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

방언 Glossolalia 또는 영언 spirit Word 혹은 신언 God Word

청향고은 2023. 6. 20. 16:02

 

방언 Glossolalia 또는 영언 spirit Word 혹은 신언 God Word

우주공간을 흐르는 파동Wave이 주파수(Frequency)에 따라서 생성되는

에너지 현상

 

빛은 파동인데 주파수 즉 입자가 되는 현상은 무언가에 닿았을 때 충돌에너지일 때다

우주공간은 파동으로 이뤄져 바다Sea라 하는데 수소바다에 바람이 일렁이면 결結이 생기고 소리가 나온다고 하여 태초에 말씀(sound)이 있었다고 하였다. 결이라는 것이 結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결 闋(문 닫을 결) 門癸로 이뤄진 한자를 찾아 써야 하겠구나. 闋= 門癸라는 것은 癸는 '천상분야天열차지도癶'의 흐름이라고 하던데 즉 열두성좌가 달려가는 궤도를 말하고 별소리를 星音이라 하든지 그것이 인체 몸으로 들어오게 되면 소리聲가 된다고 하는데 별빛 star light이 흐르는 힘을 몸에서 드러내는 것이 소리라고 하더라. 신의 음성을 신탁이라고 하는데 별빛의 흐름을 몸에서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탁을 받는다는 말은 몸身에서 기운을 감지托한다는 의미다. 비물질인 기를 물질인 몸이 느끼는 것을 신탁이라 신기운이다 신내림이다 신받는다, 신병이다.. 등등의 무속이나 샤머니즘의 언어로 표현을 하지만, 의학용어 현대언어로 신경이 약하다 즉 신이 다니는 길이 문제가 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가 된다.

 

신경이라는 한자가 神經, 즉 신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니 신경이 약하거나 막히거나 하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 신경질이난다이다. 막혀서 통하지 않으니 답답함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것을 일러 신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병이라고 하지만 신경, 즉 신이 다니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지. 의학이 찾아내지 못한다고 이상이 없다고하지만 의학은 인체의 극히 일부분, 즉 3%로 정도만 해독한 지식이라는 것을 알면 의학진단만 믿을 일이 아니다.

 

의학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신경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가 무속에서 말하는 신병이다. 원인모를 병이라고 하는데 신경에 문제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지 신경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신경의 문제를 만든 것이 무엇인가 현대의학에서나 종교에서나 철학에서 찾아내지 못하니 무속,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세계, 즉 원시정보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무당 무속 미신.. 들로 말하는 영역이다. 미신이라고 과학시대에서는 천시하지만 과학도 추론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에서 미신이다. 미신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지 과학으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없다는 것이 아니다 과학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과학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정보가 더 많다는 것이지 과학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빙산冰山의 일각이고, 물속에 감추어져 있는 구각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무속언어이거나 무당의 굿판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

 

예수가 과학언어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비유로 말하지 않으면 말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비유로 말씀했다는 이 말을 그대가 어떻게 이해하는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의 상황에 따라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언어, 즉 영으로 말씀을 했다이다. 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누가 어떻게 풀어내어도 좋은 정보다는 것이지. 성서는 누구나 풀어내어 자기만의 옷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맞다고 고정시키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하는 것. 시대를 따라 해석도 달라지고 처한 상황에 따라 풀이가 달라지는 것이 성서의 비유라는 것이고 그래서 이현령비현령으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가능하다는 것이 영으로 기록된 것이니 영으로 풀어라는 말씀이라는 것이지.

 

영혼의 개념이 정리되니 영으로 기록 되었으니 영으로 풀어라는 말이 해결이 되네

기氣의 세기綱를 몸에서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신급, 신력, 신장... 을 파악하는데 오관 얼굴에서 느끼는가 오장육부 어디서 느끼는가에 따라 기의 위치와 가치가 파악이 된다.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기氣이고 오장육부에서 느끼는 것은 운運이다. 기는 누구나 파악하는 객관적인 상태로 지식적으로 습득하는 앎으로 보편적인 것이고, 운은 누구만 파악하는 주관적인 삶으로 내밀한 정보라고 하는 것이다. 몸으로 몸을 읽는 것을 운을 파악한다고 하는 것이고 신언서판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을 기세를 파악한다고 하는 것이다. 기세를 파악하는 것과 울력을 파악하는 공부를 합하여 기운을 공부한다고 하게 되는데 기운공부를 문무겸비공부라고 하는데 이 공부는 절대로 쉽지 않다. 신의 길을 간다는 말을 하는데 나로서는 예수의 영혼을 배우고 익히는 길을 가는 제자의 도라고 하게 된다. 예수의 영혼과 내 영혼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기운을 파악한다는 언어로 나는 설명을 하는데 육인 나의 운이 영인 예수의 기와 서로 소통을 하는 과정을 영혼공부 기운공부..라고 하는 것이라고.. 신의 제자로 신이 되는 길을 간다고 말하는 제자의 길이라는 것이지.

 

제자의 도, 십자가의 길..참말로 오랜만에 쓰는 정다운 언어구나. 기독교라는 마당을 떠나면서 그 세계의 언어도 거리를 두었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나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가 성서언어인 것은 어쩔 수 없구나.. 태어난 오리가 맨 먼저 움직이는 것을 엄마로 안다고 하는 것처럼 내가 태어나 언어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입에 올린 언어가 성서언어였으니 내 영혼이 성서인 것을 이제 인정하게 되는 것. 예수의 영혼이 무엇이었을까 확인하고자 하는 것도 내 도전이고 예수의 영혼은 대제사장의 가문을 외가로 하고 유대의 왕이던 핏줄을 마리아로 하여 왔으니 그의 영혼은 가장 빛나고 높은 별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의 출생은 그의 별을 보고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별을 목성이라고 하던데 금성이 목성을 지나가는 궤도의 에너지를 타고 왔으므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게 된다는 것이란다. 목성이 세성이니 열두 달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고 열두 제자로 설명되는 것이고..

 

기운공부를 명리공부라고도 한다네 언어에 갇히지 말라

명리라 해도 좋고 사주라해도 좋고 음양이라 해도 좋고... 생사라 해도 좋고.. 그러하다.

 

폐肺에서 느끼면 서방금기가, 간肝에서 느끼면 동방목기가, 신장에서 느끼면 북방수기가, 심장에서 느끼면 남방화기가 그리고 비장에서 느끼면 중앙무기토에너지상태구나 파악이 된다. 기를 오관과 오장에서 인지 인식하게 되는 것을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신다고 하는 것을 癸라고 하고 그 계가 드라는 두 문을 실버게이트, 골드게이트라 한다. 식도에서 항문으로 나가는 길을 실버게이트라고 하고, 임맥에서 독맥을 따라 올라와 언어로 나오는 길을 골드게이트라고 하는데 이 골드게이트를 골드문트와 나르시스에서 골드문트 즉 황금입이라고 했다네. 나르시스야 당연히 입으로 들어가 땅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지. 전도서에서 은줄이 풀리고..라고 설명을 하는데 은줄이 풀린다는 것은 오장육부가 긴장을 더 이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으로 생을 영위하는 것이 은줄乚窋이다. 은줄을 똥줄이라고도 하지.

 

은줄은 태변을 다 내어놓음으로 출발하고 금줄은 울음을 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식을 실어 나르는 줄과 소리를 실어나르는 줄을 두줄로 하여 이중나선을 그리면서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다.

 

산도를 밀고 나와서 울음을 울었다는 것으로 그대와 나는 금줄을 잡고 인생을 시작하고 태변을 내어놓아 오장육부의 기능을 활성화함으로 은줄을 잡은 것이다고 이해한다 그것 외에 내가 나의 금은 줄의 태초를 인식할 객관사실이 있는가?

 

수정란에서 태아가 되어 자궁에서 나오는 과정은 너의 과정을 보고 인식하거나 아하 하는 것이지 주관의 객관화 즉 내가 나를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너를 빌어 나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세계가 태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이어서 붓다는 네가 없이는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태안의 세계는 ‘공’이라 했다. 내가 나를 인식할 기제가 없다는 뜻으로 ‘공’하다고 한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네 너 없인 내가 태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지

태안의 세계는 너의 정보에 의지하여 알아가는 것이다.

 

너 없인 안된다. 너의 존재값이다.

 

예수의 영혼 즉 빛이 있었다 말씀이 있었다는 태어나서 체험하는 것은 너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태어남에서 출발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너와 분리되면서 생성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너의 개입은 배제된다는 것이 예수복음의 출발이다

 

붓다는 너 없이는 나를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예수는 너에게서 나와 탯줄을 자름으로 체험되는 나만의 울음에서 출발한다 이 자리가 첫자리이고 근원이라고 하거나 근본이라 태초라 하는 것이다. 그대의 태초와 나의 태초.

 

태안의 세계는 부처님이 설하시고 태밖의 세계는 예수님이 가르치신다는 것

내면을 추구한다고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대고 영혼을 추구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잡으면 된다. 여태 내면이라는 개념도 혼재되었다면 영혼의 명료해진 만큼 내면도 태안의 아홉 달이라는 것으로 정의가 되니 설명하기가 좋아지는 것이구나. 내면을 알자..라고 할 때 이제는 헤매지 말고 태안의 아홉 달을 살피라. 그리고 소리도 그런 원리로 생성되고 글도 그 원리로 생성된다. 그것을 品이라고 하는 것이고, 靈에도 品이 들어가는 이유다. 우품무雨品巫 하늘과 사람과 땅.. 삼원이라고 한다.

 

몸이 생성되는 원리를 따라 소리와 글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공부가 쉬워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래서 너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두드리는 것이지. 몸공부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고의 레벨에 올라서면 황정경이나 황제내경이나 의학공부를 하게 되어있고 예수도 공생애 삼 년에 대부분 퇴마와 치유를 통하여 자기의 정보를 전달하였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원인을 풀어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었다는 것이지

 

뫼비우스띠처럼 팔자처럼 공부하다 보면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되는 원리를 알게 되면 안을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나 밖을 설하신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같은 것이구나 알게 되는데 불가에서 머리를 밀고 출가를 하는 것은 태안으로 회귀하고자 함이고 예수의 가르침 겟세마네기도는 탯줄을 자르던 첫울음자리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한쪽에선 태안으로 돌아가려 하고 한쪽에서는 첫 울음소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하여 불가家의 분위기는 적멸보궁이라 한다면 예수가家의 분위기는 산부인과의 출산현장과 같다는 것이지 그래서 서로 상극처럼 보이지만 현장을 태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일이나 태안에서 나와 탯줄을 자른 자리를 찾는 일이나 같은 주파수 파동이다

태안으로 들어가는 불가는 침묵이 금이 되는 것이고 첫울음을 울면서 시작하는

기독교는 울고불고 떠들어대는 것이 말씀의 육신화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예수가의 길을 따라온 사람이니 늘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태어나 살아가는 현장을 다룬 예수 살아가는 현장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이기는 자 남는 자가 되는가를 가르치신 것이니 나는 이미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현장 앞에 서있으니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퇴행하여 태안으로 회귀하는 것은 상상에선 가능하겠으나 실상에선 불가능함으로 예수의 퇴행은 거듭남이라는 개념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태초에 있던 말씀의 문제구나 하는 것에 닿게 된다

 

오순절 성령사건이 바로 태초의 말씀사건 첫울음을 스스로 반복하는 거듭남이다는

설명을 하고자 이리 이야기를 끌어왔다. 방언을 신의 말이라고 하거나 태초의 말로 뜻이 없는 말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신의 말을 신생아의 울음소리라 설명한다

 

말은 말이로되 뜻이 없는 다시 말해서 한자로 표기가 되지 않는 말이고 흔히 혀가 꼬여 말이 되지 않는 때₩&@% 등으로 표기하는 말이다

 

불에 혀 같은 것이 갈라져 각 사람에게 임하여 나타나는 말이 방언이고 마가 다락방에 모인 일백이 십 문도가 모두 다 알아듣는 말이라고 하는 그런 말이 방언이라고 사도행전에서는 설명한다. 첫 울음소리는 모든 이들의 공통주파수지 않겠는가? 첫 체험은 누구나 같은 것이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지

 

마가다락방에 모여 오로지 기도에 힘쓴 일백이 십 문도에 대한 설명으로 언어가 다른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예수의 제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내 설명으로 풀자면 일백이십이라는 숫자는 12의 확대로 일 년 열두 달의 팽창수이고 십천간십이지지 1012이며 22 수비라고 이해한다.

 

마가다락방에 일백이 십 문도가 모였다는 이 말에 그대의 이해력이 필요한데 성경은 영으로 기록된 것이니 영으로 풀어야 한다는 공식을 기억하면 마가가 사복음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것에서 첫자리를 의미한다. 마가에서 가지를 치고 재해석되어 기록된 것이 마태 누가 요한복음이니까

 

마가다락방은 어디인가를 찾으면 나는 태초 꼴이 갖추어진 자리, 수정란이 착상란이 되어 꼴라骨卵이 되는 64일의 자리라고 본다. 주역에서는 64를 수화기제라고 하여 인체의 기본구조가 갖추어짐으로 설명한다

 

나 역시 마가다락방을 그 원리에 따라 해석한다. 꼴값을 갖춘 자리를 마가다락방이라고 하고 일백이 십 문도가 모였다는 것은 열두 별자리 또는 십이지지의 정보가 모두 모였다고 보는 것이지

 

수정란에서 꼴라니 된 정보가 일백이십 문도 성도 또는 천문도라는 설명이고 마가다락방은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가서 신탁을 받는 지성소라고 해석된다. 지성소안에 들어가면 그곳에 그려진 거수기 천문도 천상분야열차지도라고 하였는데 예수가 가상에서 엘리엘리라 마사박타니를 외쳤을 때 지성소의 휘막이 찢어졌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비밀의 봉인이 해제되었고 누구나 회막에 그려진 별자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위대한 카발리스트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성서를 보는 눈이 깊어질 것이고 예수의 영혼은 카발랴세피로트(사주팔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예수를 따라오다 보면 카발라에 닿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카발라가 예수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영혼이 카발라 세피로트이면서 동양에서는 내경도로 나타난다는 것이지

배속의 태아와 태어난 아기가 처한 공간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 태아는 엄마가 전부여서 부처님 안에만 있으면 평화지만 태어나 젖을 먹고살아야 하는 아기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에 들어선 것임으로 살아남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익히고 힘을 기른다는 것이다

 

불가와 예수의 현장이 그렇게 다르다 이것을 알면 기독교는 왜 고함을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하는지 알게 된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자가 예수를 따라가는 자이기에 힘을 기루어야 하기에 그러한 것이다

 

내가 고함 고함을 질러가면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는 것도 예수의 영혼을 공유하기 때문이고, 그러하기에 어디를 다니던 이름 부르기부터 시도하라고 가르친다. 전쟁터, 즉 삶의 현장에 나설 때 내 이름을 깃발에 쓰고 그 기치旗幟를 들고나가야 내 싸움이 되고 내 공력이 되는 것이기에 오늘도 싸우려 간다. 화잇팅!!!

 

이 글을 두드리고 낙산루로 가서 소리 한 자락 매기고 새끼손가락 살점을 날려가면서 풀을 뽑고 효목동에서 후프 돌리기 하고 돌아와서 오늘의 글을 다시 정리하려고 작업

경자의 연락을 받고 통화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 제주에서 보낸 떡을 나눔 하자고 잠시 만나자 하여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내가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이 소소한 우연의 사건을 만들기 위하여 우주는 138억 년의 역사를 동원하여 하나의 농담을 완성하여 우리 앞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오늘이라는 프리젠트를 하루라는 포장지에 싸서 건네준 것이니 하루의 소소함이 얼마나 신비하고 멋있겠나.. 하루하루를 창조하는 우주의 농담을 알아채는 것이 삶의 빛이 되는 것이고 하늘의 긴 윙크를 보는 것이 깨달음이 되는 것이라고.. 나야 내 관점에서 하루를 받고 해석하고 누리고 그리고 스토리로 기록하고 하는데 나의 이 관점이 경자에겐 황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그러할 것이다. 내 눈빛이 상당히 예리하다고 하는데 내가 내 눈빛을 알 수 없지.. 그런데 내가 쳐다보는 눈빛을 마주한 이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눈빛이 형형하다 예리하다 찌르듯하다 맑다 밝다 깊다 등등으로 말하는데 나는 내 눈빛이 장난스럽거나 온유하다고 생각할 뿐이지..ㅎㅎ 가끔 진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진지한 눈빛이 되는 것은 나도 안다.

 

혼자 걸으면서 자연을 관조하거나 바람을 음미하거나 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내 눈빛은 어떨까

 

경자가 나를 보는 관점이 있고 내가 경자를 보는 관점이 있다. 나는 일단 경자를 보는 관점은 사주와 이름석자와 신언서판인데 얼마나 사주와 이름과 서로 어울리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같은 경자년이고 월은 경자는 사월 나는 오월로 방합이어서 같은 계절에 속한다. 사주라는 객관적인 정보를 놓고 내 사주와 경자의 사주를 보면서 어떻게 꾸며내든지 풀어내어야 재미나고 싱싱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가 될까나 생각한다. 일주를 지나 시주를 써먹을 시기가 60 이후부터라고 시주받은 시기라고 하는데 일주까지는 현장에서 뛰어야 하는 에너지라면 시주는 하늘에 공양하는 에너지라고 한다

연주가 20년, 월주가 20년, 일주가 20년.. 그리고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시주영역이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시주時柱이지만 도네이션이라고도 하는데 라틴어 명사 donum은 “선물'이란 뜻이다. 여기서 동사 donare '선물로서 주다(give as a gift)가 파생하였고, donare에서 '선물하기'란 말이 나온다 도네라고 하는데 한글로 해석하면 도네廻 라고 한다네. 하여 너에게 도네를 하게 되면 언젠가는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된다고.. 하늘이 나에게 선물을 하는 것은 나로부터 선물을 받기 위한 것이 되는 것이 된다.

 

하늘이 나에게 동네하고 내가 하늘에 도네하게 되는 것이 천인통이라고 한다. 하늘과 통하는 것.

 

시를 따라 도우시는 하늘의 선물.. 인생 육십을 살면 그다음에는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하고 누리고 기뻐하고.. 그렇게 하늘이 내게 베푸신 것들을 하나씩 하늘로 돌려주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이라네 내가 받은 삶을 하늘로 돌려주는 시기를 시주가 작동하는 때라고 한다는 것이지. 육십갑자 한 바퀴 돌고 나면 하늘로 돌려주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육십이 넘으면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렇게 베푼 도네를 딛고 저쪽으로 한 걸음씩 길을 놓게 된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갈 길은 내가 만든다는 것이다. 인생 한 바퀴를 산다는 것.. 육십갑자를 산다는 것이 한 바퀴 도네이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돌아가는 바퀴에 올라서면 한바퀴 돌기 위하여 온 세월을 스스로 성적을 매겨가면서 그 성적표로 저쪽으로 건너갈 자술서로 삼게 된다는 것이지. 이렇게 살았습니다 라는 자술서를 써서 저승으로 천도(기도, 명상, 성찰)하면 꿈으로 답이 온다는 것이지. 살아온 세월을 스스로 풀어내는 과정을 꿈으로 보여주는 것이 하늘이 하는 일이란다. 나야 꿈 dream이 현실과 달리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은 꿈에서도 공부를 하고 낮에도 글을 찾아내는 공부를 하니까

 

영어가 재미난 것은 꿈을 드림이라고 하는데 '드림 供' 일상의 스토리를 밤이 되면 화경으로 보여드림이라고...

 

길을 다니면 여사님들에게 꽃가마적금을 넣어야 한다고 그래야 저승 갈 때 꽃가마를 대령해서 모셔간다고 꽃가마는 이승을 살면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수대로 꽃이 달리는데 적어도 삼천만 송이 장미는 달아야 한다고 천만송이 천만송이 천만송이 꽃은 피고..라고 했으니 삼천만 송이를 피워야 한다고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고 하였으니 내 이름을 내가 부르면 그것이 이름꽃이 되어 저승적금이 된다고... 이렇게 설명 잘하는 이가 있을까나.. 지정애여사님은 내 설명에 귀가 솔깃하셔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내 가르침이 생각나 자기 이름을 부르게 되더라고 하시더라 나는 요즘 망우당 공원의 테크를 내려오면서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서 가장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망우당공원을 지나다니고 낙단루에서 소리를 풀고, 풀을 뽑으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들을 어떻게 뽑아내고 풀어내어야 할까..라는 내 전쟁을 한다는 것이지

간단루의 주변의 풀을 뽑고 있는데 나보다 앞서 다녀가는 세미가 풀 뽑기 작업을 한 것도 보게 되더라. 한 이틀을 뽑으면 주변을 다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한 작업에 세미가 한 작업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했다. 이런 즐거움은 자기 손의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이들은 긍정할 것이다. 내가 손을 닿게 한 곳에 눈이 한번 더 가고 잘 다듬어놓으면 내 머리도 가슴도 시원하고 행복한 꽃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지.

 

운동장에서 순옥이 언니를 만났는데 길냥이들의 물그릇을 바꿔주고 있더라 나는 풀 뽑는다고 풀물이 든 손을 씻고.. 언니는 나를 만나면 나를 이뻐해 주라..라고 하시는데 자그마한 분이시라 내 품 안에 쏙 들어온다. 하여 언니를 답삭 안아서 빙 돌리기를 해주곤 한다. 이 언니를 만나면 늘 소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나가다가 개가 심심해한다고 말을 붙이고 놀고 있기도 하고 길냥이들과 대화한다고 멈추어 서기도 하고..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길을 걷고 나와 만나고 같이 웃고 즐거워하는 길인연. 최순옥언니.

 

경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윤이를 기다리다가 만나서 지윤이와 놀기를 시도하였는데 요 녀석이 간질임을 많이 타는 모양이다. 내가 어른보다 아이들을 더 좋아하는데 나와 놀아 줄 아이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어른과 놀지만 원호나 준영이 민석이들이 생각나지.. 내 안의 동자가 활발발하게 가동하게 되면 아이들이랑 아이처럼 놀게 된다는 것이지. 지윤知潤이나 지효知曉를 보면 내 안의 동심이 눈빛을 빛나며 나오는 것 같다. 순옥언니를 안고 빙글 돌려준 생각이 나서 지윤이도 안아서 빙 돌려주려고 했는데.. 까르르 하고 달아나 버렸다네. 경자와 헤어져 돌아와 글을 두드리면서 올해 유월이 나에게는 참 새롭구나 한다. 이름도 개명하고 공부도 예수의 영혼이 카발라 세피로트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고.. 공부의 출발 때 나의 가이디언으로 나타나 저쪽으로 건너가라고 하시던 예수가 이제는 이쪽으로 건너오자.. 가 되는 것인가 영혼이 떠나가시다.. 에서 영혼이 돌아오시다가 되는 것.

 

경자를 만나게 한 것이 사탕이다. 왜 스쳐가다가 멈춰 세우고 사탕을 건넸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재미난데 경자의 자유귀문에 내 자유귀문이 동했던 것이겠고 요즘 경자에게 경자 네가 아기다..라고 하게 되는데 궁금증이 많은 것이 동자 에너지다. 동자는 궁금한 것이 많아서 무엇이든 물어본다. 그 답을 하는 것이 글문도사라고 하거나 문수보살이라고 하거나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는데 동자에겐 선녀가 짝으로 있고 문수보살에게는 보현보살이 짝으로 있고 글문도사에게는 아리랑신령이 짝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공부하는 마당을 점검하게 되는데 예수의 영혼은 죽음을 넘어서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리를 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싸움에서는 이길 때까지 온 힘을 다한다. 죽음을 죽이려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지.

방언 글로스라일리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주욱 들어보면서 내가 이해하는 방언의 쓰임에 대한 설명은 아니구나.. 하게 되더라. 내가 생각하는 방언의 쓰임은 언어를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지. 언어중추신경을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대뇌번연계를 가동함으로 길들여진 언어를 객관으로 밀어내어 인식하지 못하고 발화하던 언어값을 계산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방언의 효용이라고 본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진다.. 는 것 언어에 갇혀있으면 언어를 인식할 수 없는데 언어를 밀어내어 객관화하도록 하는 에너지. 거울로 보는 것 같은 것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마주하는 것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방언, 글로스라일리아의 쓰임이다는 것.

 

하여간 오늘 글을 주욱 두드리면서 이렇게 새로운 마디가 생기는구나..

경자가 건네준 제주오메기떡에서 콩떡 다섯 개와 얼린 죽순... 이게 나에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겠다. 무엇이든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을목의 특징이다. 乙은 여기와 저기를 잇는 길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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