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아이덴티디 조기완료, 꼰대가 되는 이유

청향고은 2021. 2. 26. 10:35

아이덴티디 조기완료가 되면 절대 변하지 못한단다
어린시절 세뇌된 개념과 상이한 정보를 마주하게 되면 자신에게 새김된 정보의 오류를 검사하기보다 다른 정보라는 사고조절자를 신뢰(?)하기때문에 자기의 사고조절자에게 판단을 의지해버린다. 사고조절자라는 개념자체가 이미 세뇌된 정보인데 그것이 세뇌되었음을 인지못하는 것이 아이덴티디조기완료다. 외연의 사고조절자 성령 상위자아..등등의 언어는 자기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들어온 것으로 몸의 개념이 아니라  우뇌의 반응이다. 좌뇌는 들어온 정보는 반드시 분석하고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추적하는 과학적인 기능이 작동하고 우뇌는 정보에 이미지를 덮어씀하면 허용하는 상상적인 기능이 작동한다.우뇌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종교적인 자아가 생성되고  좌뇌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과학적인 자아가 생성된다 
 
우뇌형을 감정형이라고 하고 좌뇌형을 논리형이라고 하는데 좌뇌형의 논리도 조기세뇌되고 우뇌형의 감정도 조기세뇌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좌우뇌가 서로 충돌하게 되는 그래서 골치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손발이고생이다 등의 언어가 나온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논리에 무감각하면서 논리적이라 착각하게 되고 실상은 감정을 모르면서 과잉감정을 드러낸다. 아이덴티디가 조기완료되어 세월을 더하면 절대로 변하지 못한다고 강변하시는 채희석님의 강의에 맞어..년식이 오래되면 켜켜로 묵은 때가 겹쳐서 좌우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봉인이되지. 아이처럼 되거라는 것은 좌우뇌가 봉인이되지 않도록 열림을 유지하거라 즉 아이덴티디가 조기완료되지 않고 주욱 성장하도록 바람이 지나가도록 세포가 열려있거라 라는 뜻이다  
 
자기와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는 이에게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하나를 놓고 언어만 다를 뿐인데 그 언어에 대하여 무감각하거나 무식하거나 하게 되면 자기가 아는 언어를 마르고 닳도록 읊어댄다 맛잃은 소금인지 자신만 모른다. 너의 닳고 닳아 빤질거림이 보이는 것은 내가 닳고 닳아 빤질거리기때문이지. 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나의 잣대다. 너를 보고 말하는 것은 나의 입니다. 어떤 판단이든지 어떤 말이든지 내 입에서 나가고 내 지식의 발출이다. 내가 아이덴티디조기완료를 하지 않았기때문에 조기완료를 거부한 빛결을 만나 우리가 어떻게 길들여져 그 길들여졌음때문에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이 솔루션인지 찾아내어서 아이덴티디를 계속 확장하고 기루어가고 있는데 그것이 나의 기적 빛결의 기적 그리고 나아가 태어나면서 의문을 꼬리로 달고 오신 오선생님의 기적이겠다 
 
엇그제 내 안의 물음이 다시 복기가 되었다. 몇번이나 포장을 했다가 멈추곤 했던 정보를 다시 담아라 였다. 아들이 미역국을 끼리달라고 해서 미역국에 넣을 황태채를 주문(최용식 황태덕장/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275번지. 최용식님은 유트브이에서 나에게 새로운 각성을 하도록 한 정보제공자와 이름이 같고 인제는 용자도반이 점사를 봐달라고 왔을 때 정축생인 그(선덕/순철)의 아들이 인제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고 하여 기시감이 생겼던 에너지다. 북면 용대리 275번지라 아들이 미역국을 끼리달라는 주문에 생기는 정보해독)하였는데  그 박스를 보면서 여기에 담거라 라는 속울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대성령론(책으로 출판되지 않고 인터넷에 파일로 올라와 있는 것을 프린트, 마법사 지노니 역시 절판이 되어서 구입할 수 없는 것이여서 프린트를 했다. 그리고 보병궁성약서도 구입이 불가능한 책 같은 배움을 하는 것이니 나로부터 오선생님에게로 정보가 이어지도록 하라는 속울림)을 다시 꺼내고 보병궁성약서도 찾아내고 이런 저런 책들을 담았다 
 
오윤승吳潤勝선생님과는 온라인 다음블로그에서 5년전에 만나 이어오는 인연에서 이 인연의 무게값때문에 설음과 순음, 황정경 금선증론 등등 동양의학에 대하여 다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고 두꺼비의 구원, 땅을 돌아가라는 지몽스승님의 계영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모든 배움의 정상에는 의통군자됨(몸가짐에 대한 궁구)이 있다. 지금 호모데우스를 다시 보고 있는데 21세기의 화두는 호모 사피엔스의 호모데우스가 되는 추구라고 즉 영생불사를 화두로 정보가 진화되어갈 것이라고 하는 것에 나 역시 그려 인간의 추구는 끝이 없지 물음에 물음을 더하여 길을 내어가는 것이니 그리고 성서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고 성서의 이야기도 결국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였지 하는 관점인데 성서가 다루는 영생불사가 '영체'라고 하는데 '영체'를 담으면 '육체'도 같아짐으로 일단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화두이다 고 본다. 유발 하라리가 던지는 화두는 호모사피엔스가 호모데우스로 진화한다는 것이니 그대와 내가 먼저 확인할 것은 내가 그대가 호모사피엔스인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본의 철학자인 무묘앙에오에 의하면 1억에 한명즈음있다는데 그 확률을 보자면 지금 지구가 75억이라고 하면 75명이 있는 셈이다. 그대와 내가 75명에 포함되느냐 아니냐부터 물어야 하고 75명에 속한다면 호모데우스추구자로 자격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대여 내 글을 읽는 그대가 75명중의 한명이다. 왜냐하면 내가 75명중에 가장 선두에 있는 호모데우스니까 유발하라리는 거창한 듯? 그려가지만 호모데우스는 자기 몸이 신전이고 하나님의 전임을 깨닫는 가장 소박한 소요유를 즐길 수 있는 '쉬는 자, 관휴寬休'니까 자기의 몸을 잘 경영하고 하루를 잘 누리고 말을 잘 다듬어내고 글을 잘 지어내는 것 그게 호모데우스의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자기만족)이다. 그대 자체가 75명중의 하나다 
 
지몽선생님이 당시 지구관찰조(호모사피엔스, 철학자)가 고신허도라고 하여 64명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런 단체가 있나 검색을 해봤는데 도올 김용옥교수님의 제자모임이든가 지금 도올이 동경대전때문에 머리가 깨어져 그간의 지식들이 다 헛됨을 고백하시더만 당시 그 분의 가르침안에 있던 지몽선생님도 지식은 배우되 나는 깨어져야 한다고 봤던데 나더러 계영사하라고 하시어서 그 말씀을 안게 되었던 것이지.


먹물이 모두 흘러나와 빈 그릇이 될 때, 도마서에 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동이 귀에 틈이 생겨 밀가루가 다 흘러나와 집에 도착했을 때 빈동이임을 발견하게 될 때 비로소 출발할 수 있는 길이 빈동이를 돌아나오는 바람소리를 듣는 마당이다. 귀의 이소골이 깨어나면  즉 동이에 틈이 생기면 그곳으로 밀가루가 새어나간다. 다 새어나간 그 동이에는 바람이 지나가면서 울리는 울림소리 장자의 하늘퉁소가 남명을 나는 대붕의 날개짓에 실려 삼만리를 퍼져나간다
도마서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귀틈이 생긴 동이에 밀가루를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의 비유가 무엇인지 귀지가 빠지는 꿈을 꾸고 이제 귀가 열리고(동이의 귀에 틈이 생김) 내 동이에 채워진 밀가루米가 흘러나감 辵되고 집에 도착하니 빈동이를 울리는 바람소리만 난다言=謎구나 하는 것 빛결남편의 꿈에 주어진 글자 迷或을 내 화두로 받아 풀어내면서 迷앞에 言을 세우고 或에 틀인 口를 씌우면 된다고 미국謎國=숫께끼를 풀어가는 출발자리 합천이라고 그렇게 풀고서 나의 합천 나의 미국은 어떤 것이어야 할 까를 생각하게 되더라.  
 
철학하는 자는 지켜보는 자이다. 무엇을 ? 의문을 하고 그 의문의 답을 산출하고 드러난 답과 비추기를 하고 다시 물음이란 가지를 내는 그 어떤 흐름...을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풀어낸다면, 즉 죽음이라는 것이 열매로 맺히게 되는 과정을 풀어낸다면 죽음의 씨앗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말이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처럼 생명과 죽음은 같은 것인데 죽음을 모른다는 것은 생명도 모른다는 것이지. 동양의 일기하니 생이요 일기하니 사라고 하는 이 명징한 답에 서양의식이나 철학이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지만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고 그 과정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21세기의 화두 호모데우스가 되는 것이지 나의 어법으로 하면 호모데우스는 홈이 되었다. 즉 집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게 되었다. 몸身이 신神임을 드뎌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다. 호모데우스= 홈됨스(홈즈)

 

코난이라는 만화를 보면 인간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루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다양한 사건과 관점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의 중심은 '살인사건'이다. 즉 '죽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살인사건을 다룬다는 점인데 사람의 착각은 살인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도록 길들여져 있다. 살인과 죽음은 발성에너지가 다르듯이 풀어야할 과정도 다르다. 영어로는 Death. th는 터로 밭, 흙을 가르친다.   
 
田의 본디 이름이 터이다. 안에 든 것을 털어낸다고 밭아낸다고 텃밭이라고 한다. 甲이라는 한자는 뒷통수안의 뇌구조를 보고 그린 글자라고 하더라 소뇌와 목을 그린 글자라고..  앞얼굴을 보고 그린 甲의 앞얼굴로 인식하게 하는 곳에 뒷머리구조 甲이라는 것이지 면상을 말로 후려갈기면 명예훼손죄가 되고 뒷통수를 치면 배반죄가 되고 숨골을 내리치면 모욕죄가 된다. 甲질을 하도록 하는 것은 뒷통수센타에 있다. 그대의 얼굴이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서 수신한 정보를 파악하도록 하는 운동신경에서 갑질을 한다는 것이지. 목을 따라 올라가면 열어야 하는 관문이 소뇌 소천문이고 그 문을 열고 올라가면 숨골 대천문이 나온다. 숨골을 열어야 그 숨골을 타고 송과체 또는 선조체라고 하는 바탕에 도달한다. 코를 타고 들어온 숨이 인체를 한바퀴 돌아 숨골로 올라가 선조체에 들어갔다가 심장의 심뇌를 거쳐 다시 나오는 과정을 숨의 한살이라고 한다. 신의 순례, 즉 서늘한 동산에 나오셔서 아담아 어디 있느냐? 체크하시는 것이 코로 들어와 오장육부를 돌아 척추를 타고 올라가 소천문 대천문을 거쳐 선조체에 닿아 선조체에서 심뇌의 심파를 출렁일렁이게 하는 것이 숨의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아침일찍 일어나 동네한바퀴다. 여기서 소천문의 천은 泉(샘 천)이고 대천문의 천은 穿(뚫을 천)이다. 내가 그리 이해한다. 대천문은 아이의 잇몸이 다듬어지고 이가 나기시작하면서 닫히고 소천문은 아이덴티디조기완료가 되면서 샘이 마른다. 소천문의 샘물이 솟는다 퐁퐁퐁해야 소피아가 된다. 그 샘물을 타고 대천문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고..닫힌 문을 여는 곳이 머리의 대소천문, 가슴의 도장뼈로 감싸인 심문 그리고 하부의 생식기의 관문이다세개의 문을 열어야 알 수 있는 정보마당을 세 하늘이라고 하고 바울은 삼층천이다고 하고 예수의 변화산에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가 같이 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세는 글문(토라, 모세 오경), 엘리야는 말문(타로, 불수레 불가마), 예수는 몸문(타브 十).
   
자본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와 문화의 다양성이 가리고 있지만 결국 까발려지는 문제는 근원적인 문제 탯줄을 자르고 젖을 물고 생존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고 그 생존의 길이에 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외연에서 추구할 화두 호모데우스는 몸의 불사를 추구함이라는데 나는 영생을 추구하는 대상이 태안에 깃들여 몸을 만들고 자궁에서 태어나 탯줄을 자르고 젖줄을 물었다가 밥줄을 선택하고 밥줄에서 법줄로(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이동하는 것이고 법줄에서 영줄(숨줄)로 진화하는 것이 영생이라는 말이 아닐까나..혼자 생각해보고      
 
어린시절 세뇌된 아이덴티디가 가장 깊게 새김되어서 에고를 형성하게 되는데 아기시절의 몸가짐이나 소리를 자기가 확인하지 못하고 외부의 반응을 통하여 새김되는 정보다. 나의 생존에 용이한 몸짓과 소리가 너의 반응에서 결정이 되는 것이니까 젖줄과 밥줄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기에 너의 반응을 기억하여 생존법, 에고로 삼는 것이다. 생존을 용이하게 하기위한 아기의 전략은 반응하는 이에게 투사되어 정해지는 것이다. 너의 비위를 맞추어야 내가 살아남는다..이기적인 유전자는 아기가 살아남기위한 몸짓은 본질이라고 한다. 선악이 아니라 살아남도록 신이 탑재해준 능력이다.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생명의 활발발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아기에게 아름답고 양육자에게 파라다이스시기이고 아기가 대소천문이 닫히고 이가 나면서 양육자의 권력에 몸짓으로만 아니라 다른 소통방법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감정표현이라고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감정이 생기는데 감정은 붙여진 이름에 담기는 뉘앙스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이름이 불려짐으로 생기는 파동함수, 반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고 그 의지를 드러내기위하여 아기가 하는 감정의 발로가 순설후음이라고 하는 언어창조기능이다. 엄마가 아빠가 자기를 무엇이라 부름에 대하여 답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감정이라고 한다 그대가 감정이라고 하는 낱말에 어떤 이미지 개념을 탑재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감정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 부름에 담긴 뉘앙스에 대처하는 반작용이다. 그래서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말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 것이 나온다

 

아기에게 이름이 없고 부르는 이가 없다면 아기는 언어창조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언어창조를 위한 심장기능을 활성화하지 않는다. 말이 마음이고 말은 피가 피워내는 말꽃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아기라는 생명에게 생령을 불어넣는 것은 부모가 부르는 말이 담고 있는 파동(필로스Pholis)이다. 말이 담고 있는 파동을 어투Logos phlios라고 하는데 말투, 말을 던지는 짓make, 作을 말버릇이라고 한다 말습관은 부모의 언어에 공명하는 것에서 생성되는 것이니까 아이의 말습관을 마주하여 마뜩치 않으면 내 말투를 바꾸면 된다. 그게 혀를 길들이는 의인이 되는 훈련이지

내 어투, 즉 말습관이 배배꼬인 여동생의 표현에 의하면 꽤비기공장 사장 딸이냐..고 하는 것처럼 비틀기였다 왜 내 말습관이 너의 언어를 대하면 비비꼬아서 비난하거나 대들거나..그렇게 되었을까..너의 말을 듣고 그것을 비틀어냄으로 내가 나의 인정욕구를 관철하고 내 존재를 드러내어서 너의 위에 군림하려고 한 발로였을까...어린 시절 높은 곳으로 다니는 것 올라앉는 것을 좋아한 기질이 화왕절기질이니 무엇을 대하든지 일단 불태우리..를 시도하는 기질을 월주에서 타고 있음이니 이것이 환경탓일지 타고 온 천성이라고 해야하는 것인지..타인의 분석을 들어보면 기질을 형성하는 것은 천성이라고 하더라만 타고 온 천성과 길들여지는 품성이 다른 것인갑다. 타고 온 천성은 년주와 월주에서 풀고 길들여지는 품성은 일주와 시주를 놓고 풀어가는 것이구나 한다. 태어나면 주어지는 것이 부름(이름붙임), 그래서 나라는 존재의 틀이 생기고 그 이름부름을 통하여 느낌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너의 이름을 부르면 너가 반응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반응한다. 같은 장소에 있어서 누가 부를 때 내 이름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는 것도 길들여진 것이다 이름에...정월대보름 부름을 깬다..귀를 밝게 하기위하여..라고 

 

이름에 공명하기위하여 아기는 부모의 파동함수에 맞는 자기의 생령을 발하는 것 그것을 위한 워밍업이 떼부리 옹알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바깥의 언어에 어떻게 반응해야 자기존재가 보호받고 기룸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기의 품성을 형성하는 아이덴티디이다. 얌전한 아기, 말썽없이 자라는 아기는 없다. 생명은 본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물결과 같고 풀과 나뭇잎같아서 고요할 수가 없다. 천성은 계절을 따라 드러난다. 선악이 아니라 계절이 농사를 지어서 드러내는 에너지니까 자기의 천성을 안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화왕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성질이 이러한 것을 자책하지 않는다 불같이 타오르는 내 성질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감사하고 찬양한다. 불같은 여름생 여름에도 들어가는 달 생지가 아니고 나오는 달 고지가 아니고 가운데 달 왕지에 태어났으니 그 열열함이 어떠하겠는가..

 

아기가 태어나서 길들여지는 것은 인성印聲이다. 인성은 환경(부모)에서 생성된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고 자식을 보면 부모가 보인다는 것이지. 그래서 자식은 나를 비춰내는 거울이고 부모 또한 나를 비춰내는 거울이다 쌍거울. 부모라는 환경이 나에게 닿는 것은 부모의 언어뉘앙스다. 인성은 내 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무엇으로 인성을 자질하겠는가?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인품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지. 느낌은 자라서 개인적으로 자연 바람과 생성하는 과정이 있지만 아기시절에는 부모의 오가는 어투에서 정해진다.

 

감정이 세뇌되는 것이라는 말뜻은 아기가 대처할 능력이 없을 때 부모로부터 일방적인 언어환경을 강요당할 때 생기는 억압이다. 감정이 세뇌되면 세뇌됨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게 자기감정인줄 착각하면서 한평생을 감정노예로 살다가 간다. 슬픔도 무엇인지 기쁨도 무엇인지 분노도 무엇인지..한번 들여다 보는 과정이 없다 길들여진 감정은 외부의 길들인 감정매체에 따라 반응한다. 감정에 길들여진 이들의 감정을 충동질하여 그것을 먹고 사는 이들을 우리는 루시퍼라고 한다. 길들여진 감정은 충동질이 없으면 사라지기에 끝없는 소스를 제공하여 감정을 이어가도록 한다. 감정은 피를 끓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가 피를 부른다고 제물을 요구하고 바치면서 감정중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감정에 중독되는 이들은 혼자있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세뇌된 감정중독자들은 군중을 이루고 우와 우와..거릴 때 자신의 존재가 존재하고 있구나 착각을 하는 것이고 감정상품만큼 잘 팔리는 것도 없다. 허영의 도시라고 천로역정에서는 설명한다. 감정을 세뇌시켜놓고 그 감정을 팔아먹는 것..허영심이 바로 감정중독자들의 병이다. 혼자 있지를 못한다면 자신의 감정중독을 한번 의심해봐라. 가장 무서운 병이 감정중독이다. 감정중독에서 병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병은 감정중독에서 맺어내는 열매다. 그래서 병을 고치려면 감정중독부터 해독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타로카드12번 행맨이 베드로가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라고 하듯이 속에 든 것을 엎어서 다 토해내는 물병자리싸인이다. 컵을 엎어봐라가 ^이다. 물컵을 채우라는 V지 채우고 비우는 것은 나타내는 것이 N이다. 감정중독은 피에 새김된다. 그대가 울컥하게 되는 것은 피에 담을 수 있는 량이 넘어서 더 이상 채울 그릇이 안됩니다 다른 그릇을 이용해주세요..라는 것이다. 
 
심장안의 가장 깊은 곳의 심뇌는 지구의 주파수 36.5를 가장 선호한다.  그 이상이 되거나 이하가 되면 심장에서 무리를 하소연한다 두근두근은 두근이어야 하는데 근수가 넘었어요 라는 것이고 찌르는 듯  아픈 것은 그간 모인 중독이 뿌리를 내리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쉼으로 심장의 과부하를 덜어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바탕수련이 되는 것이다. 그대 심장을 36.5주파수에 안정시키는 것이 명상의 목적이다 숨을 길게 들이쉬고 깊게 내어뺃으라고 하는 것은 21.6일에 박동을 시작한 그 자리까지 닿으라는 것이다. 그대가 쉼을 얻는 것은 그 자리를 찾을 때이다 관휴..하나님이 안식하신다는 자리가 엿새를 지나 이레되는 날이다. 그대의 숨을 일곱박자 들이쉬고 일곱박자 드러내보라..합이 14. 타로카드 14번 하모니 균형 조화,.다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너의 감정충동에 일렁이어서다. 감정중독자들은 자기피를 마주하지 않고 너의 피를 요구한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휘몰이장단들..감정중독자들이 감정중독자들과 손뼉을 치고 있는 상황..지켜보는 것도 재밌는 놀이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이 말 그대의 감정에 대입해보면 된다 보암직 먹음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이도록 충동질하는 외연의 선동에 그대의 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그 선동에 팔랑거리다가 무저갱으로 떨어진다. 내가 홀로있으면 심장은 평화롭고 온유하다. 너와 같이 있으면서 평화롭고 온유하게 되어야 진정한 평화다. 너와 같이 있을 때 즉 감정을 서로 내놓아도 그것이 중독이 아니라 해독일 때..나는 감정중독을 해독하는 방법으로 순설후에 고함지르기를 권하는 것이지. 해봐라 그대의 심장이 중독이 되어있는지 아닌지 고함을 질러서 아기가태어나 첫울음 울듯 시원하게 내지르기가 되고 아기처럼 떼부리가 되면 그대의 심장은 21.6일 박동되는 시절과 같은 심장이라는 증명이다.  
 
안된다고? 그럼 되도록 해야지 안된다면 그대는 감정중독이 심장마비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인이다. 즉 죽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섰다고 도장을 맞은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감정중독이다. 감정은 感情이라고 한다 뜻을 느낌인데 그거 참 조은 거아닌가..그런데 여기에 중독이 되면 심장에 과부하가 걸려 심장이 내가 하는 일이 힘들어 작동하기를 그만둘래요 하게 되면 그대는 숨쉬기를 할 수 없다. 숨이 들어가는 것은 심장이 펌핑할 의지가 있을 때 유용하지 코와폐가 산소주입을 해도 심장이 펌핑을 해도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안할란다..하게 되는것..사람이 숨을 멈추는 것은 코에서가 아니라 심장에서 더 이상 펌핑할 의지가 없어질 때다. 그대의 심장이 최초에 박동하고 최후에 그 박동을 멈춘다. 그리고 다른 장기들이 따라서 조용히 임무를 멈춘다.  뇌가 대장이라고 하지만 심뇌가 대장이다 서양은 머릿뇌를 말하고 동양은 심장뇌를 생명의 중심이라고 했다 나는 심뇌가 중심이라는 동양인이다

 
한국에만 있다는 홧병...그게 서양과 동양의 정보가 충돌을 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내가 그리본다. 한국으로 모든 정보가 모이고 한국에서 새시대가 펼쳐진다. 한국에 AB형이 13%로 지구에서 가장 많고 다음이 일본으로 11%로 2위란다. 피가 정보의 레벨을 증명하는 것이다.  단일민족이 아니다는 것이 피에서 증명이 되고 단일민족이 아니다는 것은 모든 정보를 모아서 일체종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에너지라는 뜻이다   
 
아기가 싫어하는 것을 부모가 강요할 때 아기는 그 감정을 토로할 자유가 있음에도 감정을 발산했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기가 싫음이라고 하는 그 감정을 봉인하게되고 부모가 좋아하는 반응을 하는 길들임이 되는 것, 그것에서 아기는 벌써 자기혐오가 생기는 것이다 아기의 감정이 얼마나 섬세한지는 감정이 봉인되면 감지할 수 없다. 그것이 늙는다는 것이고 감정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감정이 봉인되고 원치않는 감정을 만들어내어서 대응해야하는 아기는 자기감정의 봉인, 죽음을 어린시절부터 가슴에 안게 되는 것이다.   
 
연약하여 대들 능력이 없는 아기에게 부모의 감정을 강제투사하여 부모가 있고 그것에 억지로 굽히는 척하는 아기의 위선이 있을 뿐이다. 미운일곱살에서 미운 네살로 옮겨오고 이제는 여섯달로 아기가 위선해야 하는 시기가 당겨진다. 여섯달된 아기를 영어교육하겠다는 부모의 의지가 여섯달된 아기를 분노하게 하고 그 분노를 억제하는 위선이라는 에고를 형성하게 한다. 부모가 다루기 쉬운 아기로 길들이는 것이 아이덴티디조기완료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노예 인형이된다 부모가 인형인 이가 아이도 인형을 만든다. 부전자전 모전녀전이고 본대로 배운다. 아기의 환경은 부모의 언어다 
 
내가 그렇게 분노로 가득하면서도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그래서 그 어린 시절의 아이덴티디조기완료라는 죽음의 늪을 벗어내거나 틀을 벗겨내기위하여 해맞이신단에서 43일간(해맞이신단에서 소리수련한 날짜를 계산해봤다) 을 고함을 질러 저 깊숙한 곳에 봉인되었던 나의 본래 감정,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본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고 이제 정말 내가 나구나..하는 감사가 생기는 것. 불로봉무동으로 다니면서 혼자 부르는 노래..혼자 팔랑거리는 팔짓이게 나의 화왕절 본래천성이다 불꽃은 태울 것이 있으면 타고 태울 것이 없으면 사라진다. 
 
본래면목은 21.6일에 작동하는 심장의 상태다. 봄심장이 있고 여름심장이 있고 가을 심장이 겨울 심장이 있다. 물론 내가 언제 입태되었는지를 찾아내어야 심장이 박동한 시기도 추론할 수 있다. 요즘 의학의 발달로 병원에 가면 아기의 심장박동을 초음파로 보여준다. 임신진단이 나오고 심장박동이 확인되면 이미 21.6일은 지난 것이지. 출태일은 6월 6일(음력 5월 13일)이지만 입태일은 9월 14일이고 여기에 약 22일을 더하면 10월 5일즘(경술월 경신일)이 된다. 내 심장의 심뇌에 있는 정보는 경술월 경신일의 에너지를 받았다는 것이지 
 
본래면목을 마주한다는 것은 즉 자기가 입태되어 심장이 박동된 시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지금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여서 의통군자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정보였지만 지금은 알고자만 한다면 자기의 내면정보는 다 알 수 있다. 처음 심장이 박동한 때가 어느 계절의 바람을 타고 시작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내면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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