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 신계頣縘

나, 그리고 그대가 착각하는 것. 뇌의 치유법

청향고은 2022. 12. 24. 11:09

나, 그리고 그대가 착각하는 것. 뇌의 치유법

 

착각이라는 것은 뇌가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중 하나라고 한다. 뇌는 정보를 대하면

분리된 정보를 통합하여 그 정보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뇌의 창조력이라고 한단다.

내 글도 내 뇌가 정보를 통합하여 뇌가 불편하지 않으려함으로 나타나는 착각, 또는 왜곡, 또는 확장,

수축이 만들어내는 멀티버스거나 메타인지다.

생존에 이익이 되는 계산을 하여 그 값을 취하는 것이 뇌, 소프트웨어가 하는 수학이다는 것이지.

정보를 수신하면 그 정보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취하는 선택..그것이 뇌의 소프트웨어력이다.

가장 맛있는 요리를 원숭이 뇌요리라고 하는 이유도 정보를 계산하여 가장 이익이 되는 정보로 조합하는 힘이 있는 영역이라 같은 것을 선잇기하여 같은 에너지로 계산을 해낸 어느 뇌의 착각, 또는 오류의 동종요법에 기인한 요리여서 일 것이다. 이름이 같으면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동종요법이라고 하고 우리는 이 원리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름에 에너지가 있는 것이고 사물의 가장 맛있거나 힘있거나, 쓰임에...합당하다고 서로 계약한 문자나 기호로 이름을 매겨서 소통시키는 것이 문화Culture라고 했다. 땅에 뿌리를 내린 자연의 정보를 캐내어 땅위를 다니는 사람들의 문화원리로 삼은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성인 뿌리를 땅아래로 내린 것이 좌표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성서에서는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고 하게 되는 것이고, 아담이라는 것이 붉다 흙, 흙에 뿌리를 둔 생명이다는 뜻이고 땅위를 다니면서 생존을 영위하게 되는 정보를 동물성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고 그 동물성을 성서에서는 생령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렸다.

식물성이면서 동물성을 공유한 것이 '나'라는 생명의 본질이다. 생기와 생령이라는 이 가치와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다보니 몸은 하드웨어 즉 식물성이라면, 머리는 소프트웨어 동물성이 되는 것이고 몸은 반복되는 패턴을 따라 행동하지만 머리는 자기의 이익을 계산하여 가장 가치가 있는 정보를 찾아 그 정보를 통합하여 그 정보값을 몸에서 실천하도록 하여 계산한 값과 현장값이 같은 것인지를 확인하여 생존패턴을 조절하는 것이겠다.

 

뇌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누구나 자기의 뇌가 계산한 가치값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구나..가장 비싼 요리가 뇌가 만드는 정보요리이고 그 요리는 글이라는 그릇에 담겨 전달이 되는 것. 성서의 에덴동산이 뇌를 설명하는 것이겠고, 창조주와 아담과 유혹자의 이 관계를 설명하는 모델로 가져와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골방에 들어가라는 가르침을 나는 불세례를 받으면 뇌파가 활성화되어서 아홉가지 성령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물세례는 머리를 물에 넣었다가 꺼내는 세초식, 삭발식, 임사체험..들로 가지치기를 하여 이해한다면 불세례는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고 하는 설명처럼 예수의 발에 나드기름을 부은 여인의 행적이 시대를 건너 지역을 건너 대대로 전파될 것이라고 한 것처럼 봉인된 뇌의 정보를 열어내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남이라는 것에서 지금도 외연에서 에덴을 찾고 있는데 외연의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내면이라고 하는 뇌의 정보라고 보는데 에덴은 뇌에서도 가장 먼저 활동한 선조체라고 보고 있다. 선조체의 확장이 좌 우뇌와 소뇌의 활동으로 실험확인되는 것이지 않을까..선조체는 착상하여 14일동안 가동된 에너지로 정보를 수신하는 바탕이라고 보는 것이고, 이 바탕위에 세워진 것이 뇌세계라고 본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와 문명의 흐름은 착상하여 14일동안 프로그래밍된 14일의 비밀을 밝히기위한 것이다. 인류의 에너지를 모아서 우주선을 띄우고 우주로 나아가려는 이유는 14일의 비밀을 밝히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심장박동이 시작되는 21.6일부터 아이가 어떻게 진화하는지는 인류의 지성이 생물학을 딛고 대부분 밝혀낸 것이고 지금 인류가 도전하고 있는 비밀이라고. 심장박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뇌(설계에너지)에서 정보를 계산하였다는 것이다

감성은 이성의 열매다, 사랑은 힘이다고 했는데 심장을 뛰게하는 시스템, 계산을 하여 그 원리를 따라 행동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태초이전은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고 문자도 없다. 심장이 박동하게 되면서 생명이 데이타로 잡히게 되면서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을 밝히게 되었고 그것을 나는 인체핵심발생학이라는 책과 그와 연결된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다큐들을 통하여 인식하면서 내 뇌가 동의하게 될 때는 즐거움으로 신나게 몰입하여 보고 듣게 되고 아하..이런 것이구나..라는 갈무리를 하게 되는 것

외연에서 밝힌 정보에서 14일의 여정을 뇌과학에서 밝히고 있는 단계인데 상당히 재밌다.

남들이 골치아프다 어렵다..고 하는 세계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뇌라는 미지의 세계, 봉인된 에덴의 세계이기때문이고 이 세계를 열기위하여 최고의 지성들이 도전하고 있는데 이 세계를 도전하는 의지를 발동시키는 것이 선조체의 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서 겹겹의 껍질을 파헤지고 탐사를 해야 되는 한 알의 밀알. 그것을 찾아서 14일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것은 머리가 되고자 하는 근원적인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교회이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다..는 원리를 따르면 그리스도의 머리인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도전이 우주로 나아가고 바다 깊이를 들어가고 동과 서를 이은 길을 바닷속으로 하늘로 길을 내는 진화로 나타나고 이제는 안방에 앉아서 우주를 본다고 한 동양선인들의 말씀을 서양기술자들이 성취시킨 시대다. 남은 것은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선조체라는 영역인데 이 부분을 동양에서는 오래된 미래에서부터 다루고 있었다고 본다. 뇌에도 선조체가 있듯이 심장에도 심장의 작은 방이라고 하여 선심이 있다는 것이지. 심장안의 심장..이 심방이 최초의 박동을 한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선조체의 명령을 받아 그 명령을 행동한 곳을 초심이라 하고 '심포삼초'라고 하여 보이지 않는 장기라고 하기도 한다는 것이지. 우리의 일상언어인 심뽀가 어떻다고 하는 말의 심뽀는 심포이다. 심포도 선조체처럼 세갈래로 나눠져있다고 삼초라고 하는 것이다. 선조체도 세구역으로 나뉨한다.

선조체와 심포삼초는 오래된 미래로 태초를 연 수면위를 운행하는 바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면은 뇌파이고 바람은 심포삼초라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방법이다. 동양은 마음을 심장에 있다고 했고 서양은 뇌에 있다고 했는데 뇌의 어디가 마음이냐 하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영안이다 3의 눈이다..로 설명을 하고 성서에서는 선악과를 보았을 때 인식한 하와의 서사로 설명한다. 보암직, 먹음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이고 나는 선조체 붓디체를 보암직(관자재),조가비체를 먹음직(관세음)창백체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반야바라밀)라고 조합한다. 내가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것은 내 뇌의 계산에서 최적의 가치라고 해서 드러내는 것이고 이것에서 다시 워프를 하여 더욱 최적의 계산을 하게 되면 이 해석을 벗어나 새로운 값을 제시할 것이다. 글이 단문에서 장문으로 바뀌는 것은 뇌의 활동이 활발발하여 계산하는 공식을 기록으로 흔적을 남겨 그 다음의 여정을 탐색하기위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내 글은 상당히 길다. 이전보다 글이 세밀해지고 좀더 촘촘하게 짜기를 하고 있다. 지금 내 뇌의 계산에서는 단문으로서는 해석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장문으로 풀어가면서 천라지망에 걸리는 153마리의 고기를 당겨내어 가름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지. 글이 길어지는 것은 그만큼 뇌파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조율하여 통합하는 과정을 내 몸이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지.

 

물의 정보를 이성, 뇌의 세계라 하고 피의 정보를 감정, 마음의 세계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성을 공부하는 것은 외연정보를 습득하는 것이고 객관적인 정보 과학검증을 거친 것들을 찾아 익히는 것이다. 카더라통신에서 팩트통신 Fact News 이 되는 공부를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룬다고 한다. 정신력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이해력에서 생기는 자신감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것이고 그 힘을 정신력이라고 하고 아가페 또는 필로소피아라고 하는 세계. 그대가 사랑한다고 말을 할 때 그 사랑의 소속을 스스로 점검하라는 것이지. 정신력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공감력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육체적인 교감을 사랑이라고 하는지..이런 것을 파악하여 쓰임에 맞는 문자나 언어를 쓰는 능력을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같다고 했다.

 

쓰임에 맞지 않는 문자나 언어를 쓸 때 섬세한 신경감각을 가진 사람은 문자언어에 불편함을 느낀다. 즉 감각이 있는 신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에너지체와 무신경한 이의 차이는 남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데 혼자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에서다. 내가 강 길을 다니면서 남천나무에 올라오는 가시박넝쿨이 불편하게 느껴져 걷어내는 행동을 하는데 김경순여사님도 자기의 신경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베어내면서 다니시는 것이고, 내가 남천나무의 넝쿨을 걷어내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에 불편하여 국토정비를 하시는 윤선생님의 에너지. 마음이 불편하여 그 불편함을 편하게 하려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은 너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내 신경을 거슬리는 것을 해결하여 신경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지. 신경이 예민한 이와 감각이 섬세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나..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객관적인 정보 너의 반응과 상관없이 환경에 대한 나의 인식, 물색을 수신했을 때의 반응이고, 감각이 섬세한 사람은 주관적인 정보, 혈색을 알아채게 되었을 때, 즉 너의 정보에 반응하는 나의 느낌을 알아채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너의 반응에 대한 내 반응을 섬세하다고 하는 것이라고...강 길을 다니면서 내가 남천나무를 손보는 것은 남천나무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불편하여 손질을 하는 것이고, 손질을 해주었다고 남천나무가 감사헌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족해서 흐믓하게 길을 걷는 것이 감사헌금이 되는 것이라는 계산관계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내 말에 대한 너의 반응과 그 반응을 계산하는 것이다. 내가 던진 말에 돌아오는 너의 말에서 손익계산을 하게 되는데 이익이 되는 반응이 오면 기분이 좋고, 손해가 되는 반응이 오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던졌을 때 너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에 대한 내 계산을 감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글은 대표적인 신경계 정보이고 말은 대표적인 감각계의 정보다. 그래서 글은 일방적인 것이고 말은 쌍방향이라고 한다. 글에 상처를 받는 것, 즉 글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렵다고 느껴질 때 덮어버리는 해결책이 있고, 오기가 생겨서 이해가 될 때까지 붙들고 파들어가 쉬워질 때까지 그 정보를 풀어가는 방법이 있다.

덮어버려 편해지는 것도 축복이고 풀어서 편해지는 것도 축복이다. 나같은 경우는 어렵다는 정보를 만나면 덮는 것이 아니라 반복으로 마주하여 쉬워질 때까지 쉬워져 내가 내 뜻대로 재해석이 되도록 파들어가는 에너지다. 이런 에너지가 어디에 근거를 두는가를 찾아보면서 내 사주의 지지 자오축유에 있구나 이해하고 자유귀문관살과 축오귀문관살이라고 하는 정보를 풀어보면서 아하..이런 에너지흐름을 설명하는 문자구나..알게 되면서 덮어버리는 선택이 아니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끝을 보는 선택을 하는 것이 라고 이해되면서 귀문관살로 이뤄진 내 지지를 좋아하고 감탄하고 존경하게 된다 이런 지지를 타고 오지 않았으면 이런 세계가 있음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리라..남들과 다른 지지, 즉 성격을 타고 왔고 그 성격대로 인생의 여정을 오고 있다는 것을 예순이 넘어 사주공부를 하게 되면서 바보 도터지는 소리를 한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그래서 너와 내가 다름에 대하여서 너그러워지는 것이고 귀문관살을 가지고 있는 정보를 만나게되면 나와 다른 귀문관살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인가..관찰하게 된다는 것이지.

 

귀문은 문자정보가 드나드는 신경의 이름이기도 하고 관살은 언어정보가 드나는 감각의 이름이기도 하니 귀문관살을 가지고 있으면 신경과 감각이 귀문관살이 없는 이들보다 예민하고 섬세하다. 이 에너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우울증이라고 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유없는 통증, 무거움 가위눌림..등등의 신경과 감각을 거슬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귀신들림이라고 흔히 하는 상황은 자기가 타고 온 귀문관살을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할 때 나타나는 몸의 현상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우울증은 신경에서 조증은 감각에서 만들어내는 것으로 조울이라고 하는 에너지는 귀문관살을 제대로 활성화하라는 싸인이다. 내가 귀문관살을 타고 있는지 사주공부를 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는데 이 공부를 하면서 내가 늘 느끼던 우울함 허무 ..등등의 증상들이 결국은 귀문관살을 겟세마네로 열어내면서 그 증세들을 차츰 극복하게 되고 귀문관살을 열어서 그 문으로 우주의 정보가 드나들게 하고 관살로 유익이 되는 것은 붙들어 기록을 하고 손해가 되는 것들은 태워소멸을 하거나 씻어 깨꿋하게 하거나 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작업의 과정을 글로 두드려내거나 소리로 검증을 하거나 한 것이라고..귀문은 글공부를 하고 관살은 소리공부를 해서 타고 온 성격을 풀어내라고 이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마다 타고 온 성격이 있다는 것이고 그 성격을 지지에서 파악하는 것을 '나를 안다'라고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지.

 

지식력을 함양한다는 것은 객관정보를 객관으로 잇기를 한다는 것이다. 지혜 즉 소피아라고 하는 이 실체는 객관정보와 하드웨어인 몸과 선잇기를 하는 힘이다. 점과 점을 선으로 잇는 것..그것을 줄긋기라고 하고 연대한다고 하거나 끈을 만든다고 하게 된다는 것이지 가방끈이라고 하는 그 끈, 초끈이라고 하는 그 끈..여기와 거기를 잇는 선을 만들어내는 힘을 사랑이라 지식력이라 능력이라..파워풀이라..하는 것이라고..정보가 여기 저기로 흩어져 있는데 같은 에너지값을 찾아 잇기..를 하는 것 그래서 이인삼각이 되게하는 것을 지식함양이라고 하는 것.

 

여기와 저기를 잇는 끈을 신경망이라고 한다. 신경이 둔하다는 것과 신경이 예민하다는 것의 차이. 여기와 저기를 인식하는 즉 정보가 분리되어있어서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의지를 예민이라고 하고, 정보의 관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둔감이라고 하는 것이고..나는 신경이 예민한가? 감각이 둔한가..내 글은 신경이 예민한 이에게는 울림이 되는 정보일 수 있지만 감각과는 상관이 없는 정보이다. 내가 다루는 정보는 정신력을 만들어내는 앎의 확장이기때문이다. 감각력을 기루는 것은 글이라는 것으로 접근하지 않고 소리로 접근한다.

 

객관이라고 할 때 머리에선 몸이고 주관이라 할때 몸에겐 머리다

오장육부를 싸고 있는 몸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좌우간뇌를 싸고 있는 머리를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하드웨어는 객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적인 논리에서 설명되는 정보세계라면 소프트웨어는 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인 서사로 설명되는 정보세계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개인적인 서사로 풀어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설명하지 못하는 팩트가 있고 설명되는 추측이 있다는 것을 삶의 양면성이라고 한다.

 

오늘 용자도반에게서 톡이 왔다 동지팥죽을 가져가라는 그 이면엔 지난 번에 부탁한 2023년 계묘년 달력을 공양받아왔다는 것이니 가져가라는 것. 퇴근하는 시간에 올라갈까 해서 톡을 보내었더니 세미나 듣고 있는 중이라 여덟시즘 마친다고 해서 세미나 끝나고 귀가하면 톡을 달라고 하였다

 

뇌과학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아침에 두드린 글도 다시 보면서 걷기 나갈 시간이어서 끝을 낸 글이라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은 느낌이라 카스토리로 옮겨서 다시 보면서 나를 진단하고 있는 문제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톡이 왔다. 뭔가 가져갈 것이 있나 살펴봐도 마땅히 가져갈 것이 없어서 빈손으로 나서는데 밤바람이 차가와 다시 들어와 목도리를 두르고 올라갔다 아구 추워라 바람이 볼을 스치며 지나가는 차가운 느낌 밤에 밖에 나오는 일이 별로 없으니 밤공기 그것도 깨끗하여 차가운 바람을 맛보는 것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고 하는 것이 이성은 겨울冬이고 감정은 여름夏이라고 하는 것인데 차가운 겨울같은 냉철함 즉 사실에 근거한 정보가 이성력이고 여름같이 찬란함 즉 행동에 근거한 정보가 감정력이다

겨울이 이성력이라면 가을은 이성이 되는 정보를 갈무리 하는 선행이고, 여름이 감정력이라면 봄은 감정으로 튀어냄의 선행이다 동지에 여름을 출발시키는 것 하지에 겨울을 출발시키는 것

 

겨울의 갈무리된 이성이 여름의 근거가 되고 여름에 펼친 감정이 겨울의 근거가 된다.

그대의 감정의 뿌리를 찾으면 동지에 닿고 그래서 동지팥죽에 새알을 빗어 넣는다. 신부를 한글로 콩팥이라고 하는데 동지 팥죽이 신부, 즉 콩팥의 상징이구나..콩은 부정, 팥은 보혈, 정자와 난자..라고도 압축이 되는 것이고 새알의 알이란 씨앗卵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새알은 새해 즉 묶은 해를 대신하여 새롭게 오는 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 임인해가 묵은 해라면 계묘가 새알이 되는 것이지. 동지에 새알을 넣는 팥죽을 먹는다는 것은 천지 새로운 주인을 받아서 내 에너지로 기록한다는 것이지 동지팥죽을 먹으면서 그대만의 동지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대의 겨울 긴긴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듣는가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하게 되는 나의 출발자리를 인식하라는 팥죽이다 긴긴 밤 이성지합으로 생겨난 나는 아버지 천간의 무엇과 엄마 지지의 무엇이 부정모혈로 만나 새알이 되는가..임인년이 나가고 난 자리에 계묘가 들어오는 것 에너지의 변환이라는 것이지. 귀문이 열리는 날이 동지에서 25일까지 사흘이다. 이때 열린 귀문으로 묵은 해가 나가고 새해가 들어온다. 새해맞이를 크리스마스, 성탄. 새해의 주인별이 태어남이라고 한다. 성탄이라는 이 말이 천간이 들어오는 것이다. 계가 들어오는 것 계가 이끌고 들어오는 지지는 묘라는 것. 그래서 계묘년은 25일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축하를 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별은 어떤 별이였을까 사주를 돌려보니 을묘乙卯더라 계묘와 을묘의 차이를 아는 것 계묘는 북방수로 검은토끼로 늙은이고 을묘는 동방목으로 청토끼라고 하여 어린 토끼로 어린아이라고 한다. 청묘, 청노루 어린 나귀를 탔다는 것..의 뜻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 을묘, 정묘, 기묘, 신묘, 계묘로 설명한다는 것..2023년 계묘는 을묘로 태어나 정묘 기묘 신묘로 진화하여 계묘에 닿아 토끼를 완성한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卯를 완성하게 되면 卵이 되어야 한다. 비침 丿, 파임 불 乀을 담은 그릇이 되는 것이 卵이라고 나는 해석을 하는 것이지. 삐침과 파임. 이 두개를 합하면 乂이기도 하고 八이기도 하다. 교차하는 것과 나누는 것의 에너지.

 

그대와 나는 부모로부터 염색체를 물림받아 乂한다. 교차한다는 것이지. 교차한 염색체가 신의 염색체 18개를 더하여 64개의 염색체가 되면서 물림한 유전자정보에서 부모로부터 내림한 풀지 못한 정보를 풀어서 분리를 하는 것이 八이고 나누어서 남는 줄기로 대를 삼으려 하는 것을 巽(손괘 손, 바람)이라고 한다 손을 잇는다는 것은 대를 잇는다 이고 대를 잇는 것을 대나무로 상징을 했고 인체에서는 뼈대라고 하였고 이와 공명하는 악기를 생황이라고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무엇을 아버지의 부정에서 받았고 무엇을 모혈에서 내림받았는가 그 유산을 어떻게 이어받아 풀어야 하거나 맺어야 하거나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라는 것이 동지팥죽이다. 다시 부언하는 글이지만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 익혀지는 것이고 쉬워지는 것이니 다시 보고 또보고 하자. 내 글을 나는 내가 최고로 많이 자주본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기때문에...

 

밤이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동지를 딛고 새해가 오름하기까지 사흘을 예수가 무덤에 머문 이야기로 전해온다 하늘의 주인이 바뀌는 시기가 동지라는 것이지 임인에서 계묘로 해의 주인이 바뀌는 시점이 동지를 기점으로 계묘가 바통텃치를 하게 되는 날이 25일 크리스마스가 된다는 것 예수탄생=새해의 주인이 바뀜이다 매년 한해의 주인은 바뀐다 십천간이 돌아가면서 주인별이 되는데 십천간이 주인이 되려면 십년이란 세월을 넘기에 십년대운이라 한다 오늘까지는 임천간이 주인이였는데 25일이 되면 계천간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지 임무교대를 하는 사흘을 무덤에 머물었다고 한다

임인이 계묘에게 주인자리를 넘겨주는데 임인과 계묘라는 이 정보를 파악해보는 것을 신년운세를 본다고 한다 임계천간은 북에 속하고 물이며 정신 즉 이성을 상징한다

임계천간이 지지로 내려오면 해자가 된다. 궁창위의 물이 임계이고 궁창아래의 물이 해자이다고 이해하면 임계는 머리에 속하는 물이고 해자는 몸에 속하는 물이다 그래서 임계수와 해자수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신경공부라고 나는 설명한다 임계천간을 설명하는 문장 내가 참 화두로 잡고 있는 모든 것은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 거기에 하늘이 깃든다 이다

 

정신을 이루는 힘이 임계라는 것이고 이 임계를 공부하면 이성력이 길러진다 그래서 사주에 임계수가 있으면 나는 공부를 하라고 그것도 글쓰기공부는 반드시 하라고 권한다 글은 머릿물에 속하는 것이니까 자기의 사주 천간지지에 임계해수가 있다면 일단 글공부를 해라 내 사주엔 임자수가 있다 그래서 글머리공부를 함으로 이성력을 기룬다 임이 지지로 내려오면 해가 되고 계가 내려오면 자가 된다 그 반대로도 풀어가면 된다 임인의 지지 인이 천간으로 투출되면 갑이되고 계묘의 지지 묘가 천간으로 나아가면 을이 된다 임계에너지와 갑을이 된다는 것이지 인묘는 천간의 갑을이다 갑을을 목이라 하고 인묘를 봄이라 한다 봄의 기운을 목기운이라고 하는 것이지

목기운은 식물성으로 땅아래서 땅위로 어둠에서 빛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에너지다

동지팥죽을 설명하다가 곁가지를 낸 것인지 곁가지를 풀어가면서 동지팥죽 새알을 엮어보려는 것인지 머리에서 꺼내는 정보를 두드려본다

 

올해 동지 임인이 계묘에게 주인자리를 내어주는 날 해맏이 신단으로 갔다 어제의 그 아름다운 설경이 조금씩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일상의 풍경을 보면서 바람끝을 느끼며 아양철길을 들어서려니 어제 눈에 미끄럼방지로 깔아둔 깔개가 있더라 깔개를 밟는 느낌이 따뜻해지는 듯 카페로 들어서는데 양익수그림전이 열리었던데 한동안 봄하겠구나 하는 생각 한글경 읊어가면서 걷는 길이 즐겁다 해맏이로 가면서 한글경을 읊으면서 어제 백일잔치를 하고 오늘부터는 새로 한글경을 살피자가 된 것인지 기운이 달라지더라

신단에 들어서려니 문득 바로 내려가지 말고 에두른 길로 가야지 하는 생각이 온 것은 빨간 옷을 입은 금숙이가 신단을 돌고 있는 것이 보여 내 몸이 기억하는 어떤 것 즉 신단에서 꽈당하고 넘어졌던 기록이 지나가면서 오늘도 혹시나 모르지 돌아서 조심하면서 가자가 된 것이다 금숙이가 어제도 신단을 돌고 있었는데 오늘도 차가운데 운동을 나온 것을 보면서 스친 인연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스토리를 같이한 인연인데 이제는 그저 그 시간에 신단을 도는 그런 사이로 멀어진 것이지

 

사주를 공부하다가 내가 알게 된 정보들을 딛고 우리는 여기까지가 가장 아름답고 감사하고 찬란한 에너지구나 더 나아가게 되면 얼룩이 질 수 있는 사이가 되어 멀어지는 것보다 이렇게 좋은 기억을 갖고(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멀리 있는게 감사한 것이겠다 는 것 내가 금숙이에게서 상처를 받거나 서운하거나 그런 감정들은 없는데 금숙이가 나의 내 가치관에 따른 언행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새기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들었다. 내가 금숙이에 대하여 부정적인 에너지는 없다고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현장이 되면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모르는 척하게 되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에서 내 인간성을 고민했는데 아하.,.내가 닫힌 것이 아니라 금숙이가 나에 대하여 닫힌 것이구나..내가 마음이 닫히는 것이 아니라 금숙이가 나에 대하여 마음이 닫혀있어서 내 마음이 나갔다가 막힌 마음에 되돌아오는 현상이였구나 하는 이해가 되면서 내 인간성이 좁고 편협하구나 하는 판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닫힘은 너의 닫힘의 투사.

나의 가치관과 금숙이의 가치관이 다른데 그 다름에서 생기는 판단을 내가 하고 금숙이에게 행동을 고치라고 권했던 것인데 그것이 금숙에겐 상처가 된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내가 권한 것은 내 입장인데 듣는 금숙이에겐 자기가치가 부정되거나 무시된 느낌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관은 나의 것인데 너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나의 오만이 만든 간섭이였을 것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에서는 불편한 무엇은 다시 말하면 성서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그 행위는 고쳐야 한다는 것이였기에 그것을 권하고 금숙인 알았다고 했고 다시 그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때 알겠다고 했는데 내 권면이 공명되었을 것이다 생각하였다가 말은 '예'인데 그 행동이 여전하다는 것, 나의 권면이 무시당한 것을 알게 되면서 자존심이 상하게 되었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위하여 자존심에 스크레치를 낸 원인을 베어내는 선택을 한 것이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것이였다.

 

금숙이의 세계를 내가 용납하지 못하듯이 금숙이 역시 내 세계를 허용하지 못하는 것이니 내가 상처를 받은 것이리라. 내가 설명하는 정보보다 더 즐거움을 주는 정보로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나는 내가 즐거워하는 정보가 공부하는 것에 있으니까 금숙이도 공부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였고, 금숙이는 내가 설명하는 공부는 쓸데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이미 내가 공부하는 정보를 지나왔기에 그런 판단이 섰을 것이지만) 공부는 먹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였으니(공부 백날해봐야 쓸데가 없다는 것이 금숙이의 가치관이였고), 나의 가치관은 내가 공부하는 것 이론과 실천 감각이 하나가 되어 지행일치가 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었음으로 내가 보기에 금숙이의 감각은 탁월하지만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이론을 공부하는 것을 권했고 나는 금숙이가 해보라고 하는 감각공부를 하였던 것이지. 나는 금숙이를 통하여 얻은 것이 있는데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금숙이는 나와의 시간에서 얻음이 같이 있는 시간이 재미나고 즐거웠던 것으로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였을 터이니 그것을 다시 충전할 인간관계가 필요했을 것이고..그런 인간관계들을 만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리라. 나는 내 공부를 확장하는 방편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나를 기루어가는 것이고 금숙이는 쓸데없는 먹물공부대신 사람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시간을 경영한 것이라고 본다. 금숙이가 인미귀문관살이있다는 것에서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처음부터 정말 잘 어울리고 즐겁고 신나게 지냈다. 나에게 나를 확장하도록 해준 인연이라고..사주팔자의 세계를 꺼리던 나의 입장에서 사주를 공부해야지 하게 되는 도발이 된 인미귀문을 공부하게 된 인연

 

기독교에 세뇌되어 사주팔자라는 이 세계를 극히 거부하게 된 내가 이 세계를 모르면서 거부한다는 것은 정말 무식한 오만이겠다 한 번 해보자..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이면의 에너지. 금숙이와 같이한 공부에서 나에게 정말 새로운 도전이 들숨소리인 까마귀소리를 내볼 수 있도록 마중물을 부은 것이다. 세미에게 들소리를 하게 해보면서 이 소리를 하도록 금숙이가 마중물을 부어주었는데 세미에게 전달함으로 회향을 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해맏이 신단에서 금숙이에게서 얻은 것을 해맏이신단에서 만난 세미에게 전해주는 것에서 금숙이에게 빚진 것을 갚음하였구나.

금숙이의 이야기에서 내가 실증을 느끼듯이 금숙이도 내가 떠들어내는 논리공부를 들어주는 것에서 피곤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즐거운데 듣는 금숙이는 재미가 없다..그것이 내가 말을 하면 사진을 찍든지 딴전을 피우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고 영숙이가 가세를 하면서 나는 자동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영숙이에게 에너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지.

 

어느 시점부터 즉 금숙이가 나와 같이 소리공부를 하지 않게 되면서 나도 더 이상 금숙이와 만남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금하여야겠다 하는 생각이였고 금숙이는 자기만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데 내가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내가 멀리하는 것이 맞겠다 하여 멀어지는 선택을 한 것이고 지금와서 보면 내 권고는 금숙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익숙한 방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였을 수도 있으니 금숙이 역시 나를 멀리하는 것이 스스로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이였을 것이다

내가 너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래도 귀문관살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나름대로 내가 금숙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고 그것에서 내 기대치가 사라지게 되면서 내가 너를 바꾸려는 이 오만함을 거두어 들이고 그 힘으로 나를 성장시키자 하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웠다는 것 그 배움을 내 스스로 익혀서 너의 가르침에서 청출어람을 하는 것은 내 의지라는 것이지.

 

가치관이 다르면 그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너그러움이지만 나는 내 가치관이 선명하고 힘있는 것이라 믿기에 그것을 강요한 것이 나의 오만이구나 그걸 알게 되었다 사람의 관계에서 거리가 생기는 것은 삶의 목적과 가치관에서 방향이 다를 때라고 본다 내가 서쪽을 향하는데 너는 동쪽을 향한다면 길은 같은데 방향이 다름으로 스쳐가는 인연은 되어도 동행인연은 되지 않는다 는 것

 

나는 누구든 만나면 동행하고 싶어한다 같은 길을 같이 신나게 즐겁게 가는 것

그런데 걷다보면 너의 목적이 나와는 다른 것을 알때 너의 목적도 존중하는 것이 인연의 거리구나 하는 것

 

내게 금숙이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길의 방향이 다르니 스치는 인연으로 감사하는 시절인연이 되었고 금숙이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거침없이 금숙이의 자존심을 부욱부욱 칼로 찔러댄 인연이였을 것이다 나에 대한 감정에서 금숙이가 상처를 받았을 것은 내게 감정을 투자한만큼일 것이다 내가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은 없다. 아니 상처받을만큼 타인을 내 가슴안으로 들여놓은 적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내가 나를 관심있어 하다보니 너에 대한 관심은 내 공부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함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내가 발견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으로 유대감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유유상종이라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연대가 된다는 것

 

사람에게 상처받는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내 존재가 너에게 상처를 받을만큼 약하다면 상처받지 않도록 나를 강하게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 그렇게 나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나를 훈련시켜왔다 즉 너의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가? 를 궁구하다보니 너의 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지성이더라

 

그것을 알게 되면서 지성에서 상처받지 않으려 공부를 하게 되고 이제는 지성에서는 상처받지 않을만큼 되었다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탕이다 바탕을 만들어야 그 위에 나라는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자존심은 지성이라면 자존감은 감정이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지성에서 시작한다 서로를 알아간다는 그 알아감이 어떤 것인가? 무엇을 통해 너를 알 수 있는가? 그것을 찾아보면 너의 뇌속에 정의된 문자언어개념을 딛고서 가능하다는 것 내가 나의 뇌 즉 지성을 먼저 풀어내 보아야 그것을 바탕으로 너의 지성을 알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내 뇌 소프트웨어의 솔루션들을 글로 두드려낸다 문자언어에 대한 내 지성은 어느레벨인가를 알기위하여서 지성은 외부정보와 연동되어 공명하는 힘이다 사랑은 힘이다 Love is Power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필로소피아이다 즉 지성력을 기루는 공부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지성을 바탕으로 그 위에 나타나는 감정을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행동을 하도록 하는 근거를 만드는 지성을 사랑이라 한다. 용자도반에게 가서 팥죽과 배추와 달력과 과일과 떡과 상추를 공양받아왔다 그리고 나눈 이야기들을 통하여 감정은 상처받지 않는 불의 영역이라면 상처받은 영역은 물의 영역인 지성이구나 하는 것 행동은 이미 해버림이기에 상처받는 일은 없다 하지 않음이란 미련이 상처가 되는 것이지 해버림에 대한 판단에서 상처가 되는 것도 있다

 

https://youtu.be/FXsn3EJE1U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