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분수효과噴水效果

청향고은 2023. 7. 1. 12:21

 

분수효과噴水效果

 

분수 효과(trickle-up effect, bottom-up effect)는 분수에서 물이 아래로부터 위로 솟구치는 것.

 

지상에서 허공으로 분수효과, 허공에서 다시 지상으로, 낙수효과 이 과정이 불가에서 마지막설법이라 하는 법화경의 핵심이다. 예수의 부활 후 승천(휴거, 분수효과)과 재림(오순절성령, 낙수효과)이 같은 메타포이다

인도의 석가나 중동 나사렛의 예수나 같은 원리(동그리마가 되는 과정)를 설명한다는 것을 마주하니 즐겁다

뭐 이렇게 멋지게 확대설명을 하지만 몸으로 와서 설명하면 인풋in-put하면 아웃풋 out-put 하고 아웃풋 하고 나면 인풋 한다이다. 먹으면 싸고 싸고 나면 다시 먹는다.. 붓다의 최고 깨달음은 먹어야 싼다이다. 쫄쫄 굶어보니 철학이고 나발이고 의미가 없더라는 것이다. 뭘 깨달을 거라고 별별난리를 다했는데 닿은 곳은 고프니 먹어야 되더라..이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깨달음추구는 허구라는 것이다.

 

그대의 배가 우주이고 그대의 입이 시간이다. 우주가 입이고 그대의 배가 시간이다. 이런 단순명료한 것을 진리라고 한 것이지 예수도 그렇게 설한 것이고.. 예수의 공간의 문제도 늘 먹음의 문제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오병이어도 사천 명을 먹이는 일도, 최후의 만찬도 그리고 새벽 해변가에서도 먹음이 화두였다는 것. 먹음이 얼마나 기운찬 에너지인가를 다룬 것이다. 예수는 떡을 굽고 제자는 바다에서 그물질한 생선을 가져온다. 영은 떡을 먹고 육은 바다가 제공하는 생선을 먹는다. 먹는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육은 입으로 인풋하고 영은 입으로 아웃풋 한다는 차이는 있다. 영도 먹고 육도 먹어야 살고 싼다. 먹을 때는 영이든 육이든 먹는 소리가 나고 싸는 소리가 난다. 영이 먹는 구운 떡이 방언(성령)이고 싸는 소리가 생선(열매)이다. 고 나는 설명을 한다.

 

예수의 해변가의 아침도 같지. 먹고 나면 싼다. 평안이 있는 것은 배고프다가 먹고나면 오는 느낌이고 그리고 아랫배가 사알살하다가 속을 비우고 나면 오는 느낌이다. 다른 평안은 어디에서 어떻게? 섹스라는 비밀의 정원에서 너와 나의 은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피의 발화 피꽃을 피우는 현장에서도 생기는 평안이기도 하지.

 

싸고 나면 먹는다.. 이게 동그라미 다는 것이고 순환이다 하고 윤회라 하고.. 말도 많지만 몸의 입에서 먹으면 아래서 싼다 呂다. 음률이란 먹을 때의 짭짭이고 쌀 때의 끙끙이다. 먹고 아래로 싸면 낙수효과, 소리로 고함을 질러하면 분수효과. 쌍방향으로 싸는 능력을 기루는 것. 그것을 양날의 검이라거나 문무겸장이라거나 천지간 권세라고 하기도 한다. 낙수효과를 음식을 위장으로 밀어 넣는 힘이라고 하고 분수효과를 위장에서 가열하여 분쇄 익힘 하여 에너지를 만들어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나는 이제 해석을 한다네

 

종교나 철학이나 등등에서 멋진 말로 그대의 귀와 눈을 당기거든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상상으로 올라타면 몸을 무시하게 되는데(육신은 후패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썩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에너지의 활동인지 요즘 알게 되는데 이전에는 이것이 극히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세뇌되어 몸의 기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모르면 무시한다. 무시당한다 무시한다는 말은 모른다 허물이다로 바꾸면 네가 나를 무시한다는 말이 거나 내가 너를 무시한다고 하거나 할 때 너에 대하여 내가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가 된다. 그러면 어감이 상당히 달라지지 않나? 무시당한다고 하면 뭔가 기분이 나빠지지만 네가 나를 모른다고 하게 되면 그런 느낌보다 내가 좀 우월해지는 느낌이 생기지 않나.. 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라고 하면 여유가 생기고 네가 나를 무시해..라고 하면 달라지지? 내가 너에게 눌린 느낌이 들지? 이렇게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네가 나를 모르니 그렇게 말하지 하면 내가 우위에 서고 네가 나를 무시하다니.. 하면 네가 나위에 서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말을 잘해라. 몰라서 그런 걸 거다..라고 통일해라.

 

네가 뭐라 말하든 나에 대하여 모르니 그런 거지. 그리고 네가 나를 안다는 것 자체가 무리니까 네가 나를 모른다는 그것은 정말이 되고 정직함이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네가 나에게 불편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면 네가 나를 몰라서라고.. 생각하라고 알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고 행동하지 않을 것이지 모르니까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이런 판단이 정확한 판단이다.

 

몸이 얼마나 정교한 우주의 청사진인지는 그런 상상을 벗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신비身秘, 시크릿(食張)이다. 먹어야 산다 살려면 싸야 한다. 먹고 안싸면 그것은 불상이다. 불상이 참 불쌍하다고.. 붓다가 지금 먹고도 안 싸는 불상을 보면 불쌍함을 느낄 거다. 불가의 불상은 쳐 먹고 안 싸서 아주 탱글탱글 탱화스럽고 예수는 먹은 게 없이 가상에 매달려 모든 것을 쏟아 뼈만 앙상하여 볼품이 없다. 그래서 온갖 그림으로 처발라 살을 붙이려고 지랄발광들을 하고 있으니 예수가 쳐다보면 뼈만 남아 두 팔 다 들고 항복하고 있는 내가 무슨 권세를 다 가졌다고... 한없이 짐을 지우는구나.. 나같이 말라빠져 힘이 없어서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도 버거워 남의 등을 빌렸는데 뭔 지랄 들인 지 저마다 자기들의 십자가를 나에게 떠맡기니 우짤꼬 나는 질 힘이 없네 하고 두 팔을 벌려 항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

 

붓다는 먹고 못싸서 변비환자라면 예수는 지 하나도 버거운 죄짐에 무슨 배짱으로 자기의 죄짐도 지우려는 인간의 몰염치함에 인간 너의 파렴치한 바람에 대하여 나는 해결책을 모르겠다 나는 내 죄짐을 해결하는 것이 내 문제다 하고 하늘만 보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죄짐을 지우려는 인간은 모르겠고(예수가 죄를 대신한다는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예수와 상관이 없다) 내 짐도 내가 못지는 한심함을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나.. 고민 고민하는 고민병자라는 것이지. 똥구멍이 막힌 속은 비고 겉만 금빛으로 화려한 불상과 살이라곤 한점 없는 뼈밖에 없어서 누구에게라도 부딪히면 찌르는 가시가 되는 그런... 예수는 가시관으로 상징을 삼는다는 것이지 물론 가시관이 아우라로 변하도록 하는 것이 공부의 힘이라고 하지.

 

불상으로 상징하는 공空, 孔과 십자가상으로 상징을 삼은 시時를 합하여 시공이라 하는 것이지

붓다의 살집에 예수의 골격을 더하여 온전한 몸을 구성하는 것을 동서의 만남 음양의 조화 남녀의 하나됨 천지일이라고... 물과 불의 조화. 이것이 우주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이지. 소방수는 물불을 안 가린다고 하는데 내 월주가 임오로 소방수다. 물불을 월주로 가지고 있으니 어디든 애애앵하면 달려가는..

 

저돌적이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노빠꾸라고 하는 ...요즘 내가 나를 마주하면서 내가 나를 이제 제대로 살구나 하는 것. 월주를 살 주라고 하는데 살이 가지고 있는 기질이라고 하는 것이지. 나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그런 살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즉 월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월주는 그대의 기질이라고 하던데 맞는가 맞지 않는가 살펴보면 타고 온 기질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임오월주인 나와 갑오월주인 빛결의 기질을 보면 오화야 둘이 동일하지만 천간이 갑과 임으로 목과 수로 다르니까 나는 정보수집력에서 눈에 불을 쓰고 나돌아 다니고 빛결은 정보를 딛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데 에너지가 탁월하다고 본다. 내 눈이 빛을 형형하게 하는 것도 오화의 힘이고 빛결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에 형형한 에너지를 쓰는 것도 오화의 힘이라고 본다. 드러나는 것은 나는 글, 말씀을 디테일하게 풀어간다면 빛결은 실제 손으로 잡고 다루는 천을 다루고 바느질을 하여 창조하는 작품에 디테일하다는 것이지.

 

불가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같은 것인데 불가는 동양의 산스크리트어를 딛고 나오고 예수는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를 딛고 설파되어진 것으로 둘 다 먹어야 살고 살려면 싸야 한다는 것에 닿는데 생각해 봐라 몸을 입고 태어나 몸이 체험한 것을 딛고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니 표현언어가 다르다고 몸이란 시간이 경영한 그 체험은 언어가 전이기 때문에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도의 정점은 배고프니 먹고 잠이 오니 잔다이다. 그 외의 것은 무화과 잎으로 만든 장식다. 몸은 누구나 정직하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몸은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다. 몸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정직하다. 몸을 창조한 우주가 정직하기 때문이다. 그 몸을 사용하는 용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생긴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 거짓이 생기는 것이지.

 

언어공간이 달라진다고 몸시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몸언어 바디랭귀지는 지구 어디에서나 통하고 공간언어 사운드워드는 어떤 우주라도 통한다. 우주를 관통하는 우주언어 공간에너지를 ‘모음(Vowels)’이라고 하고 파동 팡션 함수라고 하는 것이지. 자음을 consonants, sound of a word라고 한다는 것.

 

그래서 환난날에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라고 한 것은 동. 서양 같은 가르침이다 호연지기 용호비결 운기신공 다 같은 몸체험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일단 고함질러봐라 어떤 감정이 생기고 이성이 활동하는지 스스로 해 보지 않으면 아무리 빛나는 정보라 해도 그대에겐 닿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있는 지혜는 머리를 통하여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몸체험에서 둥글어지는 것이다 그대의 몸에서 발현되는 소리가 몸짓을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왜 호흡이 있는 자는 노래하고 춤추라 했는지 알게 된다 그저 유흥거리로 신나라고 하는 가르침은 아니다는 것

 

술취하여 나타내는 어떤 행동과 소리를 훈련하면서 나오게 되는 몸짓의 가치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술에 의지한 노래와 춤은 세속적이라 한다면 소리에 기댄 춤과 노래는 영적이라고 하는 것이고 영적인 공부엔 외적인 무엇이 개입되지 않는 순수함이 의지가 된다. 즉 소리공부에는 그대의 몸만 필요하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어떠한 것도 필요치 않고 그대의 의지를 대신하는 음식들도 필요치 않다. 그대의 몸과 시간만 필요하고 그 외의 것은 버려라 비우라 고 하는 것이다. 종교에서 비우라 버려라 하고 가르치는데 욕심을 비우라 탐심을 물리치라.. 등등 이론적인 설명을 하는데 행동으로 실천하는 비움과 버림은 어떤 것인지.. 무엇을 버리라 비우라 할 때 과연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을 그대는 하는가?

 

소리를 하고자 하면 먼저 버릴 습관은 술 담배, 마약...등으로 표현되는 감정도피처라고 대표되는 그대의 기댐 도구다 그대의 의지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데 그렇게 투사하던 습관을 버리고 홀로 서라는 것이다 

홀로 선다 홀로된다는 것은 몸이 그대의 음주가무를 만드는 외부요인을 벗어나 맨 정신으로 자기를 발화한다는 것이다. 혼자 술 담배 등을 의지하지 말고 외연의 백사운드 음악도 의지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보고 춤을 만들어볼 때 그대의 영혼이 나온다 아무것도 없는 즉 너로부터 주어지는 정보가 없이 나 홀로의 상태에서 소리하고 춤추고 해 보라는 것이다. 그게 그대 영혼을 마주하는 방법이다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 스스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대가 홀로 주 앞에 경배드릴 수 없다면 그대는 영혼이 없다 그러니 홀로 경배드릴 수 있도록 영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수가 새벽미명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기도했다고 하는 그 새벽예배가 지금 종교의 새벽예배로 기념하고 있지만 예수는 어떤 기도를 어떻게 했을까 내용은 내가 예수의 시간에 접속해야 알 수 있지 않을까나..

 

혼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옆에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기대던 것들을 하나씩 다 제거하여 공간 하늘앞에 시간 내 몸이 선다는 것이지 이것을 신앞에 홀로 섬이라 했다. 경건의 훈련은 기댐을 벗겨내는 훈련이다. 외부에서 만드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착각함에서 그 모든 상황을 제거하여 자연 앞에 홀로 있을 때 내가 어떻게 노래하고 춤추는가 그게 주 앞에서 영으로 노래하고 영으로 기도한다고 하는 현장이 된다

 

대중 안에서 그 분위기에 휩싸여 들떠 있다가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비로소 그대의 영혼을 마주할 수 있다. 종교집단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예수가 시나고그 밖에서 말씀을 나누고 새벽미명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했다는 것은 철저하게 혼자인 것을 통하여 자기의 영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마주한 것이다. 그렇게 예수는 제자들 군중들 속에서도 혼자인 시간을 통하여 겟세마네에 이르고 갈보리에 닿고 돌무덤에 들어가서 갔다가 돌문을 열고 나와 승천하고 재림하기까지의 행로를 이행함으로 성령이 되었다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내놓은 이 과정을 나도 따라서 성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세움이 된다고 나는 설명한다.

 

예수가 낸 성령이 되는 길을 따르겠다는 서원을 소명이라 한다. 예수를 따라 성령이 되어 나 역시 너에게 길을 가르쳐 너도 성령이 되게 하겠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길을 간다 제자의 도를 따른다 행한다고 하는 것이고 대표적인 언어로 크리스천이라 한다고 나는 설명한다. 예수가 낸 길을 걷지 않으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이들을 예수는 모른다고 하셨다 나도 모른다고 한다. 즉 너와 내가 길이 달라 너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다 너도 내가 있음을 인식할 수 없다 이지

 

다른 시간대에 있는 이는 서로 알 수 없다 같은 시간에 있어야 서로 알 수 있다. 동시간대를 산다는 것이 성령과 하나된 삶이라 깨달음이라 한다는 것.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돌 던질만한 거리에 제자들이 있었어도 예수의 시간과 제자의 시간은 달랐다 같은 공간인데 시간은 다르다는 것이 나는 너를 모른다 이다. 네가 나의 시간 안에 있지 않다는 것. 이 모름은 참 정직함이다. 너와 내가 같은 시간을 살지 않으면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친구도.. 모두가 낯선 모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래서 오늘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은 냉정하고 단호한 말이다. 인간관계를 모두 잘라버린 그런 언어인데 오늘 지금 여기를 산다고 하면서 너에게 간섭을 하고 나눔을 한다고 하고.. 뭐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늘 지금 여기에는 내 몸과 내가 추구하는 어떤 의식 외에는 없지 않을까.. 내가 추구하는 의식이 몸과 같이 하는 것.

 

심판이란 공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다. 예수와 나는 다른 공간대에 있지만 같은 시간속에 있다 시공을 초월한다고 하는데 예수의 시간을 내가 디딤 하는 체험을 성육신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물은 공간이고 피는 시간이라고 했다 예수의 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문장이 전달하는 것이 예수의 시간을 살아라는 것이다 예수의 만찬부터 오순절까지의 시간을 추적하여 그 시간의 비밀은 물에 새겨놓은 것이 아니라 그대의 나의 피에 새김되어서 내려온다는 것으르알게 되고 그것이 1%로의 비밀 시크릿이라고 한다는 것. 그대들이 우주 1%만 안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어떻게 가동되는 것인지 실상 그 1%라는 것이 외연에 기대던 모든 것을 다 삭제하고 그대의 숨 하나만 가지고 출발한다 점 하나를 찍어서 그 점이 360도가 되도록 고함을 소리지름을 확장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알 수 있다 비밀의 법칙을 알아서 그대가 원하는 원함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 원함도 삭제된다는 것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 즉 온전한 영 성령을 이루심을 이끌어가라는 뜻만 남는다

 

그대의 소망, 주를 위하여..라고 하는 그대 자신도 속은 허명이나 서원은 버릴 대상이다. 즉 너를 위하여라는 그 욕망도 버려야 완전함에 도달한다. 우주의 뜻은 자유로움이다 공간은 우주의 춤이고 나는 시간을 창조하는 노래다. 예수가 재림해야 한 이유가 미션실패를 다시 도전하기 위한 것으로 예수가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지 그대의 시간엔 관심이 없으니 착각하지 마라. 예수의 재림은 자기가 이룬 성령이 온전한 동그라미를 만들어 잘 굴러가는가를 확인하고자 함이다 예수의 동그라미 그것을 우리는 영생이라 하고 그 궤적을 내가 따라 동그라미를 만들면 나 역시 영생을 얻는다 하는 것이다. 내가 성령이 되어야 너에게 성령이 될 수 있는 길을 가이드해 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예수를 알고 예수와 살고 예수로 영생을 누린다는 이 간단한 말이 얼마나 지난한 공부길인지 그대의 종교생활은 발치의 먼지에도 대지 못한다. 종교는 예수의 시간과는 무관하다. 종교엔 피가 없기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한 꽃으로 장식을 하고 향을 피우고 초를 켠다 해도 그것은 피가 아니다. 무속에서 피를 뽑고 바르고 난리를 해도 그것은 나의 피가 아니다. 동물의 피일 뿐이고 나와 상관이 없는 객관적인 것일 뿐이다. 내 피의 문제로 접속이 될 때는 그대의 소리가 일어날 때이다고 나는 설명한다는 것이지  

 

피는 그대 몸에 내 몸에 흐르고 있어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성체라고 한다 그대와 내가 예수인데 어떻게 그리스도 즉 성령이 될 것인가는 내 몸에서 피에서 체험되는 사건이다

 

아침 봉무동으로 나서는 길 공항교아래서 여사님들을 만나 넣고 다니는 아이스브레이커스 캔디를 건네며 순설 똑딱 강의를 하고 지나온다 나더러 사탕주는 새댁이라고 하시는데 새댁이라... 불로천을 건너는데 김점분여사님 혼자 나오셨길래 김점분 엑설런트 세 번 캔디 세알. 어제 먹어보니 입이 시원하고 좋더라 하시길래 입안이 화해지고 입냄새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여름이라 사탕 넣고 다니기보다 통에 든 브레이커스를 넣고 가다가 문을 열어 몇 알씩 건네주게 된다.  

 

송희춘 여사님이 6월 29일 귀천하셔서 그 황망함이 다른 이들을 운동나오지 않게 하나보다 하신다. 송희춘 여사님... 나를 만나면 내가 떠들어대면 그냥 웃으시곤 하시고 모자 이쁘다 머플러 곱다.. 그러면서 모자 다시 씌워주고 머플러 이쁜데 안으로 숨기지 말고 앞으로 내놓으시라 하고 손봐주면 좋아하시던 많이 배우시고 많이 베푸시고 많이 이끌어가시던 에너지였는데... 어느 날부터 이제 나오기 싫다 하시더구먼... 정곡지여사님이 오셔서 그 말씀을 다시 하시면서 자기는 손주 밥을 해줘야 해서 죽지도 못한다 하시더라.

 

밥...

 

이 상례 마돈나 회장님은 건네주려는 캔디가 새그럽 다고 사탕을 다음엔 달라하셔서 알았다 했다. 내가 풀 걷기를 하면서 올라가느라 운동을 끝낸 김옥순팀 마주 오셔서 김옥순 엑설런트 세번 하고 즐거운 웃음. 옥순님은 상당히 곁을 주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요즘 내가 액셀런트 하면 뒷말을 받아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을 투자하여 같이하는 후렴. 나의 이 끈질짐도... 동갑내기 5월생인데 닮은 점도 다른 점도 있는데 음력 5월이면 옥순님도 임오월이어서 나와 막상막하일 것인데 이전에 팔씨름하면서 둘의 기질을 서로 파악하였던 바 절대로 지지 않으려 하는 오기하나는...

 

오시는 김경순 님 만나 같이 엑셀런트 하고 다녀오시라 저는 벤치로 간다고 그렇게 풀을 걷어내면서 벤치에 가니 예을의 윤화자 님 계셔서 역시 내 전문을 가동 엑설런트를 즐겁게 했다 캔디를 건네고 입에 넣으셨는데 자 이름부르기 가동합시다 하니 입에 넣고? 하시면서 웃으시는데 일단 내가 부르기를 할 것이니 알아서 하시라고..그렇게 강을 산을 쩌렁쩌렁 울리도록 두 분의 이름을 불러 액셀런트..부르는 내가 힘이 생기고 듣는 두분은 기를 받는다 즐거워 하시는 것이지. 내가 만나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액셀런트를 하는 것은 내가 좋아지는 것이지 물론 듣는 분도 좋기는 하지만 자기 이름을 자신이 불러 엑셀런트를 해야 만족한 부름이라고.. 윤, 예 여사님들과의 인연도 웃음꽃으로 수놓아지네.

 

두 분 가시고 글을 두드리려는데  부부팀 오셔서 캔디드림하니 여사님이 먼저 사탕을 두 번은 받았는데 하시던데 나는 기억을 못 하지.. 그렇게 빈통을 만들어 옆에 휴지통에 넣고.. 나는 글을 두드리고 그분들도 가시고 저 아래까지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김경순 님 오셔서 같이 소리공부하기. 소리가 가지고 있는 힘과 어떻게 발성을 해야 온몸에 기가 돌아가는지와 힘을 발생시키는 낱말이 있는데 오늘 제가 가르쳐 드린 엑설런트..라는 언어가 얼마나 힘이 있고 강력한지.. 해보시라 했더니 역시 힘이 생긴다고.. 엑설런트를 하는 몸짓을 가르치면서 소리자리 찾아 내리기  아무도 없는 이런 좋은 공간에서 속에 있는 것 너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더 강력하게 하기 위하여 반복한다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이 늘 감사하고 고맙다. 이름을 부르도록 같이하기를 하기를 허락한 그 믿음을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소리 한 자락 김경순 이름 불러 금호강에 띄우고 가람산에 울리고... 하여간 소리통하나는 그간 잘 뚫었지. 경순님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상례마돈나 회장님 지나가시다가 왜 재채기를 하는가?라고 물으시길래 재채기로 들리는 것은 소릿자리를 단전으로 내리려고 주먹 쥐고 단소리를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렇구나 하셔서 이상례 엑설런트 슈퍼스타 히어로.. 만세도 하고 향기로운 하루 되라고.. 경순님도 아들 밥 챙겨야 한다고 가시고 강 가에서 소리하시는 남자분 등장

 

오늘, 청포도 칠월이 열리는 날이어서인지 산자락에서 권오준선생님의 소리인지 김윤현선생님의 소리인지가 뻐꾹새처럼 울려 나오고 또 다른 시창소리도 나오고 금호강 가에 소리에너지가 넘실넘실

귀가 길에 풀을 걷어내는 것도 행복한 몸이 그리는 글쓰기구나 한다. 말없이 건네오는 손 닿음에 대한 인사 내가 건넨 손짓에 열을 더하여 건네주는 자연의 향기와 눈빛. 내가 향유하는 강 길에 감사로 손을 더하면 그 손길에 길꽃나무들은 더 정다움으로 나를 싸준다

 

값으로 계산되는 것은 피에 속한 정보다 자연은 그저 주신바 된 값으로 계산되지 않는 하늘의 가피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는 것은 공간의 원리다. 시간의 원리는 공짜가 없다 투자한 만큼 거둔다는 것이다 그대의 시간 피를 어디에 어떻게 썼는가에 따라 그대가 성령이 되어 영생을 얻을 수도 있고 그저 자기 반경 10도 15도 30도 45도... 를 왔다 갔다 하다가 멈추기도 할 것이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이 원리는 피에 속한다

 

피를 어떻게 다루는가 다른 방법은 없다 일단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질러봐라 가능하면 녹음해서 다시 들아봐라  그리고 내가 지르는 고함소리와 비교해 보라 내 소리는 마중물이다 듣고 자기 소리를 끌어내라고 건네는 것이지  나도 매일 내 영혼을 끌어올려 점검을 하니까

이론과 현실을 하나로 구슬꿰기 하는 줄을 영혼이라고 한다고 구슬을 꿰면 동그랗게 되지 않겠는가.. 구슬 꿰기가 영혼 만들기 성령 되기라고.. 그렇게 내가 설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