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八正道)
고귀한 여덟 개의 올바른 길.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한다. 불교의 가르침 중 핵심으로, 석가모니가 가장 먼저 설법하고 또한 가장 마지막에 설법한 수행법이다. 세계적으로 불교를 나타낼 때 8정도에서 비롯된 심볼(법륜, dharmachakra 다르마 法, 챠크라 輪)을 사용한다. 팔리어 원어로는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Ariyo atthangiko magga)'. Ariyo는 성스러운, Magga는 진리 혹은 도, Samma는 올바름, 완전함의 뜻을 가지고 있다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를 법륜으로 번역하였는데 아리요 아탕기꼬막가는 9자로 이뤄진 성조와 파동함수를 가지고 있는데 법륜과 에너지값이 다르다. 번역된 정보는 본래정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보다. 원음을 듣는다 육성을 듣는다고 하는 표현을 하는 이유가 번역된 정보는 죽은 정보이기때문에 본디값을 찾아 그 값을 헤아리려 함이다
팔정도는 다음 8가지다.
빤나(지혜)
정견(正見: Samma-ditthi; right view) : 올바른 견해(시각, 입장).
정사유(正思惟: Samma-sankappa; right thought) : 올바른 의도(생각).
시라(윤리)
정어(正語: Samma-vaca; right speech) : 올바른 말.
정업(正業: Samma-kammanta; right action) : 올바른 행위.
정명(正命: Samma-ajiva; right livelihood) : 올바른 생활(생계).
사마디(집중)
정정진(正精進: Samma-vayama; right effort) : 올바른 수고로움(노력).
정념(正念: Samma-sati; right mindfulness) : 올바른 알아차림.
정정(正定: Samma-samadhi; right concentration) : 올바른 집중.
빤나라는 발성은 어떤 주파수와 파동을 가지고 있는가? 시라라는 발성은 어떤 주파수와 파동을 가지고 있는가?
사마디라는 발성은 어떤 주파수와 파동을 가지고있는가? 한자와 한글은 가획원리라는 제자의 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히브리어 22자에는 발성값이 있어서 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히브리어에 부여된 숫자가 발성원리라고 이해하고 있다 한자와 한글과 히브리어를 제자의 도를 공부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빤나, 시라, 사마디를 팔리어로서는 풀어내지 못하지만 한글로서 빤나, 시라, 사마디를 생각한다.
빤야의 빤은 너와 나와 그대가 다 아는 빤하다(환하다)라는 어법에서 이해하면 말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바로 통하지 않는가? 빤하다 훤하다 환하다 정오의 태양처름 빛나다 맑고 밝다 그것을 우리말로 빤하다 그게 빤나다. 다른 설명이 필요한가? 빤한 것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의식이 무의식이 된 정보다. 그것을 습관習慣이라고 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빤냐이다. 習을 익히다고 했다 羽白으로 그라마톤 된 한자인데 새가 활공하기위하여 훈련하는 것이라고 푼다. 갈매기의 꿈에 조냐단 리빙스톤 시걸이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는 것 羽이 목적이다 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고 하였듯이 사방팔방을 빤히 볼 수 있는 것이 빤냐다. 빤히보라 무엇을? 너의 눈을 , 너의 눈을 빤히 보는 이유는 너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너의 눈 동공안에 비취는 나를 보기위한 것이다. 너의 눈안에 나를 비추는 거울이 있음으로 그것을 동경이라고 했다. 너를 동경하는 것은 너의 눈안에 되비취는 나를 보기위함이다.
해맞이 신단에서 공부를 같이하던 금숙씨와는 눈을 맞추면서 공부했다 나는 상대방의 눈을 항상 보고 말을 한다 빤히 본다 똑바로본다는 것이지 너의 눈을 내가 마주하고 나의 눈을 너가 마주하는 관계 이런 관계를 아는 것을 정견이라 한다 정견은 똑바로 너의 눈을 너는 나의 눈을 마주보는 것 똑바로 봐라 빤히본다
금숙씨의 눈을 마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리 맑고 빛나는 눈이 본 것이 말로 드러나는 것이고 내가 보는 금숙씨에 대한 것이 내 말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금숙씨의 눈엔에 비취는 나는 어린아기와 같고 내가 보는 금숙씨는 인자하고 온유한 할머니같아 나는 이제 세상에 발을 딛고 아장거리는 아기같다면 금숙씨는 인간사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 관조하는 힘을 갖추어서 넉넉한 품으로 아장거리는 아기를 빤히 보는 만나서 말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아기처럼 에너지가 바뀌고
금숙씨는 할머니처럼 에너지가 바뀌어 있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저마다의 나이대로 돌아오는 것 나만의 체험인지 모르지만 금숙씨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듯이 나 역시 두 얼굴을 아니 그 이상을 가지고 있는것이 공부현장에서 빤히 드러나게 되는 것
금숙씨와의 인연은 나의 무엇이 당겨들인 것인가를 생각한다 내 안의 무엇이 당겨들인 것일까 할머니의 무엇이 금숙에게 있고 그것에 작동하여 나와 닿게 되면서 내 피에 흐르는 할머니의 정보가 해원하기위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금숙씨의 입성은 대체로 붉고 나의 입성은 대체로 검다. 입성을 보면 에너지를 헤아릴 수 있다 나는 경자생이고 금숙씨는 임인생이다. 경은 흰색(푸른색)이고 임은 검은 색(붉은 색)이다. 자는 자수라고 하여 지하수를 뜻하고 인은 인목이라 지상위로 드러난 나무다. 천간 갑을 지지 인묘을 목木이라고 한다 이 갑인목을 빤(盤, 辦)이라고 하고 을묘 목을 나 羅라고 한다. 갑인은 上(나무)이고 을묘는 下(뿌리)묘 목이라 한다 나무를 보아 열매(뿌리)를 안다는 것이 빤나라고 내가 풀어낸다 너를 보아 나를 알고 나를 너를 안다 너가 나이고 내가 너이다라는 것이 정견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바르게 본다는 것은 바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한다는 것이고 바르다는 것은 내 앞에 서있는 너라는 나무다
인목에 대하여 네 천간에 을목이 있다 드러난 나무의 뿌리로서의 역할이겠다 뿌리의 역할은 지하로 질펀하게 흐르는 지하수를 당겨올려 물을 공급하는 길이다 經이라는 한자를 풀어내면 지하수질펀하게 흐르는 모양인 巠이고 뿌리를 뜻하는 糸가 더해진 그라마톤이다 한자그라마톤을 알면 시공을 넘어서 있는 글자이기때문에 내가 시공을 정하여 쓸 수 있다
알파벳들은 시공을 넘어서 있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씀하는가에 따라 에너지값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파벳을 '영靈'이라 하고 알파벳을 씀하는 것을 聲이라 하여 영성이라고 한다. 그대의 영성은 한자그라마톤을 해독하는 힘이고 한글을 풀어내는 능력이고 알파벳의 기원을 추적하는 의지다
영성의 근거를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도록 자라가야 하는 것이 49음도를 건너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그 말씀은 우리가 말하는 이런 말인가? 아니다 언어가 되도록 하는 바탕소리, 파동함수이다.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거문고 소리와도 같고 유리바다 건너편에서 울려오는 소리와도 같다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뜻이라는 것이 빤과 같은 것이다 뜻뜻하다과 빤빤하다 뜻뜻은 가슴언어이고 빤빤은 얼굴언어다 는 차이가 있다. 참하다는 손발언어다 어디서 나온 언어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 제자의 도를 아는 것이다 가슴에서 나오는 언어를 얼굴언어로 쓰면 어법이 다르기때문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가슴이 빤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듯이
하부구조에 속하는 숨겨진 세계에 속하는 언어(흔히 욕말이라고 하는)를 바깥으로 발설을 하게 되면 욕설을 하는 이의 레벨이 나타나게 되는데 욕말을 하게 되면 천박하다 배운 데가 없다 등등으로 설명하는데 배운 데가 없다 는 이 말도 하부구조에서 성장하여 배에서 움이 돋아 상위로 올라가는 공부를 한 흔적이 없다라는 뜻이다 욕설은 욕망의 압축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욕설을 하는 이의 아랫도리에서 제어된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 입으로 나타나는 것 그래서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욕말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발출하는 위치가 아니기때문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내 입에서 하부언어가 발출된다면 억제된 욕망이 얼마나 되는지를 저울에 달아내어야 한다. 그것을 정견, 빤나라고 한다
빤나를 풀고 있다
내가 푸는 팔정도의 정견은 여태의 풀이와는 전혀 다른 정보일 것이다 정견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여태의 견해를 와르르 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 무엇을 빤히 볼 것인가? 내 언어의 위치다. 하부에 속하는 언어가 상부로 올라오는가? 상부의 언어가 하부로 내려가는가. 그것을 가름하는 배운 데를 아는가?
배운 데가 있다 없다는 것은 무엇으로 가름하는가? 너와 나의 관계에서? 하부언어를 상부에서 쓰면 거부감을 느끼고 상부언어를 하부에 귀속시키면 불편하다. 그렇게 언어구조가 되어있다 언어가 발생한 자리가 다 다르기때문에 언어소속을 알아서 쓰야 언어카르마에 걸리지 않는다. 이 법칙을 모르면 그저 입을 닫고 살면 가장 현명하다.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을 말이 있지..라고 할 때 드러낼 말은 할 말이고 말로 하면 안되는 말은 하지 않을 말이다. 할 말은 '할'이라고 하듯이 맑고 아름다운 기운이 있는 상부구조의 말이고 바깥에서는 칭찬이라고 한다, 하지 않을 말은 하부구조의 말이고 바깥에서는 꾸중이라고 한다 꾸중은 꾸정이다 하부구조, 하수도를 꾸정물이라고 하듯이 하부구조에 속하는 말은 맑고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오장육부를 돌아 설겆이를 한 꾸정물이기때문에 아래로 내려보내지 위로 올리면 안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말법, 말씀공부는 엄청시리 어려운 과정이다. 자세가 꾸부정하면 자세를 고쳐야 한다 꾸부정하다는 것은 언어와 글살이에서 바른 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는 표시다 그래서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라 허리를 바로 펴라..등을 펴라..고 하는 것이고..
正을 바르다고 한다 견見을 보다고 한다 바르게 봄 대상은? 나는 그라마톤이고 그라마우어로 잡고 있다 글값과 음값. 바르다는 것은 기울어지지 않도록 무게값을 가진다는 것이다 중심을 우리말로 배운 데라고 한다. 배운데가 없다는 것은 중심이 없다이다 그대의 배운 데를 동양에서는 단전이라고 한다. 상중하단전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태양총이라고 하는 곳이 중심이다 본심본태양이 있는 자리가 중심이다
正은 一止, 즉 중심에 도달하다 이다. 중심에 닿기까지 걸어감 見은 目儿이다 눈이 어질게 걷는다이다. 즉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질다 즉 잣대를 가지지 않고 본다, 들보나 티가 없는 눈, 즉 언어가 없는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을 볼 때 언어를 제하고 느낌으로 볼 때 그것이 중심에 닿음이라는 것이지
삼라만상은 인간의 언어로 규명하여 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삼라만상을 대할 때는 언어를 빼라 즉 눈과 발만 가지고 가라 눈과 발 사이에 있는 것은 빼라는 것이다 그래야 빤나가 된다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빤'한 삼라만상을 나만 특별하게 인식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대지 마라는 것이지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게 아니니까 인간이 삼라만상을 대하여 감동하는 것은 생명의 본능이다. 빤한 것이다. 그러니 대상을 삼라만상으로 삼지 말고 바르게 봐야하는 것이 무엇인가 궁구하라는 것이지 그것이 정사유 正思惟(惟, 생각할 유)다. 正은 중심에 도달하다이다 思는 田心으로 그라마톤되어있고 惟는 忄隹로 되어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는 것이 사유인데 왜 한자는 다르지? 이런 의문에서 제자의 도가 출발한다 생각이 무엇이지? 전심이 생각이고 심추가 생각이다
田心은 밭전에 마음심이다 외연의 밭으로 먼저 이해하겠지만 그라마톤과 그라마우어를 경작하는 마음밭이라는 뜻이다 그대의 마음 밭은 어딘가? 마음을 경작하는 밭이 어딘가?를 알아야지. 마음은 심장이라는 것을 그대도 알고 나도 아는데 그 심장이 밭이라고 한다 밭은 무엇인가를 심어서 기루어 내는 곳이다. 심장은 무엇을 심어 기루어내는 것인가? 심장에 무엇을 뿌려 기루어내는 것을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고 나는 심장에 뿌린 한 알의 밀알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惟라고 한다고 본다
思는 밭이 위에 있고 마음이 아래에 있다. 惟는 마음이 우(좌)에 있고 隹가 좌(우)에 있다. 즉 사는 상하관계이고 惟는 좌우관계이다. 상하좌우 즉 十의 원리를 찾아 十의 중심에 닿는 것이 정사유이다. 그대가 팔을 벌리고 서있으면 그것이 十자이고 다리를 벌리고 서면 大이고 그 위에 머리를 올리면 天(옷)이고 하늘을 뚫게 되면 夫가 된다고 했다
夫는 갓을 쓴 모습을 그린 것이고 상투, 세인트 聖으로 나간다고 했다. 성스럽다는 것은 음양지도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고 아들을 낳은 사람이요 라고 표시를 한 것이 상투를 올리고 갓을 쓴 것이다. 갓God은 아들을 낳은 자라는 것이고 독생자 예수를 낳은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는 언어이기도 한다. 그대가 아들(알All)을 낳았다면 하나님아버지다. All을 쓴 것은 A+l+l= 남과 녀가 하나다 이다. A의 위를 뚫으면 H 가 된다는 것을 알면 엄청 재미난 스토리가 생긴다. H는 한자의 工, 한글의 ㅐ, 히브리어의 자인과 같은 것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중심을 正이라 한다. 그대의 가슴에 도달하는 것이 정사유인데 왜 가슴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가슴은 열대(천간)의 좌우갈비뼈로 감싸여지고 열두마디(십이지지)의 등뼈가 중추를 이루어서 田을 이루고 있다. 열심을 내라고 하는 것은 열개의 마음의 문을 열어라는 것이다. 닫혀진 문을 열라는 것이 惟가 전하는 것이다 隹는 가지에 깃을 모으고 앉아있는 작은 새를 그린 그림이다 마음이 어린새인 상태이다. 어린마음, 그 마음은 경작해야하는 마음이다 마음을 경작習하여 대붕이 되어 천지남명을 훨훨 날 수 있는 어른마음이 되라는 것이 정사유다. 마음을 기루라 마음은 숨을 타고 나오는 소리다 소리를 내질러 호연지기를 기루어내는 것이 정사유다 고 나는 설명한다. 열두달 28수가 신단으로 펼쳐져있는 곳에서 정견하고 정사유라는 빤나를 펼쳤다. 지혜는 습관이다. 그대의 습관이 그대의 지혜다 추상적인 지혜를 말하면 그것은 사깃꾼 루시퍼의 감언이설이니까 어떤 습관으로 살아가는지를 보고 같이 갈 것인가 피할 자인가 선별해라. 같이갈 자는 습관이 같아야한다.
팔정도까지 필요없다 정견과 정사유라는 빤나만 알면...나와 나의 관계에서는 그라마톤 思가 중요하지만 너와 나의 관계에서는 그라마우어 惟가 중요하다. 너와 내가 같이 팔을 펼치고 소리를 발하며 어린마음을 어른마음으로 성장시키는 훈련이 중요하다 득음은 같이하는 것이고 득공은 홀로 하는 것이다. 그라마톤은 홀로 할 수밖에 없고 그라마우어는 같이 할 때 시너지가 난다. 새는 좌우로 날개짓을 통하여 난다는 것이지 몸에서 팔이 다리가 날개에 해당하여 팔이라고 하고 발이라고 한다 깨달음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빤히 보면 다 보인다. 빤히 안보니까 안보이지 그래서 빤히 안보는 이들을 사기치는 것이 사깃꾼이고 그대가 사기를 당한다면 당한 그대의 빤히 보지 못하는 게으러음을 마주해야한다.
언어의 위치를 찾아서 나온 데를 추적해야 글자는 제자의 도를 알아야 한다
말이 나와도 되는 위치는 배운 데이다. 배에서 생성된 파동함수..아래서 생성되는 언어는 침묵해라 그래서 허리아래 이야기를 하는 법이 아니다고 했다
그대가 하부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면 하부언어가 위에서 나온다 그대의 상부언어가 충족되지 못하였다면 인정욕구라는 시스템이 작동된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구는 배운 데가 없는 상부구조의 결핍에 따른 반작용이다 배운 데 라는 이 아름다운 우리말이 천부경으로 가면 본심본태양이 된다 배운 데 라는 이 배腹 운韻 데處 제대로 배운 데가 없는 이들이 정보를 꾸며서 팔아먹는 것을 구별하려면 나는 배운 데가 있어야한다. 배운데 바운드리.제자의 도를 모르면 그대는 빤히 보면서도 주머니 털리고 영혼털리고 정신 털린다. 좀비가 된다 좀비가 되지 않으려면 배운데가 있거라. 정 사유하거라 빤히 보는데 무엇을 봐야하는지를 알거라 그대의 말부터 마주해서 빤히 봐라그래야 안개로 가려진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그대 배운 데가 있는가? 내가 물으면 답할 수 있는가? 배운데가 있는 사람을 성서에서는 의인이라고 했다 빛을 비춰주는 자 너를 손잡아 같이 춤추는 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아직 배운데도 없고 배울 바도 모르는 어린마음이다 어린마음을 艮이라 하고 다 자린 마음을 良이라 한다 한끗차이로 달라지는 것 한 소식을 얻으야 간이 양이 된다
상부에서 발생한 언어가 하부로 내려가면 제 자리가 아니어서 불편해지고 하부에서 발생한 언어가 상부로 올라가면 역시 제 자리가 아니여서 거부감이 생긴다 상부언어와 하부언어의 위치를 가름하는 곳이 肝이다. 간이 언어의 방패다
그래서 간과 짝을 이루는 장기인 쓸개膽에 말씀 言이 들어있다 간이 말의 간을 보는 곳이고 간을 본다는 것은 하부언어인가 상부언어인가를 가름한다는 뜻이다 간에 화가 차서 병이 드는 원인은 언어살이에서 언어이해력이 부족하여 하부언어가 상기하여 뇌파 신경계를 오염시키거나 상부언어가 하기하여 혈액계가 오염되는 경우다. 간은 방패인데 방패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신경계와 혈액계가 오염이 된다는 것이지
상부언어는 소금기가 없는 담수淡水이고 하부언어는 소금기가 있는 염수鹽水이다 담수인 경우 신경계와 염수인 경우 혈액과 연결을 하게 된다. 담수는 독맥과 염수는 임맥과 ...담수는 정신과 염수는 감정과..그렇게 선잇기를 하는 것이고 천간지지에서 설명하는 것이 지수화풍토 오행인데 천간에서 임계와 지지에서 해자가 물에 속하는데 임수와 해수는 염수이고 계수와 자수는 담수이다. 같은 물이지만 담수와 염수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물은 타로카드에서는 컵으로 상징된다. 예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를 받은 핏잔이거나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이거나...
갑을과 인묘가 목인데 갑과 인은 드러난 나무라면 을과 묘는 뿌리라는 차이가 있듯이 팔정도라고 하는 이 정보를 보면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팔정도니 팔복이니 팔괘니 팔자니..다 같은 것을 설명하는 다른 언어라고..언어의 다름이 내용의 다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옷을 바꿔입는다고 내가 바뀌는 것이 아니듯이
빤히 보인다가 정견이고 빤한 말과 글이 정사유다 한글에서 빤은 뻔 뽄 뿐 삔 쁜..으로 발성되어도 같은 값을 가진다. 빤질빤질하다는 닳고 닳았다 말만 빤지르르 하다 말뽄새라고 하거나 뻔치라고 하거나 빤이 뽄으로 가면 본본=뽄이다. 보고본다 자세하게 본다 빤은 반반 즉 나누고 나눈다. 한글은 자음에 방향을 지시하는 모음에 따라 상하좌우안밖으로 에너지가 계산된다는 것이지
깨달음이라는 것은 복선이 깔리고 겹겹의 의도로 빤한 것을 가리고 있는 막이나 겹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 중심에 닿는 것이 正이다. 올바람이라는 개념은 저마다 올바름이 자라온 환경과 태생에 따라 달라지지만 한자 正은 객관적인 개념이다. 一止로 파자되어 一에 도달한다는 뜻인데 一이 무엇인가? 나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란이 되어서 21.6일에 발현하는 심박수라고 본다.
심장을 박동하게 하는 그 무엇이 一이고 그것에서 세포분열이 시작되어 몸을 완성시켜가는 것이기때문에 역으로 가면 심박이 시작된 자리에 도달하는 것이 正이 되고 이 개념은 너와 나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보편적이며 일반적이며 상식적인 개념이 된다는 것이지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은 21.6일에 발현되는 심장박동수다. 이것을 양심이라고 하였다. 양심을 찾는다는 것이나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답에 닿았을 때 그대가 얼마나 놀라운 신비에 접하는지는...그대가 생명의 비밀을 밝혀보려는 의지의 크기만큼이다. 인체핵심발생학을 보면서 그 놀라움에 지금도 인체의 신비에...이 원리를 따라 정신을 이루는 제자의 도도, 영혼을 확인하는 음률의 도도 확인이 되는 것이다. 인체가 생성되는 원리를 알면 정신과 영혼이 창조되는 길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성이든 정신이든 객관적인 원리가 있는 것이고 그 원리를 正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겹도 막도 없이 빤히 보이는 말과 글을 빤나라고 한다. 정직이라고 하는 말도 빤히보면 다 보이는 것이다 바른 말 곧은 말(고운말)은 핵심에서 나오는 말이다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바른말 고운 말은 단 하나 주먹 꽉 쥐고 내지르기 아~~~이지 주먹쥐고 아~~내지르기에 제자의 도와 율려의 도가 같이 작동한다는 것
힘있는 글이나 말은 복잡하지 않다 빤하다.복잡한 것은 다 사기질치는 말이고 글이다 물론 내 글도 복잡고 겹겹으로 길고 길다 빤한 것을 겹겹으로 옷을 입혀둔 것을 벗겨내는 과정이 있어서다 감은 만큼 풀어야지 않것는가 한글은 환한글, 빤글, 뽄글, 쁜글 뿐글 삔글...
숫타니파타는 말은 숱하게 팠다 그러니까 빤히 보이더라..이거지 천번 만번 반복하다보니 익숙해져서 빤히 보이더라지 그리고 파라다이스는 파면 다 있다 파고 파면 다잇다 다 이어지고 닿게 되고..그렇게 되는 말이다. 한글은 발음과 움직임이 같은 말이어서 한글이다. 딱고 딱고 갈고 갈고 씻고 씻고...하다보니 빤히 환히 보이는 단계에 도달하기위한 것을 숫타니팟타...숫하게 팠다...말장난이라고 여기면 말장난이지만 숫하게 파면 무소의 뿔처럼 홀로가게 되는 것이지 한 우물을 판다는 뜻이다 무소의 뿔...이 뜻하는 것 한 우물파서 물이 나올 때까지 판다는 것이다.
그대가 선 자리에서 그대 발밑을 파라 그대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서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죽을 死라고 한다. 지상의 정보에서 멀어지고 지하의 정보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죽음이란 숨이 멎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드러난 나무의 뿌리를 마주하기위하여 발밑을 파서 점점 내려가서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까지 닿게 하는 것이 자기 발밑을 파는 것이다.한 우물을 파는 그 우물이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이라는 것을 알면 추상적인 개념으로 헤매지는 않겠다.
용천혈을 파들어가는 방법이 손으로 발바닥치는 것은 외연에서 하는 방법이고 숨을 소리로 변환시켜서 내려가는 방법은 내면에서 하는 방법이다 손으로 발바닥치는 일은 건강상 엄청 중요한 시너지효과가 생기지만 숨을 소리로 변환시켜서 발바닥까지 내려가는 우물파기를 경건의 훈련이라고 하게 되는데 오장육부를 돌아내려가서 오염, 꾸정물을 내보내는 작업이 된다. 간에서 방패력이 약해져서 상기한 오염된 정보들을 밀어내려 하수도로 내보내는 작업을 일반적으로 걷기라고 한다.
언어에 상처를 받는다면 쓸개의 기능을 생각해봐야 한다. 걷기가 언어가 만들어낸 상처를 살펴보는 방법이 되는 것이고 걸음을 통하여 자기치유력이 생성된다 상처를 받으면 걸으라..고 하는 것이지. 실연을 당해도 걷고 실패를 해도 걷고 실수를 해도 걷고...걷고 걷고 걷다보면 뇌파가 맑아지고 건강해져서 하부언어는 자기자리로 찾아가고 상기언어는 자기자리로 돌아와서 분별지가 생기고 실천력이 생긴다.
걷기가 思를 풀어내는 방법이다. 마음밭이 가시밭인지 자갈밭인지 길가밭인지 옥토인지..마음밭을 경작하는 것이 걷기라고 나는 일단 나와 인연이 되면 걷기를 권한다. 걸을 때 혼자 걸으라고 권한다. 말없이 걷기만 할 수 있다면 둘도 좋겠고 셋도 좋겠지만 홀로 걸어야 자신의 밭경작을 할 수 있다 득음은 같이하지만 걷기를 혼자하라고 권한다. 인생은 홀로왔다가 홀로간다 같이가는 것이 있다면 글과 소리다. 그대의 가장 가까운 도반은 그대의 숨이 만드는 소리이고 그대의 말을 만들어내는 글이다. 말과 글외에는 그대와 같이할 수 있는 진정한 벗은 없다. 말과 글을 빤나할 수 있으면 너는 덤으로 빤히 보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차게 살아가는 출발은 말과 글을 빤나하는 것이고 말과 글을 빤나하면 살아가는 날들이 날이갈 수록 빤짝빤짝할 것이다.
어지간히 왔다 생각했는데 팔정도에서 빤나를 만나면서 이제 빤나단계인가 한다 빤나가 빨다가 되고 빨다를 오염된 무엇을 씻다가 되는 것이지. 말을 빨다가 말빨이 되는 것이고 글을 빨다가 글빨이 되는 것임도 알게 되더라. 말을 빨기위해서 한글경을 하고 글을 빨기위해서는 파자를 하고 어원을 알알이가 나는 것을 빤나라고 하는 것이겠구나 내가 잘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내 멋대로 아리랑 내 멋에 겨워 시원하게 온통으로 불러내기위하여 득음을 한 세월이 30년이 넘었다. 내가 온통으로 부르는 아리랑은 듣는 너도 시원해지는 힘이 있지 빤나 빨리어...빨다..빨은 발발이다. 활발발하여라 걷는 것도 활발발이고 손뼉치는 것도 작작 짝이다. 작작해라 짝해라이다. 발작에서 빨짝이 되도록 걷고 손뼉치고 한글경을 하고..해봐라..모든 것은 출발이 중요하다. 그대가 그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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