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 신계頣縘

영이 성장하는 만큼 육이 보인다

청향고은 2022. 6. 18. 12:37

 

『불멸의 열쇠』를 보면서 내가 공부한 것과 이 정보가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이 글을 내보낸 브라이언 무라레스쿠는 불멸의 열쇠를 잡았을까나...궁금해지지  오늘 책을 다 봤는데 작가도 계속 추적을 한다고..초소형가정교회라는 개념을 설명하던데 내 언어로 설명하게 된다면 붉은 피톨은 포도주로 흰피톨은 맥주로 환치하여 흰피톨과 붉은 피톨을 활발발하게 하도록 열을 가하는 것이

환각제거나 마약의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나로서는 고함지르기를 통하여 피를 가열한다고 생각한다.

 

피를 뜨겁게 하면 드러나는 현상이 피에 저장된 정보가 이미지로 나타나고 이 현상을 환상을 본다 환각이다..고 하며

영안이 열리면 보인다고 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온에서 알 수 없는 느낌이 체열이 올라가면 나타나는 것이고

고열에 시달리면 생기는 환상, 환청...이런 것들이 사실 영적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설명이 된다는 것이지.

정상적인 온도라고 하는 36.5도에서는 알 수 없는 느낌과 이미지가 고열로 올라가도록 인위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술이나 마약이나 담배나 약물이나..그런 것들이라고 보는 것

 

영성이라는 것이 스피릿이라는 것이 발효주, 증류주라고 하는 것에서 아하..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보게 되면서

종교란 결국 냉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열된 시선으로 보도록 하는 달콤한

뇌를 포도당으로 세뇌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지. 물론 물이 피가 되는 과정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

인류의 노력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고 물이 피가 되는 과정을 가나혼인잔치스토리로 풀어내어주고 있거나

겟세마네기도에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지.

 

물이 피가 되는 과정..보리를 물에 담아 발효를 시켜서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개입하는 손.

손에 있는 균류를 맥각이라고 하거나 버섯이라고 하거나 하는 설명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나..

손가락이 버섯으로 설명이 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깜부기에서 발생하는 버섯..

손가락이라는 버섯들이 손바닥이라는 깜부기에서 솟아난 것으로 설명하면 안될까?

보리와 물에서 손이 더해지면 손에 있는 균이 발효를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손맛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손가락끝에서 나오는 균들이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다르기 때문일 것

 

나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몸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때문에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위해서는

몸에 대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몸과 선잇기가 되지 않는 정보는 가라지이고

선잇기가 되는 정보를 알곡이라고 한다고..그렇게 정보의 진위를 가린다.

내 몸이 진위를 가리는 시금석이거나 천사옥대라고 한다고...

그대나 나는 같은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하나의 원리라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 책을 보면서 2008년에 만나게 된 인연을 떠올리고 이 책을 권勸했다.

 

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권하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려준 기호인데

너에게 내 의지를 투사하여 내 의지대로 너를 움직이게 하고자 하다는 것이

내가 풀어보는 권하다의 뜻으로 너도 나도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뜻이다.

어이 왜 이 상징이 그런 뜻인데? 라고 물으면 머뭇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雚에 力을 덧붙여 '힘쓰다'의 의미로 사용한다.

雚 금문 물고기를 잡은 황새. '雚(=鹳) 황새 관' 새(隹) 머리 부분에 두리번거리는

두 눈(吅)과 머리 위의 깃털 모습(艹)을 가진 황새의 모습을 본떠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올빼미든 부엉이든 황새든..공통점은 '새'라는 것이고 새의 특징은 '날개'라고 보면

새가 날개짓을 반복함으로 날기를 훈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권할(권)은 부엉이가 노력하여 끊임없이 재촉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부엉이는 숲 속에서 끊임없이 오- 오- 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마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숲 속에서 그만 떠들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촉구, 설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권(勸)은 거듭 충고한다는 의미로 파생되었고 강권하다, 설득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고 하는데

올빼미(부엉이)가 등장한다는 것에서 그대의 사유가 펼쳐져야 한다.

영어권에서는 부엉이와 올빼미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전부 'owl'로 쓴다.

Owl로 퉁치는 영어권과는 달리 프랑스어권에서는 부엉이는 'hibou', 올빼미는 'chouette'로 서로 구분한다.

일본어로는 부엉이를 뜻하는 '미미즈쿠(ミミズク)'와 올빼미를 뜻하는 '후쿠로(フクロウ)'가 구별된다.

서구의 우화 등에서는 지혜로운 새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올빼미를 지식의 새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혜가 강조되는 아테나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올빼미의 이름은 '글라우피코스(Glaupikos)'.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 것도 사실은 부엉이가 아닌 올빼미다. 그 밖에도 서구의 우화에서 숲속에 뭔 일이 터지면

올빼미 노인이 어쩌고 저쩌고 했다거나 가장 지혜로운 올빼미 박사님에게 찾아갔다나 같은 구절이 종종 보인다.

자유를 상징하는 동물로 나올 때도 있다. 올빼미에 대한 서양권의 긍정적 인식은

기독교가 퍼진 이후로도 변함 없이 유지되었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까마귀가 효의 상징이었다면 올빼미는 고금을 통틀어 ‘불인(不仁)과 악인(惡人)’의 상징으로 치부되어 왔다.

예로부터 어미를 잡아먹는 흉악한 새로 악명을 떨쳤다. 올빼미 효(梟)가 붙은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죄인의 목을 베어 저자거리에 내거는 것을 효수(梟首)했다고 했고, 능력은 확실한데 인성에 논란이 있는

인물들도 효웅(梟雄)이라고 불렸다. 중국에서는 특히 대접이 좋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중국에서 올빼미는 암살자나 살인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일본은 동양권 국가들 중에서 올빼미를 문화적으로 좋게 여기는 나라이다.

마네키네코처럼 올빼미 인형을 집이나 가게에 두면 복이 온다고 믿는 미신이 있다 고 한다.

 

동과 서가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이유야 동은 봄이고 서는 가을이니 당연하겠고

지식을 숭상하는 서양과 체험(지혜)를 추구하는 동양의 위치를 알면 이해가 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점도 갑목인 우리나라와 을목인 일본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고 한다.

 

한국을 간방이라고 하는데 그 간이 인체의 간이고 간은 목이라고 하여서다.

간목은 간이고 을목은 쓸개라고 풀어도 된다. 간담이라는 것이 갑을이 된다는 것이지.

간干, 즉 천간의 木이 갑을이고 지지는 인묘진이다. 하여 이 다섯개의 문자가 다섯마디 예언이 되는

봄에 속한 오행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바울의 다섯마디 예언을 하도록 힘쓰라는 그 말을

나는 이렇게 천간지지오행으로 풀어내는 것이지

 

천간갑을이 지지로 드러나게 되면 인체의 간담으로 설명이 된다.

인체의 간담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간담은 문자언어와 상관이 되는 장기다.

인체의 장기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장기가 쓸개膽라고 지시하고 있으니까

그대의 언어살이를 건강하게 훈련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간담이 약해지면 말습관이 부정적이게 된다는 것이고 부정적이 된다는 것은

언어의 무게를 담당하는 에너지가 쇠衰하였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언어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이 되고 화를 내고..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이지.

 

그대의 갑을인묘진오행이 건강한가는 체크하는 방법은 물창고인 진辰,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길어올려보는 것이다.

그대의 언어살이의 나들이가 얼마나 되는지..그대가 수용하거나 이해하는 언어만을 고집하는지

낮선언어에 대한 그대의 거부벽이 얼마나 되는지..스스로 파악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낮익은 언어를 고집하는가 낮선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낮선것에 대한 두려움의 반응이다.

내가 아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낮선정보를 마주할 때

낮섬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림은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지

용기를 기루는 힘을 간담이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장기에서 80%가 상해도 재생되는 것이 간이라고 하지 않는가..간은 그만큼 도전적이고 모험적이고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자 늘 설레는 장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간을 도발시키는 운동이 나루턱을 누르고 악악거려보면 그대의 갑진간담이 드러난다는 것이지.

 

턱은 진해다..물바다로 나가는 나루다. 해마가 통통하다는 것, 기억력을 통하여 간담의 상태가 나온다는 것이지.

그래서 그대의 간담상태를 파악하는 곳은 귀다. 귀를 보면 그대의 간담상태가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간담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방법이 일어나면 동서남북을 향해 고치를 세번씩하라고 하는 수련법을 이행하면 된다.

고치법이 상하악 턱나루 누루고 악을 쓰는 것이다. 이 훈련이 황정경에서는 현응사혈을 열어서 훈련하라고 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스트레스는 문자해독력과 언어이해력에서 생기는 것이고

문자언어를 해독하거나 풀어내어 피가 되고 살이되게 하는 장기가 간담이고 '인仁'하라고 하였다.

어질어라. 다시 말하면 풀어라 문자 언어가 담고 있는 뜻과 이야기를 풀어라 라고 해석한다.

어질다를 그린 상징이 仁과 賢이 있는데 仁은 인체人와 천지二와의 관계로 비물질관계이고,

賢은 신우패臣又貝로 눈으로 파악하고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아서 인식하게 되는 물질관계이다고

나는 풀고 있는데 천지는 불인하다고 한 불인을 내 몸에서 인하게 하는 것이

상하악(상악은 천, 하악은 지)을 훈련하여 문자언어의 바탕 에너지를 파악하여 다스릴 것은

다스리고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고, 현은 객관적인 정보값을 산출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많이 보고 많이 만지고 많이 걸음..여행을 많이하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어질다는 것은 묶인 것을 풀어내는 것이고 풀어진 것들을 체험하는 것이다.

봄에 태어나면 나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이유가 어질고자 하는 천지의 모습이어서다.

묶인 것을 풀어서 새록초록 삼라만상을 푸르게 하는 에너지가 봄이기에...

 

많이 걸으라 그리고 노래하고 손뼉을 치고 웃으라..그것이 간담을 건강하게 하는 양생법이다.

간이 조마조마하다는 말을 한다. 간담이 서늘하다고 하기도 하고 간이 부었다 쫄았다..등등

간과 상관되는 것은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말을 대처하는 능력을 좌지우지하는 곳이 쓸개라는 것을 기억하면

봄나물의 맛이 대부분 쓰다는 것이고 쓴 나물의 대표가 쑥인데 봄에 쑥을 캐서 떡을 하거나

국을 끓여서 먹었던 이유가 봄에 속하는 간담에 에너지를 업데이트를 하는 방법이였던 것이라고 본다.

해마다 나는 쑥을 캐서 쑥떡을 해서 나눠먹곤 했는데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그 뜻이 동물과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문자언어에 있는 것이어서라고 본다.

문자언어를 만들어내는 장기가 간담이어서 간은 마늘로 담은 쑥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

 

책을 권한 도령에게 오늘 내가 보고 보내줄까나 했더니 이미 주문을 했다고..

유란시아서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무 방대해서..라고

그리고 관상학덱스트로 오늘 사진 한장 찍어 보내달라고 했더니 사진을 보내 왔는데

24살의 도령(1984년생)이 38세가 되었으니  많은 시간을 벌려놨는데도 추구하는 세계가 닮아 있으니

시간이라는 거리는 사라지게 되더라.

 

24살때 고려대 식품영양학과를 다니던 시절에 카페(천하대란과 개벽)에 같이 공부하시던

선생님이 회원으로 계셨던 곳이고 나름대로 최신정보를 볼 수 있고 지성집단들의 모임이라

기억이 되는데 지금도 연락을 하면 소통이 되는 분들이 계시지만 

너무나 탁월한 지능이라 내가 따라가지 못하여 소식을 접고 있는데 필요하면

나는 안테나를 가동시키는 용기가 있으니까 기억속에 정보주소는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연도 만들던 시기였고 그 때 이 도령이 내 정보를 마주하고 내 글에 공감대를 만들었는지

나를 만나고자 대구행을 하였는데 내가 다룬 정보계와 이 젊은 이가 추구하던 정보의 결이 다른데

이 도령은 제타토크류(외계인)의 정보를 섭렵하고 나는 남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다루는가?

내 스승이던 분의 세계관이나 다루는 정보의 사실성을 확인하고자 하던 자세였다.

이 카페에서 오간 다양한 정보들과 인간관계에서 빗었던 이야기들이 있지만

황 도령의 인연고리를 생각하면 지몽선생님이 소환이 되네 한글경까지 내가 설파하던 곳

그래서 카페주인이 가지런하게 정리를 해주시기도 하였는데

카페를 통해 내가 많이 성장한 시절이 있었구나 한다

 

젊은이의 알고자 하는 세계보다 내가 수행하고 있던 소리선을 설명하고자 했는데

소리력을 테스트해보고 세상 좀 많이 돌아야 겠다..이렇게 순수해서야 악착같아야 뚫어갈 수 있는 소리세계를

공부하기 힘들겠다 했는데 이 도령도 그것을 알았는지 언젠가는 반드시 소리를 하게 될 거라고 했고

그렇게 헤어지고 어쩌다 가끔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양자파동이 점프를 했는지

톡을 하여 이제 소리선에 도전해 볼 시기가 아닐까 했던 것

 

이 도령은 키가 크다랗고 아주 선량한 인상이였는데 오늘 그간의 에너지장을 보자고

사진을 보내달라 했더니 아저씨 포스가 풍기는 나로선 생각외의 모습이 왔다 또렷해진 것인지.

 

불멸의 열쇠가 황도령에게는 이해되어 재해석될지 보고 간략해 달라고 했는데 나는 이미파악 끝.

책을 펼치는 순간에 에너지파악이 끝났다고나 할까. 내가 펼치는 소리선의 양자파동의

고저장단에서 이 작가의 정보값을 달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지 

그런데도 상당히 흥미로운 것은 글쓴이의 추구점이고 이 분이 그리스어에 능통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다루고자 하는 언어에 대한 조예가 있다는 점에서 내용이야

늘 그러하듯이 그렇지만 그리스어를 다루는 부분이 흥미롭다는 것이지

정보를 파악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보는 내가 다루는 소리장안에있으니까..

 

지금 내가 다루고자 하는 정보는 문자상징이나 언어에너지값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몸의 어디와 연합하면 어떤 정보를 열어서 나로 깜놀하게 황홀하게 할 것인가이다.

영이 활동을 하게 되면 영의 자리에서 육의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육을 안다는 것은 영이 활동을 한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다.

육으로 육을 알려고 공부를 한다 육은 영을 알 수 없지만 영은 육을 알 수 있다.

영은 영을 알 수 있는데 영이 영을 아는 것은 같은 레벨과 레벨아래의 위치에 있는 영이다.

육이 육을 아는 원리와 같은 것이지 당연히 상위레벨의 영이나 육은 위치가 낮은 자리에서는 알 수 없다.

영이 성장한다는 것은 육을 보는 관점의 변화를 통하여 확인하게 된다.

이 원리를 육신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훈련은 영육간에 유익하다고 한 것이다.

육을 훈련한다고 영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이 성장하는 훈련은 육도 건강하게 관리된다는 의미라고 나는 이해한다.

내가 영성을 훈련하게 되면서 육체도 아름답게 관리가 되는 체험을 하고 있기에

 

엇그제 벤치에서 태클을 걸어서 나는 수를 세알라고 저주파를 발동시키는 대처로 그 환경을 진압했고,

어제는 심, 한여사님이 내가 도착하기 전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이름부르기를 했는데 

강 길을 따라 오면서 김옥희, 최덕교, 이수연, 홍순악, 허임복,김명자 우태지...등의 이름을 불러서

노래가락을 붙여가면서 신바람을 만들어내었고 소리의 마중물을 부어 입산을 해서 득음훈련을 했는데

요즘 소리훈련을 하는 자리를 정해놓고(이로운 여사님이 운동하는 자리) 그 곳에서 동영상을 찍어가면서

소리를 기루는데 혼자 신나게 고함을 질러가면 나만의 충일함이 가득하지.

 

김윤현 선생님을 만나서 같이 소리를 질러보았는데 84세의 김선생님의 소리력이 짱이시더라..

나의 선입감을 넘어선 김선생님의 소리내공에 내가 놀래고 김시인님도 내가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은 아시고 내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시는데 같이 소리를 질러보면서

여리여리해보이는 내가 그렇게 억척같이 따라붙이는 나의 기세에 놀라고..

둘이 서로의 에너지에 놀람. 김시인님은 아마도 그렇게 고함을 지르신지가 처음이실테니

기침에 가래가 나오시겠지..김시인님의 내공의 세계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분도 생사를 건너다니시는 분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니까 산에서 만나 소리를 통하여

대화를 하는 관계가 되는 것. 처음부터 야호 메호,..로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니까

 

그리스어나 한자나 상형자다

문자자체가 이미 상징이다 이것까지 닿아야 알 수 있는 세계 문자가 상징이고 죽은 자이며

저승이고 문자를 언어로 발화하는 자가 산자이고 이승이라는 이 위치를 알게 되는 눈을 영안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강 벤치에서 여전히 고함지르기를 하는데 한여사님은 욕 얻어먹기 싫다고 안하신다길래

욕을 얻어서 먹으시냐고 주는 욕을 저는 반사..하고 돌려보낸다고 온데로 도로가라고..그럼 한여사님은 닫고

심여사님은 어떠시냐고 남의 말에 눌려서 내가 건강하려고 공부하는 것을 쉬는 것은 정말 욕먹는 짓이라고

그랬더니 맞다고 내 건강은 내가 챙기는 것이지 욕한다고 안하겠냐고 그래서 둘이 같이 악을 썼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좀 조용하시지..하길래 인생은 시끌벅적해야한다고 조용은 무덤에 들어가면 충분히 조용할 것인데

살아서 조용한 것은 훈련하지 않아도 되지만 살아서 살맛나도록 시끌벅적하는 훈련은 해야 한다고

발악바락..옆 벤치에서는 이제 태클도 하지 않더라..헤어져 그 앞을 지나가면서 욕을 한마디 노래로 불렀더라

입산해서 득음수련을 하면서 소리통을 기루어가는 이 훈련을 위하여 그간 나를 비움이 이뤄졌던 것이구나

새롭게 인식이 되더라.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고 채움은 비움으로 다시 넓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영아가 자라고 있구나 한다

신태영아가 태어나서 오개월이 되면 태동을 안다고..내가 그 단계구나..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