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 신계頣縘

신묘장구 대다라니,,영체 탯줄만들기

청향고은 2022. 2. 13. 20:10
언어도단, 교외별전, 후생가외....
자음의 세계를 건너가면 모음의 세계가 나온다
모음의 세계를 '궁상각치우'라고 하는데 오음의 흐름을 오행이라고 한다
옆나라에서 あいうえお 다섯모음만 한다는 것에서 오음이라고 하는데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을 발생시키거나 인지하게되는 파동함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ㅓ라는 모음을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ㅓ 모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기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 궁금해지더만 까마귀烏를 길조로 알고 있는 나라에서 까마귀의 발성인 '각성角聲'의 상징음인 ㅓ 모음은 풀어내지 못한 것인가? 일본의 정보를 다루는 관점을 보면 얼마나 정교한지 감탄하게 될 때가 많다. 귀멸의 칼날이라는 애니메이션이나 주술회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거나 신세기에반게리온을 보거나..일본의 문화예술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정보를 분석하여 스토리텔링해내는 방법을 보면 저들의 피속에는 어떤 정보가 들어있는 것이고 내 피속에 흐르는 정보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내가 이해한다는 것은 일본의 문화예술을 공명할 수 있는 정보체가 있어서겠다는 것이고 일본의 망가가 전세계에 스며든다는 것은 세계적인 유전자를 일본 망가나 애니메가 건드려 공명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겠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한동안 일본애니메를 분기마다 새로나오는 작품들을 섭렵하는 것이 공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유행한다고 하는 정보들을 보면 그 흐름의 근간을 보게 되더라. 다시 말하면 인류지식이 문화가 예술이 다루는 정보는 어디선가 출발하여 어딘가 닿게 되는 그 과정을 성장스토리라고 하게 되는 것이고 성장스토리의 기승전결은 어떤 정보든 그 맥락은 같다는 것이지. 그것을 사성이라든지 사복음이든지 사주든지 사방이든지..4자로 시작하는 모든 언어에 내재된 뜻이라는 것.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흐름을 사고라고 하는데 이 사고를 다시 사성, 고, 집, 멸, 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의 사성제라고 한다. 생은 겨울, 노는 봄, 병은 여름, 사는 가을로 대입하고, 사주에서 인신사해라고 하여 역마살이라고 하기도 한다. 자오묘유라는 가로세로(천문지리)축과 진술축미(인문풍수)라고 하는 축을 따라 인신사해(문화예술)로 8자, 태극의 흐름을 만들면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오묘유는 천축이라고 하고 진술축미는 지축이라고 하고 인신사해는 인축이라고 한다. 북극성을 천축이라고 하고 해를 지축이라고 하고 사람을 인축이라고 한다.  내 사주의 지지에는 인축에 속하는 인신사해가 없다. 천축에 속하는 자오유와 지축에 속하는 축으로 4지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천축에너지를 딛고 공부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인지..라는 생각을 한다. 꼬치꼬치 캐묻고 파들고 풀어내고 그것을 딛고 다시 의문하고 ...를 반복하면서 내가 타고온 천복(사주여덟글자에 담긴 수상행식)을 마주하는 것인갑다 한다. 행복하여라..라는 것이 하늘이 몸으로 땅에 발현할 때 가지고 오는 깃발旗이라고 한다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다스리고 지키게하자의 형상과 모양을 피에 새김하여두고 그 정보를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좌표로 삼을 때 '행복하여라' 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무임승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해산하는 수고, 피흘림과 땅을 경작하는 힘씀 땀흘림을 통하여 얻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것, 그것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무임승차하면 행복하여라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 
 
요즘 걸으면서 걷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반복의 노동인지..라는 생각을 하였다
勞 는 일할 노이고 努는 힘쓸 노이다. 火火冖力=勞, 女又力=努
힘쓰다는 努는 종奴이 힘쓰는 것으로 남종여비라고 하여 종노라고 하면 남자의 일을 하는 에너지를 뜻하고 여비라고 할 때는 여자가 하는 일을 하는 에너지를 뜻한다 婢
남종이 하는 일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이고 여비가 하는 일은 아기를 낳고 기루는 일이다. 아마 꽃화를 두개 쓰는 勞는 여비의 일을 뜻할 것이다. 남종여비라고 압축한 정보가 해산하는 수고를 하고 밭을 갈고 경작하는 수고를 압축한 말이구나 이해되는 아침이네 왜 일할 노와 힘쓸 노가 있는것이지? 라는 의문을 하고 그 의문의 답을 성서에서 찾아내는 것이고 이 답을 찾으면서 내가 남종과 계집비라고 하는 길들여진 개념에서 벗어나 사람이 행복하여라..라고 하는 목적에 도달하기위하여 천축과 지축을 오가면서 노비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구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 천축과 지축이 연합하여 연대하여 만들어낸 인축에게 부여한 '목적'이 되는 것이고 인축은 하늘에 빌고 땅에 빌어서 그 은총을 통하여 행복을 인식하게 되면서 천벌을 천별로 한 획을 더하고 지벌을 지별로 한 획을 더하며 인벌을 인별로 한 획을 더하는 것..이것을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고 하는 것이고 한 획을 얻는 것을 한소식한다 점심한다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등등의 언어로 표현을 하게 된다. 천축이나 지축은 언어가 없다. 천축은 파동함수로 퍼져있고 지축은 주파수로 생수와 성수로 숫자화되어있다고 한다. 그 사이에서 역마로 달리고 있는 인축에서 파동을 주파수로 주파수를 파동으로 매거나 풀거나 하는 오성, 오음, 오온, 오행체계를 만들어 행복을 만들어낸다. 幸福이라는 한자를 잘 들여다 봐라. 幸은 다행행이고 이 행에서 한 획을 빼면 辛이다. 매울 신이라고 하는데 이 한자는 죄인의 몸에 죄목을 새김하는 먹침을 뜻한다. 지금으로 하자면 전과자라는 꼬리표다. 이 辛에 한획을 올리면 다행, 즉 죄에서 벗어남이 된다. 원죄라고 하는 개념, 원죄는 태안에서 벗어남이라는 뜻이다. 허물에서 벗어남, 그것을 몸에 새기고 있는 것이 탯줄을 자름받는 매운 기억이 배꼽에 새김되어 있다는 것이고 배꼽이 있다는 자체로 전생이라는 세계를 통과한, 그래서 자궁이라는 막에 갇혀있었던 시절이있었다는 하나님의 한점 말씀이라는 것이다.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이 문장을 나는 어디서 체험하고 확인하고 분석하고 증명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는데 배꼽臍(月齊)이라는 우주의 중심, 북극성이 있는 자리, 탯줄이 시작되는 자리, 착상란 7일째 천유탐랑으로 나가는 구령삼정주가 풀어내는 14일간의 정보를 마주하여 가슴에 닿는 정보를 추적하게 된다. 수정란이 착상란이 될 때 그때 시작되는 것이 탯줄이고 수정란의 배꼽이다. 배꼽에서 심장박동이 되기까지의 14일은 감춰진 시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주문이 구령삼정주가 된다는 것이고 이 주문을 딛고 심장박동이 시작될 때의 정보가 반야심경이 되는 것인데 나는 반야심경을 딛고 구령삼정주로 간다면 빛결은 구령주를 딛고 반야주로 나오게 되는 것인갑다.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주문을 풀다가 에너지가 되지 않아 멈추고 있는데 다시 시도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령삼정주의 산스크리트어가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 하는 것이것. 구령주는 한자로 이뤄진 주문이고 한자로 변환하기전의 주문인 신묘장구대다라니가 구령주의 파동함수를 담고 있다는 것이지. 구령주는 한자여서 뜻새김을 하는데 좋고 신묘장구는 파동을 따라 흐르는 소리를 맛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신묘장구를 해보면 울림값이 상당히 매력적인 주문이다.  해안의 새를 잡았으니까 이제 신묘로 가보자..흉성을 열었으면 그 자리를 딛고 심장박동이 시작되는 그 울림을 느끼려는 것이 만들어낸 것이 신묘장구대다라니. 주문을 하나씩 클리어하는 것도 신나는 공부이기는 하구나. 구령삼정주-신묘장구대다라니-주기도문이 삼종세트가 되구나 구령삼정주는 수정란에너지, 반야주는 심장박동란에너지..그 사이를 연결하는 탯줄이 신묘장구...그렇게 되는 것이로구나. 일단 신묘장구부터 다시 외우기.. 
 
행복감과 같은 말이자기만족감, 자만감이다, 자존감이라고 하기도 한다
자존심과 자존감으로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 스스로를 세우고자하는 과정을 자존심이라고 한다면 스스로가 섰음에 대한 평가를 자존감이라고 한다고 이해한다 
 
자존심과 행복추구와 같은 선에 놓는다면 행복감과 자존감을 같은 선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치유가 되기도 하고
성장통이라는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행복추구의지가 있기때문에 행복감에 닿는 것이고 자존심이 있기때문에 자존감에 닿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은 행복감이고 그 행복감이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행복추구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반복하여 두드려대는 것은 글도 반복을 통하여 익혀지고 쇠뿔을 단김에 뺄 수 있도록 삶는 과정이 되기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언젠가 내 글을 보던 이가 그 글이 그 글이라고 하던데 그 분의 관점에서야 그렇게 말하지만 내가 그 분을 위해서 글을 두드리는 것도 아니니 나로서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내공을 쌓음蘊하기위한 것임으로 개의치 않게 되는 것이지. 내 글은 내 성장기록이고 나와 같이 물주기를 하는 이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정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물주기..즉 기도법을 같이하는 도반에게는 나눔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하루해가 뜨고 지는 것은 별달리 변함이 없는 것이지만 해가뜨고 지면서 생기는 변화가 사계절이 되고 일년이 되는 것이듯이 오늘 글이 어제 글과 그다지 별로 다를 것도 없지만 어느날...아...이런 것이였구나..하는 결실이 생긴다. 그 즐거움을 나는 행복감이라고 하고 글을 두드리는 것을 행복추구라고 한다. 글을 통하여 행복추구를 하는 이가 있고 다른 것을 반복함으로 역시 행복추구를 하는 이가 있다. 행복감은 행복추구과정, 즉 지루한 반복을 거듭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성도의 인내를 가장 큰 덕이라고 했다. 반복..지루한 반복이 만들어내는 것이 삶는 것이다 소뿔을 단김에 빼기위해서는 물에 푸욱 고으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쉽게 뿔을 뽑을 수 있는 것은 푸욱 고아서 살과 뼈가 분리가 되었을 때이다. 그러하듯이 매일의 반복되는 글을 통하여 나를 푸욱 고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고 그리고 내 글을 신장투석을 하면서 보아주시는 분이 계시기때문에 내 글이 그 분의 피에 새김되리라 생각하는 그런 감사함이 있다. 한 사람의 구원이 전 인류의 구원이라고 했다.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결이 되어 스친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지 않겠는가 
 
34년째 같이 오면서 소리파동과 주파수를 공유하는 빛결이야 이제 나보다 더 수승하여 청출어람처럼 내가 툭 던지는 말을 더 세련되고 품위있게 풀어서 보내준다. 이런 즐거움. 내 글체를 이전에 스승님이 몽환체라고 하여 난수표라고 하셨을 때 빛결의 문체를 보고 간결하고 아름다와 글몸이 참 아름답다고 글살이 덕지덕지 붙은 몽환스러운 기운을 풍풀 풍기는 나에게 문체를 좀 다듬으라고 권했던 적이 있는데 빛결의 문장보면서 느끼는 것과 딸의 문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덜어낼 군살이 없이 딱 쓸말만 만들어내구나 하는 것이다. 딸의 문장을 보게 되면 야..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쓰냐 빛결도 이렇게 덜어낼 것도 없이 단아한 글을 쓰는데..하곤 하는데 나의 글은 비문투성이라면 딸과 빛결의 문장은 명문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글살을 많이 붙이는 것은 글재산을 모으는 방법이어서다. 글을 두드리게 되면 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보를 가능한한 많이 올린다. 카스토리의 4천자제한을 꽉채우려고 하는데 간단한 문장으로 끝날 수 있는 정보도 나는 가능한한 4천자를 채우고 다시 시작하여 4천자를 채우고..그렇게 글살을 쌓아간다. 하루 2만자까지 두드려낼 때가 있는데 이렇게 모아둔 글살을 놓고 군살을 깍아가듯이 글을 추리면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되고 아하..이렇게 해석이 되기도 하는 것이기도 하구나..하는 발견을 하면 이전에 두드리던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으로 글을 다시 두드린다.  
 
그래서 내 글은 두드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나만의 글체, 글몸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몽환체의 글도 좋다.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글인데 내가 닿고자 하는 행복감에 도달하는 과정, 행복추구권리를 주장하는 글이 되었을 때 무엇인가 좀더 시원하게 설명이 될 것 같은데 ..그런 가칠가칠..즉 섹스에서 오르가슴에 닿기위하여 지극정성을 다하는 그런 글섹스..가 된다. 이전에 글과 글을 서로 나눔으로 글섹스라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글을 딛고 서로 소통되는 관계에서 만들어내는 그런 일체감...시공이 없는 행복감, 이런 상태를 상락아정이라고 하는 것일까나..하게 되더라. 그 인연을 통하여 내 세계가 확장되고 발전하게 되면서 그 분이 나에게 나눔한 행복감을 나도 너에게 나눔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나로서는 그분에 대한 보은이라 생각하게 되더라.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 분이 나에게 도달할 지점, 계영사를 통하여 두꺼비의 구원을 좌표로 주셨던 것, 그리고 모든 것이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 거기에 하늘은 깃든다는 문장으로 나의 길을 열어주신 것..그것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좌표를 놓아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행복하면 너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혼자면 잘 살면 무슨재민겨..라는 것이 사람이면 가지고 있는 양심이라고 ..너에게 내가 다가가서 너를 행복하게 할 수 있으려면 어떤 실력을 갈고 기루어야 하는 것인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고 '고苦'가 있기에 그 고를 딛고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 고를 풀어내는 것이 해다. 괴로움을 풀어서 행복이 되게 하는 것이 해탈이다는 것이지. 고가 있는 것은 해를 하기위한 것이다는 것. 苦를 괴로울 고라고 한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는  
 
1.    (쓸 고)
a.    쓰다
b.    괴롭다
c.    애쓰다, 힘쓰다
d.    많다, 오래 계속되다(繼續--)
e.    거칠다
f.    엉성하다, 졸렬하다
g.    무르다
h.    욕되다(辱--), 욕보이다(辱---)
i.    싫어하다
j.    씀바귀(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k.    쓴 맛
l.    깊이, 심히
m.    기어코
2.    (땅 이름 호)
a.    땅의 이름
으로 쓰임이 된다. 불가에서는 duhkha(둑카)괴로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苦는 艹古(초고)다. 둑카는 둑은  나눔하는 경계를 뜻하는 것이다 즉 푯말이라는 것으로 말둑 강둑 바둑...둑이 덕으로 쓰임되면 언덕(언둑)..이 된다 카는 Kha로 표기되면서 발성은 봄에 속하는 ㅋ과 ㅏ로 이룸되어있는데 K를 돌리면 한글ㅈ이 되어 자가 된다 경계를 표시하는 둑과 그 둑에서 무엇인가 ㅈ, 즉 가을의 열매를 지시하는 ㅈ을 에너지로 둑은 겨울과 봄과 여름을 거쳐서 결과를 산출한 정보라는 뜻이 된다. 모든 것이 압축되어있는 것이 苦이고 모든 것을 모은 것이어서 이 모둠을 풀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퍼져있는 정보를 모음한 것이 둑이고 그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 모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지시하는 것이 둑카이고 苦라는 것이된다 
 
모인 것은 모이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를 앞에 두면 결과가 생성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는 것이 결과값안에 들어있는 성장과정이다. 그대 앞에 온 문자언어는 苦, 둑카다. 그래서 그대의 머리를 지진나게 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몸을 아프게 한다. 괴로움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괴로움을 뭉쳐진 과정을 거슬러가면서 풀어야 한다. 이것을 거듭난다고 하는 것이다. 임맥과정에 들어섰다고 다시 당겨서 생각하는 것이 문자라는 이 둑카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태어나 내 앞에 왔는가? 이다.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프린트하여 신단으로 가는 길에 읊조리면서 산스트리트어와 한자와 한글의 쓰임이 같다는 것에서 원어로 읊조림하면 어떤 사투리와 같은 값으로 풀리려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모 라트나 뜨라야-야로 시작되는 신묘장구..나모 라트나는 아직 못풀겠고 뜨라야야는 뜨다 뜨게질 하다 물을 뜨다..즉 길어내다 길어올리다, 바느질하다 실뜨게를 하다..등으로 풀어진다. 나모 라트나 뜨라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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