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 신계頣縘

엘리엘리라마사박타니

청향고은 2022. 6. 25. 10:23

엘리엘리라마사박타니

 

이 말은 붓다가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에너지랑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40년 설법을 하시고 법화경을 설하시면서 그간 자기의 설법은 다 사기라고 고백했듯이

예수의 마지막 부르짖음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듯이 나이테처럼 의식의 역사도 반복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다

 

정치의 역사가 있듯이 의식의 역사도 있고 그 흐름은 같은 원리로 나타나니까

붓다의 법화경으로의 참회가 예수에게서는 십자가상의 참회로 반복되었을 것이다

'남'이 있고, "거듭남"이 있는 것 반복된다는 것

거듭났나 묻는데 나는 일단 났느냐 부터 묻는다

 

육체야 거듭났냐 물을 대상이 아니다 의식이 대상이고

의식의 거듭남은 먼저 난 의식이 있다가 전제된다는 것인데

그대는 난 의식을 무엇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거듭남인지

방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말할 수 있을 때 그 '남' 의 원리를 딛고 "거듭남" 을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지 읺겠는가?

'남' 도 모르는데 "거듭남"이라니

붓다가 보리수아래서 육년고행은 '남' 의 과정이었다면

법화경을 설하실 그 때가 "거듭남"이었을 것이다

'남'으로 그 '남'을 스스로 증명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이스라엘백성의 40년 광야생활처럼 싯타르타도 40년을 거쳤을 것이고

법화경에서 요단을 건너는 단계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가 물세례라는 '남'을 거쳐 갈보리십자가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거듭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의식의 반복 즉 의식의 순환에서 '거듭남'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거듭남'을 말하려면 '남'의 체험과 과정을 설명해야한다 '남'도 없는 이가 '거듭남'을 말하는 것은 건너뛴 것이다

일전에 혜현이랑 학봉에 갔을 때 거듭났는가 물으며 복음을 전하겠다는 이가 왔을 때

내 안에서는 '남'도 모르는 이구나 하는 느낌이 와서 자리를 피했다

'거듭남'을 말하기 전에 자기가 난 체험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은 수직관계이다 '거듭남'은 수평관계이다

오늘 엘리엘리라마시박타니라는 예수의 외침이 '거듭남'의 외침이라는 일깨움이 와서 '

예수가 아버지와 아들인 수직관계에서 쇄골을 중심으로 너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잇는

좌우를 비춤하는 나란한 관계임을 깨달은 외침이라는 것을 알게 됨

수직의 남이 수평으로 위치를 바꿀 때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는 것

왜 좌우에 강도들을 배치한 것인가를 이해 용서받은 강도와 그렇지 않은 강도

즉 거울보기 거듭나기의 예시라는 것 우편과 좌편강도의 뜻을 그대가 헤아려라

습된 남탓에서 그 행위를 벗어나는 새로운 출발

예수가 가운데 수직으로 좌우로 습관이 배치된 것이다

오래된 낡은 기득은 너가 나를 구원해달라이고

새로운 관점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자리를 보는 것이다는 것 예수와 같은 자리에 있다

예수도 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체험을 하는 자이다

그런 가치관이 스스로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고

예수의 관점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그 낡은 생각을 버림 그것이 구원의 실상이라는 것

 

 

아버지하나님이나 아들의 관계를 설정하여 수직관계를 만들어

주인과 노예로 창조자와 피조물로 나눈 그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파생한 모든 이론들은 버려야할 것이라는 것이

예수의 의식의 참회 거듭남이였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디있으며 아들이 따로 있는게 아닌 세계를

예수는 갈보리 숨골에 십자가를 세우고 그곳에서 보는 관점이

언어를 비로소 넘어서게 되었던 것이겠다

자기가 말씀이라고 굴레에 갇혔으니 아버지는 말씀이 되는 것이고

자기는 말씀의 아들이라는 상하관계 그것을 스스로 만든 갇힘임을 인식했을 때

부르짖음이 붓다의 참회와 같은 것으로 의식의 되풀이 거듭남이라고 나는 이제 깨달았네

 

붓다의 법화 묘법연화라고 하는 경은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이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성불의 모습임을 가르친것이다

보리수아래서 깨달은 깨달음 먹어야 산다는 것이 생의 열매를 딸 때

먹고살기위해선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내 생각

 

물론 손발을 움직임. 못박아 놓지 말고

손발을 풀어서 쓰라는 가르침 그것을 나는 사주명리의 지장간을 놓고 너가 풀어보라는 속말을 듣는다

 

지장간이라고 할 때 천간(하늘)이 아래로 위치를 바꾼 모습(성육신)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천간은 십천간이라고 하고 지지는 십이지지라고 하는 이 천지정보의 흐름을

알아낼 수 있는 자리를 지장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장간을 모르면 천간지지의 흐름을 풀 수 없다고 하는데

천간과 지지를 잇는 인의 자리가 지장간이어서다고 본다

 

지장간은 자오묘유에 각 두개씩이 되고 인신사해 역마에 세개씩

진술축미 화개에 셋씩 주어서 8+12+12=32개의 지장간이 나오는데

오午에 기己를 더하면 서른세개의 지장간이 된다

자오묘유의 도화에는 중기라고 하는 에너지가 없다고

오에는 기를 더하기도 한다고 한다

32개가 되는가 33개가 되는가에 따라32개가 되면 부처의 32상호상으로

33개가 되면 예수의 나이가 되고 인체로 오면 등뼈에서 꼬리뼈까지의

33마디가 되고 좌우팔의 32마디의 뼈가 된다

 

지장간을 풀기위해서는 천간지지의 22자를 파악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22자를 이해하고 나면 지장간은 에너지조합이니 풀이를 해갈때 용이해진다는 것이지

 

사주명리를 강의하시는 분의 결론은 천간지지를

이루는 언어를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사주명리를 이루는 22자를

어떻게 접근해서 풀어 내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레벨을 정하는 것이겠다

사주명리를 풀어내는 이들의 공통점은 그때 그때 달라요이다

그리고 수많은 변수들이 있으니 정확하게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삶 자체가 바람같은 것이라고 원리를 배우고 적용은 스스로 하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더라

 

원리는 22자가 33자거나32자로 바뀌는 이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

계절의 이름을 인묘진(봄) 사오미(여름)신유술(가을) 해자축(겨울)로

그리고 계절의 초가 되는 인사신해를 역마라고 하는데 역마라고 하는 이유가

계절의 활동성이 시작된다고 해서다 역마라는 이름대신 생지라고도 한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 역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절의 중심이 되는 자오묘유를 도화라고 하거나 왕지라고 하고

계절의 열매를 정기 또는 고지 화개라고 하게 되는데 진술축미다 진술축미를 창고라고 한다

윷판의 모서리 자리를 진술축미라고 하는 것이고

 

윷말이 다니는 길을 자오묘유라고 하며 윷말을 인신사해라고 한다는 것이지 왜 윷말을 네동을 쓰는가?

진술축미와 자오묘유는 윷판이지만 인신사해는 윷말이다

이렇게 기억하면 진술축미는 화개 자오묘유는 도화

인신사해는 역마라고 하는 원리 이해를 윷놀이를 통해서 풀 수 있다는 것

 

진은 물창고 미는 목창고 술은 화창고 축은 금창고라고 하는데

계절의 모습이 정해진 것이라 하여 정기 고지 화개라고 한다는 것

 

창조주하나님이란 개념은 내가 만들어가는 해석력이다

어제와 오늘의 일깨움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하는 힘

그 힘을 창조력이라 하는 것이고 창조력은 내가 나를 길들이는 반복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니

결국 언어에서 벗어나도록 작용하는 힘이 창조주일터 나는 그리 이해한다

반복된다 거듭난다 되풀이된다 재생 부활 윤회 다 하나의 현상의 다른 표현이다

육체의 반복은 섹스라는 방편으로 나타난다

대를 잇는다고 하는 것 대물림이라고 하는 말

육체의 대물림은 정치라는 역사의 대물림과 짝을 한다

정신의 대물림이라는 영역은 의식의 대물림과 짝을 한다

 

의식이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무의식이나 육체를 드러내는 것은 생존과 생식이다

 

육체의 경영과 정신의 경전이 정삼각과 역삼각으로

육망성을 형성한다고 헤르메스학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가로 여섯의 삼각뿔이 생기고 안에는 육각벌집이 생기는 도상 가로 삼각뿔은 음양 삼각으로 이뤄진다

육망성을 그려보면 동양의 십이지지원리구나 알게 된다

안은 육각이지만 보이지 않는 음삼각을 이어도 육각이다

그리하여 유형의 양육과 무형의 음육이 십이지지를 이룬다는 것이지

자는 양육의 출발이고 축은 음육의 출발이다 자축이 한쌍이다

물론 인 역시 그러하고 묘 역시 그러하다 육각으로 이뤄지는 각은 저마다 출발이니까

 

육체의 대물림을 연구하는 것이 기술과학이라면

정신의 대물림을 연구하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고 본다

과학기술계를 가르침이라는 교敎라고 놓으면 문화예술을 마루 종宗에 놓아

종교는 기술과학과 문화예술을 포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문화예술을 종교쪽에서는 영성이거나 의식이거나 진아라거나 기타등등의

언어로 표현하지만 문자의 해석이라는 것이 문화이고

몸짓의 따라함이 예술이라는 상식으로 설명하면 그대 자체가 종교라는 것이고

종교를 하는 그대의 몸이 신전이 되는 것인데 남이 만들어 놓은 사원에 갇히면

이 진실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

즉 남들이 보여주는 것만 보는 소경이 된다는 것인데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이 눈먼 짓임을 내가 보고싶은 것을 찾아서 보게 될 때

아이구 내가 눈먼짓을 하였네 내 눈을 찌르고 싶다고 하는 말을 한다

물론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도 눈먼짓이지 콩깍지가 씌였다고 하는 것이니까

보고싶은 것만 보려는 것이나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이나 알고 보면

같은 것인데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원인을 찾아들어가면 자기를 유기하는

게으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의문하지 않는 오만이 만드는 것이다

 

무지한 오만이라는 말을 한다 그대가 너무나 많이 아는데 그대가 아는

그 앎이 그대의 감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죄라고 한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하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다

아는 것이 병일때는 너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분리하고

그런 언어로 드러날 때이다 아는 것이 힘일 때에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와 너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데 아는 것이 병이되면

나만 옳고 너는 그른듯한 자세가 나온다는 것이지

 

내가 그랬으니까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요즘 그런 병에서

나음을 얻는 과정을 가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가 되도록 내 몸을 말을 살핀다

 

밤이면 하늘로 별꽃이 피고 낮이면 땅으로 풀꽃들이 핀다

어두울 때 보는 별꽃이 아름답고 신비하지만 해가 올라서

비추임하여 보는 풀꽃들의 아름다움도 신묘하다

 

오늘 온 신탁인데 다른 생명계에 없고 인간계에만 있는 것이

의식의 대물림이라는 것이다

타 생명계에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다고 한다

인간계에서만 유일한 것이 의식의 대물림이라는 것이고

의식의 대물림을 카르마라고 하고 카르마를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문화라는 정보체가 된다는 것이지

지식에 지식을 더하는 것은 의식의 진화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복잡한 세계가 되는것이 플렉탈이다

원리는 하나인데 반복에 반복을 거듭할 수록 다양한 모양이나

상태로 나타나 저마다 다른 것이라 착각하게 하는 것이 의식의 미혹이라고 한다

미궁이라는 것

육체는 단순하다 먹고 싸고 일하고 쉬고 이 무한반복

정신도 단순하다 보고 듣고 말하고 기록하고의 무한반복

 

복잡한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문장이다

나도 문자를 가져와 문장을 두드리는 사람이고 단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장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니 복잡한 인간이다

그런데 나의 복잡은 단순으로 가고자 가지를 치는 것이다

 

육체의 단순한만큼 정신도 단순하다

즉 정삼각과 역삼각처럼

그런데 정신을 미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의 결핍을 채움하고자 함에

따른 말하자면 카르마 원죄때문이다

단절된 기억 즉 태어남 탯줄을 자른 기억이 만드는 몸의 의지

결핍을 보상하고자 하는 자기치유를 위한 방법이 정신의 역사라는

탯줄과 태반과 양수와 자궁을 만든 것이다 탯줄 태반 양수 자궁이 정신의 사주다

여기에 일간인 내가 태아가 된다는 설정이 지수화풍에 토가 들어가 오행이 되는 것이다

 

토가 태아가 되는 것

내가 사주명리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토한다 히브리어 22번째 글자가 타우이고 열십이다

자궁에서 토해낸 것이 태아이다 신태영아라고 하는데 육체는 아래로 태어나고

정신은 위 숨골로 태어난다. 육체가 태어나는 원리와 정신이 태어나는 과정은

동일하다 그래서 육체가 태어나는 원리를 '남'이라고 한다면

정신이 태어나는 원리를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

남은 아래길로, 거듭남은 윗길 숨골로 이다

윗길로 다닌다 높은 곳으로 다닌다 는 것이 정신계 즉 의식의 대물림을 설명하는 언어다

 

신태영아가 태어나는 원리를 궁구한 것이 천부경이고 그것을 딛고 신태영아가

태어나면 양육하는 방법을 설먕하는 것이 성명규지 금선증론 혜명경 황제내경

황정경 등등 신선이 되는 수행법을 다루는 정보다

 

예수는 선도의 맥을 타고 왔다 그래서 신선사상을 설한다

예수를 안다는 것은 신의 세계를 공부한다는 것이고

의식 즉 문화예술의 바탕인 소리와 움직임을 알아간다는 뜻이다

 

예수는 문장이나 지식으로 만나는 에너지가 아니다

그대의 소리와 몸짓에서 드러나는 피꽃이다

예수의 보혈이라고 하는데 그대의 피도 보혈이다

피가 새김하고 있는 뜻을 피워내는 것

그것이 정신계의 활동이다

의식계에 들어서면 지식은 버리게 된다

일단 무거움으로

몸을 가볍게 하는 훈련부터 하는것이 정신이다

손을 비우고 발을 가볍게 머리는 텅 비게

그래서 숨골로 바람이 드나들면서 소리를 내도록

그것을 장자는 하늘퉁소라고 했다더라

 

그대 아직 예수를 지식으로 논하는가?

그런 무지의 오만을 버리고 겟세마네부터 해봐라

고래잡이를 하면 향유를 얻는다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대 성령의 기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네

그대가 고래잡이를 하지 않으면 향유기름은

얻지 못하니 기름준비 안된 다섯처녀가 된다

물론 열처녀 비유도 음양오행 천간의 비유다

알면 단순간단한데 모르니 복잡다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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