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신주는 신낭에

청향고은 2021. 3. 30. 10:01

어제 참나와 안참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면서 어제의 나를 다시 확장한다 참나는 삼라만상이 낳은 I AM THAT I AM, 스스로 있는 자인 몸이다 몸이라는 이 신비체는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신의 무늬다. 정자와 난자라는 아엠댓아엠, 몸으로 드러나 삼라만상이라는 품안에서 사계절의 흐름을 대대하는 생명체의 신비 伸秘, 즉 펼치고 감추는 숨으로 경영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간 인류가 자신이 신의 무늬임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정신병증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교육에 의해 덮어쓴 허물들을 마지막꺼풀까지 벗겨내는 작업.
몸에 대한 개념이 문자언어를 벗어나 본디 자유하는 생명, 숨이라는 것이 자유라는 언어의 사실적시고 그 숨이 경영하는 질서가 몸을 품고 있는 어머니인 삼라만상에 대하여 소통하는 자유가 음악이고 너와 나라는 몸이 소통하는 질서가 문자라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것 
 
문화예술경영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벗어나야 하는 것은 길들여진 문자 언어구나, 문자언어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문자언어이전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감각없이 쓰는 낡은 문자언어를 벗고 새로운 문자언어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만번을 쓰서 낡아진 문자언어를 벗어나 새술(新酒)은 새부대(新囊, 신낭)에, 신주는 신낭에..얼마나 참신한가 그런데 새술은 새부대에는 누구나 알지만 같은 뜻인 신주는 신낭에..라고 하면 언어체계를 다시 성찰해야하는 변화가 생긴다.   
 
잘산다 잘한다..의 잘은 萬(전갈을 보고 그린 그림이고 하늘의 안타레스, 머리의 숨골, 아래체 생식기의 작동원리로 쓰임되는 기호, 상징, 영속성을 가진 에너지)으로 만 번을 반복함이다. 잘산다는 말을 만세라고 하는 것, 만년을 萬歲라고 하는 것이고 내가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다하여 만세를 할 때 내 몸에 들려주는 찬송이고 찬양이고 축복이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는데 그 왕이 몸이다. 王에 丶를 올리는 것, 즉 몸의 정보를 열어내면 主가 된다. 주인이라는 것은 그대의 개념과 나의 개념이 다를 수 있는데 내 주인개념은 丶印, 불도장을 붙일 수 있는 자리로서 王이다.  
 
음식이 들어가면 숨이 풀무질하여 에너지를 창조하는 곳이다 는 것이 내 풀이主釋다
그대의 주인의식이라는 것은 밥이 에너지가 되도록 숨息이라는 불丶을 붙이는 것着이다. 창힐이 만들었다는 문자가 한자(漢字)라고 불리게 된 배경은 한나라 시대(B.C.202 ~ A.D.220)에 문화가 정비되고, 여러 글자체를 통하여 한말(漢末)에 이르러 글자의 체계가 잡혀 해서(楷書) 곧 정자체가 만들어져 이것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지요. 이리하여 한나라 때 체계가 잡힌 자라 하여 ‘한자’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니 지금의 한자의 수명이 창힐의 문자나이에 비하여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창힐의 문자는 7000년이 넘는 세월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창힐의 문자는 상형문자라고 이해하면 된다. 상형문자는 지구 어디를 가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신의 지문이라고 하는 것이고 상형에서 확장된 것이 형성자이고 한자의 대부분이 형성자라고 하는 것이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표의문자에 속하나, 문자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방법에 따라서 더 자세하게 나눌 수 있다.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가지를 육서라고 부르는 것이고 육서의 기본적인 것이 상형이고 상형은 몸에서 만들어낸 영속성을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https://namu.wiki/상형자/목록 을 보면 인류의 보편적인 문자체계를 알 수 있다 문자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징기호를 안다는 것이라고 내가 이해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문예라고 하는데 문자는 알몸(창힐 蒼頡, 푸를 창, 목곧을 힐, 태안에서 완성한 정보라는 뜻이다 )으로 와서 옷 한벌을 만들어 입은, 무화과 잎치마가 아니라 벗은 몸을 가린 털옷毛衣이다.
아담이 에덴에서 나올 때 털옷을 입었다는 것이 전달하는 것을 몸이 문자라는 생존도구를 획득했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자연은 문자가 없지만 소리가 있다. 자연과 통하는 방법이 소리다.
그래서 사람이 자연과 소통하기위해서 얻어야 하는 기술이 자연이 울려내는 소리를 공명하는 능력이다  이 영역을 아트Art라고 한다. 사람이 자연을 그린 그림이 컬쳐, 즉 문화라고 하는 것이고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너와 나에게 공유되는 것이어서 화化(화하다, 너와 내가 일체감을 느낀다 소통된다 통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문화는 글을 통하여 소통되다 글을 통하여 너와 내가 하나임을 인식하다는 것이지. 그래서 문화의 진화는 인쇄술을 거치면서 누구나 책을 볼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시대로 나아왔고 글을 볼 수 있는 교육을 이룸으로 인류는 하나라는 가치관을 성취하여 서로가 통하는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꿈이다 통하지 않으니 아프다 싸움이 나고 전쟁이나고...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너와 내가 하나라는 인식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사람과 사람이 통하려면 문자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자연과 통하려면 소리를 알아야 한다. 나를 낳은 자연의 품으로 가려면 소리를 딛고 가야 한다. 자연에는 문자가 없고 문자에는 소리가 없다. 사람간에는 문자가 있고 자연과 자연사이에는 소리가 있다 나는 자연과 사람사이에 있다. 이것이 자연을 天, 사람을 地, 나를 人, 즉 자연과 사람사이에 있는 위치를 설명하는 글자다. 자연이라는 한자 自然, Nature.  Ture는 Tura, 땅이고 Na는 말 그대로 나이니 자연은 내땅, 내 몸이라는 뜻이다. 자연은 몸이고 몸이 자연이다. 영어낱말에 함의 된 것이 내 몸이 땅이니 이 땅을 경작하는 것이 컬쳐 Cultute, 문화다. 그래서 다스리면 지키라가 Cul 컬 캘이 된다고 내가 푼다. 자연 스스로 그러하다. 내가 생명으로 현실이 된 것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문예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깊고 깊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구나..매일 매일 내가 어떻게 치유되는지 알아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어쩌다가 그렇게 깊고 깊은 심층까지 이렇게 병증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가..그렇게 되도록 나를 방치하였구나. 굿Good판Ture, 굿마당을 굿쳐, 요즘 굿을 힐링이라고 한다. 치유..나음 자유..가 같은 느낌이다. 판을 마당이라고 한다. 굿판 굿마당, 치유마당, 힐링터, 나음과정 자유로움 풀어짐...내 사주에 년주가  기해己亥와 경자庚子를 걸치고 있는 이중성이라 흰쥐로 실험실의 희생쥐에너지라고 하기도 하여 지금까지의 타고 다니는 에너지로 했지만  입태주의 년주가 기해이니 요즘은 己가 몸이고 亥가 자에서 출발하여 닿는 곳, 核이라고 이해하여 입태주의 년주를 내가 타고 다니는 근두운 머카바 식신으로 부리고 있다. 기해년에 입태하였다는 사실적시를 하여 몸을 배움하는 바탕정보로 삼는 것이지. 사주가 자연이 나에게 준 자산이니 이 자신을 어떻게 경영하여 다섯달란트를 남길 것인지 이리보고 저리보고 세워보고 털어보고 눕혀보고...입태주 출태주 게다 백일동굴을 더한 백태주까지 다 당겨와서 나의 굿판, 힐링터를 확장하는 것이다     
밥을 잘 먹는 것이 주인이고 소화를 잘 하는 것이 의식이다. 이 주인의식에서 확장하여 나가면 너와 나의 관계에서 너의 말이 숨이고 숨이 태우고 오는 말이라는 밥상을 먹거나 물리치거나 선택은 나에게 있고 그 말밥을 먹었을 때 소화하는 것이 의식이다. 너의 말은 너의 숨을 타고 날아와 나에게 들어온다. 너의 말을 태우고 오는 숨은 너와 나의 같음이지만 그 숨에 태운 말밥은 너의 요리솜씨가 만든 것이니 그 밥을 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으니 그 말밥을 어떻게 소화하는가는 말밥상을 받아 먹는 나의 선택이니 너의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토한 내 상태이니 너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떡같이 하더라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너는 겨울폭풍한설같은 감정으로 말을 토해내더라도 나는 봄꽃같이 나비같은 받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너와 같은 주파수로 겨룰 수도 있지만 낮은 주파수로 안을 수도 있고 높은 주파수로 너를 누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 즉 남탓을 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너의 말은 너의 입에서 나온, 토한 말이고 나의 말은 내가 토한 말이다.

 

그래서 예수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악한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했다. 토吐한 것이기때문에 그래서 말은 일단 너의 입에서 나의 입에서 토한 더러운 것이다는 것을 인식하고 말을 대하면 그 말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즉 너가 던진 막말(탁주 막걸리)을 걸러서 정화하여 증류주인 소청주나 소주로 걸러서 내가 마셔도 되는 받아도 되는 말로 바꾸라는 것이 문화의 化가 가진 기능이다. 너는 칼처럼 찌르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도 내가 꽃잎처럼 받으면 된다는 것이지. 그것을 마법이라고 하거나 마술이라고 한다. 너의 냉기서린 말을 내가 받아서 따뜻하게 바꾸는 능력이 어휘력이다. 감정을 도발하여 격해지라고 라고 말을 받아서 꽃으로 피움하는 것 그것이 대화술이고 어휘력이며 마법이고 언어를 다루는 훈련이 만드는 결과다. 말을 듣고 세번 생각하라는 것, 즉 너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에너지를 그대로 받지 말고 내게 아름답고 건강한 에너지로 바꿔서 들으라 그래야 내가 병들지 않는다는 것 데미지를 받지 않고 피가 무거워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을 위하여 내 몸에 해롭게 듣지 말고 득이 되도록 바꿔서 받아라..그게 세 번 생각하고 이다..세 번 생각한다는 것 어휘력을 확장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는 실천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떡으로도 산다. 너와 나의 관계는 문화생활이고
나와 자연과의 관계는 예술살이다. 자연과 교감하려면 소리, 음을 배움해야한다. 내가 터득한 자연과 사귐하는 길이더라. 그래서 내 몸으로 발성할 수 있는 소리들을 매일 매일 토해내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맑고 밝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훈련하는 것이고  자연은 문자가 없지만 문자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고 자연은 소리로 경영되는 곳이니 자연의 소리를 익혀야 자연과 소통이 되는 것이라는 이 단순한 원리. 그래서 소리를 音, 吟, 淫이라고 한다. 해가 올라오면 나는 소리를 音, 바람이 울려내는 소리를  吟, 몸이 울림하여 내는 소리를 淫(음란할 음, 氵爪壬, 7~80%의 물, 뼈의드러남인 손톱 爪, 그리고  즉 머리를 상징하는 북방 壬 몸에서 발성할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음란이라고 했다. 그대가 섹스라는 현장을 살펴보면 섹스에 쓰임되는 이 한자를 내가 가져와 음을 설명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섹스는 땅을 경작하는 노동이다. 노동에는 노동요가 필요하고 그 노동요를 음란할 음으로 쓰는 것이다. 섹스는 문화이며 그 문화에는 아트인 음악이 빛에 그림자로 같이 다니는 것이다. 음란없는 섹스, 섹스없는 음란은 불완전한 것이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성격차라는 이름으로 이혼을 한다. 성격차..몸노동에 따른 노동요, 음란에 대한 지식과 배움이 없어서다. 문자를 통하여 너와 소통을 하지만 몸과 몸은 자연과자연의 만남임으로 문자가 아니라 소리로 소통되는 것이다 舌이라는 한자의 상형자는 두 갈래로 갈라진 뱀의 혀의 모양. 
 
干과 口으로 이루어진 회의자 혹은 형성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하는데 내 견해로는 혀의 두가지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문화를 소통하는 용도와 자연과의 관계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용도라고. 혀는 말로 부려질 때는 문화살이의 수단이 되고 소리로 부려질 때에는 예술살이의 길이 되는 것이라고 
   
문화예술이 밥에 대하여 법이고 이 말법을 어떻게 배우고 실천하는가가 세상, 즉 자연이 낳은 사람과 사람이 낳은 문화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라고 ..자연은 몸을 낳았고 몸은 문자를 낳았다 자연이 몸을 낳은 방법이 呂이고 몸이 문자를 낳은 방법이 律이다 해서 율려의 도라고 하게 되는데 소리와 글을 어떻게 마주하여 익히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이지 
 
백세는 손발이 희어지도록 손뼉을 치는 일로, 만세는 오장육부王에서 배움하도록, 배에서 생수의 샘이 솟도록 하는  고함지르기로 실천할 수 있는 낱말이다 영생불사라는 것은 영속성 만세를 사는 것 잘 사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든 통하여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영생불사라는 이 문자는 몸이 삼라만상을 다스리고 지키면서 땅을 경작하고 거둔 열매다    
 
문자언어의 영속성을 영생불사라고 한다. 내 몸을 스러져도 몸이 낳은 문자는 남아 너의 몸이라는 신낭에 신주로 드나들게 된다.모른다는 것은 봉인되어있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봉인을 열어서 그 안에 든 뜻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공부라고 쓸 때와 배움이라고 쓸 때의 차이를 어제 알았다. 공부는 말 그대로 功, 도구 工(히브리어 자인이다, 그리고 刃이다) 를 힘 力으로 삼아 夫( 大에 머리를 올리어 天이 되고 다시 天을  뚫고 올라감, 즉 상투를 얹음, 갓을 씀 夫이다.  사내라는 것이 외연의 남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산애 産噯(숨 애), 즉 코로 들어와 몸을 한바퀴 돌아나가는 숨을 뜻하는 것이다 )가 되라는 가치제시이고  이 가치에 도달하기위하여 도구인 工 (상형자를 보면 占과 닮았다 즉 땅을 고르기위하여 무거운 함마에 줄을 달아 네 방향에서 잡고 땅을 고름하던 도구. 그것에서 점치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사방에서 같은 힘으로 같은 순간에 들어올려 내려치는 일이 共이 되었다는 것이지 지금도 외연에서 표를 얻기위하여 후보자들이 지원군들과 나란히 서서 팔을 들어 올리었다가 고개를 숙이며 같이 절을 하는 것..그것이 점을 치는 일이고 점을 침으로 자신의 점수를 높여서 원하는 무엇을 성취하는 과정이다 
 
점치다는 것은 몸이라는 땅을 고름하는 과정이다. 점심이라고 마음에 점을 찍다는 것이고 마음에 점을 찍는 것은 마음이라는 밭을 고름한다는 것이다. 내가 풀어내는 언어세계는 다른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신주의 신낭이다. 
어제 쑥과 찹쌀을 갈아서 전부치듯이 구워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아침에 녹여 한장을 먹는다 찹쌀떡의 칼로리도 보니 100g에 279Kcal인가, 계란 1개 70Kcal. 
기해년주에너지를 타고 보니 내가 먹는 것에 대하여 곰곰하게 들여다 보게 되고 먹을것들이 가지고 있는 열량도 살피게 된다. 아들이 체크해주는 것이고 이제 내가 찾아보게 된다. 먹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 생각없이 육십이 넘도록 영위하다가 이제 성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니 이것도 참 재밌구나. 자연에서 내어준 문자를 디뎌야 가동되는 것인가? 60갑자 한바퀴 돌면 입태주에 닿고 입태주에너지가 가동되는 것인가..그래서 기해라는 己와 亥에너지를 쓰게 되는가..己의 상형자는 굽은 끈의 모양이고 亥는 돼지 또는 돼지의 골격을 세로로 그린 모양이라고 한다. 돼지는 살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고 살이찌는 것이 돼지의 미덕이지만 돼지는 대지, 즉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황금돼지라고 기해는 황금대지 옥토를 뜻하는 상징이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니..돼지는 대지 땅, 그래서 돼지는 땅 속에 숨어있는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후각이다. 후각과 미각이 연결이 되어있으니 제사의 향기를 신이 향음한다고 하듯이
자연이 사계절을 경작하는 것은  향기를 흠향하기위한 것이고 그래서 신의 자리를 나 사厶, 코라고 하는 것이다. 신의 자리, 소리의 향기를 맡는 것이 코 끝 준두다.   향기를 통하여 생사를 분별하는 곳, 말을 담아 두는 글에 향기가 있고 그 향기를 서권기라고 한다. 글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를 영비라고 하지.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돼지의 후각. 그것이 기해가 가지고 있는 뜻이라고 풀어본다 
 
숨으로 경영되는 몸이지만 그 몸이 창조를 하기위하여 땅을 경작하게 됨으로 땅과 소통하는 방법이 땅이 내어주는 것을 먹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땅의 소산을 먹음으로 땅의 정보를 공유하고 그 공유한 정보를 딛고 문자라는 상형자를 찾아그려내게 되고 그 문자가 자연과 하나되는 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자연과 하나된 문자는 자연의 에너지가 가동되는 것이고 그것이 창조주의 무늬가 되어 영속성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문자를 부리게 되면 엄엄급급영율령사파하..신령스러운 일이된다는 것 즉 신의 영을 내가 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옆나라에서는 그것을 식신을 부린다고 하게 되고 성서에서는 머카바를 탄다고 하게 된다. 예수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탔다. 엘리야가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다고 표현하는 것들은 자연과 공명하는 에너지를 가동했다 이다.

다음

1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