풀무 호흡을 통하여 생성되는 현상에서다. 활 발발 일상이 기도이고 수행이다 밥은 특별한 맛이 없기 때문에 밥이다 매일 반복되는 몸짓이 그대의 본성이다. 다만 그대가 그것이 본성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 인식하기 위해서는 의식 호흡, 즉 숨을 풀무질해봐라 팔을 부쳐가면서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붙일 때 부채질을 하면서 하듯이 
 
세상이 변하여 이제 전기로 가스로 불을 붙이니 질라래비훨훨 아가 풀무 숨을 쉬도록 하는 것인데
숨을 쉬도 풀무질하는 숨을 쉬어라 그러면 풀무질 숨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알게 되고 소리가 만들어내는 전자기력을 알게 된다 

 

보이고 만지는 몸의 탄생 성장 원리도 모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고 하다니..
이 추구는 출발 자리를 잘못 잡았다고 하신다. 내가 예수를 길라잡이로 불러서 공부해온 여정에서 깊이 박힌 지식들을 뽑아서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하면서 올해 구월 들어서서 황국향이라고 황정 금빛 뜨락..이라고 하는 눈뜸이라는 체험을 한다.  
 
꿈에 아버지가 눈에 약을 넣는 것을 겹 쳐 두 번을 보고는 그간의 잘못된 관점을 교정하시나 보다..라고 꿈에서 해석한 것과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자라서는 남편을 딸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른다고 하더만 꿈의 아버지의 일이 현실의 남편의 겪은 것과 엮어서 풀어가게 되는 것과 남편이 실제로 망막박리가 되어서 두 번의 눈 수술, 3월 26일과 5월 29일에 했으니 이 꿈이 나에게 그간의 잘못된 길에서 허상을 추구하던 눈의 오류가 교정된다는 예시적인 꿈이었던 것인가 한다.  
 
심장박동이 시작되는 23일까지는 이해했는데 착상되고 14일간의 정보는 의학계에서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성명 규지에서 가장 먼저 눈이 만들어진다는 정보를 대하고는 맞아.. 그렇구나.. 바로 이해가 되더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는 것이 수정란이 착상된 후에 일어나는 첫 번째 일이라는 것 그래서 빛은 눈과 연결이 되는 것이고 영안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구나.. 드디어 첫날 창조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문장이 이해된다 그다음에 심장 박동이 시작되는 것이 빛과 어둠을 나누게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지. 64일 꼴을 갖추게 되는 때까지를 빛과 어둠이라고 하고, 23일부터  64일 까지, 즉 64괘가 나오는 때까지를 땅과 식물의 창조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다음 64일부터 후천 3일의 창조와 연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조물인 생명은 피조물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알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
창조주를 피조물이 안다는 것은 교만한 발상이다. 피조물이 만드는 신은 피조물의 신이지 창조주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수준만큼의 대상을 찾아내고 정보를 이해하고... 그런 것지.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를 보면 내 수준이 나타나는 것이고 내가 어떤 정보를 찾아다니는가를 보면 내가 추구하는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지 않겠는가.. 저마다 자기가 만나고 찾고.. 하는 정보는 자기가 포함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해한 정보를 보고 듣고 하면서 자신의 앎을 검증하는 것이다. 내가 건너왔기 때문에 정보를 알고 찾아내는 것이지 모르는 세계의 정보를 알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세계는 내가 아는 세계이다. 이 법칙을 공명의 법칙, 동시성이라고 한다. 아는 것이니 알아보는 것이라는 것... 이 원리를 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신비하게 된다 
 
모르는 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은 외부에서는 불가능한 것이고, 사실 무엇을 모르는지 물으면 그것도 모르지 않은가?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한다는 것의 모르는 대상은 '태안'의 생명살이의 기억이다. 태안에서는 빛과 결로 정보를 인식하고 의식하였으니 문자와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고 인식하는 세상에서는 빛과 결로 인식하던 정보 기억은 저 깊이 묻혀버리게 되는 것이니 알았던 것 같은데.. 알 수 없음이라는 긴가민가.. 무의식이라고 하거나 잠재의식이라고 하거나.. 하는 언어들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정보를 마주하게 될 때 이 정보의 출처가 어딘가.. 를 묻게 되는 것이 저 깊은 용궁이 되어버린 태안의 빛 결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심청이가 용궁에 가서 수행을 하여 연꽃을 타고 올라와 왕후가 되어 아버지를 불러 아버지의 눈이 띄어진 것같이.. 심청이 용궁에서 눈을 뜬 자신의 체험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반작용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이지 심학규의 눈멈에서 눈뜸까지의 여정이 고양미 삼백석 때문에 심청이 팔려가 인당수에 풍덩하여 용궁으로 들어가게 되는 용궁에서 죽은 엄마도 만나고... 그런 신업을 풀어내는 과정을 통하여 연꽃을 타게 된다는 것이지. 그대를 비춰주는 대상이 그대가 마주하는 것들이고 사람들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맺어가는지 풀어가는지를 스스로 관찰하면서 자신의 본성과 생명에 대한 지식을 불려膨가는 것이라고.. 
 
무지함을 허물이라거나 원죄라고 한다. 사망이라고 한다. 무엇을 모르는가 조차 모르는 시작에서 아하.. 내가 태안에서 280일의 생을 살았구나 라는 깨달음이 오면 태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이고 그 시절의 정보는 어떻게 확인하게 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의 생성과정을 마주하려는 선택에서는 가능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그 시기를 본심 본 태양 선천, 착상하여 64일 꼴을 갖추 추면 황정, 금빛 뜨락 중천, 65일부터 세포 불리 기를 하여 몸을 만들면 그것이 하늘의 별들과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세계라고 하는 후천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태안의 신태영 아가 창조되어 태밖으로 나와 후천 중천 선천으로 역으로 거슬러가면서 정보를 알아가는 것을 천재의 길이라고 하고 태어나 후천을 반복하는 것을 범인의 길이라 한단다.  
 
보이지 않는 신이라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태아라는 것임을 인식하는데서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법은 선가의 수행법이 숨을 풀무질하여 일어나는 에너지의 흐름을 타야 한다 그 외의 방편으로서는 후천, 중천, 선천을 거슬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태어나니 이렇게 사실에 근거한 공부를 한다. 눈이 열린다는 뜻이 태안에서 가장 먼저 생성된 눈이 활성화되어 그 이후의 여정을 볼 수 있는 곳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눈이 빛을 모아서 그다음의 여정을 펼치는 것이니 첫 빛이 만든 눈이라는 자리에 도달하게 될 때 눈뜸, 개벽, 부활 
 
범인의 길을 가는 이들도 레벨이 있다. 즉 64일이 반복된 128일의 에너지장이 작동되는 세계를 학 이지지, 128일이 반복된 256일의 에너지를 곤이지지라고 한다 곤이지지에서든지 학 이지지에서든지 거슬러 올라가서 닿아야 하는 곳은 생이지지의 64일
64일까지에서도 64일은 곤이지지 23일은 학 이지지 7일은 생이지지로 다시 분류된다. 모든 것은 반복되면서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것이 우주원리다. 이 원리를 알게 되면 석삼극 무진본이라고 천부경이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천일일 지일이 인일 삼이 일적십거 무궤 화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一積十鉅無匱化三은 수정란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수정란에서 64일 꼴을 갖추는 것이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대삼합육생칠팔구 天二三地二三人二三 大三合六生七八九이고 65일부터 분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운 삼사 성환오칠 일 묘연만 왕만래 運三四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태아가 완성되는 것을 용변 부동 본 본심 본 태양앙명 인중 천지일 일종무종일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이다. 천부경의 이 과정을 거치고 태아는 태에서 벗어나 태 밖의 세상으로 그 몸을 드러낸다.  그것을 신의 탄생이라고 하여 신생아라고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곳에서 창조가 되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다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의 반복이다. 태안 어둠에서 태밖 밝음으로 드러난 것이니.. 태 밖으로 발현된 생명이 다시 천부경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태어난 아기는 다시 정자가 되고 태어난 아기를 받아주는 지구는 난자가 되어 수정란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 생긴다. 그 과정을 태안에서 자궁에 착상하는 것이 칠일째가 되는 것이어서 태밖에서도 칠 년이라고 한다.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이야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 태어난 아기가 7년이 되면 수정란이 된다는 것이지 수정란에서 눈이 생기는 시절을 '글눈'이 열린다고 하는 시기다. 이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나로서는 글눈을 열고자 예수라는 빛을 불러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니까.. 29살 때의 에너지가 60이 넘은 올해 다시 돌아와 당시의 눈 밝기, 예수의 등불에 기대어 온 때에서 이제는 내 등불을 켜고  보게 되는 눈 밝기를 비교하게 된다. 예수에게 의지하여야 하던 소경에서 이제는 심학규 눈뜸처럼 바디메오 눈뜸처럼 나뭇가지가 보이다가 어렴풋이 보이다가 이제 사람이 보이는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본성을 찾는다는 것이 첫눈을 찾는다는 것이고 첫눈은 착상 후 23일 이전이 생긴 눈빛을 알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과정 과정.. 이 있으니 길이나 진리나 생명을 공부한다는 것은 좁은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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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구령삼정주의 구성과 구령으로 생성된 씨앗이 뿌려짐으로 자라는 생명나무다
요즘 신업이라는 문제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면서 만나게 되면서 이 신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하는 것인가를 놓고 기도를 하는데 내가 엄마의 태 안에 있을 때와
내 아이들이 내 안에 있을 때기 일시무시일이거나 일종무종일로 반복되는 원리를 이해하면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이해하고 풀어내려면 나와 내 아이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구나..그래서 요즘 기도는 엄마가 기도하던 주파수와 파동함수를 당겨와서 읊조리기를 한다. 엄마와 같이 기도하던 시절의 기록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파동함수를 펴면 당시의 기록을 소환하게 된다. 눈물이 매질이 되어 플라즈마로 있는 정보가 당겨들이는 것이다. 엄마들의 생애는 어떤 시절을 살아야 하였는가에 따라 대부분 같은 트라우마와 같은 아픔과 서러움과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 엄마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통하는 것이 '배 아파낳은 자식들에 대한 것'이다 
 
여자의 세계와 엄마의 세계가 달라지는 것을 개벽이라고 하는 것이겠다. 남자의 개벽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여자의 개벽은 섹스를 통하여 아기를 낳게 됨으로 마주해야 하는 후천세계다. 여자일 때는 선천이지만 아기가 태어나면서 후천개벽이 일어나고 선천과 후천을 같이하는 것이 자기십자가(후천)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는 것(선천)이 되겠다. 여자일 때는 하나의 생각이지만 엄마가 되면 천개의 생각이라고..하나의 달 천강에 비추니..월인천강이 된다.  
 
여자일 때는 짝을 찾아내는 것, 엄마가 되면 후천개벽으로 마주하는 신세계..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모든 것이 낮선 현장...나의 오류가 어디서 생긴 것일까를 어제 더듬어보니 조카들을 돌보면서 생긴 익숙함때문에 내가 낳은 아이들이 낮선경험일 것인데 익숙함으로 마주하게 되었던 것에서...문제가 발생한 것이구나..즉 길들여진 습관에 의해서 낮선일이어야 하는 아이들과의 조우가 익숙한 일이 되어서 아이들은 엄마라는 첫경험을 하는데 나는 아이기루기가 반복된 경험이었다는 것 즉 아이를 대함에 있어서 두근두근..하는 설레임이 없이 형제들이 낳은 아이들의 순서에 따라 일곱번째로 태어나고 열번째로 태어난 여섯 번의 조카들을 대하면서 익숙해진 몸짓으로 일곱번째 순서인 딸을 낳고 딸을 대하고 열번째 순서로 온 아들을 낳고 아들을 대한 것이니..나에게는 익숙한 체험인데 ..내 아이들이 한 엄마 체험은 어땠을까나...그 생각이 들어서 내가 경험한 엄마체험이 세번째로 태어난 둘째 딸에 대한 엄마의 감정은 어땠을까..헤아려보게 되더라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의 감정들은 어땠을까..내가 엄마를 생각하면 생기는 감정이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물림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되고 그 확인은 딸에게 내 감정을 투사하는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이였겠다..는 생각을 한다.  
 
딸이 엄마는 자기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보다 귀찮아하는 것이잖아 하던 말에 내가 나를 봐서 아니다고 말할 수 없더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살려고 결혼한 것이었고 아이를 낳았을 뿐이였으니 아이에 대하여 책임감이 있었을 뿐이지 .. 
 
아마도 엄마가 나를 가져서 낳았던 당시의 감정이 나의 결혼과 딸을 낳은 것에서 반복된 것이였을 것이다. 이것이 윤회이고 카르마라고 이해하게 되면서 엄마가 나를 귀찮아한 것은 엄마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해하게 되더라 몸약한 엄마가 아들과 딸을 낳고 기루던 시점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환경속에서 생긴 아이에 대하여 애지중지하거나 금이야 옥이야..할 수 없던 ..태어나보니 청천벽력같은 환경에 태어나버린.... .. '나'였을 것이다  
 
나의 정신과 성격을 보면 무엇을 대하든지 부정적인 사고가 먼저 생겨버리는 것이...나로서 이제 이해가 된다는 것이지..내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저주하고..죽어버리고 싶어하고..하던 감정들이 태안에서 생성되었던 엄마의 신업이었던 것이고 그것이 내 아이들에게로도 물림이 되었을 것이다..하는 생각을 하니 가장 먼저 내가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고 인정하고...하는 변화가 급선무구나..그런 생각이 들어서 참회의 세월을 살아왔기도 했고 올해들어서 다 커버린 아이들에게서 태안의 아이었을 때를 찾아 기도속에서 신업을 풀어내고 태안에서 실어주지 못한 복록을 구령삼정주를 읊조림으로 아이들에게 닿기를  비나리한다. 내가 나를 마주하면서 하나 하나 신업을 풀어내면서 아이들에게도 참회를 하고 남편에게도 회개를 하고..그래서 드뎌 신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되고 아이시절 엄마로서 품지 못했던 너그러운 마음을 이제부터 기루어 아이들을 어질게 품으려 한다.  
 
기도라는 것은 회개하는 일이고 참회하는 것이고 문제를 풀어서 해원하는 것이고 그것을 딛고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여 상생하고 창조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나간 시절을 딛고 새로운 내일을 창조한다는 것은 과거의 허물, 오해거나 기울어진 편견을 거름으로 불땔감으로 하여 새로운 해석, 불, 빛 열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샤인마스캇이라는 망고포도를 딸이 먹고 싶다고 해서 지마켓에서 주문을 했다
1.3Kg 두송이. 딸과 아들에게 신업이 있었다면 풀어지었다는 증거로 공양한다고..
엄마의 신업이 만든 것들이 다 정화되고 풀어진 것이라고 설명을 붙였는데 딸과 아들이 먹고 그 다음에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가서 다시 한 상자를 사와서 딸과 아들이 맛나게 먹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물림한 신업을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딸이 한송이 아들은 두송이.

엇그제 남편과 같이 마트에 가서  아들이 사달라는 생닭 두마리(아들 친구들과 요리해 먹기로 했다고..)와 샤인 머스캇 2Kg을 샀는데 이번 포도는 딸에 의하면 청포도지 망고포도는 아니자나..하더라 카타로운 딸의 성격..그런데 신묘하게도 빛결이 오늘 2Kg 망고포도를 보내어 주어서 퇴근한 딸에게 한 송이 씻어서 주었다. 이건 맞네..하면서
너무나 싱싱해서 세가지 맛을 한송이에서 맛본다고..잘 익은 맛, 중간에는 익어가고 있는 맛, 그리고 풋풋한 맛..   
 
엄마가 처음 산 망고포도가 가장 맛있었다고..그 망고포도 사고 아버지에게 욕먹었지..바가지 썼다고...바가지를 써거나 말거나 신업을 풀어내는 공양이라고 엄마는 생각했으니까..업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공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 한다.  
 
빛결이 에이플 샤인 마스캇을 보내온 것을 보면 신업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빛결의 가족도 같이 풀어가는 것인가보다..한다. 4송이인 것도 신기하지.. 엄마대(강막순엄마와 이명숙엄마)에서 기도로 맺어진 인연이 딸대에서도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기도의 대가 이어질랑가..기도량을 채움해볼 일이다 하고 있다. 피조물이 피조물을 통하여 마주보기를 하는 것이지 창조주를 피조물이 대할 수는 없다. 너와 나의 관계, 즉 태안에서 일어난 정보세계를 마주하도록 도우시고 가르치시는 것이 보혜사 성령의 하시는 일이다. 외연의 정보는 자신의 노력으로 습득하고 공부하면 되는 것이어서 성령은 태안의 정보를 알고자 하나이다..하면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이다. 비밀을 밝혀주시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니까.  예수가 그리스도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는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신 이유..내가 기름준비를 하면 불을 붙이도록 해 주신다는 것이지. 불을 붙이면 그 빛을 통하여 내가 보고자 하는 곳을 비추면 그 세계가 드러나는 것..성령은 불을 붙여주신다는 것이고 붙인 불을 들고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내 선택인 것..요즘 구령삼정주와 아람어 주기도문으로 내가 알고 싶어하는 세계의 파동함수를 
찾아 공명한다.  
 
살아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내가 나를 이해하는 과정, 신업을 마주하면서 엄마로서의 공감대가 생기는 것..아이를 낳아 기루어봐라..엄마마음을 알 것이다. 아이 셋은 낳아 봐야 안다..고 하는데 셋을 낳아봐라..라는 것은 눈을 뜰라면 공양미 삼백석을 내놓아야 하듯이 심학규가 눈을 뜨려면 딸인 청이의 과정이  아이를 기루는 과정이라는 것이지 한 아이가 하늘로부터 와서 나의 자궁에서 자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이 심봉사가 눈을 뜨는 이야기 심청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