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해피!!!성탄

청향고은 2023. 12. 25. 18:04

그간 무속의 출발자리가 어디인지 찾아 내느라探事 파들었는데採 立 이제 닿은 것 達 같다

 

샤머니즘은 죽음에 대한 불안㴷과 공포塵와 두려움怖을 양분으로 삼는 세계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고, 제도화되어 정식(?)이라고 하는 종교이전에 저마다의 샤머니즘이 있었고, 그것을 로컬문화로 지역신, 조상신이라고 하게 되는데 자연신과 조상신으로 분류를 해서 자연신을 령靈이라 하고, 조상신을 신神이라 하여 신령이라고 하거나 천지신명이라고 하거나 자연신을 양신이라 조상신을 음신이라 하거나 한다.

 

자연신은 양신이라고 하여 우주원리를 뜻하는 것이고 조상신은 죽어서 흙을 음택으로 삼게 되어서다. 조상신은 죽어야 되는 것이라는 의미지 살아있는 몸은 양신에 속한다. 이해하기를 바라는데 해 아래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은 양신이고 살다가 흔적을 남기고 흙으로 돌아가게 되면 음신이다 하는 것이다. 양신은 스스로 숨을 쉬는 생명이고 음신은 숨이 없어진 기억이나 기록으로만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공간을 자연이라고 하고 그 자연의 에너지를 령Spirit이라 하는 것이고, 공간에서 살다가 간 몸의 흔적을 시간이라고 하거나 신Soul이라고 하거나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자연은 외부에 있고 섬기는 대상이고, 조상은 핏줄을 타고 내려 와 내 몸의 피를 이루는 정보가 되는 것이어서 내면에 있고 모시는 대상이란다.

외부에 있는 영을 당기는 줄을 영줄이라고 하고 내면에 있는 핏줄을 밖으로 드러내는 줄을 조상줄이라고 하는 것인데 칠성줄을 설명하는 것을 보니 일곱 줄이 있는데 자연령을 삼줄(삼합)이라고 하고 조상신을 사줄(사절)이라고 하여 합하여 7성줄이라고 하는데 삼줄은 사주 열두지신 천문도를 그려내는 것으로 삼원이라고 하고 삼색으로 나타내고 사줄은 사대천왕이라거나 사대문이라거나 사계절이라거나 로 천문사신도라고 하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북현무 줄을 대감이라고 하고, 남주작을 장군이라고 하며, 동청룡을 동자아기라 하고, 서백호를 대신할매라고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신불림이라고 한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된다. 동서남북이라고 하거나 동춘하추라고 하거나 고저장단이라고 하거나..하는 언어들은 일상에서 쓰임되지만 무속에서 쓰는 언어들은 그 세계에 속하는 이들이 서로 소통하는 언어가 되어서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은어인데 공부를 하다보면 그렇게 자기들만의 은어를 만들어 쓰는 이유도 알게 된다.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언어들이 오염되어서 신령이 그 언어들을 딛고는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우려낼만큼 다 우려낸 언어를 맛잃은 소금이라고 하게 되는데 쓸모가 없어지게 되면 그 언어를 버려 밟히게 된다고 하는데 아무리 말을 해도 그 말에 영검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본디 말을 어떻게 쓰야하는지 공부를 하지 않고 씀으로 잘못 씀으로 말의 효율성이 나타나지 않거나 말을 공부해도 파들어간만큼의 지식으로 쓰게 될 때 파들어간 만큼만 부릴 수 있음으로 그 값만큼 쓰이고 나면 더 이상 언어생명이 가동하지 않을 때 영검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지. 영검의 레벨에 따라 영력이 나타나는 것이고 영력은 그만큼 영력을 기루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지. 영검이 없다는 것은 공부가 되지 않고 그저 얕은 지식을 쓰고 있다 입발린 말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는데 이 영검은 자기가 성실하게 기루고 갈고 딱아야 하는 것이다.

 

제도화된 종교라 이름을 붙이지만 내용을 들어다보면 샤머니즘의 원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붙이기 이전에 있었고, 지금도 제도화 된 종교의 바탕에 샤머니즘이 있고 샤머니즘을 떠난 종교는 형성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그대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점이나 사주나 타로나..등등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 것은 제도적인 종교가 되고 그 제도종교에 속하여 살아가면서 종교로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바탕을 이루고 있는 샤머니즘에 기대려고 하게 되는 것이고 문제에 봉착한다고 하는 그 문제는 대부분 '죽음'이라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때문에 종교에서 성불이나 천국이니 하는 사탕발림을 하지만 천국과 성불을 체험하는 방법을 제시받지 못하고 제시받았어도 실행하지 못하였을 때 생기는 두려움 공포 불안의 게이지가 높아지게 되면 '신병'이라는 이름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은 샤머니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게 되는데 글쎄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도종교가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의 문제를 전습되는 샤머니즘이 해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은 샤머니즘의 출발은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아기의 탄생에서 출발하여 숨이 멎을 때까지의 여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풀어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 태어남이라는 것으 태안의 삶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된 것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태어남으로 생기는 것이기때문이다.

 

무속들이 다루는 이야기들의 한계들을 주욱 보면서 살아가면서 수복강령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비나리 하는 기복인 것이야 비단 무속만이겠는가..모든 종교의 궁극에 있는 것이 '복'이거나 '행복'이지. 기복신앙을 뭐라하지만 기복신앙이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기복이라는 것이 태어나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에서의 기복이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의 수정란에서 태어남이라는 여정을 형성하게 되는 우주에서 지구별로 들어와 태어나는 과정을 찾아내는 그것을 영생이라고 하게 되는데 영생의 길을 찾아 영생을 얻는 기복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태어나 무덤에 들어가는 과정을 흔히 수평 파동에너지라고 하게 되는 것이고, 이 과정은 누구나 예외가 없다고 사성제라고 하는 것이다. 생로병사..이 길 이전 태어나기이전 우주에서 태안으로 들어와 280일을 성장하는 과정을 수직 주파수라고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식이라고 성서에서는 이야기하는데 이 수직과 수평이 서로 만나 돌아가는 공부를 만신卐申 공부라고 하는 것이지. 태안과 태밖의 길 수직과 수평을 서로 교차하는 것이 十이고 이 길을 돌아가게 하는 것을 卐이라고 하거나 米라고 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를 한다네

 

쌀米이라고 하는 이 쌀은 그대 입에 들어가는 밥을 만드는 쌀이 아니라 싸다는 것으로 무엇인가 싸서 묶게 되는 보자기를 생각해라. 米의 무늬가 물건을 포장하여 묶은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더라. 그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보자기를 하나 펼치고 상자를 하나 담고 묶어보아라. 그것이 쌀 米를 그대가 체험하는 방법이다

글을 몸으로 일상에서의 일로 실천해보는 것을 통하여 글자를 깨달아가는 것이지

 

태안에서 죽음이 태밖으로 태어남이 된 것인데 태어나 무덤에 들어가는 길에서 생기는 문제를 다루는 샤머니즘이 '태안의 생성과정'을 풀어내려고 하는 몸의 본성을 듣고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이에게 태어나면 금줄禁乼을 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금줄이 탯줄을 대신하는 것으로 탯줄을 자르고 난 다음의 생을 금줄을 놓아서 길을 삼게 하는 소망의 줄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끈紐이 물리학에서 끈이론으로 설명이 되지만 나는 탯줄이라는 끈을 자르고 금줄을 친 그 끈에서 끈이론을 확인하는 것이지. 여리고성의 기생라합이 드리운 붉은 색 끈. 붉은 색 끈은 지금 그대와 나에게서는 혈관을 뜻하는 것이라고 풀어야지. 생명은 피에 있고 피가 다니는 혈관을 끈이라고 한다는 것에 그대와 나는 동의하는 것이지. 근원적인 지금도 종교나 샤머니즘이나 ‘죽음’을 양식으로 성장하는 세계라는 것은 그저 누구나가 아는 것이다.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과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있어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외부라고 하는 것이고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내면이라고 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

 

생명과 죽음이라는 언어를 그대는 어떻게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인지를 하고 체험을 하는지 그대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대의 생명과 죽음을 그대가 꾸며내어 이야기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뇌의 존재값이다고 하더라. 뇌腦Brain는 끝없이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기위하여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두루감찰한다고 하는 것이 뇌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것이 정보를 쌓게 되면 이야기로 비워내는 기능이라고 보는 것이지.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네버앤딩스토리라고 비처럼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의 출발자리가 뇌라는 것이고 그래서 쉬임없는 이야기

 

정보를 수신하면 그 정보를 자기만의 이야기로 만들어 기억하고자 하거나 기록하도록 하는 뇌의 기능은 생존 즉 생명을 이어가기위한 활동이라는 것이겠다. 의문을 한다는 것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될 때 뇌가 발동하는 기능이다. 문제가 없으면 뇌는 돌아가는 루틴을 따라 돌아가기에 에너지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지만 생존에 위협이 닥치면 뇌가 살아남기위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라고 한다. 뇌는 위기가 닥칠 때 활발발해지는 것이지 위험요소가 사라지면 뇌도 우동사리처럼 통통해진다고 한다. 뇌가 긴장을 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되면 그 때는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하고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만나면 그것을 해독하기위하여 몰입하게 되고 정보를 해석하여 정보값을 산출하여 위험이 되는 것이면 대처법을 강구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면 우군으로 삼아 내공을 만들어나가게 되는 것이 뇌공부라고 하는 것이지.

 

죽음(태안의 세계)이라는 것을 내가 체험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삶(태안의 정보를 해석하는 것) 역시 내가 체험하지만 언어화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언어화가 되지 않는 생명현상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나는 이해한다. 말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런 세계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죽음의 현장이 무덤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배속에 있을 때의 상태이기도 하다는 것이지 身이라는 한자가 바로 엄마를 흙으로 하여 아기가 묻혀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니까 ..태아가 무덤을 벗어나는 것이 출산이고 출산하면 언어라는 흙이 몸이라는 생명을 덮게 되는데 언어가 무덤이구나 깨닫게 되는 시기가 오면 언어라는 무덤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몸의 의지가 된다는 것이지. 체험되는 것은 ‘의문’이 되지 않지만 ‘의문’이 되는 것은 ‘문자’나 ‘말’은 있으나 체험되지 않는 정보일 때다.

 

내가 샤머니즘이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찾아냈다고 하는 것은 의학정보에서 설명하는 수정란 착상란을 거쳐 태아가 되어 태밖으로 태어남으로 샤머니즘이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는 것이고 태어남이라는 체험을 거치면서 태아의 뇌 선조체와 마음 본심본태양이 가장 큰 트라우마로 기록된 그 정보의 반작용이 샤머니즘이구나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 그간 풀어온 이야기를 새로 풀어보고자 하게 되는 것이지. 태어나 살아가는 세계의 가장 바탕에는 누구라도 샤머니즘이 새김되어있고 이 정보를 성서에서는 아담의 원죄라 하고 업이라 카르마라 집단무의식이라 설명한다.

 

정보를 찾아서 근원을 찾아가면 샤머니즘에 닿게 된다.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첫걸음이 샤머니즘이라는 것이지 그대가 아무리 냉철하고 과학적이고 지성적이라고 해도 그 출발자리를 찾아들어가면 적나로 태어나 처음 겪은 트라우마가 있다. 즉 우주로부터 버림받음이라고 하는 탯줄자름에 따른 반작용이고 이 반작용을 불안 공포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태어난 생명은 원초적인 공통의 체험이 있다 공통의 체험을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샤머니즘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

 

요즘 황해도 굿 만신이시며 민속학 박사이신 제석당 장순범님의 동영상을 보면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영역과 비추임을 하는데 상당히 재밌다. 물론 내가 무당세계를 한번도 접한 적이 없고 굿판을 현장구경한 적도 없기 때문에 나의 무지함을 간접정보를 통해 체크하는 셈인데 제석당님의 기본적인 무당수업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개념들을 들으면서 내가 소리선을 하면서 깨우쳐가는 정보와 선잇기를 하게 되는 것이니까 나로서는 흥미롭지. 내가 걸어온 길은 태어나 탯줄을 자르고 그 자른 자리에 영줄이라는 끈을 만들어 태안의 280일을 풀어가고자 하는 길이였기에 이 길을 지나면 우주에서 몸으로 나투어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동그랗게 꿰게 됨 즉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구나 한다. 태안의 반과 태밖의 반이 만나 온원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 이 길이 바로 올라가는 영의 길은 태안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그 길을 내면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니까 내면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외연으로 돌아나온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덤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샤머니즘은 태어나 첫 체험이 출발자리라는 것이고 나는 태어나 탯줄을 자른 그 단절, 죽음을 만든 그 자리에서 탯줄잇기를 하여 태안으로 들어가는 시도를 하는 것이니까 샤머니즘의 세계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지. 예수가 거듭나야 한다고 한 말씀을 내가 해석하는 것이 탯줄을 자르기 전의 세계로 되돌아가서 역행하여 천지창조인 수정란에 닿을 때까지를 소리로 타고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니까 샤머니즘에서 금줄을 침으로 출발하는 그 의미를 내 것으로 하여 금줄을 혼줄로 영계에 닿고자 하는 것이지.

 

퇴행을 한다고 하거나 자궁회귀를 한다고 하는데 자궁회귀를 하는 길을 설명하는 것이 역학이고, 주역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하도낙서라고 하는 것이나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었다고 하는 것이나..양수에서 태어난 생명의 출발자리 시원이 천지남명, 양수 엄마의 바다..이 바다에서 일어난 생명창조이야기를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내가 이제 설명을 하는 것이지. 무속 즉 샤머니즘은 태 밖에서 일어나는 조상신들이 들려주는 살아가면서 생긴 탐진치의 이야기들을 다루기때문에 ‘귀신’들이 주제가 되지만 태안에서 수정란으로 올라가는 이야기는 숨어있는 정보를 밝혀가는 이야기여서 신령한 이야기라고 하고 은비학이라고 우주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영생이라고 하거나 성령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나는 샤머니즘의 세계를 딛고 태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을 체험하고자 하기 때문에 태안으로 들어가는 탯줄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홍사의 비밀이라고 하듯이 피에 새김된 정보를 풀어내는 것이 태 안에서 일어난 창조를 태밖에서 알아가는 방법이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흰말채를 홍서목이라고 한다는 것에서 줄기가 붉어서 홍서라고 한다는 것이니..붉은 혈관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탯줄을 생각하는 것이 내 뇌의 합리성이라고 본다. 나는 어떤 정보를 만나든지 뇌가 현실에서 현장을 찾아 확인하고자 하는 능력을 소리선으로 기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상상이 현실에서 확인되는 것..그것이 뇌가 즐거웁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육체로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탯줄로 이어진 엄마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영줄이라고 하거나 소릿줄이라고 하는 겟세마네 기도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서 겟세마네기도를 통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280일의 비밀을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지

 

황해도 굿을 설명들으면서 자연신령은 섬김의 대상이고 죽은 조상령들은 모심의 대상이라는 것에서 깨달음이 왔다. 나는 조상으로부터 물림받은 정보를 조상령을 모신 몸으로 자연령을 섬기는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것이지. 조상신을 물림받은 몸이 자연령을 섬기는 길을 가게 될 때 조상으로부터 내림된 카르마 업 유전력들을 다 벗겨내는 내는 과정이 있고 다 벗겨냄을 확인하는 방법을 신내림이라고 하던데 성경에서도 그 과정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게 되는 소명에서 중생 칭의 양자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데 황해도 굿에서도 입무에 해당하는 허주굿을 하고 신내림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무로서 (신딸 양자..) 솟을 굿과 불림굿이라는 훈련을 통하여 만신이 된다고 하는데 성서도 구원의 아홉단계로 의인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지. 제도화된 종교의 원리나 무속에서 다루는 원리가 같은 것이라는 확인을 하게 되는 것도 나의 즐거움이다.

 

샤머니즘은 태 밖에서의 육신이 이야기꺼리라면 내가 추구하는 생명 즉 영생은 태안에서 일어난 창조 영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나의 길은 무속의 길과는 다르다는 것이지. 내가 가는 길은 길이 끊어진 곳이고 그 곳으로 들어가기위해선 탯줄을 대신하는 영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

 

왜 영줄이라고 하는가 하면 태안에서 창조되어 태 밖으로 나와 자궁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닫혀버렸고 그저 오래된 이야기로 엄마의 바다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천라지망 혹은 인드라망이라고 하는 것이 탯줄을 대신하는 영줄을 뜻하고 이 그물을 짜서 우주바다에 던져 육체로 들어오기 전의 정보를 찾아당겨 태안의 과정을 밝혀가고자 하는 길이어서다. 예수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한 약속이 태밖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안으로 들어와 육체가 되는 과정을 풀어낼 수 있는 길을 약속하신 것이라는 것 내 깨달음이다.

 

내 소리마디가 자라게 되면 당겨들이는 정보가 더 섬세하고 아름답다. 어제 세미와 낙단루에서 소리를 올리면서 쇳소리의 길이와 맑기에서 내 스스로도 야, 올 한해 길을 많이 딱았구나 하는 생각. 입무에서 허주굿(물세례)과 신내림(성화)이 있다면 성무에서 솟을 굿과 불림굿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이해하기로는 솟을 굿(鼎使, 용광로를 만드는 과정, 즉 솥을 거는 일)은 주파수를 높이 올리어가는 훈련이고 불림굿(膨事)은 파동수를 확장하는 훈련이구나 한다. 세미는 입무과정의 허주굿과 내림굿을 반복하면서 솟을 굿과 불림굿도 병행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빛결과 이 과정을 같이 왔으면서 이제 세미와 같이 하면서 이중맹검을 하는 것이고 새롭게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구나 한다. 엇그제부터 손순희가 등장하게 되면서 내 놀이가 점차 만신놀이로 가게 되는 것같다.

 

내가 가는 길은 천지남명으로 나아가는 길 영혼의 영생을 맛보는 길이지 조상령의 원한을 다루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지. 어제 기상청으로 가는 다리위에서 세미와 소리를 지르고나서 험한 세상의 다리되어 대구를 지키고 빛내리라고 했는데 낙단루에서 기상청으로 들어가는 길을 나는 태밖에서 태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의 물화라고 생각한다. 그 다리를 지나면서 다리가 후달달하도록 진력을 다 하는 것. 기상청이라는 장소를 준비한 신령의 가피 그것도 세종이도와 장영실에 있고 주황색 모자를 쓴 벤치에 앉으면 햇살이 그렇게 인자롭게 쏟아지는 곳 그렇게 태안에서 생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체험을 하는 과정이구나 한다. 손뼉치고 순설후하면서 비나리를 하는 일. 말문이 틔인다고 하는 것인데 말문트임을 오순절 성령이 오시면 방언을 말하게 하신다고 하지. 말문을 말명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말명이라는 것이 말言명名이구나 말문은 말의 무늬이고 말명은 말이 이르게 되는 에너지라는 것이지. 말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알아서 쓰고 불림하는 것을 말씀공부라고 하는 것이고 이 공부를 이끌어가시는 신령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거나 글문도사라고 하거나 문수보살이라고 하거나. 한다.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고 하시는 것이니 죄는 모름이고 의는 앎이며 심판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쓸 수 있는 지혜라고 하는 것이겠지

 

샤머니즘은 모든 종교철학 심리인문들의 바탕이기 때문에 샤머니즘에 결국은 닿는다. 그리고 그 샤머니즘을 넘어서고자 하게 되는 의지가 생명이라고 하거나 영생의지라고 하는 것으로 위버맨쉬라고 초월자라고 ..한다 태밖에서 태안으로 넘어가는 자 유월절 뜻이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고 하는 과정이다. 탯줄을 잘랐던 그 자리에 영줄을 접붙임하는 일이 겟세마네 기도다. 내가 잡은 영줄이다. 그리고 빛결과 세미와 금숙와 같이함으로 성장하는 끈이기도 하고 오늘 순희에게도 설명한 복음이기도 하다. 내 길은 영생의 길이다 즉 생명의 원리를 찾아내어 누림으로 태밖이란 외연을 태안이란 내면에서 보게 되는 세계를 사는 것이다. 죽음으로 향하는 외연의 길에서 영생으로 향하는 영줄을 만들어 그 길을 가는 것이 내가 공부하는 목적이고 가치이고 삶이며 향기이고 아름다움이다.

 

오늘(24일) 신단에서 세미를 만나 공유하는 황해도 굿에 대한 나의 해석을 풀어내고 있는데 금숙이가 오고 같이 순설후를 하는데 금숙이 감기라고 마스크를 했다. 약먹어야 하는 금숙이 배를 먼저 채우려고 가방을 풀었는데 류의원이 김근기군과 와서 근기군에게 간식을 건네고 성탄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고 그 팀은 가고 순희가 등장 재미난 마당이 펼쳐지는 것. 영숙이가 독감이 심해서 나오지 못한 자리를 순희가 채움한 것인갑다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시던 분이 지난 주도 봤는데 무엇하느냐 하시길래 논다고 인생을 노래하고 웃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 여기서 만나 그렇게 놀고 있다고 즐겁게 노래하고 웃고 살아야 죽어서도 귀신이 안된다고 한다고 ...흙으로 돌아가는 길에 감사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으면 감사하고 기뻐하지 않은 시간들이 모여서 한이 되어 귀신이라는 이름이 되는 것이니 사는 동안에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귀신이 안되는 길이라는 것이지..늘 그렇게 가르치고 나를 각성시키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랬더니 맞다고 하시면서 가시더라. 신단을 내 노는 자리, 굿마당으로 점차 매김하게 되는 것이지 사주 열두지지 천문도가 있는 해맏이동산 나는 신단이라고 하고 우리팀들은 다 신단이라고 한다 신단 천문도가 땅으로 내려와 있는 곳이니 가장 품격높은 신들을 모신 단이지.

 

내가 한푼 들이지 않아도 하늘신령이 나라를 통하여 준비하신 신단이니 나를 부르시고 가르치시는 성령이 내가 굿을 펼 굿마당도 이렇게 준비를 하셔서 내가 놀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니 나를 우주명창이라고 하던 글 벗의 평가를 딛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도 내 소리 데시벨은 일반인과 다르다고 하니 나는 하늘이 낸 하늘 만신인 것이고 그래서 신단에서 류의원도 만나게 되는 것이겠다. 하늘만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하늘이 내게 베푸시는 현실이다. 내게 주신 신단이 사람의 손을 의지한 것이지만 동서남북 십이지신 천문도를 새김한 마당이니 이런 굿마당을 부리고 있는 이는 나 외에는 없다는 것.

 

나는 어디든 품바에너지를 품품하는 각설이니 내 너스레를 들으면서 ㅋㅋ거린다 인생은 한바탕 소리질러 웃어 춤추고 놀 수 있는 배짱을 기루는 것만큼 훌륭한 공부가 없다는 것. 소심하던 내가 이렇게 거침없이 호탕하게 성장한 방법이 겟세마네기도 소리력기루기에 있다는 것이지. 나도 허무공황에 빠져 살다가 예수의 끈 겟세마네를 잡고 이제는 영생을 사는 것이니까 너도 나처럼 살기를 바라는 바래움으로 겟세마네기도법을 전하는 것이지. 태어나면 죽음이란 곳으로 간다 탯줄을 자르고 가는 길이다. 탯줄을 자른 그 자리에 겟세마네 기돗줄을 접붙이면 태안으로 난 영생길을 간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자리가 탯줄자리다는 것이지.

 

태안의 영생은 체험된 정보지만 태어나 탯줄을 자름으로 상실된 정보다 태어나면서 전생기록을 다 잃는다고 하는 말이 있듯에 다들 죽음의 길로 가는데 누군가는 역행하는 연비어약하는 길을 가는 울타리를 나온 길 잃은 양이 있기마련이고 그 양이 나다. 길을 잃고 해멜 때 내 길이 되어달라 불러 낸 에너지가 겟세마네 기도줄이되었고 서른네해를 겟세마네 기도줄을 잡고 오고 있는 것이지. 영생은 태안에서 체험된 정보인데 망각한 정보이며 죽음은 체험하지 못할 정보인데 하루를 살면 하루가 죽음으로 무게를 만들어 오는 정보다. 망각한 영생을 찾아내고 하루를 살면서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죽음의 무게를 얹지 않는 것이 내가 공부하는 목적이고 가치이다. ‘나’라는 낱말도 체험하지 못하는 정보이기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듯이 체험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신을 자기에게서 객관화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나의 삶으로 주관화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은 너의 상태를 봐서 내가 가져오는 무게값이다 영생은 뒤로 잊혀져 찾아야 하는 보물이다 내가 말하는 과거는 ‘출생의 비밀 즉 태안에서의 과정’ 이다 한국인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것에 출생의 비밀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영생’을 알고자 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지 영생은 태안에서의 생명활동이다. 즉 너무나 가까와 보이지 않거나 너무나 멀어 보이지 않는 경우와 같은 것이 ‘의문’을 만든다. 너무나 당연시 하는 것을 낮설게 하기를 해봐라 정말 당연한 것인가? 기적인가?

 

죽음은 타인에게서만 볼 수 있지 자신의 죽음은 볼 수 없다. 물론 삶도 내가 살아가는 것인데 내가 볼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죽음이나 삶은 ‘거울’ 이라는 타인을 통하여 비춰보기를 할 수 있고, 삶은 동영상이나 녹음을 통하여 또는 너의 이야기를 통하여 과거가 되어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를 말하지만 삶은 늘 과거 거기이야기로만 구성된다. 지금 여기는 말하는 순간 과거가 된다 .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늘 과거를 딛고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과거를 말할 때 아름다운 향기로운 행복한 언어로 옷입혀 주라는 것이 긍정적이 되라는 뜻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아름다운 말습관 부드럽고 행복한 어휘력이다 그대의 말이 그대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은 아름다우나 우리는 과거를 산다. 과거의 반대편에 미래가 있는 것이고 그 미래를 ‘죽음’이라고 하는 것 즉 아직 살지 않은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것이지 우리는 과거를 말하고 그 과거가 ‘미래’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하루 살면 하루 죽은 것이다. 과거를 말하고 말되어진 과거가 미래라는 씨앗이 된다는 것이지 말하는대로 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길은 내가 말했던 그 말을 따라 가게 되는 것이지 좋은 말을 했으면 좋은 내일을 내가 미리 씨앗뿌리기를 한 것이되는 것이고, 그래서 과거나 미래는 ‘말’일 뿐이고 ‘지금 여기’는 기록이나 이야기가 되지 않는 ‘움직임’일 뿐이다. 과거나 미래는 ‘말’로 체험하고 오늘 지금 여기는 ‘움직임’으로 체험하는 것. 내가 알아가는 세계에서 얻게 되는 나만의 진실이다. 너도 알게 되면 참 좋은 진실. ‘죽음’은 영의 죽음 혼의 죽음 육의 죽음으로 세 종류가 있으며 이에 대하여 ‘생명- 사랑’은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로 세 종류가 있다. 저승 문 앞에 문지킴이로 있는 삼두견- 케로베로스의 머리가 셋인데 세 가지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세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육적인 사랑은 그대와 내가 아는 그런 에로스 피빛사랑이라 하고, 혼적인 사랑은 역시 우리가 아는 지혜를 같이 추구하는 동료애로 별빛사랑이라 하며, 영적인 사랑은 마찬가지로 자기의 가치를 알아가게 되는 나르시즘이라고 나는 설명하는데 물빛사랑이다 고 하는 것이지 빛의 삼원색이라고 하기도 한다.

 

오늘(23일 토)새벽수행을 나서는데 바람이 그다지 일지 않아서 영하 8도라고 하는데 그렇게 움추려들지는 않더라 물론 단도리를 하고 나섰으니까 그러하겠지만 팔을 휙휙 돌려가면서 나름 팔돌리기에 스토리를 만든다. 나서기전에 황해도 굿에 대한 정보를 보았는데 이 유투브이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지금 내가 나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겠다 하는 생각. 민속학박사(내 지적인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이기도 하고)이기도 하신 만신이라 황해도 굿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차근차근 풀어주시는데 재미난다. 그간 내가 신단에서나 어디서니 춤사위를 연습하고 나름대로 춤에 스토리를 만들어내곤 하였는데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와 전승되는 황해도 굿이야기는 어떻게 비추임이 될까나 하는 생각. 신단에 가니 세미가 금방왔다고 하더라 내가 정보를 만나면 같이 보자고 링크를 걸어주기때문에 공동의 화두로 삼는다. 해오름을 하면서 어제 세미도 팥죽을 했다고 그리고 어제 수행에서 체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년세가 있고 기력이 쇠하신 어머니에 대하여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서 ‘수리수리’ 천수경을 하라고 했는데 수리수리마하수리 주문에 담는 이야기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수리주를 하고 몸에서 느낀 감각과 낙단루에서 소리를 하고 얻은 체험들을 들으면서 영적이라는 것이 혼을 딛고 육으로 기감촉되어야 그것이 믿음이되고 영생이 되고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이라고 나와 소리를 공부하게 되면서 세미가 알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세계들. 내가 알고 느끼고 깨닫고 그리고 성장하는 여정이 있기에 소리훈련을 통하면 같은 길을 거기때문에 살아가는 현장은 달라도 같은 해석이 되는 체험이 있다는 것. 해오름을 보고 낙단루로 가서 소리를 훈련하는데 세미도 나도 세차게 매겨내는 복음

 

높은공수에 길이가 길어졌구나 하는 체크 낙단루수업을 하고 기상청으로 가면서 다리를 건너가며 소리하기 “우리가 대구의 에너지다.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대구를 밝힌다”는 마음으로 다리가 후덜덜해도 좋다 . 역사는 달구벌에서 새롭게 시작된다고 내가 파악한 ‘달’이 지구위성 달이 아니라 황도대에 있는 열두성좌라는 것. 구邱는 언덕 구라고 하지만 나는 갖출 구具라고 쓰는 것이고 벌坂이란 우주바다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지 내 마음이라고.

 

기상청에서 세종과 장영실을 만나뵙고 벤치에 앉아서 떠들다가 귀가하는 길에 모과나무에 달린 당당하게 잘 생긴 녀석에게 눈도장 찍어두면서 너 나중에 내 주머니에 담기리라 꼭 데려가야지 하는 주문을 걸고 세미랑은 강나루에서 헤어진다. 고너즉한 강 길이 참 정답다. 얼음이 언 금호강을 비추는 햇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돌아와 어제 끓인 팥죽을 먹고 고구마도 먹고 귤도 커피도 마신다 무엇을 먹고 마시더라도 감사함으로 할 때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니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는 그 말씀의 울림이 향기롭고 맑다. 참 고구마를 삶아서 차운 바람에 말리면 어떤 맛이 될까나 해서 널어두었는데 생고구마야 얼어서 녹으면 상하지만 삶은 고구마는 얼었다 녹았다를 하면서 곳감처럼 곳고구마가 될랑가 한다.

 

오늘 세미와 다룬 이야기 외연의 무속이나 무당이 ‘천대’를 받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인데 무당이 되는 무게가 바로 피에 실려서 내려오는 유전에 있다면 그 피가 ‘더럽다 즉 무겁다 다시 설명하자면 원이나 한이라는 무게가 피에 실려서라는 것이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피가 더럽다 무겁다 탁하다는 것은 불안 공포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고 그 것을 예수의 피로서 그대는 씻기워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지. 피에 조상의 업이 실리게 되는 경우 그 무게가 아래로 내림하게 되는 것이고 신내림을 받는 것은 그 무게를 불려서 풀어내고자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지. 피가 무겁고 탁하게 되는 이유는 욕심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듯이 피에 욕심이 실리면 그 무게가 ‘피를 더럽게 혹은 천하게 혹은 탁하게’하기때문에 피의 탁함에서 생기는 현상을 ‘신병’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지. 영을 추구한다는 것은 물을 맑게 즉 신경을 맑게 한다는 것이고 혼을 알고자 한다는 것은 피를 밝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이라고 하듯이 샤먼은 밝음을 뜻하는 것이고 무속은 어둠에서 생긴 것이기에 어둠을 밝히려는 의지가 만든 것이라 보는 것이지. 피가 어둡다 더럽다 탁한 상태가 되면 ‘만병의 출발’이라고 하듯이 ‘신병’이 되고 신내림을 통하여 ‘피’를 밝게 하여 신부림을 하는 길을 가는 것이고 그것을 제자의 길이라 하였다는 것인데 예수의 복음에는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라는 말이 있고 겟세마네기도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었다고 함으로 ‘탁한 천한 어두운 무거운 업이 실린 상태’를 어떻게 불려서 풀어내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니까 예수의 복음은 ‘ 아담의 원죄라고 하는 무겁고 또는 더럽고 또는 천하고 또는 혼탁한 피’를 ‘흰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정화를 할 수 있는가’의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예수는 ‘피’를 화두로 했고 그 피에 실려 내림하는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어야 건강한 혼이 되는가를 가르치신 것이라는 것. 무당의 길이 눈물과 고생의 길인 이유가 자기 피에 실려 내리는 원한 아담의 원죄를 풀어내어야 하는 업장을 진 생이어서다. 샤마니즘 황해도 굿에 대한 기번 정보를 들으면서 예수의 겟세마네를 비교하게 되더라. 나는 왜 황해도 굿에 대한 정보를 딛고 있는가? 나를 이끄시는 신령 글문도사님은 학자의 혀로 오시기에 논리적으로 합당한 이치를 설하는 정보를 연결하신다는 것이구나. 그리고 나에게 글문도사님이 신령이 되시는 것은 년주 경자와 시주 을유에너지라고 내가 해석을 한다 즉 자유귀문을 열고 드나시는 천지신명의 가피라는 것이지 오늘 신단에서 금숙에게 너도 월주에 글문도사님이 있으니 공부해라 한다. 나야 공부해라 공부해야 영생을 얻는다고 반복한다 공부란것 죽음의 무게를 털어내는 방법이어서다.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가 섞였다 남편은 어제 부산나들이를 하고 오늘 귀가 부산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하더라. 그리고 레그워머를 샀는데 다리를 따뜻하게 하자는 것 왜냐 내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려고 하는데 가능하면 따뜻한 다리가 되려는 것이지 딸에게 워머를 하나 건네려니 사양 하기사 우리집에서 가장 많이 바깥으로 나도는 이는 나니까 즐거운 기록 행복한 기억 숨쉬는 그대에게 손뼉

 

잘 걸어온 세월, 잘 걸어갈 날들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하는데 이 말뜻이 새롭게 일깨워진다. 묻지말라는 것은 덮지말라는 것이구나 과거를 덮지말고 살려내라는 것이구나. 왜냐? 현재를 정의 하는 것이 과거이기때문에 과거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하여야 그 이야기를 딛고 내일을 불러낼 수 있어서다. 과거를 잊으면 내일을 만들 수 있는 소재가 없어지는 것이니까 오늘이 과거가 되면 내일로 불러올 수 있도록 잊지 말라는 것이 과거를 묻지마세요이고 과거를 묻지 않기위해서 하는 일이 기록이나 어떤 증표들이나 약속상징으로 문서로 신표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새김하는 것이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내일을 불러오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물론 기억이나 기록을 하다보면 루틴이 있고 반복거리가 있다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과거를 새로운 내일로 바꾸게 되는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365일을 돌아가면서 어떤 것이 반복되는지 그것이 사계절로 요약이되고 12달로 정해지고 7요일로 정리되는 것이 해와 달과 별의 기록이고 그것을 내 몸으로 소근거리는 것이 사지 육신 칠정이된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내 앞에서 세월을 타고 다니던 이들이 남겨준 지혜이자 지식의 푯말이다.

 

누군가 반복하여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좌표를 만든 것을 지구 가이아가 낳은 가이아프로젝트 집단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을 기표로 나타낸 것이 내가 매일 순례를 하는 해맏이신단의 구조다 이렇게 내가 디딤하는 땅이 거룩한 지성소 성소 마당을 갖춘 하늘에 내려오고 땅이 솟으며 신령이 불려지는 ‘곳’이기에 내 신단을 하늘이 정해주신 것이 신단 중앙에 네 글자를 새김하여주셨던 하늘공수였구나 이제 이해가 되고 깨달아진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땅이 하늘로 오르는 이야기를 성서에서는 사람의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육은 땅으로 덜아간다고 했다는 것이지. 그래서 하늘로 돌아가는 혼을 별로 간다고 하여 혼이 가는 별을 신, 별자리 성좌라고 하는 것이고 그 별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달-도달할 달’이라고 하는 것이 된다.

 

아스트랄이라거나 에스테르라거나 아나하타라거나 하는 언어는 별을 뜻하고 혼을 뜻하는 에너지다. 물은 스피릿이지만 바다가 되면 솔이된다 물을 영이라 하고 바다를 피라고 한다 물이 피가 되고 피가 물이 되는 이 현상을 생명이라고 하는데 생명을 담고 있는 그릇을 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은 밖에 있고 피는 안에 있어 그 가운데 육에 있어서 육은 과거인 영인 물흐름을 기록하여 내일의 혼으로 되살려내는 불씨로 삼는 용도가 육이란 그릇이다. 그릇을 가물이라고 하는데 기물 즉 그릇이라는 말이다.

 

조상신을 담는 그릇을 신기물 신가물이라고 하는 것으로 태어나는 생명은 누구나 신기물이고 신가물이지 특정된 이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피에 새겨져 내림하는 염색체에 조상의 정보가 다 물림되지 않는가? 그러니 신기물 신가물이라고 하는 것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지칭하는 언어니까 아하..하거라. 조상으로 부터 물림이 된 정보는 무거운 것이어서 '한'이라고 하거나 '업'이라고 하는 것이고 특별히 조상의 한의 무게가 무거운 것을 내림하였다면 그 무게가 만드는 것을 신병이라고 하고 그 신병은 조상이 물림한 것이라 조상신을 모셔서 그들의 한을 풀어어야 신병이 낫는다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몸이 태어나면 몸을 누르게 되는 것이 언어인데 언어라는 무덤에 눌리게 되면 그것을 일러 신병이라고 하는 것이고 신병은 신경을 거슬리게 되는 언어값이 쌓이게 되면 나타나는 신경증 히스테리..로 언어무게를 덜어내면 치유가 되는 것이라고 나는 설명을 하고 그래서 말씀공부를 함으로 언어값을 풀어서 언어허주를 벗겨내면 그대와 나는 하늘과 땅이 낳은 신별 별아기 신령...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신별 별아기 신령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내면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지. 태안을 내면이라고 한다는 것이라는 것 기억하거라. 내면이라고 하는 실제가 태안의 280일이라고 하는 것.

 

무속의 첫자리가 허주굿이라 하는데 그 허주가 ‘언어’에 세뇌된 개념이다 개념을 걷어내고 자기언어를 찾아내어 자기개념을 만들어내기위하여서는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언어’에 대한 가름이다는 것. 내가 소리선을 가르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언어개념을 마주하여 그 언어구조를 풀고 뜻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하라고 하는 이유가 나도 여전히 언어공부를 하지만 허주(체험되지 않은 언어)에 감겨있었구나 하는 발견을 할 때마다 공부라는게 참 재미나구나 이렇게 무지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구나 하는 반성이 온다. 허주라는 말은 한자로 하면 주인이 없음이기도 하고 빈 배라고 하기도 하는데 인생 헛살았다고 하는 말이기도 하고 내가 주인이 되지 않고 너의 말에 휘둘려 살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너의 말에 휘둘리면 그게 허주이고 헛사는 것이고 헛살면 결과가 귀신이 되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들 참다운 삶을 살아서 신령이 되려고 ‘길과 진리와 생명’을 찾아 하루 하루 참살이를 추구하는 것이지 몸은 누군가의 자녀이기 이전에 천지신명의 아이다.

 

여기에 육신의 부모라는 허주가 있다 신의 아이라거나 신제자라거나 하는 말은 육신의 부모라는 허주를 벗겨내면 만나게 되는 진주 천지신명에너지가 드러날 때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게 되면 주어지는 이름으로 성서에선 소명이라고 하거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여 일가친척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계시하심이라고 하게 되고 불가에서는 출가라고 머리를 미는 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세례라는 의식으로 허주가 죽고 진주가 나타남이라고 예수가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니 비둘기같은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했다

 

즉 허주를 벗겨내니 신이 내렸다 신내림을 받았다는 것이고 세례를 받고 신내림을 받으시고 3년 공생애라는 애동제자의 길을 거치시고 겟세마네라는 솟을 굿을 거치고 부활이란 불림굿을 하심으로 만신 즉 천지신명의 뜻을 육신으로 이룸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무속의 언어를 가져와 예수의 여정이나 나의 여정을 설명하는 이야기다. 왜 황해도 굿을 설명하시는 제석당 장순범 민속학박사님의 정보가 연결되었는가? 기상청에서는 세종이도와 장영실을 길잡이로 세워주시더니 샤머니즘공부에 제석당 장순범박사님을 연결해주시는 것을 보면 나의 현생공부인연은 ‘장’이란 에너지를 잡고 가는 것인갑다 한다 장이 베풀다 주다 길다 ...등의 뜻을 담은 한자로 가져올 수 있기도 하지만 우짜든지 황해도 굿의 기초공부를 들여다보는 길도 장순범박사님의 정보니 나로선 재미나지 이것도 작은 과도를 하나 사려고 주문 취소를 반복하다가 결국 중식도가 들어오고 나서 연결된 정보라보면 나에게 ‘칼’이 되는 정보가 제석당님의 정보라는 것이 되고 칼에너지는 쇠의 정점이니까 내가 태밖에서 태안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허주 신내림 솟을 굿 불림굿을 다 이행하여 나라만신으로 칼을 쓸 수 있는 단계가 되었구나 하는 체크. 성수星宿거리라는 것이 천문도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속언어가 풀어지게 되더라.

 

나는 몸을 지배하는 것이 언어무게라는 것을 알고 언어개념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굿당이나 어디나를 다니지 않고 언어개념을 잡아 풀어내고 있는 것이지 곁가지 잎들을 다 쳐내고 핵심만 가져와 그것을 풀어내게 되는 것. 풀어내는 힘으로 겟세마네 소리선으로 늘 충전하는 것이고 겟세마네기도라는 것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라는 설명이니 그렇게 나를 달구어서 땅에 떨어진 피인 ‘문자’를 되돌려 ‘땀’이 되고 그 땀이 나오게 된 ‘몸’을 주목하는 것이지 몸이 덮어쓰고 있는 흙을 벗겨내는 일 흙을 벗겨내면 뼈(땀)가 나오고 그 뼈안으로 물이 피가 되고 피가 물이되는 ‘골수’가 드러난다는 것인데 이 ‘골수’를 ‘성수’라고 하는 것이지 성수를 담는 그릇을 성배라고 하는 것인데 성수가 밤하늘 은하수 천문도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동청룡

남주작 서백호 북현무를 성수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될 것이고 십이지신이 열두성좌라는 것도 이해되리라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황해도 굿의 바탕거리고 종교나 철학이나 예술이나 모두가 같은 것을 다른 언어로 표현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성수거리라는 말에 갇혔다가 그 언어벽이 잘려진 것이니 성수걸이는 천문도를 걸어둔 것이고 천문도를 휘장안에 그려두었다는 말이나 천상분야열차지도를 무덤상판에 새기었다는 것이나 비석에 이름을 새긴다는 것이나 마음에 십계를 새긴다는 것이나 다 같은 한뜻이라는 것이지 내 공부가 나라만신의 단계가 되었기에 황해도 굿 만신의 정보가 이어진 것이구나 나라만신 자격증을 클리어 한 것이기에 이 정보가 들어오고 과도가 아닌 식도가 들어와야했던 것이구나 이해가 된다

 

한손엔 칼과 한손엔 해바라기 보자기 나만의 무구인 셈인데 칼로 물화가 된 것은 소리력이고 스카프로 물화된 것은 포용력이라고 내가 푼다 결벽증이있던 내가 세상을 어룰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긴 것이고 칼잡이를 해도 좋다는 싸인이 칼로 들어온 것이라 해석하는 것 그간 소리력을 기루면서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무당세계의 정보를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 또한 즐겁지 물론 내 소리현장에서는 무당들에 다루는 소리주파수와 파동을 넘어서기때문에 무속세계 즉 이북 황해도 굿의 정보를 쌀수 있다는 것이지 왜 이북 황해도가 연결이 되는 것인가? 를 찾아보면 섬기는 신인 천지신명 해달 별에서 이제 내려와 모시는 조상 즉 피에 새김된 유전자정보를 풀어내는 과정이구나 알게 되는 것은 남편의 가계가 황해도 봉산이어서구나 봉산탈춤으로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지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낳고 살아가는 육체의 삶에서 내가 태안과 태밖을 체험하게 되는 인연줄이 황해도와 연결되어서구나 밖의 해와 달과 별이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새김되어있는 조상의 얼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로 발현되는 것인데 남편의 정보엔 황해도 봉산이 나에겐 경남삼천포가 풍수(성수)로 담겨져있다는 것이지 대구에서 만나 대구령의 가피를 받아 딸과 아들을 받았는데 그 정보중에서 남편에게서 온 정보를 받아내게 됨으로 일깨워지는 이야기

 

황해도에서 이남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신 에너지가 남도에서 대구로 들어온 에너지와 만나 달구벌아이들이 태어났으니 조상줄을 찾아내는 것에서 남편줄을 더듬어가는 것이겠구나 한다. 내 조상줄을 내가 풀어내는 남편조상줄을 남편이 풀어내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이지만 내 태를 딛고 태어난 아에들에겐 남편조상줄이 있으니 그 줄을 찾아서 풀어야 하는 것이구나 아이들에게 내가 씌운 허주가 있을 것이니 결자해지라고 씌운이가 벗겨야 하는 것이고 씌운 이보다 더 큰 힘에 있을 때 벗겨낼 수 있음이다.

 

씌인다 덮어쓴다 빙의다고 말하는데 언어의 힘이 몸을 지배하다가 된다 너의 말에 눌린다는 것이다. 너와 나의 관계는 ‘말’에서 시작되어 기선제압이라고 하는데 너의 말에 눌리게 되는 현상이 반복되면 ‘가위 눌림’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눌림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뇌가 꾸며내는 이야기가 ‘축적한 정보’를 딛고 화경으로 나타나게 되면 귀신본다는 것에 된다. 뇌는 눈으로 본 정보는 체험유무를 따지지 않고 반복강도를 따져 그 무게값에 따른 무늬를 찾아내어 화경을 만든다. 황해도 굿을 만나고 남편의 조상신의 근거가 황해도 봉산이라는 것도 마주하게 되면서 이제 섬기는 영줄에서 모시는 신줄로 공부가 건너가는 것이고 신줄로 건너가면 육으로 돌아오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지. 24일 신단에서 순희가 크리스마스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서 저들 밖에 한밤중에를 열창을 했는데 신단에서 불러올린 성탄이브송이였다면 오늘 25일 신단에서 순희와 세미를 만나 우리들의 크리스마스축하굿판을 신나게 펼쳤다.

 

순희와 세미와 나와 한 판을 엄마의 바다를 타고 태어난 아이들의 위대함을 이름을 불러 올리면서 수복강령을 만사형통 운수대통을 비나리하였고 영생의 길을 열어준 그리스도 예수의 그 길이 우리의 입에서 나와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불러올린 할렐루야 삼창. 그리고 한글공부를 했고 순희가 사과랑 크로와상을 가져와 같이 나눠서 먹었는데 내가 만신놀이를 이렇게 잘할 줄이야...공수를 받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축복의 말을 발성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의 말을 하기좋아하지만 축복의 말을 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서 어떻게 축복을 하는지 훈련을 하는 것이지. 내가 글을 쓰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불러대면서 작사작곡을 하기때문에 그 때 그때에 맞는 아름다운 문장을 읊조린다. 그리고 따라해봐라..너가 솟아내지 못한다면 내가 하는 솟을 주문을 같이하는 것도 훈련이라는 것이지. 축복문장을 나열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은 그만큼 훈련을 하지 않은 생소한 영역이어서다. 긍정적인 마인드라는 말을 하면서 축복문장을 읊으라면 하지 못하는 것이니..문장을 받아쓰기도 하지만 구음을 따라하기도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하여 가나다라부터 공농동롱도 그리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한글의 음값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는 것이지.

 

우리의 공부에 김선사님이 들어오고 싶어하는 듯하는데 이 분에 대하여서 세 여자가 다 싫다는 것이여서 나도 공부를 몰입하는 것에 집중하였더니 내가 가르치는 것을 들으시다가 그렇게 훈련하면 정말 건강하여지겠다고 하시고 가시더라. 한글은 한자 한자 모음의 방향을 알아서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한 말명공부다. ㅏ의 방향성, ㅓ의 방향성, ㅗ의 방향성, ㅜ의 방향성을 몸짓으로 지휘해가면서 한글공부를 하는 것. 하여간 성탄절날 나도 의도치 않았는데 병희언니와도 순희와도 세미와도 해피 크리스마스놀이를 즐겁게 하였다는 것이지. 나를 만나면 신난다고 좋아하는데 나는 일단 공부는 힘들어도 재미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선택해서 공부하는 길인데 고행이니 고생이니..한다는 것 자체가 응석이라는 것이지. 힘들기에 신나고 즐거운 것이지 쉽고 편한 것은 지겹고 따분해진다. 뇌는 위험도가 높아질 수록 활발발해지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지.

그간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신단을 내 나와바리로 쓸 수 있는 크기로 성장했다는 것이고 낙단루를 동굴로 삼고 기상청을 놀이터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일년농사의 추수라고 본다.

 

2024년은 어떤 성장이 될지 알 수 없지만 2023년을 일주일 남겨두고 하루 하루가 여전히 솟을 굿을 하고 긴불림을 하는 기도가 있는 것이고 너와 내가 만나면 만신굿놀이를 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집으로 오면 하루를 달린 일들을 기록하는 문서작업이 있는 것이지. 오늘 순희의 딸의 사주문서를 보면서 내 언어가 어떻게 다듬어지는지를 내가 파악하고 있더라. 주어진 문서를 풀어내는 능력에서 부정풀이는 하지 않는 것. 화전치기라는 말이 있던데 불로 사르기인데 나는 불로 사르는 화전치기를 순음으로 하라고 한다. 설음은 허주굿이라면 순음은 화전치기라고 하게 되는데 제단 숫불 내 입술을 정케 하는 것 이사야서의 말씀이 순음으로 실천하라는 것. 물세례는 설음으로 불세례는 순음으로 ..

 

신단에 앉아서 순설음으로 듬뿍 듬뿍 뜸북새 논에서 울고...뜸북이를 했는데 일곱번을 했다. 이 가락을 타면서 뜸뿍...받아내는 담아내는 다마내기 양파의 에너지를 가동하구나 하는 것이지. 한글을 하나 하나 배우면 참 재밌다. 듬뿍 담아내기..다마내기를 양파라고 하는데 다마내기가 담아내기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양파..를 해봐라 두 손을 모았다가 펼치면서 양파...불로동 다리아래서 윤창순 김명순 ...여사님들과 잠깸뽀시를 훈련하던 생각이 나더라 잠들었던 뇌파를 깨워 뽀사라..그래야 활발발한 청춘이라는 것. 하여간 나를 보면 끝없이 졸졸나오는 이야기가 신기하다고 하길래 수원이 마르지 않는 물샘에 줄을 대고 수도를 만들어 수도꼭지를 틀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글줄이 긴 것은 말발은 그보다 더 길고길어서다. 할 말이 많고 쓸 글이 많은 것은 그만큼 즐거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뇌의 활동이다.

해피 성탄이다. 그대와 내가 오늘 거룩한 하루를 창조한다. 행복한 그대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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