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걷기와 말하기 그리고 기록하기

청향고은 2023. 4. 3. 18:58

걷기와 말하기 그리고 기록하기

 

걷기는 발과 머리의 소통법이다 말하기는 심장과 해마의 연대법이고 기록은 눈과 귀의 협연이다

율하천으로 다니게 되면서 세미와 같이 걷게 되면서 다루는 이야기들

많이 걷는만큼 뇌파가 세뇌된 정보를 털어내고 내 몸에서 생산하는 정보로 갈아입는 속도가 빠르리라 생각한다

 

선무당이라고 하고 앉은 박수라고 하는데 선무당은 걷는 에너지로 삼라만상의 에너지를 공수받는 것이고 앉은 박수는 내 안의 오장육부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라고 본다

 

‘무당’이라는 낱말에 대한 그대의 개념이 어떤가에 따라 내가 설명하는 정보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지만 나는 ‘무당’이라는 개념을 무당무에 집 당이라고 하는 한자와 한글‘무’와 ‘당’이 어떤 에너지로 생성된 것인지를 설명함으로 개념을 삼는다

 

먼저 무당이라는 ‘무’라는 한자의 구성은 H를 돌려놓아 장인공이라 하는 기호와 좌우 사람 ㅅ 으로 구성되어있다. H를 장인들이 쓰는 도구를 뜻하는데 여와복희의 곡직자거나 프리메이슨(자유석공 건축자)이 쓰는 도구의 기호이다. 동서양이 같은 기호를 쓰고 있다는 것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했다고 하는 설명을 한 글자로 요약한 것이 ‘무당 무’로 하나님의 창조놀이를 의미한다.

한글 ‘무’는 훈민정음해례에 의하면 중심토에 해당하는 ‘ㅁ. ㅂ.ㅍ’에서 머리인 ‘ㅁ’이다

‘무’는 모음의 방향성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에너지다. 머리의 역할이 위에서 아래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그러면 ‘당’은 머리가 정보를 내려보내는 곳으로 집 당이라고 하는 것이지 하여 무당이라 하면 머리집이다. 몸이라고 하는 글자가 머리와 집을 포함하고 한자에서는 집을 ‘스’라고 한다는 것은 한자공부를 하면 안다 왜 자연이라고 할 때 ‘자’를 스스로 라고 하고 어떤 것이 스스로인지는 ‘무당’이란 한자를 다시 풀어내어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뜻이 무당 ‘무’라는 것

아마 이렇게 풀이가 가능한 이는 현재로 나 외에는 없을 것이다 무당으로 창조되었기에 무당 즉 자기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사람이 신이다 고 하는데 그대도 나도 유일신인 당연한 이유다 그대와 나는 ‘몸’이라는 창조주에 의하여 발현된 ‘체’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인 ‘몸’이 보이는 ‘집’으로 드러난 것 이것이 ‘무당 무’의 본래 뜻이다

그래서 무당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자 모양이라는 것이다

 

한동안 ‘무당’에 대한 개념이 만들어지지 않아 언어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외연의 무당이라는 왜곡된 정보에 대한 이해력이 약했기에 그러하였을 것인데 이번에 역성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율하천으로 걸으면서 그 동안 세울 수 없었던 개념이 드러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이 문장이 ‘몸집’이라는 것이고 무당 무 Hㅅㅅ 이 되구나

그리정리되니 외연의 무당계에 대한 정리가 깔끔하게 된다

모든 이가 무당이다 살아움직이는 이는 선무당이고 움직임에서 나오는 소리는 앉은박수다 앉은박수라고 해서 여태 몸자세로 생각했는데 선 무당의 걷기에 대하여 앉다고 생각한 것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라 하신다 앉다는 것은 몸자세이기도 하겠지만 두 팔이 무엇인가 당겨안는 것으로 좌우 두 손이 마주하는 ‘포옹’이라는 ‘안음’이라고 하신다. 하나가 깨어진다 앉은박수는 포옹무당이라고

선무당은 홀로무당이고 앉은박수는 더불어 즉 너와나가 공명하는 박수치는 행동이라고

발이 걷고 팔이 안는 것 이 두동작을 실행하는 것이 무당 무자를 아는 공부라고 하는 것

물론 공부를 하다보면 한 글자에 닿는다 글자 하나가 씨알이니까

 

김일부 선생님은 그림자 영 자 한자로 자기의 사상의 씨알을 삼으신 것인데 그 한자를 씨알로 하기위하여 19년을 그 글자를 얻기위하여 영가무도라는 수행을 하셨다 하시더라

 

한 소식을 얻는다는 뜻이 한 글자 즉 자기사상을 만들 씨알을 얻는다는 것이다. 남들이 만들어내는 정보가 아니라 내 발과 팔이 걷고 손뼉침으로 쌓은 에너지가 어떤 한자 한자로 드러나는가 그것을 씨알 하나 얻음 한소식 깨달음. 영생을 만들 터를 얻음이라고 한다. 이름이라는 것이 씨알이다

그대와 나는 세 글자를 받아있다 한글자를 얻으려 17년 굼뱅이 세월도 19년 영가무도도 해야 얻을 수 있는 씨알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석자나 얻어있는 존재가 그대와 나이다

17년 매미로 하자면 51년을 공부해야 하고, 19년 영가무도로 하자면 57년을 공부해야 얻을 수 있는 씨알 세개다. 그런데 내 노력이 없이 그저 받은 이름 석자의 무게가 만드는 것이 ‘이름값’이라고 하는 것이고 하여 이름값을 풀어내는 것을 몸의 의지라고 한다

 

이름을 불린다 즉 내 몸이 지고 있는 이름의 무게값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무속에서 쓰는 말이 신불림인데 이때 신이란 몸이다 그래서 몸주를 모신다고 하고 몸주를 모시면

모신 신을 불린다고 하는데 모신 신의 실체가 그대와 나의 ‘이름’이다.

 

그외 무엇이 그대가 모신 ‘신’이겠나 나는 내 몸이 지고 있는 이름석자가 모신 신이라 이해한다

내 이름 버리고 남의 이름을 지고 살아가는 것을 ‘빙의’라고 하는데 자기이름을 누르고 다른 이의 이름을 불리는 살이를 하게 되는 것을 ‘노예의 삶, 중생 또는 죄인 또는 카르마’라고 한다

 

자기이름을 불린다는 것 타인이 준 이름이지만 내가 불려야 하는 이름에 대하여 무지함에서 이름을 알아 불려 풀어내는 구원의 대상이다. 강 길을 다니며 그렇게 ‘이름’을 묻고 부르기를 가르치며 다녔던 이유가 이제 분명해진다

 

오늘 자현스님의 강의를 듣는데 종안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종을 두두릴 때마다 그 이름도 울려퍼지라는 뜻이라고 하시던데 그야 그렇게 풀 레벨이시니 그러하겠지만 몸에 부여받은 이름인데 내 이름을 어떻게 해야 울려나도록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않을까

범종을 불사받으려 하시는 말씀이지만 내 몸이 이미 범종이고 법종인데 무엇으로 공이를 하여 밖에서 안을 또는 안에서 밖으로 울리도록 할 것인가를 가르쳐야지 가르친다는 것은 밖에서 공이로 종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종안에 종좃을 달아 두드리는 것을 설친다고 하게 된다

밖에서 공이로 두드림과 안에서 두드려 소리울림을 만드는 것 가를치고 안을 두드리는 것린데 나는 가를 치는 것을 순음이라 하고 안을 두드리는 것을 설음이라 하여 가르치고 설친다라고 실천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가를 치는 것은 순음으로 불을 붙이는 것이고 안을 치는 것은 설음으로 샘물을 길어내는 것이라고

 

물이 찰랑이듯이 침이 튀도록 설쳐야 한다 순설후를 수련한다는 것은 이름을 풀기위한 기본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다

 

순설후를 설명하기위해서는 이론으로만은 되지 않는다 너에게 내가 먼저 순을 내고 설쳐보여야 한다

입술을 내밀고 부르르르르 혀를 아래위로 타라라라락 그렇게 먼저 시전하고 따라하라고 하는 것 그렇게 남에게 가르치고 설치다보면 내게 유익이지 이름을 부릴 수 있는 힘이 쌓이니까

 

내 몸에 새긴 이름이 머리엔 윤이고 몸엔 영이다 윤엔 날 일이 부수 즉 머리이고 영엔 달 월이 부수이다

이 이름을 얻기위하여 걸어온 세월이 얼마였을까 개명을 하게 되도록 에너지가 적금되었고 새로운 세계를 걸어갈 내 몸의 ‘신’으로 ‘윤영’ 이란 이름이 온 것이구나

예수의 명패 자칭 유대인의 왕 명패라는 것은 이름을 새긴 패이다

내 이름을 새긴 패를 우리는 명함이라고 하지 그대에게 주어진 이름이 얼마나 많은 세월에 얼마나 많은 피를 머금으면서 내려온 생명꽃인지 인식하는 것 그것이 정체성을 안다

생명록에 이름이 기록된다. 영생을 얻는다는 문장으로 전한다. 내 이름이기 이전에 누군가에게서 불려지던 이름들이다. 내게서 불림하는 ‘이름’이 그 값에 충족되면 별빛으로 하늘로 오름하게 되고 그것를 성불이라고 하고 별자리를 이룸이라고 한다

그대가 별에서 와서 별로간다. 가는 것은 그대의 이름이다

한자라는 그 한이 은하수 한이다 몸은 흙으로 가지만 이름은 은하수 별나라로 간다

전도서에 의하면 땅은 영원히 있으니 땅으로 돌아가는 몸도 영생이고 혼은 하늘로 라고 했으니 혼인 이름석자도 별이라는 것이지 다만 그대와 내가 ‘이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무지이고 지옥이고 그런것이다

 

이름을 푼다는 것은 타인의 풀이에 기대도 되지만 불린다는 것은 자기의 입술에서 올리는 꽃

너가 나를 부름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름이라는 이 수행은 가장쉬운 염불이지만 가장 힘든 염불이기도 하다

 

세미와 만나 소리를 하면서 이름부르기를 먼저 가동했다 만날 때마다 자기의 이름을 가장 큰 소리로 부르짖음 그렇게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풀어내는 것. 부름과 풀이 부름은 감정 즉 피의 향올림이고 풀이는 이성 즉 물의 정화다

 

이번에 재미난 이야기가 큰 시누이와 톡으로 대화가 오가는 것인데 내가 보낸 공양물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가난하게(?)사는 남동생의 환경에 대한 누나로서의 베품이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가는 길을 분명하게 밝힘할 수 있는 기회구나 하게 되었다. 서로가 다른 길을 가는 것에서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윤리와 도덕도 권력이고 지배력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하나님은 그것을 넘어 생명이라고 내 생각을 전한다

 

고착된 통념이거나 통념에 고착된 정보중에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이 생명을 억누르고 삶을 얼마나 조이고 압박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윤리와 도덕이라고 하면 선이라 착각하는데 악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지 기독교가 특별히 그러하지 않겠는가. 생명에는 윤리나 도덕이 끼일 자리가 없다 불은 타오르고 물은 흐르는데 그것에 무엇이 윤리이며 도덕으로 잣대질 할 것인가

 

하나님을 모르면 윤리와 도덕이란 선악과를 잡고 산다 하나님을 알면 물과 피로 거듭나는 삶을 산다 순설후가 물과 피의 활동을 하는 기본수행이다

 

하나님은 그대자신이며 나이다 나와 그대에겐 이름 석자가 있다 최소한 51년에서 57년을 불리고 풀어야 알 수 있는 씨알이다. 강윤영을 부르고 풀어낸다. 물론 그간 이름을 부르고 푸는 원리를 알았기에 이제는 헤매지 않고 할 수 있다. 내 이름이지만 은하수에서 빗어서 입혀준 별옷 천의무봉 그대와 나의 정체성은 이름 석자에 있다는 것

즐거운 공부 Joy Study

 

감정은 후천적인 것이다 하신다. 요즘 그간 세뇌를 허락했던 개념들이 와르르 헐어진다. 체험되지 않고 축적한 지식이 지혜로 변신을 하는 것이지. 감정이 후천성이라고 하시는데 그럼 선천적인 것은? 하고 물으니

당연히 이성이라고 하시지. 이성과 감정에 대하여 디테일하게 파고 들 에너지가 없었다가 이제 마주하게 되는 것

 

이성과 감정을 나르시스와 골드문트라고 헤르만 헷세가 풀었는데 나는 이제 이성의 근거와 감정의 실상을 다루게 되는구나 예수의 비유 길잃은 양

 

99마리의 양이 있고 한마리의 양이 있는데 무엇이 우리안墻內의 양이고 무엇이 길 잃은 우리밖의 양일까 했더니 이성은 태안일 때 정보를 모은 것이고, 감정은 태밖으로 나왔을 때 처음겪는 상처가 만든 느낌이라고 하신다

 

한마리 양이 도발한 그 도발이 만든 길을 따라 99마리가 밖으로 나가 모든 양이 밖에 양이 있게 되는 상황이 되면 다시 한 마리가 안에 남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으로 한마리의 길 잃은 양은 소속감이 없을 때

생기는 낮선 느낌으로 감정이고 한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될 때 나타나는 느낌이 감정이라고 하는 것

 

익숙한 것을 선천적이라고 하거나 습관이 되어 아무런 의문없이 행동하거나 말하게 되는 것으로 다시 설명하자면 태안에서의 정보이고, 후천적이라고 하는 것은 불편하고 낮설고 새로운 알지 못하는 상황으로

태밖의 정보라는 것이지

 

그대에게 익숙한 것과 불편한 것을 한번 생각해봐라 그러면 선천적인 정보와 후천적인 정보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가름을 하게 되면 그대가 익숙하다고 생각한 것을 설명하라면 전혀 낮선 것이구나 알게 된다 늘 하는 말이라 감각이 없는 습관인데 그 말 뜻이 뭔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갑자기 그렇게 익숙한 말이 놀랍게 낮설어지는 것이지

 

내가 늘 겪는 일이다 쓰는 언어를 어원과 말값을 풀어보라고 하면 말이 막히는 것 익숙한 것을 낮설게하기라는 것이 쓰는 언어의 어원을 말해보기라고 하면 될 것이다 얼마나 그대는 말의 뿌리와 역사를 알고 쓰고 있는가

 

태안과 태밖을 나눔하는 실상과 체험현장 너와 나 공통의 증거와 현장확인은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동일의 것은 엄마의 피 안에 있다가 내 피를 흘리게 됨으로 피맛을 몸이 새김하게 되면서 반응한 것이다

탯줄을 자름으로 생긴 아픔이 너와 내가 공유하는 같은 감정이라고 한다

 

감정은 통각이다는 것이지 피부가 느끼는 것이다 이성 reason은 어느 시점부터 느껴지는 압박 답답함, 어두움을 인식하는 느낌이다. 아기가 태안에서 자랄 때 다섯달즘 되면 태동을 하는데 태동이라는 것이

태아가 자기가 자랄 수 있는 곳의 견적을 뽑는 일이라고 한다 엄마의 배속이라는 공간을 확인하고 그 공간에 맞는 최적의 신체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견적뽑기를 하게 되는 때가 128일 즘이 되는 시기라고 한다는 것이지 64일간 꼴構을 갖추고 64일간 틀機을 이루고 나면 꼴틀을 따라 살을 입히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한다네 128일에 152일의 건축공정을 합하여 280일 생명창조라고 한다든가

 

이성은 태안에서 오개월이되면 뇌파와 췌장과 지문에 의하여 생기는 로그log로 태동이라는 글로 출발하고 감정은 피흘림이 체험된 자리 즉 탯줄을 자른 기억에서 시작한다 이성의 자리를 태동이라고 하고 감정의 자리를 탯줄이라고 한다는 것

 

그리하여 감정의 다른 이름이 피흘림이다 이성은 답답함을 인식할 때 가동되고 감정은 탯줄을 잘릴 때 몸이 받았던 통각과 같은 상처를 받으면 가동된다. 상처를 받는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하면 안된다

 

탯줄잘리듯 뭔가에서 잘릴 때 하게 되는 말로 흔히 상처받았다는 말의 실제를 파악해보면 알아야 할 상식을 갖추지 못해서 스스로 무식함에 노출되어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이다 부끄러움과 상처는 다른 영역이다

부끄러움은 무식이 만든 것임으로 모르든 것을 알게 되면 극복이 되는 영역이지만

상처는 유무식과 상관없이 관계의 단절이라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다는 것

 

이성은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이고 감정은 하나에서 분리될 때 겪은 통각을 되풀이하게 되면 소환되는 몸의 느낌이다. 가장 큰 상처는 실연이라고 하거나 배신이라고 한다. 사람이 겪는 가장

상처가 지옥이라고 하게 되는데 실연과 배신을 당하면 나타나는 감정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게 되면 반작용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기댐에 따른 기대지 못하게 됨이라는 상황이 있고 그것이 실연이나 배신으로 나타나는데 관계가 끊어짐이다. 태어나면 죽음이 있듯이 인연에는

실연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인연의 길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부의 길이다

 

부끄러움은 공부를 하면 극복이 되지만 상처는 공부의 문제가 아니라 탯줄의 문제이듯이 인연이라는 것에서 생기는 것인데 엄마와 아기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다

 

의지하던 것에서 분리되어 홀로 서야하는 출발에서 받는 상처는 홀로 설 때 비로소 치유가 된다. 그래서 평생공부는 부끄러움을 벗어나기 위한 이성과 탯줄을 끊고 홀로서기위한 자기만의 잣대 중맥을 세우는 감정이다

이성은 외부에 정보가 있고 감정은 내부 피안에 정보가 있다는 것 잘린 탯줄을 대신할 중심을 만들어가는 것을 마음공부라고 한다

 

잘린탯줄을 다시 잇기위한 과정 무엇으로 탯줄을 삼을 것인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길을 찾는 것이고 길을 찾았으면 길을 뚫어가는 것이 길딱기이다 나는 탯줄을 대신할 탯줄을 소리줄로 하며 소리줄을 만들어

탯줄잘림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외연에 있는 정보를 당겨들이는 것이 소리그물 천라지망을 던져 길어온다 내 정보는 그렇게 두드려지고 기록된다. 내가 만든 탯줄 소릿줄로 우주와 이어지고 이어진 우주의 배꼽 움베르또 세베리에서 제크의 콩나무처럼 정보를 훔쳐낸다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이러하듯이 너도 소릿줄을 만들면 나와 같아진다고

소릿줄 기루는 법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복음이다고 하는 것

인연의 길이에서 실연이나 배신이라는 상황을 비켜가게 되는 것이 너와 내가 하나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게 될 때이다.

 

이런 정보를 받게 되면 글을 두드리는 나로서도 신기하고 신나는데 이런 정보를 만나게 되기위해서 이성이 무엇인가에 답답함을 느낌이 선재했다. 답답함을 인식한 의지체를 선재동자라고 하거나 나반존자라고 하거나 신태영아라고 하거나 한다

 

이성은 무엇인가에 갇힘을 인식할 때 생기는 의지다. 답답한 놈이 우물판다고 하지

태안의 생명이 다섯달이 될 때 태동을 통하여 자기가 얼마나 확장할 수 있나는 계산한다는 것인데 그 계산을 하는 것이 뇌와 췌장과 지문이 협동한단다. 태안에서 자기확장을 해도 되는 만큼을 계산하는 의지를

선재동자라고 하고 다섯달을 건너가 태안을 가득채움하고 더 이상 확장을

할 수 없음을 알고 이사를 하게 되는 아기를 남순동자 라고 한다네

 

태어나도록 하는 에너지가 가동되는 아기가 되면 고난의 여정 산도를 밀고 태밖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것이어서 남순동자라고 하고 외연에서 예수스토리로 전해진다 십자가의 여정은 태아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자궁을 벗어나는 것의 설명이다고 나는 이해한다 그렇게 이해할 때 그대와 나의 공명장이 소통할 무엇이 있게 된다는 것

 

태어나면 첫번째 외부에서 분리불안장애라고 하거나 우주로부터 버림받음이라 하거나 에덴에서 추방이라 하거나 하게 되는 탯줄자름이 만드는 상처가 생긴다 배꼽이 상처의 기록이다

 

이 상처를 우리는 근원적인 상처 아담의 원죄라고 하여 이 상처를 치유받으려는 의지를 구원 성불 열반 등으로 이야기한다 분리되지 않은 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 태어나는 것은 이성의 계산이다 손익계산을 해서 이사를 해야겠다 하여 아기는 출산일을 정하고 이사를 하는데 이사를 하고나면 신고식을 해야하는데

그 신고식이 탯줄자름이다. 이성이 계산하지 못했던 것 즉 넓은 곳으로 나아가자는 확장력이 태어난다는 것은 자궁과 이별해야함이고 이별에는 분리라는 것이 있음을 태어나서 피를 흘리는 통각을 겪음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나기위해 전력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이성에 따른 것이다. 안에서는 더 이상 존립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사를 하자 이사를 하는 것에 따른 모든 것은 죽을 힘을 다한다 이다 안에서 머물면 그것이 태아의 죽음이지만 자궁을 벗어나기위한 도전은 자궁과 태아 스스로를 자궁도 살리고 태아도 사는 선택임으로 하늘과 땅이 돕는다고 하는 생명의 꽃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기는 태어나고 신고식을 치룬다 신고식이 만든 것이 감정이라는 반응이다 탯줄을 자르고 꺼꾸로발을 잡고 궁둥이를 두들겨맞음이라는 것. 태어난 아기가 당하는 태어남 완료 즉 이사를 완료했다는 증명서가

피흘림이라는 감정이되는 것. 자 다시 설명하자. 이성은 본래 내재된 것이다

좁음을 인식하게 되면 넓히고자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중심이라고 할 때 그것이 본성이고 이기적이라고 할 때 그것이 생명력이어서다. 좁음을 알고 이사를 하여 자기의 영역일 넓히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생의지라고 하는 것 좁음에서 넓히기위해서 따르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이성력이다. 이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어서 제 아무리 고생 고생 개고생이어도 스스로 한다

본성은 좁음에서 넓음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이성력이다

 

그런데 그에 따른 반작용인 감정은 태어나면 영역을 넓히면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값을 지불해야하는 세금같은 것이다. 예수에게 세금을 요구한 것 같이 확장된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 세계가 요구하는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고 그것을 ‘감정’이라고 한다. 하여 감정이 생긴다고 하는 말이 나온다 감정은 후천적인 것이고 이성은 선천적인 것이다 감정은 후천적이라 몸이 주인이지만 이성은 선천적이라 머리가 주인이다

 

새기고 새겨라. 지금 이 세상은 이성력을 확장시킬 학교라고 하더라 내가 선택한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를 알려면 뇌와 췌장이 협연하여 만든 좌표 지문을 보면 알게 된다. 지문은 알고 있다 는 책을 참고 할 것

그대가 속한 학교를 알아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통계로 만들어낸 것이

점성학 사주역학 등등으로 말하는 정보다 내가 태어나 어느 학교(자궁)에

들어왔나 파악하는 것. 그것을 후태동이라고 하는데 자기장체성을 의문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후태동이라고하여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

 

후태동을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태어나 자기가 처한 시공이 답답하다 갇혔다는 느낌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이성활동이 만드는 후태동 사춘기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선택을 하는 것

의식혁명이라고 한다. 의식혁명은 전심전력으로 이성이 한다 이것을 바울은 매일 죽노라고 했다.

 

어제의 틀에 오늘은 좁다고 알게 될 때 좁음을 벗겨내는 것 이성은 죽어야 산다는 원리로 가동되기에 죽음을 도전한다 내가 소리를 매일 해대는 것처럼

 

그런데 이성이 선택한 죽음이 새로운 태어남을 만들지만 그것에 따른 세금에 매겨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감정이 생긴다는 말이 된다. 양가감정이라고 하는데 좁음을 벗어난 새로움에 대한 시원함과 머물렀던

좁음에서의 기억에 따른 애착이라는 섭섭함이라는 것이다

 

좋음과 혐오는 양가감정이지만 좋음은 이성의 충족인 평안함이지만 혐오는 머물렀던 이전을 돌아보았을 때 생기는 불편함이다. 자기와의 화해라고 하는 말이 등장하는 영역이다. 좁음에서 너름으로 확장하게 되면 너름자리에서 좁음에서 살아온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한 나를 내가 미워하지 않고 보다듬는 것

좁음을 인식한 나를 인정하는 것 좁은마당에서 가졌던 인식레벨들 보고 허물어내는 것

 

내가 나의 좁음을 마주하여 그것을 허물어가는 것을 상처라고 한다 탯줄자르기. 이성을 확장하게 되면 내가 붙들었던 탯줄을 자르는 과정이 반드시 있고 그 과정에 생기는 것이 생살을 찢어내는 아픔이다

그래서 성장통이라는 것. 이성이 확장되면 확장되는만큼 생살을 찢어내는

아픔이 있다. 그래서 그 아픔에 운다. 많이 우는 것은 그만큼 아프기때문이고 그만큼 자라기때문이다

 

감정은 하나라고 했다. 피흘림에 대한 통각 피의 발화 그 외엔 이성이라고 답답함 억울함 두려움 불안....감정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은 이성영역이다 이성에 어딘가에 갇히면 불안 두려움 공포들을 느낀다

아기가 태어나면 공기를 느끼는 것처럼 이성은 느낌이고 감정은 생기는 것이어서 꽃이라 한다는 것 감정은 상처다

 

이성에 대한 반응이다. 너에 대한 나의 반응에서 통각이 있는가? 통각에 있다면 그것에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이다 . 이성은 감정이라는 통각을 통해 자람을 안다 아픔이 없을 때 그때를 성인이 되었다 한다 그대의 감정을 마주하기위해서는 그대가 이성적이어야 한다. 무지가 만드는 반응을 감정이라 착각하지만 그대의 무지가 만드는 부끄러움일 뿐이다. 감정은 너무나 고유하고 소중한 자산이다. 감정이 영체를 형성하는 밀알이라는 것을 그대가 알게 되는 때, 그때를 점하나를 찍었다고 하는 것이고 이 점을 두드려 탯줄 영줄을 만들어 우주영과 이어지는 것을 영생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2023, 계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お 유/란/시/아由卵施丫 북冊, 北  (0) 2023.05.02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자평字評  (1) 2023.05.02
3/24~3/31 일기  (0) 2023.03.31
막 간 다  (0) 2023.03.31
점사 占史를 본다觀는 것  (0) 202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