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생전과 전생, 말의 구조

청향고은 2020. 9. 18. 09:30

생전과 전생, 후생과 생후..말장난해보자 
 
생전처음이라고 말하거나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라는 말을 한다
분명히 전생과 생전은 언어구조에서도 역逆하고 있으니
明과 易만큼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생전生前은 한자구조는 영어와 닮아있다 하니 풀어내면 앞남이다.
언어가 낮설지 않은가? 나고보니 앞에 있는 세계를 대했을  때
반응한 몸의 작용을 생전처음이라고 하고
처음處音은 탯줄이 잘리면서
나온 소리다. 외부의 압력으로 생긴 고통에 반응한 것이 울음
태안에서 아기가 태밖으로 나오는 것은 태아의 선택이기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은 태아라는 압력이 작용함으로
그 압력을 인식하는 산모이다.  
 
삶의 고 중에서 가장 큰 고가 출산의 고라고 한다
태아는 좁은 알에서 넓은 세계로 나아가려고 그 틀을 깨트리게 되고
동안 아기를 기루면서 몸에서 허용할 수 있는 크기까지
도량을 넓혀준 자궁이 태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는 때
태아가 벗어나고자 할 때
더 이상 도량을 넓힐 수 없을 때 받는 고통
골반까지 열어서 최대로 넓혀 나아가고자 하는
태아가 나아가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辛(매울 신)이고 아기가 태어나면 幸이 되는 것이다
출산의 고통만큼 행복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생生은 통痛이지만 사死는 고苦이라는 것이다
태안에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아기는  生痛이고
그 생을 반응하는 산모는 死苦이지
아기가 나가고 나면 산모는 生인데 태어난 아기에게는
탯줄자름이라는 死가 닥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산모는 고에서 통으로 진행되고
태아는 생에서 사로 진행이 되는 것이어서
생사는 고통이다..고 하는 것이지  
그래서 태어나지마라 사는 게 고통이다
죽지마라 죽는게 고통이다..생사는 고통이다고 하는 것
생사와 고통을 오가면서 신辛을 행幸으로 음吟을 복福으로
변화시켜가는 것을 생명작용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감정발현이 만들어내는 열매라고 한다. 
본성本性Bone Seong
本은 본래면목이라고 하는 사람의 골격을 나타내는 기호다
본은 뼈의 형상(하와)이고 性은 살의 모습(아담)이다.
성서에서 몸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는 설명에 대입하면 된다
본성은 뼈와 살이다. 그래서 누구나 본성은 같다. 하나다.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생기는 것이다.
뼈와 살을 흐르는 물과 피를 '나라 國, くに'라고 하였다
그대가 나라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라
그대의 본성 뼈와 살을 흐르고 있는 물과 피가 그대의 나라다. 
그러니 외연의 애국의 대상은 그대 자신의 뼈(물精髓)와 살(피 血液)이다
물은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며
피는 안에서 생성되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면을 살피라고 하는 것은 말그대로 안에서 생성되는 것은
살안에서 흐르는 피니까 그 피의 작용을 알아라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피의 세계를 열어내는 주문이라고 본다
어제까지 걸으면서 관세음보살주문을 하다가
오늘 걷기를 나가면서는 입이 닫히더라. 그리고 올라오는 것이 
하낫 둘 세알리기..속셈 속으로 숫자를 세아리는 것을 속셈이라고 하지
한글이 정말 신묘한 것은 발음과 글자가 같고
숫자도 글자와 세알리는 소리와 같다
그래서 한글을 소리와 글이 같다고 한글이다. 
한글...소리와 글이 같은 글을 모국어로
쓸 수 있는 축복을 받은 한반도에서 태어남으로 부여받은
천부인권 민족인데 한글의 위대함을 세계가 인정하지만
한국인은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  
 
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심이라는 말머리를 잡고
공부를 하다보니 갈 수록 한글의 신묘함은 신묘장구대다라니..지
요즘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송광사스님독송을 열어놓고 같이하는데
하면서 내 머리에서는 이 주문들이 몸의 어디와 연결이 되고
한글화할 수 있을까..이다. 이주문을 입에서 읊조리지만 몸에서는
한글화를 해라 그래야 설득력이 생긴다는 물이 들려오니
문화文化라는 것이 달글을 세우고 눕히는 일이니
저기의 언어파동과 이해와 물을 건너 산을 넘어
한반도로 들어와 한글로 바꿔서 읊조리는데
저기에서 어떻게 씜이 되었던지 건너와
여기서 어떻게 씜을 해야 化가 일어날 것인지..를 궁구하는 것이지   
 
나모라 다라다라 야야 나막알랴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 원어, 나모 라트나 트라야야 나마 아르야발로키테스바라야 보디사뜨바야)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읊조리면서 이 한글은 한글인데
도데체 어떻게 잡아서 몸옷으로 천의무봉할 수 있을까나...
연구할 문제로다..하게 된다.
새바라야는 셈해봐라 세어봐라..주가 주신 복을 세어보아라..와
연결하여 셈數..야 한번 세봐아야...얼마나 새바라야는 또 새빛을 발한다
샛별 효성, 어둠속에서 샛별이 빛이난다이다. 바라야는 발하야..
태안에서 태광 첫빛이 빛난다..이기도 하지.
바라야나 사바하나..빛이 빛나는 상태를
설명하는 언어로 빛을 발하라
그리고 사바라는 세피라의 음역인데 세피라는 새바라아..
그래서 오늘 아침의 공부과목이 수학이였고 오가면서
속셈으로 한글을 세었다.
한글셈  하낫, 둘, 셋...세알려가면서 용천혈을 두드리고
무릎 금슬을 치고 배를 두드리고..장심을 치고...하는 것이
수행數幸이 된다
그대가 행복을 추구한다면 숫자를 세고 두드려라.  
 
 
그래서 산모는 첫아기를 낳을 때 난생처음이라고 하는 체험하고
아기는 생전처음을 체험한다. 
태어난 아기는 외부의 압력에 대하여 작용한 것이 첫울음이라면
아기가 자궁이라는 알에서 벗어나는 과정, 내부압력에 대하여 산모가
반응하는 것이 
즉 탯줄을 자르면서 반작용으로 나온 소리를 생전처음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처음을 첫울음소리로 태어나서 공간에
자신의 성문을 등록하는 일이다.
생전처음은 단 한번이고 그 처음을 시작으로 울음소리라는
파동함수(플라즈마 파워와 마그네틱 포스)가 생성된다  
 
이것을 태어나서 빛을 창조하는 빛이 있으라가 되는 것이다.
이 자리를 생각이 일어난 자리라고 하여 본성자리, 본래면목이라고 한다.
태안에서 태밖으로 나와 빛이 있으라..이 사건을 생전처음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제부터 그대여 생전처음이라는 말을 이제 알았으니
그대가 생전처음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탯줄을 자른 시절에 토한 소리를 했나
그것부터 확인하고 입발린 말이 였으면 구업참회를 하도록...
거짓말을 하였으니까...거짓말은 행동하지 않은 말이다.  
 
전생은 태어나기 전, 즉 태안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하는 말값은 태안에서
모은 정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전생의 죄다. 원죄라고 하기도 하지.

전생, 태안에서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은바 된 그 과정을 모르는 것이

전생에 지은 죄가 되는 것이니 죄인 아닌 이들이 있겠는가?
그래서 아담의 원죄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아담이라는 것은 그대의 살과 피이다
피밭(자궁)에서 그대가 자라서 태어났는데 태어난 곳,
자궁의 정보를 모른다는 것이지. 이 세계의 정보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본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본성은  생명의 흐름을 타고 작용하니까
피에 감추인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
피를 이루는 Fe를 철이라고 하는데 鐵이라 하기도 하고
金이라고 하는데 한글로 요즘 아이들은 금을 '숲'이라고 한다.
얼마나 반짝이는 언어선택인가. 숲이 숯을 내어준다
나무가 재가 된다.
나무에서 숯이 나오고 숯이란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로 가기 이전의 상태다.
숯이 재로 가면 그 재를 모아 먹으로 만들어 글을 쓰는 재료가 된다
재가 먹이 되기위한 과정에 기름이 더해져야 한다고 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기름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육체의 흐름도 기름이 돌리고
마음의 흐름도 기름이 있어야 흐르고
정신의 흐름도 기름이 있어야 돌아간다
十은 물과 불의 관계이고 그 가운데 人이 들어가면 木이 된다
이 목에 기름이 더해지는 것이 米다.
사주팔자라고 하고 사성제 팔정도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米를 태우고 있는 것이 迷로 몸을 뜻하고 그 몸이 타고 다니는 것이
말씀 言이어서 謎(수수께끼 미)라고 한다. 내가 나를 봐도 신묘장구 대다라니 수수께끼지.

내 존재가 수수께끼가 되는 것은 말씀 言이 주인이 되어서다. 주인인 言을 
객관화하여 언어값을 풀거나 찾아내는 것

 

 

발바닥의 용천혈과 손바닥의 노궁혈의
다른 이름이 전륜성왕 혹은 법륜왕이라고 한다
인체의 혈들에게 부여한 이름들이 불가의 부처님상호거나
보살의 상호로 나타난다 보살의 대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무가에서는 문수보살을 글문도사 
보현보살을 마고여신이라고 한다.
문수보살을 문곡염정, 보현보살을 무곡파군..이라고도 하고
좌우 어깨에서 작동하는 힘을 설명하는 것이다.
보살이라고 할 때는 목아래 몸의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고
부처(불佛)라고 할 때는 목 위 머리의 정보를 설명할 때
차용하는 언어라고 이해하여라 
몸에서 나간 정보가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귀환, 환생이라고 한다
윤회輪廻라는 것은 말이 반복되는 것이고, 날이 반복되는 것이다
환생 還生이라는 것은 일년이 반복되는 것이고 글이 반복되는 것이다
말과 글이 반복되는 것..잘 생각해봐라 인생이라는 것은
입의 말과 손의 글(그림) 이것의 반복일 따름이지 그 외의 무엇이 있는가?
인생은 단순하다고 하는데 丹脣하다고 붉은 입술인데 '말'을 뜻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예사람들은 '글'을 대부분 모르고
너가 나불거리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카더라..통신이 되고
누가? 라고 정보의 발원지를 확인하여 사실여부를 확인하려 하였다
누구에게서 나온 정보인가?를 확인하여 이야기를 믿거나
부정하거나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信이라는 한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믿을만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 즉 정보의 출처가 명확한 것을
전달하는 사람을 뜻했다 정보가 정확하려면 현장에 있으면서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만져보고 한 사람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이 정보는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를 물었을 때 그 답이
너와 나 우리, 셋이 공명한 정보일 때 이중맹검,
임상 이상 삼상실험이 완료된 정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대가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인가?
이 믿음을 너에게 주기위해서는 
이 정보를 삼상실험까지 한 로드가 부록으로 첨부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글월은 정보의 최고레벨에서 다루던 것으로 '글월文'이라고 하여
글월을 다루는 계층을 '무당巫, 제사장'이라고 했다
글월文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몸짓을 객관화하여 그려낸 것이 출발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내 몸짓을 내가 객관화하려면 너에게
내가 한 몸짓을 따라하게 하여 그 모습을 보고
내 몸짓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종이에 그린다는 것
이전에 내 몸짓을 너도 같이하도록 하는 것이 그림그리기다.
나처럼 해봐라 요렇게...가 그림기르기 즉 글월文공부가 되는 것이다 
 
같이 공부하는 도반을 만나면 나를 보고
내가 하는 움직임을 따라하고 소리를 따라내봐라..를 요구한다.
그래서 내가 요구하는 움직임과 소리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도반과 내가 하는 글월文, 글자 字공부이기때문에
공부과정은 힘들지만 하고나면 엄청 행복해진다.
출산의 수고로움과 태어나는 자유로움이 있는 공부라고..
그래서 나는 글월文 글자字공부, 그림그리기공부와 말씀을
만들어내는 소리지르기를 같이 가르친다 글자를 몸으로 그릴 때
그것을 활발발, 즉 살아있는 글공부라고 하는 것이니 이 공부가 앞으로
펼쳐질 정보마당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싯타르타 부처님과 예수그리스도는 머리와 몸,
물과 피, 빛과 어둠..음양의 관계라고 내가 파악한다.
남자의 자존심이 만든 신화가 엄마의 아래로
태어남을 인정하기 싫어하여 옆구리 탄생,
난생설화...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흙을 부정하는 정보가
남자들이 여자의 정보를 무조건 거부하는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남자가 엄마의 자궁에서 아래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옆구리로 태어나고 난생설화를 만들어낸 남자들의 자존심..
그게 원죄의 출발이지. 남편과 아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어떤 정보든지 듣기 싫어한다는 것. 여자의 말은 잔소리다
즉 潺吟(물흐르는 소리 잔, 읊을 음), 다시 말하면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거문고 소리와도 같은 해조음이다. 여자의 말은 살리는 말인데 남자들은 
여자의 말이라는 자체로, 자신의 젓줄이고 탯줄이였던 정보를 거부하는 것
탯줄을 자르면서 자신의 생명을 공양하던 생명터도 버리게 되는 것
그래서 아기를 씻고난 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버린다..는 말을 한다
엄마는 여자와 달리 아기를 기루고 낳고 젖을 먹이면서 기록한 글월이 있다
하나님이 몸으로 나투신 것이 엄마라고 하는 말이다. 
 
성서의 하와창조도 알고보면 옆구리의 갈비뼈로 만든 것으로 나오는데
우주의 작용을 거슬리는 원리다.
흙에서 아담을 만들었다는 것이 창조원리인데
흙에서 태어남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갈비뼈를 뽑아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담은 선천3일 창조한 공간의 대표성이다
하와는 후천3일 창조한 시간의 대표성이다.
시공을 안다는 것은 흙(살)과 물(뼈), 나라를 안다는 것이다
나는 물의 우리말이고 라는 흙의 우리말이다.
그래서 물과 흙이 나라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그 '나'는 몸의 78%를 구성하고 있는 물이다
오늘 음력 8월 2일 갑자..여태 물었던 답이 왔다. 나=물이다. 참내
참내도 물이 가득하게 참이다. 참나도 물이 가득하다 는 것이지. 
천축에서 경전을 구하여 당으로 돌아오려할 때
그 경을 물에 빠트려 건져내니
종이의 글은 물에 풀려 흰종이만 남았더라고 하는데
정보는 종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담겨서 흘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위해서는 
노자의 태일생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한방울(정액한방울이더라)로 시작한 물이 다 모여
바다를 이룬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
생수에 없는 것이 소금이고 바다에 있는 것이 소금Fe다.
철을 안다는 것은 소금을 안다는 것이고
소금을 안다는 것은 피를 안다는 것이다
물을 '나'라고 하고 피를 '라'라고 했다.
피를 해陽라고 하고 물을 달陰이라고 한다
말장난이지만 물음, 피양이라고 흔히 쓰면서도
그 말의 어근이 몸의 물과 피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구업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구성하는 언어체계다 
 
글을 두드리다가 신묘장구 송광사스님들과 같이 21독
송광사는 승을 보로 하는 곳이라니 스님의 에너지가 출렁일 것이고
그 에너지파동을 타면 나도 승보가 될 것이리라는 념을 하면서 한다
공부한다는 것 매일 새로운 출발이다.
공부가 천국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하는 말이 극공감하는 것은
공부란 어둠을 밝혀가는 일이기때문이다.
어둠을 지옥이라고 하고 공부는 빛을 만들어 어둠을 밝히는 일이니
외연의 공부도 잘해야 좋은 자리를 점할 수 있고
내면의 공부도 잘해야 좋은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원리지 
 
어제까지 모았던 정보를 디딤돌로 州로 하여 미지의 길謎을 간다
요단강을 건널 때 법궤를 앞세운 제사장들이 발을 들이밀때
요단이 갈라져 길을 내어주었다. 홍해는 갈라놓은 길을 가지만
요단은 내가 발을 디뎌야 물이 갈라져 길을 내놓는다 
 
홍해단계와 요단단계가 다르다는 것이지
법궤가 상징하는 것은 정보다. 모든 정보를 딛고 길을 여는 일
그것이 겟세마네의 기도다. 길이 없는 곳에서 내가 길을 만드는 것
그것을 자기창조라고 하고 자기길을 열어간다고 하는 것이지 
내 글은 내가 모은 정보의 끝에서 길을 이어내는 정보다
홍해를 건너야 하는 단계에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요단을 건너야 하는 이에게 필요한 푯말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등으로 인도를 받아 갈라진 홍해를 지나가는 것은
요단을 건너기위한 워밍업이다.
홍해를 건너 광야가 있고 광야에서 요단을 건너야 하는 과정이 있고
요단을 건너면 여리고성을 시작하여 가나인 칠족속을 멸하는 미션이 있고
이 과정을 거치면 다윗궁전(육망성)이 서고
그 다음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는 과정
솔로몬의 성전이 그대의 몸을 흐르고 있는 물과 피다. 
외연의 모든 정보들은 물이고 그 물을 마시면
어떤과정을 거쳐 피가 되는지를 궁구한 정보를 참정보라고 한다
자현스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머리가 몸을 관조하여 외연화시킨 것이
사찰이며 불상이며 탱화이며 그런 것이다 
 
정보를 만나 그대의 머리와 몸으로 잇기를 하지 못하면
그 공부는 남의 다리 긁는 헛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