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사람이 창조한 문자언어, 사람의 생존수단

청향고은 2021. 3. 29. 03:18

해맞이신단으로 가지 않고 봉무동으로 나돌면서 봄나물캐면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잊어버린 것 같다.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나물캐면서 순설후음 훈련하기위한 때 
 
희애락과 의식주 가운데 있는 노애오욕을 마주하게 되면서 새로운 개념도 생기고 현실 즉 나타난 열매를 놓고 열매가 되기까지의 과정보다 열매를 어떻게 활용해야 유익함이 될까를 궁구하기로 했다 즉 열매가 되기까지의 프로세스는 이제 이해했으니 열매를 어떻게 요리하여 음미할 수 있으려나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을 해 보자는 것이지 
 
쑥을 캐면서 만나는 분들에게 쑥을 어떻게 하시는가 묻게 되는 것은 내가 아는 레시피외에 다양한 쑥 사용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쑥을 씻어서 데쳐 말려 갈아서 쑥차로 마실 수도 있다 쌀을 갈아서 가루 낸 쑥을 섞어서 전을 붙일 수도 있다 그외 다양한 쑥사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하듯 이제부터는 열매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문자언어는 열매다 여태 문자언어가 생성되는 과정을 추구했다면 결과로 주어진 문자언어라는 것을 어떻게 씀 하여야 멋과 맛이 생기는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영계라고 하는 태안에서는 문자언어가 없다 태어나면 문자언어라는 선악과가 앞에 있다 태안에서는 먹지말라가 실천되지만 태어나서는 다스리고 지켜야하는 대상이 된다
사람이 문자언어를 창조한 것은 먹고살기위한 수단이다. 즉 생존의 도구로 만들어낸 것이다. 세상의 온갖 정보들을 파들고 들어가면 결국 먹고 살기위한 방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나눠서 노동을 하는 것은 먹고 살기위한 것이지. 문자언어를 수단으로 삼아 먹고 살거나 몸의 노동을 통하여 먹고 살거나.. 
 
문자라는 형상과 언어라는 모양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 창조주의 창조는 생명체이고 창조의 생명체가 신의 본성을 따라 모방한 것이 문자언어라는 피조물이다 사람이 태어나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 수단방법으로 창조한 문자언어 아이구 이렇게 개념이 정의되구나. 그래서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즉 생명유지'를 위한 것. 그게 진실이다. 너와내가 소통하는 이유도 먹고 사는 것에서 잘먹고 잘 살기위한 것이다. 잘은 만의 우리말이다. 많이 먹고 많이 살기, 즉 오래살기. 영생불사의 추구..왜 그런 공부를 하느냐 물어서 영생불사하려고요..했다. 남들이 의문하지 않는 것을 의문하는 것은 영생불사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겠다고..오래 산다는 것 장생불로
그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보게 되면서 반작용으로 생기는..이 본능을 어떻게 마주하여 풀어나갈 것인가가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문자언어가 있기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도 생기는 것이겠다  
 
자연은 사람을 낳았고 사람은 문자언어를 낳았다 자연을 닮은 사람은 자신을 창조한 자연을 닮은 문자언어를 낳았다 그게 하나님이 자기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의 반복이 된다 창세기에 두번의 창조가 나오는 이유 자연에 사람을 창조한 첫번째 창조 그리고 사람이 문자언어를 창조한 두번째 창조 그렇게 세계가 이뤄졌다 
 
문자언어너머는 비밀의 세계라 알 수 없지만 사람이 만든 문자언어는 사람이 만들었기때문에 알 수 있는 세계다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문자언어이전의 세계이고 생명나무는 태어나 마주하는 문자언어세계다 그래서 선악과는 먹지말고 다른 나무의 실과들 즉 문자언어들은 먹어도 된다고 하신 것이다 
 
신의 창조는 신의 음식 즉 숨을 통하여 존재하지만 사람의 창조는 사람의 음식 즉 문자언어를 통하여 생존한다는 것이다 여태 언어이전을 궁구했고 닿은 곳은 숨이다
그 너머는 알 수 없음이고 이제부터는 숨이 만드는 창조에 대해 세밀하게 점검하는 것이 현실에 발을 디딤한 내가 해야하는 바탕공부가 된다 
 
문자는 어느 정도 파악했다 한자라는 뜻글자를 풀어가면서 맥락을 이해하였다
문자는 틀이니까 그 틀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자산이고 이 자산을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까 내가 문자라는 쑥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레시피를 모아서 말하는대로 라는 요리를 내놓을 수 있을까 를 찾으려 하는 것 
 
말하는대로 된다고 외연에서 전하고 생각대로 라고 하는데 내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그대로 이뤄지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어야 하는가? 
 
쑥떡을 하려고 해도 일단 쑥을 캐는 것이 전제되고 필요한 량을 캐야되고 다듬어 씻어 데치고 방앗간에 가져가 맡기는 것이 있다 방앗간에서 하는 과정 쑥과 불린 쌀을 갈아서 반죽하여 찜하는 과정을 거치고 가래떡이든 절편이든  만들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문자도 만들어졌을 것이고 언어는 방앗간에서 떡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현상이지 않을까나 하는 생각 그래서 쑥도 불린 쌀이 있어도 갈아서 반죽하여 찌는 그 과정이 없이는 쑥떡은 안되듯이 문자원리를 알고 익힌다 해도 이 문자를 언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 
 
문자는 틀이다 무엇인가에 무늬를 찍어주는 무엇인가가 먼저 있어야 틀을 눌러서 무늬를 만들 수 있다 절편을 하면 무늬를 눌러준다 여태 내가 문자가 틀이라고 하면서 수직개념으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비로소 수평틀 즉 누름하면 새김되는 무늬 떡무늬틀이구나 알음이 온다 인장반지를 받은 꿈 
 
문자는 떡을 누름하는 무늬틀이다 그래서 떡을 뽑아 절편으로 누름하듯 언어라는 떡에 문자틀을 눌러서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구나 구음이란 떡에 문자라는 틀을 눌러 무늬를 만드는 것 
 
구음이라는 파동을 문자라는 함수로 틀을 만들 때 문자라는 무늬가 생기고 그것이 객관이 된다는 것이구나 문자에서 구음으로 구음에서 소리로 소리에서 숨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다시 내리어오면 숨의 무늬가 소리이고 소리의 무늬가 말이고 말의 무늬가 문자가 되는 것(낙성관지, 도장, 싸인)이니 말하는대로는 문자화를 뜻하구나
구음을 문자로 새김하는 것이 말하는대로의 일차적 실행 문자로 새김한다는 것은 피에 새김한다는 것 
 
문자로 틀을 삼을 때 그 말이 효력을 나타낸다는 것이구나 글을 만들어 그 글을 바탕으로 삼는 것 그게 글마당이라고 하게 되는 글밭 컬처 
글을 쓰라고 하는 이유가 글이 밭이 되고 무늬가 되기때문이다 즉 피가 만드는 무늬를
받아내는 것이 글이라는 것 글이란게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국한 되겠는가? 그림이라는 것에서 글로 내려왔듯이 손으로 하는 모든 그림이 글이지 않겠는가?  
 
손발이 하는 작업이 모두 글이다 그리는 것  그것을 Culture라고 한다 입으로 하는 작업을 Art라고 한다 입으로 하는  작업 아트는 앗이다 즉 빼앗아내는 것 속의 것을 토해내는 것 입으로 하는 모든 작업이 예술 아트다 그러니 그대나 나 컬쳐아트인데 경영을 어떻게 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 문화예술(영생불사)이 될까. 
사람의 가치는 자기라는 컬쳐아트에서 나온다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할 것인가  
 
이제 언어너머라는 말은 닫고 문자언어틀을 어떻게 마주하여 내 인장반지로 삼을 것인가 현실적인 문제로 온다 지구에서 사는 한 문자언어는 생존을 위하여 버릴 수 없는 틀이다 여태 문자언어를 딛고 숨을 다루었다면 이제 숨을 딛고 문자언어를 다듬어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지만 바람이 별빛을 타고 온다 
오늘 3월 28일 세로 틀에서 가로틀로 개념이 변화한 날
세로 틀일 때에는 소리와 대대하였지만 가로 틀일 때에는 땅과 대대하게 되는 것
하늘은 비었고 땅은 충만하다. 충만한 곳에 넘치는 은혜. 그래서 땅을 경작하듯이
사람이 창조한 문자언어를 경작하여 생명의 떡을 만들어 먹는 것 그것이 영생불사다그대의 입으로 빼앗아 낸 소리결에 무늬를 찍으면 그것이 낙성관지 왕의 인장이다
서진으로 화선지를 누르고 붓글을 쓰듯이 그대의 말도 날아가지 않도록 문진을 찍어서현실화하는 것
태안의 몸이 태밖으로 나온 것을 현실이라고 한다 現實
태안에서 기룬 몸이라는 열매가 태 밖으로 나오는 것. 현실이라는 개념이다
그대가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태어난 몸이 현실이고 몸이 입어야할 옷이 이상이라고 하거나 가치라고 하거나 하는 자기만의 언어세계다. 주어진 문자언어로 그대의 옷을 짜입으라..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생존법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사실에 적시하여... 
 
사실事
'사실(事實)' 풀이를 보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가리킨다 .  
 
적시摘示
摘자는 손으로 ‘따다’(pick)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손 수’(手)가 의미요소로 쓰였고, 啇(밑둥 적)은 발음요소이다. ‘들추어내다’(dig up)는 뜻으로도 쓰인다.  
 
示자는 神主(신주) 모양을 본뜬 것으로, ‘신주’(a memorial tablet) 즉 제사를 받는 죽은 사람의 위패가 본래 의미다. 옛날 사람들은 福이나 禍는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인지, ‘나타내다’(appear; show) ‘보이다’(let see)는 뜻도 이 글자로 나타냈다.  
 
摘示는 ‘들추어내어[摘] 보임[示]’을 이른다 
 
이 두 개의 낱말을 더하여 사실적시는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한다 
 
나와 너와의 관계는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시에서 출발하고 도착하여야 한다. 가치판단이나 평가는 개인적인 영역임으로 사실적시가 될 조건이 아니다. 나만의 이야기는 기억의 착오 錯誤가  개입介入되고 그때 그때 자기에 이익利益이 되도록 고쳐가는 기능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이야기임으로 사실적시냐? 물으면 그것은 알 수 없다.  
 
내가 나를 기록하는 이야기는 꾸며내는 것이지만 꾸며내는 도구인 문자만은 사실적시를 통해 만들어진 도구임으로 이야기를 꾸미는 문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만들기위하여 선택하는 문자, 고유명사거나 명사를 뽑아서 그 낱말의 값을 헤아려 내는 것을 사실적시라고 하게 된다. 사실이라는 것은 문자이고 적시라는 것은 그 문자가 생성된 과정을 들추어서 본래쓰임을 찾아내는 것으로 문장에 담아서 쓸 때 바른 쓰임이 되는 것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쓰는 것이 문자를 다루는 이의 자세라고 하는 것이겠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도 어떤 문장을 만들어서 담화를 발표하는가 성명서를 내는가 뉴스를 만드는가에서 보면 어떤 낱말을 쓰서 문장을 만들었는가를 평론가들이 평론하고 비평가들이 비평한다.  
 
이번에 좀스럽다 민망하다는 SNS가 문통의 민낮을 그대로 드러낸 문장이 되어 지지률에서 하락을 가져오는 신호가 되었다고 보는데 내가 어떤 낱말을 선택하여 이야기를 꾸며내는가에서 내가 선택하는 문자는 사실이고 그것을 문자안에 들어있는 과정을 들추어 내어보임하는 방법으로 글을 두드렸다.  
 
문자를 사실로 삼고 그 문자를 들추어서 그 안에 든 것을 드러내어 보이는 글. 그래서 내 글은 사실적시체이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흐름을 문장으로 꾸며내는 것이다.
 
문자를 창힐이 만들었다고 했다 창힐은 눈이 넷이라고 했다. 눈이 넷이라고 하는 이 상징은 남이 보지 않는 세밀한 부분을 보고 기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자의 기원과 문자 발명에 대해서는 창힐(倉頡 BC4666년 ~ BC4596년)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하지요. 창힐은 중국 고대 전설 시대의 전설에 나오는 황제(黃帝)의 신하로 새의 발자취에서 착상(着想)하여 처음으로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여씨춘추>에 그가 글자를 만들었다고 나오고, <설문해자>에는 황제의 사관으로서 글자를 발명했다고 되어 있다지요. 또 새의 발자국을 보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고도 하는데 초기 문자가 상형문자(象形文字)일 가능성을 의미한다네요.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문자의 출현을 창힐과 연계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라네요. 당시 역법 제정 등에는 문자 기록이 필요했고, 신탁 따위도 문자를 필요로 했다지요. 
 
어떤 학자는 창힐이 처했던 시기가 대략 기원전 26세기 무렵이고 전욱 부락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도 하지요. 노신(魯迅)은 <문외문담門外文談>에서 문자를 만든 사람이 창힐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여러 사람이 만든 것을 사관이 채집하고 덧붙여 사건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하네요. 다시 말해, 한자는 창힐 한 사람의 창조가 아니라 창힐 같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차츰 풍부해졌다는 것이지요. 다만 창힐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큰 작용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 정도의 말씀을 상식적인 설(說)로 생각하면 되겠네요. 한자의 기원과 한자에 대한 자료는 방대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사실적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창힐이 문자를 창조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글자를 만들었다는 이 사건 자체가 갖는 의의겠지요. 한자의 출현은 중국 역사가 문자기록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중대한 사건이자 후대에 크고 중요한 영향을 준 사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문자는 어느 한 시기에 갑자기, 또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갑자기 창조될 수는 없고, 축적된 문화의 구체적인 산물이라 하지요. 순자는 창힐이 한자를 창제하였다는 학설에 대해 문자는 '약정속성(約定俗成)'의 결과물이며 창힐은 그저 당시 통용되던 문자를 정리한 사람이라고 하였다네요. '약정속성'이란, 문자의 창제과정에 수반하는 부호에 대한 약속과 사회적 승인을 축약한 말로 문자의 탄생과 사회적 공인에 대한 개념을 가장 합리적으로 표현한 말이라지요(네이버 자료에서). 
 
그리고 한자(漢字)라고 불리게 된 배경은 한나라 시대(B.C.202 ~ A.D.220)에 문화가 정비되고, 여러 글자체를 통하여 한말(漢末)에 이르러 글자의 체계가 잡혀 해서(楷書) 곧 정자체가 만들어져 이것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지요. 이리하여 한나라 때 체계가 잡힌 자라 하여 ‘한자’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쓰여져 온 한자 가운데 약 2,200자를 중국은 1950년대부터 보다 간략하게 고쳐 현재 간체자(簡體字)라 하여 널리 쓰이고 있는 실정이라네요. 
 
자연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문자이니  사람이 다른 문자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사람이 만든 것이기때문에 사람에 의하여 교정되고 덧대여지고 간략화되고..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자언어로 기록되어 전해오는 것은 신의 작품이 아니라 사람의 작품이니까 문자언어의 무늬는 인간의 무늬 인문의 출발이된다는 것이고 신의 무늬는 사람 자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연이 낳은 몸, 몸이 만든 문자 몸은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문자는 몸의 해석을 따른다는 것이지  
 
사람이 먼저다고 하는 프레임이 있는데 자연이 먼저다. 그리고 사람이고 그리고 문자다. 자연안에서 사람은 생존하고 사람가운데서 문자가 활동한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문자가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몸이 중요한 수단이 된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사람이 만든 문자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지. 그래서 자연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문자를 벗어난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문자라는 길을 딛고 들어간다. 창힐이 만든 문자를 적시하는 것, 즉 창힐시대에 만들어져 내 눈앞에 도달한 그 문자의 흐름에 어떻게 쓰임하면서 전습되어 지금에도 쓰임이 되는가? 사라진 문자도 있고 더해진 문자도 있을 것이고 어디에 어떻게 쓰기위하여 만든 것인지에 따라 문자의 위치와 가치가 정해져 있었을 것이니 그 내력을 들추어내어 보는 것이 사실적시다 
 
그대와 나의 눈앞에 드러나는 사실인 창힐이 문자를 만들어 씀하기 시작하면서 인문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창힐이전에 문자가 없었지만 구음이 있었고 구음을 신화라고 하였고 이 신화는 피에 새김되어 내려오고 그것을 일러 신의 무늬라고 하게 된다. 문자는 인간이 만든 무늬지만 신화는 자연이 만든 몸이 풀어내는 이야기라고 신의 무늬라고 하는 것이다. 태안의 태아가 자라는 과정을 의학에서 다 밝혔지만 과학이 정자나 난자를 만들지 못한다. 사람이 제아무리 호모데우스가 된다 해도 생명을 만들어내는 과정, 정자를 난자를 창조하지는 못한다. 자연의 무엇이 사람을 만들었는지는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다. 풀 수 없는 영역이다. 풀 수 없는 정보를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니 신은 숨이다는 정리를 하고 숨을 바탕으로 사람이 만든 작품인 문자라는 사실을 적시해서 인간의 무늬를 마주해 나의 무늬와 비춰보는 것이 삶이겠다

 

참나眞我와 안참나非我... 
 
참나는 몸體이고 안참나는 몸에 부여한 사주팔자라고 하는 명식Name다
참나는 안참나를 통하여 발현하고 안참나는 참나를 통하여 증명된다
생명체인 몸과 안생명체인 사주팔자이름의 관계가 빛光과 그림자影이다
몸은 빛,세피라이고 이름은 그림자, 새도우이다.  
 
내가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위하여
주민증이나..기타 등등의 문서를 제시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임을 너에게 증명하기위하여 그림자인 문서를 제시해야 확인이 된다는 것
너에게 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증명서가 필요하고 그 증명서에는 
내 얼굴, 이름 생년월일이 담긴다. 내가 나임을 나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너와 살아가는 관계에서 너에게 나를 증명하기위한 방편이 주민증이다
사주팔자 이름은 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너를 내가 알기위하여 신분증을 통하듯이..이름과 사주팔자라는 것은
내가 너를 인식하는 지표가 된다. 여태 내가 나를 알기위해서 사주팔자 성명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를 알기위한 리트머스로 내 이름과 사주팔자를 
풀어가면서 파생되는 정보들을 당기고 조합하여 아하 이러한 경우 이러한 수가 나오구나 라는 결과값을 산출하여 너에게 대입을 하기위한 것이다 
 
요즘 만나는 이들에게 먼저 묻는 것이 이름이 뭔가요..이다. 한글이름에 한자는 요? 하고 답이 돌아오면 내가 축적한 정보를 근거로 아하 이 사람은 어떤 성향이겠다 나름 소통할 화두가 어떤 것이면 되겠구나 예측을 하고 그렇게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한다. 이름을 만드는 문자를 열심히 파악하여 풀어 낸 공부를 했고 무슨 띠냐이고 월이나 일주까지 묻고 더 들어가면 시주까지 물어본다. 내가 사실적시한 정보와 대상의 이름과 사주를 비춰보는 공부과정이다. 내 공부의 정확도를 확인하는 것. 이 과정을 거치면서 예언력이나 예지력을 기루고 내 말의 무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어제 만난 기축생 여사님과도 내 공부에서 기축이라는 정보를 축적하였기 때문에 대화가 이어지고 씀바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분의 삶에서 얻은 지혜를 얻어왔다. 그리고 남편분이 갑신년으로 78세이신데 산으로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갑신년이면 그렇게 사시는 것이 맞고 돌아가실 때 자는 듯이 가실 것이라고 했더니 그런 복을 아무나 받나 하시더만 시댁식구들은 돌아가실 때 그렇게 순조롭게 3일 누웠다 가시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파악한 정보의 정확도..를 확인하는 것 
 
여사님이야 기축이라 인덕도 있고 있는만큼 사람을 거느리니 마음고생도 많으시겠지만 타고오신 기운이 대장부시라 잘 살아오시는 것이라고 했더니 맞다고 하시더라. 살아 온 세월에서 체험한 살아있는 정보. 나보다 11년을 더 사신 분의 지혜를 내가 받아오면 내 수명이 11년이 더해지는 것이지 않겠는가..이런 생각을 한다. 81세의 음악선생님을 만나서 내 수명에 19살을 얹듯이..그렇게 나는 세월을 더해가면서 수명연장의 꿈을 이룬다. 내 세월에 남의 세월을 얹는 것, 그것이 세월을 아끼고 흰머리앞에 머리를 숙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사람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넘이 풀어주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나는 먼저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감으로 나 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나의 분신을 관찰하고 그 삶의 빛과 그림자를 그리고 내가 빛 한줌을 건낼 수 있으면 건네고 그렇지 않으면 그 분의 이름을 풀어서 이렇게 멋지고 찬란한 에너지를 가지고 오셨네요..라고 한다. 사실적시해서 설명해야지 뜬금포같이 떠들면 안된다. 내가 풀지 못한 문자를 쓰면 입을 다물고 돌아와 그 한자를 찾아 공부를 한다.  너의 이름을 풀어가다보면 그것이 나라는 몸이 새기고 와서 창조한 문자의 비밀을 하나 얻게 되는 과정이구나 하게 되니까 모르는 한자이면 즐거움이다 아 새로운 기술을 하나 득템할 수 있는 기회구나..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내 이름의 정보를 다 찾아내지 못하고 빛결의 이름도 여전히 풀고 있다. 내 이름의 忍이 心이 있고 빛결의 이름 선에 구슬 옥이 있어서 ...淑을 풀면서 潤을 같이 풀고 潤에 구슬 玉이 있어서 선과 연동하여 풀고..그렇게 빙빙돌아가면서 반경을 넓히면서 이름을 사실적시하는 것 
 
오늘 남편에게 찹쌀 불린 것과 쑥을 갈아달라고 보냈더니 방앗간에서 전화가 와서 쑥이 많다고 하면서 갈기에 힘들어서 공임을 더 받아야겠다고 하는데 거칠게 갈려도 갈아주시라고 했다. 남의 말을 들어서 쑥은 다다익선이라고 하였더니 쑥에 비해 쌀이 적은 것이라고..이용희님이 방앗간에서 쑥이 많으면 잘 안갈아주려고 한다던데 찹쌀의 질기와 쑥의 물기가 더해져 기계가 벌어진다고...갈아주기야 하지만 대체로 꺼린다고 하더만..쑥이 씹히면 어떠랴 내가 먹을 것이니..그렇게 레시피하나를 시전하면서 쑥을 많이 넣어야 하는 자와 쑥이 많으면 갈기가 어려운 자의 상황이 나타나고 결과는 수임을 넉넉하게 주면 된다는 것. 그리고 딸의 선택 엄마 쌀 두되하세요 하였는데 쑥많이..라는 주문에 걸려서 한되에 쑥을 다 넣으라고 했더만 쑥도 2킬로라고..쌀 두되에 쑥2킬로 그걸 반죽해서 냉동해서 하나씩 밥 삼아 구워먹는 것..남편은 쑥쌀간 것을 들여다 주고 머리카락자른다고 다시 나갔다.  
 
쑥이 많고 찹쌀도 질어서 다시 반죽하지 않고 갈아 온 것을 떼어서 눌러 구웠더니 딱일세 일단 시식해보니 만족스럽다.  몇 개를 만들어 구워서 바로 냉동실 행. 남은 것은 여러 뭉터기로 갈라서 비닐에 담아 냉동실. 하나씩 해동해서 그 때 그때 먹으면 되구나 이렇게 새로운 체험을 한다  12시부터 강의를 들어야 하니 이전에 작업을 끝내려고 했는데 마음먹은대로 되었다. 오늘은 강의를 들어야 하니 강 길 나가는 것은 멈춤 
 
몸은 자연의 창조물이어서 신비한 정보원이고 그 몸이 삼라만상을 다스리고 지키기위하여 만들어낸 도구가 문자라는 것이고 그것을 몸에게 먼저 적용을 하여 너와 나를 가름하는 잣대로 삼은 것도 지혜이겠다. 몸이 만들어낸 문자라는 도구가 문화를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고 문자를 딛고 문장이라는 이야기를 일구는 수단이 되어 이야기에 생존의 정보를 실어 후대로 내림하여 준 것. 그것을 이스라엘에서는 22자에 담은 카발랴 세피로트라고 했다. 동양에서는 팔괘라고 했다. 
그대와 나에게 먼저 적용한 카발랴세피로트는 이름이고 팔괘는 사주팔자다.
히브리어 22자, 팔괘의 8개가 만나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문화예술경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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