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삿다르마 푼다리카

청향고은 2021. 2. 19. 11:21

꿈에서 배우는 것들 
 
배움이라는 말을 내가 풀어낸 것은 말그대로 배안에서 생수의 움을 판다는 것인데 움은 우물泉(井)이고
새싹(芽)이고 두 손을 합함(廾)이다. 生水 즉 물이 남이다. 물이 나오도록 샘을 파는 것을 배움이라고 하고 생수는 산물이다 산물에 대하여 사물이 있지. 사물은 불에 익힌 물, 끓인 물이다 샘물은 찬물(寒水)이고 공물은 끓인 물(熟水)이다.
공물이라 함은 차운 기를 끓여서 익혀 찬기가 없다고 공물空水이라고 하는 것이고 정화수를 장독대위에 올리고
두 손을 돌리며 비나리하는 것은 찬물같은 차가운 인생살이 따습게되기를 그리하여 배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외연화된 것이다.


찬물을 올리고 공물을 받는 것 공수받는다는 것은 조상의 한을 비나리하여 풀어서 따습게 하여 풀어내는 과정에서 따수와졌다는 것으로 더 이상 차가움, 한수가 아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굿을 한다는 것은 조상의 한이 카르마로 작동할 때 한이 닥친 이가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외연세계에서 점사를 보거나 굿을 하는 이들은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 방법이니까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는 자신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외연에서 그게 문제네 하면 이게 문젠가 하는 이들이 어디가봐라 용하다 하면 그런가 하고 용하다고 하는 이를 찾아다니고 이렇게 하면 된다하면 그런가 하고 굿을 하고 부적을 하고 그런 것이지 외연의 문제는 점사를 보거나 종교를 찾거나 기도를 하거나 하는 문제를 보면 외연에서 내놓은 잣대들에 부합하지 않으면 문제다고 세뇌시킨 그 개념에 순응하고 있어서다


의, 옷의 기능은 몸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하여 자기의 품위(?)를 나타내는 잣대로 등장하면서
그 잣대에 맞지 않게 되면 그런 품위를 유지하려면 돈이 들고 돈이 없어서 그 수준에 닿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옷의 품위를 제시하는 것을 문화라고 하는데 이것은 너의 잣대이지 몸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문화를 따라가려고 하다가 생기는 불편은 너의 기준에 내 몸을 웅쿠려넣으려 함에서 생기는 불편함이라 자기 몸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의가 만들어내는 문화잣대가 만드는 불편함은 극복하지 못한다. 두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예수가 말씀하신 것
한벌은 태고난 몸이 천의무봉이고 예상우의니 그 몸을 덮는 것들에게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의衣로 상징하는 이 세계는 몸을 꾸미는 것을 통칭하는 것이다 몸을 덮는 덮개를 꾸미는 세계를 裝(壯衣)이라고 한다
식食도 마찬가지, 찬것을 먹어서 탈을 내지말고 잘 익혀먹으라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다 준 것은 먹음에 대한 조언이다 먹음을 꾸미는 식을 飾(食布)이라고 한다. 식탁에 모시수건을 준비하는 것.

오장육부가 차가우면  금은보화로 몸을 치장해도 몸이 오그라든다는 것이지 배부르고 등따숩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를 나타낸 것이고 깨달음의 선각들이 도달하면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고 등따심..내 멋대로 사는 것 지 멋에겨워 늘어진 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 
 
배부르고 등따시다  이 여덟자가 사주를 풀어내면 도달하는 지점인데 이 여덟자를 붓다는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住를 몸이 사는 집(건물)으로 가르치고 그래서 내 집을 사려고 한국은 부동산으로 난리(?)를 만들고 있는데 집은 이미 태어나면서 그대가 달팽이집처럼 지고 나온 몸이다 그래서 住는 亻主로 구성되었다 몸亻이 아시아 일곱교회라고 설명되는 메노라로 일곱촛대로 일곱우물 브엘세바로 설명되는  하나님의 집이다는 것이고 이 집이 드나드는 곳을 宅이거나 邸라고 한다 住를 據(의지할 거)하게 하는 것이 건물이라는 것 그래서 예수가 다리위에 집을 짓지말라고 했다
즉 몸이 본집이니 그 본집이 중요하지 본 집이 거하는 건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 
 
외연의 옷 음식 집에 대한 개념은 외연을 따라가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이고 내 안의 물음을 따라서 찬물을 공물로 하는 나와 같은 류에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지 즉 무시하는 세계가 된다. 즉 안보이는 세계, 없는 세계...
외연의 추구자들은 의식주의 기준을 너가 세워주는 것에 부합시키려고 하다보니 자기의 의식주가 문제로 인식되고 그것이 불편함이 되어서 점사를 보거나 언제 풀릴까요 언제 잘될까요 언제라는 화두를 들고 언제(彦際)를 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데 그대의 개념을 바꾸기 전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 보내어서 신탁을 공수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가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가슴에 피를 흘리고 손발에 십자가에 못을 박힌 모습으로 본 그대로 다시 온다면 그대가 예수를 따르겠는가? 예수가 부활하여 그대 앞에 나타나면 그대가 본 모습그대로 즉 너의 개념이 만들어내는 내 개념이 투영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예수의 부활이라는 메타포는 내가 생각하는 개념의 외연화라는 것 예수에 대한 내 개념이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것이지 그래서 예수를 만나는 이들은 같은 예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예수를 만나는 것이지 
 
예수가 너희가 본 모습 그대로 다시 온다고 한 그 본 모습이라는 것이도대체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나..생각했는데 부활하신 모습 만지지 말라고 하신 모습인가?  내가 본 예수는 성서에서 겟세마네기도와 갈릴리 바닷가에서 떡과 잡아 온 물고기를 구워 제자들과 같이 먹은 그것이 각인이 되어서인지 그렇게 나타났다.
겟세마네기도로 그리고 내게 떡과 잡은 물고기(말과 글)를 같이 나눔하는 것으로 예수의 에너지를 겟세마네로 불렀더니
꿈에 나타나 내 곁에 서서 갈릴리해변가를 손으로 가르치셨다 건너가라는 것이지 말없는 액션 그 지시하심을 따라 지금까지 오고 있는데 예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세월이다. 떡과 잡은 물고기를 불에 구워 나눠먹음 예수가 떡을 가져와 굽고, 제자는 잡은 물고기를 가져와 굽는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예수의 떡 나의 물고기 그렇게 화로가에 앉아서 같이 먹는 것 예수가 피운 불은 모닥불이였을까
예수가 구운 떡은 어떤 떡이 였을까? 불에 구워야 할만 큼 굳은 떡 새벽바람을 가르며 그물질하여 막 잡은 파동파동한 살아 있는 물고기 내가 풀기로 구워야하는 굳은 떡은 '땅에 쓴 글" 막잡은 생생어들은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풀지 
 
외연에 길들여진 잣대를 벗어나는 것은 외연의 잣대에 도달해야 되는데 외연의 잣대는 다가가면 점점 멀어져가거나 높아만 간다. 문화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일러 무지개 잡으려는 허영이라고 하지 그 허영을 충족시키기위하여 방황하다가 방랑하다가 방향을 청하여 허영을 방출하는 것이 굿마당인데 허영을 방출하는 과정이 굿마당이고 그래서 굿마당은 시끌벅끌하여야 한다. 허영만큼 풀어내는 과정이 물을 끓이어 공수를 만드는 것임으로  
 
비나이다 비나이다 세상의 한파를 마주할 때 따뜻하도록 조상신령님이시여 내 손의 비빔을 통하여 봄날이 되게 하여주사이다..라는 바래움 
 
찬물(물에서 길어낸 물고기)을 마시면 배탈이 난다고 끓여서 마신다. 외연에 있다가 배안으로 들어가는 물은 온도차가 있는데 온도차가 크게 되면 배탈이 난다는 것이지 물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온도차가 크게 되면 몸에서 그 차이를 조율하는 틈이 생기고 그 틈을 배탈이라고 하는 것 탈은 벗어나다라는 뜻으로 배의 온도에서 벗어난 찬물이 들어오면 배에서 익히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을 배탈이라고 하게 되는 것 그러니 배탈이 나면 배를 쓰담쓰담하여 외부에서 온도를 높여주면 물이 익어서 배탈이 낫게 된다. 배가 아프면 배를 주무르고 배를 따뜻하게 하는 이유다 배탈이 나면 일단 배를 따습게 하고 배를 어루만져주어라 신기身記에 새겨진 정보를 풀어내는 것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밌구나
어제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미기를 잡은 체험을 통해  해변가에서 떡을 굽고 물에서 길어올린 물고기를 가져와 같이 구워먹는 그 사건을 소환하게 될 줄이야..이렇게 풀어지게 될 줄이야 얼음을 깨다가 풍덩한 이 사건을 딛고 예수의 해변가에서의 조찬을 풀어낼 수 있는 미기를 잡은 것이니..이렇게 두드려내는 것은  나만의 어휘력 말도 안되네거나 우와 그렇게도 풀리구나..하게 되는 나만의 즐거운 소설쓰기가 되것다. 蘇薛

 

찬물이거나 생말이거나 낮선정보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의미다. 내가 마주하는 날것정보(카르마라고 하기도 하고 죄라거나 무지라고도 하지)를 반복하여 마주침(쉰시타브)으로 익숙하도록 하는 과정이 나에겐 소설蘇(깨어날 소)설薛(맑은대죽 설)

카르마를 풀어내는 것이 천인천수마하무드라이고 이 현장은 그대의 손뼉을 치고 손가락을 두드리고 손끝을 치는 일이다. 박수무당이라고 하는 이름에 솔루션이 있다. 박수치고 춤추는 것이 굿판이다. 내가 해맞이 신단을 팔을 흔들려 돌아가는 것이 박수무당의 굿이듯이..그리곻 그대가 손뼉치고 걷는 것이 굿이다. 좋은 일은 그대가 스스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남의 현장에 기웃거리는 것은 그대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대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그 문제는 그대가 허용한 상처, 틈새, 새틈, 새로움 그대의 배에서 움이 돋아 생수의 샘으로 터져나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대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대가 선택한 카르마다 풀어야할 화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배움은 다시 손뼉계로 건너오는 단어구나 요즘 왼손 중간지 언덕丘이 아파서 만지작거리는데 손바닥과 가락의 경계에 있는 곳을 언덕이라고 하여 엄지 금성구 검지 목성구 중지 토성구 약지 태양구 소지 수성구 손바닥은 화성구1, 2 소지 아래 월구로 분류를 하는데 배안의 움을 돋게 하거나 파거나 하기위해선 손을 알아야 한다. 손바닥도 오장이고 배안의 장도 오장이다 오장과 오장이 만나면 십오장이 된다 좌우 열장과 배안의 다섯장이 합하여 십오진주라고도 하는 土 이고 손 오장의 중심을 노궁혈이라고 하고, 배의 닷장의 중심을 태양총 배꼽 또는 단전이라고 한다 태양총이 몸안의 태양이 뜨고지는 자리이고 손바닥이 정오의 해자리다  아침해맞이를 다니면서 오장의 태양총의 에너지를 풀가동시키면서 내 안의 아침태양의 에너지를 확인하고 이제 손바닥의 정오해자리를 풀어내는 단계 즉 아침 해오름에 대한 몰입에서 정오의 해로 건너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진교송원에너지를 풀어내면서 별다리솔마을220이라고 풀었는데 그 에너지를 딛고 선구와 실안의 에너지로 건너오면서 郭의 阝가 귀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면서 享 본디 글자는 亯이었으며, 이 글자는 (형통할 형)의 옛 글자이기도 하다. 즉, 享과 亨은 원래는 같은 글자였으나 나중에 분화된 것 亯이라는 한자는 한글 흠과 같지 그래서 흠향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구나 亯의 뜻이 흠이고 발성을 향이라고 하였는데 향은 코嗅와  소리響와 상관이 있다는 것이지 

 

설문해자에서는 '바치다'라는 뜻으로 해설한다. 음식을 익히는 그릇의 모양을 따온 상형자로 음식을 익혀 바치는 데에서 바친다는 뜻이 나왔다는 것. 도도 아키야스는 외성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둘레 곽)의 본 글자라고 했다. 또 상형자전이라는 웹 사이트에서는 종묘에 제기를 둔 모습을 본딴 것으로 본래는 종묘에 제수용품을 바치는 뜻이었다고 해석한다 

곽이라는 성씨의 내면에 깃들이어있는 사연을 풀어내려고 하다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다가 아직 내공이 안되구나 하고 미뤄둔 것인데 아침해가 돋아 이제 정오의 빛으로 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이네. 

정오의 해를 마주하여 공부하는 방법은 손에 새김된 정보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내가 이해하게 되네 

즉 손금이 감추고 있는 글을 풀어야 한다. 글의 출발은 손이니까 말의 출발자리는 눈치코지에 글의 출발자리는 귀와 손에 있다는 것이구나 알면 알 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는 선각의 가르침을 내가 받아서 되울림한다

 

그대가 배움을 하려거든 몸에 습관이 배도록하려면 먼저 손뼉을 치라 박수를 해라 박수무당을 찾아가기 이전에 손뼉을 치고 걸어라 그것이 점치는 방법이라는 것이지 손뼉을 치는 것이 두드리라 열리리라가 되는 배에 움이 돋게 하는 배움의 출발이다

사람은 배탈이나면 배를 움켜잡는다 그 탈을 고치려면 온기를 부여해야하고 온기를 배여들게 하는 것이 단전을 가동시키는 것이고 그곳에 열이 스미면 배움이 되고 배움이 열리면 좌우 배떡잎이 생기고 그 떡잎이 생기면 배짱(줄기)가 생기고 배짱이 자라면 뱃골이 생기고 뱃골이 익으면 뱃살이 생기고 뱃살이 단단해지면 뱃실이 생기고 뱃실이 영글면 뱃집이 생기고 뱃집을 住라고 한다.  내 뱃집이 말과 글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배탈에서 뱃집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學이 라거나 삿다르마푼다리카라고 한다  배우는 목적이 뱃집을 만들기위한 것이고 뱃집을 만드는 것은 적나로 태어난 몸을 보호하기위한 것이다. 
 
배움은 한글인데 한자로 배울 학學이라고 하였다 배울 학은 점爻을 치기위하여 산가치를 두손에 잡고臼 던지다 라는 뜻이다 산가치는 점사 卦를 보기위하여 만든 나뭇가지로 지금 윶가치라고 하는 것이다 윶가치를 던져 윶놀다가 기본 뜻이다 지금은 배울 학은 사라졌고 따라서 점친다는 것이 일상에서 이상으로 멀어졌다 점친다나 배운다나 점성술이나 사주팔자나 같은 것인데 언어의 다름에서 다른 영역인줄 알게 되었다 배울 학이라는 낱말을 그간 어휘력하고 있었는데 배울학에서 절구 안에 효爻를 나는 아설순치후로 풀었다 두 손으로 산가치를 잡고 던지는 모양을  입으려 올려와서 아랫니 윗니 사이의 혀를 보꾹두드리기 입천장두드리기로 풀었고 그 풀이를 실천했다 그런데 몸으로 내려오면 한자 그대로 두 손臼으로 윶가락던지기는 것인데 실천은 손뼉이고 발에서는 발바닥두드리기나 걷기라고 적용했다


배움을 출발시키는 힘을 공급하는 단전은 어떤것이 윶가락던지기일까 이것이 나로 소리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소리는 힘을 공급하는 줄이다 힘줄 그간 해맞이신단에서 해맞이를 하였는데 월요일부터 해맞이에서의 과정이 단전 즉 소리줄 힘줄을 외연화하기위함이였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해맞이는 힘줄돌리기를 풀어내기위한 밑거름이고 입안의 윶가치 혀, 가슴의 윶가치 손, 생식기의 윶가치 발의 힘을 공급하는 에너지센타인 태양총의  윶가치놀이를 해맞이신단에서 통합하는 과정이였다는 것이지 
 
날씨도 춥거니와 요즘 글이 아침일찍 해돋이 가려는 시간에 내려오니 글을 받아낸다고 강 길을 나가는 시간이 오후대로 옮겨진다 아침해맞이의 아름다움도 감탄하거니와 오후의 그 찬란한 태양의 화려함도 찬탄한다 삼라만상 환희드러나 거침없는 모습들 물에 비취는 햇살과 바람의 조화로움 해가 태어나는 힘찬출발과 해가 성장하는 빛가락을 다녀보는 것도 새틈 새로움이다 
 
내가 성장하는만큼 보이는 법이고 해오름에서 중천해를 마주하는 것이 본심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 일랑가
내가 보지 않아도 해는 뜬다 그래서 해가 성장하는 과정과 연동하는 태양총도 소리를 낸다 태양총에서 내지를 소리를 

힘찬소리 북치듯 둥둥하는 소리라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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