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소원(망)은 작은 동그라미대원(망)은 큰 동그라미

청향고은 2023. 6. 28. 16:36

 

소원(망)은 작은 동그라미

대원(망)은 큰 동그라미

 

이론적인 개념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대와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개념으로 풀어보자

그게 이상이 현실이 된다고 살아있는 지식이 되고 너와 내가 거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너와 내가 오가게 하는 정보에 서로 걸림이 없을 때 서로 즐거움을 향유享有-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향유하다'는 '누리어 가지다'의 의미로 풀이되며, '영위하다'는 '일을 꾸려 나가다'의 의미 -한다고 한다.

享enjoy+阝Hill=郭이어서 나는 享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주목하게 된다.

 

누릴 향(). 본디 글자는 亯이었으며, 이 글자는 亨(형통할 형)의 옛 글자이기도 하다.

즉, 과 亨은 원래는 같은 글자였으나 나중에 분화된 것, 자는 '드리다'(offer)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사당 같은 건축물의 모양을 본뜬 것이 이었다. 후에 ‘제사 지내다’(perform an ancestral sacrifice) ‘잔치하다’(give a feast) ‘누리다’(enjoy) 등으로 확대 사용됐다.

 

누릴 향의 뜻을 찾아들어가면 고을을 지키는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라는 것이 된다.

더 들어가면 외성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악한 기운을 결계 치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것이고, 천군신령의 가피를 비나리 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니

그 제사에는 음주가무가 있었던 것, 즉 축제의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형통하다 향유하다는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성이 郭이어서 이 글자가 본디 무슨 뜻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찾아보니 해와 달을 匡郭이라고 했다는

정보를 만나게 되었다. 주역참동계를 보면서 언어의 쓰임에 대하여 인식이 넓어지는 것이지.

일월이라고 하는 것이나 해달이라 하거나 광곽이라 하거나.. 같은 뜻이지만 글자의 다름.

곽은 달을 이름하는 것이었으니 외성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

해를 안해라고 하는데 내성이라고 하는 것으로 성격이 내성적이다 하면 양적이다 하는 것이고

외성적이다 하면 음적이다가 되는데 외연에서는 반대로 쓰임 되고 있는 듯 보인다.

내성적이다 하는 말은 여성에게 쓰는 말이었다고 그래서 내성을 안해라고 했고

외성적이다고 하는 말은 달인 남성에게 쓰인 말이였다고 하여 바깥어른이라고 했다는 것이지.

바깥어른은 밤을 밝히던 달이였던 것이지. 이전에 달은 남자의 상징이고 해는 여자의 상징이다

달은 정자의 에너지이고 해는 난자의 에너지이고.. 그렇게 파악이 되었고 전해진 것인데

지금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해를 여자라고 하고 달을 남자라고 한다는 것이지

그대가 하늘에서 달을 따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라고 하는

광고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따는 별과 달이 무엇인지는 내 글을 보아왔으면

아하 달은 글이고 별은 소리구나.. 바로 이어지겠지 그래서 별소리라고 하고 달글이라고 하고..

그대에게 따 주는 달과 별은 노래와 춤이다. 그대의 이름을 노래로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 하늘에서

달을 따고 별을 따서 그대의 두 손에 담아드리는 것이다.

 

그대의 두 손. 엄지 금성과 검지 목성과 중지토성과 약지 태양과 소지 수성을 연동시키고

화성구와 월성구가 손안에 있다는 것 그래서 손안에 있다는 것이지.

외연의 일곱 행성을 그대의 손에 담아주는 것.. 얼굴에 칠성판이 있고 목소리에 칠성가락이 있고

손에 칠성줄이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관상을 보고 목소리라는 심상을 보고

그리고 관상과 심상을 수상에서 다시 보고.. 표정에 따라 관상이 달라지고 기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고

운에 따라 손금이 달라진다. 그대가 관찰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관상 수상 심상은 늘 기운에 따라 변화한다

그래서 그대의 관상이니 심상이나 수상을 그대가 살피는 것.. 그것을 몸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몸을 阜(阝)라고 하고 머리를 享이라고 하였구나 나는 이해한다.

밤을 밝히는 달빛을 담아내는 곽과 낮을 고르게 이끌어가는 광...

 

阝는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외성이라고 하는데 얼굴이라는 윤곽의 바깥에 있는 귀라서

외성이라고 하고 외부의 소리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곳이어서 누리다(enjoy) 향을 쓴다고 본다.

향에 向(향하다), 響(울리다), 香(향기)라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누리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이어야 하고

귓바퀴에서 소리울림을 인지하는 기능의 수준이 어떤지를 파악하는 것을 郭(廓)이라는 그림에

담아둔 뜻이라고 본다. 코가 맡는 향기가 있고 귀가 듣는 울림인 향기가 있는데 귀가

소리의 울림을 듣는 것을 성향이라고 하고, 코가 냄새를 맡는 것을 취향臭香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성향은 귀의 영역이고 취향은 코의 영역이라는 것

눈은 앞을 보는 기능이고 눈꺼풀이라는 것으로 상하에서 닫고 여는 문으로 한다.

눈윗두등을 무건乾감坎토(진술)라 하고 아래와잠을 기곤坤이離토(축미)라고 한다.

감고 뜨고를 하는 곳이라 감리라고 하는 것.

 

더하여 눈초리는 병정화라고 하고 눈꼬리는 사오 화라고 한다는 것도 기억할 것.

얼굴의 상은 영이 드러나는 곳이라 귀는 소리를 통하여 혼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고

 

언덕阜(阝)와 고을 邑 의 압축 부수가 우 阝 가 되는데 나의 해석이해로는 양쪽 귀라고 생각한다.

그림 글을 봐라 귀같이 생기지 않았나? 코끼리 귀..ㅎㅎㅎ. 코끼리 象에서 귀와 코가

상징이라는 것을 아는지.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郭을 두고 이렇게 풀어간다. 글공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참고를 하시라고

내 성을 풀어가면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한자나 알파벳이나.. 등등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다

부모가 지어주기 전에 그 부모 이전에 이미 존재한 정보가 한자와 한글과 히브리어다.

산스크리트어라고 하고 가림토라고 하고 쐐기라고 하는 정보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문자를 창조한 이를 우리는 '신'이라고 하는데 신 Sin이라고 한다. 허물이 신이라는 것이지.

비물질에너지가 물질에 새김이 되었다는 것이 신의 허물 즉 신의 본질이 아니라 신의 뒷모습이라는 것이지.

신의 허물이 문자로 기록되어 지금 내림하여 오고 그것을 전습 전통 카발랴세피로트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지

신의 알맹이는 문자에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신의 얼굴은 기록하지 못하고 다만 느낄 뿐이라고 한다.

 

전도서 1장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 차지 않는다고 하는 귀가 차고 막히는 현상을 기가 막히고 기가 찬다.. 고 하는데

기氣의 상태를 파악하는 곳이 귀耳Ear라는 것을 그대도 알고 나도 아는데 귀의 이소골이 그대의

기의 기울기를 조절하는데 이 귀의 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가 막히고 차게 되어

너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즉 네가 하는 말의 기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듣고

반응하게 되거나 내 말만 주장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고 대화가 안 된다 말이 안 통한다.. 하게 된다.

귀지가 차게 되면 잘 들리지 않고 귀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귀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귀지가 찬 것인지부터 살펴서 귀지를 청소하라는 것이지.

귀지는 안 살피고 환청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런데 너와 내가 걸림 없이 소통을 하고자 할 때 얼마나 어려운 관문을 거치는지

성서에서는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옥에서 나올 수 없다고 언어감옥의 실상을 말하고 있는데

그대와 내가 갇힌 감옥은 문자언어감옥이다

그 외엔 지 몸 가지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몸을 구속할 밧줄은 언어 외엔 없고 그것을 미노타우로스가 갇힌 미궁이라 신화에선 설명한다

문자는 땅에 누운 그림자라면 언어는 바람을 타고 흘러 다니는 유령 즉 형태를 갖추지 않은 어린 영이라고 하는 것이니까 어리다는 것은 틀을 갖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유롭다고 하기도 하고 제멋대로다라고 하기도 한다.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라 가는 과정을 거쳐야 알을 생산할 수 있는 육체가 된다

 

육체는 육체를 낳기 위한 성장과정을 거치고 영체는 영체를 낳기위한 과정을 거친다

육체는 아래서 맺혀서 알로 태어나고 영체는 위에서 맺혀서 울로 태어난다

 

아프로디테는 벌거벗은 채로 바다물거품에서 태어나고 아테나는 완전무장한 채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허벅지에서 태어나는데

아프로디테는 육체를 아테나는 영체를 설명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허벅지라 하지만

허리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고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고 하는 말과 야곱의 환도뼈라는 것과

연결하면 디오니소스는 쿤달리니챠크라의 비밀을 설명하는 메타포일 것이다

 

아테나는 진 디오니소스는 선 아프로디테는 미라는 에너지를 설명하는 것이라 보면

영체와 육체의 중심 상체와 하체의 중심에 허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허리를 혼이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혼신이 허릿심을 다한다는 뜻이 되는구나

 

웃소리를 올리는데 웃소리를 출발시키는 자리가 허리다

웃소리를 훈련할 때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고통이 따르는데 단전소리와 허릿소리가 다르다는 것인데

허리소리를 요령이라고 하는 것이렸다. 해산하는 과정에 비교하면 아기가 허리로 튼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아기머리가 아래로 돌아가면서 허리를 지나갈 때이다

 

아마 이때는 참을성이 많은 산모라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고통이 있는 것인데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의료의 힘을 빌리게 된다는 것 닥트 스트레인지가 젠을 익혀 도르마무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 하는 액션이 팔 돌리기 즉 원을 만들어 그 원심력으로 이 세계로 들어간다

 

그대는 소원을 바소所 원할 원願을 쓴다.

바라는 바라고 소원을 순수한글로 말하는데 원이 바라다가 되고 소가 바가 되는데 ‘ba’라는

이 영어철자는 b는 히브리어 베트에서 a는 알레프에서 온 것으로 알레프는 묵음이 되는 철자인데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길을 의미한다

 

Ba라는 것이 숨을 모아 토하도록 하는 곳이지.

바라는 바는 숨을 모았다가 속이 시원해지도록 토해내는 것이고 이것을 소원 작은 동그라미라고 하게 된다

그대가 뭔가 일이 생기면 일단 숨부터 가지런하게 하는 것이 소원이고 가지런해지지 않을 만큼의 충격이라면 대원 큰 동그라미 큰 소리를 토하는 것이다

 

숨을 고르라는 것과 숨을 고르기 힘든 중압감이 생기면 소리를 지르라인데 성불이라는

실제행동이다 팔을 크게 휘돌리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 대원이고 큰 소리를 내지름이 대성이고 소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퍼지는 것이 성불이다. 나는 머리글을 몸소리로 실행하는 개념을 설명한다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것이니까

 

이 글을 두드리는데 전화가 왔다 김순자여사님 만나기로 하였는데 서남이라는 분과 같이 왔다

서남이 님은 밥 해야 한다고 일어서시고 순자 님과 오간 대화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에너지를 생각했다. 엄마주파수가 불러들인 인연이라 생각하고 순자여사님의 이야기를 주욱 듣게 되었다. 얼굴이 동안으로 소녀 같은 느낌이 가득하고 온화한 기운이신데 이전과 차이가 나는 느낌이어서 여사님 젊어지시고 밝아지시고 가벼워지신 느낌이다고.. 그랬더니 그간 자기도 좀 성장하였지 않을까 하시더라

 

3년 전에 만났을 때의 이야기와 이어서 듣게 되면서 기감촉에 대한 것을 나눴는데 이 분은 ESP(ESP는 다음을 가리킨다. 초감각적 지각 (Extrasensory perception), 감각 기관을 매개로 하지 않은 외적 또는 내적 사상(事象)의 인지(認知)에 의한 생체의 반응. 원감(遠感)·투시(透視)·예지(豫知) 등을 이름. 초감각(超感覺)-

훈련을 하시고 명상 중에 깊은 산속의 아주 오래된 고찰인데 아름답고 그윽한 기품이 있는 절이 나오고 그 절 앞에 너무나 훤칠하게 잘 생긴 스님 두 분이 서서 여사님을 바라보는데 한 분의 얼굴로는 하늘에서 금빛가루가 쏟아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보고 나서 두 팔이 마비가 된 듯이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 하던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의 소망이 나오더라고 하더라.

 

아픈 사람을 만지면 다 낫는 힘을 주세요..라는 바람이 있었단다 그리고 정말 병 고치는 신유은사를 받으시고 주변의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삼 년 반 세월을 거치면서 겪으신 이야기들과 지금은 주변의 잘 아는 이들이 몸이 아프면 만져주지 그 외에는 그 은사를 쓰지 않으신다 하셨다.

 

신유은사를 놓고 주변의 시기와 질투 오해 등등을 겪으시면서 봉인을 하신 것이라 하시는데 그 은사를 다시 딸을 위하여 쓸까라고 하시더라. 따님이 수성구에서 THE:KYUE이라고 토털케어를 한다고 하는데... 시기가 시기인지 환경이 환경인지 고객이 없어서 한 달의 임대료만 백만 원씩 나가고 있다고 하시면서 자기가 딸의 샵에 나가서 자기의 치유은사를 활용해서 딸을 도울까 한다는 말씀.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내가 알고자 하는 것. 재작년인가 금숙이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이분을 해맞이에서 만나기로 하였던지라 치유은사를 발휘해 달라고 금숙이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자기의 은사가 통하는 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더라고.. 무엇이든 믿음이 전제되는 것은 당연하지.. 기를 주입해 보면 열린 마음인 이에게는 기가 수욱 들어가는 것을 자신이 느끼는데 푸른 광선이 생겨서 반경을 넓히면서 아픈 이의 환부를 치유해 가는 것을 자신은 기를 주입하면서 보게 되더라고 하더라. 닫힌 이, 의심하는 이들에게는 기가 주입이 되지 않더라고 하시는 말씀

 

내가 상대방 기운을 실어오게 되면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있어서 이 분은 어떨까 해서 물어보았더니 그분은 병자를 만나도 자기 몸에 대미지가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생기면 인연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증상일 수 있으니 그런 인연은 만나지 않는 게 좋다 하시더라.

 

기운이 탁하거나 차가운 문제가 있는 상황에 처한 이를 만나 내가 그 기운을 풀어내는 과정을 시도한다면 반드시 내 몸에서 반응이 와서 아직은 내가 신유를 다룸에서 어리구나 하고 있다고.. 너를 만지면 너의 기운을 내 몸이 받아와서 그것을 설기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했더니 여사님은 한 번도 그런 데미지를 받는 상황은 없었다고 하시더라. 어디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내가 다스릴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하는 것이지. 밝고 맑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귀라는 것은 깨달은 자의 말이고 나를 만나는 이들은 나의 기를 받아서 활발발해진다는 것은 아는데 나의 활기를 너가 받아가는 것을 생명기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고, 나는 너의 탁한 기를 받아오는 것이니 ..이런 경우 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인연에 대하여 궁구를 하게 된다는 것이지. 기를 다루지 않는 관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기를 다루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 냉기를 설기한다는 것이지. 화기는 소리를 따라 실어내기때문에 화기에 따른 데미지는 없지만 수기 즉 우울이나 어둠이나..를 만들어내는 기운은 아래로 내려오기때문에 내가 다루는 수기의 바운드리만큼 상대방의 기운을 공명하게 되는 것이구나..그래서 탁기를 다루면 나는 데미지를 받아서 그 기운을 설기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구나.. 몸으로 하는 공부. 순자여사님의 일생을 주욱 들으면서 이분의 사주를 봐주던 해인사 선혜스님이라는 분이 타고 온 그릇이 점지된 그릇이라고 하시더라는데 무자년 음력 4월생이시고 묘시이다고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요즘 알아가고 있는데 사주를 풀어가는 관계라고 정리하게 된다

사주와 이름을 풀어가는 공부를 하다 보면 사소한 일상을 서로 나누게 되고 그것이 사주와 이름에서 어떻게 발화하고 열매가 되고 다시씨앗이 되고 ...반복을 하는가를 찾아내는 것 . 그래서 인연이 맑아지고 밝아지고 허물이나 벽이 없어지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지. 사람을 알아가는 것 가장 깊은 심연에 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자기를 가장 깊은 곳의 상처, 즉 탯줄을 자를 때의 그 고통을 근원적인 트라우마라고 하여 봉인하려고 하게 되고 그 근원적인 상처를 감추기위해서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거나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를 감추려하거나..하게 된다. 들여다 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인데 저마다 자기만 가지고 있는 상처라 착각을 한다. 그래서 무슨 상처인지도 모르고 감추기를 하다보면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고 어두워지게 되는 것이고 어둡다는 것은 결국 탁하고 무겁다는 것이 되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사람이 왠지 무겁고 꺼려지는 느낌을 만든다는 것이지

 

금숙이와의 관계를 보면 나는 공부를 열심히 설명하는 밝음이 있었고 금숙이는 자기의 일상을 소소하게 설명하는 밝음이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내 이야기를 즐거워하였고 금숙이는 금숙이 자기 이야기를 즐거워했다는 것은 안다. 금숙이가 내 공부에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나도 금숙이의 일상에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무엇이 서로를 재미나게 했던 것인가.. 몸짓이었을 것이다. 금숙이의 모델이 되어 시키는 데로 행동을 하고 그것을 사진 찍어서 동영상을 만들어 나에게 보내주는 즐거움이 금숙이의 웃음이고, 나는 내가 나를 마주하지 못하던 영역을 금숙의 사진을 통하여 마주하면서 나를 인식하게 되는 즐거움이었다고 본다. 금숙이를 만나서 내가 변화한 영역이 나의 몸짓과 표정과 소리를 자세하게 마주하는 공부를 하게 된 점이다. 홀린 듯이 춤을 추고 다니던 새벽길의 기억. 내가 춘 춤을 보내면 음악을 입혀서 다시 보내주던 금숙이의 정성.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되는 과정은 몸치였던 자리에서 몸짓이 우아하고 부드러워지도록 훈련하게 이끌어준 금숙이가 있었고, 청출어람이라고 금숙이보다 지금은 내가 더 부드럽고 우아하게 나를 표현한다는 것이 나를 대견하다고 칭찬하게 되는 것이지. 금숙이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했고 태극권을 해서 어린 시절부터 습관이 된 몸짓이 나에게는 저런 우아함이 어디서 나오지.. 나도 해보면 될까나.. 하는 시도를 하게 하였던 것이지. 내 특징은 내가 보고 좋아 보이면 열심히 따라 하여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한다는 것이다.

 

금숙이를 다시 만나고 싶으냐 물으면 그것은 아니라고 내가 생각하는데 물론 우연처럼 만나면 서로 즐거운 시간을 만들지만 이전만큼의 그런 친밀도를 사라진 것이라고 보는데도 나에게 금숙이가 남긴 몸짓공부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히 크구나 하는 것은 안다. 일전에 만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금숙이가 17~8세에 겪은 꿈체험이 내가 겪은 십대 후반의 경험과 같은 것인데 금숙이는 무속의 힘으로 해결을 했다면 신앙생활의 에너지와 내 스스로의 기도의 힘으로 해결을 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3대째 기독교집안에서 예배중심의 생활을 하던 나는 꿈이 얼마나 지독하고 두려운지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였어도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저 잠을 자지 않는 것... 잠을 자지 않으면 책을 보는 것.. 그렇게 나는 그 상황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어린 시절부터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늘 혼자 노는 습관이 형성이 되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 책에 몰입해서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잠을 자지 못하니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글을 이렇게나 두드려대는 것은 당시 그렇게 많이 나타난 뱀들의 에너지였던 것이구나.. 뱀은 글재능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하하.. 그렇구나.. 한다. 그래서 금숙이에게도 글공부하라고 권하게 되는 것이고 금숙이야 그 에너지를 쳐냈으니 내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뭐 그리되는구나..) 금숙이도 나도 눈만 감으면 뱀이 그렇게 많이 우글거리고 나타났다는 것인데 돌아보면 뱀이라는 것이 글자에너지였던 것인데 금숙이는 그것을 쳐내는 과정을 거쳤고 나는 기도로 그 에너지를 소화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차이. 이것이 금숙이와 나의 가치관이나 관점이 달라지는 것인지도.. 한다. 금숙이를 만나게 한 하늘의 안내는 내가 먹물에서 몸물로 이사를 하라는 지시였던 것이고 그래서 글도 잘 쓰지만 몸을 부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끌림을 나는 잘 따라왔던 것이고 지금은 소리와 몸짓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훈련을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니 금숙이가 해준 역할에는 항상 감사함이 있지만 금숙이의 소소한 일상이야기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영역이어서 듣기 싫어하는 것이지.

 

김순자여사님의 일대기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 중학교를 마치고 오빠들을 공부시키어야 하는 환경에서 염소 서른다섯 마리를 데리고 산으로 다니게 되던 시절이야기에 산으로 가면 늘 산신령이 나타나 염소들도 자기도 보호해 주더라는 이야기와 결혼해서 겪은 것과 막내를 낳고 자기가 헤매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자기에게 ESP를 권해서 그곳, 당시 한진고속터미널 3층인가에서 수행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체험기.. 엄마와 겹쳐 이해하게 되면 될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순자 님의 근래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문자를 보여주시는데 문장이 참 좋더라. 여사님 글 잘 쓰시네요. 문장가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내공이 있는 문장이네요.. 했더니 자기의 글을 보고 노기등등하던 상대가 감동을 하였더라는 것도 나로서는 내가 성장하는 크기에 따라 인연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 옥희여사님을 이어 순자여사님이 등장하는 것도 나로선 재미나다. 성장하는 크기에 맞는 인연이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인연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가를 보면 내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가 보이는 것이라고.. 순자여사님도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옥희여사님도 순자여사님도 내가 너무나 신기방기하다고 하신다. 어쩌면 이렇게 활발발하고 힘이 넘치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손을 잡고 이름 부르기. 옥희여사님도 순자여사님도 상당히 조용조용하신 분들인데 나를 만나면 시끄러워져야 한다.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신순자 님 등장 나를 만나면 에너지가 활발 발해 진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나에게 말하지 말고 본인이 활발 발해 지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 자 자기 이름 부르기 하자 하고 열심히 여섯 번이나 했는데 하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앞의 소리를 초치는 말씀이라 에헤 열나게 하고 말아 드시네 다시 하자 하고 일어서서 새로 하기 김순자 이름도 부르기 노래도 한곡 작사 곡하여 놀기 자전거 타고 지나가시던 분이 우리 노는 것을 보고 참 재미나게도 논다는 표정 웃음 지으시고 가시더라

신순자 여사님은 상당히 재미난 분이신데 맑다. 그리고 솔직하다. 내가 뭐라고 하면 바로 교정을 하시는 분이신데 오늘 소리를 가르쳐 보면서 다음에 만나면 좀 더 내려보자.. 하고 헤어졌다. 기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

내가 기를 말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한 세계를 올라섰다는 것이 되겠다. 과학적인 검증을 늘 중심에 두었다가 이제 기라는 세계는 과학보다 넓고 높아서 검증할 수 없는 세계라는 것.  

 

신순자 님은 계단이 있는 윗길로 우리는 아래로 길을 갈라서 헤어졌다. 김순자 님은 이시아로 가는 굴다리에서 헤어지고 걷는데 김경순 님 보여 이름 불러 화잇팅하고... 우짜든동 고함지르기 량은 채우게 되네. 조용조용 다닌다고 나름대로 생각하지만 하루의 고함량은 어떤 상황이 생기든지 채우고 있구나 하는 것 

 

비오시는 아침에 나서 해님 맑은 하늘아래를 걷는 행복 경자가 내일 농막에 가려나 하는데 봉무동으로 다니면서 하는 수업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패스 

 

순자 님은 밥대접을 하시려 하지만 내가 밥을 같이 먹는 일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지라 사양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면 참 조심할 밥이네 한다. 왜 사람이 귀신보다 무서운지를 공부하면서 사람귀신이

밥을 딛고 들어온다는 것도 알게 된다. 제사에 상을 차리는 것처럼 사람도 밥상을 놓고 기의 저울질이 일어난다는 것.

 

사람은 죽은 자가 남긴 원혼보다 무서운 존재다. 즉 죽은 자의 원기를 인식하고 공명할 수 있는 크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자기의 욕망을 욕구를... 발현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신도 귀신도 살아있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라고 보니까 사람이란 살아있는 귀신이기도 성령이기도 하다. 그러니 밥을 놓고 기세를 저울질하는 것이 인간관계다. 해변가의 예수가 자기는 떡을 가져와 굽고 제자에게는 잡은 생선을 가져와 같이 상을 차리자 하였다

 

즉 밥으로 상하관계를 만들지 않고 수평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즉 내가 내놓았으면 너도 밥에 대하여 찬을 내놓아라이다. 다시 말하면 앎에 대한 삶을 간증해 봐라이다. 이렇게 알았으면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후기를 쓰라는 것이지. 예수는 떡을 구웠고 제자들은 밤새 수고하여 잡은 생선을 가지고 온다. 이런 관계가 교학상장이라고 하는 공부하는 자의 자세다.  

 

내가 정보를 나눔 함에 밥공양을 하시려는 마음은 알지만 내가 밥을 같이 먹어도 허물이 없을 만큼 거리감이 있는지 없는지 를 생각한다. 좀 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 밥 한 그릇에 장자명분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 인연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자유인지 아는 이들은 인연 만드는 것을 가장 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