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봄뜨락

기(에너지)와 귀(고스트)

청향고은 2021. 6. 27. 12:30

복남씨랑 걷기로 하여 집에서 5시 30분에 나섰다. 불로천에서 만나 관음사쪽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돌아오는 배경숙여사님을 만나 설음으로 인사하고 복남씨의 이야기를 주욱 들었다. 유턴하여 돌아오는 길에 살구나무가 있는데 엇그제 살구추수를 했던데 길 옆의 나무에 몇 알이 있는 것을 봤는데 복남씨도 봤는지 살구따먹자 우리 둘이 먹으라고 딱 두알 남겨두었네 하고 두알을 따와서 한 알씩 먹었다. 그래놓고 내가 해석을 붙이기를 오늘 오면서 나눈 대화들을 살구하는 의식이다 했다. 복남씨가 꺼낸 이야기들을 주욱 펼쳐서 설명하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고 복남씨에게도 오늘 이야기의 화두가 된 그 인연은 앞으로 지나친 개입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나고 행복한 일을 찾아다니는 것이 본성인데 을씨년스럽고 거칠고 험한 현장에 일부러 들어가지 말라고...사람이 어떤 현장에 자신을 놓는가에 따라 근적자적 근무자흑한다는 것이니 에너지가 탁하고 어두운 현장에 들어가면 그 에너지에 영향을 받고, 그런 자리에 자신을 들여놓아 기운이 탁해졌다면 그것을 털어내는 것을 자기정화라고 하거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니 인간관계에서 선하고 맑은 기운을 접속하는 것을 찾아댕겨야지 문제로 가득한 것을 알면서 일부러 찾아댕기지 말라고  
 
오늘 우리 입에 그 탁한이야기를 올렸으니 그 에너지를 살구하려고 살구를 서리해 먹은 것이라고 남의 기운을 가져온 것을 돌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집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면 그 기운을 복남씨가 다스릴 수 있는 경지가 아니면 복남씨 집을 쳐서 동티를 낸다고 그것을 주당걸린다고하기도 하는데 다른 말로는 에너지뱀파이어가 붙는다고 하는 것이라고 복남씨나 나같은 기질이 오지랍이 넓어서 남의 어려움을 보면 자기 힘든 것은 살피지 않고(오만함의 다른 말이지)해결해 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고 하는 결과를 만든다고 업보는 업보를 만든 이가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누가 대신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너의 문제에 내가 개입한다고 하는 것은 너의 짐을 내가 대신 져주겠다는 뜻인데 그 짐의 무게가 내가 질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서면 너의 짐때문에 나와 내 가족에서 그 짐이 작동하여 두 집이 다 망한다고 스스로 그 집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만큼의 내공이 되는지 아닌지 먼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길에서 마주하는 인연들의 이름과 사주는 물어도 개인적인 정보는 묻지 않는다. 사생활의 표현이 거기서 거기니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니까..  
 
복남씨도 신심을 내고 자기를 늘 성찰하는 법화경 수행자이지만 법화경의 울타리안에 갇혀있는 것이고 그 갇힘에 대하여 불편함을 그다지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아서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 하게 된다.  기의 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인데 기氣와 귀鬼가 같은 파동을 타고 있어서 기라고 설명할 때와 귀라고 설명할 때의  언어가 달라지는데 기라고 설명하면 자기의 기운을 성찰하는 훈련이 병행되기때문에 순설후 소리선 손뼉치기...등등의 행동을 같이해야 영역이라 이 언어를 듣는 것은 달가와하지 않는다면 귀라고 설명하는 언어는 귀만 내어주면 되기때문에 재밌어 하고 와...신기하네..하지만 귀를 이야기하는 이에게는 귀를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자신의 기운이 낭비되는 것이어서 달가운 화두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작용만 이야기하지 반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하면 꺼내지 않는다. 작용은 기氣, 에네르기이고 반작용은 귀鬼, 카르마라고 내가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 떠들어낸 이야기가 카르마니까 살구를 먹고 그 카르마를 죽여버리는 것이라는 설명이 붙게 되었던 것. 복남씨는 기와 귀의 세계,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아서 순설후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기로 했다. 수준에 맞춰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서로가 편안한 관계가 되는데 복남씨가 나에게 들려준 충언이 내가 추구하는 세계를 아무에게나 나누지 말라고  근기에 맞에 하라는 것이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친정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이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니까 그에 맞춰서 가르쳐 줘야한다는 것..그것을 오늘 복남씨에게서 듣게 되었는데 어느날 부터 내가 순설후에 대한 강조를 하는 것을 그다지 탐탁치 않아하는 것 같아서 순설후를 설명하지 않게 되었는데 복남씨가 싫어한다고 강 길에서 만나는 여사님들에게 순설후공양을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그래서 배경숙님을 도동 동네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 같이 설음으로 인사를 하게도 되고..   
 
강 길을 다니면서 만나는 여사님들에게 나눔하는 정보는 건강하고 신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상대방의 근기를 파악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정보를 풀어보면서 아 이사람은 여기까지는 이해하겠구나..하는 레벨에서 정보를 나누게 되는 것이니까

 
복남씨는 집으로 가고 나는 봉무동으로 올라가는 길..강 가에 난 잡초들을 베어내어서 남천나무가 깔끔해졌고 심, 한, 유여사님이 다른 두분과 같이 내려오시다가 만나 팔을 흔들어 반가와해주셨다. 왜 이케 늦게 오냐고 자기들은 한판 신나게 놀고 오는 길이라고 올라가면 두분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더라. 주욱 올라가다보니 패러글라이더가 오늘 4대나 떠서 우우웅 거리고 있어서 그걸 구경하고 있자니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분도 하늘을 보다가 자전거가 넘어질 뻔해서 둘이 서로 보고 웃었다. 두대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보았는데 오늘은 4대나 날아다니네..하는데 앞에 어제 만났던 윤화자님과 이름을 안갈쳐 줘..하셨던 분이 오시더라. 반가운 인사..어제 이름을 안갈챠주시었는데 오늘은 갈챠 주시어요..했더니 기억도 못할 어려운 이름이라고 하셔서 기억안할께요 했더니 윤화자님에게 자기 이름을 가르쳐 주라고 하시더라 이런 이런 예을의芮乙義라고 하시더라. 예 (芮)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예(芮)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3,568명으로 조사되어, 한국의 성씨 인구 105위이다. 본관은 의흥 단본이다. 삼국시대의 예(芮)씨로 추정되는 인물로는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芮悉弗)이 있다. 예여사님 이름때문에 검색을 해보게 되네.. 
 
길에 서서 예을의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이 무엇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윤화자님과 같이 다니면서 손뼉치고 순설후 하시고 예여사님은 乙이 있으니 새처럼 날개짓을 하시라고 팔을 많이 돌리시라고 했더니 알았다고..내일 만나자고 하고 헤어지고 올라가는데 소리쟁이 남자분은 자전거를 끌고 박여사님은 빠송이를 데리고 같이 오시다가 어디갔다가 늦게 오시냐..해서 관음사쪽으로 갔다가 올라오는 길이라고 그랬더니 많이 걸으시네요 하더라. 그리고 유턴하는 곳으로 가는데 차양아래 세 분이 앉아있는데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했는데 일전에 살구를 건네었던 분 중에 두분에 속하는 여사님들. 유턴해서 다시 지나치려는데 앉았다 가라고 해서 그럴까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손조여사님, 76세, 김경례여사님 79세. 김손조여사님의 사주를 풀어주면서 여사님 안에 화가 가득차있다고 그것을 풀어야 한다고 했더니 불면증이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하시더라 불면증이 생기는 것은 안에 화가 있어서 뇌에서 낮이라고 인식해서 그런 것이라고 속화를 꺼야 뇌도 아 밤이구나..하고 잠을 잔다고 했더니 말되네 그럼 어떻게 화를 꺼내냐고 해서 숨쉬기하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여사님이 개띠니까 짖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열이 쌓이고 그 열이 머리로 올라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라고..본디 숱이 엄청 많으셨을 것인데 했더니 그렇다고 하시더라 남보다 한웅큼은 더 많아 머리를 땋게 되면 속아내어야 할 정도였다고 두 분과 호흡훈련에 설음을 하는 방법과 그리소 손뼉을 치는 것과 팔을 돌리는 것과 순음도 곁들이고 같이 했는데 신나하시면서 재밌어 하시면서 집에가서 많이 해야지 하시더라. 내일 또 와라고 하시길래 답은 녜 했는데 5시 30분에 나와서 두 여사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면서 시간을 보니 8시 40분.  내가 신나서 하는 일이지만 이 여사님들과 시간을 맞추려면 관음사까지 갔다가 다시 봉무동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야...으짤까나야..나를 기다리는 순설후신도들이 점차 늘어가네

 

기(에네르기)와 귀(카르마) 
 
기는 살아있는 이에게서 발생하는 에너지이다. 그래서 생기라고 한다. 살았던 이가 남긴 기억과 기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고 그것을 괴귀라고 한다. 살아있는 이의 이야기에는 36.5도의 온도가 있고 살아있었던 이가 남긴 이야기는 체온이 없기때문에 으스스하다 서늘하다 소름끼친다는 느낌으로 괴귀를 설명한다 
 
가끔 이야기를 하다가 괴귀현상을 체험하는 때가 있는데 모골이 송연하고 소름, 닭살이 돋는다고 하는 현상이다. 내가 떠들어내는 이야기중에서 괴귀가 실린 정보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살아있는 이의 기운은 살아있는 이와 소통을 하기때문에 일단 36.5도의 체온을 딛고 오가면서 나같이 신바람을 불러내는 부챗꾼을 만나면 순설후나 손뼉을 치거나 몸을 많이 활발발하게 함으로 체온이 올라간다. 땀이 난다고 하는데 생기를 활발발하게 하면 세포가 열려서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시원한 기운이 드나들기때문에 속이 시원하다 몸이 가볍다 기분이 좋다는 말로 표현한다. 나를 만나는 이들이 다들 신바람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내 부채질에 자기체온 올리는 일에 동의하여 같이 하기때문이다. 그런데 지식세계, 죽은 자들의 세계를 꺼내게 되면 체온이 싸악 내려간다고 하는데 즉 분위기가 무거워진다고, 머리아프다 복잡한 거는 싫다등의 언어로 표현을 한다. 신나지 않는다는 것은 몸의 생기를 눌러버린다는 것이다 신남의 불을 꺼트리는 것은 지식이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 선악과=지식과 또는 지혜과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체온을 떨어트리는 무게를 가진 정보를 의미한다. 체온을 낮추는 정보를 이성에 속한다 즉 물에 속하는 정보라고 하게 되는데 인체가 7~80% 물로 이뤄져있으니 이성이 바탕이다.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에 물을 더하게 되면 익사를 하게 되니 이론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것이겠다.  
 
오늘 복남씨의 말, 근기를 따라서 가려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과 여자들이 재밌어하고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는 바람난 이야기 불륜, 시부모 며느리 욕하는 것들이라고 하기에 드라마를 안본지 오래이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남의 이야기할꺼리도 없고 해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가려낸다고 했다. 음담패설을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 기를 활성화시키고 활발발하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면 나도 충분히 활용하고 싶지만 순설후를 설명하려고 하면 차원 낮은 곳의 이야기를 풀게 되면 순설후의 핵심, 엣센스에 집중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 그간의 내 관찰이다. 음담패설을 하면 금방 친숙해지는 듯이 착각하게 되지만 돌아서면 음담패설한 자신에 대하여 자랑스러움은 느끼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즉 내가 그러하기때문에 돌아서서도 자랑스럽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면 나도 음담패설을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음담패설의 대가인 금숙씨의 삶의 흐름을 보니 음담패설에서 신남을 추구하는 것은 추천할만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즉 성적소통이 전제가 된 관계에서 전채요리로서 음담패설이 필요한 것이지 성적인 소통을 전제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언어낭비가 된다는 것이지. 이성지합을 위하여 발을 두드렸다는 이야기. 성적인 영역을 도전하기위하여 먼저 불을 지피는 것이 음담패설의 기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음담패설은 하부구조에서 소통되는 이야기꺼리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부부사이에 오가는 성담이 된다면 화두를 잡은 것이고 음담패설의 열기가 섹스로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희라고 하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담론이 음담패설이다. 문학에서도 가장 서술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희를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 춘향전의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가가 음담패설의 백미라고 한다. 성서에서는 아가서가 백미라고 하는 것이고.. '연'의 열매가 '애'라고 하였다. '연'은 전채요리로서 전희를 담당한다면 '애'는 섹스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다 연은 음담패설이고 애는 음담패설의 실천현장이라는 것이지  
 
부부생활은 부부외에는 알 수 없다고 하는데 부부외에는 알수 없는 영역은 '연'의 영역이지 '애'의 영역은 누구나 동일한 하나님이지 않을까나 생각한다. 부부의 친밀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배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섹스여행을 떠나게 되는 과정에서 오가는 어휘력, 음담패설이 얼마나 농밀하고 디테일하며 시적이고 문학적인가에 있다고 본다. 섹스여행을 떠나기 전에 부부만의 아가서Song of Songs를 읊어낼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는가 라는 것. 나는 '연'을 하지 않고 '애'로 바로 접속해버린 결혼살이라 '연'에 대한 결핍이 있다. '연'이라는 과정에서 철학 문학 역사....들이 오가고 그 다음에 의학, 생물이 왔다갔다하다가 '애'로 접속하게 되는 것이 남녀상열지사, 연애사가 되는 것인데 나와 남편에게는 '연사'는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하여 야합하고 출산함만 있었지 그래서 나는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지금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 체험이 없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재화에 대하여 극히 부정적인 눌림을 당하였던 같은 환경으로 인해 사랑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인 눌림을 당하였던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고 거부하고..하면서 살아있던 것이지 않을까 한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잘못세뇌되었다는 것이지. 복남씨와 나눈 대화중에서 자기희생이라는 이 오만한 발상아래 깔린 바탕을 보면 자기존재가 부정됨이 대한 왜곡된 발현이라는 것이고 자기존재부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랑받지 못하였다는 사실확인이 된다. 사랑받고 자라는 이들은 자기희생이나 남을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복남씨를 보면서 나를 비추임하는 것은 나와 성정이 닮아있기도 하지만 복남씨 안에 숨어있는 권력의 의지를 보면서 이 분은 어린시절 착취를 많이 당했을 것이다는 생각. 자기말을 듣지 않으면 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두 아들도 엄마에게 절대복종하고 남편도 자기말에 복종하도록 함으로 만족함을 얻는다고 하는 것에서..신앙에 귀의하여 몰입하는 원인은 결핍이다. 결핍은 자기희생이라는 이름의 권력으로 발아하여 너를 구속하려고 한다. 자신은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당하는 이는 아름다운 옥쇄가 되는 것이지  
 
내가 요즘 종교중력에서 벗어나서 내 본바탕을 마주하면서 생기발랄하여지니까 죽은자들의 누름이 얼마나 힘없는 종이호랑이인지 그것때문에 이 세월을 온 것이구나 그래도 이게 얼마나 축복이야 평생을 종교중력에 눌려서 살다가 가기도 할텐데 나는 그것을 벗어나 기운찬 천하장사로 다시 살아가는 삶이니까 그리고 내가 무엇에서 왜곡되었나를 하나씩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나를 새롭게 하는 것이겠지  
 
몸의 물이 맑고 밝게 유지하는 것이 아름다운 지혜이다. 그런데 이 물을 흐리고 탁하게 하는 것이 선악과, 지식을 추구하면 생기는 무거움이다. 경經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이고 典은 살아 있는 자의 이야기들이다. 지나간 시절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말고 오늘 지금여기를 펼치고 살아라고 하는 것은 바탕이 태초 태일생수에서 시작하여 상선약수가 되어 모든 것은 바다로 모이었으니 해야하는 것은 모인 바다에 깃드는 하늘이 되어라이다. 닫힌 세포를 열어서 신바람을 내는 일을 하는 것이 살아있는 이들이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이지. 죽은 자의 세계는 무겁고 무겁다. 거룩거룩 경건하다는 것은 죽은 자의 세계다. 움직임이 없고 온도가 없으니 무겁고 엄숙하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 무거움이 산자의 생기를 눌러서 신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게 한다. 종교적, 철학적, 역사적인 인간이 되지말고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이 되라는 뜻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숨을 쉬기때문에 일단 가벼움이 바탕이다. 가벼운 숨을 깊게 들이쉬면 깊은 곳에서 가벼운 숨으로 나간다.  
 
아침에 김손조, 김경례여사님에게 숨을 어떻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설명하면서 강 길을 다니면서 이렇게 숨쉬기를 가르치고 순설후를 가르치는 이 과정이 내가 나를 연하고 있는 과정이겠다 하였다. 두 어르신에게 내가 가르치지만 내가 선행하지 않은가..그리고 하나 둘 셋 넷..들이쉬시고 둘둘셋넷 내어쉬시고.. 

 

즐거운 공부...돌장승이 아기를 낳을 때 
 
자기머리를 딛고 올라가라는 니체의 말이나 乭이나..측백수림으로 다니면서 만난 유병순여사님의 어머니 곽순돌수호령이 접속되는데 징검다리는 무달선생님의 붓글이다. 무달선생님과는 글벗이라고 하는 관계지만 남편보다 나를 잘 알고 나보다 나를 잘 안다고 하시는 분이시고 10년지기를 향하고 있는 인연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시는 기가 센..그래서 다정하고 온유하며 품이 너르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글을 만들고 시를 낳는 길을 같이 가는 만큼 어휘력으로 이어지는 연戀의 관계를 통하여 내가 만드는 글은 장문이고 비문이어서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나는 이분의 시나 글을 보면 우와 이런 글은 어떻게 다듬어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존경심이 팡팡 솟기도 하지만 그의 문채를 모방해야지 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더라. 지몽선생님의 문채가 얼마나 명징하고 아름다운지 선망하였는데 무달선생님의 문채도 지몽선생님의 문채도 나와는 너무나 달라 나의 문채를 버리고 닮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지 내 문채의 비문스러움과 난해스러움과 난수표같다고 하고 몽환스러움을 두 분다 지적을 했지만 내 문채가 나의 상태를 반영하는 기록이어서 내가 바뀌지 않는데 문채가 먼저 바뀔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문장을 고쳐서 출판을 시도해보자고 한 분이 내 글 하나 자기가 손을 봤다고 해서 봤더니 내 향기는 하나도 남지 않고 낮설기만 하더라. 내 숨결이 삭제되고 그분의 숨결이 들어가게 됨으로 내 지적재산권이 사라져버린 것을 알면서 내 문채를 고수하기로 했다. 나의 글에는 나의 숨결이 스며 있으면 되지 내 숨결을 삭제해버리면 글은 죽어버리는 것이니까
 
내 글은 만연체이기도 하고 반복체이기도 하고 설명체이기도 하고...내 마음대로 비문으로 두드려내는 자유체이기도 하고..가끔씩 야..이렇게 잘 쓰는 글도 있구나 내 글에 감탄도 하고..그렇게 글놀이야를 즐기는 것이지. 내 글은 내가 혼자 노는 방법이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주장하는 순설후를 하고 손뼉을 치고 걷고..하는 방법을 같이한다면 내 글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아하..하는 지적쾌락에 일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 글귀가 생기로 살아나도록 하는 방법을 공유할 때 내 글귀가 그대에게도 생기가 되어 일상을 아름답게 그려주는 물감이 되거나 ..가 되겠다는 것이지. 
 
오늘 기와 귀의 차이를 신탁받으면서 아하..그렇구나 숨을 쉬는 자에게는 기가 작동하고 숨이 없는 글이나 그림에는 귀가 작동한다는 것이지. 글에는 귀가 있고 몸에는 기가 있다 기와  귀를 오가게 하는 것이 말인데 말귀라고 하기도 하고 말구라고 하기도 한다. 예수가 말구유, 말쿠트, 말하(비장)에서 태어난 것이 전달하는 것. 글을 대하면 귀신이 작동하고 사람을 대하면 생령이 오간다는 것이지. 나에게 대가리 공부 그만하고 신명을 내라고 하더만 이번에 乭자를 만나 이해하게 되면서 돌장승이 아기를 낳는다는 문장이 머리를 딛고 올라가라..대머리여 올라가라..엘리사에게 엘리야 흉내내지 말고 자기의 머리를 딛고 올라서라는 아이들의 가르침인데 엘리사는 상승을 가르치는 아이들을 저주했다.  
 
냉장고가 사망신고를 내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는데 주문한 제품이 주문제작이라고 배송은 7월 7일이라는데 냉장고 속에 있던 것들을 치워내거나 소비하는 과정..이 과정을 나의 무엇과 연결을 해서 설명하고 나의 정보로 새김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냉동했던 쑥을 녹여 쑥가래떡을 해서 네 집에 나눠서 먹었는데 쑥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던지 떡이 쌉쓰레 하던데 여름보약 삼아 드시라고 떡효능을 설명했다. 란희네에는 아저씨의 보약으로 용자도반에게는 지금 같이 있는 상영이의 보약으로..아래 예슬네에도 여름보약으로..이름을 정해서 나눴는데 나는 내 기록상 생일을 자축하는 생일떡으로..쑥떡을 내가 다 먹었다네. 그리고 일전에 내가 만든 떡들을 뿌꾸미를 해서 먹고 있는데 당시 만들 때 흑미를 믹서기로 갈다가 믹서기 두개를 날리고, 필립스 믹서기 대 소 두개를 샀는데 아직 쓰지 않고 있다. 
 
당시 이것저것, 맛난 떡을 만들거라고 재료를 찾아서 넣어서 만들었는데 보기는 시꺼먼데 뿌꾸미를 해서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데..나만 열심히 먹고 있다. 그리고 겨울에 산 번데기도 며칠동안 단백질보충으로 뱃속으로 이사를 시켰는데 이렇게 저장한 것들을 처리하면서 강 길을 다니면서 내가 쓰는 에너지양도 엄청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오가면서 떠들어대는 것이 말발이고 움직임이니..많이 먹었다 생각이 되면 발출을 많이 하게 되는 환경이 생기더라. 오늘 아침의 강길에서의 시간이 4시간이 넘었고 풀뽑기도 좀 했지만 여사님들에게 신나게 사는 방법을 전수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였다. 김손조, 김경례여사님이 한 분은 자두를 한알 주시고 한분은 커피사탕을 2개 주셨는데 불로천을 건너오려고 하니 기운이 빠져서 사탕을 먹고 자두를 먹었다. 이렇게 영양보충도 알아서 준비해놓으셨구먼..그래서 복남씨에게 복남씨랑은 구업카르마정화를 하는 살구먹고 봉무동에서는 순설후를 전달하고 자두를 주셔서 먹었다고 했다. 살구와 자두.. 여사님들에게 순설후를 설명함으로 내가 얻어오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내가 안다. 내가 좋자고 하는 것이고 내가 내 머리를 딛고 올라가고자 하기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것도 내가 안다. 어디까지 파고들어갈 수 있고 어떤 정보를 당겨낼 수 있는가..하는 것이 나의 도전이고 乭이라고 생각하고 측백수림에서 이어진 곽순돌조상님의 가피가 나를 이끌어주시구나 하는 감사함이 생기더라 順도 川頁이다. 머리안의 뇌파를 설명하는 한자라고 하신다. 뉴런과 시냅스를 공부하는 과정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집 어르신을 만났는데 나더러 날씬해졌다고 운동다녀오냐고 하시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몇시에 나가냐고 물으셔서 5시즘에 나간다고 그런데 지금 들어오냐고 하시길래 그렇다고 했다. 나가서 혼자 다닐 때는 풀을 뽑아서 운동량을 확보한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면서 같이 놀기때문에 에너지소비량이 많다. 한여사님은 같이 손뼉치고 놀다가 배가 고파진다고 나더러 배 안고프냐..하시더라. 아침마다 강 길에 나가서 그렇게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먹는 것은 오후 3시이전으로 한정하여 열량을 조절한다. 남편과 아이들이 무엇인가 주문을 하게 되면 엄마는 3시 넘어서 안먹으니 지독하네 하는데 자기관리가 결국 살조절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인정하게 됨으로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자기사랑이 나를 어여쁘게 관리하는 것이구나 해서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고 하는 그 말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로 한 것이고  이제 나가면 다들 날씬하게 예쁘다고 한다. 아직 정상체중에 닿으려면 열심히 살깍기를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순설후를 설명하면서 내가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 얻음이다. 너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너를 딛고 나에게 돌아오는 베품이다는 것이지. 무지개 아씨도 만능키가 혀에 있다는 것이고 순설후가 반로환동하는 방법이라는 설명에 자기의 동안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열심히 다시 도전하여 정진해야겠다고 하시더라. 반복에 반복을 해서 순설후음이 무의식이 되도록 해라는 것이 내 권면이다. 순설후가 통과의례라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통과의례를 무의식으로 익혀야 한다고 내가 생각한다. 
생명은 피에 있고 그 생명을 활발발하게 가동시키는 힘은 혀에 있다. 그대의 혀 아래 현응혈을 가동시키면 에덴에서 발원하는 4개의 강이 솟는다. 샘물이 솟는다 퐁퐁퐁..그래서 아기가 떼부리를 할 때 침이 줄줄 흐른다 그래서 턱받이를 하는 것이고..그 때 샘이 솟아나는 것이고 그 샘이 언어샘, 브엘세바 젖과 꿀이 흐르도록 하는 길을 열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대여 지식은 죽은 자의 그림자이지만 그대의 혀는 산자를의 길을 열어내는 신의 드릴이다
 
보병궁시대는 지식이 지고 신의 드릴 혀가 비상하는 시대다. 물병시대, 혀가 80%의 물길을 경영한다 물질이라는 낱말이 가지고 있는 또하나의 의미는 설음질이다. 물질..해녀가 바닷속에 들어가 무엇인가를 습득하려고 할 때 물질을 한다고 하듯이..그대가 심연, 즉 태안의 정보를 알아내려면 물질, 설음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설음이 물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