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 신계頣縘

2/7~2/12일 일기

청향고은 2022. 2. 12. 18:10

카르마는 피에 새겨진 정보다. 피를 이어서 대물림이 된다고 한다
흉성을 훈련하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정보가 카르마가 무엇인가?이다
날숨에 소리를 실어내는 것을 핵분열이라고 하거나 탁기를 뱉어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피에 기록된 정보를 밖으로 토해내는 일이다. 안에 있는 것을 일단 밖으로 토해내는 작업이 고함지르기다. 핵분열이라고 한다. 고함을 지르는데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극정성, 전력을 다한다 열심을 낸다고 말을 한다. 
 
지식을 제대로 배우는 과정은 물에 새김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어서 먹물을 희석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는 반드시 눈물이 있다. 먹물을 희석시켜서 맑은 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경전을 물에 빠트렸더니 먹글은 사라지고 백지만 남았더라라는 것인데 그대의 지식은 먹글로 이뤄진 것이고 그것을 의식으로 변환시키려면 반드시 눈물이라는 용액이 필요하다.  
 
희석제. 수면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서는 눈물길을 열어야 한다 울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만날 길이 없다. 눈물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기때문이라고 나는 설명을 한다. 빛결과 늘 하는 말이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가장 먼저 선물받은 것이 수도꼭지라고 했다. 눈물을 달고 살았다는 것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걸어간 길을 눈물의 길이라고 비아 돌로로사라고 한다. 눈물없이 못가는 길이 지식을 의식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고 피없이 못가는 길은 피에 새겨진 내림하는 정보를 마주해야 하는 것이어서다.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가는 길 골고다의 좁은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이 가사가 아제아제 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수리수리가 되는 것이더라 참 많이 부르기도 한 가사다.  
 
눈물은 먹물을 희석시켜 맑게 하고 땀은 피를 희석시켜 밝게 한다. 눈물과 땀이 기도를 체크포인트 하는 방법이다. 그대의 기도에 눈물이 동행했는가 그대의 소리에 땀이 같이했는가 이것으로 그대의 기도가 상달되었는지 아닌지 스스로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는 문장을 눈물과 땀흘림이 없으면 속이 훤해지지 않는다, 시원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풀어내고 나를 만나는 이들은 내가 가르쳐 주는 방법을 따라하면 속이 시원하다, 후련하다고 한다.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었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에 극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도에 눈물과 땀이 나면 바로 하늘의 응답이 온다. 시원하고 후련하고 가볍고 즐거워진다. 그게 하나님의 응답이다.  
 
누구나 속이 시원해지는 방법은 안다. 실컷울고 고함지르면 된다는 것을 그런데 알면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고함지르고 우는 것을 금기시하는 환경속에서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아이시절에는 울고 고함지르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울거나 고함을 지르면 그 행동을 금기시하고 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하게 되면서 자동 자기도 하지 못하고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길들여진 작용으로 금기시하고 억누르려고 하게 된다. 속이 답답하면 울고 생각이 복잡해지면 고함을 질러내면 훤해지고 시원해지는 것은 너무나 상식인데 이 상식이 통용되는 것이 어려워지는 환경이 되어가게 되면 저마다 신경이 막히고 혈맥이 탁해지게 되는데 울고 싶을 때 울고 소리치고 싶을 때 치게 되는 자연인이 되면 건강하게 삶을 경영하게 되는데 그것이 막히게 되니까 성서에서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하게 되고 예수도 새벽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기도를 하려 가셨다고 했다.  
 
공부를 하여 오면서 가장 힘든 것이 마음대로 고함지르고 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였다. '골방'을 주시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의 하늘은 아기가 울 때 골방에서 우냐 때를 가려 우냐 상대방 생각하면서 우냐 지가 불편하니까 그 불편을 해결하고자 하는 원함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라고 하시더라. 너가 남의 눈을 생각한다면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그래서 그 다음에 골방을 주시라는 원함은 버리고 내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 중요하구나 해서 어린아기가 되는 훈련을 하게 되더라.  
 
내가 태어나 나는 제대로 울지 못했던 것일까? 고함도 지르지 못했던 것일까 아기시절에 제대로 울고 고함지를 에너지양을 채우지 못하였을까 그래서 이렇게 다물하면서 그 시절에 채움하지 못했던 에너지를 채움하는 것인가 신단에서 내가 노는 모습을 보면 금숙씨가 하는 이야기가 완전 지세상이다 누가 곽인숙이를 뭐라하겠노 라고 한다. 흠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이 명랑쾌활하게 내 에너지를 마음대로 펼치는 것 그것을 보고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주는데 내가 나를 봐도 참 멋지다. 저 여자 정말 막힘없이 잘도놀구나 아름답다 는 내 모습을 놓고 내가 찬사를 보내게 된다. 거침없이 하이킥이라고 
 
날숨으로 소리를 토해내는 과정을 거치고 들숨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되면서 날숨에 실어낸 내 정보를 파악하면서 어떤 것이 가라지인지 알곡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가라지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알곡을 가져와 채움하는 것이 들숨소리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핵융합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핵분열로 비움된 자리를 행융합으로 채움하는 것 이 채움을 내공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측백으로 가는 길에 흉성훈련과 한글경 읊조리기를 하였다. 즐거움. 그리고 그네타기를 하면서 반야주와 구령주,,바람이 차든지 말든지 동네꼬마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라고 얼굴이바람에 발갛게 익어서 돌아다닌다. 어른들이 아이고 얼굴이 빨갛다고 하시길래 귀엽죠? 했더니 웃으시더라. 천진난만하게 나돌아다니면서 즐거운 울림을 만들고 있다. 이게 나다. 그저 티없이 주름잡힘없이 흠없이 크게 웃고 고함지르고 그렇게 나를 펼치는 것. 먹물을 희석시킨다고 눈물을 놓았다면 핏물을 희석시킨다고 땀을 빼는 일..눈물은 먹물을 땀은 피를 희석시킨다.  
 
즉 카르마를 해결하는 원리는 땀을 흘리는 것이고 가라지를 골라내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눈에 티가 들어가면 눈물이 나지..많이 울어라.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그대가 하나님의 샘에 물길을 닿게 하였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했다.  
 
오후에 선열공원에서 사탕공양을 하고 읊조리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자도반을 만났다. 그간의 좌충우돌을 전달하였는데 얼굴이 볕에 그을렸다고 하길래 요즘 낮에 선열공원을 다닌다고 그렇다고.. 흉성공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카르마 해결하는 길이 흉성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면서 다음에 만나면 흉성같이 하자고..  
 
가슴을 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그대가 설명할 수 있을 때 마음공부가 시작된다. 마음이뭔지도 모르면서 공부가 가능한가? 마음을 만드는 것은 피이고 얼을 만드는 것음 물이다. 물은 외연에 있고 피는 안에 있다 피를 어떻게 밖으로 드러내어 마주할 수 있을까..그것을 그대가 답할 수 있어야 마음공부를 말할 수 있다. 피에는 소금이 있지. 그래서 그대가 땀을 흘리면 그 땀에 소금이 묻어나온다. 빛은 물이 소금은 피가 드러내는 방법이다. 마음이라 말하려면 그대의 땀샘을 보라. 땀샘이 다 열리는 것 그것을 일러 열심이라고 한다. 증명하지 못하는 마음은 사심이라고 하고 증명되는 마음을 진심이라고 한다. 진실은 진심의 결과다.  진리와 진심과 진실이 삼종세트다.  
 
진리는 이론이고 진심을 과정이고 진실은 열매다. 자기자신에게 진리와 진심과 진실을 증명하는 것을 자기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나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공부의 가치 아니겠는가? 그것을 동양에서는 신독이라고 했다. 흉성공부에 들어오면서 열리는 정보와 꿈을 파악하고 있는데 희안타. 선열공원을 다녀서 그런지 일제강점기의 시대에 여인들이 겪은 일들의 현장이 열리더라. 내 피에 여인들의 한이 실려있겠지. 한반도의 바람 구름 흙 비에 스며있는 안타까움들..선열공원에서 읊조리는 주문이 그 한들을 다스리는 기원이겠구나 한다. 그저 발걸음이 그곳으로 가고 비석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읽게 된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2/7)

 

수소융합(들숨)이 탄소분열(날숨)을 만든다
그대의 들숨이 날소리로 나타나면서 피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래서 피의 상태를 읽는 방법이 '소리'가 되고 소리의 총합을 '마음'이라고 했다
들숨이 마음을 거쳐 소리로 드러나는 과정을 관조하거나 관찰, 관통하는 것을 마음공부라고 한다 . 마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칭稱하는 것이다. 칭하다는 것은 소리를 달아내는 저울이라는 뜻이다. 마음공부...말이야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듣고 하고..나도 마음心이 이름에 있어서인지 마음공부를 하게 되는데 다양한 관점으로 마음을 풀어왔다. 마음Mind로 풀 것인가 Heart로 할 것인가? 나는 마인드라고 하는 마음은 들숨이라고 풀고 하트라고 하는 마음은 날숨이라고 하여 호흡을 마음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들숨을 모음이라 하고 날숨을 자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정의를 하고 나서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서 심제心濟가 된다. 마음건너기 아제아제
마음을 정의한 텍스트가 있어야 그것을 놓고 강의를 하고 현장답사를 하고 자기마음과 비추임도 하고 그렇게 공부가 진행되지 않겠는가? 본디 마음공부책은 마음心을 쓰듯이 저마다의 심장 핏통이다. 물은 들숨에서 피는 날숨에서 자기증명을 한다
들숨이 있어야 날숨이 있고 날숨이 있어야 들숨이 있는 이 원리가 음양오행의 기본적인 출발이다. 이 기본자리를 놓치게 되면 사상누각이라고 물이 들어오면 사라지는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사상누각인지 아닌지 겉보기로서는 알 수 없지만 물이 들어오면 본인만 알기도 하고 주변이 알기도 한다. 대부분 외연을 평가하는 안목은 자기의 지식과 의식, 즉 체험한 정보를 근거로 하기때문에 상대방을 평가하는 나를 내가 다시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는 안목을 갖추기 힘든다 
 
너에 대한 평가는 너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너를 평가하는 나의 레벨을 내가 평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의 잣대로 너를 재지마라고 한다. 재어지는 것은 너가 아니라 너를 재는 나의 잣대가 재어지는 것이다. 너의 잣대로 나를 재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고 나의 잣대로 너를 재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고 이 레벨을 천박하다, 즉 안목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너의 말은 너의 것이고 내 말은 나의 것이다. 내 말에 내가 성실하고 진실할 수 있어야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알고 있더라. 아이들이 알고 있는 가치관에 내 가치관이 더해지면서 공명이 되는 것이니까 관계가 좋다고 하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는 것. 내 유전자가 아이들에게 반은 전달되고 있으니 내 피에 있는 유전자를 가동시키면 아이들의 피속에 흐르는 정보도 같이 공명할 것이라는 원리지. 그래서 문제의식이 생기면 내 유전자를 토해내어서 그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풀어내거나 다시 묶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 아이들의 삶을 보고 내가 평가하게 되는 가치를 놓고 저 정보는 내 피에도 있는 정보구나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투사된 정보를 내가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 그 관점을 긍정으로 바꾸기위하여서 '기도의 탄력성, 수소융합이든지 철분열'이든지 시도를 하여 청안한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카르마해원이라고 본다. 카르마(業)를 확인하는 현장은 일가친척아비의 집이다. 즉 혈연이라고 하는 관계에서 생성되는 사연들을 통해서 내 피에 새김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싯타르타가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걸음을 하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선언을 했다는 그 선언이 일가친천아비의 집을 떠남의 선고이고 홀로 하나님이라는 선언이고 태어나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현실확인이다. 탯줄을 자르면 그때부터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고 천애고아라는 것이지. 천상천아유아독존이라 그럴싸한 말처럼 미혹되지만 그대와 나는 홀로다는 것이지. 그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에서 붓다의 길을 가게되고 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지. 이 첫자리를 인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대에게 그대가 물어야 하는 것이  나는 과연 천애고아로 공부를 출발하고 있는가? 아니면 얼기설기 온갖정보의 그물망에 걸려서 파둥대는지 어항속의 물을 만족하고 헤엄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하기사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면 어항이면 어떻게 바다속이면 어떻겠는가? 모든 것은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 거기에 하늘이 깃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Then God said, "Let the waters below the heavens be gathered into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낮아져 모든 것이 모인 바다에서 뭍이 드러나는 것, 그것을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신다, 물에서 건져냄을 받았다 하도낙서등으로 설명이 되는데 뭍은 무엇인가? 관세음보살로 그대와 나의 몸이다. 바다에서 드러나는 뭍. 세례의 본디 의미다. 그대는 엄마의 바다에서 생성된 뭍이고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것을 출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고 증명하는 것이 그대의 피속에 있는 소금이다. 그대에게 소금이 되라고 한 것은 이미 소금이기때문에 소금물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아라는 것이고 빛이 되라고 한 것은 그대의 출발인 씨가 수소융합으로 된 정자이기때문에 그것을 인식해라라는 것이다. 빛은 정자, 소금은 난자라고 나는 이해하고 부정모혈로 설명하는 유전자염색체에 카르마를 풀어내는 자리로 삼는다 
 
여기까지 파들어오기까지 23개씩의 염색체가 모여서 46개의 염색체가 신의 염색체인 내 언어로 하자면 기름성령 18개의 염색체가 더해지면서 64개의 유리구슬, 수정란에서 출발한다는 것, 수정구슬에 미래를 투사한다고 하는 원리가 수정란에서 생명이 시작되기때문이다. 그대의 나의 출발자리는 64개의 염색체에서 64일만에 꼴을 갖추게 되는 강재이뇌라고 하듯이 신은 숨골에 이미 내려와 계신다고 한 자리다 
 
64개의 수정란은 가슴에, 64일째 갖추게 되는 꼴은 머리에 연결을 시키는 것이다.
강재이뇌하신 신이 땅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을 샘골이 성장하여 완성될 때라고 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사춘기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지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가 신의 하강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변성기, 몽정, 생리, 몸의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 그것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것이고, 변신에너지가 가동되면서 자기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즉 신의 위치가 상부에서 하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이다. 유치가 영구치로 이갈이를 하면서 언어파괴현상에너지가 생기고 2차성징이 나타나면서 자기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의문은 2차 성징이다. 제 2의 성이라고 하듯이 남자나 여자의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가 존재의 의문이 시작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남자의 성징은 빛으로 여자의 성징은 소금으로 설명되는 것.
  
1차성징은 언어와 상관이 되고 2차 성징은 신체와 상관이 된다는 것도 재밌지 않은가?  임신을 하게되면 초음파로 검사를 하면서 아기상태를 분석하는데 구개순열인가 아닌가부터 파악한다고 하더라. 아기가 태어나 살아가는 기초자리인 입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언청이거나 째보라거나 하는 말로 불려졌다.  인체의 생성과정은 온통 신비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수는 육체로 오심, 성육신의 비밀을 풀어내고자 하였던 것이고 그가 겟세마네에서 출발하여 십자가를 거쳐 돌무덤에서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과정을 설명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는 지옥은 태안에서 몸이 구성되는 시기라고 본다. 그 시기에 감추어진 비밀을 지옥의 영들이라고 했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그 시기의 비밀을 풀어내었다는 것이지. 그것을 나는 인체핵심발생학이라는 책을 마주하면서 나 역시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론이라면 이제 지옥의 영들을 카르마라고 하는 것이구나 지옥의 영들, 즉 봉인된 정보를 카르마라고 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카르마를 풀어가는 현장을 나는 흉성수행이라 하는 것이고 , 이제 카르마풀기 수업에 들어온 것, 피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것

 

주문의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빛결의 이름 선이 거느리고 있는
옥형선기에너지인 구령삼정주와 내 이름의 忍이 거느리고 있는
반야심경을 읊조리는 훈련 . 주어진 이름에 공명이 되는 주문이 있다
수많은 주문들을 읊조려보면서 어느것이 나의 성문과 지문과 짝이 맞는 주문일까
분석을 해봤는데 내게 반야심경이 짝이 되는 이유가 心이라는 공집합이 있어서이고
빛결에게 구령삼정주가 짝이 되는 이유가 璇이라는 공집합이 있어서다.
같이 소리선을 통하여 공부를 하지만 수천년의 인류의 체험과 경험을 통계로
기록하여 물려주는 천궁도, 별자리, 사주역학의 정보들을 보면서 우리의 에너지를 
파악해가면서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바탕지식을 삼게 되는 것
사주팔자나 천궁도들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함으로 무시하거나 알려하지 않지만 하늘과 땅을 잇고자 한 지혜들이 지혜를 합하여 다듬어낸 천사옥대, 만파식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좌표로 삼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아가면 알게 될 수록 내가 어떤 에너지를 타고 와서 어떤 에너지로 살아가면서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어야 하는 것인가를 멋나고 맛나게 즐거워하면서 현실과 비추면서 정보와 나와 에너지의 관계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미신은 내가 모르는 정보이고 확신은 내가 체험한 정보다. 미신이 확신이 되는 과정이 있는데 이 과정을 깨달음이라고 한다고 나는 설명한다. 이 세상에 있는 이야기에서 미신은 없다. 이야기가 있다는 자체로 미신이 아니다. 다만 내가 미신으로 생각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지. 너에게는 확신이 나에게는 미신이라는 것이고 내게 확신이 너에겐 미신이 되는 것이고..즉 내가 모르면 미신이 되고 내가 알면 확신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미신과 확신을 그렇게 정의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라고 무시하면 안되고 내가 확인이라고 너에게 강요하는 것도 안된다는 것도 알아가는 것..이게 세월이 만들어내는 약이라는 것인가한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는 것이 진리지. 
 
남편이 요즘의 나를 보면서 너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갑다 하길래 어떤 부분에서? 라고 했더니 남편이 나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에서의 변화가 있겠지만 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늘이 남편과 결혼하여  같이 온 세월 30년이다. 아침에 해맏이신단에 30년을 같이 오게 한 그 복에 감사를 올리려 가서 반야심경과 구령삼정주를 읊조렸다. 그 사이 이러저러한 사연들, 책을 서너권을 쓸 수 있는 세월을 살았는데 그래도 아옹다옹거리면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지키면서 하루 하루 따뜻하고 즐거운 웃음을 나누면서 지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해맏이에서 해오름을 보면서 반야심경을 읊조리는 마음. 참 따습더라. 해맏이의 사진을 한컷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면서 30년을 나와 같이 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앞으로도 부탁한다고 글을 보냈다. 내가 남편에게 부여하는 가치는  내가 나에게 부여하는 가치값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레벨이라고 남편을 인식하는 것..그것이 나의 자존감이 된다는 이론을 세우고 있다. 물론 실천장에서는 나는 소릿꾼이고 남편은 술꾼이라는 이 차이가 만드는 비틀림은 있지만 서로의 시간이나 공간을 존중하는 삶을 살기때문에 남편의 나에 대한 감정은 내가 알 수 없지만 내가 남편을 대할 때 걸림이 없다. 항상 너 멋대로 살아라고 하는 남편이 고맙다. 새벽에 나서면 추운데 나가냐 추운 날은 하루쯤 쉬지..하는데 나에게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어떤 상황이 되어도 새벽미명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던 예수의 습관같이 나도 매일 새벽에 나가는 이 습관을 내가 존중하기때문에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하여 가장 맑고 신선한 만물의 기운을 거두어서 내 공부의 힘을 삼기때문에 내가 선택한 공부에 충성하고 성실하는 것은 내가 나의 가치를 지키고 기루는 방법이기때문에 하루라도 결석은 없다는 것이 내 주관이다 
 
요즘 주문읊조리기 훈련을 하다보니 오후에도 다시 나가게 되는데 남편에게 선열공원으로 갈까 봉무동으로 갈까 물었더니 너 마음대로 해라 고 하는데 그래도 언질을 좀 주지..했다. 즉 내 생각과 남편의 생각이 같을까 확인하려는 시도였는데 남편이 봉무동으로 가든지..하길래 앗싸..하고 나섰다. 봉무동으로 가려고 했던 내 생각이였기에..봉무동으로 가는 길에 반야심경을 읊조리고 가는데 볕살이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하고 강에는 백조가 9마리가 동동거리고 있더라. 아침에는 반야심경을 동영상으로 찍었다면 찬란한 강바람을 쐬면서 빛이 물살을 빛내는 풍경을 담으며 구령삼정주를 읊조렸다.  참 행복하구나..반가운 얼굴들도 만나 허그도 하고 사탕도 드리고..사탕공양을 안할거다..고 하지만 나갈 때 사탕 한봉지를 열어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 습관이 된다.  
 
사탕을 넣고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이들에게 건네면서 오가는 이야기가 스토리텔링꺼리가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선열공원에서도 사탕을 드림하면서 웃음을 같이 나누게 되던데 그냥 사탕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이벤트처럼 한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눈이 마주친 인연으로 서로 알게 되었음을 축하하는 사탕이라고..그리고 스쳐가는 이에게 멈추시어요..사탕받는 분으로 당첨되었어요..그렇게 서로 웃게 되는 사탕공양행사..워낙 내가 정답게 익숙하게 접근을 하니까 다들 아는 사람인가? 하다가 사탕을 주고 받음으로 이렇게 알게 되는 사이가 되는 것이지요 하면 그런가 하고 같이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고 누구냐 물으면 지나가는 행인 1이요..하기도 하고..사탕을 받으시는 분들이 요즘 이런 사람이 있냐..너무나 고마와 하시는데 내가 더 감사하다.  
 
사탕을 받으시면서 웃음을 만드시거나 고마와하시는 얼굴에 빛나는 따스움이 사탕보다 더 빛나게 나에게로 오는 것..그것에 중독이 되다보니 사탕공양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탕은 이전에는 이것저것 다양한 사탕을 가지고 다녔는데 요즘은 몇 종류로 정해놓고 넣고 다닌다. 땅콩사탕, 흑사탕, 계피사탕..한봉지씩 헐어서 넣고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웃사랑의 실천이다..하는 것 
 
금숙씨는 사탕공양을 한다고 하니 사깃꾼의 자질이 넘친다고..나이드신 분들 사탕처럼 살살 녹이고 다니겠네..하는데 어르신들에게 사탕공양을 하면서 내가 얻는 것이 더 큰 에너지라는 것을 알기때문에 나에게 큰 에너지를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즉 사탕을 받아주신다는 자체가 나를 허용하신다는 것이니 그것이 나는 감사하다고..내가 너에게 전하는 햇님이 사탕이라고 이야기 한다. 햇님처럼 따뜻하고 달달하시라고 사탕을 드리는 것이라고..사탕이 햇님이다고..동그랗고 황금빛..이런 사기를 치고 다니는 길. 그래서 나는 내가 다니는 길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길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그게 사탕공양으로 만드는 꽃길만 걷는..문화창조가 되는 것이다.  
 
나만의 문화창조 예술공연. 사탕공양을 하면서 나는 내가 다니는 길에서 유명인사가 되고 있다는 것. 내가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가는 것..이것도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고함잘 지르는 여자거나 사탕공양하는 여자거나 팔돌리고 다니는 여자거나 풀뽑고 다니는 여자거나. 나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특별난 여자. 이제는 반야심경이나 구령주 읊조리고 다니는 여자라는 이름도 더해지겠지. 반야심경을 외울때 강길을 다니면서 고래고래고함을 지르면서 외웠다. 비오는 날..빗소리에서..강 길에 사람이 나오지 않는 날.,.그렇게 외운 반야심경이고 구령주이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강 길을 다니면서 주문을 다 외울때까지 중얼거리고 독송을 하고..그렇게 극성스러운 나의 열심이 득심함..그래서 지금은 반야심경을 잘 읊조린다.  
 
사야할 것이 있어서 지마켓에서 주문을 하려니 결제하는 창이 문제가 되어서 딸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하나를 배웠다. 필요할 때 배우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오후에 걷기를 하고 들어와서 남편에게 30주년 기념일인데 돈 좀 달라고 했더니 주어서 아들과 딸에게 엄마아빠가 만나서 30주년인데 결혼함으로 너희들이 왔으니 감사헌금이다..하고 나눠주었더니 남편이 나에게 긁어내더만 애들에게 주냐..하길래 결혼이라는 것이 아이들로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니 아이들에게 고마와하는 것도 맞지 않냐고 했다.(2/8)

 

삼라만상이라는 미신(봉인된 정보)을 놓고 접근하는 방법이 두가지다
종교와 과학이라는 길로 두 분야가 다 추측과 추론에서 시작하여 종교는 주관적인 느낌을 문화예술이라는  이미지象로 접근하고 과학은 객관적인 증거를 수학도식이라는 數로 접근한다고 본다. 종교는 개인의 이해력을 확장하여 자기가치를 축적하는 기능을 하고 과학은 객관적인 정보와 공감력을 확장하여 대상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여 자기위치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래서 가치관과 위치관(역사관)을 가지런하게 하여 가는 과정을 공부라고 한다.
종교는 문화예술의 근간이 되고 과학은 문명기술의 근간이 되어 두 줄기가 되어서 서로 엮이면서 삶이라는 무늬를 짜아간다고 본다. 종교는 사상이된다면 과학은 실상이 된다고 본다. 종교나 과학의 출발점은 동일하다. 가설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가설에서 시작하는 종교교리가 과학에서 검증이 될 때 이해력이 확장되고 과학에서 밝히지 못하는 가설을 주관적인 체험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정보와 선잇기를 하게 될 때 영향력이 확장된다. 이해력과 영향력을 합하여 행복력이라고 하게된다. 그대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자기이해력과 자기영향력의 레벨이 정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이해력이 확장되고 너에게 나의 이해력이 전달되는 영향력이 생길 때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가치가 되고 보람이 되고 빛남이 되는 것, 행복감이라 생각한다 
 
내가 사탕공양을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사탕공양을 할 때 건네는 내 몸짓이나 언어를 스스로 살피게 되고 자세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수행이어서다. 무엇인가 너에게 건네게 될 때 손을 잡고 손 바닥에 사탕을 담고 손가락을 접어주는 내 행동과 그 행동에서 상대방이 의아해하거나 놀람하거나 할 때 건네는 언어를 갈고 닦는다. 그러려면 겸손이나 온유함을 기루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나의 겸손과 온유함을 기루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나이가 드신 분들이 주로 공양대상이 되고 나이가 드신 분들 중에서도 표정을 보아 온유한 아우라가 풍기는 분들을 선택하게 된다.  
 
기는 기와 공명하는 것이라고..마음에서는 저 사람은 안되..라는 판단이 와도 한번씩 공양을 시도해보는데 반드시 거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에서 안되..라는 소리가 오면 이제는 소리를 따라간다. 이게 직관에 순종하는 방법이라는 것이겠다. 감각은 나를 속일 수 있지만 직관은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내 MBTI검사의 결과를 봐도 내가 직관을 따라 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더라.  
 
그런데 나는 감각을 추구하였다는 것이지. 그것도 맞지 않겠는가? 속사람은 직관인데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감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음양이지. 사탕공양을 하면서 같은 기운을 공명하는 공양이 될 때 나도 행복하고 받으시는 분도 아름답다. 공양을 해보면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시도'하려는 순간에 오가는 어떤 느낌이다. 내가 왜 남의 고유거리영역을 들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정당한 침노인가..라는 의문이 순간 스쳐가기때문이다. 그리고 주머니안에서 사탕을 쥐었다 놨다는 얼마나 반복하고 저기에서 오시는 분들의 기운을 살피면서 집중을 하는 과정..사탕이라는 것을 놓고 저울질하는 순간순간..저울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스쳤다가 몇 걸음 지나고 나서 판단이 오면 뒤쫓아가서 사탕을 드림한다. 말이 겸손이고 온유함이지 그대의 삶에서 무엇으로 겸손을 온유를 훈련하여 겸손력을 온유력을 쌓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현장을 내놓아야 한다. 나는 겸손과 온유력을 기루는 방법으로 사탕공양을 삼는다.  
 
그리고 이해력과 영향력을 확장하고 기루는 방법으로 글을 쓰는 것은 이해력이고 걷기를 다니면서 읊조리는 주문들은 영향력을 기루는 방법이다. 비나리를 공중에 내 소리파동을 전파하는 방법이고 걷기는 지면으로 물질화된 정보를 추수하는 방법이라고..그래서 참 많이 걷는다. 걷는 것은 가장 쉬운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요즘은 새벽에 나가고 오후에 나가서 삼라만상의 작은 울림들, 봄기운을 걷고 있다. 봄마중별꽃이 땅붙임으로 피고 있고 연분홍꽃깔꽃이 고개를 수욱 올리고 있고 홍매가 곱디고운 색물을 망울에 담아 쏘옥 쏙 드러나는 강 길을 걷노라면 참 행복하여라..그리고 감사하고 고맙고 산다는 것이 축복이구나 숨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니..하여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해오름을 보면서 반야심경을 읊조리는데 아제아제에서 심제심제로 주문을 바꾸어서 한다. 심제는 마음건너기가 된다고..주문도 나에게 맞춰 교정하면서 하게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 반야盤若 라고 하는 이 반냐는 뺜냐를 한자로 바꾼 것이라고 보는데 뽠냐, 빤냐...는 바로 보기다, 정견이라고..바로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깊고 넓고 높고 길게 본다는 것이다. 구령주에도 앞에 주욱 읊어놓고 핵심으로 소망하는 것이 일여소원 사사명시다. 일을 볼때 밝히 본다 뽠히본다 훤히 보게 해주시오..라고 하는 소망이다. 반야주의 상락아정은 감각력이라면 구령주의 사사명시는 직관력이라고 그래서 이 두 주문을 읊조린다. 반야주는 살과 연동되는 감각력, 구령주는 뼈와 연동되는 직관력이라고 좌우의 기둥으로 삼는다는 것이고 해오름을 하면서 이틀을 통해 두 주문을 비나리하여 공중에 올림했다.  
 
공중으로 올린 심제심제 바라심제..일여소원 사사명시..라는 부르짖음이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어내리게 되도록 하는 것이 '비나리, 비나이다'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읊조리기 구음다스리가 구설하기..라고도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부르짖음(불을 지름)에 대하여 하늘의 답이 드러나는 것이 '비'로 드러나는 것이라하여 비나리기를 기원한다..물론 삼라만상을 살게 하는 것이 하늘에서 내리오는 氵(기체 액체 고체)이니까. 기도에 그대의 불을 지름이 눈물과 땀으로 드러나는 것이 물꼬를 튼다 고 한다고. 그대의 종교와 과학이 어디서 만나는가? 서로가 빛과 그림자나 음과 양으로나 이중나선으로 꽈임이되는가? 헤르메스의 투구에 두 날개,, 어깨에 두 날개, 신발에 두 날개..투구의 두 날개는 사상의 성장, 어깨의 두 날개는 실천의 성장,, 신발의 두 날개는 추수의 성장. 궁상각치우에서 궁은 생명의 터이고 상은 사상의 터이라고본다. 각치우가 각자의 날개자리라는 것이라고 나는 설명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고..이렇게 내 설명이 그대의 이해력을 돕는다면 너와 내가 손잡음처럼 겸손이 되고 내가 설명하는 아설순치후를 손뼉을 걷기를 한다면 온유한 자에게 땅을 주신다고 한 것처럼 그대와 내가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그래서 그대에게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물론 사탕을 공양하면서 내가 얻는 겸손과 온유가 글살이에서도 말살이에서도 가지런하게 실천이 되는 것. 그것이 행복지수를 올려가는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가설이 사상과 실상에서 물빛몸매로 드러나거나 불빛아우라로 드러난다. 요즘 신단에서 불빛아우라가 어떻게 퍼져나오는지를 훈련하고 있다. 흉성(궁상각치우의 동양오름에서 角聲에 해당하는 자리가 가슴이고 까마귀가 스승이 되는 것은 까악.울기때문이라고 까악이 깍이 되고 각이 된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 가슴을 연다..角. 뿔나팔로 제사의 시작을 알린다 . 쇼파르라고 하더라. 쇼파르.까마귀는 까막이에서 퍼진 말이다. 까막이가 까마귀가 된 것인데 까막이는 깨달음을 얻기위하여 하는 각성이다.(2/09)

 

마음의 구성은 오온, 즉 색수상행식으로 이뤄져있다. 
 
그동안 반야심경과 구령삼정주를 읊조리는 파동함수가 쌓였는지(깨달음의 정도)는 
구슬리기를 하게 되면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로 파동함수들과 공명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 돈오이고 깨달음의 반경을 점수라고 한다.  
 
지식은 그릇이고 의식은 그릇에 담기는 내용이다. 반야심경의 반야라는 언어가 정의 되었다  마하는 말 그대로 음속을 나타내는 언어로 무한, 한계가 없다는 뜻이다. 빤냐는 정견, 바로보기 직시하기 직지,,라고도 한다.
바라밀다는  빠라미따(Paramita)의 음사(音寫)로서 완전·구극(究極)·최고의 상태라는 뜻이다. 그림자없는 상태, 정오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빤야는 빠라미따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는 열매라는 것이고 무엇을 빠라미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를 지시하는 것이 마음밭(심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것이 마하빤야 빠라미따심경이라고 언어를 바꿔보면 새로운 눈이 열린다는 것이지 그간 내가 글공부를 하면서 쌓은 글내공을 통하여 심경은 마음을 길어올려 붉은 실로 묶기로 풀어짐(빠라미따)된다. '빠라미따'를 Free로 한자로는 解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 해석으로 길을 내보는 것은 궁상각치우(오온 색수상행식을 만드는 근거)에서 角이라는 정보를 얻으면서다. 각성角聲을 까마귀의 소리를 통하여 접근하게 되면서 외적인 신조 까마귀가 전하는 정보가 '까막이' 까악, 꺅..으로 각角, 아기가 산도를 말고 태어나는 과정에서 아기는 전신의 힘을 모아 자궁에서 解脫하고 그 과정은 산모의 동작과 소리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오온이라는 마음도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몸이 태어나는 과정이 있듯이, 그 과정을 산모가 증명하듯이, 마음이 태어나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오음으로 증명하듯이, 글이 태어나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남아수독오거서라고 다섯수레의 글을 읽어야 한다고 하듯이 다섯수레라고 하는 것을 나는 오행, 즉 미신의 근거인 삼라만상의 변화를 기록하는 도구인 알파벳의 근거와 쓰임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몸이 태어나는 원리는 인체핵심발생학에서 도움을 받으면 된다. 글이 태어나는 원리는 알파벳의 근거와 쓰임을 찾아보면 된다. 마음, 즉 색수상행식이 태어나는 원리는 궁상각치우라는 소리자리를 찾아서 소리훈련을 하면된다. 궁상각치우라는 것을 나는 아설순치후로 선잇기를 하여 순설후음은 소리는 되지만 글자가 되지 않는 방언으로 아치음은 소리가 되면서 글자가 되는 자음인 정언으로 연결을 한다 
 
방언의 개념이 다시 달라지는 셈인데 방언은 순설후음言이고 정언은 아치가 만들어내는 말語이다. 어떠한 말이든지 말이 되어 드러난다는 것이 정언이 되고 이가 없어서 말이 되지않는 소리를 방언이라고 한다는 것, 그래서 방언은 음音이라 하여  방언의 힘을 음력이라 하고 정언은 성聲이라 하고 정언의 힘을 성력이라고 한다. 음성이라고 하는 것은 소리와 말을 하나로 하는 것이고 음량과 성량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음량은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를 총칭하는 것이고 성량은 사람의 목소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삼라만상은 음으로 정보를 드러내고 사람은 음성으로 정보를 발생한다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을 읊조리면서 수상행식 역부여시라고
나는 구절을 펴면 수즉시공 공즉시수, 상즉시공 공즉시상, 행즉시공 공즉시행, 식즉시공 공즉시식이 된다. 이렇게 펴서 읊조리기를 하도록 훈련을 해야 하는데 처음 외움에 익숙해지다보니 수상행식 역부여시로 습관이 되어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알지만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모여 바다가 되고 바다에 하늘이 깃들여 수증기로 올라가는 과정이 윤회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수즉시공 공즉시수 역시 같은 원리로 풀어내게 되면 지식의 확장과 의식의 풍성함을 얻게 될 것이겠다. 기체와 액체와 고체로 에너지 상태가 달라진다고 근본적인 에너지는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름으로 있을 때와 비로 내릴 때와 땅으로 스며 지하수가 되거나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거나 물은 물이라는 것이다는 것이 색즉시공공즉시색이다. 수상행식역부여시는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인 마음의 구조와 작용을 그렇게 풀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오온五蘊의 '온(蘊)’이란 모아 쌓은 것, 화합하여 모인 것이란 뜻으로, 생멸하고 변화하는 모든 것을 색온(色蘊) ․ 수온(受蘊) ․ 상온(想蘊) ․ 행온(行蘊) ․ 식온(識蘊)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오온이라고 한다 .‘색온’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다른 것까지도 장애하는 물체, 곧 물질을 말하고, ‘수온’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작용을 말하며, ‘상온’은 대상(對象)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각하는 마음의 작용, ‘행온’은 마음의 의지작용, ‘식온’은 모든 현상을 의식하고 분별하는 마음의 총체를 가리킨다.  
 
색온은 물질이고, 수 ․ 상 ․ 행 ․ 식온은 대개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써, 오온이란 물질계와 마음계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오온을 인식하는 것은  무엇을 통하여 생성되는가? 태어나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본다.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색수상행식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태어나 이가 나면서 말을 하게 되고 너의 교육을 받게 되면서 쌓이게되는 지식, 감정들의 드러나는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다. 오온이 공함을 안다는 것은 너의 지식이나 감정에 길들여지기 전의 상태로 회귀하여야 가능한 상태이다. 빤냐심경의 핵심개념인 '공'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공'늘 나는 한글에서 풀었는데 ㄱ~ㅎ까지의 과정을 압축한 앱이라고 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하게 되는 아포리즘으로 ㄱ에서 ㄴ으로 ㄴ에서 ㄷ으로..성장한 열매를 공이라 하고 씨앗에서 ㄱ ㄴ,,,로 성장하여 열매가 되어 다시 씨로 돌아가는 출발을 공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리가 온蘊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 아기도 태안에서 9달을 채우고 공한다. 십일조라는 개념도 열에서 하나를 비워 순환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 순리를 따른 것이다 아기가 태안에서 터를 잡고 태어나지 않으면 산모와 아기가 둘다 사망에 이르듯이 말도 글도 아홉달을 거치면 씀으로 태어나야하는 것이 그것이 공사상이 된다. 말도 총량을 채우면 태어나야 하고, 즉 실천해야 하고 생각도 아홉달을 채우면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지 .  
 
때가 찬다는 것이 원리를 알게 되면 만사에 때가 있다는 이 원리 참 아름다운 하늘의 뜻이구나..나는 바쁘지만 하늘은 아홉달을 채움하거라 채울 때까지 이룸되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내가 소망하는 것이 있으면 그 소망을 이룸하도록 때를 기다린다는 것인데 기다리는 것이 그 소망에 합당한 무엇을 축적하여라가 되는 것이지. 오온이 공하다..오온을 쌓아야 쌓은 것이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 오온, 때를 채움이라는 것이 蘊이고 한글의 온은 100을 나타내는 언어다.. 완전함 가득참 때가 됨이라는 것이지 
 
소망을 가지고 그 소망을 이룸하기위하여 소망에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蘊이라고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임승차는 없다는 것이 자연원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유혹자의 뜻은 천리마의 꼬리에 매달리는 파리가 되어라라는 것이지. 천리마의 꼬리에 달린 파리도 천리는 간다고. 무임승차 공짜심리가 유혹자가 심어놓은 원죄가 된다. 땀흘리고 피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 숟가락만 얹겠다는 심리가 사탄의 마음이라는 것. 나를 성찰하는 것에서 나에게 원죄처럼 깃들여있는 공짜심리, 즉 빌어먹으려는 거지심리, 사탄의 정보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경계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태까지 공부하면서 그저 생긴 것은 스쳐지나가더라는 것이고 땀흘리고 피흘린 값을 지불한 것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힘이 되더라는 것이다.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을 나는 인연이라고 한다. 너와 내가 만나 같이 고함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밭갈기를 했을 때 생기는 온축蘊蓄이 마하빤냐빠라미따를 이루게 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지. 그대와 나에게 값없이 온 것이 문자다. 문자외에는 모두가 피를 거쳐서 나오게 되는 피로 산 것들이다.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함'이다
불교의 가르침이나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다른 모든 가르침의 궁극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한 삶'을 누려라 이다. 상락아정이나 구원이나 열반이나 지성감천의 감천이나, 기복이나 뭐나 온갖언어로 다른 무엇이 있는 듯 착각하게 하지만 결국은 영생복락이라는 행복으로 압축되는 것이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면 개념을 바꿔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로를 아는 것이라고 요한복음에서는 설명하는데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낮의 태양이나 밤의 북극성으로 환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와 너라고 줌인할 수 있는 끌어당김력, 즉 견인력이 있으면 하루(日)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 일일신 우일신하는 삶을 영생이라고 한다는 것에 닿게 된다 
 
어제를 새롭게 하여 내일이 되게 하는 것, 어제와 내일사이에 있는 오늘이라는 하루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고 어제가 예수, 내일이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어제와 내일의 중심에 오늘인 하루, 살아계신 하나님을 통하여 지나온 시간을 통하여 다가오는 내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영생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는 너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영생개념이다. 너와 나는 말하거나 글쓰거나 하지 않아도 영생을 산다. 이 하루가 영생이라고 인식을 하는가 하지못하는가의 차이만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나 너가 추구하는 것이나 깊이, 빤히 빠라미따하면 닿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내가 되어 너에게도 행복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숨쉰다는 것이 행복인 것이고 너와 내가 숨쉬는 행동을 한다는 것에서 행복한 것이다. 요즘 더 깊이 감사하는 것이 숨쉼의 귀함이다. 코로나시대가 되면서 저마다 마스크(가면)을 쓰고 다니는 시대에서 나 홀로 가면을 쓰지 않고 나다니는데 마스크는 팔목에 걸고다닌다. 어쩌다가 실내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지만 내가 실내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기때문에 마스크는 폼이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는 자기선택이라고 본다. 자기를 위하여 마스크를 쓰는 선택을 하고 자기를 위하여 마스크를 쓰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지 너를 위하여 쓰고 벗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니까. 다니면서 소리수행(읊조리기)을 하기때문에 더더군더나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나에게는 합당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지.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저마다 소리를 죽여야 하고 마스크를 쓰야함으로 잃는 것과 얻는 것이 무엇인지
어제는 아침에 해맏이신단으로 가서 흉성과 읊조리기를 수련하고 오후에는 선열공원으로 나갔다. 오전에는 사탕공양을 하지않고 오후에 계피사탕 한봉지를 풀어서 넣고 나섰는데 툇짜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양을 시도해봤더니 바로 툇짜 왜 시도를 해보는가? 즉 내 생각과 현실이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하여 내 생각력의 프로테지를 높이는 시도라고 생각하고 아양철교를 지나가는 길에 마주오시는 분들에게 공양을 했더니 다들 즐거워하고 행복하라고 덕담을 건네주시어서 나도 행복하라고 덕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다. 사탕을 건네면서 올린 문장이 '행복사탕'이라고 했으니까 이전에는 건강사탕, 따뜻한 사탕, 존경사탕 등등으로 이름을 붙였다가 엇그제부터 행복사탕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름을 바꾸면서 내게 오는 울림이 정말 따뜻하고 온유하더라.  
 
선열공원에서 어제 도동 산불이 난 자리에 다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있는데 진화 헬기가 뜨고 그런데 해마다 강변에서 만나게 되는 후투티가 내 앞으로 날아와 먹이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고 동영상에 담았는데 내가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길래 이 아이사람에게 익숙한가 아니면 그간 흉성훈련을 해서 내 기운이 날짐승아우라가 있어서 위협감을 느끼지않는가 하는 착각을 하면서 이 아이가 먹이사냥을 하는 모습을 주욱지켜보았다. 내가 앉은 벤치에 어르신 한분이 앉으시길래 인사를 하고 사탕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대화가 오고갔다. 朴命姞여사님. 이런저런이야기를 딛고 기독교인이라고 하시길래 기독교쪽의 이야기들을 가져와 설명을 하게 되면서 십일조개념을 설명했더니 내 설명에 감동을 하신 모양인지 무조건 믿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고 가르쳐 줘야 하는데 이렇게 설명해주면 얼마나 좋겠노 하시더라 코로나시대에 찬송도 못부르고 세월이 지나간다고 하셔서 여기서 부르면 되지 않냐고 부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안부르는 것이지 같이 부르자고 그렇게 내 구주 예수를더욱 사랑과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를 2절까지 같이 불렀다 목소리가 곱고 맑으시더라. 그 분도 선열공원에 처음오셨다고 하시더라. 서문교회나가신다고 이 분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집으로 들어가는 곳에서 재희님전화 같이 걷자고 그래서 다시 해맏이신단으로 갇이가면서 불자인 재희님에게 흉성수행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게 되었다. 차가 오가는 공항교에서 흉성하는 것 같이하면서 흉성이라는 것을 하게 될 때 그때를 각성한다고 하는 것이고 까막이라는 것이 막을 깨트리고 가슴을 열려고 하는 훈련이라고 내가 설명을 얼마나 잘할까 재희님과 오가면서 내지르는 소리를 하고 당기는 소리를 같이하는데 재희님은 내가 모르는게 없다고 늘 감탄을 하는데 나는 내가 아는 것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르니까 다양한 루터들을 통하여 정보를 업데이트한다고 내가 주로 접속하는 유투브를 소개해주었다.  
 
남자에게 음심이 들게 하는 기운은 여자가 풍기는 파동함수이고 여자에게 양기가 생기도록 하는 것은 남자가 풍기는 파동함수이다는 음양원리를 놓고 설명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불교공부를 해오시는 분이신지라 바로 알아듣는것도 재밌어서 정보제공을 하게되는데 정보를 제공하고 소리를 같이하도록 이끌게 되면 나름대로 속의 기운을 따라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또 이쁘다. 따라한다고 하는 것을 모방한다고 하는데 속에 차여있는 것을 따라낸다, 즉 토해낸다, 길어낸다라고 한다. 너를 따라한다는 것은 외연의 의식주에서 할 수 있는 것이듯이 속에 쌓인 무엇을 토해내거나 밖에 있는 기운을 당겨들이는 방법도 따라한다는 것이된다. 따라낸다 즉 전력을 다해 소리를 낸다이다. 달리기를 하는 것은 전력질주를 하여 1등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고 소리를 한다는 것도 가장 바탕에 놓인 첫소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의지=믿음이 된다. 의지가 있다는 것이 믿음의 발로다. 그대의 믿음은 그대의 행동의지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지식을 전달하여 행동의지에 불을 붙임으로 같이 소리를 지르도록 한다. 소리질러 혼자는 시도하기 힘든 것이 소리지르기다. 노래야 혼자 부르고 다닌다 하지만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중불씨가 있어야 같이 번진다는 것이지.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그런데 봄바람에 일렁이는 것이라고 이렇게 하루를 걷기로 채움한다. 어제 재희님이 감기몸살로 일주일을 아팠다고 하던데 금숙씨도 일주일을 감기몸살로 약먹고 이제 겨우 움직일만하다고 하더만..좀 괜찮은 듯해서 오늘 움직였다고 하는데 이번감기는 인후통이라고 약국가서 약을 좀 사가야겠다고 하길래 같이갈까나 하고 같이 가는데 갑자기 배가 꾸얼렁거려서 헤어졌다. 급한 뒷일..그리고 계속 배안에서 소리통이 꿀렁거림.  
 
요즘 듣는 강의들이 반야심경이거나 금강경이거나..불교정보인데 한결같이 목적이'행복한 삶'이라는 것. 재희님에게 빤야빠라미따와 해정포우와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쇠뿔을 단김에 뺀다는 것이 소를 푸욱 삶아서 살이 풀어졌을 때 살과 뼈가 분리된 뼈를 뽑는다는 뜻으로 이것에 빤냐빠라미따라고 삶이라고 할 때 날것을 푸욱 익히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어떻게 내가 하루를 푸욱 익혀서 뿔을 뽑아낼 것인가 뿔을 뽑아내는 일이 바로 각성이라고 하는 나를 삶아야 나오는 소리라는 설명, 각성을 하지 않으면 날것을 삶을 수 없고 삶을 수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하는 말을 한다고 하루라는 날것을 각성으로 푸욱 삶아야 하루가 향기롭고 맛있게 된다고 아침 해는 날것같이 독기를 가득 채운 어린해지만 지는 해는 채움한 기운을 푸욱 펴트려 삶아 익힌 온유한 해라고 아침해는 기운을 싣고 올라오지만 지는 해는 그 기운을 대지에 다 내려준 비운 해라고.  (2/11)
 
아침에 신단으로 가면서 아침해와 저녁해의 에너지를 생각했다.
해오름을 하면서 내가 받아오는 만물신선함같은 에너지가 나로 일일신우일신하도록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은 안다. 기를 받는다는 말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눈이 밝아지면 육체의 이면에 작동하는 신의 옷자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빤야빠라미따, 즉 정견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이제 먹물에서 벗어나서 눈을 씻고 소망하는 것이 빤야빠라미따라는 에너지다. 예전에 뭔가 보인다고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대하면 무엇이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궁금했고 나더러 뭐가 보이냐 물으면 아니..그대는 뭔가 보이요? 하면 용자도반은 나도 안보이는데..했다. 우리레벨이 아직 눈이 안뜨여졌다는 것이지. 그리하여 요즘 기도제목이 일여소원 사사명시에 그렇게 힘이 모인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이라고 하는 영안통이거나 천안통이거나를 얻게 되면 어떤 현상을 체험할 수 있을까나 기대도 되는 것이니 신단을 돌면서 비나리를 하는 것이 구령삼정주가 된다. 반야주는 이제 심제심제로 언어를 바꾸면서 넘어선 것 같고 닿은 것이 구령삼정주다. 구령삼정주를 외고 읊고 하지만 나에게 정답게 익숙해지게 소뿔도 단김에 뺀다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령삼정주의 한자한자가 피에 새김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빤냐빠라미따심경의 심제심제바라심제 바라승심제모지사바하..마음을 건너가면 닿는 곳에 어딘가..피안이 피에 새김된 정보인데 그 피를 풀어내면 어떤 정보가 나오는가? 피안에 새김해둔 정보 즉 辛針으로 심비에 새긴 정보가 구령삼정주라는 것이다  내 이해다.  
 
오늘 해맏이로 가면서 까막이, 각성훈련을 하면서 가는데 그 시간에 까치가 까마귀가 모이어서 회합을 하는지 내 소리까지 더해지면서 신단가는 길이 소란스러워지더라. 내 소리와 새소리를 섞어보면서 내 소리에 새들이 어떤 공명을 하는지를 실험해보는 것.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파동함수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새들이다. 그래서 새들의 소리파동은 들소리로 퍼트리게 되어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사람은 땅을 딛고 다니면서 날소리를 하기때문에 중력의 법칙에 의하여 토해낸 소리가 땅으로 돌아와 내 발길앞에 머문다. 그래서 우연을 만드는 것은 내가 토해낸 소리가 만든 필연이다. 말을 잘 하라고 하는 이유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이유다. 내 말은 피의 무게를 딛고 나오기때문에 중력의 법칙을 따라 무게값을 가지게 되고 그 무게가 나무의 열매가 익어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내가 걷는 길을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인생살이의 모든 것은 내 말이 만들어내는 길이기때문에 누구를 탓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다. 날소리는 중력의 법칙을 따라 나와서 내 발길앞에 떨어지고 그것이 내 하루를 만드는 길이 된다. 들소리를 훈련해야 하는 이유가 들소리가 공중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이 되어서다. 기도의 원리는 공중으로 퍼진 파동함수에 공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소리가 아니라 들소리를 해야 공중파동과 연동이 된다. 그래서 거룩하다는 聖은 들숨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공중에서 공명하는 공명파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날소리, 즉 들숨으로 길을 뚫어내기위하여 하는 소리를 통하여 독맥 33마디를 뚫어나간다. 독맥을 뚫는 것이 空이고 기도라고 하게 되는데 독맥은 등으로 타고 내려오는 길이고 그 길을 뚫는 것은 자등명이라고 했다. 왜 등을 등이라고 하는가? 성령이 타고다니는 길이어서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다고 하는 열처녀의 비유의 등이 무엇이라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나는 독맥 33마디로 이뤄진 뼈대라고 보고 있다. 경추에서 미추까지 33마디다. 이 마디를 열어내는 것을 길을 딱는다고 한다. 대나무로 설명하는 것이다. 접부채를 만들때 대나무의 마디가 33마디로 된 것으로 부채대를 만든다. 고가의 부채가 되고 대피를 만들때도 33마디가 되는 것으로 만들면 고가가 된다. 그대의 독맥이 33마디대나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독맥을 뚫어내는 세월을 나는 마디와 맞춘듯이 33년이 걸렸고 34년이 되는 올해 흉성이라는 정보를 마주하면서 이제 임맥을 공부하는 과정이구나 하게 되었다. 督脈은 맥을 살피는 에너지통로다는 뜻이다. 살피려면 등불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스스로의 등을 밝혀야 어둠속의 정보를 살필 수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자등명해야 법등명, 즉 문자속에 숨어있는 빛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지 자등명은 독맥을 열어가면서 알게 되는 정보라면 법등명은 임맥을 열어가면서 알게 되는 정보라고 이해한다. 맥을 살필 수 있는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임맥을 밝혀내려고 하는 것이다. 임맥은 姙脈이라고 하는데 임신할 임이다. 즉 문자라는 정보는 임신한 여인과 같다는 것이다. 문자를 문자가 품고 있는 뜻을 풀어내기위한 준비가 독맥을 열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33년 예수의 생애로 설명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기독으로 쓰는 이유다. 여자인 나는 독맥을 뚫어가는 길을 시작하여 임맥에 닿게 되고 남자는 임맥에서 독맥에 닿게 될 것이라 볼 수 있다. 정자를 임맥을 통하여 생성한다. 허리에서 정자를 만든다. 몸씨앗은 허리에서 만들고 여자의 바다에서 생명을 잇는다. 엄마의 바다라고 하는 이유가 정자에는 없는 철정보가 난자에는 있어서다. 엄마의 바다에서 정자는 생명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육신의 원리를 놓고 영혼이라고 하는 정보는 어디서 어떤 자궁을 만나 생성되어 태어나는가?를 궁구하는 것이 영지, 즉 영적인 지식이라고 하게 된다. 근거는 육신의 원리에 있다. 그것을 딛고 영체의 원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영과 육이 같은 원리로 가동되는 것이 독맥을 따라 내려오지만 임맥을 통해서 정보가 물질화되기때문이다. 임맥은 정보를 잉태하는 에너지다. 여태 열리지 않았던 정보세계. 내가 여자이기때문에 임맥체험을 출산을 함으로 임맥을 이해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다는 것을 오늘 발견했다 
 
오늘 신단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꼭찍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즉 해안에 삼족오가 있는 풍경..그런데 오늘 그 풍경을 만났다. 내 소망에 대한 응답처럼. 애국가를 부르면서 올리는 소망을 글로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마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 디디고 다니는 이 땅에 대한 내 사랑이 애국가로 드러나는 것이라고..그렇게 애국가를 부르는데 구름뒤에 있던 해가 얼굴을 내밀고 올라왔다. 그리고 새가 가지끝에 앉고 그렇게 내가 바라던 사진을 얻게 되었다. 각성을 한다는 것 견성을 한다는 것 견성을 개소리라고 하는데 흔히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개소리가 견성이고 각성은 까마귀소리다. 개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계경보다. 낮선 걸음에 그 걸음의 주파수와 파동을 알아채고 짖는 것이 견성이다. 소울음을 우성이라고 한다.  
 
오늘 12일, 새로운 출발이라는 싸인, 즉 임맥공부를 출발하자고 하시는 것.빛결이 꿈을 보내 왔는데 꿈에 나에게 꾼 꿈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즐거워하더라고 하던데  아마도 오늘 삼족오, 해안의 새를 사진찍으면서 내가 나아갈 길을 가르쳐준 것 같아서 그렇구나..흰쥐를 흰호랑이가 잡아 먹었다고 그리고 큰 개로 보이는 동물을 보니 큰 개라고..쥐에서 호랑이로 승격했다는 것이겠고 꿈에 나타난 젊은 여인은 임맥을 뜻하는 것이겠다. 독맥을 공부할 때 등장하신 예수와 도해단군님, 이제 임맥공부하는 에너지는 빛결의 꿈을 통해 전해주시고 외연에서는 해안에 있는 새로 임맥을 설명해주시는 갑다. 해가 품은 새. 멋진 스토리로구나. 내가 나의 하루를 이렇게 풀어가는 것이고 없는 상상이 아니라 빛결의 꿈과 내 아침과 그리고 공부와 가지런하게 연결이 되는 것이니 행복한 것이지. 오늘 아침에 사탕공양을 하면서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따뜻한 공명도 하면서 사람은 파동이 같은 이와 소통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을 윈윈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이제는 통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통해보려고 노력하는 헛수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행복이란 같은 파동함수로 공명하는 에너지가 만드는 환희 봉송..이라는 것
훤吅이라는 한자가 너와 내가 같은 에너지로 공명할 때이다. 이런 한자가 있다는 것이 참 재밌고 즐거운 발견이다. 어제 만난 박명길여사님의 길이 姞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부할 한자가 참 많구나 . 산스크리트어와 한자와 한글이 같은 에너지라는 것(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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