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생존, 생식, 생명 진화 3단계

청향고은 2023. 7. 10. 17:16

 

어제 글을 받아 두드리고 있는데 경자가 톡을 했다

의성 친구가 마늘농사를 해서 나눠줬다고 '마늘 까자'라고

일전에 마늘 좀 나눔 할게 했던 말이 있기도 했는데 농막 갔다가 왔다고 하던데

경자는 경자의 일을 하고 왔는데 나는 내 작업을 시작한지라

그래서 지금 글 두드리고 있다고 했다.

 

글줄이 잡힐 때 그때를 놓치면 신탁 紳擢(큰 띠, 뽑을 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

글문도사님이 가동하시면 즉 우주의 허파가 만들어내는 형체가 생기면 생각주머니에 받아야 한다

채널링이다 리딩이다 예언이다 등등으로 말하는 세계가 있는데 나는 내가 모르던 정보가

글을 두드릴 때 이해되는 글이 나오면 그것을 다섯 마디 예언이라 한다. 일만마다 방언이 우주의 허파소리라면 다섯마디 예언이 우주의 염통에서 꿰어내는 생각패턴이라는 것이지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면서 배우고 글을 두드리는 자는 글을 두드리면서 알아차린다

어떤 일이든 현장이 있을 때 그 현장을 통해서 정보가 생성되고 자라는 것이지 대가리로만은 안된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우주의 염통이 가동되어서 글줄이 줄줄 이어지면

나로 서프라이즈 하게 하기 때문에 우주의 염통 생각주머니는 우주의 형체 허파의 풀무질 몸짓에서

무늬 紋를 만들기 때문에 어제의 풀무질이 오늘의 생각주머니에 담아준 구슬謳(노래할 구)이 어떤 것인가

글줄로 꿰는 작업이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주의 바람이 만들어내는 빛결을 인간의 뇌파에서 공명한 소리결, 몸짓을 그려 글줄로 잡아내는

작업을 글작업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비물질 우주허파, 바람몸매와 염통, 결기를

물질 폐와 심장에 적셔서 그림글자로 손에서 수놓는 일이라고

골질을 한다는 것이 그물질을 한다는 것이고 천라지망, 우주에 그물을 던지고 땅에 벼리를 놓는 것이라고

그대와 내 앞에 온 정보는 글질을 한 이들의 사람 낚는 어부의 수고를 딛고 있는 것이다

이 수고를 하도낙서라고 하거나 갑골문이라 하거나... 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제 글을 받아 두드리고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내 생각주머니로 옮기기를 하면서 여기서 순 詢(물을 순)을 내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리하기도 하고 

 

늘 말하지만 내 글(기억자아)을 반복해서 보는 것(경험자아)은 ‘나(배경자아)’다

그대에겐 내 글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렵고 그리고 알 수 없는 외계글이기도 할 것이다

 

기억자아가 경험자아와 서로 의기투합하여 배경자아화한 정보를 글로 틀을 지어주는 일을

보혜사 성령이 해주시는데 그것을 나는 신탁이다 신의 음성이다 내면의 소리다

새로운 해석이다 등등으로 표현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글이며 언어이지 우주는 글과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다. 우주는 글과 언어로 그려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너와 내가 소통하기 위하여

글이나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우주와 소통하고자 한다면 우주의 허파와 우주의 염통이 되면 된다

우주의 허파와 염통을 주파수와 파동, 바람과 물. 또는 수면 위를 운행하는 바람소리라고 한다.

 

길고 긴 글을 두드리고 나서 경자에게 마늘 다 깠냐? 했더니 시작도 안 했다고

마늘 까자고 오라 해서 캔디 챙겨서 갔다. 맨발로 가려다 덧버선을 신고 갔다. 

지윤이랑 지효에게 사랑을... 

 

일층 지효네에서 이층 경자네로 타인의 집을 드난 다는 것은 신중한 일이다

그런데 경자가 마늘 까자 고해서 가벼움으로 간 것

마늘 까기

나름대로 글을 만들어내고 마늘 까기라 마늘과 쑥과 연동을 하면서 속으로 오홋 오늘 글이 마늘에너지렸다

그렇게 현장과 연결하여 자가 채점을 하는 것 

 

경자네에서 보낸 시간

마늘 까고 호박닢 다듬고 머굿대 껍질 벗기고 부추 다듬고...

그렇게 손은 부지런하고 입도 부지런하고 호박잎 전에 부추전에 감자전에 수박에 커피에 꿀마늘에.... 정성의 에너지들

 

나야 천상백수 덜렁꾼인데 경자는 찬찬한 살림꾼

경자의 삶이 수놓아지는 집의 흐름에 경자의 손길이 가득하더라 뜨개질로 장식한 커튼들

도자기를 만들어 장식한 것들 그리고 그린 그림들

 

경자가 전 기독교인이었다는 정보에 오호!!! 내 글의 밑밭에는 성경이 있어서 성서지식에 없으면 이해곤란한 글인데 내 글을 관심으로 읽어주는 것만으로 나는 감사하다 생각하는데 경자의 저변에 성서라는

기반이 있구나 하는 것에서 그래 그러하였구나 하는.. 넉넉한 추수감사 물들을 챙겨서 돌아와 챙겨 넣고 글을 다시 한번 보고..

 

오후 후프 돌리기를 나갔다. 흐린 날씨 습도가 높고 바람은 가늘게 그래서 더움

경자와 나눈 이야기들을 후프를 돌리며 되새겨보았다.

 

경자와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서로 비춤 하는 것일까

경자에게서 내가 느끼는 것은 온유함이거나 따뜻한 배려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전에 관휴 寬休문명하 선생님이 공부의 정점엔 관휴가 있다고 그렇게 자기의 호를 설명하시었는데

그때 온유함이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덕이구나 했던 기억

경자가 인식하는 내가 있고 내가 느끼는 경자가 있는데 나는 경자를 사주라는 안경으로 보는 셈이지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도 사주라는 안경을 통해 객관화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나는 경자의 계유시주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인데 내가 을유여서

계癸와 을乙이 어떤 인연으로 풀어지나 보려는 것이겠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요즘 내가 나에게 참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다는 생각

너그럽다는 것은 넓다는 것 넓어야 놀 수 있는 품이 자유로울 것이고

내가 너그러울 때 너를 받아주는 크기도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너그럽기 너그러울 관

볼 관이 아니라 너그러울 관이 도달해야 할 품격이겠다 

 

김교수의 언어의 기억자아는 무거운 것(상처)을 붙들고 경험자아는 이미지(사건)를 저장하는데

기억과 경험값을 계산해서 떨고 놓셈하여 제로값이 되게 하는 것이 배경자아 즉 자기와의

화해라고 자기 비우기 텅 빔 영원 무소유 자유라 하게 되는 것이리라 나는 다시 풀어보네

언어가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숨을 크게 들이고 낼 때 소리를 태우고 소리를 태울 때

팔을 쓰라가 되는 것이라고

 

하루가 많은 구슬을 낳았으면 꿈에 어떤 상 image로 무늬를 만들까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든다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는 해석도 되는데 눈을 뜨면 다 사라진다 다 풀어진 것이겠지 

 

새벽길을 나서면서 어제 원호랑 약속을 지키려고 사탕통을 가방에 담았다 쌍둥이들도 한통씩

신단으로 가는 길에 아양달빛에서 사진도 한컷 찍고 그리고 해맏이 언덕을 올라가는데 우영자여사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인사를 건네왔다. 걸어야 아픔이 덜하다고 하신다 양지팡이 짚으시고..

나에게 오랜만에 오신 거 같다 해서 그렇다고 저쪽으로 댕긴다고 한참 오지 않았다고

사탕공양을 하고 요즘 내가 전파하고 있는 순설 후 똑딱 액설런트 같이 한다

우영자 액설런트라는 이 액설런트가 오장육부에 얼마나 기운을 채우는지 언어가 엄청 쌔다고  

 

정말 고맙다 하시는데 제가 더 감사하지요 하고 헤어져 길을 따라 가는데 앞에 가시는 분  

뒷걸음으로 가시니 나랑 얼굴이 마주쳐서 인사를 하고 사탕 드렸더니 하나만 하시길래

셋은 드시라고 그리고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 동네에서도 나는 유명인사(? 이름 묻고 액설런트 하고 하니까)로 내 목소리가 나면 다들 반가워하신다

성함은? 김금숙이라고 봉무동에도 김금숙 님이 계시는데 ㅎㅎ  

 

신단을 같이 돌면서 신단구조와 그림에 대한 설명을 했더니

그런 이야기가 있는 줄 모르고 돌기만 했다고 여사님의 마흔셋부터 병마와 겨루며 온

세월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로 여섯 시까지 같이 함 사탕 자기 입에 딱 맞다고 하셔서

그럼 세 개 더 드시라고 사탕이름도 가르쳐 달래서 칼파니네요 했다. 독일캔디 

 

해가 구름 속에서 잠깐 얼굴을 내밀어 인사를 하고 나니 바로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더라

오늘 해맏이로 오면서 하늘 보고 해오름은 볼까나 했는데 잠시 드러내고 숨는 해를 같이 보고

나는 절 한번 하고 여사님은 열 바퀴 돌고 가시고 나는 후프 돌리는 곳으로 가서 후프 돌리기를 하고 낙단루로 갔다  

 

낙단루에서 노래 한 자락 뽑고 한 바퀴 돌고 망우당의 배롱꽃구경도 하고 한컷 찍고

테크에서 자기 확언 세 번 하고 정미에게 톡을 보냈다 

에어로빅 나오냐 하절기에는 몇 시에 하냐 나온다 8시 10분이라는 답을 듣고 

 

해맞이 다리를 건너오는 길에 여사님들에게 사탕공양을 하려니 다들 사양

이가 아파서 못 먹는다 하시면서 늙은이들 줄라고 그리 넣고 댕기나 하셔서 나이 드신 분들

입이 마를 때 사탕 하나 녹이시면 침이 생기니까 그래서 넣고 다닌다 했더니

정말 이쁘다고 좋은 생각을 하네 칭찬해 주시더라

 

우리 동네 들어오는 길,

정미랑 정숙 정연 만나 원호와 쌍둥이에게 전하라 사탕 건네고 오는 길에 최태자언니랑

일행을 만남 인사하고 사탕드실랴 했더니 사양 일행과 걷기 간다고 내려가시고

나는 벤치에 앉아 아침글을 받으려 폰을 열었는데 태자언니가 다시 와서 일행은 집에 갔고

자기는 또 걸어야 하는데 나에게 같이 걷자 해서 그러자 하고 걸으면서

설근육 승모근 편도체에 대한 설명과 순설 후 팔 돌리기 같이하기 하고 가는데

동희언니 만남 몰라봤더라. 누구신지...라고 내 기억력을 다시 점검하게 되더라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우리가 내려가고 동희언니는 올라오다 스치는데 오늘 사탕공양

남은 거 언니 몫이다 하고 사탕통 건네고 가는데 지정애 님도 만남

지정애 님과 만나면 둘이 서로 잘 맞아 쿵작거리고 걷는다

내가 워낙 품바족이라 어디를 가도 신나는 에너지 그렇게 지나가는 이들이 나와 지여사님의

노랫가락 춤사위에 웃음을 지으시는 것

 

남을 웃게 하는 것이 복을 짓는 일이라 노래시비에서 유턴하는데 꼭짓점까지 오지 않고

유턴하시길래 여기까지 찍고 돌아가야지 몇 걸음 된다고 거기서 도시냐

그렇게 반환점 돌아서 올라가는데 유옥자여사님과 만나는데 유여사님도 풍류족이시다

나이가 들면 다들 그러하지만 말이지 

 

앞에서 동희언니 오길래 나는 동희언니랑 갑니다 하고 여사님들과 헤어져 동희언니랑

길을 맞춰서 동구청 쪽으로 가게 되었다. 일전에 비오 신 날 같이 걸었는데 오늘도 비가 쪼끔 오시더라 

 

내가 소리를 가르치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자들 화병을 고치려면 소리를 내질러야 하고 소리를 내지르게 하려면

선창 하는 이의 소리를 딛기 때문에 내 소리를 기루어야 하고

화기가 쌓여있는 정도에 따라 풀어내어야 하는 소리강도가 있고

화병레벨이 깊고 무거울수록 그것을 이끌어내려다보니 점점 내 소리도 커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동 내 속의 울화도 토하게 되기도 하고 그 재미에 점점 소리에 들어가게 되고

소리줄을 딛고 온몸을 돌아 구석구석 노폐물들 냉기들들을 퍼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치유와 강해지는 이치와 활달함의 에너지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

 

여자들 화기가 위로 터져 내보내지 못하면 그것이 냉기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간다고

그래서 다리가 아프고 무겁고 무릎이 아프고 자궁에 문제가 생기고 허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렇게 숨줄이 점점 짧아져 숨이 가파지고

숨이 코끝에 맺혔다가 숨이 멎는데 그 숨줄을 짧게 하는 냉기를 털어내는 원리를 가르치려면

반드시 소리울림 명에 그 소리에 따르는 몸짓인 상 명상 鳴像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화통 몇 개나 삶았냐 하곤 하는데 적어도 열두 대는 삶은 거라고 한다고 오늘도 낙단루에서 몇 대 삶고 왔다고

 

명상이라고 할 때 명冥은 태안에서 아기가 머리를 밀고 나오는 순간에 머리를 받아내는 모습을 그린 거라 했다. 그리고 상 狀은 아기를 낳는 산모의 몸짓이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명상은 고래고래 악을 쓰고 온갖 몸짓을 다하는 것이다. 고요하고 정적으로 고상하게 그리 세뇌되었다면 버리라 그 생각

 

산고의 고통을 겪는 산모의 소리와 몸짓을 명상이라 하는 것이니 새로 익혀라 익히는 것은 몸으로 소리로 해야 한다. 내가 만나 소리와 팔춤을 가르치는 대상은 출산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자기를 마주하려는 시도를 하는 이다

 

아무나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에너지가 태어날 만큼 크기가 자라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을 때 그 절망을 출산하고자 하는 이다. 내가 소리를 가르치려고 하는 대상은 저 깊은 절망 속에서 그  절망을 낳아버리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모르는 사이에 자란 절망을 낳아버리고 그 빈자리에 생명을 기루 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는 이라는 것이지 

 

길을 다니며 그런 산모가 있는지 진단을 하는 방법이 사탕공양이라는 리트머스진단지를 통하여 너의 상태를 보는 것이지. 내가 절망을 낳아버리고 그 빈자리에 생명을 낳아 기루고자 겟세마네라는 원리 명상법을 잡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나만큼 절망하는 이가 있으면 내가 구원받은 이 명상법을 나눔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죽음이란 육의 숨이 멎는 것이기도 하지만 살아갈 목적이나 가치를 세우지 못할 때이기도 하고 내 존재의 위치와 할 일을 알 수 없을 때이기도 하다. 내 존재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그것이 절망의 무게가 된다는 것이지 

 

절망이 아홉 달을 자라면 자살충동이 생긴다 절망이 자라면 결과가 자살이라는 것이니까

자살충동이 일어나면 반대급부로 생명의지가 역시 작동한다. 자살도 아홉 달 차야 하는 것이지  

 

자살이 살자가 되듯이 그렇게 절망의 해산하고자 할 때 오는 자살충동을 예수가 극복한 것이 겟세마네기도로 절망을 낳고 그 자리에 생명을 채우는 것이었다.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돌무덤을 연다 죽음에서 부활한다.. 등등의 메타포들은 같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대 안에서 자란 절망을 비우고 그 자리에 생명을 기루는 것.. 그것이 죽음이고 부활이라고.. 그것 외에는 그대나 내가 체험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죽어야 산다고 하는 이 말이..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음에 나를 내놓게 되면

살 길이 열린다는 것. 이 문장을 그대의 체험으로 그리고 일상현장에서 마주하지 못하면

그대는 생존과 생식영역에 있는 것이지 생명현장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이고 그저 동물로 분류가 될 뿐이다.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절망을 마주하여야 절망을 생명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다 절망은 나로선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다는 항복이다. 예수가 항복을 한 것처럼 나도 항복했다 항복이 명상이고 명상이 출산현장이다고 나는 설명한다

내가 나에게 절망하게 되면 너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일은 세상에서 사형수가 되는 일이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절망을 생명으로 바꾸고자 할 때 내 안에서 자란 절망을 생명을 사는 값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원리

죽음을 내놓아야 생명을 산다. 예수의 복음은 절망을 잉태하여 아홉 달을 자라 출산해야 하는 자살충동자에게 나눔 되는 것이지 그 외에는 상관이 없다

죽음이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에게 생명이 수호령으로 가동한다는 것이고 오순절성령도 일백이 십 문도가 전혀 기도에 힘썼을 때 기도가 극에 달했을 때 임한 것이다

 

그대는 얼마나 절망하였나 절망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이 명상인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된다는 체험이 될 때 절망을 생명을 사는 값으로 지불한 것이 된다 

 

내가 찾는 대상은 적당한 절망 적당한 죄 인식 적당한 가치를 말하는 이는 아니다

나만큼 절망하고 나만큼 붉게 울음을 울 수 있는 심령이 가난한 자다

 

빛결과 같이 겟세마네로 길을 삼을 때 돌아보는 세월이지만

둘 다 길도 없고 빛도 없고 그저 절망의 무게뿐이어서 오직 할 수 있는 것이 명상이었다

 

하늘 향해 두 팔을 들고 고함을 질러대던 것 그렇게 고함근력이 생기었고

그 근육이 절망을 생명으로 바꾸는 길이 되었고 그렇게 오늘도 내가 절망을 생명으로 바꾼 방법을 나누고자 길을 다니며 사탕을 드림하며 이야기를 하고 절망자를 찾으려 하는 것이지

아무도 체험현장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생명을 마주하여 알아가는 길을 간다는 것이고

누군가 나와 같이 생존과 생식에 절망하여 그다음의 여정을 찾고 있는 이가 있다면 손을 내밀려고 한다는 것이지. 생존에서 생식으로 생식에서 생명으로 우주는 펼쳐진다는 것이지. 그대가 생명에 대하여 의문한다면

나에게 손을 내밀어라. 내가 그대의 손을 잡아보고 절망정도를 달아보리라

 

절망은 무지의 다른 이름이다. 모름이 죽음이듯이 죽음이 절망이지 

나는 상대방에 대하여 묻지 않는다 이름과 사주는 묻지만 그 외의 사생활이나 그런 것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름 석자 보고 얼굴 보고 목소리 들어보고 나면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줄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위치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람에게 묻지 않고 겟세마네 명상을 통해 신탁을 받는 선택을 한다. 

 

내가 의문하고 알고 싶은 대상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람에게 묻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의문도 없다. 생존과 생식정보는 나에게는 영양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존과 생식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 생명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가 없기에 나는

생명을 공부하기에 기도하는 길을 선택하고 생명을 추구한 선각들의 에너지파동에 접속하여 정보를 얻어오는 것이지 너를 궁금해하는 나를 궁금해하라 이게 나의 공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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