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독송, 염불 귀문을 열고 양심의 소리를 듣기 훈련

청향고은 2023. 12. 30. 13:29

눈眼은 보아서見, 觀, 視 색을 만들어낸다. 見에 황조롱이가 본다는 觀, 그리고 차려놓은 제사상을 본다는 視가 있는데 見은 객관적인 기능이라면 觀은 어둠을 뚫고 보는 눈으로 투시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視는 앞에 차려친 것을 살펴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둠을 투시하는 눈은 비밀을 밝혀내는 눈이라면 앞에 차려진 것을 보는 눈은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인 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능은 見이고 누군가가 추구하는 눈은 觀이며 주어진 정보에 자기만의 뜻을 담는 눈을 視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다는 말 하나에 세 가지 세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고 그대가 무엇을 보는가?에서 관이냐 시냐를 정하는 것이겠다.

비밀을 밝히는 눈을 관觀이라고 하는 것이고, 드러난 정보에 자기만의 스토리를 담은 눈을 시視라고 하는 것이지. 견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관을 하는 공부를 하든지 시를 하는 공부를 하든지..그것을 방향성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지

보아야 마음心이나 생각念이 생긴다. 마음이나 생각의 출발은 봄see이다. '봄'없는 생각없고 마음없다. 봄은 태어나 생성되는 기능이라고 한다. 들음은? 태안에서 생성된 기능이라고 하더라. 봄 이전에 들음이 있었다는 것이지. 봄은 태어나 수정체에 빛이 상을 맺음으로 생기는 후천적 기능인데 반해 들음聽은 선천적기능이다. 태안에서 선천적인 기능이 들음이 가동되는 때를 태동이 생기는 시기로 다섯 달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시기에 지문과 췌장에서 심인성마약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분비가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기능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예수는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했는데 태 안에서 시작된 기능을 가동시켜라가 되는 것이지

어떻게? 귀를 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가 엘리야가 동굴에서 하나님을 만난 엘리야(왕상 19장, 11~13절)에서 나온다

 

11)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나가 여호와 앞에서(내 앞에서) 산에 서 있으라. 내가 네 앞으로 지나갈 것이라.” 그리고는 여호와 앞에서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이 지나간 후에 지진이 일어났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이 지나간 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13) 엘리야가 그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동굴 입구)에 서자 바로 그때 그에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바디매오가 눈을 뜨는 사건을 통하여 견, 관, 시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면 엘리야의 동굴사건에서는 들림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나는 설명을 한다네. 귀의 기능을 동굴로 설명을 하는 것이고 눈의 기능을 실로암연못으로 설명하는 것. 들림이나 불림이나 휴거라는 낱말은 귀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들림聽, 불림 携,..휴거라는 낱말에 미혹이 되면 생기는 웃지못할 일들이 있다. 언어값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함 즉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염이다.

광소를 받는 백채의 정보를 동공에서 역상하여 화소로 바꾸어내면 홍채가 해석하는 봄이라는 인식을 관자재보살이라고 하는 것이겠다. 관자재이전 태안의 상태, 즉 동굴안의 시절에너지가 관세음이고 그래서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다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지. 성경언어와 불경의 언어를 서로 드나들게 하는 것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서로 선천, 후천으로 짝이 되는 것이지 관자재는 ‘양- 눈’이라면 관세음은 ‘음- 귀’가 된다는 것이겠다.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관자재이고, 관세음은 태안에서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인데 태안의 상태임으로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이지 태어나 들음의 기능을 의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수정체에서 상을 역상함으로 무색계가 색계가 되고 색계가 된 정보를 관자재 뇌파는 이야기라는 욕계로 꾸며준다. 뇌파가 만드는 정보를 안목의 정욕 견물생심이라고 하는 것이고 욕심이 잉태한다고 하는 것이지 관자재함으로 해석이 출발한다

 

눈에서 잉태된 욕심이 무게를 더하게 되면 죄(허물, 탐진치)를 낳는다고 하는데 눈에서 잉태된 견물생심이 ‘가지고 싶음’이라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될 때를 ‘죄’가 된다고 하는데 견물생심을 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견물생심이 반복되어 무게값이 생기는 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고 ‘죄’가 반복되어 점점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다. 기체가 액체가 되고 고체가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

전기력은 발산팽창이라고 하는데 자기력은 수축축적이라고 하는 것에서 귀의 달팽이관을 거치게 되면서 양심의 소리가 욕심의 말, 자기합리화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털어내고 처음소리 양심의 소리를 마주하게 되는 엘리야의 동굴을 보면서 눈이 봄에 대하여 귀의 들음을 양심이라고 하고 양심의 소리라고 하는데 눈은 양심이 없고 양심은 귀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양심이 소리를 내기때문에 그 소리를 듣고 행동을 정하는 것이지 눈의 봄에서 행동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은 들음기능에 있고 욕심은 봄기능에 있으니 이것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반복에 반복으로 습관이 되는 것이 ‘사망, 무감각’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대의 습관이 즉 생각없는 행동을 ‘죽음 또는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지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 것이 영생을 살고자 하는 이에게 주는 권면이다. 법화경 19 법사공덕품의 귀의 공덕을 보면 태안에서 귀가 어떤 능력을 탑재하고 나오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론 2장을 보면 눈의 공덕을 설명하시니 참고하면 좋다. 늘 귀를 열고 양심이 하는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하는 것이 내면으로 들어가 생명원리를 공부하는 ‘명상이자 수련이자 신앙’이 되는 것이지

 

무엇인가 견물하면 생심이 생긴다. 무엇을 들으면 양심이 생긴다. 양심과 생심이 어떻게 소통이 되는가의 상태를 분석하거나 분별하는 것을 ‘영생공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지. 태안의 양심과 태밖의 생심이라는 좌우의 무게값이 귀로 기우는가 눈으로 기우는가를 분별하는 것을 분별지라고 하는 것

 

생심, 말 그대로 마음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니 무엇인가 보면 ‘손에 잡고자 하는 반작용인 호기심’을 생심이라 하는 것이지. 보면 잡고자 하게 된다는 것이 본능이자 본성이다. 생심(욕심)이 만들어내는 것이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삼악으로 발전하는 것을 눈이 어두워지는 허물이라고 하고, 맑고 밝고 아름답게라는 삼선으로 발전하는 것을 양심의 소리를 듣는 귀의 청의라고 하는 것인데 욕심이 삼선의 길로 가는가 삼악의 길로 가는가에서 길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고 음양으로 길이 나눠진다고 한다. 맑고 밝고 아름다운 웃길이 있고, 탁하고 무겁고 추한 아랫길이 있다는 것이지. 아랫길에서 생명 아프로디테가 태어나고 윗길에서 전신무장한 아테나가 태어난다는 것도 기억하자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는 것이니 너의 말에 귀를 주지말고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지 내 피가 만드는 소리가 욕심인지 양심인지 내 눈에 스치는 물욕이 탐욕인지 성욕인지 의욕인지.. 를 스스로 분별하고 가름하여 윗길로 가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지.

 

법화경에서는 하나님을 일불승이라고 하는데 일불승에서 음양 이승으로 그리고 삼선이냐 삼악이냐가 삼승으로 불려진다는 것이지 일불승을 하나님이라고 기독교에서는 말한다 나는 일불승을 ‘나’라고 하는 것이고 ‘몸’이라 한다

 

관자재보살이 보현이고 관세음보살이 문수이기도 하는데 보현을 우뇌 문수를 좌뇌라고 연결하면 되고 나는 보현을 아리랑이라 하고 문수를 바람도령이라고 하기도 하네. 나는 내 뇌가 만들어내는 창조이야기 나만의 해석스토리를 좋아하기때문에 주어지는 정보를 나의 입맛에 맞도록 다시 짓는다는 것이지. 예수님은 예수만의 결, 그리스도를 만들고 석가모니부처님은 석가모니님의 결, 붓다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나는 나의 결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이것을 일러 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이고 천상천하유아독존, 독생자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

 

법화경을 오늘 5시 5분에 일독을 하고 두번째 독송에 들어갔다 그간 공부를 독송에서 체크하는 것이구나 일단 계묘년이 가기 전에 삼독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이고, 양력이 아니라 음력으로 계산하는 것이 문자력이니 계묘꼬리를 물고 갑진이 들어오는 때까지 읊조리는 것이지

 

갑진의 머리는 시월 상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새해를 계산하는 것은 가을추수를 하여 거둠을 출발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농경사회가 되면서는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하기도 하고 열매를 거두어 씨앗이 생기는 가을추수절을 새로운 시작으로 하기도 한다는 것이지. 동지와 성탄절은 북극지방에서 유래된 문화풍습이게 된다. 북위 66도에서 나타나는 기후이야기라는 것이지

 

양력은 해를 중심으로 생성된 흐름이고 음력은 별자리를 보고 만들어진 흐름이다. 음력을 달력이라고 하는데 양력과 음력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알지 못하고 쓰기도 하는데 나도 이제서야 양력과 음력의 개념을 조금씩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지., 해가 다니는 길을 황도대를 양력이라 하고 그 길에 있는 12성좌를 음력이라고 한다는 것이니 기억하기를..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지만 그대의 인식이 확장되어야 의식이 또 그 인식을 딛고 확장이 되는 것이니까 눈이 만드는 인식을 딛고 귀가 만드는 의식이 성장하고 귀가 열어준 의식을 딛고 다시 눈이 밝아지는 것이니까. 눈과 귀가 음양으로 생문과 귀문으로 있고 코와 입이 사문과 멸문으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양력은 숫자로 나타나고 음력은 문자로 나타난다 양력을 알려면 수비학을 알아야하고 음력을 알려면 문자를 알아야 하는 것이니 현대인들은 정작 알아야 할 수비학이나 문자에 대하여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배우려하지 않아서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일은 다르다. 안다는 생각은 머리의 상상으로 눈의 기능이고, 아는 일은 몸의 체험으로 귀의 기능이기때문이다. 책을 보는 것은 뇌의 생각이 되지만 책을 읽는 것은 몸이 하는 양심을 일깨우는 파동만들기 일로 체험이라고 하는 것이지. 직관은 뇌와 눈이 연대하는 것이라면 감각이란 뇌와 귀가 연대하는 것

 

그래서 눈으로 보는 간서看書는 누구라도 하지만 입으로 읊조리는 독서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책을 보는 일과 읽는 일은 머리의 생각과 몸의 실천으로 에너지쓰임의 수값이 다르다는 것. 경은 독송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반책들은 보는 것이지만 그래서 책과 경의 값을 다르다 하는 것이지

책을 보고 경을 친다 그래서 읽을 경을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주로 성경을 읽었고 이제 법화경을 보던 것에서 읽는다. 소리내어 읽는 일이 염불이기도 하고 양심일깨우기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지만 그간 갈고 딱은 솟을 굿을 통해 솥을 만들어내어서 솥안에 넣고 삶을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잡은 것이지. 엘리야의 호렙산 동굴이 독송하는 훈련을 통하여 세미한 음성, 양심을 끌어내는 솟을 굿을 하는 과정이구나 설명을 하는 것이지. 신내림을 하고 솟을 굿을 한다는 것은 닫긴 귀를 당겨서 세미한 음성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는 능력을 기루는 것이라고..솟을 굿을 법화경에서는 다보탑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이야기로 한다.

솟을 굿과 신불림이란 귀문을 열기위하여 경을 읽는다는 뜻이다

 

허주굿과 신내림/ 솟을 굿과 불림굿의 가운데 겟세마네원리가 줄기幹가 된다는 것이고 허주자리가 북현무, 신내림자리가 동청룡,솟을 굿 자리가 남주작, 불림굿자리가 서백호가 되는 것이구나. 북현무에는 뱀이 거북을 감싸고 있어 조상으로부터 감고 있는 뱀허물을 벗겨야하고, 서백호 등에는 세마리 원숭이가 타고 있듯이 삼신 삼불 삼승을 태울만큼 힘을 불려야 한다는 것이지. 동청룡의 꼬리에 안타레스라고 하는 곡옥이 있고, 남주작의 머리에는 신수 기린이 있어 신수가 오름하여 닿는 안타레스가 좌표가 된다. 북에서 내려오거나 남에서 올라가는 이 길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고 춘하추동으로 돌아가는 계절길을 무한궤도 우르보로스라고 한다

 

원으로 돌아가는 흐름에서 안타레스 곡옥이 하방낙하하거나 알타이르 신수가 상천비상하는 일을 ‘역 , ㄹ’ 변화의 길이라 하는데 이 도수를 150도라고 설명하고 사주에서는 동굴 귀문이라고 한다.

 

사주의 귀문역할은 눈이 만드는 순환을 역하는 변화에너지다. 즉 생의 여정에 반작용으로 오는 사의 길이라는 것이지. 생문과 멸문과 귀문과 사문이 있는데 이 네 가지 문에서 귀문은 생문의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문이다. 생은 눈이 만드는 생심이고 귀는 귀가 만드는 양심이다 귀문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말 그대로 귀의 문 들음의 문 양심의 문이라는 것이고, 무색계 음문이라고 하기도 하며 생문은 눈의 문 봄의

문이어서 색계라고 하거나 양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귀문은 태안에서 생성된 들음의 문이라는 개념이 되면 귀문공부를 하기위해서는 소리선을 반드시 거친다는 것도 알게 되지. 독송이나 염불이나 소리선이나 겟세마네나 다 같은 들음공부를 위한 것이다 들음은 양심의 소리를 듣기위한 것이고

 

축오귀문은 겨울丑과 여름午의 흐름을 바꾸고자 하고 인미귀문은 봄寅과 여름未으로 흐르는 흐름을 바꾸고자 하고 묘신귀문은 봄卯과 가을申로 흐르는 흐름을 바꾸고자 하고 진해귀문은 봄辰과 겨울亥흐름을 바꾸고자 하고 사술귀문은 여름巳과 가을戌흐름을 바꾸고자 하고 자유귀문은 겨울子과 가을酉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것인데 순리를 거슬려 역행하는 에너지라 하여 ‘죽은 자(타안의 정보를 되찾으려 하는 )의 길’을 간다고 한다.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거슬러 태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귀문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태어나면 귀가 빠진다고 하듯이 귀가 나오면 다 나온 것이라고 하듯이..귀가 드나드는 문을 찾아서 태안의 정보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귀문이라는 사주구성이 가지고 있는 좌표다.

순리는 생자의 길이라면 귀문은 역리로 망자의 길을 가는 것이라 하여 귀문이 있으면 봄을 전부로 하는 세계에서 들음을 추구하는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성향이있다고 하게 된다. 눈이 구백냥인 세계에서 들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좁은 길이지

 

귀문이 있으면 밖에서는 조상이 타고 있다고 하거나 망자의 업을 해원해주어야 한다는 관살로 갚아야하는 채무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빚이기때문에 보이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귀문이 가동하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환청이라고 하더라. 태안에서 바깥의 소리를 듣던 기억이 재생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귀문이 가동하게 되면 태안에서 머리를 접어 산도를 밀고 나오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때문에 머리가 그렇게 아프다고 하고 그 다음 어깨 승모근이, 허리가, 궁둥이가 다리가 발이 아프다고 한다. 즉 머리부터 태 밖으로 나오게 되는 순서를 따라 감각이 살아나게 되는 과정을 신통이라고 하는 것이고 신병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귀문의 에너지를 질서를 따라 클리어하게 되면 순리와 역리를 자유로이 오가는 만신 성신 정신이 된다고 한다. 사주라는 것에 귀문이 없다고 해도 새로운 해가 바뀌어 들어오는 해와 사주의 지지가 만나면 해의 에너지에 따라 귀문이 생기는데 갑진년이 들어오면 년지 돼지亥가 귀문이 된다. 누구나 해가 바뀌면 귀문이 되는 띠가 있다. 그래서 신수를 보려 가는데 귀문이 되면 어떻게 귀문을 다루어야 하는지 조언을 듣기위한 것이지

계묘년은 신년에 태어났거나 신월 신일 신시가 귀문이 되는 것이지 묘신귀문이니까. 그렇게 여섯가지 귀문을 알게 되면 자기의 년주와 비춰보아서 일년 귀문인지 한달 귀문인지 하루 귀문인지..파악을 하고 어떻게 귀문을 다스리고 지켜야하는지 방법을 찾아 귀문을 활용해서 영생의 정보를 확장하여야 한다는 것

지지에 귀문관살을 가지고 있는데 다시 귀문이 되는 해가 들어오면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신의 신탁이기에 기도를 많이 하라고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양심의 동굴에서 바람이 불기때문이고 바람세기가 강해지기때문에 그 바람을 마주하여 맑은 소리 고운소리로 공명하도록 하는 것이 염불수행이고 신불림이라고 하게 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가 되는 것이지. 사주를 풀어보고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귀문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양심의 소리를 따라 살아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주라고 풀어지는 것이지. 나같은 경우 사주 넷이 다 귀문이다. 그래서 결벽증이라고 할만큼 정직함을 추구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생활을 한다.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남들보다 내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양심을 따라 살아가라는 귀문을 선물로 받아온 이번 생애라고 이해하고 있다.

년주가 계묘에서 갑진으로 바뀌면서 생기는 귀문이 월주 해월 일주 해일 시주 해시에 같이 걸린다는 것이지 생긴다 하여 갑진년에는 해년 해월 해일 해시에는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지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법화경을 독송했다. 일독을 하고 새로운 독으로 들어갔는데 시간이 되어서 가방챙겨서 나서려다 빈손으로 나서게 되었다 신단에서 돌기를 하다가 12지신 청소를 했다. 늘 걸리던 것인데 오늘은 어쩌자고 손이 나가게 되어 12지신들을 청소하였는데 신년 행사를 한다고 주변청소를 하시는 분들도 보이시더라. 신유술자리에 소나무 잎이 많이 깃들여있어서 세 자리를 잘 치우고 그만 할까 하다가 하던 것 열두지신 다 청소를 해야지..내 정성을 들이는 것. 그래서 열두지신을 다 치우고 열두지신 열두성좌 별빛이 내 하루를 가득하게 하시고 일년을 가득하게 하여주소서..법화경을 독송하면서 내가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왔다. 이전에 거부감이 들던 언어들이 이제는 정다워진다는 것이고 이런 의미였구나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지

독송을 하는 이유가 양심의 소리를 듣기위하여 동굴청소를 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세미한 음성을 듣는 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고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을 신탁이라 하는 것이니 세미한 음성을 듣기위해서는 내 음성도 조용하고 부드럽고 맑고 밝아야 한다는 것이 된다. 독송을 해보면 내 상태가 나온다. 귀의 상태...그것을 극복하는 훈련을 나는 얍복나루의 씨름이라고 한다. 이 글을 두드리고 나면 독송훈련을 하고자 한다

돌아와 동지에 덜어 둔 팥 앙금과 경단과 밤으로 단팥죽을 하였다. 단팥죽...그렇게 일독을 한 나를 칭찬하는 것이지. 빛결은 시편을 삼독을 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가속패달을 밟고 독송하구나 한다. 나도 입에 모터를 달았다고 하는데 잘도 나간다. 재봉질을 입으로 한다는 각오로...철자하려 가기 복음..독송하는 것이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구나 나만의 이해. 그래서 독송에 각오를 새롭게 하고 들어간다.

 

https://youtu.be/CYSNeFPABuk?si=whAEowsXNKccsN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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