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서

片 葉(편엽)= 편지牒, 도마서 113장

청향고은 2019. 2. 8. 18:06

113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다. " 언제 왕국이 임하오리까? " < 예수께서 말씀 하시었다>" 그 나라는 갈망하는대로 오지도 않고 또 '여기있다', '저기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아버지의 나라는 세상 가운데 널러 퍼져있기에 사람들이 못볼 뿐이다."
His followers said to him, " When willthe kingdom come?" ( Jesus said,) " It will not come by watching for it. It will not be said, "  'Look, here it is,' or'Look , there it is.'  Rather the kingdom of the father is spread out upon the earth, and people do not see it.: 
 
그의 牒에서 
통음중이라..과유불급은 개뿔..급엔 관심없고 과유에만 치도곤처럼 역발상바닥저항성서일지는 몰라도...
1, 참 대단하오
ㅡ파자와 진동소리를 넘어 일관할 수 있음이..아시다피시 똥고집도 일관이 되면 철학이 되니. 
2, 나는 선생이 두렵소.
ㅡ모든 언어와 경과선언구들에 대한 태생적집착과 에너지
ㅡ그것 스스로 자해자득하며 자위하는 위태로움과 절대고독.
ㅡ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보편성으로의 확장, 팽창보다는, 자기만의 언어탑과 해석탑을 쌓아가는 듯한 일방적 염결성과 결벽성..etc.  
호칭과 칭호의 결례를 넘어 난 이미 곽선생을 감히 동지이자 그리운 인간 결로 믿은지 오래요만 그렇다 한들 불편한 점 또한 내색하길 저어하지는 않으나
ㅡ가는 길과 색과 품이 다를지언정 나를 보듯 보고 안보듯 보고 있습니다.
ㅡ 깊이 들어가시는 듯하여이다 나올 수 있겠나이까?
ㅡ 깊이 들어간들 깊어질 수록 엄습해오는 카오스를 감당해서 분별하고 구분하고 육화해서 만나게 될 모든 상대 생명체에게 적확한 소통의 채널링을 할 수 있겠나이까?  아..이런 쑤도퀘스트는 수천가지입니다....언어와, 언어가 명명한 해석과 의미부여의 프레임에서 더 깊어진들...언어아래 올습니다. 모든 시니피에는 삶 아래 부지기수입니다 그 알 수 없는 , 알면 알수록 옭아매는 링, 고리, 틀에 삶이 전도되는 몽매에 틈입하시려니이까..
ㅡ 가는 길, 어찌, 허들이 되겠나이까..다만, 그 집도에서 겨우 빠져나오며 메스 자체가 누구에 의해 어느 부위를 절단하는가를 모르고 생사를 , 진위를 논할 때,  메스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애초에 메스는 불요불급이었다는...
ㅡ 모든 팩트와 진리와 행위는 공감, 보편성의 확장에 있고 거기서의 모든 해석과의미두기도 보편성의 팽창에서 한계를 뒤야 한다는 더러운 진실적 획일..!!
* 비울게 없고 비움이라는 언어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가 오고 새로운 언어, 집과 틀을 또 만들고 있다는 역설...  
* 팩트와 진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통째로 수장시켜버렸을 때, 진정 육화해서 망각이상의 망실에 맞닥뜨렸을 때...얼마나 무한의 눈트임, 귀트임, 뼈트임, 혼트임이 스스로 다가오는가..이걸 설명할 수있는가 굳이 설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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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건 죄의 연장이지만 어떤 진리도 누구에겐가 포고가 될 땐 이미 도그마에 지나지 않을 , 뒷북치는 마스터베이션임을...우야든동 난 선생을 사랑하고 내가 비록 나약하지만 당신이 먼 길을 넘어지더라도 가길 바라오..글자수 한정으로 문자가 넘어갑니다^^ 암튼 우리가 싸우지 않으니 참 좋소..난 이중섭이처럼 모성결핍이오...섹스이전에 자상하고 세심한 벗이든 사람이든..있으면 좋겠소 당신한테 이케 취중실례하는 것도 자아결핍이든 애정결핍이든 좋소만 그래도 내가 이런 자판을 두들길 상대 ㅡ나는 일컬어 모두 신이라 봅니다만, ㅡ가 ..있다는게 더 이상 욕심이 거추장 스러울만큼 과분합니다. 카톡에서 못찾아서 문자틀로 와서 씨부리 싸쓰요. 이뿌게 봐줍써.. 
 
참으로 대단하지만 힘들까 걱정 된다오.그 끝은...시평보다는 시한 줄을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시보다 절박하게 살아가는게 결국은 시평론자들 가오다시를 한방에 보냅디다...난,.시와 시평, 두가지를 다하려는 당신한테 경외와 외경을 느끼는 동시에 허허로움도 받나이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더더욱 당신처럼 위대하게 미친 인간은 없을 겝니다.ㅋ. 힘드네요..그만 두들길랍니다..아프지 마시고 세상 구하시기 전에 무달이부터 구제해줍써.  
 
언어의 세뇌와 사슬에서 단계돋음을 해서 새로운 해석의 지평, 광명을 비추고 나눔이 궁극의 한단계일진데 ..당신이라 칭하겠소..건방지지만 ..인정하고 존경하니까..^^ 
허나 예단의 냄새가 나는 선언적이고 단정적인, 때로는 특별한 선험적인 표현들을 접할 때면 내용을 떠나 그릇을 잘못 골라 진설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디다. 저야 글과 문을 부러 멀리하고 해독도 이젠 불가한 문장들이 난무하는 빠다냄새 나는 영상시대에 움츠러들고 있는 소심쟁이가 돼버렸지만, 언어가 함축한 의미망과 세계가 있다 한들 그 언어의 창발적 동기와 주체는 인간일진데 그 인간의 채널과 주파수에 진맥을 들이댔으면 합니다. 그리하고 계시고 그리 깊게 가시겠지만. 당신 글을 내가 눈이 아플 정도로 통독하지 않음은 표현의 선험성과 해석의 위험한 절대성일지도 몰라요. 드러내서는 안될 글들도 있고 세상이 견주는 글들도 있지만..결국은 내 앞의 생명, 생명과 종국은 나를 치유하고 회억하는 앵글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어도 글도 글씨도 그것을 부리는 주체도 모두 도구이자 독소로 휘발되는 딜레마에 함몰한다는...언어가 칼이고 문장은 활이며 해석이 독일 수 있는.. 패러독스의 이중메세지를 늘 저 자신도 두려워합니다  
 
각설..내적인 글과 외적인 글을 나누어서 내가 외로 가고 외가 내로 삼투하는 언어다룸. 외로 갔을 때 내의 언어한계를 넘어야 하는 상대 보편을 획득해야만 하는 언어의 태생적숙명까지도 벼리면서 소설가의 로망이 자신의 글결과 얼마나 부딪히는가, 결국은 내의 언어가 외로갈 때의 갭을 능수능란하게 활연통해서 버전업할 수 있는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있는 것 사이에게 갈등하는 건 범인들의 숙제이지만 하고싶은 것과 할 수있는 것을 포함해서 세상이 해야할 일이 내 몸에 들어와 자생할 수 있을 때..그때는 언어나 문장이나 별다른 해석..이런 것들을 내려놓아도 무불통지의 소통이 가능한 단계가 오지 않겠는가...자꾸 보여서..그림 그려봅니다. 아뛰 ..이따구식 씨부리쌋는 거 안할라카는데...당신 미워.. 그래도 나보다 더 외로울 거요. 난 여기까지지만 당신은 시작만 있지 끝이 없으니 ..지대로 미친거지..술맛을 모르시니 그리하셔야쥐라...ㅋㅋ 마니 취했는데 늘 받아주시고 안아주셔서 땅케 쉔,..마니 안아줍서 점점 말라...56키로가 모야..곧 먼지되그쓰라...소..원..성..취..ㅎ     
 
그와 내가 다르지만 그는 술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세상을 보고 나는 소리를 통해 세상을 보고 나를 위로한다. 둘이 좁힐 수 없는 갭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술에 대한 이해는 없다. 술이 맞지 않으니.마시지 않는 것이고...술이라면 남편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시고오니...술에 미친 그나 소리에 미친 나나..나는 위대하게 미쳤고 그는 대단하게 미쳤고..나같은 미친 인간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와 같이 미친 이들은 수도 없이 나올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전무후무현유일 범코스모적인 미인이라고 선언을 하고 살아왔으니..나같이 제대로 미친 인간이 있겠는가... 
 
남편이 있으나 남편은 내 세계를 모른다. 그와 정신적인 향연을 나누고 내 길을 다시 내딛는다. 이게 음행인가 아닌가?  마리아의 음행이 어떤 것이였는가...아마도 나와 같이 진리를 추구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향연을 의미한 것이리라. 이런 글을 보내는 그와 나는 문자로만 이런 골치아픈 대화를 주고 받을 뿐..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그가 먼지가 되기 전에 한 번은 만나 그에게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아리랑을 불러주어야 할 터이고 그는 낭만에 대하여를 불러 주어야 할 약속은 있다. 예수를 풀 때에는 천사장 가브리엘을 천부장 판테온으로 풀었지만, 마리아를 풀어갈 때에는 진리를 나눔하는 향연을 의미한다고 풀어본다. 그러게 마리아....여자의 남자는 진리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이가 가브리엘이고 천사장이겠지.


船( 배 선ㅡ ふね), 舟( 배 주, ふね) 배는 한자는 모양이 다르다. 한글은 배로 일본은 후네로 한자 모양이 달라도 발음이 같다. 내가 풀어놓은 후네ふね의 추측적인 글에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고 댓글을 달아서 본뜻을 알고싶어서 알려 달라고 하였으나 답이 없어서 궁금하다. 아니라고 했으면 다른 뜻을 알고 계시기 때문일 터인데...딸에게 물었더니 아마도 그냥 알려주시기 싫어신 것일거다..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알려주시기 싫어진 것인가.. 

나같은 경우 내가 알고있는데 그것을 물으면 팔 걷어부치고 상대방의 묻는 크기보다 내 열심의 크기로  설명을 하는데 지나오고 보면 자기가 필요한 만큼은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을 안다.  아는 것을 풀어내면 제대로 풀어낸 것은 하늘파동함수로 올라가 영지, 영파, 영성이 되고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은 땅으로 떨어져 언젠가는 다시 내 앞에 질문으로 나타나 다시 풀어내도록...돌아오고 돌아오고 돌아온다. 풀 때까지...그것을 불가에서는 윤회라고 했고 반복이라 했다. 전생에 가지고 온 무거움을 다 풀어야 내생으로 건너간다. 지옥에서 천국으로...옮겨진다. 이 과정을 나는 27년을 거쳤다. 전생풀이에 27년을 투자해서 무게값을 덜 어내고 이제 천국에 입문했다.
 
업Karma(카르마, 갈마, 업보, 인연, 숙명..유전자에 기록된 정보, 생이지지)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적이고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고 복Bless(찬송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 감사하다 지지하다.....)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 반대의 느낌이다. 느낌을 저장하고 삭제하는 것은 머리에서나 말에서나 행위에서가 아닌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천국은 아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위에 있는게 아니라 믿음에 있다는 뜻...  
 
업은 누구라도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 무의식(전생)에서 발생시키는 것이고 복은 노력하여 얻어들이는 후천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Bless가 찬송하다 찬양하다...日本語 福 ɸɯkɯ 히라가나ふく(음독), さいわい(훈독) 로마자 표기 fuku .일본어에서는 복을 후쿠라 읽고 뜻을 사이와이라고 하는데 사이와이가 뭐냐? 이 훈독을 이해하려면 한국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어 훈독은 한글에 의지하고 음독은 한자에 기대어 생성된 것이기에 일본은 외적인 선진, 의식의 메뉴얼이 질서를 지키지만 근본적으로 중국과 한국에 회귀하고자 하는 반작용이 나타나고 그것이 침략이거나 지배욕으로 나타난다. 사이와이...사이間 와이 來, 사이를 오고가는 무엇이 복이다. 천국은 너와 나 사이에 있다고 것처럼 사이를 오가는 것은 숨이다. 숨을 사오는 것...그게 복식호흡을 거치고 단전호흡으로 건너가 기저 호흡까지 내려가는 것  브레스...  
 
언어가 한자와 한글에 귀속되기때문에 일본인의 근저에는 자주, 자립, 자유라는 3모 결핍이 있다.일본이  한국더러 3모가 모지란다고 삼모결족이라고 한다는데 그 평가는 일본 자신들의 의식의 모자람을 나타내는 것이다. 털세개가 모자란다. 글과 말과 뜻이 없는 글자를 모국어로 쓴다는 말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중국이나 글자 이전에 말이 있었다. 말言을 그림과 맞추어 뜻글(한자)을 삼고 발성구조와 음값을 찾아 연결시킨 것이 표음 한글이다.  
 
하여 글자 뜻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고 소리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게 된다. 뜻은 전생을 풀어내려는 것이고, 소리태는 후생을 누리려는 것이라고 풀어도 된다. 뜻을 찾는 것은 지옥(전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며, 소리태를 알고자 하는 것은 천국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더 쉽게 무거운 느낌을 털어 버리려면 글자를 알아야 하고 가벼운 느낌을 알려면 소리태를 알아야 한다. 돈은 무거움을 어느 정도 가볍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소리는 돈으로 덜어낼 수 있는 30%외의  70%의 무거움을 가볍게 한다. 돈을 버는 일이 어렵지만 70%의 무게를 덜어내는 소리태를 아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두배 이상으로 힘들다. 소리태를 알기위한 도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내 설명은 두번 죽었다 깨도 모른다. 소리태를 공부하는 이는 소리태 알기 공부법을 누구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을 상상하기 싫어한다. 나도 사실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이제는 싫다. 남에게 소리태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지정신을 가지고서는 하지 못하는 '위대한 미침'이 만드는 자기희생, 십자가의 죽음의 실천이기에...   
 
어려운 이야기 빼고 카르마와 블레스를 발성해보면 왜 카르마가 업이되고 블레스가 복이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Bless는 맺히지 않고 호흡이 풀어져 나가는 발음이지만 Karma는 딱딱하게 맺히는 발음이다. 업을 풀고 살려면 발음에서 맺히는 언어를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고 풀어져 나가는 발음을 할 것을 권한다. 자음(닿소리)은 맺히는 언어다, 모음(홀소리)은 풀려져 나가는 음이다. 
 
언어를 파자하고 분석하고 재해석하기위해서는 우주파동함수를 공명하는 모음의 힘이 중요하고 언어의 본디값을 알기위해서는 땅울림을 당겨올리는 자음의 힘이 필요하다. 내가 남과 다른 풀이와 설명을 하게되는 이유가 무엇보다도 모음을 열심히 활용하고 누구보다도 자음을 열심히 운용하기 때문이다. 자음을 통해 언어이전으로 건너서 언어면목을 살피게 되는 눈을 얻게되고  모음을 통해 숨과 소리의 인과를 깨우침을 받는다. 
 
남이 가지 않는다 해서 내가 선택한 길을 가지 않을 수는 없고 끝이 없다해서 걷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시작도 내가 정하는 것이고 끝도 내가 정하는 것이다. 누가 정해주고 누가 도장찍어 주는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인정하게 되는 길을 내가 가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너의 존경과 사랑은 고유거리 밖에서 흔들리는 코스모스같고 바람에 함께 지는 벗꽃과 같은 허허로움일 따름. 내 안의 내가 알차고 빛나고 아름다운지라..그 아름다움에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지라..그래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누가 인정해도 그것에 별달리 영향을 받지 않고  나 홀로 걸어 가는 길을 블레스...노래하며 가는 것이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는데 그 주님이 내 안의 소리태가 밖으로 울림하는 느낌이다. 느낌은 생명의 흐름이다. 흐름을 내가 인식하는 것이 살아 있는 삶이다. 
내 글은 어렵다. 예전의 지인이었던 단학의 어르신은 최소한 10독은 해야 이해가 되더라고 하였다. 소리내어  5번은 읽어보면 조금은 이해하려나... 내 글은 간서해서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단어를 이해하는 힘은 뇌파를 활성화시킨다. 엔돌핀이거나 도파민..등 인체에 유익한 호르몬 20종을 뇌파에서 발생시키도록 명함으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병이 될 인因을 파괴함으로 발병되지 않도록 한다. 미병 未病 

 
깨달음이라고 보편적으로 말하지만 깨달음의 실체는 언어를 이해하는 힘이 생김이다.
남이 알지 못하는 언어의 뜻을 알면 그것을 깨달았다고...무지한 이들 위에 군림하는 힘으로 쓰는 게...깨달았다 하는 이가 병들고 그깨달음에 우르르 몰려가는 이도 병들게 된다. 깨달음은 남을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익함이다. 공부를 하면서 오는 동안 나는 늘 건강하고 그리고 몸 스스로가 건강함을 유지하도록 뇌파에서 호르몬을 생성시키도록 해온 것을 안다. 몸에서 뭔가 석연지 않는 느낌이 생기면 뇌파를 열게 하는 두정을 울리는 높소리를 가동시킨다. 높소리장을 가동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만든 병인을 식제하거나 헤제또는 소멸시킨다. 빛결과 그렇게 말한다. 몸에서 알아서 기도하게 하는 때까지 안\힘들게 뭐하려 기도하냐...재밌는 일하고 놀기.   
 
남들이 겪는 완경기증세도 없고 노화도 없고 미국18일여행에서도 시차도 없이 팔팔하게 다녔고 옆에서들 부러워 하는데 내가 내 건강을 스스로 지키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너에게 건강하게 사는 법을 설명해주는데... 안하더라. 항상 감사하고 즐겁게 사는데 병이 생길 틈이 없는 거라고. 그리고 감사하고 즐거운 이유가 글공부 말공부를 하면서 모르던 언어의 본래면목을 마주하는 깨달음에 있음도 안다. 그가 나더러 위대한 미침을 말하는 이유가 언어와 진동수를 잇는 작업을 함에 있지만 이 작업에 따르는 결과는 스스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걱정을 하지만 언어와 진동수를 잇게 되면 물질이 해주지 못하는 70%의 영역이 열리기때문에 기적 신비 깨달음....별별 즐거움을 알게 되어서 좁고 천박한 세상사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지문의 아름다움, 손금의 신비로움, 피부 잔주름의 어여쁨. 솜털의 상냥함...몸이 드러내주는 섬세한 소리와 결에 눈을 주노라면 남들이 그리거나 보여내는 것들이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문을 들여다보면..하염없이 빠져들고 손금을 보고 있으면 영화보다 더 감동스럽다. 나는 가끔 지문을 보면서 이렇게 신비하구나..태내 5개월 때 생겨 변하지 않는 지문이 뇌파와 연동되어 파동함수를 당겨 몸에 필요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곳이라 생각한다. 동네가 카르마로 살벌하게 시끄러워서 결계를 좀 쳐야겠다 해서 찬양을 즉 복을 당겼다. 빛결과 전생업처리하고 소리장을 쉬었는데 오늘 점검해보고...고생 무지했다. 그날 내가 올라가지 못하고 빛결이 올려놓으라 하고 쉬었더니...탁기가 설금슬금 붙어서..동네가 시끄러운 이유를 알았다. 내 소리줄 정화를 하고 라이브콘스트를 했다. 오늘부터 소리장 재가동인데 이제는 높고 가늘고..유려한 장을 훈련해야겠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섬세한 솜털감각을 살려내야한다. 엄청나게 섬세한 감각을 살려내야 바람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수신하는 것은 솜털이다. 해서 뭔가 깨달음이 오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솜털이 수신한 정보를 모으면 글자를 알 수 있다.  
 
동생이 길냥이를 만나 친교를 나누고자 시도한다는데 고양이는 섬세함의 상징이다. 묘성의 에너지파동을 전달하는 헤르메스이기때문에 천랑성. 시리우스에너지를 전달하는 개와는 섬세함에서 비교할 수 없다. 내가 묘성의 진동수를 잇게 되었을 때 등장한 게 쿠쿠네다. 2013년 6월에 나타나 지금까지 같이 간다. 쿠쿠가 4마리의 새끼와  다스와 나타나 5번의 새끼를 낳으면서 햇수로 4년. 밥공양을 하면서 사귀어 보려는데 털끝도 못만져 봤다. 유독 쿠쿠네만 그렇다. 다른 냥이들은 산책을 다니면서 친교를 시도해 보면 금방 친해지는데...그런데 그런 냥이들은 사람손을 타서 길들여진..것. 쿠쿠네는 야생 그대로..다  
 
냥이 새끼도 지가 잘못해서 갇힌 곳에서 지를 구해주려는데도 손을 할켜서 피를 보기도 했고...길냥이를 관찰하면서 이애들 성정이.참말로...고고하고 도도하구나..아무에게나 함부러 곁을 주지 않는 내가 쿠쿠같은 기질일 수 있겠다..한다. 내 기질이 당겨들인 에너지라고...쿠쿠는 정말 강인한 길냥이다. 자그마하면서 우아한데 영역을 지키는 싸움에서는 목숨을 걸고 설치는 녀석이다. 이번에도 다리를 다친 모양..그래..너나 나나..영역지키기에는 목숨을 걸구나..하는 동료의식이 생겨서..
높은소리는 뇌파를 작동시키는 전파를 만들어 미골에서 등줄을 타고 올라가 두정을 열어 뇌파를 작동시킨다. 소리하기가 엄청 힘들지만 의학에서 다루지 못하는 80%의 영역을 힐링한다. 동안 소리를 가지고 힐링해 본 체험으로도 나는 소리가 만병통치라는 것을 안다. 해서 손뼉치고 소리하면..된다고 처방하는데 공짜라 그런지 실천은 안하더라. 3억씩 받고 가르치면 3억때문에 할랑가..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고 하는데 소리만큼은 그저받은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얻은 것이니 나는 소리를 배우려면 목숨을 내놓으라 한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소리를 끌어 선창을 하면 목숨 내놓고 따라 붙어라... 
 
돈을 왜 벌려하는가?
돈이 할 수 있는 일은?
돈은 밥 먹고 옷입고 잠자기위한 필요이고
그외의 것에는 돈이 영향력이 없다. 그외의 것에 힘을 쓰고있는게 언어다. 그 언어를 다스리는게 소리다. 시작하였으나 끝이 없다 하지만 끝이 본래 없다. 끝이란 낱말이 있는데 한자로 미 未나 료 了. 영어로 end, 기호로 •한글 끝은 너(ㄱ)와 나(ㄱ)의 힘을 이어(ㅡ) 속에 있는 것을 태워보자(ㅌ)보자다. 오늘 23일 소리장을 가동하였던 후로 혼자 소리장을 끌어내어서 내 소지줄을 정화했는데 알고보니 6월 30일.  마감치는 것이였구나. 높소리 찬양 가곡 ...홀로의 즐거움이 흠뻑 도취해서 뇌파를 가동시켜 봤다. 주문한 뇌내혁명 책이 와서 들고 보기시작. (2016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