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봄뜨락

몸짓공부

청향고은 2021. 8. 2. 09:50

매일 몸짓살피기 복습을 위해서 금숙씨의 사진솜씨가 투자된다 내 몸의 움직임, 즉 몸짓은 무의식이고 몸짓을 잡아내는 기술을 딛고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 사진을 분석하는 과정이다 
 
내가 나의 몸짓을 본다는 것과 너의 몸짓을 본다는 것의 차이점 내 몸짓을 내가 관찰할 수 있는 힘을 딛고 너의 몸짓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이 과정을 공부하기위해서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하다 
 
봉무동과 도동 측백수림으로 다니면서 어울림한 여사님들과의 놀이마당에서 내가 앞에서 놀이판을 이끌어가지만 한 사람씩의 몸짓, 품새를 관찰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리자리가 어디다 팔을 돌리는데 위치를 좀 더 높여라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숫자 세기에 힘이 없다..등등 잔소리를 많이 하였다. 물론 내가 체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귀염귀염..력을 발휘하면서 이때 칭찬기법이 동원되어야 내가 요구하는 액션을 하는데 기분 좋게 하신다는 것이지 
 
지금 신단으로 다니면서 그간 내가 펼치는 마당에 같이하여서 내가 이끄는데로 따라와주신 여사님들의 너름을 감사하지만 여사님들을 신나도록 해서 같이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는 판단을 하도록 내가 얼마나 논리적인 정보를 전달한다고 입담이 만찬이 되었다는 것.  
 
탄탄한 논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너의 몸짓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너의 몸짓을 이끌어낸다는 것..무의식을 일깨운다는 것이니까 내가 먼저 앞에서 몸짓을 하고 이 몸짓에 담기는 수익을 계산하여 하면 할 수록 이익산출이 늘어난다고..이 기회에 안하면 두고 두고 땅을 치며 후회한다고..이런 천복을 받을 기회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니라고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 엔돌핀 오천만원어치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고...너스레를 떨면서 자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오천만원어치의 엔돌핀을 받아삼키고 두 손에 가득 짝짝 받아서 몸에 새김하라고 화장품을 바르는 것처럼 자기의 손뼉이 만든 엔돌핀 떨어지지 않도록 잘 챙기라고 입담이 쉬임없이 나가고 그 입담이 과학적인 상식, 그리고 일상에서 회자되는 속담이나 어법을 딛고 있으니 공명도 100%가 되고 공명된 정보에 몸은 즐거움으로 같이 액션을 하는 것이니까.. 
 
내가 얼마나 탄탄한 논리로 몸짓을 이끌어내는가..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따라 같이 몸짓을 하는가..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설득력이 없어서인가..를 찾아내어 그 부분을 다시 공부하는 것이지 20%의 감정의 불길을 불러내려면 80%의 이론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지 타의에 의하여 선동되는 세뇌된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해야 하는 순설후음이나 손뼉이나 이런 영역을 반복으로 학습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늘 강조하지만 순설후나 손뼉이나 이런 영역은 자기가 선택해서 하는 영역이지 누가 대신해주지 않으니까  
 
새벽이 나서면서 해돋이 시간을 보니 5시 33분이더라 그런데 내가 나서는 시간은 4시 30분. 해돋을 시간까지는 가로등불빛을 벗삼아 걷는다. 불로천에서 유턴하는 시간이 되면 가로등불이 꺼진다 오늘 시간을 보니 5시 4분. 동이 터오는 길을 걸으면서 오늘의 날씨도 본다 비가 올 확률과 습도와 온도를 살피면서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 예전에는 특별한 계층, 신관들만 알수 있던 날씨의 정보가 이제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되었다는 것. 날씨를 예보한다는 것이 내일을 점친다는 말과 같았는데 이제 점칠 영역이 과학에서 모두 대신해주니..날씨라는 예언을 딛고 내가 하루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가 새로운 예언의 영역이되는 셈이구나 
 
12지지는 열두달 365일의 흐름을 설명하는 지표다. 예사람들이 계절의 흐름을 설명하는 방식이 천간지지였고 사람도 계절의 흐름이 만드는 생산품이라 사람농사라고 했다 그래서 사주라는 것이 나라는 존재가 어느 때에 어떤 땅에 어떤 종자로 심어졌는지를 증명하는 품질증명서라고 보면 되겠다 
 
자기정체성을 규명하는데 반드시 이 증명서가 필요하고 이 증명서를 놓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지 해맞이 신단에 가는데 측백수림의 허언니가 전화를 했다 지금 해맞이 신단으로 가는 중이라고 여기의 에너지를 클리어 하게 되면 측백으로 가겠다고 그간 구령삼정주를 한번 익혀보시라 했다 금숙씨는 어제 내게 받은 가방자랑을 하려고 차려입고 일찍 나와 사진찍기 놀이를 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모델놀이. 
 
금숙씨 사주가 임인, 임자월 계미일 임술시라는 것을 놓고 대략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임수와 계수의 차이점 임수는 뇌파에서 시작하고 계수는 발바닥에서 시작한다는 차이가 있고 임수의 도달점은 상선약수이고 계수의 도달점은 태일생수라고 임수가 년주에 있는가 월주에 있는가 일주에 있는가 시주에 있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임인년생인 금숙씨의 삶의 궤적을 보면 임수와 인목이 천생의 에너지가 되어 가동되었다는 것이고 년주는 태어나 20년까지를 이끌어가는 에너지라고 한다. 나는 경자생이니 경금자수가 태어나 20년까지를 이끌어 왔다는 것이 된다. 임자월인 금숙씨는 20~40세까지 임수와 자수의 에너지가 이끌어왔고 임오월인 나는 임수와 오화가 나를 이끌어왔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일주가 이끌어가는  40~60세를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금숙씨는 계수와 미토이고 나는 을목과 축토이였다. 그리고 앞으로 60세 이후를 이끌어 갈 에너지는 금숙씨는 임수술토이고 나는 을목유금이다. 내가 60이 넘은 시점 을유에너지가 작동하게 되는 시기에 금숙씨의 계미에너지가 들어왔고 금숙씨에겐 나의 을유에너지가 섞이게 되었다 임술시주는 타로카드 0번 풀카드에 등장하는 시리우스, 천랑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북으로 향하는 즉 죽음을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안내자에너지다는 것이지 
 
내가 육십갑자를 한바퀴 돌고 북을 향하여 즉 태안의 세계 피안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시기에 나의 에너지장에 들어온 인연. 봉무동으로 다니다가 화랑교로 길을 바꾼 것든 9월인데 금숙씨가 실연의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달래려고 해맞이신단으로 다니게 된 시기 나는 추상의 개념을 풀어가려고 하는 시기에 금숙씨는 실상의 실연이라는 상처를 받아서 그것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이였다는 것도 재밌지 않은가 나를 만나는 시간을 통하여 실연의 상처를 다스리게 되었다면 나는 금숙씨라는 미러링(천랑성, 임술, 시리우스)을 통하여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빛결의 꿈이 이렇게 풀어지는 것이구나 커다란 다라이에서 나온 거대한 붉은 뱀=화산폭발, 그 꿈에 내가 등장하였다는 것. 빛결이 나의 과정을 꿈으로 본 것이구나)무엇인가의 에너지를 마음껏 토해내는  즉 풀카드의 여행자가 여행을 떠나는 자리 바다를 건너 화산이 터지는 곳의 에너지를 실천한 것이겠다 . 43일동안 매일 같이 화산분출을 했던 그 과정을 딛고 다시 봉무동으로 도동 측백수림으로 다니면서 내 을유시의 에너지봉인을 풀어내게 된 것 
 
 2020년 11월 29일에서 2021년 2월 15일까지 같이한 그 여정이 나에게는 덮어쓴 엄마의 염색체에 담긴 정보를 해독한 것이고 다시 만난 7월 26일 내가 거친 과정을 같이 검토함으로 화산폭발을 거치고 새로운 나로 거듭남 까마귀에서 백학으로.. 
 
오늘 나의 몸짓을 보면서 나의 에너지는 일반 세속의 무당들의 몸짓과는 달리 천상의 동물의 기운을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하길래 내 시주가 을유이고 청학되겠다고 학을 타고 나르는 것이지 했더니 내 몸짓은 보면 볼 수록 아름답고 기이하고 빛나고 때묻지 않은 천진난만함이 있다고 했다. 금숙씨의 임술사주를 풀어주었다 금숙씨의 시주는 나의 길을 열어주는 천랑성이였으니 누군가의 죽음을 넘어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보살행인 것 같다고 지금 만나는 이의 봉인된 에너지도 열어서 화산분출을 하도록 가이디언하고 새로운 삶의 마당으로 들어서게 이끌어가시라 했다 모자와 가방에 담기는 어떤 메세지일 것이다 생각한다
오늘 금숙씨가 자기가 쓰고 온 모자를 나에게 주었는데 꽃분홍모자 내가 입고나간 티셔츠가 연분홍..어울리는 모자..모자를 준다는 것은 머리를 올려준다는 것과 같은 뜻인데 내가 드림한 삼베실 모자는 공부에너지라면
금숙씨가 나에게 준 모자는 이제 봄꽃만발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청학의 세계..을유에너지

 

내가 걷기 손뼉치기 팔돌리기 순설후..를 실천하도록 하기위하여 모든 논리를 개진하는 이유는 영혼(몸짓)을 사냥하는 외부의 조악한 정보를 박살내기위한 것이다.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그 성전의 할 바가 손뼉치며 주를 찬양 두 팔을 벌리고 부르짖음이라는 몸짓인데 이 산제사를 봉인시키는 외부의 종교교리나 형식들의 부조리함을 설명하고 그것이 사실은 루시퍼의 타락이라는 것의 외연화라고 설득하여 자기 몸으로 돌아가도록 그래서 몸짓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참됨과 진실됨을 체험하도록 이끌기 위한 것이다. 책은 덮어라 그리고 그대의 몸이라는 책을 열어라 이것을 설파하기위한 것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이다. 봉무동을 도동을 해맞이 신단을 다니면서 펼치는 보병궁시대의 새 복음이라고 
 
몸이 창조되는 과정에는 짓이 있었던 것이지 문자나 말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짓이라는 것은 作(지을 작)이든지 述(지을 술)로 작술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作의 짜임은 亻乍(잠깐 사)이다. 人으로 쓰임이 될 때는 천지인이라는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다 삼태극이라고 하는데 정자와 난자를 꿰어내는 신의 성품,플렉탈이라고 보면 되겠다 
 
亻으로 쓸 때는 부수인데 乍를 이끄는 머리다. 이 乍는 무엇을 그린 것인가를 찾아보니 갑골문은 칼(刀, )과 V로 구성되어 있다. 칼은 새기는 도구를 나타내고 v로 표현된 형태는 칼로 나무에 새긴 모양을 나타내는 것. 원래 한자는 거북점을 치고 난 후 그 점괘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거북의 배딱지(또는 등딱지)에 새긴 것에서 기원하고 있다. 
 
애초에 한자는 거북 배딱지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인 천리로(千里路)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좌우 어느쪽에 기록되(새겨지)느냐에 따라 좌우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소전에 와서는 칼로 새긴 모양은 인(人)자의 형태로 바뀌었고, 칼을 나타내는 부분은 날의 아래쪽 부분이 밑으로 처지는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이다 고 한다.  앞의 亻은 기록하도록 주문한 이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즉 점을 치고나서 그 결과를 새김하는 것을 짓다고 한 것이라는 것이지. 내 언어로 하자면 몸짓을 반복함으로 얻게 된 체험이 무의식으로 기록이 되는 것이고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고 뼈에 새김하는 과정 쇠에 새기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作이라는 것이구나 乍는 부수가 삐칠 丿이란다. 그런 따라 붙는 ㅌ에 손잡이가 있는 것은 ? 쇠스랑 쇠스랑은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풀무덤 등을 쳐내는 데 쓰는 갈퀴 모양의 농기구이다. 쇠로 서너 개의 발을 만들고 자루를 박아서 만든다  쇠스랑이라는 농기구를 다루는 일을 乍라고 했다는 것이다.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음 풀무덤을 쳐내는 갈퀴모양의 농기구.. 
 
몸으로 옮겨오면 손과 연결이 되는 것이고 손과 손이 잠깐 마주치는 것이 손짓이된다. 손뼉을 침(점을 침)으로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소리파동이 몸에 새김되는 것(칼로 쇠나 나무에 새김하는 것)이라는 것. 멋지지 않나..이런 논리를 개진하는 나라는 존재의 신비함. 그러니 손뼉을 치며 주를 찬양이라는 정보는 내가 나를 점치는 일이고 친 점을 기록하는 일이되는 것이니 내가 나를 알아가기위한 농기구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경전을 넘기느라 손을 쓰지말고 경전은 덮고 손뼉을 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라 그것이 그대를 경작하고 창조하고 경영하고 산제사로 드리는 산체험이 된다. 눈으로 본 것은 돌아서면 사라지지만 손뼉을 친 그 찰나의 침은 모이면 결이 되고 기록이 되고 그림이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 성령의 현현은 생각이나 상상이 아니라 손뼉을 침으로 그 손뼉의 모임이 새김된 정보가 되고 일상으로 우연처럼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대가 사랑하고 따름하고자 하는 예수는 글자 한자 남기지 않았지만 그는 손뼉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잘 놀았던 풍류가객이였지 골치아픈 먹물저승사자는 아니였다는 것.  그대가 먹물로 씌여진 책을 기대고 있는 한은 살아있는 성령의 현현을 체험하기는 요원하다는 것.  
 
그러면 술述은 어떤 것을 기록하여 전달하는 신의 사자인가 책받침 辶이 태우고 있는 것이  朮: 삽주 출 
 
삽주(朮)의 뿌리처럼 펴내려가는(辶) 것은? 삽주의 뿌리처럼 아래로 펴내려가는 것은 글이나 말을 '폄'인데 손뼉을 침으로 기록되는 기록이 반복됨으로 뿌리를 펴가는 것을 술이라고 한다는 것이네 한번하면 작, 반복하면 술 그래서 반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수행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구나  
 
朮(차조라고도 하구나)삽주는 국화과(Composit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는 30-100cm에 달한다. 뿌리는 굵고 마디가 있으며 줄기 뒷부분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진다. 뿌리잎과 밑부분의 잎은 꽃이 필 때쯤 떨어진다. 밑부분의 잎은 3-8cm 정도로 길다.삽주는 산에 나는 풀로서 그 뿌리가 한약재로 사용되는데 삽주뿌리 중 가늘고 긴 것은 창출(蒼朮)이라 하고, 조금 짧고 끝이 둥글게 맺힌 것은 백출(白朮)이라고 한다 이 朮과 얽히는 것이 구원이라고 할 때 求이다. 구출이라고 하는 것이 나오게 되는 근거  
 
求(구)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그렸다는 글자다. 발이 많이 달린 벌레를 그렸다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丂(고)와 점 네 개로 이루어졌던 介(개)의 옛 모습을 상기해보면  求의 '구하다'라는 뜻은 介와 같은 글자로 보았던 示(시)가 제사 상황을 나타내는 글자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제사는 바라는 바를 들어달라고 하늘이나 조상에게 비는 의식이다. 求=示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글자 모양 측면에서 求와 示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術(술)·述(술)의 발음기호 朮(출)이다. 朮은 '차조'라는 곡식 또는 '삽주'라는 풀을 가리킨다고 해서 '차조'인 秫(출)이나 '삽주'인 莍(출)의 본래자로 본다. 조 이삭의 상형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朮자의 모양을 보자. 아래 儿 형태로 돼 있는 부분이 求에서 네 점으로 돼 있는 것을 제외하면 求와 일치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朮은 求에서 점 두 개씩을 이어 붙인 모습에 불과하다. 지금도 求자를 빨리 쓰다 보면 이렇게 두 점이 이어진 형태가 나온다. 莍이라는 글자도 상징적이다. 朮=求인 것이다.

亥(해)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는 글자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는 것은 그 여러 설들에 대해 학자들조차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설들 가운데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돼지'를 그렸다는 설이다. 亥의 모양이 얼핏 보아 '돼지'인 豕(시)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亥가 '돼지 해'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풀뿌리 모양을 상형해 荄(해)의 본래자라는 설, 머리가 잘린 짐승, 머리 둘에 몸뚱이 여섯인 괴물 등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칼의 모습인 方(방)의 변형(사실은 方도 칼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亥도 이들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그 힌트를 제공해주는 것이 현재의 글자꼴이다. 亠를 제외한 아랫부분을 45도 왼쪽으로 돌려보자. 求의 아랫부분 획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亥=求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른쪽 어깨의 점과 획들의 길이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영락없는 求다.
 市의 지금 모습과 구분하기 어려우니 그렇게 생각될 수 있겠지만 이는 亥자로 분류된 글자다. 亥에는 이렇게 지금의 市자처럼 보이는 글자꼴들이 여럿 눈에 띈다. 市=示(시)이니 亥=求=示=市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구출해라는 것이 손뼉을 침으로 생성되는 점을 기록함으로 뿌리를 폄으로 정보와 정보가 연결되어 천라지망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는 제사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이론이 된다. 
 
그대의 소망이나 바람은 무엇인가? 죽음과 생명의 원리를 파악하여 두려움이나 불안이나 공포없이 생을 누리고 명을 즐기며 감사하는 삶이지 않을까? 지식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지만 몸짓은 사람을 생하게 하는 힘이 된다. 밖으로 드러난 손으로는 손뼉을 치고 안으로 감춰진 혀로는 순설후를 하고 발로는 걸으라. 그것이 그대를 점치는 방법이고 그대의 점이 뼈에 기록되는 방법이며 기록된 점이 점차로 모이면 그대앞에 하늘의 사자로 사방에서 귀인이 오신다고 하는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대의 몸이 짓을 만들어내는 창조마당이다

 

사주팔자세계 
 
가장 멀었던 세계였다가 요즘 아주 가까운 친근계다 내가 우주가 짓는 농작물임을 인식하게 되면서 우주가 농사를 짓는 원리를 새김해놓은 심비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이 십천간이고 열두지파나 제자가 십이지지군 이 되면서 내 인식계가 180도 바뀐 것이다 
 
18수가 신의 숫자이고 180은 아기가 태어나 한시간동안 뛰는 심장박동수라는 것이니 내 인식체계가 180도 바뀜으로 위버멘쉬 초인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지 초인은 아기시절에너지다 범인은 언어근육이 생성되어 언어의 지배하에 예속된 에너지다 속인은? 태안의 에너지다 범인에서 초인으로 초인에서 속인으로 건너가야 하는 것이지 아제아제 주문은 초인에서 속인으로 오가는 배를 띄우는 에너지다 속인에서는 오데로 가는가? 영인이 되는 것이지 
 
영인이란 울릴 영자를 쓴다 성령의 사람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계 방울소리를 울릴 수 있는 레벨이 되면 영인이다
방울소리를 금성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곡조라고 하고나 선녀가 타고오는 피리소리 하프소리 라고 하거나 하는 단계 
 
이 계를 오갈 수 있는 수비를 144000이라고 하는데 내가 이해하기로 착상하여 심장박동이 생성되는 14일간의 정보계라고 본다 성령의 세계는 대충 얼버부리는 설명은 통용되지 않는다 수를 상으로 상을 수로 교차검증해서 오류가 없을 때까지 실험과 검증을 반복한다 그냥 저절로라는 언어가 통용되지 않는 세계가 보혜사 성령님이 주장하는 계이다
그러니 그대가 성령을 입에 올리려면 자기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의문에 답을 찾아 꿰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부터 검증해야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령운운하면 뒷통수 세게 맞는다 성령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성령에게 배우지 않은 것임으로 쫒겨난다 바깥 어두운데로 바깥 어두운데라는 뜻은 무지한데로 이다 그대가 모르면 모르는 이들과 유유상종하게 된다 아는 이들은 아는 이들과 어울림하게 되고 그게 우주원리다
모르는 이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모르고 아는 이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보혜사성령님께 배운다
학생이라는 것이지 안다고 한 순간 앎이 모름임을 또한 안다는 것이지 안다고 한 그 앎을 딛고 모름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 학생의 하루살이다 
 
아는 것은 봉인이 풀렸다는 것이고 더 이상 의문이 없다는 것이고 의문이 없다는 것은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수수께끼일때 그때 그 정보가 의미가 있고 도전하게 하며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 의문하는 것은 너와나의 관계가 생길 때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 너와내가 다르기때문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 다름이 만드는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존재가 사람이니까 의문없는 이는 사귐의 대상에서 제외하라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다 
 
죽은 자는 의문이 없다 궁금함도 없다 무엇인가 찾으려는 의지도 없고 새롭고자하는 도전도 없다 그저 편안하고 안전함만 구한다 시체는 묻힐 자리를 찾는 것 외엔 관심이 없다 
 
산자는 다르고 그 다름은 몸짓에서 드러난다 걸음에서 다르고 발음에서 다르고 말미암음에서 다르다 다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반복되면 선함이 되고 선함이 모이면 참됨이 된다 아기가 태어남이 아름다움이고 아기가 자라감이 선함이고 스스로 서는 단계가 되는 것이 참됨이다 아름다움없는 선함이 없고 참됨이 드러나지 않는 선함은 미성숙한 과정에 있어서다 
 
선함이 참됨에 닿으면 빛이난다 그 빛을 찰랑이게 나눔하게 되는 이를 영인이라 빛사람이라 말한다 반드시 주변을 신나게 흥겹게 즐겁게 한다 나는 빛사람이라 내가 있는 어디서든지 신바람을 불러낸다 세상을 밝히는 것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다 멀리까지 밝히려하지말고 내 주변만 일단 밝혀라 내 주변을 밝히게 된다면 내가 빛이란 증거가 된다 빛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과다 빛으로 가득하여 넘치는 과정과 어둠이 가득하여 침잠하는 과정은 같다 표현언어가 다르다
어둠과 빛의 에너지는 같다는 것을 기억해라
천인일위 성령불이 상수인간 수호오신 
 
그대의 여정을 스스로 점검하지 않으면 자아도취에 빠진다 나르시스에게 꿈을 깨게 하는 것은 수면에 던진 돌이 만드는 출렁임이다 그대의 일상에 누군가 돌을 던질 때 그대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그대의 레벨이 나온다 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돌이 닿으면 어떤 반응을 하는가를 보면 그대가 나르시스인지 오이디푸스인지 디오니소스인지 드러나게 되어있다 책에 근거를 두면 그 책에 돌을 던지면 반드시 화를 내게 되어있다 몸에 돌을 맞으면 반드시 통증을 느끼듯이 
 
나의 책은 몸이어서 내 몸에 돌을 맞으면 아픔을 느끼지만 이제 먹책은 나에게서 멀어져 무감각이 되어버렸다
내 몸에 닿는 돌 그 돌에 내 몸이 상처받지 않도록 나를 강하게 유하게 훈련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몸짓이고 선함은 표정이고 참됨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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