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니체를 나체화하기

청향고은 2021. 5. 11. 05:34

니체는 자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를 무엇이라고 했을까... 
 
우주의 바다인 뇌의 세계의 길잡이 헤르메스 해마와 나침반인 귀와 연대하여 드러내는 되는 숨, 그래서 숨을 숨은 말(隱馬, 천리마 페가수스, 은줄..)이라고 한다. 그대와 나를 표현하는 같은 것은 같은 숨인데 그 숨을 활용하는 의지意志는 숨을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고 사는 차원과 의식적으로 숨을 인식하고 사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숨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를 의식적인 숨쉼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마주하는 공부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은 숨을 공부하는 것을 기본공부로 한다. 숨줄을 늘려라..는 것이지 그대의 숨줄이 얼마나 되는지..들숨을 모아 날숨으로 숨줄늘이기를 하는 것이 그대의 들숨엔 폐가 날숨엔 심장이 서로 연동하여 숨을 말로 기루어낸다
숨이 만드는 열매가 '말'이다. 신화에서 숨말을 헤르메스로 설명한다 고 내가 이해한다.  신화는 身話다. 몸을 그려낸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새로운 세계, 신선의 세계, 영생의 세계, 무한의 세계, 영생수...등등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그대와 나의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숨쉬기에 숨어있는 비밀이구나..무의식적인 숨이라는 봉인을 깨트리는 것이 의식적인 숨살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대의 영원한 삶을 체험하는 것은 숨을 숨말, 헤르메스로 기루어낼 때다. 링크를 건 신화를 음미해봐라 정보의 전달자로 대표되는 헤르메스, 메신저, 메시아..의 실체는 그대와 나의 숨이다 숨줄의 길이에 따라 정보량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숨줄을 기루는 훈련을 '의지意志' 라고 한다 숨에 의지한다 기댄다...우리는 숨에 기대어 앎과 삶을 영위한다. 너무나 당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숨이 감추고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숨을 훈련하여 숨줄기루기를 해야 알 수 있다.  
 
헤르메스(Hermes) : 네이버 블로그http://m.blog.naver.com › chanwoolee 
 
그리고 숨이라는 그대와 나의 '하나님ONE, 一 WON..을 통하여 들숨은 난자로 날숨은 정자로 물질화된 것이다. 난자를 우주의 어머니 비너스라고 하고 정자를 우주의 아버지 제우스라고 한다고 이해하시라. 숨이 빛을 모아 물질화된 것이 정자이고 숨이 색을 모아 물질화한 것이 난자이다. 그대와 내가 남자이거나 여자이지만 숨이 만들어낸 정자를 생성하거나 난자를 경영하는 것이니까 물질화되어 발현되는 것이어서 팔 다리라고 설명한다. 그대의 정자나 난자 자체가 자기를 드러내는 언어라  말없는 말을 드러내는 그릇으로 팔다리를 삼는다. 숨줄을 기루고 팔을 흔들며 걸음을 걸으라 하는 이유다. 그대의 팔짓과 걸음이 그대의 정자상태나 난자상태, 그대의 좌뇌와 우뇌를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각성이라고 하듯이 팔을 움직이고 걷기를 통하여 삼각구도를 이룬다. 팔흔들며 걷기는 삼생을 반복함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성장법이다.

그리고 이제 그대가 추측할 수 있듯이 팔다리의 각성은 직선을 만든다. 정직하다고 하는 개념이 나오게 되는 것이 손발의 세계에서다. 등을 곧게 하여 올바르게 걷는 것을 정직하다고 하는 것이다. 정직은 언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의 걸음을 보면 정직이 나타나니까.. 그래서 숨을 훈련할 때 자세를 바르게 하도록 한다 숨기루기훈련에서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숨줄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즉 숨맛은 숨줄이 뿌리를 내리면서 만드는 감각이니까 숨맛을 모르게 된다는 것이고 숨맛을 모르면 숨이라는 양식, 혀에서는 맛이 없지만 뇌에서는 너무나 맛있어 하는 하늘양식에 관심이 없고 후패하고 낡아져 똥 오줌으로 나가는 땅음식을 탐닉하는 미각을 기룬다는 것이지 식도락가가 되는 것은 숨맛을 모르면 반작용으로 생기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여 그대는 뭐 그런 것을 하겠지만 익숙한 것을 낮설게 하기가 새로움 깨달음, 신선됨..이니까 그대가 너무나 익숙하여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낮설게 하기를 해야하는 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세가지이다. 숨쉬기, 걷기 그리고 세번째 두 손과 두발을 합장하는 것, 즉 손뼉치가 발두드리기이다. 손발을 마주친다는 것은 좌우뇌의 날개이거나 길잡이인 해마를 기루는 방법이라고 나는 설명한다. 두 손을 마주치면 하나가 되나이다.팔을 흔들면서 걷는 것은 소리가 없지만 손발을 두드리는 것에서는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난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숨줄을 기루면 맺히는 열매가 나소리다는 것이지 그대와 내가 기본적으로 장착한 세가지 숨, 걷기 손발만나게하기.
이 중요한 기본적인 기능을 인식하고 하는지 무의식으로 하는지에 따라 깨달음의 신선이 되어 하루 하루를 부활하는 것이고 무의식으로 하면 타성에 젖어 다람쥐쳇바퀴를 돌리는 낡은 살이를 하는 것이다. 그대가 익숙한 것을 낮설게 하는 것 외에는 신선한 깨달음이라는 실체가 없다. 무엇이 그대를 새롭게 하는가. 새롭다는 것이 성립되려면 익숙함이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겠는가..익숙한 것은 무의식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무의식적인 것..무엇인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을 자기객관화라고 한다 
 
숨을 객관화하는 것, 걷기를 음미하는 것, 손발마주치기를 감각하는 것, 이것을 자기를 일깨우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무의식적(주관적)이 되어있어서 객관화(의식적)하기가 어려웁다. 내가 내면이라는 것이 오장육부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내면공부한다고 헤매다가 얼마 전에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무의식을 외연이라고 한다면 의식을 내면이라고 하는 것이고 의식이라는 것은 뜻알이意識로  불길, 몸의 체온을 만들어 경영하는 심장의 원리를 안다는 것이고 지식志識, 물길 머리의 차가움이 만드는 정보를 안다는 것이다. 意에는 열을 상징하는 日이 가운데 있다. 본심본태양인중천지일이라고 하는 기호가 意이고 志는 글을 뜻하는 士가 있다. 이런 차이를 그대가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감각하고 인지하는가의 차이가 그대의 나의 품격과 인격을 만들어내고 아우라 광배 오라 내공...설득력 힘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그대와 내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공평한 자산, 우주의 선물이다. 이것을 삼태극, 삼족오, 삼위일체, 삼귀의, 삼신,....으로 설명했다. 그대와 나는 존재그 자체로 완성된 완전한 하나님이다. 즉 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하지 않음이 무엇인가를 반작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와 내가 완전하기때문에 불완전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문이 된다. 불완전한 자는 의문도 하지 않지. 왜냐하면 불완전의 반작용은 완전이니까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 다음의 니체의 목차 누구에게나 한 가지 능력은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대가 질문을 하는 반작용을 하거나 의심없음으로 완전함을 누리는 반작용을 하거나 물음을 하는 것은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온 흔적經이 있어서이고 완전을 누림하는 것은 불사조로 날아오름이어서다. 정자를 물길을 따라 내려와서 계보를 만들고 난자는 불사조로 날아올라 재만 남는다. 재만 남은 곳에서 불사조는 500년마다 부활한다고 했다. 붓다가 500번 윤회를 해서 몸을 받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불사조로 날아오른다는 것은 손뼉을 친다는 것이다. 손뼉쳐봐라..하나님의 완전하심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그 정보가 손뼉을 치는 것에서 체험된다는 것, 해처럼 빛나는 것 손뼉을 치면 손바닥은 아침해처럼 붉고 소리를 정오의 해처럼 힘차다. 그리고 손뼉에 따라 몸은 저녁 노을처럼 잘 알맞게 맛있게 익는다. 한 가지 능력이 있는 그 능력이 자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선택이다. 손뼉을 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주인의 할 일이다. 손뼉을 친다...이것이 얼마나 신비한 창조인지..는 두드려본 사람은 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절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혼자만의 골방은 손뼉을 치면 33마디 마디마다 막혀있는 벽을  두드려 뚫는 힘이 된다는 것 절한다는 것은 節을 뚫어낸다는 것이다. 너를 찬양하기위하여 손뼉치지 말고 나의 의식상승을 위한 마디벽을 뜷기위해서 손뼉쳐라. 왜 손뼉을 쳐야 하는가? 손뼉을 치는 행위는 자신의 오장육부라는 내면을 울린다. 울림을 반복하면 열림이 된다. 열려야 보인다.

 

울림을 반복하면 그 힘이 막힌 담을 헐게 된다. 모루질을 하거나 망치질을 함으로 벽을 깨트리는 방법이 울림을 반복하는 것이다. 소리주파수를 올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우리는 안다, 주파수가 높아지면 유리가 공명하고 증폭하여 유리가 깨어진다. 울림의 반복으로 열림이 생긴다는 것이지. 열림이 깨어짐이다. 태안에서 아기가 울림(진통, 산고)를 반복하면서 산도를 열고 태밖으로 나온다 울림, 또는 떨림의 한자가 空振動(공진)이다 안에서 울림의 정도가 외부로 나타나는 것을 떨림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울림의 세기가 보이는 물체의 떨림에서 확인된다는 것이지. 아기가 안에서 밀고 나오는 힘의 외연의 모습이 산모의 진통이다.


정자가 빛의 속도로 난자에게로 달려가서 난자의 겹겹막을 뚫고 난핵에 도달한다. 난핵에서 7시간을 정자검사를 해서 상생이 되는 정자라는 판단이 서면 모시어들인다. 정자를 맞아들이고 엿새동안 빈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운 가나 혼인잔치처럼 엿새돌안 하루 한번씩 구르기를 한다. 엿새동안 구르기를 하면서 23개씩의 염색체세포를 섞어 64개가 되도록 한다 이 과정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창세기의 엿새동안의 천지창조로 설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엿새동안 굴러서 자궁에 들어오게 되면 이레되는 날 안식했다고 하는 설명이 되는 것이겠다. 즉 수정란으로서의 여행을 마치고 착상할 곳에 도달했다는 것이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 섹스의 원리도 정자의 구멍뚫기, 천공을 반복하는 그 힘이 난자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내게 된다는 것이지. 정자의 구멍뚫기를 空이라고 하고 그 울림으로 길이 열리는 것을 허 噓 라고 한다는 것이지 공허하다는 본뜻은 섹스하다이다. 하여간 정자의 관점에서 33마디의 계보를 딛고 저 높은  혹은 저 깊은 곳에 있는 난자에게도 나아가는 것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이다. 정자가 난자에게로 가는 길, 그 길을 열어내는 작업을 나는 니체가 자신의 행위는 세계를 울린다고 한 것의 현장으로 붙인다. 니체는 남자이기때문에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는데 니체의 스스로는 무엇일까나...스스로를 아는 행위는 세계를 울린다고 했는데 울림을 하려면 방울이 있어야 하고 방울은 흔들어야 울린다. 니체는 무엇을 방울로 하고 어떤 것으로 흔들어서 어떤 울림을 만들었을까..나는 너와 나의 행위 섹스원리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체험하게 되는 여자의 임신과 출산을 울림과 떨림의 행위이고 이 행위는 세계를 울린다. 태어나 첫울음을 우는 것이 우주파동을 출렁이게 한다는 것으로 나는 풀어내지만...니체는 무엇으로 울리고 무엇으로 세계를 떨게 하였을까..문장? 니체의 신은 죽었다의 죽은 신은 니체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뜻이다. 니체만의 깨달음을 너에게 전달할 자기의 몸에 대한 정보는 없다이다. 니체는 머리를 풀어낸 정보 철학이고 그 철학이 삶으로 발현되는 마당, 즉 몸의 원리 임신과 출산을 자신이 체험하지 못하기때문에 여자의 원리를 설명할 수 없음..그것을 신은 죽었다이다. 연민에 숨이 막혀 죽었다..앎은 가득하고 충일한데 그 앎을 드러낼 삶의 자리, 여자를 알지 못했다이다. 공자도 평생을 여자를 찾아다녔다.  
 
니체는 루를 얻지 못했다. 자신의 철학을 일상에서 펼칠 땅의 원리를 알 수 없었던 반만 알았던 이들이다. 섹스에서 남자와 여자의 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공자도 자기 몸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태어났는지 야합의대상으로 무시한 안징재를 보았을 것이고 니체는 신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의 철학은 머리의 철학 태일생수의 물이 만드는 위애서 아래로 흐르는 정보, 계보철학이다. 가장 바닥에 있는 바다..여자에게 닿았으면 아래서 위로 치솟는 불사조의 원리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불씨를 던지려 왔노라..라는 예수의 부활철학을 이해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성원리 불사조의 원리를 설명하는 메신저다. 예수이전은 다들 모든 것은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 거기에 하늘은 깃든다고 하는 물길 계보철학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불사조원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예수를 기점으로 기원전과 후로 나뉘게 되고 예수는 여성원리를 설명하는 선각자이다. 구약은 남자들의 계보철학이라면 신약은 여자들의 불꽃철학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예수의 수제자도 베드로가 아니라 정열의 여인 막달레나 마리아이다. 루 살로메..살로메가 누구인가 
 
 Salome 유대 왕비 헤로디아의 딸. 신약 성서에 의하면, 의붓아버지 헤롯 왕의 앞에서 춤을 추어, 그 상으로 예언자 요한의 목을 베어 달라고 하였음 살로메는 솔로몬의 여성형이다. 살로메가 구한 것은 요한의 머리다. 이 상징을 그대는 이해하는가? 여자는 몸이다 살로메가 추구한 것은 요한의 머리이고 이 머리가 있어야 머리와 몸이 잇기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자궁을 얻어 영생체를 부활시키고 여자는 밭을 대여함으로 남자의 머리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지. 시아버지 유다에게 다말이 약조물을 구하듯이..남자는 여자의 자궁을 대여하게 되면 그 대여값으로 머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지 살로메의 춤으로 얻은 것이 요한의 머리다. 여자가 남자에게 신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얻지 못하면 모든 암흑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지. 여자에게 빛을 가져오는 것이 요한의 머리이고, 남자에게 여자는 아겔다마가 되는 것이지 피밭. 씨를 뿌림으로 영생을 이어가는 값으로 머리를 잘라라...갸룟유다가 예수를 판 값으로 산 피밭


여자에게 씨를 뿌리기위해서는 즉 생명의 계보를 잇기위해서는 머리를 잘라서 여자에게 건네주어야 여자가 피밭에 뿌려진 씨에게 머리를 다시 붙여준다는 것이지.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구한 것은 살로메의 의도가 아니라 엄마 헤로디아의 소망이였지. 태안에 뿌려진 남자의 씨앗 빛알갱이가 어떤 나무로 자랄 것인지를 알려면 씨뿌린 남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본뜻이다. 여자의 씨가 아니라 남자의 씨를 받았으니 그 씨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소양이지 않겠는가. 여자 자신의 난자에 대한 정보를 비춰보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정자라는 거울이고 남자는 자신의 씨앗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 난자라는 것이다. 남자없이 여자가 앎을 얻을 수 없고 여자없이 남자가 영생할 수 없다는 것이지 
 
성서의 불합리적인 이야기들을 이제 하나씩 풀어내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왜 살로메의 엄마 헤로디아는 요한의 머리를 달라했을까? 다말은 왜 시아버지에게 약조물을 구했을까 갸룟유다는 왜 예수를 은 서른 냥에 팔고 그 돈은 결국 아겔다마 여행지의 묘지 피밭이 되었을까...여행자의 무덤..여자에게 정자가 여행자이지 않을까 여행자가 묻히는 무덤..난자를 뜻하는 것이고 남자가 난자를 얻으려면 서른냥의 밭값, 머리를 자른 값을 지불해야한다는 것

이 결국은 부활하기위하여서는 낡은 지식은 베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 새술은 새부대에를 뜻하는 것이리라
한 세대는 가고 새시대가 오려면 한시대를 이끌던 머리를 잘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한시대 요한의 머리가 잘려야 새시대 예수가 드러나고 또 나에겐 예수가 잘려야 내가 새시대로 드러난다는 것이지 
 
 
나와 나의 행위 들숨과 날숨이라는 원리에서 소리로 나타나는 것을 울림이라고 하건만 니체는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고 하는 출발자리를 어디로 무엇으로 반복울림하고 열림하였을까
 
너와 나의 소통은 섹스거나 대화이다. 섹스원리를 아는 것도 힘들고 대화를 하기위한 기술을 익히는 것도 힘들다. 서로 말이 통한다고 착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 살아가는 관계가 인간관계다. 너의 말에 대한 어휘력, 나의 어휘력, 그리고 그 말을 감각하는 센스가 어떤것인지..알 수 없으면서 서로 알아듣고 전달했고 통했다고 망상을 한다. 대화가 아니라 저마다의 독백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면 깬다.  
 
자신을 늘 새롭게 하라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라 는 이 가르침은 객관화하라 는 것인데 니체여 방법은?을 물어야 니체의 목을 자를 수 있다 니체의 목을 베어야 나의 목이 돋아난다 니체 목베기를 하는 즐거움이 요즘 글쓰기다 그대는 나의 목을 베어야 그대 목이 돋움한다 어떻게 목을 딸것인가 돼지 멱을 따는 것 비장의 낫질

 

이珥(귀고리 이)라고 하는 한자를 율곡은 이름으로 썼다. 노자의 이름은 이이(李耳), 자는 담(聃)이다. 율곡과 노자의  성이 같고 이름도 같은데 한자가 다르다. 율곡은 해마와 귀를 겹친 귀고리珥이고 노자는 귀耳를 쓰다가 귀안의 해마를 뜻하는 담聃을 자로 썼다. 율곡과 노자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고 노자의 환생이 율곡이된다고 설명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에너지는 순환을 하는 것이니까..전생을 알고 싶다고 하는 의지가 생기는 것은 음양구조가 만드는 것이다. 나를 대대하는 정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전생이나 다음생이라는 세계가 나오고 도플갱어라는 개념도 생겼다. 실제 전생은 부모이고 다음생은 자식으로 물질화된다. 그런데 비물질에서도 전생이나 다음생을 알고 싶어하게 되는데 그 소망이 만들어 낸 현장은 정보의 주파수와 파동의 접근성과 공명력이라고 나는 설명한다 너와 내가 주파수가 같고 파동이 같은 정보를 만나는 것을 전생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 
 
공자의 제자였던  안회의 환생을 예수라고 설명하는 것도 시대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에너지레벨을 보고 그 에너지와 유사하기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60년마다 혹은 600년마다 혹은 6000년마다 같은 에너지가 돌아온다는 원리가 육십갑자라는 것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기의 전생을 찾아보고자 하는 방법으로는 자기보다 60년전의 인물, 600년전의 인물, 6000년전의 인물을 추적해서 같은 사유장이거나 외모의 닮음이거나..를 찾으면 된다.  나같은 경우 1960년생이니 1900년 6월 6일 생에서, 1840년, 1780년, 1720년..이런 식으로 거슬러가면서 비슷한 에너지장을 가진 인물을 찾으면 된다
또는 1300년대의 6월 6일 생에서, 또는 기원전 4021년전 6월 6일생에서..역사에 남겨진 기록이 있다면 비교해보면되고 역사기록에서 찾지 못하면 별자리에서 찾으면 된다. 나는 쌍둥이 자리니까 6000년 전  쌍둥이자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지, 왜 별자리를 찾으려 하는가는 자신의 전생을 찾아보려는 좌표가 되기때문이다. 
 
루 살로메라는 책을 보고 니체의 말이라는 책도 보다가 니체가 축복으로 감사한 병이 뇌종양이였다는 것도 알게 되더라. 니체의 정보를 보다가 나와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찾아보니 1900년 8월 25일 (향년 55년 304일)에 사망하였고 1960년대 프랑스에서 니체는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정보가 나오더라 루 살로메의 출생은 1861년 2월 12일  
 
니체의 말이라는 책을 보면서 니체의 개념들과 내가 풀어내는 개념의 차이를 보게 되더라. 내가 훨씬 더 깊고 심오하지 심오라는 것도 나는 심오 즉 深吾, 오장육부라고 나만의 설명을 한다. 심오의 오의는 오장육부와 외연의 정보와 선잇기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나..남자의 깨달음과 여자의 깨달음의 자리가 남자는 하부에서 방울소리를 울려서 생명의 씨앗을 민들레 홀씨처럼 풀어내는 것이고 여자의 깨달음의 자리는 생명을 기루는 밭으로 내주었다가 불씨가 들어와 확장되었다가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가고 그 사이의 기록이 자궁벽에 기록됨, 즉 재로 남은 그 흔적에 불씨를 붙여 재에서 화관(불사조)으로 자기만의 세계,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여자, 필로소피아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여자의 철학은 재에서 화관으로가 되는 몸철학이 되는 이유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체험을 놓고 자기의 머리를 만들어가는 길을 가기 때문이다.  
 
여자의 두번째 생, 즉 다음생은  완경하고나면 새로운 자기앞의 생을 창조해야 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남자의 다음생은 아들과 딸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여자에게 두번째의 생이 기회로 주어지는 이유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물질생을 불씨로 하여 자기만의 생명나무인 비물질생 감각의 세계를 펼쳐갈 수 있도록 완경을 하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분비가 되어 사춘기에 들어서는 남자아이처럼 그런 에너지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지.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것은 여자에게 주어진 질문이고 남자는 자식을 낳게 되면 이미 다음생을 겹쳐서 살게 된다. 남자의 두 생은 아들로 딸로 나타난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의 다른 생인 딸바보가 되고 여자는 자신의 다른 생의 좌표인 아들을 두번째의 비물질세계를 살아갈 때에 안내자로서 의지하게 되고 영혼으로 품게 되는 것이겠다. 남자의 다음생 세계는 아들과 딸로 나타나고 여자의 두 세계는 에스트로겐시대와 테스토스테론시대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테스토스테론의 세계의 안내자는 아들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내 안의 불씨가 불사조로 날아오름할 때 거울이 되는 것이 아들이라는 것이지.    
 
한 생은 포유류뇌(우뇌)를 가동시키는 여자로 살지만 두번째의 생은 파충류뇌(좌뇌)로 살아가는 남자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받는 것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과한 열매로 받게 되는 여자지만 남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 2의 성이라고 하고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나오게 되는 근거가 된다. 남자의 양성은 외연 자식에게서 나타나고 여자에게서 양성은 내면 호르몬에서 나타나는 것. 이 원리도 정말 재밌다. 정자는 보이지 않는 정보체에서 보이는 세계로 나타나고, 여자는 생명을 품어 낸 보이는 원리에서 보이지 않는 호르몬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
 
여자로서 남자가 되면서 외연의 남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데 왜곡된 페미니즘은 외연의 남자들이 진화시킨 개념들을 전부 부정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남자는 물질세계의 원리를 찾아내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에 특화된 특이한 종족이다. 여자는 생명세계의 원리를 가동시켜 생명을 낳아기룸에 특화된 놀라운 종족이다. 여자가 남자를 부정하거나 남자가 여자를 무시하거나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생명과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나오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온다. 이렇게 서로 우르보로스처럼 연결된 관계다.   
 
아침에 남편은 비가 오시는데 객지로 출장을 갔다. 잘 댕기오시라고 등에 손을 대고 자 우주의 기운을 다운로드해줄께 하고 등을 쓰담쓰담. 남편이 나가고 나도 글을 두드리다가 6시에 강 길을 나섰다. 옴람미카엘아이반호프를 읊조리면서 걷다가 전춘화여사님을 만났다 봄이만 데리고 나오셨길래 순돌이는요? 해서 오간 대화 순돌이의 사연 이전에 수리수리 천번만 하라고 했었는데 오늘도 수리수리 이야기가 나와서 아..이 수리주문은 이 분에게 하라고 하지만 내가 해야되는 것이겠다 해서 주욱 수리주문을 하면서 풀도 뽑고..돌아오는 길에 어제 만난 어른도 만나고 40분은 족히 주문을 했던가..불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곳에서 김춘자어르신을 보게 되었는데 비가 오니까 정자가 있는 곳에 동네분들과 앉아서 쉬시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드셨다. 얼굴을 보니 맑고 밝아보여서 합장인사를 하였다. 일전에 내가 어부바를 해서 가슴통증이 생겼다고 했을 때 아이구 제가 기도할께요 했는데 오늘 수리수리를 하도록 한 것도 순돌이를 딛고 오간 대화를 딛고 김춘자어르신에게 내가 만든 짐을 수리하라고 한 것이구나 해석했다. 빛결과 어제 통화를 하면서 내가 정보를 나눔하거나 소통하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정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정보를 나누지 말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면 정보를 공명하는 이를 인간관계로 하자고 그래서 그간 내가 정보를 나눔하려고 노력하던 나보다 나이가 높은 이는 관계망에서 정리를 하게 되더라. 나의 정보를 즐거움으로 공명하는 이를 더 소중하게 인식하게 되는데 나보다 늦게 태어난 이들은 나보다 더 고급정보를 가지고 온다. 즉 내가 닮아가야 하는  배워야 하는 스승님이라는 생각. 나이든 사람은 낡은 정보다. 낡은 정보를 그대로  받아내리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길을 바꾸어서  내가 늙은이가 되지 않고 젊은이보다 더 젊어지도록 관점을 다양하게 접해야 한다
어제 만난 82세의 어르신을 오늘도 만났는데 걸음걸이를 가운데 선을 따라 걸으시는 모습이 아름다와서 나도 따라서 걸었는데 그렇게 걸음으로 좌우뇌의 균형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아들이 걸을 때 그렇게 훈련을 하라고 하더라고 하시어서 저도 따라 할래요했다. 그리고  82에서 육십갑자 한바퀴 돈 것인데 무겁게 60은 떼고 22세 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