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영생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청향고은 2020. 9. 21. 09:53

영생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 문장, 도상圖象이다. 글은 상象이다 무엇을 보고 그린 그림에서 출발하여 전점 간략화된 기호가 되어 지금 우리 앞에 도착하고 있는 것이라 처음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글의 원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글공부다. 그림이 글이 되면서 담은 수많은 정보들을 사라지고 압축되었거나 변형되어서 첫 그림을 찾아서 대조하여 보지 않고서는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글공부를 하는 이들은 글의 원형을 찾으려 하고 갑골문이나 쐐기 문이나 설형문이나 녹두 문이나... 첫 글을 찾으려 한다.
태어나 탯줄을 자를 때 첫울음으로 '소리'를 열었듯이 몸의 움직임을 그린 첫그림들이 글자의 원형이 되었다 고 본다. 자연을 그린 그림을 상형이라고 하는데 이 글은 지구인 누구에게나 소통되는 원형이라고 본다. 물론 상을 그려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상을 쓰는 사람에 따라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나는 동북아시아에 속하는 한반도에서 태어나 한글과 한자를 중심으로 언어체계를 구축한 문화권에서 살아왔고 살고 살아갈 것이다 한국은 말과 글이 같은 글자를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쓰기 때문에 한글을 쓴다는 이유로 천손민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글과 말이 다른 문화를 생성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이민족이라고 하거나 이방인이라고 하였다 즉 글과 말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라는 뜻이지 그 외의 다름은 없다
한글을 쓰면서 말과 글이 같음을 모르고 살면 그것이 이방인이고 이방인이지만 말과 글이 같은 글자를 알아서 살아가면 그게 천손민이고..그런 것이지   
 
말은 숨이 드나들어서 살아있는 것이라면 글은  살아있는 무엇을 설명하기위하여
살아있는 이가 그린 그림이나 몸짓을 서로 약속을 하여 정한 象이라는 것, 글자를 창힐蒼詰이 만들었다는데 창힐을 그린 그림을 보면 눈이 4개다. 눈이 4개라는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린 그림으로서 '글'을 삼았다는 뜻이다
山(뫼)라는 그림이 되기 위해서 산의 모양을 겹쳐서 그려서 누구라도 알게 한 것이 창힐의 글자이다. 글은 그림이다. 글을 보고 그 그림이 어떤 뜻인지 누구나 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그대가 글을 보면 그 글이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한글을 쓰면서 한글을 모르는 나라가 한국이다. 글공부, 즉 글의 원그림을 찾아서 대조하는 공부를 하여야 언어 이해력이 생기고 모국어의 가치도 누릴 수 있는데 문장을 보고 읽고 하는 공부부터 시작하여 뿌리 공부는 하지 않았으니 뿌리 없는, 즉 근본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문화력은 글을 아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 글을 자기가 모르는데 어떻게 문화를 만들겠는가?
文化라는 말이 글의 첫 그림 찾기다. 化를 되다고 하는데 글월이 된 과정을 아는 것이 문화생활이라고 하는 것 
 
말은 입에서 만든 것이고 글은 눈에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글눈이 어둡다고 하고 말귀가 어둡다고 한다. 글은 눈이 말은 귀가 만든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말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은 감각에 따라 달라진다
글을 보는 눈이 맑아져서 글의 원형을 마주하게 되는 것을 천안 통이라고 한다
말을 듣는 귀가 맑아져서 말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는 것을 천이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몸짓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육신 통이라고 한다 
 
글이라고 하지만 본디 글월, 즉 달이 가면서 그리는 모양, 달이라는 것을 Moon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歲月이라고 하듯이 바람이 지나가면서 삼라만상을 흔드는 모양이다. 사계절을 歲라고 하고 그 흐름을  달達이라 하였는데 외연의 흐름을 몸이 인식하는 체계를 肉이라 하고 그 육을 月과 같이 쓰다 보니 세월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철의 흐름을 그려놓은 것이 글이고 그 글이 압축된 것이 달력(태음력, 문자력)이고 양력(태양력, 숫자력)이다. 달력을 象이라 하고 양력을 數라 하여 문자와 수를 상 수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에 담긴 에너지를 게마트리아, 상에 담긴 에너지를 카발랴라고도 한다. 그대가 가방끈이 제아무리 길어도 박사학위가 세계 최다라고 해도 그대가 글과 말의 원형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말을 해도 그 말의 출발 자리를 모르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것이고 글을 쓰고 첫자리를 모르는 글이라면 지구 도서관이란  도서관을 다 채울 만큼 문장을 나열했다 해도 한 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의 아는 것이 뭐냐 물으면 '모른다'가 답이다. 나 역시도 '모릅니다'가 답이 되더라  하늘이 물으시는 것이나 땅이 물으시는 것이 첫소리 자리가 어디냐 첫 그림이 무엇이냐..부터 시작하시니까.. 그런데 첫울음 자리는 알고 첫 그림 자리도 이제 아는데 그다음부터 그 첫울음과 첫 그림을 어떻게 쓰는 것이 본성과 생명을 아는 길을 만드는 것일까를 물으면 모릅니다.. 다. 첫울음 자리를 찾느라고 소리선을 열심히 했는데 첫 글 자리가 단동 10훈에서 풀리더라 불 아불아 시상 시상 섬 바 섬 바 죔죔 곤지 건지 짝자쿵 짝자쿵 도리도리 어비 어비 아함아함 질라래비훨훨 아... 
 
불 아불 아는 좌우로 몸을 흔드는 것이다 시상 시상은 앞뒤로 흔드는 것이다  이 동작은 숨을 의식적으로 하기 위하여 자세를 만들 때 하거나 천자문을 읊을 때 예전에 서당훈장님과 학생 사이에서 하던 행동이다. 아기를 좌우로 흔들어주거나 앞뒤로 흔들어줌으로 균형감각을 익히게 하는 훈련이었다는 것이고 이 훈련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고.. 섬 바 섬 바는 발을 이용하여 하는 움직임의 전부다. 발이 땅을 딛고 서기 시작할 때 섬 바 섬 바를 가르쳐 걷는 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행동이다 죔죔 곤지 건지 짝자쿵... 은 아마도... 멀어진 행동일 것이다. 몸이 불편하면 누군가가 권하게 되면 아하.. 하고 하게 되는 훈련에 속하는 것으로 죔죔은 해보면 알겠지만 심장과 연결되는 근육을 활용하는 방법이 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다. 몇 번은 쉽지만 반복하여 백번을 넘겨보면 아하.. 이거 상당히 고난도 훈련이구나.. 하게 된다
도리도리도 아함아함도 어비 어비도.. 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나.. 첫 글공부가 단동 10훈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글의 첫걸음은 불 아불아.. 에서 시작하는데 불아 불아의 짝이 아함아함이라는 것을 해보고 알게 되더라. 불 아불 아를 금선증론에서는 의식 호흡으로 풀무 호흡이라고 하기도 하고 손풍巽風이라고 하는데 이 수련법은 천기에 속하여 함부로 전하지 못하게 한 정보라고 하더라 
 
지금 금선증론을 다시 보고 있는데 빛 결과 나와 용자 도반이 그동안 주욱 같이한 소리 수련법에 대하여 가지런하게 설명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지. 호흡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은 숨을 들이쉬어서 불을 붙이듯이 부채질을 하는 호흡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몸에 불을 붙여서 기름을 짜기 위한 출발이 되더라는 것이지 영생을 얻으려면 무얼 할까요.... 금선증론을 보고 숨을 풀무질하고 풀무질하면 나오는 소리를 통하여 땀이 나도록 눈물이 나도록 겟세마네 기름 짜기를 해야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불을 밝힐 기름이 생겨서 불이 붙으면 자등명 법등명 할 수 있게 된다. 글이라는 등이 있고 말이라는 심지가 있고 기름을 만들어낼 숨이 들어가면서 의식 호흡을 통하여 몸에 있는 기름을 글을 비춰는 불을 켜도록 하는 것.. 글은 어둠고 말은 바람이 불면 훅 꺼지는 찰나적인 불인데 그 말을 만드는 숨을 소리로 달구어 기름을 만들어가는 것을 금액 환단 옥액 환단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 선가의 비밀은 숨을 어떻게 달구질 하여 땀이 되도록 눈물이 되도록 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 땀이 땅이 떨어지는 피방 울같이 된다는 것이 선가 수련의 비결이라는 것이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로 다시 전해지는 것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더라..이다      
 
죔죔 미야 주먹을 쥐고 펴고이고 곤 지건 지는 손가락으로 장심을 꼭꼭 찌르기이다. 짝자쿵은 솝뼉치기이고 도리도리는 목 돌리기이고 아함아함은 순설후음이고 어비 어비는 아직 내 언어로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업이 펴진 말이라면 순설 후에 대응하는 아치음 훈련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질라래비 훨훨 아는 팔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이라고.. 저쪽에서는 천인 천수 마하무드라라고 설명하는 것이고...

 

공부마당이 피와 기름이 가지고 있는 정보다 
 
피에 생명이 있다고 했다. 물에는 본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렸다 물은 수소가 산소와 더해져서 생성되는 것이다.
산소족 원소 주기율표 6B족에 속하는 원소 중 산소(O, 8)·황(S, 16)·셀렌(Se, 34)·텔루르(Te, 52)·폴로늄(Po, 84)의
다섯 원소의 총칭 철 Fe는 8족에 속하고 루테늄Ru 44, 오스뮴Os 76, 하슘 Hs 108 네 원소로 이뤄진다 
 
피는 수소가 26번을 융합하여 Fe철이 되어야 생기는 가장 무거운 원소로 빅뱅으로 나타나는 원소가 무게를 더하면서
더 이상 무거워질 수 없는 원소가 되었을 때를 철이라고 하였고 중력을 생성하게 된다. 철Fe는 수소부터 철까지의 과정을 다 포함하고 있게 된다. 한방울의 물이 바다에 도달하면 소금물이 되는 것이지 소금물인 바닷물에서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고 철원소에서 팽창되면서 별들이 태어나게 된다고 하는데 별빛을 통하여 우리는 별을 인식하는데 별빛이 플라즈마다. 전기에너지다. 별이 발생시키는 전기에너지 별은 중력 즉 철원소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별이 빛을 발생시키는 것은 별로 모은 원소를 용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 전기가 발생하게 되는 것,
소금물을 용해하면 전기가 나오게 되는 것 물을 마시고 그 물이 음식을 통하여 섭취된 소금을 통하여 피가 되고 그 피를 용해하면 전기가 발생하여 체온을 만들어 체온을 유지함으로 생존을 흘러가게 한다 체온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숨을 쉼으로 산소를 당겨들여서 몸을 돌아 나가면서 소금물을 용해하여 전기를 발생시키는 풀무질을 한다고
빛과 소금이 되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빛은 산소, 소금은 철.. 몸을 운행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설명하는 것이다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산소 입으로 먹어서 체온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소금 빛과 소금이 되어라가 아니라
몸은 빛과 소금으로 생명을 만들어 흐르는 존재라는 설명이다
  
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물이 생성되는 이치와 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기름이
관여하기때문일 것이라고 나 홀로 생각하여본다.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와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다섯처녀
예수의 화두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어제 즉 등도 있고 불을 붙일 심지도 있는데 불을 붙여도
불이 계속 비출 수 있는 기름이 없음이라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 그대의 몸이나 나의 몸이 등이다
몸에 체온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음식이다 경전이 말하는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은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음으로 유지되는 생명이 대상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어주는 공기를 먹음으로 유지되는 생명이 대상이다 그래서 유한한 육체가 영생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했다 영생이라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물정보)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피와 기름정보)를 아는 것이다. 육체는 지식을 담기위한 보병이라는 것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발우를 미래불을 위하여 물림하고 기독교에서는 성혈을 받은 성배를 재림예수를 위하여 물림하는 이야기..영생이라는 것은 유한한 몸을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한이 담는 지식의 성장이 씨앗에서 열매를 거쳐
다시 씨앗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보의 흐름이 나에게 닿아서 내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발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영생이된다는 것이다.   
 
몸은 같은 원리로 이 땅에 발현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해지는 대상이 몸이다 몸에 싣고 있는 정보를 보내심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는 저의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태안의 정보를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태 밖에서 발현되는 정보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내가 이해한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창조주이고 이 창조주가 창조하신 본성을 예수라 생명을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가는 태안의 세계를 추구한다고 내가 이해한다
9년 면벽참선이라고 하는 일을 통하여 9달 태안에서의 의식을 더듬어가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29세에 출가를 하거나 공생애를 시작하는 원리가 태안의 280일을  28년으로 잇기를 하여 태안의 생을 28년간 복기를 하고 나서 그 삶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출가라고 하거나 공생애라고 하거나 하게 되고 출발나이가 29세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29세에 출가(?)하여 60이 넘은 지금에 비로소 예수가  마주한 죽음이 내가 알고자 한 죽음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예수에게 당신의 화두인 '죽음'은 과연 무엇의 죽음이였습니까를 물었더니 내가 젊은 시절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과연 나라는 존재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였다면 예수는 본성(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불성)을 밝혀 하나님 나라를 임하시게 하는 길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궁구한 것이였고  길을 만드신 것이 예수의 사명이었다는 것이지. 붓다에게서 밝혀진 본성을 비출 수 있는 방법을 딛고 예수가 자기의 길을 열어서 불을 붙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 
 
붓다가 사성제 팔정도라는 인류구원프로젝트를 발견하여 자기자신을 알고자 하는 이들의 가이드가 되어서 길을 열어주었지만 그 길은 붓다의 길이었을 뿐 그 길을 추구한 이에게는 거기까지만을 안내해주고 그 다음은 스스로 길을 자등명 법등명 하여 자기 길을 만들어내라는 것이라는 것이고 예수도 붓다의 길을 따라 길의 끝에서 그 다음의 길을 이어가려면
어떤 방법을 통하여 갈 수 있는 가를 추구하였다는 것이고 붓다가 밝혀준 길까지는 그 불을 따라 걸으면 되지만 그 이후부터는 자기의 등에 불을 붙이고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니 붓다의 불에 의지하면 붓다의 길에서 멈추게 된다는 것
예수가 기도한 것은 붓다의 등불을 통해 밝혀진 길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고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니 길을 이어가기위해서는 등에 불을 밝히어야 하고 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고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겟세마네기도였다는 것이지 그래서 예수는 기름을 준비하여 붓다가 멈춘 지점에서 자기의 길을 내어 자신의 길을 간 것이 비아 돌로로사와 십자가의 길이다 
 
비아 돌로로사는 눈물의 길이라고 한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길 붓다의 추구와(사성제 팔정도)와 예수의 십자가가 어떻게 다른가? 붓다는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가 존재하기 이전을 추구하여 태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갔다면 예수는 태안의 삶을 십자가로 지고 그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내가면서 십자가를 벗어나는 길을 갔다는 것이 내 견해다.
에수는 마리아의 태에서 한 세상을 살고 마리아의 태안에서 살은 한 삶이 마리아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채무관계를 형성하였다는 것이 예수가 설명하는 자기십자가라고 본다. 예수가 십자가를 진 이유가 설명되는 것이지 
 
엄마의 자궁에 본성이 잉태된다는 것은 엄마의 생명을 통하여 본성과 생명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니
본성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생명에게 빚진 것이고 엄마의 생명에서는 본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기도 하지만 기회를 부여받은 것에 대한 값으로 생명을 공양함이기도 하는 것이지 씨精이 없는 밭으로서의 情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정자를 받아 기룸으로 얻게 되는 정보를 자궁에 기록하게 됨으로 밭을 대여한 값으로 받게 되는 셈인데 이것을 도마서에서 여자로서 남자가 된 자라고 하게 되고 태안에서 생명을 공양받아 본성과 생명을 하나로 하게 되는
과정을 남자로서 여자가 된자라고 설명을 하게 된다.


남자는 본성을 추구하고 여자는 생명을 추구한다 본성은 물이고 생명은 피다. 물과 피를 하나로 하게 되는 것을 기름같은 성령이라고 내가 이해한다  왜 예수가 기름부음받은 자인가를 궁구했더니 본성과 생명이 하나가 되어 몸이 된 과정을 밝혀가기위해서 필요한 것이 기름이라는 것이고 태어나면 남자와 여자로 다시 객관화되니까
태안에서의 과정에서만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만나서 신업을 공부하면서 열리는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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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화두 
 
예수라는 이름에 부여된 뜻
저의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다
이 이름대로 살기위하여 예수는 어떤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저의 백성은? 저의 죄는 ?
무엇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구원하는 것일까?
예수가 저의 백성을 정하는 잣대는?
저의 죄라고 하게 되는 기준은?
구원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앞의 글에서 붓다의 사성제 팔정도는
붓다가 살아계실 때 빛이였다
붓다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여시아문..의 시대가 되면서
붓다의 불을 꺼지게 되고, 붓다의 숨이 멎을 때
붓다가 일으킨 불도 꺼진 것이고
살아계신이 아니라 이와같이 들었다..가 되는 것에서
붓다의 육성이 아니라 붓다의 이야기를 다른 이의 육성을 빌어서
전달하게 되면서 붓다의 불은 사라지고
다른 이의 육성의 불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붓다의 육성, 예수의 육성을 듣고
싶어하게 되는 소망들이 생기고
그 간절함을 따라 자기가 바라는 붓다나
예수를 환상이거나 꿈이거나..
에서 만나는 체험도 있고 간절하게 부르짖다보면
붓다의 생전의 성문에 닿기도 하고 예수의 생전 성문에 닿기도 하여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붓다의 육성을 들었다거나 하게 된다는 것이지.
예수의 육성이나 붓다의 육성을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는가?
다만 붓다의 예수의 육성을 사모하는 간절함이
당겨오는 정보에너지이니까
그 체험을 하는 이들에게는 살아계신 붓다,
예수를 체험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진인사하고 대천명이라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이지 
 
나도 29, 예수의 육성이나 예수를 만나고자 극진하였더니
꿈에서 예수를 만났는데 예수는 아무런 말씀이 없이 내 곁에서 서서
내가 가야하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셨다
나와 나란히 선 곳이 강가였고 저 건너편으로 가라고 지시한 것이였지
그 꿈을 딛고 내 기도가 예수에게 닿고 있구나..라는 감동에
더 극진하게 기도하게 되고 열심으로 예수를 알고자 하였다 
 
어제부터 예수를 알고자 부르짖던 시절의 흐름이 다시 반복되는지
찬송가를 불러댄다. 29살 때의 나를 복기하면서
당시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성장하였는지를 마주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딛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기름을 만들어
내 발끝을 비추면서 길을 따라 오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명제다.
영생,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구..이제
당시는 캄캄하였으니 이제는 환하게 보이는 것
점점 더 명료화되는 것의 즐거움... 
 
붓다사후 붓다의 불이 꺼졌지만 예수가 그 불씨를 
이어 되살려내는 길을 찾아내었고 예수 승천후 성령이라는 
에너지가 불을 붙이도록 길을 열어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이 응답하여
불을 붙여주시는 것이고 나는 기름 준비를 하여
그 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이라고 하는 것..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자..
기름을 준비하여 불을 꺼트리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
예수를 본받는다 닮는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등등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기름을 늘 준비한다는 것이고
예수를 닮아간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 즉 본성을 
맑혀가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본성은 태어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공간정보를 본성, 시간정보를 생명으로 분류하여
공간을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시간을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을 하는데 시간은 공간이 있고 나서
생성되는 것이니 시간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을 알고자 하는 것이 존재의미라고 하게 되는 것
붓다를 예수가 이어 본성을 밝혀가는 길을 갔듯이
내가 예수의 불을 받아 본성의 길을 밝혀가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것이고
예수를 이어 예수를 내 몸에서 살아나게 하는 것이
생명을 알아가는 공부라고 하는 것
붓다는 예수에게서는 과거형이였지만
예수가 붓다를 현재형으로 살려내고
나에게 예수는 과거형이지만 내가 예수를 현재형을 살려내는 것이
예수의 재림이며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붓다를 예수가 품고 예수가 나에게 닿아 나는 예수를 품고
생명의 로드를 이어가는 것 그래서 어디에 닿으려 하는가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다.
예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빛이였다
예수의 숨에서, 예수의 말씀에서 예수의 행동에서..
그런 예수를 품으면 내 숨에서 내 말에서
내 행동에서 예수가 빛나게 되는 것이
내가 주안에 주가 내안에..가 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생이라고.. 
 
붓다의 사후 붓다의 제자들은 붓다의 이름을 빌어서
저마다 자기장사를 시작하였다. 남자들의 고유한 특질은 
저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기때문에 자기앞에 있는 이를 밀어내고
저마다 자기가 그 자리에 서서 독존이 되고자 한다
정자의 특성이 2~5억개의 정자가 발출되지만
한개가 난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듯이 
 
힘이 약할 때 아래에 있지만 자신의 힘을 기루고 나면 
앞에 있는 이를 밀어내는 것, 살부살조..가 나오는 이유다 
 
불을 밝힌 이가 돌아가시면 그 불은 꺼진다. 
예수가 붓다를 배움하였지만 예수에게 내려와 닿은 붓다의 정보는
붓다가 밝힌 불이고 붓다가 밝힌 그 불이 자신의 깨달음이 되어야
불씨가 번져 나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고 꺼진 불을 어떻게 되살려 내어야 
붓다의 불을 이어 그 다음의 여정을 밝히게 되는 것일까? 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추구였을 것이다고 본다.
밥을 먹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본성, 즉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추구의 대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영생인데 흐름의 대가
멈추고 있음이 죽음이라고..
예수는 아버지를 추구하였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추구한 것이다.
문자로 전달되는 정보가 아니라 살아있는 육체에서 대를 이어
자라가는 지식을 추구한 것이라고 본다
몸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육체에 담을 수 있는
본성의 정보는 그릇을 바꿔가면서
영생의 지식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내가 본다.
육체도 대를 이어가는데 본성도 대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붓다의 대를 이은 것이 예수이고 예수의 대를 잇고 있는 것이 나이고... 
 
孝라고 하는 것이 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십계명의 5계명이다 다섯째 계명이라는 것이 土이다.
공간이 낳은 시간이 子(알)이다
공간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하고 정자라고 하고 숨이라 하고 
시간을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고
난자라고 하고 소리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하는데
시간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 '그림'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숨이고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숨을 통하여 나오게 되는 소리와
그 소리가 낳게 되는 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방법이다
숨과 소리와 말의 관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土丿子로 이뤄진 효도할 효는
본디 어떤 뜻일까? 土는  흙이고 오행을 표시하는 기호이다
성서의 언어로 하자면 붉다이고 아담이고 공간이라는 뜻이다
창조 전 3일의 창조를 압축한 기호이고 
丿은 창조의 전과  후를 나눔하는 것이며 子는 창조 후
3일의 정보로 시간이라고 내가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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