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심리공부는 피를 아는 공부다

청향고은 2023. 8. 16. 16:50

오늘 비타 앱을 받아서 동영상에 음악을 넣다

편집까지 해야 되지만 내가 남의 손에 기대지 않기가 먼저지 이론은 일단 이해했다

춤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현장글쓰기인지 매일 알아간다

소리가 영체라면 춤은 영체를 담는 그릇 또는 춤이 영체라면 소리가 그릇 그렇게 영육이 하나가 되는 훈련에

동영상에 음악입히는 앱 찾아서 내가 해본다

춤을 출 때 순설후로 비트를 넣는데 앱 이름이 비타다

 

무음으로 춤동작을 만드는게 아니라 내가 박자를 만들어가면서 춘다

소리가 주파수라면 춤이 파동인데 소리가 피의 에너지라면 춤은 물의 에너지다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한다는 것. 내 소리가 춤근육을 움직이고 춤근육이 소리가락을 풀어낸다 영체란 멋이다 몸이 만들어내는 태도

 

영성체

 

이 낱말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상징의식으로 포도주와 떡을 먹는 성찬식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상징으로 포도주와 떡을 먹는다는 것은 종교는 상징의식을 통하여 실체를 간접체험하고자 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포도주와 떡은 상징일 뿐 피와 살은 될 수 없기에 이미 상징에 의지한다는 것에서 거짓이다

 

떡을 땀으로 포도주를 눈물로 접근하게 될 때 사실에 접속할 수있다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는 말법이 있고 피눈물로 표현하는 것인데 땀과 눈물이 실제체험하는 피와 살이다 그렇게 될 때 종교가 만든 의식은 와르르 무너지고 몸에서 성찬식 영성체가 체험되는 현장이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성찬식 영성체 현장은 겟세마네 기도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된다는 것으로 예수의 성찬식에 나도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영성체 성찬식 영성계를 입문하는 길을 전한다

 

겟세마네 기도는 값없이 돈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는 길이라고 내가 이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의 살과 피가 나의 살과 피와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세월이 서른다섯 해가 되고 있다 겟세마네기도라는 성찬식 영성체를 이끌어가는 원리를 내 몸이 기억하게 된 세월이라 본다

30년 온축하면 너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공부의 과정이 기본 삽 십 년은 되어야 씨알 하나 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 나도 이제 씨알은 하나 생긴 것이리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긴다에서 열심도 십계명으로 좌우 음양오행으로 풀리고 품는다가 나무 목으로 주가 메노라 거나 북두칠성이거나 칠성줄이거나 주인 주로 해석이 되어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심장 안의 작은 방에 있는 밀알 하나 영체가 될 씨알이 이제 짝인 성령을 만나 수정이 되어 영체로서 숨골에 착상하여 신태영아를 기루게 되어 숨골을 열고 윗세계로 태어나게 된 세월을 설명하게 되는 것. 육체는 자궁에서 착상하여 아래로 태어나고 영체는 숨골에 착상하여 울로 태어난다는 것이지

 

영의 소리 영성 영의 몸짓 영체 영의 빛결을 영성체라 한다. 육의 소리와 몸짓을 육성체라고 한다.

영육을 설명할 언어를 얻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십계를 받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외연에서는 한소식얻는다고 하는데 자기의 언어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십계가 두 돌판에 영이 지킬 오계를 상위 도덕률이라 하고 육이 다스릴 오계를 하위 도덕률이라 하여 좌우 심비에 새긴 하나님의 계명이라 하여 십계 또는 열심히라고 했다. 음양오행이라는 언어의 실제다 음은 영, 양은 육/ 생수오계와 성수 오계를 합하여 십천간이라고도 하는 것이고 십계명을 배우고 지키는 일이 음양오행을 알고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십계명을 십천간에 놓게 되면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는 의미도 새로워질 것이다

성서의 좌우심비에 새긴 십계명이 동양의 음양오행이라고 나는 설명하는 것이지 그리고 십계명을 담은 가슴골이 사주팔자를 심은 마음밭이라 하는 것이고 천부경에는 본심본태양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천국은 몸안에 있다고 내면에 있다고 하는 이런저런 말들이지만 결국은 핏집인 가슴에서 생명나무를 기루어 네 개의 강이 발원하도록 한다는 것이고 그 네 개의 강을 내 기둥이라 한 것이고 몸이라는 생명나무가 사지로 구성되고 그 중심에 십계가 기록되어있어서 나무 목이란 기호로 정한 것이라고

 

열십十에 사람인人을 더한 나무 목木이 생명나무의 원형이고 아담카드몬이라고 한다는 것. 그대와 내 몸이 생명나무인데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이 열심 즉 십계 음양오행의 구조를 알고 쓸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란 십계명이고 동양에선 십천간이고 우리말로는 열개의 마음 열심 십심이다

일심은 익숙하고 이심 삼심 사심 오심 육심 칠심 팔심 구심 십심은 낯선가?

한마음이라고 할 때 일심에서 십심까지를 다 풀어내어 품을 수 있는 마음이다 천심이라고 하는데 일심부터 십심까지의 벽을 다 헐어 막힘이 없는 큰마음이라는 것이지 걸림이 없는 마음 자유로운 마음이라 한다 사사무애라고 빈마음 큰 마음 벽이 없어 걸림이 없는 정죄의 잣대가 없는 문자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자리를 한마음 큰마음 하늘마음 빈마음... 가슴 음양오행을 운행시키는 원리는 불세례라고 한다

물세례는 밖에서 안으로 침참하였다가 나오는 의식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들어갔다가 삶으로 나오는 원리다

우리의 하루가 이 원리를 따른다 살았다 죽음(잠)을 통과하여 다시 삶 매일 물세례를 통과하고 있다는 인식이 몸에 기록이 되어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을 이해하게 되는 단계가 마당 쓸기라고 나는 설명한다

 

마당 쓸기나 발을 씻음이나 같은 것이다 그대의 마당은 매일 쓸어야 한다 발을 매일 씻듯이 이것이 훈련이다 자기와의 약속이다 발과 맺은 언약은 삼생을 오가는 것이고 피의 언약은 손과 손이 같이하여 꽃을 피우는 실천이어서 음양이라고 한다. 삼생을 같이하고 손은 음양오행을 풀어낸다 는 것이지 그대의 발은 춤추게 하고 그대의 손은 꽃피우게 하라는 것이지

 

마당엔 늘 쓸어야 할 무엇들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마당 쓸기를 나는 문자언어가 만드는 한계를 벗겨내는 것이라 설명한다 마당에 떨어지는 대나무그림자를 쓸어낸다고 하는데 문자언어는 본디 그림자인데 그것에 주목하게 되면 어느 날 그림자가 그대를 덮는다 그것이 선악과다고 본다. 너의 그림자 속에 내가 갇히는 것 그것이 어둠 속에 잠긴다이다 너의 문자지식에 내가 묻히는 것이 지옥이다는 것이지 너의 언어를 항상 비질해라

너의 언어는 마당에 드리우는 그림자니라 너의 언어에 갇히면 그대는 어둠이니라

 

외연에서 들어오는 것들을 쓸어내는 것이 물세례 마당청소 뜰에 물바다가 있고 그 물로 마당을 청소한다

물바다에는 늘 물이 채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 물세례를 하고자 하는데 물바다에 물이 없다면 청소는 못하는 것이고 마당 쓸기는 불가능하다 여자를 바다라고 하는데 남자는 바디라고 한다. 여자의 생식골을 곡신이라 하거나 보지라고 하는데 자기 발을 씻는 물을 채움 하는 곳이라 하여 말쿠트라고 왕국이라 한다 스스로의 발을 씻을 수 있는 사람이 왕이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고 하였는데 너 스스로 발을 씻는 자가 되어라는 가르침이다 홀로 기도하는 일이 발을 씻는 일인데 기도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깨끗이 하고 골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너의 발은 머리에 기름을 바름이고 옷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마당을 쓸기이고 그렇게 자기를 돌아보고 걸림이 없을 때 골방(숨골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이지 문자언어에 갇혀있다면 즉 어둠에 갇혀있다면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그것이 세족식이다 남의 그림자를 따라다니지 말라는 것 이전에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고 하는 말뜻이다 스승은 너를 가두는 이가 아니라 너의 빛을 스스로 발하게 하는 이다는 것

그래서 청출어람이라 했고 공부는 스승의 머리를 밟는 것이라 했다

 

세족식조차도 육체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으로 장사를 하지만 본디 세족식이란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을 두드려 물바다에 물을 채움 하는 자기 정화다 발바닥은 삼생을 걷는다. 그렇게 정보를 걷어와 두 손 가득 꽃으로 피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걸음은 꽃피움으로 나타나고 꽃 피움은 열매 맺음으로 나아간다 가슴에서 숨골로 올라가는 것이 열매를 맺음 과정이다. 새벽미명 한적한 곳에 가서 늘 기도했다는 예수의 하루출발이 마당 쓸기로 자기 정화로 물세례로 시작했다는 것이고 나도 예수의 이 마당 쓸기를 본을 삼아 매일 강 길을 걷는다

 

발은 삼생을 산다 그래서 걷는다는 것의 비밀을 풀게 되면 그래서 예수도 만행을 하고 붓다맨발만행(더운 인도니까) 하고 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삼았구나 하게 된다. 즉 걸으면서 떠든 것이 가르침이 아니라 같이 걷는 그 자체가 삼생을 같이하는 가르침인 것이고 세족식의 본질이라는 것. 나의 자기 정화 마당 쓸기가 새벽예배인 것이고 이 예배가 네댓 시간의 성소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시작인 것이지. 새벽에 나서서 내 예배가 끝나는 귀가까지의 여정을 나는 나만의 예배 산제사라고 생각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에게서 하루의 가르침을 얻는다

 

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의 겟세마네를 파고들다 보니 겟세마네 이전의 물세례 삼 년 공생애도 나만의 체험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니 나의 문제라는 것이지 내가 예수를 풀어가는 관점이 너와 같지 않은 것은 내가 나이기 때문이고 너는 너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생애에서 어디에 점을 찍고 예수를 파들어가는가의 출발자리

 

나는 겟세마네기도 성찬식 영성체를 출발자리로 해서 파고 있으니까 늘 겟세마네기도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 출발자리가 내 사주에서 경자다 경금자수로 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치게 하라

 

샘을 파려면 겟세마네기도원리를 써야 한다는 것 자수는 지하수다 지하수를 당겨 올려 쓰려면 샘을 파야하고 샘을 파는 방법을 나는 겟세마네기도로 선택한 것이고 내가 파보니 샘물이 터지니 너에게도 겟세마네를

권하지만 아무나 겟세마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것은 안다 일단 겟세마네로 출발을 해서 갈릴리 해변가에서 떡을 굽고 생선을 굽는 과정을 거쳐야 숨골 승천을 할 수 있음으로

 

어제 ‘나’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영어로 Na이고 훈민정음해례에 의하면 ‘ㄴ’은 ㄴ ㄷ ㅌ 인 여름 석 달에게 주어진 에너지에서 여름출발에너지로 팽창에너지다 신록이 우거진다고 하는 석삼극무진본에너지라고 보는데 지지에서는 사오미, 567석달로 화에너지라 한다 여름은 남주작 불꽃 열이니까

 

‘나’의 ‘ㅏ’는 모음이고 방향성이다 자음은 위치값이라고 했다 위치는 시간이고 방향은 공간이다 여름에너지가 바깥으로 펼쳐지는 것이 ‘나 Na’라는 문자언어 값이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결국은 언어에 숨겨진 계절에너지를 찾아내어야 풀어지는 수수께끼구나 알게 된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 문장 스스로라는 글자값을 풀어야 있다 없다 개념이 나온다. 스스로라는 이 글자는 한자와 한글이 같은 모양으로 그려지는데 한글은 한자 집 땅 위 ㅡ에 건물을 세운 ㅅ 모습을 발성으로 가져와 스(서 세움)라고 했다. 집亼은 땅 위에 세우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는 땅을 두 발로 딛고 선 몸집을 뜻한다 해석하였다 이족류로 섬에 성공한 몸집을 스스로라고 한다고 뭐 나만의 해석법이지

 

그리고 스스로를 선자 스승 스님 슨이(서니 써니 sunny 선이 선인 썬....) 이렇게 쓰임 된다는 것이지 그대는 두 발로 걷는 종이고 설 줄 아는 존재 다는 뜻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 하늘이 낳은 몸집 육체

그대의 몸이 없이 영이 있을 수 없다. 몸이 없는 ‘에너지’를 귀라고 하고 몸이 있는 에너지를 신이라 하는데 귀는 밖에 있고 신은 안에 있다. 밖의 귀가 안의 신과 공명이 일어나면 흔히 귀신 들렸다 고 하는데 귀는 안의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귀신 들였다고 한다 내가 들인 것이지 귀는 피가 없기 때문에 힘이 없기에 피를 가진 신의 허용 없이는 몸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귀와 신의 차이 밖에 있는 귀는 물을 타고 다니지만 몸의 신은 피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귀가 닿으면 섬찟 소름 삐쭉이라는 언어가 나오는 냉기 물기이다 신이 밖으로 나가면 바깥의 귀의 영역을 점령하게 됨으로 정신을 차린다고 한다

 

귀가 신과 공명하여 귀신이 되면 헛것을 보고 듣고... 하는 신경질 스트레스현상으로 나타난다 불안 두려움 공포가 생기고 그에 따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귀신 들렸다 고 하는 것이고 이렇게 귀신이 들림으로 나타나는 불안 두려움 공포란 감정을 밖으로 토해내는 것을 기(귀)를 토한다 하는데 밖으로 토하는 일을 정신 차린다고 한다 본정신으로 돌아온다고

바깥의 귀의 실체는 ‘이야기’다. 카더라라는 정보는 입을 타고 전해지고 그 입이 구신이라고 하듯이 입이 귀를 실어 나르는가 신을 토하는가의 쓰임에서 카더라를 쓰면 귀를 실어나르는 귀의 사령이 된다

그래서 남의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남의 말’이라는 것이 남에게 들은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일단 남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내 몸이 검증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건네는 것을 귀신 씐 말이라 한다는 것이지

 

귀의 속성은 몸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이어서 불안 공포 두려움이라는 즉 알지 못함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그대가 불안 공포 두려움이란 언어값을 풀어보면 기회비용의 다른 말이구나 알게 된다 즉 미지의 세계로 도전할 기회를 얻었구나 하면 귀신도 정신이 되는 즉 카르마가 해원이 되는 것이지

귀신을 정신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적군을 아군화하는 전쟁이라 한다

 

완전히 승리하는 전쟁은 적군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적군을 아군화하는 것이듯이 귀를 물리치는 것은 하수들이 하는 방책이지만 귀를 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고수들이 하는 원리다. 퇴마는 언제나 다시 입마의 기회가 되는 것이지 퇴마를 당하면 반작용이 반드시 생겨 일곱 배 악한 귀를 끌고 온다 성서에서 가르친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면 그 자리에 일곱배 악한 귀신을 데리고 온다는 것 퇴마는 악귀를 불러들이는 길을 터는 것이다 굿을 시작하면 점점 판이 커지는 것이듯이 귀를 퇴마 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정으로 변환을 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혜사성령이 하시는 사역이라고 한다

퇴마사와 성령사의 세계가 다른 것이고 나는 퇴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난리굿을 한다고 하는데 귀신굿도 난리지만 성령굿도 나타나는 현상은 귀신굿과 같다

춤추고 노래하고 울고 불고 귀는 풀지 못한 한을 산 몸에 닿아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고 정은 낳아야 하는 영을 낳고자 몸을 쓰는 것이다

 

귀는 한을 풀려고 하는데 한을 풀려고 하는 그 한이 나타나는 증상을 불안 공포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고 정은 영을 낳으려 하는데 그 증상을 해산하는 수고라고 하는 것이다

 

봉무동으로 가는 길에 불로다리아래서 춤을 훈련한다. 춤은 영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늬라고 이해하게 되면서 그간 춤에 대한 무지를 벗겨내면서 영가무도 라고 하는 세계에 접근하는 것이지 봉무동에서 종순 씨를 만나서 다리아래로 오면서 공부에 대한 이론을 설명한다

영체와 육체에 대한 것 그리고 손 여사님은 나오지 않으셔서 둘이 설음훈련에 몸짓훈련을 하면서 설음에서 한마당을 더 넓히면서 몸짓이 부드러워지고 힘이 더해진다는 것에서 춤동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어제 비타라는 앱을 깔고 음악 입히기를 하면서 종순 씨 춤공부 동영상을 찍어서 음악 붙이기를 하였다

자기의 몸동작을 찍어서 보고 또 보고 해야 자기의 영체를 인식하는 힘이 생긴다고 나 역시 금숙이에게서 그렇게 배움으로 종순 씨에게 전달하는 것이 되겠다

 

봉무동 가는 길에 수연이 만나 동영상 찍어 음악 담아 전송해 주었더니 다른 글엔 답이 없더구먼 바로 좋다고 답이 오더라. 종순 씨랑 소리공부를 주욱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이젠 영생을 챙기는 과정이다고 몸짓공부를 한다

내가 몸치였던 세월이 있으니 종순 씨를 보면서 반복이 만드는 힘이란 게 참 신비한 거라고 순설 후 소리라는 박자 비트를 스스로 토해가면서 춤사위를 내놓으면 몸이 기억하는 능력이 신비하다고 금방 금방 몸이 기억한다고

 

카발라철학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를 침춤이라 하는데 손뼉 침은 좌우가 만나 소리를 침이고 그 소리가 춤으로 이어진다 내 설명은 늘 행동과 같이 가는 것이라 지행일치다. 비타에 동영상을 놓고 음악을 입혀 종순 씨랑 같이 보고 전송했다 집에서 보고 또 보고 하여 훈련에 훈련을 해라 육체의 연습도 약간의 유익이 있는데 이것은 경건의 훈련이라 영육이 강건하여지는 원리라고

 

순설 후가 만드는 에너지 설음이 열려야 소리줄이 잡힌다는 것인데 종순 씨의 설음줄 열기에 들인 공력이 있다

손여사님은 소리부터 접근하는 게 아니라 춤으로 접근하자는 진단이 있어서 나부터 열심이고 종순 씨도 당연히 열심이지 육체는 쇠하는 때에 영체가 생하여 자라는 이런 기회를 만났으니 영체공부에 올인하자는 것 이게 나의 목적이기도 하지

영생을 알고 얻는 것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내 몸이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예수는 말씀이고 그리스도는 글 씀이라 잇기를 하고 그리스도는 춤추는 에너지다 설명한다

 

그대 행복한자인가? 춤추는가? 그대 자유로운 자인가? 춤추는가? 자유로움은 증명하는 방법이 춤이다 춤은 가벼움이다 말씀은 중력이고 힘이다

소리는 힘이고 적분이며 춤은 가벼움이고 미분이다

적분과 미분 이것을 응용하는 훈련 영성체훈련이다

이렇게 수업이 진행된다 그대는 먹물에서 벗어났는가? 즉 노래하며 춤추는가? 다윗이 법궤를 맞이하며 춤춘 것처럼 그대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그댄 춤춘다 안 추면 아직 그대의 법궤가 그대 안에 들어오지 않고 남의 카더라에 갇히어 있는 것이지

 

나의 법궤가 내 안에 들어올 때 그때는 춤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라는 에너지가 머리에 불을 놓는 기름을 바르는 춤추게 하는 자유에너지라 해석한다

 

그대 지식은 버리기 위한 것이다 얻어야 버릴 수 있기에 먼저 얻는다 그대가 얻은 지식이란 땅이 그대의 춤출 대지가 된다는 것이지 지식이 없는 춤은 발을 디딜 땅이 없는 뿌리 없는 귀신이라고 한다

 

춤은 시뮬레이션이다 기호가 되기 전의 과정이다 그대의 몸이 계보이고 이 계보에는 기호가 새겨져 있고 새김 된 기호를 풀어내는 에너지를 그리스도에너지 기름 부 음 받은 자 왕이 된 자만 당겨 쓸 수 있는 1%의 비밀이다

 

99%는 열려있다 1%는 내가 찾아야 하는 끈이다 생명줄 칠성줄 신줄 등등으로 말하는 겟세마네 성찬식이다

너의 구원을 내가 책임지려 하는 즉 분별하고 판단하여 걱정하는 것은 너의 우주에 대한 간섭이며 대상의 유일무이성을 부정하는 교만이다

 

즉 네가 구원을 추구하는지 추구한다면 영과 혼의 관계에서인지 영과 육의 관계에서인지 혼과 육의 관계인지부터 명시되어야 한다 즉 목적이 구원이라면 구원을 적용할 대상 목표도 알아야 한다 구원이라는 개념부터 확실하게 정의가 되어야 한다

 

구원이라는 개념을 나는 아홉 개의 동그라미 또는 아홉개의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아홉개의 동그라미에서 동그라미를 우물# 우물 정 이라고 설명하면 그 우물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고 하는 것이 된다고 구원은 구천 아홉개의 샘이 된다. 이삭의 우물은 브엘세바라고 했는데 일곱 우물이라고 하더라 내가 일곱 우물을 북두칠성 몸에서 경추 칠 륜이라 설명하는데 구천이 된다면 좌보우필이라고 하는 정보가 더해질 때라고 한다 구성령이라고도 하지

 

구천을 떠돈다고 할 때 샘 천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는지? 일천에서 구천까지 자기가 판 샘이 어디까지인지 몇 개인지를 헤아리는 것을 떠돈다고 하는 것이고 구천을 파서 그 샘이 한 개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아홉 개의 마음을 하나씩 클리어 하여 아홉개의 벽을 헐어내는 것이 구원이기도 하다고 구원의 개념을 그대가 세워야 한다 예수 믿어 구원이라고 하는 말을 앵무새 하지 말고 예수 믿음 구원 이 세 낱말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구원은 갇힘에서 풀림이고 모름에서 앎이고 막힘에서 뚫림이고 없음에서 있음이고 있음에서 없음이고... 서로 상반되는 현장이 주어진다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할까요?라고 하는데 저마다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부터 마주해야 한다 잘 먹고 잘살려면 그 원리를 배워야 한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려면 그 원리를 익히고 실천해야 한다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지식을 배워야 하듯이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방법이 있고 효율적인 방법을 배워서 실천하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요즘 몸짓을 공부하는데 몸짓공부를 하는 목적은 영의 글 씀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아름다운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훈련이다 내가 나의 영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라는 깨달음에서 시도하는 훈련이라는 것이지

내 개념이기 때문에 내가 훈련하여 내 영의 글 씀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듯이 몸짓에 대한 생각이 없이 살던 시절에서 내 영성이 이젠 영체로 외연화되는 성장으로 나타나는 것이 몸짓공부라는 것이고 영의 글쓰기구나 알게 되니 먹글을 두드리는 훈련이 된 나로서 빛글을 휘갈기는 것을 도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다

먹글에 빛글이 있구나 아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빛글을 쓰는 도전은 또 얼마나 신나는가?

 

사람은 자기 외엔 구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와 같은 존재는 자신 외엔 없기때문이다 즉 노래하고 춤추는 일은 자기외엔 할 수 없는 체험이다 내가 너와 같은 책을 보고 같은 곳에 참석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더라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공유할 때 진정한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어제 봉무동 가는 길에 다리아래서 글쓰기를 하고 불로천 건너 수연이 만나 수연이 글쓰기동작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동영상으로 자기의 움직임을 찍어서 마주해 보는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 자기 자신 알기 공부인가를 설명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은 내 노력만큼인데 나라는 이 개념은 말과 글 즉 소리와 움직임으로 시작하는 것이어서 노래와 춤을 마주하는 공부가 자기 자신을 아는 출발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지나온 공부를 보면 먼저 말을 만드는 소리로 시작했고 소리통을 이제 뚫었으니 그 소리통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 몸이 어떻게 풀이되는가 풀어지는가 의 공부라고 무거우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춤바람이라고 하는데 줄기는 휘날리지 않으나 가지와 잎은 바람에 휘날리듯이 소리는 줄기라면 춤은 가지나 잎이 된다는 것이지

 

서른다섯 해를 공부하다 올해 팔월 팔팔한 달에 만나게 된 춤의 개념이다 영이 글을 쓰는 것이 춤추기로 나타나고 영이 쓰는 글은 우주에 동시중계되는 것이라고 빛결이라는 이 이름이 빛은 소리이고 결은 춤이라는 것이라 우주최강의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빛결이라는 낱말을 내가 어디까지 부릴 수 있는지는 내 도전이고 훈련이고 의지일 터

춤에너지가 꿈으로 변환된다는 것 영이 글을 쓰는 것이 꿈으로 기록된다는 것이고 그 기록을 보고 뇌파는 기억회로를 가동해서 반복되는 정보를 ‘결’로 저장하게 되는 것이고 이 과정을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거나 하루 몸이 쓴 글을 꿈으로 불러내어 손익계산을 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로 장부에 올리게 된다 반복되는 꿈이 있고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이 있다 꿈은 해아래서 무엇을 반복하였는가에 따라 나타나는 그림이다 익숙한 것은 꾸며지지 않는다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은 뇌파가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뇌파는 새로운 몸짓을 해석하려고 하게 되고 꿈으로 기록한다는 것이다

 

꿈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너지가 업데이트되었다는 것이고 그 에너지를 업데이트하는 행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꿈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꿈이 영의 일기장이어서 영이 낮에 한 행동을 알고자 하여 서다

몸은 일을 하고 일을 하는 그 일에서 영과 관련된 에너지가 가동이 되면 꿈으로 쌓게 된다는 것 육신의 일에서 영혼의 에너지가 가동되면 꿈으로 쌓인다 마일리지 쌓이듯

 

영이나 혼이라는 말에 그대가 부여하는 개념은? 영혼이란 이 보편적인 언어에는 선악이 없는데 악령이 되는지 성령이 되는지는 그대의 의식이 정한다

 

의식을 혼이라고 하는데 혼을 불이라고 한다 혼불이라고 하는데 영의 상태를 밝히는 도구여서 다

영은 ‘물’을 딛고 있어서 신경이라 하고 육은‘피’를 딛고 있어서 혈맥이라고 하는데 영과 육의 상태를 인식하는 체계를 ‘혼’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은 물이고 육은 피다 혼은? 영과 육을 하나로 묶는 끈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끈기’라고 하는 낱말은 영이나 육에 쓰는 것이 아니라 ‘혼’을 설명할 때 쓰는 언어다

 

영은 숨이고 몸은 움직임이다 숨과 움직임은 언어가 없다 그대의 몸이 말없이 행동할 때 그것을 영육이 하나 된 상태라고 한다 영과 움직임이 분리되는 상황은 숨이 소리를 거쳐 말이 될 때와 움직임이 문자로 기록되는 상형문자가 될 때이다 너와 내가 말이 없이 움직일 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업식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너와 내가 부딪히게 되는 현장이 생기면 그 현장에 따른 언어가 오가게 되면서 쌓임이라는 것이 생기기도 하고 쌓임이 없기도 하다 너와 나의 말과 행동에서 무엇인가 쌓임이 생기는 것을 중력이라고 하는데 무게가 있기에 쌓이게 되는 것이고 쌓임의 반복이 어떤 감정으로 나타나는가 어떤 논리로 해석되는가에 따라 감정적인 에너지체 라거니 이성적인 에너지체라고 분석한다

 

그대의 생각이나 마음은 말투와 몸짓으로 나타난다 그대의 감정은 피에서 만드는 꽃피움임으로 숨길 수 없는 것인데 대부분 착각하는 것이 감정을 잘 숨기고 참고 누르고 억제하고 있다는 망상이다 감정은 피에서 생성하는 에너지여서 담아 둘 수 있는 임계치가 있는데 그 한계치를 넘어서면 폭발한다고 한다

이성회로가 가동되면 감정에너지를 분석하여 쌓기보다 풀기를 조언한다 쌓으면 무거워지니 무거워지면 병이 되니 풀자 풀고 살자라고 하는데 이것을 이성적인 조언이라 하는데 이 조언엔 쌓지 않고 풀려면 어떻게?라는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감정이 쌓임에 대하여 이성은 쌓지 말고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쌓이는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감정은 감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지 이성은 제안은 하지만 실행할 수 있는 힘은 없다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은 감정으로 하는데 감정은 감정으로 푼다는 이 원리를 나는 겟세마네기도라고 설명한다 땀이 변하여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었다 땀은 물로 이성영역이다 그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었다는 것이 이성의 가이드를 따라 몸(땅)에 쌓은 피(감정)를 짜낸다는 것이지

그대가 쌓인 감정을 이성회로로 이해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은 할 수 있다 착각은 자유니까 그래서 스스로 감정을 잘 풀었다 상상하고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그대의 감정이 풀어졌는가 그대로인가는 같은 현장을 만나게 되면 드러난다

 

일상에서 내 감정을 들끓게 하는 현장을 마주하였을 때 그때 그대는 그대의 감정이 이성적인 설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구나 알게 된다는 것이지 매번 똑같은 일을 놓고 감정적인 반응을 한다면 그대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이성회로를 다루는 것과 감정회로를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다 이성회로는 절대로 혼자의 세계이고 타인이 간섭하지 못하는 세계지만 감정회로는 나와 너라는 음양이 만들어내는 피의세계임으로 관계에서 풀려야 하는 정보다 감정의 쌓임과 풀림은 이성으로 조언은 하지만 실천은 스스로의 감정체계를 마주하여 감정의 실체와 드러나는 양상을 하나하나 풀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은 오온이 공함이지만 감정은 오온이 실함이다 공한 이성을 채우려 하는 것이고 실한 감정을 비우려 하는 것이 음양오행원리 다는 것

너와 내가 같다는 말을 할 때는 같은 원리로 오고 가는 생명체라는 것에서이다 즉 같은 원리로 태어나고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에서 너와 나는 하나이지 그 사이 즉 태어나서 돌아가는 그 과정에서 이성을 채우고 감정을 비우는 크기와 실천은 저마다 고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지 너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대는 나와 네가 하나다는 말을 할 때 이성이나 감정에 쓰는 말이 아니라 몸의 원리에 쓰는 말이구나 알아채거라 그대와 나의 몸이 나타나는 원리는 하나다는 것 그래서 몸원리를 놓고 이성채움과 감정비움의 음양을 공부하는 것이지

이 가름이 분명해야 그대를 속이지 않는다 즉 너를 내가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너는 너의 고유성을 발휘하면서 과정을 걷고 있고 나는 나의 개별성을 찾아내며 길을 간다 너는 너의 이성회로나 감정회로를 경영하는데 나의 경영법과 다르다고 너를 정죄하는 것은 무지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지 부부도 남이고 자식도 남이다는 이 단순한 명제를 인식하는 것에서 예수의 길 즉 감정회로 비우기 원리가 시작된다 내가 파악한 예수는 이성회로를 가르친 에너지가 아니라 감정비움을 몸소 실천한 에너지다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난다는 말이 쌓인 감정회로가 토해진다 비워진다 풀어진다는 말이라는 것이지 이성은 채워야 하고 감정은 비워야 한다 이성은 가벼운 것이라 잡아야 하고 감정은 무거운 것이라 비워야 한다 음양오행은 이성과 감정원리다

일가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라는 말은 전습된 세뇌된 교육된 모든 정보를 벗어나서 그 정보의 실체를 마주해 보라는 것이다 즉 이성회로를 가동해서 전습된 정보값이 채움 되어도 좋은 것이지를 알아야 하고 내 안에서 발출 하려는 감정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 이성정보는 외연 물에 근원이 있다 감정정보는 내면 피에 원인이 있다 그래서 이성정보는 들으면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감정정보는 흘려보내야 하는 것도 쌓게 된다 감정은 피에서 만드는 것이다 감정자산이라고 하는데 이 감정을 활용하게 되는 훈련을 감정토하기 감정 드러내기라고 한다 그대를 병들게 하는 원인은 99% 피에 있다고 하더라 즉 감정 비우기를 훈련하지 않음에서 생기는 감정축적 카르마가 만드는 업마 업보 업화 등등 감정이 쌓이면 몸이 무겁다 아프다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이 노래하고 춤추기인 것이지 쌓인 것을 비우는 훈련이 명상인데 명상은 노래하고 춤추는 열정이라는 것

나는 늘 감정비우기를 한다 쌓아야 하는 논리와 비워야 하는 심리의 기울기가 평평하도록 훈련하는 일이 새벽 걷기에서 내가 나를 다루는 예배다 그대가 그대의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방법을 하나 잡아야 한다 나는 겟세마네 소리선이라는 감정 비우기 원리를 실천한다 그리고 그대에게 권한다 내가 실험해 본 결과 나만이 아니라 같이한 이도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알기에 값없이 돈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한 말대로 겟세마네 소리선을 전한다 물론 이 방법은 감정다룸원리이기 때문에 일대일 현장공부로 진행된다는 것이지 일가라는 바운더리안에 친척이라는 규율이 있고 친척이라는 그라운드 안에 아비의 집이라는 언어가 있다 그대가 적셔진 시공간이 어떤 곳인지는 그곳을 벗어나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지 당연하지 않나?

나는 3대째 내림한 일가의 가치관 기독교와 친척인 인간관계 그리고 아비라는 유전자를 객관화하는데 서른다섯 해를 투자했다 그래서 내 일가였던 종교울타리는 헐리었고 친척이던 종교의식들의 의미들도 사라졌고 아비인 나만의 어떤 잣대도 이젠 멀어졌다 너를 구원하겠다는 오만도 내가 너에게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교만도 나만 무엇인가 특별하다는 에고도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너는 너의 고유의지로 자기를 살고 나는 나의 의지로 나를 산다 내가 볼 때 네가 나와 달라보이듯이 너가 나를 볼 때 이상해 보인다 내가 춤추는 것을 좋아하니 나는 이것을 선이라 하지만 너는 나를 미친것이라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말했다

처음 봤을 때 미친 여자 다시 봤을 때 신들린 여자 그리고 더 자세하게 봤을 때 멋진 여자 그 과정을 다 봤을 때 지금은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세월을 주욱 거치면서 내린 눈인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성장해 온 과정에 내가 나에게 내린 정의와 같아서 최고의 찬사라 감사하다 했다 내가 나를 산다는 것은 너의 가치잣대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내가 너를 재는 잣대로 나를 네가 재고 있다는 반작용을 기억해라 부부나 자녀를 인정한다는 것 즉 독립체로 인식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더구나 영혼문제를 걸면 더 어렵다 내 영혼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마주하지 않으면 자기의 지식으로 너의 영혼을 재단하고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혹은 주변인들을 보던 눈을 버리게 되었다 내 영혼을 구원하기도 일생이 모자랄 판에 타인의 영혼에 대하여 잣대질을 한다는 것이 십계명 1계를 거슬리는 것 나라는 존재값을 이해하고 마주하기 전에 너의 영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이다

너는 네 꼬락서니를 바로 아는 게 중요하지 타인의 영혼(생명)에 간섭하지 마라 생명은 하늘의 소속이니까 이다 내가 너에게 간섭하려는 것은 내 감정이 쌓여있어서 감정 비우기를 너를 가르침으로 하려는 것인데 그것만큼 오만한 발상은 없다 내 감정이 쌓였으면 내가 비울일이다 너를 내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내 감정이 쌓여있고 그 감정은 불신이라는 에너지여서이다 너를 내가 구원하겠다는 그런 발상은 감정회로를 마주한 체험이 없을 때 나오는 이성회로의 과부하다 이성회로는 자유로운 영을 추구하기 때문에 타인의 구원엔 관심이 없다 이성회로에 이상이 생기면 너를 구원이라는 망상이 가동한다 너를 내가 구원한다는 이런 망상은 감정 쌓임이 만든 불협화음이다 내 감정을 털어내자는 몸의 소리이건만 너를 대상으로 하려는 오류가 발생하고 그 오류가 인간관계를 피곤하게 한다

감정회로는 새벽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혼자 비우기를 하고 내가 비우기가 되는 원리를 알면 그 원리를 너에게 마중물로 제공하는 것 그것이 너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이다 마중물을 붓고 비우기 샘물 퍼기를 같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 보면 안다 몸이라는 살아있는 성전을 경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대여 남을 가르쳐려거든 감정비움법을 가르치라 그게 복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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