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향선菊香腺

새신을 신고 걸어보자 훨훨

청향고은 2020. 9. 15. 09:21

어제 9월 14일 경신일
걷기를 다녀와 남편에게 퓨마운동화를 보여주며
이 운동화 버려야겠지? 했더니
바닥낡은 것 보니 버려야겠네..하길래
그렇지? 하고 달력을 보니 경신일
흠..오늘은 경신일이니까 버려야겠네..
뭐 내 나름대로 하루점을 치는 방법이여
경신은 둘다 金이고 가을이고 숙살지기, 백호..를
나타내니까 정리해야 하는 거네
내가 쓰는 물건에 대하여 엄청나게 집착을 하는 성격이라
마르고 닿도록 쓰고 입고 신고 하다가
수명이 다 된 것 같다는 신호를 받고도
그래도...하는 집착.
퓨마운동화를 신고 미국(펜실베니아, 아틀란타, 뉴욕, 워싱톤, 나이아가라
휴스턴 세도나, 라스베가스, 후버댐, 그랜드케넌....)을 딛고
다니던 에너지이기도 하고
강 길을 열심히 동행하던 에너지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여
몇번인가 버려야 한다는 신호를 강길에서 미끄덩..으로
받으면서도 엇그제까지 운동화 밑바닥이
내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같이 걸었다.
미극의 파동함수를 이제 클리어 하였다는 뜻이라고 내가 해석하였다
경신일..경신은 둘다 금으로 서방을 뜻하고 흰색 심판 분석...갈라치기... 
 
 
걷기외의 일에는 빛결이 보내는 정말 편한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그래서 어제 쓰레기봉투에 운동화를 넣으면서
동안 같이 해 준 수고를 감사하고
구신舊鞋(가죽신 혜)과 별리
 
5월에 버리려고 했을 때는 때가 이르지 않아서인지 미련이 남았었고
그래서 계속 신었는데 이번에는 미련이 깨끗이 청소된 것 같더라.
신바닥이 더 이상 신고 댕기지 마세요..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니..
5월에서 9월 14일까지..
신에 들인 집착도 벗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내 몸을 싣고 다니던 물건에 대한 애착이라는 것이
나에게서는 어떤 가치여서일까나..내 몸살림을보면
소박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시끌 벅적한 곳은 피하고 강 길을 나가도 인적이 드문시간을 선택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은 가리는 편이고 사람을 좋아할 때는
내가 찾아낸 정보를 전달할 때 두 귀를 활짝 열고
들어주는 때이고 사람을 가리는 것은 내가 추구하지
않는 세계의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강 길에서 늘 인사를 하는 부부팀과 한번 대화를 해보고
나더러 돈도 안되는 그런 공부를 하냐고 한 이후 말을 섞지 않게 되더라.
그래서 고개숙여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내 정보를 들어서 자기것으로 소화하려는 이가 있고
듣기 싫어하는 이가 있듯이 나도 들어보고
싶은 이의 정보가 있고(현재 자현스님의 정보를 열심히 듣고 있다)
관심이 없는 정보는 듣지 않듯이..
자현玆玄이라는 한자를 법명으로 쓰시는 분이시고 키도 큰 스님이라 
그간 공부해오신 것들을 펼쳐주시는데 재밌다 
 
내가 공부한 정보와 비춰보기를 하게 되는 셈이니까
사찰의 구조와 탱화의 양식들을 설명하시는 것에서
카발랴 세피로트나 젯상의 구조나..이러한 것들의 공식은
몸을 투사한 것이라는 것까지는 꿰기가 되지 않은 신 듯
신위를 올리고 젯상을 차리는 것은 신위는 머리가 되고
젯상이 몸이 되는 것이다
사찰의 양식도 탱화들의 구조도 잘 들여다 보면 아하..
이렇게 인체를 건축화했고 그림화했고 제사상으로 했고
카발랴 세피로트로 했고 만다라로 했고...사주팔자로 오운육기로..
비춰냈구나 알게 된다. 
내가 이해하는 우주의 구조이고 정신의 기틀이고 영혼의
반영이고 정치나 학교나..모두가 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질서)를 반영한 것이라는 것 
 
성명규지를 다시 보면서 꾼 꿈이 찬 희안하더라
초등학교 1~2학년 즘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상후의 어린 시절일 듯)가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신선처럼보이는 분이
이 아이를 데리고 느티나무 아래같은 곳에서 수학을 가르치시던데
아이가 공부한 것을 그려놓으니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는 방법은
이런 방법이다..고 성명규지에 나오는 태극도상을 나열하더라
내가 옆에서 학교수업과 이 공부가 달라서 아이가 혼돈을 겪지 않느냐?
물었더니 이 아이는 두 가지의 공부를 하고 있다고..
내가 보니 아이의 공부도 모르겠고 아이가 그린 그림은 은하들을  
신선의 가르침도 모르겠는데
아이나 신선이나 이 공부가 무엇에 도달하기위한 것인지는
모르는 듯해서 이 공부는 어디로 가지를 내는가? 를 물었더니
가지를 내는 공부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칠지도 같은 그림(主가 칠지도, 일곱촛대, 일곱탑..등을 나타내는 기호다)을
그리고 이렇게 공부과정이 진행되도록 되어있지 않냐고..
그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선재동자도 공부가 끝났으니 집에 가야 한다고 저쪽으로 가고
신선같은 이도 내 말에 자기는 답을 할 수가 없다고
이곳 어딘가에 아기가 숨어있고
그 아이가 태어나기위해서는 묻힌 폭탄들이 터질 것인데 알아서 피하라고
하고는 사라져버리더라.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고 있는데
사면에서 폭탄들이 터지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어디에서 아기가 태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나무 밑으로 길을 만들어가면 되지 않을까..하여
아기를 찾아 폭탄을 피하면서 가는 꿈
그리고 몇개의 꿈.. 
 
어떤 건물에서 아버지가 눈이 아프다고
눈을 치료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 두번 겹쳐 지나가고
(아마 남편의 투사인듯. 꿈에서는 아버지가
눈먼짓을 한 것을 회개하시는 가보다..하였고)
그 아래 지하 기도실에서는 엄마가 기도 중이라고 하는데
기도실에 있는 것들을 다 치운다고 밖에 물건들이 나와 있는데 보니까
땅콩봉지와 아침대용식 후레이크..종류들이더라
(나의 투사인듯..꿈에서는 엄마가 깊은 곳에서 있는 것들을
이제 다 꺼내놓으시구나..엄마의 트라우마..가
나의 트라우마구나..하는 생각..)
과거의 나를 거슬러가면 RNA에서 엄마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니까
DNA(정자)는 시간이라고 하였고 RNA는 공간이라고 이해한 바
공간(흙, 아담 붉다, 피)안에서 꺼낸 시간( 물, 하와 희다,)
자현스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불가의 공부는 본성을 풀어가는 공부라면
예수의 공부는 생명을 풀어가는 공부구나..즉 정자(빛)의 추구와
난자(색)의 추구가 서로 꿰여져가면서 이중나선을 이루구나 하는 생각
싯타르타 부처님은 태어나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탄생으로 아버지가 없다
부처님은 머리세계(태안)를 궁구하시었고
예수님은 몸세계(태 밖)을 궁구하시었다
태안을 알기위해서는 태 밖에서 관조해야 하고
태 밖을 알기위해서는 태안에 들어가야 한다  
외연의 선각들이 놓아준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가고 건너오는 것
그래서 다리橋가 달達이 되는 것일 터
   
태안에서 태밖으로 나오면 창조 4흘째부터 시작되는 정보바다, 시간에 속한다
태밖에서 태안으로 들어가면 창조 첫날부터 시작되는 정보하늘 공간에 속한다
선창조 3일, 후창조 3일을 합하여 33이라 하고 이 숫자를 도리천이라고 한다
단동10훈의 도리도리가 고개를 돌리돌리..는 행동이지만 이 행동을 통해서
경추에서 꼬리뼈까지 33마디를 유도리..부드럽게 하는 운동이다 
도리를 일본에서는 鳥라고 한다. 33개의 붉은 도리를 건너 어디로 가나
수미산이라고 하는 머리로 올라가는 것이고 머리로 올라가기위하여
황아黃芽 노란싹, 올리브 기름....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골방으로 들어가 겟세마네를 하여 기름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골방은 선조체(붓다체, 조가비체 창백체로 이뤄져있다)와
선잇기를 하고 있는 심뇌가 잇는 본성과 생명에 기름을 끼얹어준다.
물이 피가 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기름은 골수에서 만들어낸다
기름은 어디서 만들어 물을 피가 되도록 하는가..머리가 잘돌아간다
머리에 아주까리 포마드 동백기름...을 바른 이유
골수에 사무친다고 한다. 가슴에 쌓인다고 한다
골수에 사무치는 것은 무지함에서 당한 서글픔..그래서 배우라고 한다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함에서 생긴 서러움..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다. 타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사랑은
내가 소망하는 크기의 1/10만큼임으로
그 남은 9는 스스로가 채움해야 하는 것이라고 
 
골수에 사무치는 한은 무지함으로 당한 자존심상함이다 
가슴에 새겨지는 한은 가지지 못한 결핍, 가졌던 것을 강제로 빼앗긴 힘없음
구력具力. 지카라. 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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