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진교면 송원리 에너지를 효목동 해맞이 신단에서

청향고은 2021. 2. 11. 12:38

엄청 개엄청 재밌는 동시성 
 
외가가계도를 찾아서 길어올린 것이 진교면 송원리220번지라는 풍수지리와 강광양금 이영악이라는 천문인사이다. 언어가 변한다는 것은 피의 변화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떤게 변화냐? 라는 것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피가 변한다는 것은 變이라고 Change, 바뀐다인다 바뀐다가 뭐냐고? 빨간색이 파랗게 되는 것?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 그런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에서 360도로 볼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이 생긴다는 것이라 하신다. 고정관념은 중독된 상태이고 변한다는 것은 해독하는 힘이 있을 때라는 것이지 
 
變과 戀은 머리는 둘다 糸言糸인데  몸은 연은 心이고 변은 夂다. 치夂는 발을 가리키는 止를 거꾸로 한 글자로, 머뭇거리며 뒤져오는 모양을 뜻하는 한자이다. 총 3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져온다는 것은 살피면서 온다는 것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걷는 것을 뜻한다. 즉 일이 있어서 바쁜 걸음이 아니라 걷는 것이 일이 되어 천천히 걷는 것을 즐기는 것이라고나 할까  천천히 걸으면서 살피다가 스쳐서 무엇인가 발견한 것을 다시 확인하기위하여 돌아가서 확인하는 모습을 變이라고 하는 것으로 정보는 고정되어 있는데 보는 내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빨간색이 파란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빨갛게 보았는데 자세하게 보니 빨간 부분도 있고 파란부분도 있고 노르스럼한 부분도 있고...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변한다는 것이지  한번 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상하좌우전후 안밖 즉 팔자로 본다는 것이다. 너를 대함에 있어 내 관점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들어보고 내 관점을 보완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관점과 남이 나는 보는 관점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너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경청하고 그 정보를 수용하는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나를 내가 정의하는 자기주관이 있지만 너가 나를 보는 너의 객관이 있는데 나의 겉모습에 대하여 즉 드러나는 내 모습을 정확하게 보는 것은 나의 주관이 아니라 너의 객관이다. 내 행동을 내가 볼 수 없지 않겠는가..너가 나를 보는 것이고..요즘 내가 나를 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이 금숙씨가 찍어내는 사진인데 금숙씨의 눈으로 나를 잡아서 나에게 보여줌으로 아하..나의 움직임은 이런 모습이구나..하는 인식이 생긴다. 사람은 고정된 자기를 본다 유리창에 거울에 스치는 경우 그 시점에서 머물고 있을 때 내가 나를 본다는 것이지 고정된 나를 보는 것이고 너는 움직이는 나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 움직임(성격)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너가 잘 안다는 것이다.  
 
나를 관찰하는 너의 눈을 내가 받아들임으로 나에 대한 관점을 기루어가는 것이 변하다는 뜻이다 해맞이신단에 가면 금숙씨가 나를 부추켜서 모델로 사진을 수도 없이 찍어준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나 허이구 저 봐라 조폭이네..관세음보살이네..애기처럼 잘도노네 말붙이기 힘든 분위기인데 찬찬히 보면 귀염상이네...등등의 평가를 해가면서 같이 사진을 보고 나도 우와 이 여자 누구냐 잘도 논다..멋지네..사진을 누가 이렇게 멋지게 찍는거야..하고 까르르르 거리면서 논다.  
 
변한다는 것은 내가 의식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깊어지고 너를 품을 수 있는 품이 넓어지고 인연을 오래도록 같이 끌어갈 수 있는 마당을 기룬다는 것이다. 내가 넓어질 때 보담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고 보담을 수 있는 것이 많으면 풍요로와지고 다채로와지고 다종하여지고...인생농사 풍성한 풍년이 되는 것이라고 ..변하지 않으면 가난하게 산다. 외연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인성에서 풍성한 것이 진정한 부요로움이 된다는 것이지 戀에서 變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도전이지 않겠는가...변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이다. 익숙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들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변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낮선길을 선택하는 만큼 두렵거나 설레거나 불안하거나 호기심이거나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이지
 
자기변화는 어디서 나타나는가? 언어이해력에서 나온다. 언어가 피에서 만들어내는 물질인데 피가 맑고 밝으면 행동이 활발발하고 언어가 아름답고 빛나는 것을 선별하여 쓰게 된다 언어세계도 레벨이 있다. 언어레벨에서 상급에 속하는 언어를 찾아내어서 쓰는 노력을 자기변화의지라고 하는데 언어에서 변화를 이루려면 어휘력을 만들어야 하고 어휘력을 만드는 방법이 '언어가 되는 자음인 한글경'을 많이 읊조리는 것이 기본공부다. 글을 두드리면서 선운선생님의 나는 무엇을 살피며 살고 있는가? 라는 강의를 듣고 있는데 오화午火를 설명하시는데 내 기질을 설명에 대입하여보니 내가 그렇게 살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가 뭘까? 에 대한 답이 오화에 을목이 가진 에너지라는 것이네 내 사주팔자를 내가 풀어내는 것은 일차적인 육신에서는 가계도를 통하여 접목하지만 정신계(자연원리, 명리)에서는 이 방면에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의 정보를 참고하면서 아하..그렇구나 하게 된다. 명리는 논리학이고 역학은 철학이다 자연의 흐름을 해석을 다양한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명리이고 자연의 흐름을 기록하는 문자원리를 풀어내는 것이 철학 즉 역학이라고 내가 이해한다는 것이지 명리는 객관적인 정보를 통하여 비춰보지만 역학은 나의 철학세계를 형성하는 것임으로 나만의 체계(몸틀)이 되는 것이다. 명리쪽의 정보는 선운선생님의 풀이를 듣는데 나에게는 상당히 유익한 정보가 된다. 논리적인 풀이를 선호하는 것은 내게 있는 년간의 경금과 시지에 있는 유금에너지때문이겠다
 
내가 언어를 파자하여 그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년지의 자수와 월지의 오화와 년간의 을목과 일지의 을축이 연합전술을 구축하여서 나타나는 것이겠다.  
   
戀은 좌우폐에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만들어내는 소리言를 뜻한다면 變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조절하는 걷기라는 것이지. 걷는다는 것은 관계를 맺음이다 땅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별과 달과 해와 구름과...그 모든 것을 만나기위하여 걷는다. 아침마다 해맞이 신단으로 가는 것은 아침공기의 차가우면서도 상쾌함과 새벽구름을 보는 느낌도 별과 달의 빛들을 공명하고자 하는 내 몸의 의지를 따른 것이다. 아침에 해맞이를 가서 신단을 돌고 있는데 금숙씨가 와서 같이 돌다가 오늘의 화두가 사물의 장단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장조와 단조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금숙씨가 3년을 자리잡았다는 반송아래 자리를 깔았는데 일전에 이 소나무곁에서 하모니카를 부시던 어르신과 노래부르던 곳이다. 자리를 깔고 앉아서 설명을 하자니 녹음을 해야한다고 다시 설명하라고 해서 사물과 모음의 구조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모음의 방향에서 아음은 ◇가 되고 어는 ◁가 되며 오는 △가 되고 우는 ◇가 된다고 국민학교에서 먼저 배우는 것이 글자의 구조였다고 문을 돌리면 곰이 된다는 것도 ...사물의 장구는 아음이며 자리는 가슴이고 북은 어음이고 자리는 배이고 꽹과리는 머리이고 오음이며 징은 우음이고 발이라고..사철과도 연결이 되는 것이라고...사물을 두드리면서 사물에 대한 자기철학이 없으면 , 즉 중추신경을 세워야 한다고 내가 전달하는 이 정보를 소화하여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내는 정보를 삼으라고
 
외가의 지신을 당겨서 내 에너지로 부리다보니 오늘은 소나무아래 자리를 잡고 사물을 설명하고 모음의 체계를 설명했다. 갑을 병정..하고 인사를 하시는 분이 오늘도 갑을 병정..하시는데 머리를 단정하게 손을 봤길래 어 선생님 머리를 하셨네요 했더니 머리에 돈을 좀 들였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10년은 젊어지셨다고 했더니 좋아하시더라 사물놀이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지팡이를 가지고 오시던 분이 신단 옆에서 혼자 신을 내시더라..하여간 오늘은 신축년맞이가 되는 것인지 소나무 아래서 설음을 열심히 했더라네 그리고 금숙씨의 부모님 이복손과 이복선의 이름을 올리고 고향을 물었더니 화룡和龍이라고 하더라. 화룡에서 남편으로 이사를 했는데 남편이라는 곳의 이름이 생긴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도 내 고향인 선구동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북이 등을 타고 온 신선이 닿은 곳이라고 선구라고 했다고 하던데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어쨌던 오늘 송원리 에너지가 작동했다 

 

명리明理(命裏)를 사물악기로 설명을 하기도 한다 
 
明의 日에 해당하는 악기가 꽹과리와 징이고 月에 해당하는 악기가 북과 장구다. 日은 뼈의 정보를 , 月은 살의 정보를 설명하는 상징이라고 본다 들숨은 日로 단조團調이고 날숨은 月로 張造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지 명리를 아무리 말로 설명한들 자기의 말과 움직임으로 체험하지 않는 한 리理를 裏화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자를 쓰도 자기 글을 쓰라라고 하는 것이 귀동냥하여 귀명창이 되어도 자기소리를 뽑아내지 못하면 자기를 두드려 그 울림을 쳐내지 못하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아는 것은 행하게 된다. 사람은 아는대로 살아간다. 행하지 않는 것은 모르기때문이고 모르는 것은 관심이 없기때문이고 관심이 없는 것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때문이고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기때문이다. 자기에게 만족하고자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니까 만족하고 사는 사람에게 변화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자기만족을 하지 못하는 이에게 변화를 말하면 관심을 가지겠지만...만족하고 산다는 것이 행복이지.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만족의 가치도 저마다 다르다. 가붕개로 사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레벨이 있고 조냐단 시걸처럼 하늘을 날아야 행복하다고 하는 레벨이 있고 자기만족을 남의 잣대에 맞추려고 온갖 거짓을 행하는 레벨도 있고..다 자기가 타고 온 그릇대로 채우고 비우고..하면서 사철을 따라 흐느는 것이 생명의 여로이다.  
 
만족을 나는 만보걷기라고 말한다. 자기만족의 언어를 실천하는 것이 만보걷기..만보를 걸을 수 있을 때 만족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즉 戀에서 變으로 세계를 바꾸는 것이니까 戀은 말의 세계라면 變은 행동의 세계니까 앉아서 말만 하지 말고 일어서서 밖으로 노는 장소를 바꾸라는 것이지 말만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바꾸라..걸으라  여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산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변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타인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내가 선택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내 안이라는 틀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의 실천은 일단 걷기부터라고. 내 안에 갇힘은 언어에 갇힘이다. 무엇이 나를 가두고 있는가 생각한 적이 있는가? 몸은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싣고 있는 노아의 방주다. 다만 나를 가두는 것은 중독된 언어다. 그 언어를 벗어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 자연을 만나고 자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너를 잣대질하는 것도 내가 언어에 중독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지 내가 언어를 벗어나면 너를 잣대질할 무엇도 없다는 것이고 앎이라는 되斗가 다를 뿐이고 재는 자尺이 다를 뿐이다. 아는 척한다고 말하는데 아는 사람은 안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을 대하는 내가 그 사람의 세계를 모르기때문에 아는 척한다느니 말뿐이라느니..라고 판단을 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자기가 아는만큼 살아가고 그것을 보는 내가 그런 이들을 잣대질하는 것이지 나의 자와 되의 크기가 판단에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금숙씨와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으면 자기세계에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것은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지만 그래도 궁둥이에 똥침을 하면 펄떡뛰지 않을까나 하는 생각을 실험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동시키는 내 자신을 본다. 내가 변화되듯이 내가 하는 이런 방법들을 전달해서 같이하면 너도 나처럼 변화되지 않을까 라는 아주 작은 소망을 가지고..그러다가 금숙씨는 자기에게 만족하고 사는데 내가 내 잣대를 들여대는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제 했다. 내가 중독된 지식으로 금숙씨의 해맑고 아름다운 세계를 먹칠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그렇지만 내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변화를 추구한다고 내가 파악하는 것이고 그렇게 변화를 추구한다면 금숙씨의 세계에서 나의 세계로 길을 열어서 걸음을 딛게 하는 것도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자기변화를 말하는 사람은 자기불만이 있는 사람이니까 다들 자기변화를 해야 한다고 자기주장을 하지만 자기만족을 하고 있는 사람은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다. 그것을 이제 알게 된다.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해 온 것이지 자기만족을 하고 사는 이들은 말없이 자기의 삶을 경영하면서 즐기는 것이고 그런 이들은 말이 없고 글이 없이 그저 존재함 자체를 누리는 이들이라고..재미나게 산다는 것은, 사람마다 재미를 얻는 것이 다르지만  나에게서의 재미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사는 재미裁謎다. 마르다는 것을 펼쳐진 것을 두루룩 말다이고 재단하다라는 것이듯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자기만족의 재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영역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고..퍼즐맞추기 
 
같이 나와 같이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중독된 언어에서 해독되어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너의 판단이나 잣대에 상관없는 삶을 경영하는 자기만족 나야 언제부터 명절 절기새해..등등의 언어에서 벗어난지 오래되었고 하루를 내가 경영하는 주인으로 살게 되면서 외연의 미풍양속에서도 걸림이 없이 내 하루를 경영한다. 죽은자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산자인 내 자신이 신단이 되고 신녀가 되고 소신공양하는 제물이 되어 매일을 제사하는 삶을 통하여 풀어내는 수수께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시대를 물병자리시대라고 한다 물병자리의 건너편에 있는 별자리가 사자자리이고 사자자리의 중심별이 레귤러스이고 레오라고 하거나 아슬란이라고 하거나...예수라고 하거나..하는 것이다. 물병자리시대의 에너지는 외연의 정보를 발생시키는 나 자신의 정보를 풀어내는 시대라는 것이다. 외연의 정보의 출처는 몸이라는 것이고 몸을 쏱아보면 그 안에서 토해진 정보가 외연으로 퍼져나간 것이라고 알게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물병자리시대를 육감시대 6G시대라고 한다. 육감, 예언, 예지..등등의 정보시대


물병자리는 외연의 문화문물문명보다 내면의 문화문물문명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자기행복을 추구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이지 남에게 보여지는 쇼의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너에게 보여지기위하여 집을 구하고 옷을 입고 지식을 내세우고..하던 시대는 저물었고 자기패션, 자기스타일, 자기해석력을 가치로 하는 것. 고유한 자기만의 무엇을 사랑하고 가치부여하고 그리고 존경하고 찬양하는 것 천상천하유아독존 전무후무현유일한 자신의 분복을 마주하여 긍정하는 시대가 물병자리시대의 에너지다. 비교하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유한 자기만의 아름다움.     
 
들숨과 날숨을 말로 만들어내는 것이 연 戀이고 들숨과 날숨을 말로 만들어내기위하여 힘을 만드는 과정을 변 變이라고 하는 것이니 변은 과정이라면 戀은 열매다 나의 변화는 피의 농도가 만들어내는 어휘력이다 내가 정의하는 것이니 나의 철학이다.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철학의 근거는? 중독된 언어의 실체를 파악하는 힘이다. 아무나 철학을 하지 않는다 철학을 해도 언어철학을 하지 않는다 언어철학을 해도 자기가 중독된 언어가 무엇인지를 마주하여 해독하고자 하는 철학을 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에 중독된 것인지 그 중독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관조하지 않으면 해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데 그 필요에 따른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는다. 즉 머문다.
머물지말라..예수가 그렇게 말했단다. 다리위에 집을 짓지 말라고..이 세상은 진교辰橋다. 별로 가는 다리다. 북극성에서 와서 북극성으로 가는 다리니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즉 언어에 갇히지 말라 중독되지 말라 언어는 다만 빈 무덤이니라 그러니 그 언어에 갇혀서 샛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지
 
외가의 정보를 가져오는 것 진교면 송원리라는 풍수지리를 가져와 씀하는 것이 외가의 무덤을 도굴하여 내가 얻어내는 자산이다. 너무나 재밌게도 내가 송원리 정보를 해독하고 나서 금숙씨가 소나무아래로 자리를 깔고 사물에 대한 설명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220번지, 꽹과리와 징, 북과 장구..뼈와 살, 반송아래서...나만의 만족이지
몇날 며칠을 그려가면서  파악한 정보가 해맞이 신단으로 이미 드러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