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봄뜨락

진리의 객관적인 실체는 그대의 이름이다

청향고은 2021. 5. 25. 13:50

진리는 주관적이지 객관적인 것은 없다. 즉 객관화될 수 있는 진리는 없다는 뜻 인구수만큼 진리가 존재하고
우주의 별만큼 진리가 존재한다. 즉 별하나 나하나 라는 공식이지. 그래서 나의 진리는 나의 의식이고 너의 진리는 너의 의식이다. 내 진리의식이 넓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지고 깊어지면 너의 진리가 나의 진리에 포함되든지 너의 너른 진리에 내가 포함이 되든지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일러 감동, 동감이라고 한다.  
 
나 만의 진리를 고집하게 되면 상처를 받는다. 진리라는 낱말을 인정욕구로 바꾸면 된다 관심종자라는 말로 바꿔도 된다. 즉 내가 너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 나의 진리인데 너에게 내가 부정되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너에게 내가 어필할 수 있는 힘이나 매력이 없다는 것이고 너를 매혹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는 것이다. 즉 나의 진리가 너에게 영향력이 없을 때  일러 진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돌리면 자기만 옳다고 하는 자기확증편집증환자다라는 것이다. 너는 너의 진리가 있고 나는 나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게 되면 화기애애하고 화목하다. 너의 진리보다 내 진리가 힘이 있고 매력적이며 빛나게 되면 너는 자석에 쇠붙듯이 붙게 된다. 매력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말은 너에게서 매력을 찾아내어 그 매력과 공명하는 사람이 되거라 이다 진리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명하고 누구에게서나 매력을 찾아낸다 내가 원하는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너가 가진 매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강 길을 다니면서 요즘 배우는 것이 너의 매력을 찾아내는 훈련이다 강 길을 나서면 팔돌리기를 하거나 순설후를 하거나 하면서 불로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징검다리를 건너가서 풀을 뽑으면서 가다보면  홍순악여사님(89세이시던가)이 마주오시는 것을 마주하여 반가운 인사를 하고 불자이시면서 나름대로 자기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고 나에 대하여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하면 답을 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잠시 나누고 홍순악 洪順岳이라는 이름의 힘을 설명하고 내가 홍순악을 읊조리면서 이 이름값을 내 품으로 당겨들이는 화잇팅하고 헤어지고 올라가면 아롱이를 데리고 오시는 부부팀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아롱아 안녕한다. 아롱아 안녕이라고 할 때 아롱아라는 발음이 주문이 되는데 아롱다롱
즐거운 울림이 되지 않은가?  
 
가다보면 한경순여사님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 분과는 길에 서서 우리가 만나면 하는 것은? 팔돌리기 손뼉치기 순설후하기 더하여 고함지르기를 같이하는데 하고 나면 신나고 기분이 좋아 설음이 잘 안된다고 하셔서 푸르르릉 푸르르르 푸르르릉 배가 고픈 꼬르르르륵 물에 돌을 던지면 나타나는 표현법인데 새라 날개를 푸드드득 거리면서 날아오르는 것은 푸르르릉이니까 들숨에 꼬르르르륵하고 날숨에 푸르르릉 하면 된다고 둘이 서서 같이 행동을 한다 
 
만나면 반복을 하다보니 익숙해지게 되는 것인듯 나를 만나면 신나고 활기차서 따라서 신나고 즐겁다고 한다.
어쩌면 매일 그렇게 활발하냐고 그래서 늘 순설후 하고 팔돌리고 다니잖냐고 강 길을 나만큼 활기차게 걷는 이가 없지. 황정자여사님도 마주치면 반갑게 팔을 돌리고 만면에 봄꽃같이 웃음을 지으시지 어제와 오늘은 윤기록여사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6월 3일 라이온스회장이 된다고 그것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작년에 겪는 환골탈태 나를 만나면 어떤 일이라도 새로운 행복파동으로 해석해주니 만나면 즐거울 수 밖에

너에게 있는 너의 진리의 실상은 너의 이름이다. 너의 이름은. 그 이름을 물어서 내가 아는 온갖지식을 동원하여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풀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너의 진리를 매력으로 나에게로 당겨오는 방법이다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세계, 해석하는 , 이해하는  언어화되지 않는 시공도 문자언어도 없는 그래서 붓다나 예수가 空이나
천국이라고 한 것인데 그 진리가 옷을 입은 것이 내 이름이다. 너의 이름이 진리고 내 이름이 진리의 실체다. 내가 내 이름을 모르면서 너의 이름이 진리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자기 이름도 모르면서 어떻게 너의 이름인 예수를 알 수 있겠는가? 강 길에서 풀을 뽑다가 만나는 인연이 점점 늘어나서 강 길을 걸어가노라면 스쳐가는 인연들과 나누는 웃음과 팔짓이 아름답다 
 
18일 젊어지는 두뇌습관이라는 책을 소개받은 손선생님의 이름도 물어서 나름 풀어보았는데  금요일 만났을 때 누가 어린왕자를 죽였을까? 라는 책을 화요일 건네겠다고 했고 오늘 나는 돌아오는 길 손선생님을 올라가는 길에 마주쳐서 책과 그 책을 재해석한 내 글을 전했다. 다 보시면 내 글을 보신 견해 한 줄을 부탁한다고 
 
이름을 묻고 그 이름을 풀어보는 것, 그것이 나로서는 의식확장을 하는 비결이다 손선생님의 이름과 사주를 물어보고 흠 하는 생각을 하고 계축은 풀어주고 을미는 다음에 풀어주겠다고 했는데 晙(밝을 준)과 源(물이어 흐를 원)을 놓고 준원이라는 한자를 다시 공부하게 되더라. 인연이라는 것이 이름을 가지고 오는 것이고 내가 푼 이름과 이름을 쓰는 이와 에너지가 공명하게되면 익숙함, 즉 친근함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기록여사님도 나를 만나면 활짝 웃으며 자기의 근황을 주욱이야기하는데 그 이면에는 윤기록이라는 이름을 무한 긍정으로 업데이트를 해주기 때문이고 그렇에 업데이트를 해주는 나의 풀이에 공명하는 그 결이 나와 기록여사님에게 같이 신나는 에너지로 작동하기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한자공부를 사람을 만나서 이름을 물어서 한다. 책상물림한자공부가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한자이름을 놓고 내가 풀어가는 것이지  
 
너의 진리와 내 진리가 다르기때문에 다름을 같게 하고자 하는 강제력이 집행되면 서로가 상처를 받게 된다. 이름이 다른데 어떻게 같기를 바라는가 그래서 너의 이름에 나의 이름에 담겨있을 공통의 기록을 기억을 찾아내어 그 이야기를 펴가게 되면 공명이 생기고 의식확장, 즉 이름이 만들어내는 빛남을 체험하게 된다고 내가 이해한다. 내가 나의 이름을 이해하는 이는 너의 이름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 이는 남의 이름을 앞에 붙이고 그 이름을 진리라고 우긴다 예수는 예수에게 진리였고 나에겐 인숙이 나의 진리다 진리=이름이다. 예수의 이름을 내가 왜 내 이름앞에 놓고 숭배를 해야하는가? 왜 붓다나 공자나 노자나 등등 내 몸에 입혀지지 않은 이름을 두르고 그 이름을 섬기는가? 내가 입은 아름다운 옷, 이름. 그 이름이 진리인데
 
내가 마주하게 되는 인연은 나의 힘의 범위안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인연의 이름을 풀어가면서 복남씨의 에너지를 내가 당겨오고 필숙씨의 에너지를 내가 당겨오고 김춘자 어르신 전춘화님 등등의 이름을 내가 알고 이해하는 것, 이름을 가진 당사자는 자기이름, 진리에 관심이 없지만 나는 내 이름에 관심이 있는만큼 너의 이름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내 이름에 너의 이름을 담을 수 있으려고 
 
태안에 아기를 보담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자궁이 견딜 수 있는 크기까지듯이 그리고 자궁이 버티지 못하는 크기가 되면 자궁을 벗어난다. 내가 너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는 너가 나의 진리에 공명하지만 너의 힘이 더 커지면 자궁을 벗어난다. 그것이 태아에겐 성장이고 자기틀을 고집하려고 하는 자궁에겐 상처다. 임신의 과정도 너와 나의 전쟁이고 출산도 자궁과 태아와의 전쟁이다 나의 진리가 너의 진리를 포함하지 못하면 그것을 일러 길가밭이거나 돌짝밭이거나 가시덤불밭이라고 한다. 나의 진리가 너의 진리와 상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섹스라는 현장이 결과가 즐거움이 되는 것이겠지만 과정은 너와 나의 진리가 서로 달굼질하는 과정과 같이 전쟁이다. 이 전쟁을 치루어 평화로 열매맺지 못하면
그 섹스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듯이 서로의 진리를 달굼질하여 서로에게 공명이 되고 넓힘이 되지 못했을 때는 상처만 남는 부부관계처럼 진리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너의 이름을 내가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 이름을 묻는 이가 없어도 나는 너의 이름을 묻는다 

 

진화=변화=성장=깨달음=의식확장 
 
 
무엇을 근거로 깨달음이나 성장이나...가 일어나고 확인되는가? 씨알이 땅에 묻혀서 단단한 껍질을 벗을 때 화기와 수기가 있어야 한다 씨앗과 흙과 화기와 수기를 지수화풍이라고 했다. 지수화풍이 물질화되는 과정을 土라고 했다. 즉 흙아래의 세계가 흙위로 올라옴을 그린 글자가 生(Birth)이고 뿌리를 뻗어내리는 글자가 死(Death)이다. 그대와 내가 몸은 흙이라는 토양을 통하여 생과 사를 경영하고 육체의 생과 사를 경영한 이들이 창조하고 다듬어서 대를 이어내린 문자를 너와 나의 관계에서 에테르土(영혼)라는 토양을 삼아 생(Tong, 通)이거나 사( Hide,隱)로 경영한다. 육신은 대지에서 제공하는 물질을 통하여 에너지를 생성하여 생존하고 너와 나의 관계를 만드는 에테르(영혼)을 통하여 정신을 창조하거나
나눔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육신은 대지(아담 Adam)를 딛고 있으며 정신은 문자(야웨(히브리어: יהוה, 영어: Yahweh)를 딛고 있다는 것이지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정신은 하늘(에테르)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육신이 돌아가는 흙은 물질이라고 하고 정신이 돌아가는 하늘을 영혼이라고 하게 되는 것으로 영혼을 통하여 자기의 정신을 창조하는 일을 진화다 변화다 의식확장이다 깨달음이다..등등으로 표현한다. 영혼이라는 것은 에테르라고 하거나 비물질이라고 하거나 불립문자라고 하거나..언어너머라고 하거나 하는 것이지만 영혼을 담은 그릇을 문자(Spel), 또는 정신(mind)이라고 하게 된다 
 
그대의 정신=문자이다. 그대에게 정신이 뭔가?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대는 무엇이라고 답을 할 것인가? 정신=문자다. 정신력은 문자 이해력이다 문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너의 언어를 보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 문자이해력을 넓혀가게 되면 너의 언어를 내 어휘력으로 용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 이 영역을 갈고 다듬는 일을 정신수양이라고 하고
정신을 수양하기위해서 필요한 것이 물질 대지에너지와 정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물질 영혼의 하늘에너지다
 
육신Body은 생기Breath로 유지되고 정신(문자해독력)은 생령Spirit으로 생성된다는 것. 점점 단순명료화된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개념인데 ...니체를 건너 어린왕자를 다시 풀고 나서 어린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한 그 양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다가 그려진 양이 아니라 양을 담을 수 있는 상자라는 것이 상징하는 것이 자기만의 무엇, 이름name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왕자는 이름이 없다. 사는 별의 주소는 있다. 영어name를 名, 이름이라고 하는데 영어를 한글로 변환하면 '남-이' 즉 이 세상에 남出이면 붙여주는 부름離 離를 火라고 하고 火를 부름, 불, 바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몸에 주는 부름, 몸을 인증하는 기호로 , 카인의 이마에 새김한 인印 같은 것이다 이마를 액전額田이라고 한다. 이마에 인을 새긴다는 이 말뜻은 이름을 준다는 것이다. 자궁에서 더 너른 세상으로 드러낸 몸에게
이름을 새겨주는 것이 생령이 되었다이다 생기로 숨을 삼는 육신에게 주어진 이름이 정신을 형성하는 생령이 된다는 것이다. 그대의 이름이나 내 이름은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영혼이 낳은 별들이다고 본다. 나만 쓰는 것이 아니고 너만 쓰는 것이 아니라 시공이 없이 누구나에게 허용된 영혼의 별칭이 문자로 이뤄지는 이름이다고 이제 알게 된다 내 육신은 물질에너지로 경영되지만 내 정신은 비물질인 문자에너지로 기루어지는 것이다.


정신의 부모를 영혼이라고 하는 것. 그러니 그대여 그대의 정신의 출발인 그대 이름을 마주해보라. 그것에서 그대의 진리가 출발하고 영혼의 빛결이 일렁일 것이다. 남의 다리 긁지말라는 이 말은 남의 이름을 이고 댕기지 말라는 것이다. 너에겐 나에겐 너의 이름이 있고 나의 이름이 있다 자기 이름을 두고 남의 이름을 들고 설치는 것만큼 어리석음이 없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산으로 한국에서는 대부분 세자로 이름을 한다 석자로 이름을 한 이유를 삼생을 담고 있어서라고 한다. 씨앗 성, 줄기 가운데 이름자 열매 끝자. 한글이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뤄지는 이치에 따라 한국인은 이름도 그 원리를 따른다. 삼생을 산다는 것은 이름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다. 생기는 육신의 숨줄이지만 생령은 정신의 목줄이라고   
 
육신은 너와 나 같은 원소로 형태로 음양으로 드러나있다 보이는 모습은 저마다 다른 듯 해도 육체의 원리를 하나다 그래서 육체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정신은 영혼이 낳은 별들로 이뤄진 문자로 이름을 삼기때문에 저마다의 정신삼생은 다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상태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 표의 문자이며 고립어인 한자를 풀어가는 이유는 나와 다른 이름의 너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몸은 같지만 그 몸에 심겨진 정신은 다름으로 나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너와 나의 신비함을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지 자기 몸에 부여된 이름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절대적인 지위가 만들어진다 외연적인 구조에서 얻게 되는 어떤 지위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기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의지이지 않은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육신을 벗고나면 이름은 문자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즉 문자를 정신으로 삼아 부리다가 육신이 스르지면 정신은 본래자리로 돌아간다. 나의 몸에 부여되었다가 너가 가져다 쓸 수 있는 이름이 된다는 것이지 문자가 몸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정신을 이루던 문자가 문자를 낳은 영혼으로 귀향한다는 것이다 몸은 흙으로 귀환하고 정신은 영혼으로 귀향한다 그대의 이름석자를 어떻게 부렸는지에 따라 그대가 귀향을 할 곳이 있거나 없다 흙으로 돌아가는 몸은 다시 몸으로 돌아오고 영혼으로 귀향했던 정신은 같은 이름을 부여받은 이의 주파수와 파동함수를 가동시키면 돌아온다. 문자에 담긴 주파수와 파동수를, 생령을 가동시키면 그 생령을 가동시켰던 정보들이 활발발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몸은 같은 정보로 귀환하고 정신도 같은 주파수와 파동수를 부리면 돌아오는 것이지 환생이다 윤회다,,,는 논리는 그렇게 풀어진다 내가 이름을 구성하는 문자를 풀어내는 이유가 그 이름에 담긴 정보를 불러오기 위한 것이다. 내 이름 석자만 풀어서 만족하겠는가? 내 이름을 풀어내는 원리를 딛고 살아있는 이의 이름을 잡아서 풀어내는 것, 죽은 자들이 쓴 이름을 당겨서 쓰기위해서는 재에서 불사조를 ...해야하지만 산 자의 이름을 잡아서 풀어내다보면 살아있는 현장에서 어떻게 그 이름이 활발발하는가...를 알게 되지 
 
한경순 여사님은 말씀도 없으시고 고개만 끄덕이시는 분이신데 동안 내가 한 경순이라는 이름이 어떤 파동수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지금 몸에 부여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의 에너지는 정말 아름다운 에너지인데 이름을 싫어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오늘 활발하게 팔을 흔들고 춤을 추시는 모습을 보니 무거움이 많이 덜어져 나가셨더라. 좌우에 금계국이 활짝 핀 꽃길을 신나게 걸어야죠.. 인생은 신나게 라고..그랬더니 금계국이 이쁘서 이애들 보려 나온다고 강 길에 가득 핀 금계국..꽃말이 상쾌한 기분이라고 길을 걸으면서 상쾌한 기분..할려면 팔흔들고 순설후 하시고
기분이 좋은 깡총깡총..뛴다고 했는데 그만큼 몸이 가볍다는 것이니까 흔들 흔들 하시고 하고 옆에서 바람을 잡는다 어디를 가든지 나는 신바람을 불러내고 웃음을 만들지 그렇게 활발하냐고 하길래 매일 순설후를 하고 팔을 돌리고
손뼉을 치고 걷고 ..그러니까요 그리고 더하여 내 이름을 이제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 이름이라는 이 삼위일체를 놓고.. 
 
 
생의 노래 - 이기철 
 
 
옴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 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삭은 처마 아래 내일 시집 갈 처녀가 신부의 꿈을 꾸고
녹슨 대문 안에 햇빛처럼 밝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이름과 함께 생애을 살고
풀잎의 이름으로 시를 쓴다
세상의 것 다 녹슬었다고 핍박하는 것 아직 이르다
어는 산 기슭에 샘물이 솟고
들판 가운데 풀꽃이 씨를 익힌다. 
 
 
 
절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레 절망을 노래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꽃잎 하나씩은 지니고 산다.
근심이 비단이 되는 하루, 상처가 보석이 되는 한 해를
노래할 수 있다면
햇살의 은실 풀어 내 아는 사람들에게
금박 입혀 보내고 싶다. 
 
 
 
내 열 줄 시가 아니면 무슨 말로
손수건만한 생애가 소중함을 노래하리
초록에서 숨쉬고 순금의 햇빛에서 일하는
생의 향기를 흰 종이 위에 조심히 쓰며. 

 

 

  •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 이기철

    창문은 누가 두드리는가, 과일 익는 저녁이여
    향기는 둥치 안에 숨었다가 조금씩 우리의 코에 스민다 
     
    맨발로 밟으면 풀잎은 음악 소리를 낸다 
     
    사람 아니면 누구에게 그립다는 말을 전할까 
     
    불빛으로 남은 이름이 내 생의 핏줄이다 
     
    하루를 태우고 남은 빛이 별이 될 때 
     
    어둡지 않으려고 마음과 집들은 함께 모여 있다 
     
    어느 별에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내 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 
     
    나무가 팔을 벋어 다른 나무를 껴안는다 
     
    사람은 마음을 벋어 타인을 껴안는다 
     
    어느 가슴이 그립다는 말을 발명했을까 
     
    공중에도 푸른 하루가 살듯이 
     
    내 시에는 사람의 이름이 살고 있다 
     
    붉은 옷 한 벌 해지면 떠나갈 꽃들처럼 
     
    그렇게는 내게 온 생을 떠나보낼 수 없다 
     
    귀빈이여, 생이라는 새 이파리여 
     
    네가 있어 삶은 과일처럼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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