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봄날이 대숲을 지나오는 길

청향고은 2021. 2. 20. 08:40

어제 엉덩방아탓인지 다리가 넘 아파 
 
아침에 홈플러스 주문품을 받아 놓고 햇살 풍요로운 시간에 나섰다 이전에 나서면서 팔돌리기를 했는데 오늘도 계단을 올라서면서 팔돌리기 바람이 제법 힘을 주어 달리고 있는데 맞바람을 일으키니 시원하더라 
강 길에 봄이 살그머니 배여드는 풍경 쑥이 째끄마하게 올라오고 가지들을 보면 봄나들이를 할 준비들을 하고 있다 
오늘은 하늘을 타고 나는 전투기들이 미뤘던 훈련비행을 하는지 하늘가득 우릉찬 울림을 쏱아내며 달리고 
내 걸음의 변화라면 출발에서 도착까지 쉬임없는 전진 그런데 다리가 아프면서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한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가 어쩔 수 없는 여유구나 하는 것 볕살이 따뜻하니 가는 길에 쉬도록 길에 내어 준 벤치 또한 누릴 내 자리 
 
앉아서 바람을 따라  노래도 부르고 명상도하고 강을 달려오는 새들의 날개짓들도 보고 이게 소요유겠구나 하는 감사 
하여간 더디 걸을 수 있도록 몸이 제어장치를 가동해주니 봄이 오는 길풍경을 좀 더 익히게 되는 것이겠지 상처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는 것을 새기면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도 예수의 선택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이다 내가 타인에게로부터 상처를 받는다고 하는 생각은 열등감에서 나오는 자기유기다 
오늘 카르마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힘이라고 속삭여주는 소리를 바람속에서 들었다 카르마는 가르마다 머리카락의 좌우를 가르는 것처럼 올 그름을 잣대질하는 기준이다 카르마(업식) 가르마(척도) 가름 내가 가진 잣대로 너를 잴 때 너가 재어지는 게 아니라 내 잣대가 드러난다 너를 잼으로 내 잣대가 드러남을 인식하는 것이 카르마다
그 외 무슨 카르마가 있겠는가? 문제인식이라는 것은 타인이 심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드러내는 것이다 왜 내가 그런잣대 가르마를 가지게 되었는가? 를 물어야 한다 
 
여태 내 카르마가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카르마란 가르마 즉 너와나를 가르는 가름이다 명료하게 알게 되더라
내가 너와 나를 나누는 것 가름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기준으로 삼는 그것을 카르마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
내가 너와 나를 가름하는 것은 어휘력이고 문장력이고 몸가짐이다 
 
문제의식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자기잣대다 내가 나를 알려면 안에서 나오는 물음을 마주해야 한다
묻지 않으면 자기를 알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징검다리에서 얼음을 깨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발이 빠지거나 엉덩방아하는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다 기적은 선택함으로 생기는 가능성이 있지만 스스로 의도하지 않는 사건이다 얼음을 깨다 미기를 잡는 것이 기적이고 그래서 엉덩이도 아픈 체험을 덤으로 얻고 다리도 아파서 가다쉬다 가다쉬다 하는 체험을 통해
햇빛과 오래도록 노닥거리고 바람과 은밀하게 속닥거리고 하늘높은 줄 모르고 높다라이 노래하는 그런 기적을 덤으로 얻는 것이 기적이다 
 
걸으면서 한갓질 수 있는 것은 아프기때문이다 화왕절이라 시작하면 끝을 보는 기질이라 중간 틈틈 여유를 부리지 못하는 자기질서에 갇혀버리는데 이렇게 미기를 잡으니 여유를 만들어 느리느리 하는 것이 되어 오화 그 거침없이 불타오르는 불을 조절하는 것인가 
 
아픈만큼 성장한다 이 말은 안 아플때는 그저 미사여구지만 아플 때는 그렇구나 눈물나도록 공명한다 아프기에 감사한다는 것 바울이 몸에 가시없기를 구했더니 그것이 은혜이니 족하게 여겨라고 답을 얻음 나의 나된 것은 상처를 통한 거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대가 무어라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바울에게 가시가 은혜고 예수에겐 십자가가 아버지의 잔이였다 예수는 손과 옆구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흔적이라고 했다 머리에 가시관 가슴엔 창찔림 손발엔 못박힘 그게 부활로 가기위한 과정에서 내 스스로 선택하는 상처다 
 
사랑은 스스로 머리에 가시관을 쓰는 일이고 믿음은 스스로의 말을 갈아내는 일이며 소망은 스스로의 생각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 상처없는 영광은 없고 상처뿐인 영광이기에 예수는 가시관을 썼다 예수는 그대를 죽이는 자다 그래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세상에서 사형수가 된다는 뜻이다 세상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지 
 
너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하지 않고 내가 상처로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실행한다 그게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앞에 세우는 도덕이다 나를 너에게 짐지우지 않고 나도 너를 업어주지 않는다 다만 너의 손과 내 손을 마주침함으로 서로의 달리기를 응원한다는 것 
 
청주 오선생님도 걷기를 나섰다고 바람이 시원하다 하시더라 퇴직하시고 걷기학교에 입학해서 만보걷기 수업을 하시는데 육십지나 보는 세상은 육십전에 보던 세상과 달라진다고 하시더만 그뜻이 몸이 온유하게 익어서 파릇파릇 하지 않고 느리느리 해진다는 것 나보고 참 잘 걷는다고 하시던데 그말뜻을 이제 아하 하게 되더라 벤취에 앉아서 활기롭게 솩솩 걸어 지나가는 나의 걸음을 보시고 아파서 쉬던 분들의 말씀 
 
다리 아래 앉아서 시인의 계절을 불렀다 봉무동으로 가는 길에 노래를 부른다 내 멋에 겨워 흥 흥 흥 이제 내 음색이 어떤것인지 알면서 남의 음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타고 온 성문이 있으니 그 성문을 열고 내가 즐길 수 있으면 되니까 
내가 나를 안다는 것에서 내 말소리가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하구나 목소리를 잘 기룬다는 것이 내면기루기
내면을 기룬다고 하는 그 내면이 목소리구나 내가 떠드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내가 들어도 흠 목소리가 잘 자랐군 한다
물기가 있는 목소리를 생기있다고 하고 그 목소리에 살아있는 정보가 실리면 생령이되었다고 하는 것이지 
 
목소리가 갈라지면 물기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 목소리가 딱딱하면 생수부족 현상 목소리에서 건강이 나타난다고 신언서판이지 말소리를 들으면 폐활량을 알 수 있고 폐활량을 알면 심장상태도 나오고 그래서 그대의 목소리를 통해 영혼을 측정하는 것 
 
목소리가 힘이 있어야 한다 목소리의 힘은 단전에서 공급한다 말에 힘이 없으면 듣는 사람도 힘이 빠진다 나는 목소리가 힘이 넘쳐서 듣는 사람도 덩달아 힘이 생긴다 이게 바로 공명효과 그래서 나를 만나면 누구나 힘이 생겨서 즐거워한다 힘이 넘쳐야 너에게도 나눔된다 먼저 내 잔을 채울 일이다 채워 넘치면 너에게로 흐른다

 

아래 얼굴 주인공은 이 사진 쓴 것을 허용하여 주세요 
 
이 사진을 보면서 떠오른게 봄날은간다의 남자주인공의 이미지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 거니? 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여서 기억하기보담 봄날은 간다를 리뷰해서 나에게 보낸 상우가 떠올라서다. 붉은 목도리. 누군가의 읊조림 사막을 헤매다가 모래로 돌아갈 때 품어 갈 단풍 한 잎. 나에게 한 줄의 시로 피를 담아 던져 준 그 시인에게 내가 한 때 한 시절 은수에게 상우와 같은  단풍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지만 나에게 한 잎 단풍은 여전히 같은  상우에게 은수와 같은 단풍으로 붉어 봄날이 가고 마지막인 듯하던 계절을 넘어 여름, 가을 , 겨울을 건너 다시 온 봄처럼 여전히 붉은 한잎 단풍으로 있는 더디게 천천히 오는 봄 꿈 거기서 여기로 걸음을 디뎌 거리를 좁혀오시라 그 때 별리를 하고 그대는 어디로 향하여 길을 내었을까 나는 그대와 길이 다를까 아니면 어디서 잇대일 수 있을까 그런 궁금함이 생기지. 아니 어쩌면 같은 파동함수를 타고 있어 내가 그대이고 그대가 이미 나인것인데 그것을 내가 이제 알아채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 
 
영화계에서는 지고청순하여 보이는 이영애의 연기가 봄이고 상우역의 유지태가 날이겠지 그래서 둘이 봄날인데 봄날은 간다. 여름날이 오고 가을날이 오고 겨울날이 오고 나날은 변하면서 결을 만들면서 秊이 된다. 사주는 계절공부지만 그 계절속을 살아가면서 그려낸 사람의 결이다 
 
이미지중심의 인간관계를 넘어서면 결을 통하여 생성되는 관계가 생성되는데
그 관계를  '정情'의 관계라고 하게 된다. 이미지 중심의 관계를 피상적이라고 하여 자기의 필요에 따라 변하는 은수가 되는 것이지만 사랑은 변하는 거냐? 라고 하는 상우는 자라오면서 겪는 '정'의 결핍을 은수에게서 찾았기때문에 그 안에 고착되려고 하게 되는 '정'의 관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고, 이혼을 경험한 은수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하여 필요성을 이미 깨우친(?) 레벨이기때문에 '정'이 만드는 어떤 불편함을 선택하지 않으려 하게 되는 것 바람처럼 오가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되겠다 
 
 
이젠... 왜 날 사랑하지 않아?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젊은 시절 상처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그는 강릉방송국 라디오PD 은수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빨려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으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대숲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아코디언의 대가이신 심성락님의 바람을 타는 연주를 딛고 바람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잡아 명작에 오른 영화 사실 나에게는 그 영화내용(남녀의 연애)은 진부하고 재미없다 바람소리와 아코디언의 절묘한 합이 너무나 아름답지 상우가 은수에게 안주하려고 하던 그 봄바람이 좌절되면서 대숲으로 부는 바람속으로 자연속으로 들어가 생채기 난 그곳空으로 계절바람을 오가게 하는 열린의식이 되는 것 결핍된 틈을 여자, 섹스로 안주하려든 것에서 자연이라는 자궁으로 들어감으로 자기를 스스로 완성해가는 것이 은수의 아름다움이기보다 상우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에서 사랑은 변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구나 를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다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사랑관, 인생관, 우주관, 세계관들을 가지고 있다.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서 서로의 틈이 벌어지고 벌어지고 그리고 헤어진다 
 
여자의 사랑은 돈을 따라다니고 남자의 사랑은 일을 따라다닌다 여자가 돈에 사랑이라는 상품명을 붙이는 것이 문화가 되고남자가 일에 권력이라는 네이밍을 하는 것이 문명이 되니 네이밍을 풀어내면 실상이 나타나니까 남자나 여자의 문화와 문명의 본질을 알면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구조다  
 
남자는 일이 인생의 줄기를 이루고 가지에 여자가 덤으로 붙는다 여자의 일생은 남자가 줄기를 이루고 자식이 열매가 되다가 이생은 자기가 된다 남자는 인생을 살고 여자는 두생 즉 일생과 이생을 산다 남자를 하나님이라하는 이유가 일생을 사는 구조여서이고 여자가 살중의 살 뼈중의 뼈라는 두생을 사는 이유가 출산을 하기때문이다
물론 남자도 정자발출이라는 출산을 하는데 그걸 출산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출산된 정자는 양육할 수 없다 여자에게서 출산된 아기는 양육이 가능하다는 그 차이가 남자의 인생과 여자의 일생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여자의 사랑은 상처를 선택하는 것이고 남자의 사랑은 남이만든 어떤 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여자는 결혼식이 중요하고 남자는 섹스가 중요하다 이 차이
여자는 틀을 만들어야하는 구조이고 남자는 틀을 부수어야하는 구조이다 여자가 틀을 중요시하는 것은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재능이어서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여자의 틀짜기능력에서 나오는 열매니까 
 
여자의 변화력을 남자가 부술 수 있을까? 남자의 틀을 깨트리는 의지는 후천적이다. 상우가 변할 수 있는 이유다 여자의 틀을 만드는 능력은 선천적이다 은수가 자기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처세를 하는 것이다. 남자는 변하고 여자는 한번 이혼해보면 남자라는 존재는 품었다가 출산함을 배우라는 학습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품으면 출산의 고통이 있다는 것이 흙의 능력이고 가능성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했을 때 여자는 품음의 결과가 출산의 고통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남자는 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 홀씨였다가 여자의 품에 뿌리를 내림에 대한 환상이 깨어질 때 비로소 남자는 남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고 
 
여자는 생명을 기루어내고 양육한다 남자는 여자를 이기지 못한다
여자가수승한 것은 여자가 짜는 틀은 남자의 출산을 물질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에서다 씨를 만들 수 있는 능력 남자에게 그것이 자기만의 틀을 구축하는 힘인데 정자와 난자가 서로 다르지만 자기만의 틀을 구축하는 원리는 동일하지 않을까나 한다 정자는 무에서 유로 나타나고 난자는 유에서 무로 나타난다 
 
봄날은 가지만 다시 온다. 2004년에 나에게 닿았던 단풍한잎이 지금도 내 안에서는 여전히 붉지만 나에게 봄날은 간다를 전해주었던 그대에게 나는 이미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렸을까나 그대가 그곳에서 여전히 그대를 물음한다면 여기서 여전히 물음하는 나의 물음과 같은 물음을 하지 않을까나 사주를 공부하면서 왜 그런 인연이 되었던 것일까 생각하면서 월주에서 화왕절 동족을 만나서였던 것이구나 빛결과 용자도반과 두명의 꿈과 그리고 아코디언의 그가 모두 화왕절이라는 것이 재밌구나야 한다. 
 
봄날은 간다의 깊이에 흐르는 것은 상우의 성장환경과 은수의 거친환경이 만든 의식이 어떻게 풀어지거나 매듭되거나 하는가를 보면서 보면 내 이야기가 되고 그대이야기가 된다. 왜 대숲의 바람소리를 서로 만나게 되는 배경으로 한 것인가를 이해할 때 이 영화의 청순한 이영애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상처를 어떻게 스스로 힐링해가는가의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은수의 붉은 목도리 상우의 윗옷의 털 그리고 마지막 가벼운 장면 노랗게 익은 들판에 저 멀리 한그루의 나무앞에서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있는 성장 남자에게 은수는 한 때의 꿈이고 여자에게 상우는 가난하지만 맑은 대숲으로 지나오는 바람일 것이다. 그 바람이 여자에겐 시리고  남자는 꿈은 깬다는 것 봄날은간다의 주제는 바람은 머물지 않는다 머물게 하려면 녹음을 해야한다이다 그대의 세월을 지나간다. 머물게 하려면 글로 잡아두거라 이다 봄날은 간다를 나는 해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문장을 이미지로 풀어낸 것이라 본다 봄날을 가게 하는 것은 대숲을 지나오는 바람이다

  •  


 

이전

7 / 7

 

 

 

 

댓글을 입력하세요.

'국향선菊香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냄새만 있고 없애겠는가?  (0) 2021.02.22
오는 봄날 가는 봄  (0) 2021.02.21
삿다르마 푼다리카  (0) 2021.02.19
삿다르마 푼다리카  (0) 2021.02.18
논리論理 logic(로직),dialectics(다이아렉티스)  (0)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