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논리論理 logic(로직),dialectics(다이아렉티스)

청향고은 2021. 2. 17. 21:11

논리論理 logic(로직),dialectics(다이아렉티스) 
 
그대가 논리logic라고 대하면 어떤 생각이 스윽 지나가는가? 그냥 논리지..라고 하는가? 논리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말의 행간이나 글의 자간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내어 엮어가기이다, 즉  내 주장을 너에게 설득할 수 있는 어휘를 가지런하게 나열하는 것이다 
 
논論을 '논의하다'고 하는데 논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한자 論 言侖이다. 말言을 돌리는 侖 것이다. 말言이라는 것을 놓고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 侖을 되감기, 되돌리기 귀납해서 말이 출발한 자리를 찾아서 다시 돌리기, 연역을 하여 지금의 쓰임의 값을 계산하는 것, 게마트리아이다. 어원을 찾고 쓰임의 내력을 찾아서 지금회자되는 쓰임에 얼마의 에너지가 발생하는가를 계산(게마트리아)을 하는 것이다. 내 글은 반복하고 반복하는 패턴인데 그것은 반복을 통하여 새김하고자 하는 의지발로다 
 
무엇이든 반복을 통하여 익숙해지게 되어있다. 글을 두드리는 것은 손과 뇌파의 협응이고 말을 하는 것은 입과 오장육부의 협응인데 말을 글로 옮기거나 글을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단번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손이 많이가게 되고 말을 많이하게 된다. 반복에 반복을 통하여 가지런한 논리가 생성되고 합당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  
 
주장을 하기위해서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논은 말을 바퀴돌리듯이 돌리는 것이다. 해맞이 신단에가면 신단의 구조를 따라 12개의 원을 돌아서 천문도에 들어서서 천문도의 칸칸을 따라 디딤하는데 무당이 굿을 할 때 빙글빙글도는 것이나 내가 신단을 돌아다니는 것이나 같은 행동이구나 생각했다 원을 따라 돌면서 순설후음을 하면서 팔을 흔들어대면서 다니면 내가 무당 굿을 하는 것이지
 
외연의 무당굿의 그 문화는 나에게는 낮선 풍경이고 그렇게 해야하는 환경이 아니니까 그 세계에 내가 들어가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체험을 그들의 행위에 접목을 해서 나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여 이래서 내가 무당이구나 하는 것이지. 외연의 굿판을 벌일정도의 내공이 되지 않고 나는 일인분의 무당력일 뿐이고...나는 현장에서 대무당이 되는 것보다 일인분 무당이라도 내 행위에 대하여 논리를 무장하여 내가 나를 인식할 때 내가 나를 인정하는 알찬무당이 되려고 하는 것이지  
 
동글다는 것이 侖이다. 이 륜에서 사람이 붙으면 倫이라 하여 일상적인 인간관계의 반복을 뜻하고 車를 붙이면 문명의 도구인 수레바퀴 輪라고 한다. 그런데 앞에 言을 붙이면 논의하다고 하는 논이 되는데 말을 반복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말을 어떻게 돌리면 論이 되는가? 논의의 '의'는 또 논의하다의 '의 議'가 되는데 논의論議할 論을 어떻게 체험해야 되는가? 議는 義가 붙어서 논의가 되고 論은 바퀴가 붙어서 논이다 
 
義는 옳다고 하는 것이니 옳은 말議이고 논은 말을 돌리는 것 물레방아 돌리듯이 돌리는 것論이다. 옳다가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羊我로 구조된 한자인데 에전신정일치시대에 왕이면서 신관이 종묘사직에 제사를 할 때 하늘에 땅에 드리는 공물을 羊으로 상징하였고  제사를 드릴 때 공물을 드리는 것을 옳은 것이라고 했다. 그대들이 종교생활에 무엇을 공양하는 것이 옳은 일이되는 것이고 종교들이 그 공양을 딛고 제사(예배)를 하는 것이니 그대의 종교살이에 양을 바치는 것은 그대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 제사에는 공물이 있어야 하고 제사에는 我는 侖과 같이 바퀴를 뜻했다고 한다. 희생제물을 싣고 가는 수레를 옳을 의라고 한 것인데 양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신탁을 받기위한 것이니 議에서는 앞에 言에 방점이 찍힌다. 그대가 신탁을 받기위하여 양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그렇게 신탁을 받으려하는 것은 세월을 통하여 굴러내려온 말論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풀어서 말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말의 진위를 비춰보려면 그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議라고 한 것이다. 내가 쓰는 이 말이 어떤 기록을 과정을 쓰임을 거쳐 내 입에서 발설되는가 이 발설된 말이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의논할 議가 담고 있고 그것을 알기위해서 말을 굴려서 싸고 있는 껍질들을 벗겨내는 작업이 論이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의논할 논은 내가 풀어가야 하는 과정이고 理는 玉里라고 풀어가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체험을 理라고 하는 것이다 다스림이라고 그대가 이해하지만 이 다스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해본적이 있는가? 옥마을이다. 구슬마을. 굿에 구음다스리기라는 과정이 있는데 理가 구음다스리기다. 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구음이 선행되었고 구음이 반복되어서 음소가 자음이 되어 너에게 닿게 되는 신탁이 되었다는 것이지. 모음은 너와 공유되는 정보가 아니라 홀소리라고 한다. 모임이 자음으로 변화되어야 정보가 되어야 너와내가 닿아서 소통되는 정보가 된다 그래서 자음을 닿소리라고 한다. 구음다스리기는 신탁을 받아내리는 과정이라면 공수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음소를 자소로 바꿔서 너가 알아듣는 말을 하는 것이다. 동양의 신탁과 공수를 서양에서는 채널링과 리딩. 언어가 다르다고 구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양무당은 채널링과 리딩을 하고 동양무당은 구음으로 신탁을 받아 공수로 전달하는 것이다. 신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나오지 신은 송과체 심뇌 그리고 말쿠트의 에너지가 서로 협응하여 생성하는 느낌이나 기분이다. 신의 레벨이 무당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언어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은 본디 언어가 없다. 신의 현현을 언어로 잡아내거나 부적문자로 그려내는 것은 무당의 공부정도로 나타나는 것이지.  
 
그래서 무당은 끊임없이 자기공부가 진행되어야 하고 공부의 레벨을 올릴 수록 남의 점사나 굿에서 방향전환을 하여 자기를 마주하려고 하는데 에너지를 쓴다. 나는 남의 문제 해결에 에너지를 쓰는 것을 밑빠지 독에 물붓리라든지 남의 다리긁기라고 하는데 남의 다리를 긁다보면 자기다리 힘을 잃어 앉은뱅이 되는 것을 모른다 무당이 고수가 되면 더 이상 남의 일을 남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드러난 나의 한 모습이구나 모든 것이 내 분신이구나..하는 자비지심이 생기면서 너름, 열두치마폭처럼 좌우 열두갈비에 새김된 정보를 발굴하는 것에 주목하게 되고 자기의 정보를 찾으려 하게 된다. 남의 점사를 보다가 자기점사로 돌아서는 것을 출가한다고 한다. 너를 아는 지식을 나를 아는 힘으로 사용하는 것이 알찬무당이 되는 비결이다 
 
자기의 말을 돌려봐라..  論
내 주장하기위해서는 그 주장을 뒷배해 줄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나를 제물로 내놓고 구음다스리기를 하고 신탁을 받고 공수를 하여 내가 하는 말의 실체를 체험해라 그것이 내 주장의 논리세우기가 되는 것이고 논리를 세우는 과정을 겟세마네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겟세마네가 선행되지 않으면 갈보리에 십자가를 세울 수 없다 
 
내가 겟세마네기도가 예수가 전하고자 하는 십자가로 상징되는 가스펠의 바탕, 밭이고 너와 내가 지금 따름할 수 있는 겟세마네기도가 소리선이고 소리선의 기초를 다지는 방법이 걷고 손뼉치고 순설후음하기이다고 주장하기위하여 지금까지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지 내 주장을 하기위하여 33년을 한결같이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는 것이다. 내 논리는 33년을 내가 논의하고 있는 과정에서 얻어내고 있는 구슬 서말인데 그 구슬을 가지런히 꿰는 것이 글이라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꿰어야되는지 스스로 물어보는가? 무엇이 구슬인지 어떤 상태가 서말인지 왜 서말인지..물음의 대상을 문자언어로 바꿔봐라 그게 출가의 시작이다. 내가 출발한 자리가 문자언어를 돌려보는 것 
 
궁금한 것은 문자언어다. 이 언어들은 어떻게 나에게 와서 나로 하여금 의문을 만드는가? 어떻게 나는 이 말과 글의 본질을 풀어서 알맹이를 만질 수 있을까..내가 쌍둥이자리여서 새로운 언어주간이라서 그런 것이겠다고 이제 생각하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개발하고..나는 쌍둥이 제미나이 새로운 언어주간의 에너지를 받아온 그래서 재미없으면 하지 않는 성질인것이지. 재미나면 죽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는 그런 불같은 성질. 궁금한 것은 어떻게든 열어서 만져봐서 확인하는 도마정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의식의 게으럼이고 자기정신의 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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