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풀 뽑기를 세미와 같이하고 있다. 오늘(12일 기묘己卯) 사흘째
해맏이신단으로 가는 길에서 풀을 뽑거나 낙엽을 쓸거나..그렇게 걸음을 하는
길마다 눈에 들어오는 풀들은 뽑으며 다닌다. 풀 뽑기 수행이라고 하는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세미가 더 열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 손만 가지고 덤벼든다면 세미는 호미랑 전지가위들을
준비하여 다니면서 다니는 길들을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구청에 전화를 하여 쌓아둔 풀들 처리를 하라고 한다. 기상청의 풀 뽑기를 할 곳에 많다. 아카시 싹들이 올라와 손끝이 아니라 손아귀로 잡아낼 수 있을 만큼 며칠을 자란 것을 뽑는 것도 즐겁다
기상청 고기압 등고선으로 가는 언덕을 보니 아카시가 자라 있어서 잔디들의 색조보다
검푸르게 보이는 것에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각정 구역의 한 구역을 먼저 작업을 하고
바람의 정원에서 논리와 감리에 대한 공부를 하고 퇴청을 하다가 아카시 군단을
마주하게 되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작업을 시작하니 금방 끝났다.
논리는 건곤 음양이 만드는 정보이고 감리는 숨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정보다 는 것
논리와 감리가 같이 가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하모니.. 균형을 이룬다는 것
유치원 아이들이 기상청에 와서 잔디밭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아카시 싹을 뽑아내었는데
우리가 풀을 뽑은 팔각정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지.
오늘(13일 경진 庚辰)은 어제보다 넓은 구역의 풀을 한 블록 뽑고 있는데 기상청 관리인이 등장하여
무슨 일을 하시냐 하길래 풀을 뽑는다고 했더니 어떤 기관에서 나오신 것이냐 해서 아니라고
이곳을 다니는 시민이라고 다니다 보니 나무 사이의 풀들이 많아서
나무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확보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 자청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담당하는 분들이 있으니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어제 아이들이 왔을 때 뱀이 나왔는데
독사가 나왔다고 그래서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만하시라고 하길래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고 다 되었다고 했다. 쓱 지나가는 눈으로 보니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는데
문병철 님. 염려를 해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우리가 풀을 뽑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이기재李起榟선생님은 팔각정 청소를 하려 오셨다가 가셨다. 팔을 흔들어 인사를 하였다.
한 구역을 작업하고 깨끗하게 관리 청소가 된 화장실에 와서 손과 장갑을 씻고 세수도 하고 흙먼지를 털어낸다. 깨끗하게 청소가 된 상태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우리가 쓴 다음을 돌아본다. 내가 있었던 자리는 깨끗하게라는 것. 세미랑 다니면서 세미에게서 가끔 보는 것이 어떤 기운을 감지하게 되었을 때 급작스럽게 요의가 생겨서 당황스러운 때가 많다고 한다. 나도 지나가는 이와 대화가 되어서 기운이 오가면 어느 때는 상당히 힘든 때가 있기 때문에 세미가 겪는 그런 반응을 이해한다.
세미 사주와 내 사주를 놓고 둘이 서로 풀어가는 공부를 하는 과정인데 세미의 사주가 내 사주보다 높아서(높다는 것은 풀기기 어렵다는 의미다)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같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끌어가는 공부를 따라올 수 있는 것도 사주에 있는 천라지망에 진해 귀문에 간여 지동에... 이렇게 겹겹의 높은 사주를 받아와서 이구나.. 세미도 나와 소리 공부를 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외연화시켜주는 객관 정보인 사주간지 공부를 하게 되면서 공부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인데 나 역시 객관적인 나의 정체성인 사주팔자 명식을 놓고 이 문자언어들이 지시하는 뜻, 자의 상형字意象型을 찾아가는 공부를 하는 여정에 나보다 레벨이 높은 사주를 놓아서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하시는구나 알아차린다. 빛 결의 사주도 높고 종순 사마의 사주도 높은 양팔 통이고 남편의 사주도 내가 건드릴 수 없는 고수 사주이고 아들도 딸도 그러한데 세미의 사주를 보면서도 아이고... 하게 되었더라는 것이지. 내 사주팔자 명식을 보면 오행구족하여 가지런하기 때문에 이런 사주 명식들을 내가 마주하여 소화하고자 한다면 어떤 에너지를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가진 사주 명식은 22자의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 60개 중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주팔자를 즉 네 기둥을 놓고 56개의 명식들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사주팔자 푼다고 한다는 것이지. 내 4개의 사주에서 천간은 금생수 수생목으로 순리로 흘러가는 흐름이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지지에서는 4개가 귀문관살이라고 하는 것이어서 풀어가고 있는데 왜 귀문관살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여섯 개의 귀문이 있는데 그 귀문마다 드나드는 귀는 어떤 것인지 관살이라고 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인지 귀 문관 살을 풀어가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4개의 귀문관살도 당겨와 풀게 되면서 세미의 진해 귀문을 딛고 술해천라지망도 함께 풀어가게 되었다는 것이 세미를 만나게 한 하늘의 이끄심이구나 하는 것. 귀문이라고 하는 것은 150도에 있는 지지와의 관계인데 다섯 개는 150도인데 자유 귀문은 270도이다. 이런 차이도 설명이 되어야 하고 자유와 신묘는 뿌리를 내릴 즉 관살이 되어주는 토가 없기 때문에 귀문이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 넷은 관살인 토가 짝을 이루고 있어서 귀문관살이라고 한다는 해석이 되더라. 귀문을 무엇으로 개념하는가에 따라 관살도 해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鬼門이라고 외연에서는 설명하는데 鬼는 육체 없이 영혼만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죽은 사람의 넋. 또는 인간에게 화복(禍福)을 주는 정령. 鬼는 인간에게 화를 내리는 정보파동이라고 본다.
육체가 없이 영혼만으로 구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영혼이 무엇이냐는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육체야 너와 내가 서로 이해하는 정보이지만 육체가 없는 영혼이라는 것에서는 저마다 다양한 정의가 있을 것이니 나는 영은 숨이라 정의하고 혼은 소리울림이라 정의를 한다. 즉 숨과 소리를 영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영은 정령이라고 하고 혼은 혼불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겠다. 정령이라고 할 때 精靈일 것이고 혼불이라고 할 때 魂, 紱(인끈 불 糸犮)이라고 나는 한자를 가져와 설명을 한다. 숨소리가 파동함수를 팽창시키게 되면서 움직임이 만들어지게 되고 몸의 움직임을 보고 그린 그림을 나는 한자의 출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움직임과 쉼이라고 하는 것이듯이 움직임은 숨과 소리를 딛고 나타나고 쉼을 문자로 그려진다는 것이지. 그래서 문자언어는 지식이고 숨소리를 생명이라고 설명하는 것인데 숨소리가 만드는 움직임을 보고 그린 그림을 상형문자라고 하게 되는 것이고 혼불의 근거가 된다고 나는 이해한다. 혼불이 22개의 천간 지지로 정해져 그대와 내 앞에 닿게 되었고 이 22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60간지를 안다는 것이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진 실체를 알아가는 공부의 출발이라고 본다는 것이지.
60간지를 이해하는 공부가 사주60간지를 아는 것이고 이 육십간지에서 네 개의 간지를 부여받게 되는 것을 숙명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고 부여받은 숙명을 객관적인 몸의 정체성이라고 하게 된다. 몸이 받은 한 달란트라고 하거나 한 알의 밀알이라고 하는 것이 사주간지라고 하는 것이고 몸에 부여된 사주간지를 이끌어가는 머리로 주어지는 것이 이름이라고 하는 운명이 되는 것이지. 이름도 사실은 이 천간 지지에서 가져오는 것이어서 부여받은 숙명을 풀어가는 열쇠라고 하는 것이지. 4개를 놓고 56개를 찾아내어 60가지를 소화하는 것,
그렇게 조각을 찾아낼 수 있는 열쇠를 이름이라고 한다고 나는 설명을 한다네. 하늘의 열쇠를 게바에게 주었다는 성경의 이야기에서 그대도 부여받은 열쇠가 그대의 이름 석자라는 것에 닿기를 .. 베드로라는 이름에서 게다, 즉 반석磐石이라는 이름을 열쇠로 주었다. 그대의 사주간지 여덟 자를 풀어가는 열쇠 Key로 그대의 이름 석 자, 게바 열쇠를 나를 주었다는 것이다. 사주간지는 물에 새긴 정보라면 이름 석 자는 피에 새긴 정보다. 피에 새긴 정보라고 하여 게바라고 하는 것이지. 뼈에서 생성되어 흐르는 피.. 피는 생명이라고 하였다. 이성은 물이 담겨 흘러오는 모세 오경, 오행 정보이고 감정은 피가 만들어내는 오경을 살려내는 에너지라고 하는 것이지
하와(야훼, 손봐라 못 봐라)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뜻이다. 하와는 피를 의미하고 아담은 물을 뜻한다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정자는 물 에너지이고 난자는 미 에너지라고 그래서 부정모혈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내가 받은 사주는 60개 중의 4개다. 4개라는 밑천을 놓고 56개를 내 것으로 소화하여 가는 공부를 역학공부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내게 주어진 4개의 간지를 먼저 이해를 하는 것이고 그리고 56, 즉 오장육부라고 하는 간지를 하나씩 풀어보게 되어 60조각을 다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지. 육 장 육부를 합하면 60간지가 된다. 12간지를 다섯 번 돌리면 60간지가 되는 것이라고..현장학습이 되는 공부. 나는 경자 임오 을축 을유라는 네 개의 밑천을 들고 56개의 간지를 알아가는 것. 육장 육부라고 하는데 일장을 심포 삼초라고 한다는 이 정보를 놓고 내가 받은 네 간지가 바로 심초(1) 삼포(3)구나 하고...
갑자 갑인 갑진 갑오 갑신 갑술 을축 을묘 을사 을미 을유 을해
병자 병인 병진 병오 병신 병술 정축 정묘 정사 정미 정유 정해
무자 무인 무진 무오 무신 무술 기축 기묘 기사 기미 기유 기해
경자 경인 경진 경오 경신 경술 신축 신묘 신사 신미 신유 신해
임자 임인 임진 임오 임신 임술 계축 계묘 계사 계미 계유 계해
56개의 간지를 마주하여 지식이나 인식으로 소화하는 공부를 사주 명식 공부라고 하는 것이니
외연에서 풀어내놓은 간지 설명이 와닿는 것은 지인이 가지고 있는 간지를 알 때 그 간지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더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도 그러하고 내가 너를 이해하는 것고 사주간지를 놓고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을 때더라는 것이지. 사주 공부를 하게 되면 타인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것이 내 체험이다. 즉 내 주관적인 선입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사주간지를 알게 되면 아하.. 이런 숙명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고 내 생각과 다른 너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되더라는 것이지. 마음공부라는 것이 이것이구나.. 내 사주 명식을 알아가면서 56개의 간지를 하나씩 알아가는 공부.
그래서 세미와 종순 사마의 사주팔자 명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하여 같이 소리 훈련을 통하여 오행이 구족한 내가 이런 사주, 저런 사주들의 에너지 파동들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 공부는 한 마디 성장할 때마다 시험을 치고 합격점을 받아 통과를 하는 과정이 있듯이 내가 나를 아는 공부에서도 나를 공부하는 것은 너에게 비춰봄으로 확인하는 것이니 내 공부의 심도를 알게 되는 것은 내게 인연으로 등장하는 이의 사주를 풀어보는 것에서 나의 레벨을 알아채는 것이지. 나와 소리를 같이하는 소통을 통하여 너의 객관 정보를 마주하게 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내 반응이나 상대방의 사주간지가 이렇게 나타나구나 하는 확인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지.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사주간지 공부를 해라 자신을 알고자 해도 사주간지를 공부해라.. 나는 요즘 자기의 사주를 마주하여 사주가 높으면 즉 천라지망 귀문관살...들이 있으면 개운 법으로 역학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 봉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일에 성실하라는 것은 역학을 풀어내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놓게 되는 개운 법이다. 개운이라는 것은 운을 연다는 것이지. 즉 봉인된 60개의 간지를 열어 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투자가 공부 기도 일상에 성실함. 내가 사주간지에서 재물이라고 해석하는 무기 진술 축미라고 하는 토를 공부함으로 얻게 되는 힘이라고 한다. 수기라고 하는 임자 계해를 외연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라고 하는 것이고 화기라고 하는 병정 사오를 안에서 밖으로 펼쳐나가는 정보라고 하는 것이고 목기라고 하는 갑을인 묘는 드러난 육체의 모습이라고 하고 금기라고 하는 경신 신유는 육체 안에 숨겨져있는 골체라고 설명을 한다네. 재물을 얻는다는 것은 내가 나를 아는 지식을 얻고 실천함으로 느끼게 되는 보람참이라고 한다
세미에게 논어論語개념을 설명을 했다. 설명하면서 나도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내게 되는 것인데
풀을 뽑고 순설 후 훈련에 손발바닥 두드리고.. 하는 훈련이 만들어내는 결結이라고 생각한다. 둥글게 돌아가면 생기는 것에 에너지 파동이 팽창되는 현상이지. 그렇게 논은 다양한 정보의 해석장이 된다는 것이지.
論은 言亼冊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論 자는 ‘논하다’나 ‘논의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論 자는 言(말씀 언) 자와 侖(둥글 륜)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侖 자는 죽간을 둥글게 말아놓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둥글다’.
이렇게 ‘둥글다’라는 뜻을 가진 侖 자에 言 자를 결합한 論 자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의미에서 ‘논하다’를 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論 자는 어떠한 사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論은 객관적인 정보를 뜻하게 된다. 즉 서로 토론하여 답에 이른 정보를 죽간竹幹에 새김하여 대를 이어내리게 한 것이라고 이해하는데 주어진 정보이고 그 정보에 대한 내 관점을 나타내는 것이 語 가 된다. 객관적인 정보를 마주하여 내가 풀어내어 실천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논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어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語는 言吾인데 吾는 五口인데 오행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말씀을 오행 원리에 따라 풀어내는 것, 다섯 개의 입이라고 하는 것인데 오온이라고도 하는 것이지. 오온이 공하다,...
오행(지수화 풍토, 인의 예지신)을 따라 만들어진 말씀으로 내가 공명할 수 있을 때 논論에 대하여 어語가 된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 오행은 지수화풍 토의 흐름이다. 즉 내가 숨을 쉬고 움직이는 과정을 설명하는 원리다. 숨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글이 되고 글이 지면에 그려져 글자가 되고 인쇄가 되어 책안에 담겨 그대와 내 앞에 닿게 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 五口가 의미하는 것이다.
논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주어진 정보를 나의 오행으로 해석을 하는 일이다. 남이 해석한 정보를 놓고 내 숨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 내가 이렇게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지. 나만의 즐거움이다
그렇게 세미에게 내 개념을 설명을 하면서 어떤 언어를 대하든지 그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생각 공부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우리가 하는 작업이 생각의 풀 뽑기에서 언어의 풀 뽑기라고 속풀이를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지. 말에 온전해짐을 위해서는 내가 모르고 하는 말이 구업을 만들고 알고 하는 말은 힘을 만드는 것인데 모르고 한 말은 죄가 되어 무게가 되고 허물이 되어 모르고 한 나에게로 돌아오니까 말은 씨를 뿌리를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말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남의 탓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내 성장력에서 나오게 되는 이해가 말에 대한 말값을 풀을 뽑는 것으로 지불한다. 즉 모르고 내뱉은 말을 풀을 뽑는 실천으로 그 무식 에너지를 내 스스로 뽑는다.. 고
사주 공부를 하다 보면 천라지망이니 귀문관살이니..라고 하는 언어 개념을 만나는데 사주가 높으면 공부할 좌표를 받은 것이어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를 하라고 개운 법을 가르쳐 주시던데 나도 내 사주가 높아서 개운하는 방법으로 소리선을 하고 글을 보고 두드리고 그리고 말을 많이 하는 까닭에 다니는 길에서 눈에 들어오는 풀을 뽑아내는 것으로 모르고 한 말을 스스로 갚아가는 것이라고 ...개운 법이라는 것. 말에 대한 개운으로 풀을 뽑는 것이지.
나랑 공부를 하다 보면 갈수록 어렵겠지만 말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 생기는 것이고 말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기루라고 하는 좌표가 술에 천라지망이라는 좌표이고 그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길을 귀문관살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천라지망이라든지 귀문관살이라고 하든지 이런 문자는 다 論에 속하는 것이고 경전들을 논장이라고 하는 것이지. 논장을 나의 삶으로 소화를 시키기 위하여 공부를 하는 과정이 어장語場관리라고 하는 것을 다시 기억하자.
문자라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것을 입으로 올리면 문자가 언어가 되어 살아나게 되는데 문자 자체의 개념을 풀어내지 못하고 입으로 올리게 되면 그 문자를 가져와 쓰게 되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문자를 입으로 올리게 될 때 말이 공짜라 생각하는 것이 죄罪라고 하는 것이다.
말이 가장 무거운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죽은 문자를 입으로 올리는 일이어서인데 문자를 말로 살려내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면 쉽게 말을 하지 않게 된다고 하는 것이고 성서에서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라고 설명하게 되는데 욕심이 말로 나타나고 그 말이 자기에게로 돌아와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 즉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대의 생각이 말로 나타나는데 내가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나에게로 떨어지게 되는데 말이 떨어지는 자리를 감정자리(진술축미 庫)라고 한다.
생각은 이성 영역인데 말은 감정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성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반응이 말로 나타나게 되는데 내가 한 말은 파동으로 흩어지지만 그 말을 하도록 에너지는 몸에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그 흔적이 쌓이게 되는 것을 感이라고 한다. 진술축미는 이성이 감정으로 변환하는 에너지다. 진술축미를 환절기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지
천간 무기토가 지지로 내려오면 진술축미토가 되는데 인체에서 무기토와 잇기게 되는 곳이 비장이다. 그래서 비장의 무기라고 한다는 것도 기억하자. 토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때 감정 공부를 해야 하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그대가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내 반응인데 내가 모르는 정보가 들어오면 이해를 못 해서 답답하거나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해석이 들어오면 내 생각을 고집하고자 하게 되어 거부감이 생기거나.. 하는 것이지. 외부정보에 대처하는 것은 내 이해력이지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감정은 갑을인묘라는 정보를 '미'토에서 갈무리하여 그 에너지를 발화하는 것이고 병정 사화라는 정보를 '술'토에서 갈무리하여 그 에너지를 발화하는 것이고, 경신 신유는 에너지를 '축'토에서 갈무리하여 발화하는 것이고 임계해자라는 정보를 '진'토에서 갈무리하여 발화하는 것이다. 그대의 축토는 숨골이고 그대의 '진'토는 가슴이고 그대의 '미'토는 단전이고 그대의 '술'토는 하단 전이라고 하게 된다.
감感이라는 한자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정의된 것인지를 살펴보면 丿戈一口心이라는 다섯 글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글자로 하면 戊, 戌, 咸, 感이라고 하는 것이지. 이 글자의 성장과정을 읽어내는 것을 글공부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말을 알고 할 때 말의 근거가 되는 문자를 공부하게 되는 것이고 말은 표음이라고 하는 데 대하여 문자를 표의라고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면서 자신의 글과 말에 대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문장으로 문장을 두드려가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문장을 이루게 하는 낱말의 역사를 파고드는 것은 희유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지
죽어있는 문자로 이뤄진 문장을 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즉 수신하는 정보에 대하여서는 값을 묻지 않지만 수신에 대한 발신인 말에 대한 것은 반드시 말값을 묻는다는 것이지. 즉 정보가 들어와 밖으로 나갈 때에는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쓴다는 것은 감정 재산 즉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에 대한 생령이라는 작용이 나온다는 것이지. 보는 것에 대한 반응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발신하는 말은 너와 나라는 관계성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호환 작용이기 때문에 서로 오가는 에너지가 결이 되어서 생성되는 것을 '感'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이런 생각은 나의 생각이다. 감은 살아있는 대상과의 사이에서 오가는 파동에서 생기는 결이고, 정精은 내가 선택하여 투사하는 이해력이다.
말값을 모르고 하게 되는 그것이 죄가 되고 모르는 말을 반복하게 되면 그것이 모여서 사망이 되는 것이다. 그대가 사망 즉 죽음이라는 말에 대하여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말에 말을 거듭하는데 그 말값을 물을 때 말값을 모르고 한 것이 그대의 죽음이고 사망이라는 것. 말이 만드는 허물은 내가 풀어야 하는 속에서 맺힌 것을 풀어야 하는 것이라고 속풀이라고 하는 것이지.
천수경에서 십악 참회라고 하는 것이 나오는데 열 가지 악에서 말이 만드는 악이 4개가 된다. 말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지. 침묵하라고 하는 것이지. 모르고 하는 말은 악이 된다. 알고 하는 말은 힘이 된다. 그래서 그대를 힘 있게 하는 말을 하도록 글공부를 하고 말공부를 하고 몸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악하게 되는 것은 쉽다. 힘이 있는 말을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어렵다. 열린 입이라고 말을 쉽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선각들의 조언이다. 이 조언을 실천하려면 구업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할 때 입을 닫게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입을 닫게 된다. 나를 상처 주는 것도 나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나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 상처 나 사랑이나 다 언어라는 것...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
기상청, 우리의 에덴에서 정원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신 창세기의 말씀을 묵상한다.
동물에게는 이름을 짓도록 하시고 식물들은 다스 리고 지키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다스 리고 지키라고 주신 기상청 정원. 풀을 뽑는다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
하늘이 신령이 천사와 천군들이 주시는 가피라는 것이니... 공부라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통하여
하는 것인데 이렇게 뽑을 풀이 있는 에덴을 허락하신 것이고 이렇게 에덴을 허락받을 만큼
우리가 성령으로 가득하여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겠지. 내가 이리 해석하고 감사하는 것
다니는 길마다 눈에 들어오는 풀을 뽑는 것이 훈련이 되고 습관이 된다
경전의 가르침은 같다. 즉 聖이다. 성은 귀 耳口壬이다. 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수신하는 곳이고
입口는 안에서 밖으로 발신하는 소리처이고 그리고 이 들음과 발음을 다스 리고 지킬 수 있는
에너지를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잘 듣고 말을 잘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다.
샤먼 어둠을 밝히는 빛을 불러오는 사람
샤만 사만 사람이다
사람은 어둠(아담 봉인)이고
어둠에 빛을 불어넣음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됨이다
사랑이 몸으로 나타나면 사람이다
즉 ㅇ이란 반복이 틀(질서) ㅁ 을 만들기 때문
사는 알다시피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개의 강이고
이것을 일러 사주라고 하는 것으로 사주도 음양이어 팔자라고 한다는 것
갑에 을이, 병에 정이, 경에 신이 임에 계가 음양으로 있고 이 사주를
통합한 몸의 음양인 무에 대하여 기라 하여
무기토인 아담이 사주 지수화풍의 흐름을 알아가는 것을
하나님의 형상(양)과 모양(음)을 따라 지음되어
형상은 다스리고 모양은 지키는 책임과 의무를 지고
태어난다고 하여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린다고 한다
사람은 사주를 공부하여야 사랑이 뭔지 알 수 있는 미완성 즉 독처로 태어나
공부를 통해 하와를 만나 살중의 살 뼈 중의 뼈가 되는 완성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그 완전성을 얻는 것을 자아실현이라고 하는 것이지
추석에 다섯명의 여인들이 모여 축제 한마당 굿한판을 벌인다고 하는데
장구 2대와 꽹과리까지 갑진년 추석마츠리를 했다
내가 많이 넓어지고 온유해지고 적응력이 좋아 어디든 잘 스며드는 유연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
일요일부터 오늘까지 연휴를 공부하고 배우고 웃고 먹고 떠들고 ...하면서 나를 점검한다
내 안에 세웠던 벽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 오래 전에 엄마가
나에게 너는 예레미야에너지다 고 하셨는데
예레미야에너지가 성주괴공이라는 것 낡은 것은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여
나를 나되게 하는 것
사주간지공부를 통하여 외연에서 전해오는 개념을 넘어선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이렇게 쓰임된다
즉 외연의 개념은 너들이 만들어낸 문자놀이다
아는게 힘이라는 것에 닿으면 스물두자를 풀어내는 것이 공부구나 한다
한자 22자에 대해 짝으로 있는 것이 히브리어 22자다
이 음양글자를 연결하여 풀어내어야 하는 과정
이러저러한 정보를 듣고 보고 하여도 내 피와 살이 되는 것은
내가 직접 내 몸으로 그리고 풀어낸 것의 힘이다
개념탑재도 하지만 어느날 버림도 있다
수승한 개념이 생기면 이전 것은 버린다
낡아지는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은 잡는다
이번 추석연휴를 참 즐겁고 멋나게 채운다
하기사 내가 가는 자리마다 에너지 활발발 풀발기라고
새로운 에너지 샬랄랄랄라....빛결로 가득하여
빛길만 걸어가는 것
방울 종 미사포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용도가 있고
기도로 묵은 허물을 벗는 이들이 생각하는 용도가 있다
춤은 춤인데 어떤 복장으로 추는가에 따라
춤의 의미가 달라진다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쓰고 한다는 천
그리고 멈추어있는 기운을 깨운다는 종
그리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사용한다는 방울
불가에는 목탁이나 염주가
천주교에는 묵주나 미사포가 있다
비물질계와 물질계를 매개하는 용도다
매개체를 내려놓고 비물질계인 숨과 움직임을
물질계인 소리와 몸을 매개체로 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영과 육이 하나되는 ‘길’이다
심판은 경전을 통하여 비물질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의 몫이고
의는 소리를 통하여 비물질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의 몫이고
죄는 몸을 통하여 비물질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의 몫이라 본다
죄는 모름이다 모름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경전이라는 정보가 있기때문에 생기는 그림자다
경전은 그대를 구원하는지 모르지만 남에겐 영향력이 없다. 즉 자기의 지적인
이해력을 확장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너’에겐 무력하다. 종교가 판을 칠수록 세상은 악하고
거칠어지는 이유가 경전은 ‘정죄 즉 심판’의 기능이기때문이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지식안에 갇혀서 자기를 볼 수 없다
본다고 하는 자기는 경전의 눈이지 생명의 눈은 아니다
어느 날 그 비밀을 알게 되면 세상의 모든 허물의
생산처가 너의 깨달음에 기생하는 지식에서 벗어나
빈 몸으로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벗어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는 것처럼
다 때가 있다 경전의 매혹에 빠져 그것에 목숨을 걸 때가 있지만
어느 날 묵은 허물을 벗게되면 그 매혹의 실체 즉 회칠한 무덤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면
생명의 흐름을 타게 된다
나는 다른세계를 사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 세상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길을 다니며 혼자로는 풀을 뽑고 너를 만나면
내가 추구하는 생명원리를 같이 나누고 ...숨쉼 자체가 가장 귀한 복이라고 일상의 소소한 신의 뜻을 설명한다
걷는다는 것 숨쉬고 웃는다는 것 삼라만상 매일 옷갈아입는 변화를 즐기는 것
이것이 수승한 정등각이지 그외는 그저 심판의 언어들이라는 것
경전을 들고 있으면 경전의 용도가 심판이라 너를 정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기가 옳다고 강변하는 방법이 너를 판단함으로서니까
이번 추석에는 다섯여자가 모여서 축제를 했다
내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에서 나타난 즐거움이다
거리를 두고자 하던 정죄의 개념이 사라졌다
같이 순설후를 하고 손뼉을 치고 ...
금숙이에게서 늘 내가 걸렸던 것을
이번에 넘어선 것인데 내가 너를 정죄한다고
너가 의로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죄의 언어에
갇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벽을 헐게 된 것
누구나 나를 만나면 나를 좋아한다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조건이 많아서 늘 거리를 두게 되고 그 거리감을
상대방이 느끼게 되니까 성격이 차갑다고 하게 되는데 감정이라는
낱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뜻을, 정보를, 에너지를 파악하게 되면서 감정은 피가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것과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에너지라는 것
이성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정보로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와 몸을 아래로 나가는 정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는 솟구쳐 뚜껑이 열린다고 하게 되고
물은 아래로 내려 용천혈을 통해 땅으로 가는 것이다
물이 밖에서(위에서)안으로 들어와 몸을 돌아
아래로 나가는 길을 순리라고 한다 불이 안에서 발생하여 온 몸으로 돌아
위로(밖으로) 나가는 것을 역리라고 한다
물과 불을 극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래 용천혈로 빠지지 못한 물이 몸에 쌓이게 되거나
위 니환궁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불이
머리에 쌓이게 되거나 하는 상태를 ‘병’들었다고 하게 된다
기氣인 물과 운運인 불이 제대로 순행하지 못하여 생기는 현상이 ‘병’이다
기 자에는 구름 气을 부수로 쓰고 운 運 자에는 辵(辶, ckr)을 부수로 쓴다
기는 외부에 있고 운은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다
외부에서 들어와 안을 돌아나가는 현상을 기운이라 하고
그 일이 걸림에 없을 때 건강하다 하고 어딘가에
걸림이 생길 때 고질병이라는 낱말로 진단한다
운을 고친다 연다고 하는 개운법으로 역학공부(힘을 발생시키는 원리)를 하고
기도(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임)를 하고
그리고 일상을 분수에 맞게(사주간지에 따라)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즉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것
알고 살고 사랑하며 라고도 하는 것이지
자기의 분수를 안다는 것은 사주간지와 이름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즉 자기자신을 아는 앎이 없으면 그 믿음도 소용이 없다는 것
믿음의 쓰임은 자기자신을 아는 것에 있고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지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이 성서의 화두이자 예수의 도전이자 내가 누리는 열매 생명이다
그대가 경전속을 헤맨다면 그대는 자기자신의 핏소리를 들을 수 없다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은 경전에 있지 않고 피에 새겨진 울림이어서
세미한 가운데 있다고 했다
물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정보를 제공한다
즉 공평하다는 것이지 피는 누구나 다른 개별성이다
피에 생명이 있다고 했는데 생명에 대한 개념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물에 실려오는 보편성 피에 새김된 개별성 이 두개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피를 물에 풀어야 피에 새김된 정보를 알 수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해서 피에 새김된 값을 알려면 물에 풀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피를 물에 풀어내는 일이라 한다
공부란 물길을 당겨들여 내 피를 풀어낼 도량을 만드는 일이라 한다
공부는 물을 당겨들이는 것이고 물을 당기는 것은
피를 풀어내기위한 물바다로서 쓰기 위함이다
피를 풀어 새겨진 개별성을 마주하여 이해하는 것
그리고 물과 피의 가치를 운용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감이다
나는 경전이야기가 아니라 경전에 내 피를 풀어낸 살아있는
자기 이야기를 좋아한다
붓다나 예수란 물에 내 피를 풀면 내 이야기는 어떤 향기로 무늬로 몸매로 맛이되어
즐거운 누림이 되려나 내가 나를 요리하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니까
방울 鈴은 영음을 매개하는 소리의 도구다
종 鐘은 내 안에서 울려나는 내 영의 도구다
기도포 包는 이 둘을 조화시키는 길의 상징이다

다행 행幸의 글자구조는 上大下羊이란다
행을 영어자판으로 두드리면 god(GOD)이 된다는 것도 재미난 동질성이지
행이 갓이다 신이다는 것이니 그렇게 사람들은 행복을 꿈꾸고 추구하는 것인갑다
즉 내가 신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밖에서 행을 찾는다는 것인데
幸을 풀어보게 되면서 내가 안고 있거나 데리고 있는 양이구나
.
내가 데리고 있거나 안고 있는 양did은 무엇인가(did은 영어자판으로
양을 두드리면 나오는 단어다)행은 갓인데 양은 did이니 did를 돌려보면
pip인데 한글자판으로 돌리면 ㅔㅑㅔ가 된다.did은
한글로 발음하면 '딛'이 되고
'딛'은 딛는다고 쓰는 것처럼 '발'과 관련되는 표현이다.
디딤돌 디딜방아..등으로 쓰임되는 것에서 발에너지라고
해석을 하게 된다면 행의 양은 내가 디딤하는 무엇이 된다고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
즉 내 발을 보호하는 어떤 것이 양이 된다는 것이지
여기서 더 나아간 해석이라면 열번째 천간 癸와 다행 幸이 같은 에너지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데 하늘을 밟고 다닌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고
하늘이 땅으로 물질화되어있으니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지
그대가 땅을 디디고 다닌다는 것이 幸이다. 한자가 가지고 있는 뜻이고
한자를 한글로 영어자판으로 바꾸면 나오게 되는 변환해석이다.
행은 신인 이족류인 인간만이 하는 행동이고 디디는 것은 넘어지지 않기위한
반복이라고 한다. 걸음을 걷는다는 두 발로 서있을 때
경험하지 못하는 넘어짐이라는 위기를 자초하고 넘어지지 않기위한
행동이 디디는 것이라는 것. 걸음을 디딘다는 것에 대하여
그대가 얼마나 생각하는가
나는 아침 길을 나설 때 마다 걷는다는 것이 기적이구나
행복이구나 신의 육신화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숨쉬며 걷는다는 것,
신은 움직임과 쉼이라고 하는 그 현장체험
주의 손이 내 발을 받쳐주신다는 것의 체험이다.
그래서 행을 영어로 두드리면
god이 되는 것 이해가 되지. 즉 행이란 내가 디딤하는 길이고
그래서 다닐 행과 같은 에너지가 된다
그대가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의 행하심이고
내가 디딤하는 생명의 힘이라는 해석이 된다는 것
이런 문자놀이를 해보는 것이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하게 되는데
did인 양이 pip 위치전환을 하면 세 글자가 모두 모음으로 발성되어
ㅔㅑㅔ, 즉 에야에가 된다는 것이지.
물론 동물 양은 맥락에 따라 Sheep, Lamb, Ram, Ewe가 쓰인다고 한다.
큰 양을 얻는 것이 행이라고 하는 것大인데
아름답다는 美는 上羊下大로 구조된다
즉 양에 위에 있으면 아름답고 양이 아래 있으면 행복하다가 되는데
양을 다스리는 자는 행복하고, 즉 두발로 땅을 디디는 이는 행복하고
양을 이고 다니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는데 이 때 몸이 이고 있는
‘양’은 무엇일까. 몸에게 부여된 이름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머리에 관씌우신다. 재대신 화관이라고 ...하는데 자기의 가치관을 성취하는
것이 명예라고 하는 것이고 명예를 지키는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상황마다 환경마다 위치마다 ‘양 羊did’은 다를 것이다
저마다 디디고 사는 자리 환경이 있고 저마다 추구하는 명예가 있다
honor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名譽, 이름명 기릴 예라고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후대에서 그 이름을 기린다고 하는 것이다.
기릴 譽는 與言 즐 여, 말씀언이다.
명예라는 것은 내 이름이 너에게 진리로 회자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이름이 너의 입에서 회자되도록 한다는 것이고
살아있는 이의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것을 기린다고 하는 것이다.
영생이라는 것은 명예를 일컽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되는 것이 영생이고 명예이고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그대가 생각해봐라 죽은 자와 산자를 가르는 것은 이름이 회자 되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기린다는 이 譽한자를 보면 이해 되는 것이지.
그대의 이름이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
땅을 디디고 살아가는 것이 행이고 이름을 불러내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가
걸으면서 이름을 불러라..어떤 이름을?
물론 名이라는 이 글자는 月의 궤적이다.
즉 12달이 흘러가는 궤도를 뜻하는데
동양에서는 12지신이라고 하거나 12운성이라고 하거나..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12달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12달의 흐름을 보여주는 그 흐름을
걸음을 걸으면서 인식하는 것을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는 것이지.
추석을 지나고 봉무동으로 다니면서 풀을 뽑고 있다
오늘은 손뼉을 오백번을 치면서 걷게 되었는데 풀을 뽑느라 손이
고생을 하고 있어서 손을 격려하고자 함이다.
사흘간의 수고를 통하여 길 곁에 있는 쉼돌 주변을 덮은 풀들을 제거하고
가을 오는 길에 누구든 쉬었다 가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봉무동 가는 길에 만나는 불로동 여사님들이 가시다가 쉬는 곳도 풀뽑기를 했다
임성자 언니와 가끔 만나면 앉아서 노래도 불러주고 하던 자리이기도 하고..
요즘 봉무동 가는 길에서 불로천을 건너 첫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풀을 뽑는다고 아침훈련을 하고 있다.
추석을 기점으로 세미는 졸업을 하게 되고 영숙이를 중심으로
공부가 펼쳐지는데 세미와는 다른 에너지를 당겨서 쓰게 되는 것을 보면
사주간지에 따라 공부법도 달라지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혼자 다니면서 풀을 뽑으면서 생각을 뽑고 카르마를 뽑고,..
그렇게 가을 맞이를 하고 있다.
위 上와 아래 下
하늘과 땅
밖外과 안 內(바깥어른 안 해)
언어에 갇혔다가 벗어나게 되면 생기는 이 느낌
아주 작은 변화 나비의 날갯짓이 금문교를 무너트린다고
오늘 위라는 것이 몸이라는 물질 경계를 놓고 몸이 수신하게 되는
정보가 위치한 밖이며 아래가 몸이라는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정보 값이어서
몸 안이라고 한다는 위치 이해가 생겼다
위치관이 정립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리라
위치라는 한자는 ‘둘 곳’이라는 우리말로 쓰임 된다. 둘 곳, 이쁜 우리 말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이고
아래서 위로 들림을 받는다는 말이 안의 것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는 것
하늘과 땅이라는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늘이라하면 위쪽 공간 별들의 무대를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몸 바깥이라는
더 넓어진 가까워진 감각적인 개념이 되면서 한결 이해가 쉬워진 것이고 디테일해진 것이지
심플하다는 것 단순하다는 것
하늘은 공간이고 땅은 시간이어서 위를 밥 시계 위치라고 하는 것이구나 위치관
가치관만 따졌다가 위치관은 아니?라는 물음에 새로운 생각
밖이 하늘이고 안이 땅이다. 밖은 공간이고 몸 안이 시간이다 위를 stomach라고 한다
밥시간을 가르쳐 주는 곳. 밥통이 시계인 것이지
밖의 것을 기라고 하고 물이라 하며 안의 것을 운이라 하고 피라고 한다는 것
물보다 진한 것이 피다 그래서 피가 물의 아홉 배의 힘을 낼 수 있다
여자가 출산하는 힘은 모혈에 있고 남자가 발출하는 힘은 부정에 있다
출산에 필요한 힘이 교미에 필요한 힘의 아홉 배라는 것이고 이 힘을
여자가 남자보다 성력이 강하다고 한 것이리라
출산할 수 있는 힘의 근거가 피에 있다는 것
아홉 달을 태안에서 기룬 생명을 배출하기위하여 아기의 힘과 엄마의 힘이
아홉에 아홉으로 더해져야 새 생명이 드러난다는 것을 설명하는 천부경 81자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피가 만들어내는 힘을 의지한다는 것에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아홉 배의 힘이 밀어줘야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비밀
그래서 생명은 힘든 것이다 숨쉬기는 쉬우나 살아감은 숨쉬기보다 아홉 배로 힘든 것이다
존재는 숨 쉼이지만 생명은 발출 혹은 배출하는 에너지다는 것 생각 없이 사는 것과
생각하며 사는 것의 차이라고도 하는 것
젖 먹은 힘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안에서 밖으로 토하는 행위로
해산하는 힘이나 배설하는 행위가 같은 에너지라는 것을 기억할 것
그대의 말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오는 신생아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말의 무게나 힘을 인식할 수 있다. 왜 침묵이 금이다 한 것인지도 ..
안에서 밖 아래로 배설되는 것에서 힘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확인하는데 위로 토해내는 ‘말’이 들이쉬는 숨보다 아홉 배가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는 것에서는 생각의 힘이 있어야 닿게 되고 닿아야 말값을 계산하게 되고 말 한마디가 중천금이라고 한 것도 이해되어야 자기 말값을 스스로 달아내게 된다 신중하다는 말의 신은 믿을 신으로 말의 무게를 뜻한다
믿을 신이라는 한자는 너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는지 객관 입장에서 관찰하는 일이다
말과 행동이 같은지를 파악하여 테이터가 모여서 무게 값이 생기는 것을 신중하다고 한다는 것
말에 가볍다는 것은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아 말이 값이 없다는 뜻이다. 자기가 한 말을 객관화하여 생각과 행동이 같은지 먼저 자기점검을 해야 하는 것을 믿음 생활이라 한다 내 생각이 이렇다는 것
아래로 배설하는 일에 힘을 쓰지만 위로 토해내는 말에 드는 힘이 아랫심 못지않게 쓰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말에 신중하다
들숨을 날숨으로 내보내는 과정을 의식하고 할 때를 호흡훈련이라고 하고 숨쉬기에 의식을 하지 않을 때를 존재라고 한다
존재는 숨쉬기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존재 의문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숨을 의식하여 훈련하는 것을 숨감각기루는 훈련 느낌 알아차림이라고 마음공부 또는 영공부라고 하는 것이고
이 훈련을 살아 있음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살아있다는 이 말의 무게 값이 발바닥 용천혈에서부터 느껴져야 한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면 간지름을 탄다 그만큼 섬세한 곳이다 손바닥을 간지러면 간지름을 타는가? 발바닥의 섬세함은 물길을 시작하는 경로이고 손바닥의 무딤은 불길을 일으키는 혈로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
손뼉을 두드리면 점점 손바닥이 근질거린다 손바닥의 혈로가 불이 붙어간다는 것 손뼉을 친다는 것은 손벼락 바람과 벼락을 창조하는 일이다 심폐를 튼튼하게 한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을 치는 일은 손바람으로 곤지를 휘젓는 일이라 은하수 휘젓기라고 한다 신장과 비장을 튼튼하게 한다
존재를 딛고 있음을 알아가는 것 즉 호흡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열어가는 것을 ‘있음’이라고 한다 없음은 숨 쉼을 의식하지 않음이고 ‘있음’은 숨을 의식하여 숨의 깊고 길고 넓고 높음을 훈련함이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악한 것이 없다
그러나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안이라는 둘 곳에서 내 보내는 것이기에 책임이 안에 있음으로 선악이라는 구별이 생긴다. 분별은 안에서 생기는 것이라 책임소재는 나에게 있음으로 악한 것도 선한 것도 내가 만들어내는 ‘있음’이다
밖에서 안으로 당겨들이는 것이 내 선택이다 듣기 싫고 보기 싫으면 안 보고 안 들으면 된다. 선택의 자유라고 한다는 것
듣고 보는 것은 내가 관심이 있어서다. 내 무엇이 그러한
정보를 듣고 보게 하는가?를 내가 탑재한 가치관이라고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것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는 것이 자기 가치라는 것이지
나의 가치관을 알려면 내가 무엇을 듣고 보는데 시간 생명을 투자하는가를 살피면 된다
저마다 자기의 근기를 따라 노는 마당이 있다고 하는데 근기를 무엇으로 파악하는가?
객관적으로 사주간지로 파악을 한다. 내가 나의 사주간지를 놓고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근기를 아는 공부라 하고 이 공부에도 십천간십이지지 육십 갑자를 놓고 저마다 풀어내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열두 달 흐름과 오행의 상생과 상극에 대한 정보다 오병이어를 놓고 풀어내는 이야기가 넘치고 넘쳐 열두 바구니를 만든다
내가 노는 마당을 설명해 주는 좌표가 사주간지다
사주간지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인데 사주간지에 관심이 가게 되는 시절 인연이 생긴다
대운이든 세운이든 천라지망이나 귀 문관살이 간지로 들어오면 행운이라고 하여 자기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알고자 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의 숙명이나 운명을 알고자 하는 시절이 있다 그 시절 에너지를 행운이라고 한다
행복과 행운이라고 하는데 행운은 나를 궁금해하는 에너지가 들어오는 대운 세운의 에너지를 뜻하는 것
행복은 태어나면 주어지는 좌표인 사주간지 명식
여기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그대의 모든 공부는 뿌리가 없는 헛공부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쉬운 공부가 아니다
그러나 해야 할 유일의 가치 있는 공부다 오직 하나 해야 할 공부
가치를 다스림이라 하고 위치를 지킴이라고 성서에선 설명한다
다스리고 지키게 하자
이 말씀이 다스리고 가치 값과 지키게 위치값이구나 어제 알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앎이 내 삶으로 풀어지게 된 것
계시의 말씀이라는 것이지
발에서 출발한 경로가 드디어 니환궁 백회에 닿아 말씀의 뜻을 깨우치게 되었다는 것
니환궁에서 시작하여 용천혈로 흐르는 하늘이 쉼돌 스무 개의 주변 풀을 뽑고 나서 위치관을 마주하게 된 것이구나
이런 작은 개념의 변화가 내 사유의 틀을 다 무너뜨리고 새로이 세우게 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를 물으시더만 이제 네가 선 곳은 어딘지 아는가? 물으시는 것이지
아담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 물으신 것처럼
그다음 물음은 가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는 것일 터이고 그다음의 물음은
하갈에게 네가 어디로 가느냐? 하신 물음일 터
나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물음이 온 것이고 나는 답을 만든다.
위치를 안다는 것과
가치를 매긴다는 것
위치관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없지만 가치관은 떠든다
뿌리를 내릴 위치도 모르면서 가치를 논한다는 난센스
나도 그랬다 물론 누군가 위치값을 말했지만 이제 내 귀가 열린 것이겠다
나에게 가치관 이전에 위치관부터 점검하거라 하신 것이고 그 두드림을 인식하고자 몸이 움직인 것이 풀 뽑기 노력이다
봄부터 시작한 풀 뽑기를 여름 내내
어제까지 했다 세미도 어제까지 기상청 풀을 뽑고 오늘은 화랑교까지 뽑았단다
다른 공부는 몰라도 풀 뽑기는 나타나는 수행이니 풀 뽑기 수행 제자는 확실한 제자다 나보다 더 야물게 하는 청출어람이다 오늘만나 두 달 이틀 즉 육십이일을 통해 신구약 독송하였다고 참 기특한 제자다
내가 스무이틀로 읽어내면서 세미에게 성경은 일독하는 것이 지구인으로 예의다 눈으로 가 아니라 입으로 읽으라 구월 가기 전에 끝내라 했더니 오늘 새벽에 완료했다고..
이럴 때 참 내가 대견하지 세미도 스스로 대견하지만
삼 년을 같이 오면서 공유할 텍스트 성경 읽기 내가 주로 다루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라 하게 되는 것이지
어쩌든지 세미의 성장을 보는 것도 내 공부이기도 하다
여태 공부가 털옷인 문자언어 허물기였고 무화과 잎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고 바위 뒤에 숨어있는 나에게 기초공사인 위치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떠한가를 물으시는 셈이다
언어 카르마(털옷)를 뽑아내는 과정을 거치고 무화과 잎 치마를 두르고 있는 나를 만난다는 것이지
역으로 거슬러가는 과정
어제 스무 개의 쉼돌 주변의 풀 뽑기라는 노력봉사를 값으로 내놓고(가치관) 얻게 된 것이 위치관이다
돌들을 놓아 쉼돌이 되게 하였어도 주변의 풀섶이 우거져 돌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을 보고 내 스스로 불편함을 느껴 풀을 뽑아내고 닿게 된 것이 무화과 잎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고 바위 뒤에 숨음이라는 말씀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지
가치관들은 털옷이다
위치관은 내가 있는 자리다 바위 뒤
왜?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서...
이전에 벌거벗음이 보이지 않아 부끄러움을 몰랐는데 위치를 벗어난 하와가 위치에서 벗어난 자의 유혹을 따라 선악과를 먹고 나니 벌거벗음(위치 자기의 설 곳 둘 곳)을 부끄러움으로 인식된 것이고 그것을 가리려고 바위 뒤에 무화과 잎으로 감고 숨었다는 말인데 무화과 잎이 뜻하는 것과 바위가 뜻하는 것을 그대가 알아챈 것일까?
왜 하와에게 유혹자가 접근했을까?
부끄러움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를 벗어날 때 생긴다
선악과를 먹으니 벌거벗음이 보이더라는 것이고 그것에 따른 대처법이 바위 뒤 무화과 잎 치마가 되었다는 것이지
에덴동산 안에서 정원관리인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아담이 자기의 위치를 벗어남이 ‘벌거벗음’이더라는 것이지
자기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신 푯대가 사주간지다 십자와 사람인으로 구성된 나무 목
사주간지를 저마다 부여받는다 생년월일이 위치 좌표라는 것이다 내가 놓인 에덴동산을 가르쳐 주는 좌표
에덴에서 발원하는 네 개의 강
나의 가치를 알고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알고자 사주간지를 공부하는 것
놓인 자리를 알아서 그 자리를 지키며 다스림( 가치 값 이름 짓는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이 땅에 온 이유와 사명이라는 것이지
돌을 쪼개면 산소가 생기고 내무를 쪼개면 빛이 생긴다고 하는데 바위를 깨고 나무를 쪼개는 과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오행은 상생과 상극 에너지로 해석이 된다 나무를 쪼개기 위해선 도끼가 필요하다 도끼로 도낏자루 찍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이 나에게 어떤 일로 나타나는가?
도끼는 혀라고 이해하고 도끼자루는? 문자 구조라고 이해한다 말로 문자를 풀어내기
사흘간 노력 드림에 따른 손의 대미지가 통증이지
그렇게 사흘 풀 뽑기 수행을 딛고 열린 벗은 털어 낸 것이 가치관 중심의 개념이 위 차관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값없이 돈 없이... 이 말을 내가 참 많이 쓰는 말인데 오늘 다시 마주해라 하는 신탁
값은 외연에서 정해진 것이거나 내가 매겨서 너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면 돈은 그 값과 같은 무엇이다 50에 50이라는 것인데 값없이 돈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는 예수의 아규먼트는 어떻게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이다
값과 돈은 밖에서 거래하는 방법이고 포도주와 젖은 안에서 거래하는 방법이다
밖의 정보를 내 것으로 하고자 할 때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지만 안의 정보를 밖으로 꺼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외연 80%에 속하는 하늘 정보에는 값이 매져겨 있어 돈을 내고 사야 한다
내면 20%에 속하는 땅 정보는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모르면 내 안의 정보를 알 수 없다
내 안이라는 에덴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 예수의 십자가이다
에덴으로 들어가는 문을 화염검을 든 거룹들이 둘러 지킨다고 하는 것
사주 명리를 공부하면 나오는 천라지망이라는 언어가 있는데 에덴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에너지라는 뜻이고 귀문관살이라는 말은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강을 설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라망은 에덴길을 막고 귀문관살은 그 길을 뚫어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천상계로 등업을 하면 즉 에덴으로 위치전환을 하면 사주간지를 벗어나지만 그전엔 사주간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지
위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발에서 신을 벗어라 모세에게 하신 말씀인데 그대와 내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내가 선 곳 즉 위치 좌표 사주간지 그 자리에서는 그간 내가 나를 생각한 것들을 다 벗고 일단 객관 좌표부터 마주하라는 것
위에 있는 것이 아래에 도라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 안에도라고 해석이 되어야 하고
밖에 있는 것이 80이고 안에 있는 것이 20이라는 가치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는 것
위치가 정해질 때 가치가 생긴다는 이 기본을 나는 놓쳤다가
이제서야 위치가 선행되고 그다음에 가치가 생긴다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마주한다
엿새 창조 후에 아담을 지으사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 안에 두셨다는 것
밖은 엿새의 창조 에너지로 가득하고 안 즉 에덴은 아담이 거하는 위치를 정하였다는 것이지
왜 그것을 여태 놓쳤을까
위치관이라는 말을 넘겨들었던 것은 그만큼 내가 귀먹었기 때문일 것이고 이제 들리고 보이는 것은 귀가 열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신단에서 열두 지신의 위치를 따라 빙글 돌며 돌아가기를 훈련했는데 그때만 해도 위치 찾기 훈련인 것을 모르고 돌았다
늘 그렇게 공부한다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어떤 무늬를 그려내었나 알아채는 것
무엇인가 등을 밀어 행동하게 하는 것에 따라 때를 채우면 그 함이 무엇을 낳기 위한 채움인지 알게 되는 것
오늘 세미도 성경 독송을 끝내고 나서 마주한 신기한 일
빛 결과 내가 늘 경험하는 신기한 일인데 세미도 이제
신탁이 어떤 형식으로든 나타난다는 것을 마주하는 것
일전 아들의 교통사고도 돌아보면 수호령의 가피가 가동했구나 알아채게 되는 것
일상 소소한 것에서 신령은 윙크를 하신다
이번 일요일 신단 아침은 금숙이가 풍물 모임으로 취소되고 순희랑 만나기로 했다
순희에게서 배우는 것
그렇게 가을이 스민다
시간時干과 시지時支=시주 時柱
시간에 대하여 그대의 이해와 적용은 어떤가?
시간이란 낱말에 부여되는 한자에 따라 개념이 달라진다
나는 때 시에 사이 간인 Time를 생각하였는데 타임이 한글로 오면 탐이거나 텀이거나 틈이거나 톰이라거나 모음의 사방에 따라 발성값이 나오는데 영어의 Time의 어원이 무엇인가를 찾아들어가야 한다고 보는데
내 생각은 두문자 T, I, M, E라고 생각한다. T 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한다. 이 두문자에 말몸을 만들어내는 것은 저마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말 머리 말허리 말꼬리라고 하는데 단어가 더해지게 되는 상황이라고 하게 된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머리 허리 꼬리로 분별을 할 수 있지만 영어같은 경우는 단어수가 많아지게 되면 발음하게 되는 길이도 길어지게 됨으로 말꼬리가 길다고 하기도 하는 것이고 ..한글의 아름다움은 한글자마다 초성과 중성, 또는 종성으로 이뤄져있다는 것이고 해석도 머리 허리 꼬리로 적용을 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초성은 머리 중성은 허리 종성은 꼬리라고 하는 것이고 꼬리를 뿌리, 또는 열매라고 하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영어도 한글원리에 적용을 해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인데 영어알파벳으로가 아니라 영어 발성이 한글로 발성됨으로 '타임'으로 풀거나 타임의 압축으로 '탐'으로 풀어보는 것이지. '탐'으로 풀게 되면 ㅌ은 ㄴㄷㅌ으로 구성되는 여름에너지이고 ㅏ인 허리는 방향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며 ㅁ은 ㅁㅂㅍ로 이뤄지는 중앙에너지라고 해석이 되는데 안의 것을 열어내보내거나 흩어진 것을 모음이라는 해석이 된다. 시간이라는 것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정보가 당겨들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로는 '때'라고 하는데 이 때를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시시때때라고 하는 것이 때 시 때시를 같이 표현는 것이지 때때로라는 말이나 시시로가 같은 것인데 때때로는 한글이고 시시로는 한자라는 차이가 있다. 호시탐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글자구성이 재미나다. 互時Time Time가 된다는 것으로 그대의 해석력이 펼쳐지면 즐거운 언어놀이가 되지만 그렇게 확장해석할 수 있는 틈빛(여유)가 있기는 힘들지.
때와 때 사이 즉 틈 闖(말이 문을 나오는 모양 틈)이라는 것인데 틈이 말이 문을 나오는 모양이라고 하여 말을 馬라고 하지만 나는 말言이라고 해석을 한다. 들숨과 날숨이라는 문을 나오는 말을 때라고 하거나 시라고 하거나 틈이라고 하거나 하게 되는 것이라고 시간을 말하는 내 말에 의해서 시간은, 틈빛이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지. 주어진 공간을 내가 말이라는 틈빛으로 창조하는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고 시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이들은 틈빛이 없다는 것이고 시간이 있는 삶은 틈빛을 만들어내는 삶으로 틈빛을 만들어 그 빛으로 내 삶의 반경을 비추임하는 것을 자기성찰하는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라는 내 해석이지. 시간이 있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여유가 있어야 시간이라는 것이 들숨과 날숨사이로 틈이있고 그 틈으로 빛이 창조되는 원리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지.
끊임없이 흐르는 물길이 ‘시’라면 무엇인가 물길을 막아 흐름이 멈춤이 되었을 때 틈이 생긴다고 하듯이 시간은 흐름을 멈춤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되는 어떤 느낌이다. 시간이 멈추면 생기는 느낌이 어떤지..그대는 마주한 적이 있는가?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경우 그 사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내가 시간을 멈추어놓고 멈춘 시간을 마주하게 되면 생기는 것...그것을 누구에게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시간을 멈추는 체험을 했을 때...시간을 멈추게 하였다는 것은 24시간이라는 흐름을 넘어섰을 때의 체험이다. 서로가 약속하여 만들어내 개념에서 자유로와졌을 때..누군가가 만들어낸 틀안에서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를 틈빛을 체험하게 된다고 설명을 하는데 나의 경우 너의 눈에서 자유로와짐으로 틈빛이 나타나더라. 사주간지에서 자유귀문이라는 간지가 있다. 내 사주간지에 자유가 있기때문에 이 자유귀문은 어떤 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일까를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 子酉라고 하는데 자는 북현무에 속하는 물에너지이고 유는 서백호에 속하는 금에너지고 금생수라고 하는 에너지다. 천자문에도 금생려수 옥출곤강이라고 하는 여덟자가 있는데 이 여덟자를 압축한 것을 나는 자유간지라고 설명을 하는데 금생려수는 자를 옥출곤강은 유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지. 자유를 FREE라고 한다. 그리고 자유自由 스스로 말미암다고 한다. 스스로의 말이 천라지망이 되거나 라망에서 풀어나 자유가 되거나 하는 것이라고...내가 나를 구속하거나 해방하는 것이지 너의 말에 내가 구속되거나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너가 나를 사랑한다 했을 때 내 안에서 공명하는 50이 있을 때 사랑함이 완성이 되는 것이라는 원리를 기억하자는 것이지. 내가 너를 100% 사랑한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50이면 최선을 다한 것이다. 남은 50은 너에게서 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는 너를 목숨만큼 사랑한다고 말을 하기는 해도 목숨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라고 할 때 목숨을 설명하지 못하는 너의 사랑은 거짓이다. 어떻게 그대가 그대의 숨을 너에게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숨을 너에게 줄 수 없는 것이듯 너의 숨도 내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숨이라는 이 생명원천을 너와 나는 스스로 말미암아 누리는 자유라는 것이다.
너에게 내가 투사하고 싶은 것이 생각이라면 같은 텍스트를 들고 토론을 해야 한다. 감정이라면 같은 주파수와 파동을 창조하는 움직임을 같이해야 한다. 나는 너와 감정을 나누고 싶을 때 소리를 같이하자고 한다. 그리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을 때 내가 보는 텍스트를 소개하고 내가 해석하는 것을 같이 보자고 한다. 내가 숨이라는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여 열매를 얻어내는지를 소개하고 시범을 보여줌으로 너도 너의 시간을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지를 도전하라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즉 공간의 하나님에게서 숨을 부여받아서 살아가는 삶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공간을 시간으로 변환을 했을 때 생기는 무엇을 너에게 나눔하고자 하는 것을 '생명'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생명生命이라는 것이 목숨을 낳는 것이다. 즉 무의식적인 숨살이를 마주하여 목에서 숨을 어떻게 낳게 하는지를 도전하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인데 소리수련을 해보면 알게 되는 것이 언어를 발성하는 과정에 목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봐라. 지난 주일 순희와 금숙 영숙이를 만나 밥을 같이 먹고 나눈 이야기와 행한 수행하고 같이 연구하고 나눈 정보가 목줄을 어떻게 활성화하는가에 대한 것인데 뇌성마비장애우가 어떻게 발음을 하는가와 공옥진여사의 병신춤이라는 그 춤의 에너지가 몸의 경락과 혈맥을 타고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이였다. 순희가 자기를 단련한 내공을 영숙에게 전수를 하고 소리를 어떻게 발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설명하는데 금숙이가 자기의 목줄이 어떻게 드러나고 내려가는지를 시범으로 드러내는 것.
나도 발성훈련을 전신을 비비틀어가면서 하는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언어가 어떻게 몸을 휘저으면서 다니는 것인지를 같이 해보는 것 .
쉽게 하는 말이지만 이 쉽게 하는 말이 되기이전에 얼마나 뒤틀리는 꿈틀거림을 거친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아지만 아기시절 언어학습을 하기위하여 거친 과정을 복기하는 것을 어린아이와 같아라고 하는 것이지. 어린아이와 같은 언어훈련을 해야 어른이 되어 쉽게 입에 올린 언어가 만든 구업을 청산할 수 있는 것이다. 구업참회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해 본 사람은 말조심에 말조심을 한다. 말이 만든 업이 몸의 어디에 쌓여있는지...그대가 발에 대한 구업을 지으면 발에 위장에 지은 구업은 위장에 간에 지은 구업은 간에 뇌에 지은 구업은 뇌에...그대의 생각없이 마구지른 말들이 저마다의 지시받은 곳으로 가서 쌓이게 되는 것이 구업, 카르마이고 이 카르마를 풀어 털어내기위해서는 전신을 비비틀어 휘저어...봐야 한다는 것이지. 오장육부에 쌓은 언어구업을 그대는 어떻게 청산하는가? 언어로 지은 구업은 언어로 갚아야 한다. 오순절 성령이 오시면 방언을 하게 하는 이유가 언어구업을 청산하는 방법이어서이다 이이제이. 그래서 그대가 구업을 어디에 얼마나 쌓았는지 모르면 방언을 많이해라. 방언을 하다보면 같은 파동, 주파수가 동하면 에너지가 더해지고 그런 현상을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고 하게 되는데 내 힘이 아닌 힘이 더해지면서 성령에 취하여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지. 성령의 술에 취한다고 하는 표현을 하는데 신단에서 추임새를 넣다보면 내가 늘 체험하는 것이 내 힘에 하늘이 같이하시구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같이 소리를 하게 되면 같이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지. 소리를 이끌어가기위해서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제공해야 하는가?
20을 이끌어내기위해서 80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새노래로 화답하고 기도하고 놀이를 하는 일을 내가 잘 하지만 이렇게 에너지를 제공하기위해서 내가 갈무리를 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런 과정에는 늘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혼자 다니면서 풀을 뽑는 것. 그것이 너와 같이하여 내가 지고 온 너의 어떤 것들을 스스로 풀어내는 과정이다는 것이지. 너와 상담을 하고 나면 그 기를 가져온 것이기때문에 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는 것.
기를 타게 되면 내가 탁해지게 되는 것이니 탁托해 온 것을 풀어내는 것은 내 운을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지. 운기신공이라고 하는 것. 엄마 살아계셨을 때 상담을 하고나면 반드시 상담자의 기를 정화하는 기도를 하시곤 했다. 나도 에너지를 다루고 나면 혼자 정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해야 내가 더럽혀지지 않는다. 너의 기를 다루고 그 기를 정화하지 않으면 어느새엔가 나에게 미금처럼 내려앉아 무디게 하는 것이지. 즉 청결함을 유지하려면 정화하는 일, 발을 씻는 일을 늘 해야 한다. 그래서 기가 탁한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 하게 되는 것이되는 것이지.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틈빛이 생긴 빅뱅이 시간의 출발이고 공간의 증명이 된다. 흑암이 흑암일 때를 무한 무지 없음이라하지만 틈빛이 생기면 그때 공간과 시간이 드러난다는 것인데 틈빛을 만드는 힘이 흑암에너지라는 것이지
무의식이 의식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고 의식에서 인식 상하좌우라는 사단이 십자가 생기는 것이고 사단에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을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움직임 動과 쉼冬이다고 하는 것 겨울을 冬이라고 하는데 걸음을 멈춤 즉 흐름이 멈춤이라는 의미다. 봄을 동東이라고 하고 겨울도 동冬이라고 한다. 봄은 움직임이고 겨울은 멈춤이다.
시간을 모르고 산다고 하거나 세월을 모르고 산다고 하는 때는 시간흐름에 갇혀 같이 흐르고 있음 즉 무지 무식 무의식 무한으로 흐름이서다 틈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무한 , 영원’이라고 하고 기호로 8을 쓴다 열 십에 여덟팔. 계절에 환절기가 있어서 흐름을 내 사유에서 몸짓에서 멈추게 한다 멈추어서 다음 계절을 생각하는 것을 틈을 내서 주변을 주위를 나를 살피거나 점검한다고 하는 것
흐름을 멈추게 하는 에너지 즉 틈을 사주에서 천간 무기 지지 진술축미라고 하고 토라고 하여 둘 곳 고지라고 한다 창고 庫즉 곳집이리는 뜻이다
틈을 알아야 계절의 변회를 알 수 있고 우리가 24절기를 딛고 한 해의 흐름 물길을 살핀다
자아성찰이라거나 자아실현이라거나 하는 언어는 틈빛을 스스로 창조한다는 것이지. 흐름에서 빠져나와 흘러온 과정을 살핌. 세월이라는 말은 물위를 스치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신 저런 신들을 말하지만 신은 물바람風水이다
엇그제 부터 성경과외 해주는 신부 바오로 허진혁님의 강의를 주욱 듣고 있는데 나로선 틈빛이다
내 성숙을 비추임하는 거울
나는 그리 생각한다. 세월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이 세월이 천간 예수와 지지 그리스도를 만들어낸다고
영생이라는 개념을 자아실현하기까지 걸어온 여정에서 틈빛처럼 들어 온 허진혁바오로 신부님
세월을 공간하나님이고 천간지지는 시간하나님이라는 내 개념이다
그래서 사실 성경에서 이삭을 줍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성경정보는 거울이다 이 거울이란 진실에서 현실이란 팩트로 나아가 나를 살아가는 힘으로 삼는 것
나무 목의 십은 천간지지하나님을 팔은 공간하나님을 설명하는 기호라는 것이고 그 나무목 아래 아들 자子를 쓰는데 아들 자는 획수가 3획으로 씨알의 구조를 설명한다. 천지인이라는 내 해석이고 정반합이라고도 하고 삼위일체라고도 하고 말은 붙이기나름이지. 공간과 시간이 낳는 알이 천지인일 수 밖에 없다
시간 즉 틈빛을 풀어가고자 하는 것은 사주간지에서 시주의 시간을 풀고자 해서다
시주의 시간은 천간의 간을 쓰는데 방패 간干이다. 방패가 무엇인가? 방어용 무구이다
무속에서는 부채가 하는 역할이고 인체에서는 간이 하는 기능이다. 하늘방패 땅 창이라고 하여 천간 무戊토를 설명한다. 머리는 수신기능이어서 방패가 된다 천간은 머리이고 지지는 몸이니까 땅 창이라고 하는 이유는 몸에 손발이 있어서다
다섯째 천간 무와 여섯째 천간 기가 인체의 머리와 몸을 뜻하고 천간 무의 방패와 창의 기능을 수신에 대한 반작용라면 기는 그것을 움직임으로 드러내는 에너지라고 하는 것
무기토가 땅 둘곳으로 내려오면 진술축미가 되고 사방으로 사단을 사상을 사지를...지시하게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하나님인 움직임과 쉼이라는 것인데 움직임이라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지는 그대의 레벨이다
시주는 시간과 시지로 이뤄진 기둥으로 시간으로는 하늘을 받치고 시지로는 땅을 디딤한다
행복은 년, 월, 일 주라는 객관적인 좌표이고 행운은 시주라는 주관적인 좌표라고 나는 이해한다.
나라는 생명이 태어남으로 부여받는 숙명을 삼체라고 하는 것으로 년주 월주 일주를 일컫는다 는 이해가 생긴다. 삼복 삼체 삼위 삼신 삼합 삼정....다 행복 주어진 년월일을 지시하는 낱말들이고 이 행복을 하늘에 주신 분복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 복을 내 복으로 당겨쓰는 운동을 행운이라고 하는 것이다
외연의 정보진화도 년주중심에서 일주 중심으로 풀어지게 되었다면 이제는 시주중심으로 풀어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남의 풀어주는 숙명좌표나 운명푯대를 의지하지 않고 주어진 80%의 정보를 내가 퍼즐맞추듯 20%를 풀어가야 하는 시대 그래서 80:20이라는 이 구조를 마주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사주가 80이고 이 사주를 주관화하는 자리가 20 시주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80%를 사주팔자 갑을 동, 병정 남, 경신 서, 임계 북이라고 하는 것이고 20%를 무기 중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외연의 사주팔자는 부분적이지만 내 몸으로 당겨와 풀면 전인적인 것이 된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그대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한 번 생각해봐라 자기가 스스로 멈추어서 묻지 않으면 그대의 하나님이다시간이 생기지 않는다
틈빛
구름사이로 햇살이 갈라져 퍼지는 그 광경처럼 그대가 멈추어서서 그대의 시간을 마주하면 방패와 창인 좌 우뇌의 정보분석을 알게 될 것이다
뇌파가 들려주는 파동이나 주파수가 어떤 이미지로 어떤 파동으로 몸에서 발신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알아채는 지감촉을 기루는 것을 영의식공부라 하는 것
자기를 안다는 출발은 숨을 관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들숨을 물이라 날숨을 바람이라 하는 것에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숨이 하나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