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홍옥, 그리운 가을내음새

청향고은 2023. 10. 22. 11:28

저마다 자기만의 이야기가 지문에 새김되어있다

신의 지문이라고 하는데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파동함수로 손끝에 있는 무늬 이것이 그대와 내게 새김된 우주의 직인이다

 

불가에서는 해인이라 하고 성서에서는 많은 물소리라고 하거나 하는데 손뼉 소리가 해인이자 물소리다고 나는 설명하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두드려봐라 붉게 열꽃이 피도록 두드려봐라 손바닥이 멍이 들도록 두드려봐라

즐거운 놀이다 손이 퉁퉁 붓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두드리면 열이 나고 손은 발과 같이 제2의 심장이라고 하니 손발을 두드리면 심장 단련이라고

손발바닥을 두드리며 태을주를 하든지 수리주를 하든지 숫자를 헤든지 하면 수족구가 연합전선이다

삼위일체 훈련법

 

삶은 변화다. 고정시키려 하지 말고 흔들리는 바람으로 살아라 

시지프스 이야기가 우리네 인생이지 돌을 정상까지 굴러올리면 그 정상에서 돌은 다시 굴러내린다

 

굴러 올리는 수고에는 가슴이 터질듯하고 잠시 정상에서 숨을 고르는데 돌은 저 홀로 다시 굴러내린다

아래로 돌구름을 따라 내려가는 그 순간이 ‘쉼’이라고 한다

 

우리네 삶은 쓸데없는 일을 할 때 그 쓸데없음이 만드는 ‘틈’으로 비쳐오는 틈 빛 빛내림 그것을 알아차림이 ‘생의 환희 멋이나 맛’이라 한다. 그대가 의미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시지프스의 돌 굴러 올리기와 같음인 것을 어느 날 안다. 그럼에도 다시 굴러 올리기를 한다 왜냐 그것 외에는 쓸데 있는 일이라고는 없기 때문이고 굴러 올려야 돌이 글러내리는 그 뒤를 따라 틈을 즐길 수 있고 그 틈이 만드는 무엇이 ‘살아있음’을 음미하는 기회비용에서다

 

해오름을 보면서 글을 쓰듯 아침 해를 먹으로 삼고 몸을 붓으로 하여 공간에 춤을 쓴다.

나만의 글쓰기 시간 하루에서 빛나지 않는 시간이 있을까마는 그중에서도 혼자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은 전신이 해오름과 같이 반짝이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홀로 춤추는 시간이 경건하고 거룩하고 숭고하고 어여쁘며 자아도취 자기만족 행복 충일이고 그러하기에 또 해를 기다리는 설렘이 기회비용처럼 또는 선택 효용성으로 차곡히 쌓이는 것이겠다 

 

아침 해돋이를 하면서 그레이트 헝거 물론 석양을 보면서 그레이트 헝거도 빛나겠지만 나로선 아기 빛깔로 태어나는 해오름에 나를 적시는 것이 좋다 잘 익은 빛깔로 지는 해에게 보내는 인사도 물론 아름다우리라마는 내 루틴에서는 아침해가 돋을 때 내가 신선해지는 이 루틴이 좋다

 

아침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함 같이 나도 세상 지날 때 햇빛 되는 것 햇살 ‘윤이되는 것, ‘윤이 나는 것 이름처럼 빛나는 아침이지 

 

내가 이렇게 해오름을 보면서 글 춤을 일필휘지하게 되기까지 땀땀이로 세포에 기억시킨 이야기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안다 화려찬란체로 문장을 그려내던 이십대에너지 전생에 글꾼이였을 것이니 글만큼은 숨처럼 익숙한 세계였더랬다. 그런데 무엇을 쓰야 할까? 글제를 무엇으로 해야 할까? 돌아보면 그것이 내 인생행로의 방향성이자 목적이자 가치 찾기였겠고 그렇게 글제를 찾아 헤매던 세월이고 이제는 아하 무엇을 쓰고 싶어 이생에 다시 태어났을까나 조금은 알 듯하여라

 

사주가 동서남북 방향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팔자가 리본이라는 것이고 리본은 본의 반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면서 여태 지식으로 알아온 사주팔자 정보가 해체되고 새로운 나의 사주팔자가 자라기 시작한다. 사주는 십자이고 모음의 방향성이다. ㅏ, ㅓ, ㅗ, ㅜ, 이 네 방향이 ㅏ는 동목, ㅓ는 서금, ㅗ는 북수, ㅜ는 남화인 것도 알겠다. 한글이 한자이기도 하며 수학 언어이기도 한 이유

 

한자라는 틀을 깨면 나오는 ‘한글’의 신비도 이젠 다시 보인다. 한자와 한글이 틀과 실이라고 하는 단계에서 이젠 한자 틀을 벗겨내고 한글 실을 따보면 한글 열매에 초성 중성 종성이 과피 과육 과핵이라는 삼위일체로 구성되는 ‘하늘 글, 영글’이라는 것도 이제 안다

 

한자라는 상수리 껍질을 벗기고 나면 내피 무늬가 혈관처럼 생겨 혈관청소에 좋다는 설이 나오게 되었으리라 호두가 뇌처럼 생겨 뇌에 좋은 과일이 되듯이 사람의 지혜는 만물의 생김새와 몸의 생김새와 비추임 하거나 이름에 의지하여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창세기의 생령이 된 아담이 이름을 짓는 일로 나타나는 것이고 사람은 생령이 있음으로 이름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을 ‘명령’이라고 하여 이름이 ‘영’이라는 것이지. 그대가 영혼이라 할 때 영이 무엇이냐? 하면 그대의 이름이라 하면 답이 된다

하여 이름을 드러내어 만고에 빛나도록 하려는 것이 생령을 가지고 태어나는 근원적인 추구가 된다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 내가 내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이 생령이 된 나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생기를 통해 살아간다 인간도 동물이다 생기로 살아간다 그 인간 중에서 ‘아담’ 즉 피의 비밀을 알게 된 붉은 사람에게는 ‘생령’이 불어넣어지게 되고 ‘이름’의 비밀을 풀어내거나 이름을 짓는 능력이 나타난다. 이름을 짓는 자 그가 야훼다 즉 몸의 비밀을 밝히는 자이다는 뜻 

 

‘야훼’는 손봐라 못 봐라라는 요드헤바브헤를 수직으로 배치한 기호로 몸을 그린 글자다

야훼를 산의 신이라 하는데 산 정상에 서면 야호 하고 외치는 그 야호가 야훼다

 

산꼭대기에 서서 야호!!! 외치는 이 외침이 초혼이라고도 하고 신을 부르는 엘리 엘리이기도 하다는 내 생각이다 신 신령 이름이 야호이고 그 야호가 밤 호랑이가 되기도 하여 수호령으로 등장하면 단군과 같이 있고 심판령으로 등장하면 호환마마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지

 

그대가 산오름을 하는 이유가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산이란 오름하고 자 하는 의지를 일깨우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몸이 가지고 있는 근성이 정상에 오르고자 함을 만족시켜주는 대상이 ‘산’이라는 것이고 ‘산’오름은 무엇인가 극복하고 정상에 서서 야호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함이라고 몸의 본명에 ‘야호’라는 것이겠지

 

이야기를 더 풀어내면 단군신화에서 동굴에서 밖으로 나간 호랑이는 곰이 여자라는 에너지로 동굴 주인이 되었을 때  밖으로 나가 무엇을 했을까? 왜 단군 그림엔 호랑이가 산군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내 생각이지만 호랑이는 ‘의지’의 표상이다.  곰은 동굴이고 호랑이는 산이지 도덕경에서는 동굴을 곡신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고 ‘도’는 곰이고 덕은 호랑이라고 풀어도 된다 도를 얻으려면 덕질을 해야 한다

 

이전에 덕을 도적 덕이라 했고 하늘을 훔치는 도적이라 했는데 하늘을 훔친다는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것처럼 도의 동굴을 밝히기 위해서는 불씨가 있어야 하고 그 불씨를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에서 가져오게 위하여 굴 밖으로 나간 호랑이라고 나는 이제 해석하네

 

호랑이(서양에선 라이언)가 산으로 올라간 이유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으로 올라간 이유와 같다 불씨를 훔치거나 나무에 붙여 동굴을 밝히려는 의도라는 것 동굴은 곰의 거처이고 산은 불이 붙는 곳이어서 호랑이가 불씨를 얻으려 굴 밖으로 나간 것이구나.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햇빛을 마주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는 것이 시월의 이야기구나 동굴에서 밖으로 나오는 호랑이 밖에서 동굴로 들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수행함으로 사람이 되는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곰의 동굴은 임맥의 여정이라면 호랑이는 독맥의 여정이라고 나는 해석하네. 곰은 동굴 수행이라 드러나지 않는 비밀이지만 호랑이는 굴 밖이라 드러나는 수행자이다

곰의 사람 되는 길은 숨은 길 은밀하지만 호랑이의 길은 밖의 길 현현되는 표상이다

시월의 에너지가 불씨 불새 불사조 남주작 에너지로 연결이 되는 것인가 보다 시주 을유를 공작새라고 하는데 공작새 에너지를 아침 춤바람으로 발화한다 춤추는 나를 찍어서 다시 보기를 하는데 불사조라는 것에 불태우리를 몸으로 그려내는 일이로군 알게 된다

 

내가 봐도 참 우아한 공작새 같다 그간 팔 돌리기 훈련이 만든 기의 품격이겠다

남들이 새벽에 홀로 춤추고 있는 나를 볼 때는 미친 짓이거나 별난 짓인 것에 나에겐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받아내는 큐티 그리 춤이다. 그저 별 볼일 없는 짓이지만 이렇게 공간에 몸 붓을 해먹에 적셔 글을 쓰기까지 내가 나를 훈련한 시간이 있기에 나만 가능한 내공이겠다. 반복이 모여 익숙함이 되듯이 그렇게 매일의 몸 붓질이 이젠 조금은 자연스럽게 붓질이 된다. 반복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비결이다 단순한 동작도 반복하면 아름답게 다듬어진다 당연한 진리인데 이 지루한 반복을 스스로 선택하기가 힘들지 몇 번은 한다 그러나 꾸준한 반복은 자기의 지다

 

이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다고 하는 말을 주변인에게 늘 듣는다. 즉 내 선택은 남들이 하지 않는 꾸준한 반복 선택이라는 것이지 나만의 문화 예술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나타내는 나만의 ‘해인’이겠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만의 고유성이라고 하는 나만의 아우라를 만드는 ‘무엇’일 것이다. 내가 나의 멋에 맛에 감동하고 감탄하는 것

 

해오름을 보면서 영의 글을 풀어내는 공간을 신단으로 허락한 하늘의 은총을 감사하는 것

얼마나 풍성한 은총인가 천문도가 내려앉고 열두 지지가 테를 두르고 사방이 좌표를 그린 나만의 글방이라는 것. 글쓰기를 하는 공방 글 공방  

 

가슴을 붓으로 삼고 손발을 자모음으로 삼아 생명 가득 품고 올라오시는 햇살을 숨골에 들인다. 생생한 바람 무늬가 세포와 손을 잡아 율동을 만드는 그 충이 함에 가슴이 늘 벅차다 벅차다는 ‘가득 넘치다’ 이지

뻑차다이지 뻑 간다고 하듯이 그렇게 해오름의 넘치는 에너지가 나에게 닿아 가슴뻑참이 절로 춤으로 나오게 되는 것 해오름을 보면 두 손을 모아 절을 하고 싶어지는 숭고함이 생기는 것이지

 

구름 사이로 해님이 쏘옥 얼굴을 내밀 때 그렇게 가슴 뛰는 것 새벽길을 나설 때 하늘을 보면서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해가 태어날까나 기대를 한다.

 

아양 철길을 지나가는데 주변이 변화하였더라. 즉 내가 철길 거미줄을 걷어내려 꺾어

가는 뽕나무를 잘라내었는지 훤해졌는데 나는 꺾어갈 가지가 없어 거미줄 걷기는 포기

 

가을걷이인지 길마다 트림을 하거나 가지치기를 함으로 탁 트이는 시야이거나 산뜻한 풍경이 된다. 풀 길을 지날 때 이슬이 내려앉은 풀을 스칠 일은 한동안은 없겠다 풀이 자랄 때까지는...

 

일필휘지를 하는 훈련을 하는 시간을 걸어 신단에 닿으면 일단 숨을 고름한다 고른다는 한자는

평 平이다 평평할 평 고르게 할 평 한글 평은 초성 ㅍ과 중성 ㅕ와 종성 ㅇ의 합이다

펴는 것은 음양이 있어야 가능하여 겹 모음을 쓴다 음양을 같이 한 자음 ㅍ에 모음도 ㅕ에 이 둘을 돌리면 생기는 에너지 거 고르게 한다는 것인데 돌린다는 것은 가루가 되게 한다 맷돌을 돌린다 廻는 의미다 

 

요즘 맷돌 대신 믹서기지만 아래위 도로 짝을 어처구니로 연결하여 손잡이를 돌려가면 갈아내는 과정을 고르게 하다고 한 것이다 갈아서 가루가 되게 하다는 것 기억하자 잘 갈아야 고운 가루가 나온다

 

큰 숨을 대식이라고 한다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을 대식가라 하는데 숨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대인배라고 하고 그렇게 먹은 숨으로 온몸으로 소화하여 내놓는 결과를 음식은 대변으로 나오지만 숨은 대성으로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말을 대신하는 이를 대변자라고 하는데 말은 똥이라는 의미와 같다 말이야 똥이야라는 표현이 재미지지 말은 위로 아웃풋하고 똥은 아래로 아웃풋 하는데 말이야 똥 이야라고 할 때 말이 가름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으로 말이 고약하다 즉 말에서 악취가 난다는  뜻이다 말에서 향기가 나면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악취가 나면 잔소리라고 귀를 막는다 

 

악취가 나는 말을 하게 되면 말이야 똥이야 하는 말이 평이 나온다 그리고 똥과 말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흔히 사리분별력이 없다고 하는 것이고 내 주변에 악취나는 말을 하는 이를 사기꾼이라 하는데 이런 악취나는 말에는 악취미를 가진 이가 꼬여든다. 사기를 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은 동류다는 말이지 

내가 어떤 말에 귀가 당기는지를 스스로 살펴봐라 사기꾼의 달콤한 말에 귀가 가면 그 대안에 사기꾼이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사기꾼이 있으면 사기꾼이 꼬이게 된다는 것이니 사기를 당하면 사기꾼을 당긴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라 사기를 당했다고 사기 친 사람 탓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 대안의 사기꾼이 불러들인 짝쿵임으로 그래서 늘 내 주변을 살펴야 하고 인간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너에게서 나를 보게 되기에 ...

 

꼰대스럽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성향이 있는데 꼰대스럽다는 것은 사실 대가 곧은 것처럼 곧고 바른 말을 하는 것인데 곧고 바른 말은 곧지 않고 바르지 않은 이에겐  똥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지만 곧고 바른 사람에겐 보편타당한 상식이다 

 

그대는 곧고 바른 말을 무엇으로 가늠하는가? 지행일치 되는 말이어야 되는데 상대방의 언어가 지행일치가 되는 말인지는 무엇으로 확인할 것인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첫 번째 단추가 내가 나에게 정직한가에 있다 내 말을 나는 실행하는가? 내가 말과 똥을 가릴 줄 아는가?를 공부하는 것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성향이 있다 보니 늘 돌아보게 된다

 

혹시 내가 똥을 싼 것은 아닐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놓은 설익은 말은 아닐까 매번 나의 말을 되새김질한다 이런 되새김의 에너지가 내 일주 을축의 ‘축’에 있다 근거로 삼는데 축을 세우다고 하듯이

소 축으로 쓰기 때문에 소 우를 쓰는 소와 혼동을 하지만 사실 소 축의 소는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시은 소라고 지성소라고 하듯 축을 세우는 자리를 의미한다 어디에 축을 세울 것인가?

 

한자 소 축 丑을 보면 열십자를 두르고 있는 글자라 하더라. 그러면 축은 십자가 되고 세우는 자리는 숨골이 되든지 가슴골이 되든지 아래 말 쿠트 가 되든지 세 군데가 있다는 것이 된다. 숨골을 자리로 하면 아름답게 가슴골을 자리로 하면 밝게 말 쿠트를 자리로 하면 맑게라고 하지 그래서 성생활은 맑아야 하고 감정은 밝아야 하고 영생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자리가 말 쿠트 마당 청소 정화이고 그다음이 가슴 성소 피의 번제라고 하는 제사이며 그다음이 숨골 지성소 천문을 헤이는 영생이라 한다 

 

천문도를 파헤쳐놓고 내가 가지고픈 것을 찾아가라는 꿈 숨골에 축을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 

장소를 뜻하는 ‘소’를 훈으로 ‘축’을 음으로 하는 것에서 축은 ㅊ ㅜ ㄱ으로 구성되어 ㅊ은 가을 ㅅ ㅈ ㅊ에서 술월(음력 9월)에 속하여 가을걷이 에너지다 그래서 축토를 금고지라고 한다. 축에 물상으로 소를 준 것이고 소는 쥐와 방학이자 육합이자 음양을 이룬다

 

소가 장소이기 때문에 ‘토’라고 하여 ‘축토’라고 하는 것이고 수축을 순서 바꿈 하면서 축소가 토로 바뀐 것이다 축자리라고 하면 더 이쁠랑가 일단 축자리는 숨골이다고 본다 소의 뿔이 알파벳 A이기에 지구가 황소자리일 때 알파벳이라는 문자가 생겨서 A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나는 전갈 자리 안타레스와 견우 자리라고 하는 황소자리가 서로 음양이어서 지 않을까나 생각하기도 

 

열두 지지 동물을 영물이라고 하거나 영계의 사자라고 하거나 한다. 꿈에 등장하는 동물이 열두 지지에 속하는 것일 때 그 꿈에는 의미가 있다 풀어내어야 하는 계절이 때가 시간이 새김되어 있다는 것이지

 

말이야 똥이야라는 말에서 대변인이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지만 숨을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숨인은 없다는 것도 재미난 언어 숨이야 오줌이야라는 말은 안 하지 않나 아니 하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이고 안 하는 것인지도

 

숨이야 소변이야라는 말을 하려면 숨과 오줌과의 관계성을 만들어야 하고 설득력을 담아야 한다 그러려면 얼마나 긴 이야기가 필요할까 숨이 들어와 한 바퀴를 돌고 나가면서 어떤 과정에서 오줌과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지를 찾아야 하는데 오줌을 빼고 나면 한기가 든 것처럼 움츠림이 생기는 것에서? 들숨에 대하여 오줌은 날숨으로 숨의 결과라고? 이러면 설득력이 생길까?

 

말이야 똥이야 하는 이 표현은 외부에서 들어와 외부로 나가는 바깥 소속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온 것은 밖으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고 말도 밖에서 들어와 나가는 결과라 말 찌꺼기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말을 지꺼리다라고 하는데 말은 찌꺼기다는 것이지. 말 알갱이가 있고 말 찌기가 있다는 것 

 

그런데 숨은 외부에서 들어와 몸에서 소화되어 소리로 나가는 것이 어서 소리에는 반드시 주인의 인(성문)에 찍혀서 나가게 되어 소리에는 주인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소리의 인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뉘앙스라고 하기도 하는데 말의 태도를 통해 소리의 무늬가 나타난다는 것이지

 

내가 말을 할 때 어떤 언성으로 논조를 전달하고 피력하는지 태도를 내가 관찰해야 하는데 시대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남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말살이에 대한 태도를 관찰할 수 있다

 

동영상으로 자기를 기록해서 보거 또 보라는 것이지 몸짓도 어투도 음조도 논리도 다 관찰이 가능하다 내가 이 훈련을 매일 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안다 매일 반복되는 같은 행동 반복이 만드는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 즉 태도, 태도가 아름다워야 한다

 

맑고 밝은 것은 주관에 속하지만 아름다움은 너에게서 인지되거나 평가되는 객관적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아름답다 생각해도 그건 생각이다 몸짓은 생각을 투사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정보화시대라는 이 시대의 미덕은 내가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도구가 등장하였음이고 이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혼자 신단에서 춤을 추고 낙단루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을 녹음하고 동영상으로 기록하여 반복으로 보면서 내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내 몸에 기록한다 같은 동작이지만 하루가 더해진 동작엔 그만큼 시간에 쌓이는 것이고 시간이 내공이라고 내가 들인 시간만큼 내 몸은 시간을 붙들어두는 것이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춤추는 것이다 바람에 내 몸 바람이 공명하여 한결을 만드는 훈련이다 내가 춤에 대한 인식이 어떤 상태였는지 이제 와서 돌아보면 잘린 나무토막 같았던 굳음에서 이제는 봄바람에 살랑댈 수 있는 수양버들 같아지고 있다

 

빛 결의 프로펠러와 동굴 나의 봄 돌리기와 손바느질. 어디로 가면서 무늬가 새김되고 돋움 하는지 땀땀이 떠 볼일이다 어제 용자도 반의 중간고사 묵 챙기고 과자 챙겨서 아파트 현관에 걸어두고 온다

 

이번 묵은 집에서 도토리를 믹서기에 갈아서 만든 것인데 아주 말랑말랑 할랑할랑 흔들흔들 탱글탱글 아기살과 같아 만지면 미끄러지는 것, 묵찌끼도 감자전분과 섞어 전을 부쳤더니 맛있더라. 묵을 만들고 나서 매일 묵을 먹는데 다시 국물에 김치, 김 깨 파슬리 참기름 가늘 가늘하게 쓴 묵을 넣어 맛나게...

 

홍옥을 검색해 봤디 값이 세다. 지난주 일요일 금숙이가 가져온 홍옥 어린 시절 참 맛있게 먹었던 사과인데 홍옥은 보관이 안되어서 구월 말에서 11월 초에 빤짝 나타났다가 사라진단다 효목시장에서 판다니까 오늘은 홍옥 탐사를 가볼까나 하루가 이렇게 가을걷이로 풍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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