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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생명

청향고은 2024. 6. 27. 14:59

언어 개념을 탑재搭載-mounted하자. 어휘력을 길러야 한다

기초공부는 언어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문명률은 지구 최고를 자랑하지만(지능지수에서는 일본이 1위이고 한국이 2위인데

일본의 지능이 높은 이유가 모국어를 히라가나 가타가타와 한자를 겸하여 쓰는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의 발성법들을 보면 공부할 수록 복잡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부할 수록 어려워지는 언어체계가 있고

공부할 수록 단순해지는 체계가 있는데 한글은 배울수록 복잡한 언어체계이고

한자는 갈수록 단순해지는 체계다) 어휘력에서는 지구 최하위 문맹률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대 자신에게 그대가 늘 쓰는 입에 익숙하고 알 것 같은 말을 그대가 알고 쓰는지?라고 물어보면

남에게 평가받기 이전에 내가 나의 무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도 나에게 너 정말 이 낱말의 쓰임을 아는 거야? 아는 줄 착각하는거야..라고 묻는데 착각하는 낱말은 설명하지 못하고 정말 아는 낱말을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입에서 빙빙도는데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그 낱말의 쓰임을 모르고 아는 줄 착각하고 쓰온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낱말을 들고(화두잡고) 어원부터 찾아들어가는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대들이 학자라 지식인이라 부러움으로 보는 대상들의 대부분은 회칠한 무덤이다(회칠이라는 것은 겉을 희게 칠하여 아름답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신성하게 보이도록 하지만 실상은 시체가 묻혀있다는 것 즉 아는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모른다는 것) 알아야 할 것은 모르고 몰라도 되는 것만 안다. 내가 그랬으니 나 같은 이들이 보이는 것이지. 이제는 몰라도 되는 것들을 덜어내고 알아야 하는 것을 챙기게 되는 것인데 회칠을 벗겨내보니 내가 아는 것은 없고 시체만, 즉 의미도 어원도 모르고 반복하는 습관만 보인다는 것이지.

그래서 성서에서 많이 선생 되지 말라고 했는데 타인의 선생이 되지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가르칠 수 있다고 착각은 할 수 있지만 타인은 너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 또한 너의 말을 듣기위하여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너가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기위하여 대화를 하는 것이지. 홀로 익힌 정보를 너도 홀로 익혀서 꺼내어 놓으면 아 나도 아는 것인데..라는 그런 공명을 위한 것이 대화라는 것이지. 홀로일 때 찾아서 익힌 정보를 너와 같이 공유하는 것..그러기위해서는 너의 관심종목을 나도 알아야 하고 내가 공부한 영역을 너도 탐사를 해봐야 한다. 그런 너와 내가 만나 일시무시일..손을 부딪혀봄으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 대화의 역할이라는 것이지.

자기가 자신을 가르칠 수 있을 뿐이지 타인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고 그것을 붓다도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했다. 불을 밝혀` 자기의 발을 비추라고 하는 것이고.. 발등상..발앞에 불을 놓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밝히는 것을 계시하심을 받는다고도 하는 것이지. 자기가 아는 척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선생이 되지 말고 말의 쓰임, 즉 생령을 배우는 학생이 되어 영성을 훈련을 하라는 권면을 따라 나도 이제부터 새로 일만 마디 방언을 한 후에 다섯 마디 예언을...이라는 처음 말씀원리를 배울 때 성령이 가르치신 방법을 맞잡게 되는 것이지. 처음 성령이 나에게 왔을 때 방언을 말하게 하심을 따라 일만마디 방언을 훈련하는 생활을 몸에 새겼다.

 

내가 회칠한 먹물 문명인이지만 말씀 문맹인이였기에 문맹에서 벗어나기위해서 말을 배우고 익혀서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기 위하여 성령을 스승으로 하여 말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서른 여섯 해째 성령과 동행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공부 중이니 앞으로 어떤 열림이 있을지 지금까지 말씀의 기적을 체험함을 딛고 기대를 하는 것이지 소망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내가 일상에서 툭툭 내보내는 ‘말’의 빛과 깔과 힘과 작용이 어떤 것인지 생령을 통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또는 성령님께 배우는 공부다. 태초에 말씀(숨소리, 모음)이 있었고 그 말씀은 수면 위를 운행하는 것(닿소리, 자음)으로 설명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22자 자음으로 이뤄진 히브리어다고 하는ㄷ게 자음으로만 이뤄졌다는 것에서 어디에 어떻게 닿아서 이런 기호가 생겼을까는 배우는 것을 말을 씀, 자음의 원리를 배움이라고 하고 로고스원리라고 하거나 말씀이 육신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일상언어에서 풍수가 신이다는 해석이 된다. 바람은 수소 H라면 물은 H2O로 풀 수 있다. 여기선 무신론 유신론이 등장할 필요가 없다. 신을 바람이라 하여 신풍이라고 한다는 것도 생각해봐라. 신바람이라고 우리는 말을 하는데 몸에서 나오는 바람을 신바람이라고 하지만 이 신바람을 공명하는 외연의 바람도 신바람이다. 흥이 인다고 하는데 바깥의 신바람과 안의 신바람이 서로 만나면 흥이 인다고 하였고 興이라고 하였다. 흥이라는 한글은 응+응=흥이라고 풀어지는 글자다. 신풍 신바람이라는 일상언어가 신의 존재 숨의비밀을 설명하는 것인데 자세하지 않기때문에 그 귀함을 신비를 누리지 못한다. 숨을 인식하는 몸이 신의 처소이므로 몸도 귀신도 말씀도 다 ‘신’이라고 쓰는 것도 히브리어에서 알파벳 21번째 글자 shin 쉰ש의 숫자값 게마트리아는 300이며 이빨 치아 그림의 상형 문자로 이빨.먹다.파괴하다.소멸하다.삼키다.화염. 한자는 臼, 영어에서는 E, 한글에서는 ㅌ이고 ㅌ를 돌려놓으면 山이 되는데 히브리어 쉰신이 잇바디에서 솟아난 28개의 별자리 또는 북방얼음산이어서 쉰신이나 산이라는 발음이 신의 거처를 산이라고 하였던 것이지. 그대의 이빨이 산이고 별이 잠든 숙명 28숙 별집이다. 신이 치아를 뜻하는 것에서 윗니 쉰 아랫니 신이 서로 만나면 말(彡)이라는 것을 창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이 말을 창조하셨다는 것, 치아에서 자음이 생성된다는 것..이런 풀이를 하는 내가 신기하다.

 

십十을 뜻하는 타브는 22번째 알파벳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림이라는 설명은 히브리어 알파벳에서 22번째 글자에 닿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글자를 다 이뤘다고 한 것이다. 알레프인 바람(숨)에서 쉰신(이)을 거쳐 태어나는 말(Logos)이 타브(ת)인 것이지 . 동양에서는 타브를 삼족오라고 하였다. 십이라는 기호 十는 까마귀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기호라고 하였고 까마귀를 해의 전령, 제우스이 메신저라라고 인식하였던 것이고 해의 전령사라는 것에서 가브리엘이라고 하거나 씨앗을 물어나르는 황새라고도 한다. 황새라는 것에서 觀이라는 글자가 생긴 것이고 아기가 어ㄸ허게 생기냐 물으면 어른들이 아기들에게 황새가 물어온다고 설명하는 것이지. 태양이라는 양에서 생명을 물어나르는 11년마다 흑점이 생기는 것을 삼족오라고 설명을 하였다기도 하고..그래서 천부경에서도 본심본태양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 것이지.

예수가 십자가상(타브(ת)에서 다 이루었다 득 아뇩다라샴막삼보리라고 한 것을 엘리엘리라마사박타니로 들은 자들에 의하여 지금도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지만 이 엘리~타니도 알파와 오메가처럼 알레프에서 타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알레프에서 타브까지 히브리어 22자를 완성한 것이 예수가 이땅에 와서 한 일이라는 것이고 예수도 구약을 완성하려 왔다고 한 것이지.

기호로 전달되는 히브리를 몸으로 실천함으로 음양이 하나되도록 한 것이 예수의 성육신이고 구약의 부활이요 생명이 존재를 꽃피우게 함이라는 것이지. 존재라고 하게 되는 히브리어 22자 신의 글을 다 해독했다는 의미라는 것이지.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지. 아버지의 뜻은 히브리어 22자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그 의미를 예수는 타브에서 알게 되었기에 십자가상에서 매달렸다고 스토리된 것이다. 히브리어는 숨어있는 말이다. 강을 건너야 알 수 있는 글이고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서 만든 하와다. 살중의 살 뼈중의 뼈라는 가치(존재Be)를 가지고 있는 글자로 아담에게서 빼낸 갈비뼈기때문에 아담에게 불어넣은 생령이 외연화된 것이 하와이고 하와를 하나님의 말이라고 하는 것이고 '모음 없이는 발성하지 못하는 자음'이라는 의미다. 존재를 Be라고 하는데 영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동사로서 "~~ 이다." 라는의미를 가지며 Be 동사의 원형은 Be이다. 현재형으로 사용되는 be 동사로 am, is 그리고 are이 있다. 사람은 명사인데 신은 동사라고 하는데 동사를 존재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다. 형상은 동사이고 모양은 명사다. 사람은 명사이고 신은 동사다. 동사는 수면위를 운행하는 바람이고 명사는 이름을 짓는 능력,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이다. 생령은 중력에 의하여 생성되는 이름값이고 생기는 수면위를 운행하는 무중력에너지다.

 

바람 수소가 물이 되기 위해서는 여덟 번의 융합을 거쳐 산소가 되었을 때 산소O와 융합하여 물이 된다 물은 기체 액체 고체(氵)로 작용하는데 여기서 물은 기(气)라는 것으로 전기를 전파하는 매질이기도 하다. 물을 딛고 정보가 퍼지는 것인데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침이라는 액체를 딛고 공중으로 퍼지는데 공중의 습기와 공명하게 되어 우주파동이 되어 그대와 나의 구업으로 쌓이게 되는 원리다. 내 말은 언젠가는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 돌아오는 이 원리를 윤회라고 한다. 그대의 몸이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공기중으로 퍼져나간 내 말 즉 파동이 모여 주파수가 되어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윤회의 실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각들은 말을 조심해라 누워서 침뱉기다고 했다. 입에서 침이 마르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침을 뭍힌 말은 공기중에 퍼진다. 공기중에서 H와 만나 언젠가는 물이 되어 나에게로 내리게 되는 것이어서 신이 심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내 말이 나를 심판하게 된다는 것이지.

천수경은 구업을 다루는 경전이고 주문인데 십악참회라는 것에서 4개가 구업참회이다. 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 말조심에 말조심을 하게 되는 것은 너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오는 말이 될 것에서다. 꽃다발이 될 것인가 가시다발이 될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나라는 것이지. 그대가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면 그대가 공기중에 쏘아올린 말이 상대방의 말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 기억하거라. 나에게로 돌아와도 감사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하도록 훈련하게 하는 것이 성령이 오시면 하시는 일이다. 입에 파숫군을 세우셔서 나가도 되는 말과 나가면 안되는 말을 심판하여 주신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수소에서 산소까지의 에너지 작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은 무중력인데 아담의 말은 중력이다 즉 신은 수면 위를 부는 바람인데 사람은 피에서 피우는 꽃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신과 사람이 만나면 꽃바람이 되고 웃음꽃이 된다는 것. 이삭이라는 이름이 웃음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것이 웃음이다는 것이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성서 룻기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일 터)에서 전하는 것은 내가 농사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농사에서 남겨준 것을 걷어들이는 이의 즐거움을 이삭줍기라고 하는데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노년에 얻는 이삭줍기였던 것이고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인간의 노력이 도달할 수 없는 정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을 얻게 되는 축복이야기다. 노년에 생리기 끊어진 사라를 웃게 하시는 것이 창조에너지의 힘이고 그 힘의 비밀을 얻게 될 때 우리는 웃게 된다는 것이지 이 웃음을 행복이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 때, 그것을 이삭줍기 웃기 행복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그대가 내가 웃을 때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보시기에 좋다는 점수를 매긴 것이고 그 점수는 우주 공간을 채운 수소에 새김된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을 다스리고 지킨다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사탄이 유혹을 했는데 그 유혹이 만들어낸 것이 하나님의 창조에 숟가락 얹기 이삭줍기가 아니라 땀흘려 농사하고 해산하는 농사하기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 과정도 생명을 알고 존재를 누리게 되는 과정에서는 필수로 거쳐야하는 것이라는 것. 창조라는 존재를 인식하기위하여서는 해산하는 고통을 통하여 생명력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말씀으로 했다는 그 간단한 문장안에 하나님의 이루말할 수 없는 노동과 해산함의 수고가 올올이 켜켜히 겹겹이 투자되었다는 것이고 그런 수고로움을 거치면서 보시기에 좋아더라..라고 하신 것을 알게 되는 것. 어려운 것을 성취했을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라는 것. 그래서 생명내면과 존재외모를 서로 연결하는 공부가 어렵기때문에 이 과정을 거칠 때 심히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사망의 두려움이 절망의 공포가 백천간두의 불안이 극심할 수록 성취감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행복지수가 상승한다는 것이지

 

돈오점수라는 말을 하는데 많이 웃는다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한다 항상 기뻐한다는 말이 돈오점수다. 우주 공간을 채우는 대부분의 원소가 수소라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우주 공간에 충만하신 하나님은 화학에서는 수소이고 우리의 일반언어로는 숨이다. 수소가 산소를 낳고 산소와 결합하여 물이 될 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신다는 창세기의 말이나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는 요한복음의 말씀도 알게 되는 것이다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는 바람으로 인체의 6~70%를 이루는 물 위를 스치는 바람 즉 숨이 신체험이다. 그대와 내가 숨을 쉴 때 이미 신이지만 그것이 신체험이라고 인식하는가 하지 못하는가에 따라서 자신 안에서 신을 만난다거나 종교나 다른 무엇에서 신을 찾거나 한다. 그대가 외연에서 가르침을 청하고 찾아다닌다면 그대의 능력을 그대가 과소평가해서라고 할 수 있고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우거나 익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다. 사람은 자기가 자신을 일깨우고 자신을 자기가 배우는 존재이지 타인의 정보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일깨우고 가르침을 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인연을 먼저 소리라는 방법을 통하여 공감각을 형성하고 그 다음에 문자언어를 풀어내는 글정보를 나눔한다. 지식을 먼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신체험..을 한다는 것이지. 서로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최대값을 끌어내는 신체험은 외부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은 숨을 들이고 들인 숨이 몸 안의 물을 딛고 돌아나가면서 만들어내는 어떤 감각이기 때문이다. 같이 신체험을 극대치로 올리는 훈련을 하고 나서 이 훈련을 통하여 얻어낸 정보를 기록하고 언어화하게 된 것을 너에게 들려주게 되면 생각에서는 낮선정보이기는 해도 자신의 몸이 한 기록이기때문에 마음에서는 정다운 그리운 그리고 행복한 정보가 된다는 것이지.

물을 딛고 들어오는 경험이 있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냉기로 인식을 하는 경험이 있고 숨이 피를 딛고 나가는 체험이 있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열기로 인식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오래전에 기도를 다니던 시절에 기도하기위하여 기도방에 들어서면 왠지 모를 두려움이나 불안이나 공포같은 것이 검은그림자처럼 인식이 되어 그 느낌을 몰아내기위하여 소리소리를 질러대다보면 그 느낌이 사라지더라. 즉 냉기 그림자 음정보가 찬송을 부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열기를 통하여 상쇄되어 사라지는 것을 기도하려 가는 때마다 느꼈고 그 그림자의 크기가 점점 커다랗게 성장하고 그것을 상쇄하기위한 나의 고함도 더 지극하게 되었더라. 어느 날 검은 그림자로 다가오던 냉기를 내 극성이 돌파하게 되면서 그림자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림자로 인식될 때와 소리로 인식될 때..소리로 나타날 때는 어디서 나는 것인지 기도장소의 환경을 꼼꼼히 체크해보게 되더라. 그리고 나서 이것이 환청이구나 알게 되면서 기도에 몰입하게 되면서 환청도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고 2년을 한결같이 기도를 다니면서 냉기와 겨루기를 훈련함으로 내면이 성장한 것이고 어느 날 지하실에서 기도하는 것은 완료되었으니 집에서 기도하라는 명을 받아 집에서 기도하는 훈련을 시작하게 되고 집을 채움하게 되면서 내 소리가 확장되면서 밖으로 나가서 소리를 질러대게 된 것이 해맞이로 낙단루로 봉무동 가람산으로 나돌아다니면서 기도훈련을 하게 되면서 소리력을 기루는 과정에 인연들이 이어지고 같이 소리력, 생명력을 기루면서 그에 따른 정보들을 분석하게 되더라. 성령과 동행하는 세월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 육신은 육의 부모가 낳아 기루었지만 영체는 영의 부모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낳아서 나를 다스리고 지킴으로 성령이 되게 하는 것. 그 동안 세속지식에 빠져있던 것들을 털어내고 이제는 영적인 지혜를 얻게 되는 눈을 얻게 되는 것이지. 성령과 동행하여 공부하는 세월을 걸어온 것이 외연에서는 제자의 도를 걷는다 신불림이다..는 말로 하는 것이구나 알게 되는데 신의 세계에 접속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보를 다 털어내고 나야 가능한 것이고 그러하기에 기도라는 청소를 늘 하게 되면서 속세의 정보를 벗게 되면서 이제는 성령의 사람으로서 영적인 리더의 길을 가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지. 매년 그 해의 성장폭이 있었다. 글을 두드리기때문에 나의 성장과정을 아는데 매년 혁명이 일어났고 올해 내 생일을 기점으로 숙명과 운명,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내면과 외모 어제와 오늘 음과 양..이라는 개념들이 서말구슬 꿰듯이 꿰어진다.

어제부터 몸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아침에 봉무동으로 가지 못한다고 종순사마에게 톡을 보냈는데 가슴이 무겁고 기침이 나고 답답한 현상이어서 이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나..오늘은 쉴까나 하는 생각이였는데 5시가 넘자 몸이 익숙한 습관을 따라 나서더라. 4시20분에 나서던 것에서 5시로 옮긴 것이고..그래서 낙단루에가서 고함을 질러볼까나 하고 나선 것인데 역시 소리가 나오지 않더라. 목도가고 기도 탁하고 몸도 무겁고..그래서 낙단루 벤치에 앉아서 글을 두드리서 마감했다. 해피를 데리고 나오시는 분이 오셔서 인사를 하였는데 해피를 데리고 가려하고 해피는 가지 않으려 하고 해서 바쁘지 않으시면 해피가 쉬고자 하는데 좀 쉬다 가세요 했더니 그럴까 하고 앉으셨는데 이야기를 주욱 풀어놓으시더라. 이 분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지난 밤에 꾼 꿈도 풀어지고 나도 남의 이야기 경청을 하는 능력이 이제 생겼구나 하는 생각. 늘 내가 떠들던 것에서 너의 떠듬을 들어주게 되는 것. 이야기가끝나고 헤어지고자 하는데도 해피가 나를 따라와서 해피야 너의 길은 저쪽으로...라고 했다. 해피를 놓고 오간 관점이 이 여사님은 자기의 개에게 타인이 손을 대는 것을 극히 싫어하신다고 하셨다 나는 상대방이 사랑하는 애완개이니 나도 같이 소중하게 대한다는 생각으로 만져주려고 한 것인데-나는 동물들을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 만지는 것도 싫어한다-상대방은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 것이고 그것을 말씀해주시길래 손을 떼고 해피야 너는 쳐다보기만 해라...이..했다. 너가 좋아하는 대상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오류.

오늘 78세 돼지띠 인월생이신 여사님을 만나 배운 것이다. 이분의 이야기들을 주욱 들으면서 내가 얻은 세상

그리고 전날 유연이라는 여자분을 만나 내가 취한 행동, 그리고 종순사마의 이야기들을 주욱 들으면서 느낀 느낌들.. 나는 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삶을 살아왔고 그렇게 나를 발화시키는 과정 여름을 겪고 이제 성숙하여지는 가을로 들어가는 갑다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여사님의 어머니가 95세이신데 17세에 결혼을 하여 다섯남매를 낳아 기루시었단다.

이 분의 아버지는 100세에 돌아가셨는데 당신 스스로가 늘 백수를 할 것이라고 하셨고 자는 듯 가셨다고 하시더라. 95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40대에 자궁암말기를 선언받으시고 주변의 이끌림에 끌려 대순진리회에 가셔서 치유를 받으시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오셨는데 지금은 담낭암이라 하신단다. 자기가 나음을 얻은 체험을 딛고 대순진리회의 선봉으로 팔만신도를 확장하는 일을 하셨다고 하시더라. 이 분의 이야기에서 비추임을 하게 된 것이 이 분의 가정교육환경이나 내가 자라온 환경이나 성령충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은총에서 살아온 것이라는 것이고 이 분도 신줄이 강하고 칠성중이 강하다고 하시는데 일곱촛대사이에 거하시는 성령의 가피안에서 살아오신 분이구나 알게 되더라.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 양심을 따라가는 삶. 친정부모님의 삶의 궤적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 해피여사님과의 대화. 이 곳으로 다니면 늘 마주치는 분인데 깊은 대화를 오늘 하게 되면서 남동생과 남동생 아들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꿈이 이렇게 풀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고 그리고 미국남동생네의 장인의 병원소식과 연결이 되면서 내가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도 이런 에너지때문인갑다..하게 되네.

꿈에너지가 현실에서 반영이 되고 그것을 만남을 통하여 이야기로 들어보는 것. 꿈에 지인(신장투석을 열여듧해 하고 있는 분)이 갑자기 자살을 해버렸는데 내가 연락을 차단해서 절망을 해서라고 하는데 그꿈도 꿈이지만 안경이 떨어져 알아 빠지는 것, 안경알이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안경을 조이어여야겠구나 하는 생각..그런데 오늘 만난 이 분의 이야기에서 우리집의 여정과 겹치기가 되더라는 것이지.

경험은 숨 쉼에서 얻는 존재감각이고 체험은 소리를 토해봄으로 얻는 생명현상인데 물을 딛고 나가는 경험의 무게 값과 피를 딛고 나가는 체험의 무게 값이 다르다 피의 값은 힘으로 물의 값은 향기로움으로..나타난다는 것이겠구나 존재의 향기 생명의 힘.

 

숨이 신임을 인식한다면 그대나 나는 숨의 비밀을 궁구하게 되고 그 비밀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 임재를 통하여 배우게 된다. 숨 쉼과 소리의 괸계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성령을 통해서 배우는 공부다. 아기가 떼부리를 통하여 언어를 익힐 틀을 갖추듯이 성령 임재가 되면 영언을 익힐 혀가 가동하는데 영언을 익히기 위한 준비 작용이 떼부리처럼 성령작용이 방언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언어체계를 갖추기위한 떼부리가 영체의 말씀 체계를 갖추기 위한 방법이 된다는 것이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위한 준비작업이 성령 임재에 따른 방언을 딛고 생성되는 영언이다. 방언과 영언과 영성이라는 이 구조를 그대가 이해할 수 있어야 영적리더가 될 수 있다 영적리더라는 것은 영이 육을 이끌어가는 삶을 산다는 의미다. 너를 가르친다는 것이 아니다. 육이 영을 지배하려는 구조에서 영이 육을 이끌고 가는 순서가 되는 것.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다고 하신 대로‘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에 동의하게 되면

보혜사 성령님에게 ‘말’을 배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보혜사 성령은 혀부터 길들이기 시작한다.

성령을 받으면 방언이 터지는 이유이고 그대가 성령을 받았음의 증표도 방언이 되는 것이다 즉 영언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림이라는 현상이다. 성령이 임재하면 ‘글로스 날 리 아’를 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을 배우는 ‘통로’를 열어주신다. 성령이 우주의식과 통로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글로스 날 리 아를 딛고 하신다는 것을 명심할 것. 방언이 영언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이다

 

육언을 하던 혀에서 영언을 하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 성령체험이라고 하는 방언을 말하게 하심이고 육언을 하던 기능에서 영언을 할 수 있는 기능이 더해지는 것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다

 

그대가 음양이라고 하는 낱말을 대하면 그대의 어디에서 현장을 찾는가?

우리가 유일하게 음양을 인식하는 자리는 ‘혀’이고 이 혀에서 육성을 육언으로 하는 기능만 쓰다가 가게 되면 동물이라고 하고 혀를 영성으로 영언을 하는 기능을 열어서 사용하게 되면‘아담’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알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으신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존재로 산다 성령은 육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을 감찰한다

 

동물과 사람의 차이는 음양을 아는지 모르는가이고 음양을 자기의 몸에서 체험하는가 아닌가에 있다는 것이지 동물도 흙으로 지음 받아 피에 생명이 있다. 동물과 아담의 차이는 생령이라는 것인데 이 생령이 하나님의 말을 하는 힘이라고 나는 이해하게 된다. 육성을 내놓는 육설을 영성을내놓는 영설로 변화시키는 것이 성령이 임재하시면 하시는 작업이다는 것

 

성령임재는 혁명이다

 

음양이 있게 되는 자리가 혀다. 육언을 말하는 기능과 영언을 말하는 기능을 음양이라고 한다. 사실 모든 정보는 살아있는 이의 혀끝에서 정해지는 것이지 않은가? 기록으로 생몰연대가 있지만 입에서는 시공 생몰이 없다. 성령이 오시면 혀에 깃들인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부는 숨골에 성자는 가슴에 깃들이지만 성령은 혀끝에 깃들이셔서 혀를 길들인다는 것이지 말에 죽이고 살리는 힘이 있다는 것. 입에서 발화되는 그 순간이 오늘 생명이고 기록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제 존재가 된다

 

내 앞을 살았던 이들이 내 혀끝에서 일고 진다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생명으로 남이 씻고 버린 노폐 오염된 물을 마시는 꼴이 되는 카더 라이다. 살아있는 내가 살아가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로 살기인데 남이 씻었던 물을 마시고는 자기 이야기라고 떠들어대는 것이 외부에서 떠드는 깨달았다고들 하는 이들의 언어다

 

생명을 추구하는 것과 존재를 마주하는 것

생명은 피에 있고 존재는 기록에 있다 그러하기에 나는 생명을 공부하는 것에서는 피에서 피워내는 소리를 통하고 존재는 나에게 닿아 내 입에서 발설하는 언어를 씻김 함으로 한다. 언어를 어떻게 씻냐고? 성령이 오시면 방언을 하게 하는 이유다 언어 씻김굿을 함으로 존재를 구성하는 ‘말’의 본성을 마주하게 하는 것

 

피에서 발화하는 생명력은 힘이고 불같은 성령이라고 한다 물에서 발성된 존재 럭은 이해력이고 물 같은 성령이라고 한다 불같은 성령을 양으로 물 같은 성령을 음으로 설명하는 것이기도 한데 불은 태우고 물은 씻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이다

 

아기가 불같은 힘으로 태어나면 물로 씻긴다는 것같이 생명이 태어나면 존재의 물로 씻겨주는 것이 불과 물성령 오순절 보혜사 성령의 역할이고 이것을 나는 순설 후라는 훈련에서 확인한다고 한다

 

매일 해가 오르듯이 매일 태어나는 것이고 매일 씻김 하는 반복 예수는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했는데 태어난 자는 존재 이해를 하는 것을 공부하라는 것이지

 

육체가 태안에서 밖으로 태어난 것은 되풀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이 태어남의 에너지를 ‘유일신 하나님’이라 하는 것이고 너와 나의 공통 체험이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태안에서

태 밖으로의 이 체험은 이 지구상에 오는 생명들은 누구나 겪는 같은 한 길을 거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인류는 하나 너와 나는 하나라는 근거가 되는 체험이다

 

태어나 탯줄을 자르면 그때부터 놓인 환경에 따라 존재 지각력이 달라지게 되는데 존재의 힘을 나는 어휘력이라고 이해한다. 그 외에 무엇으로 그대와 나의 존재를 내세울 수 있고 지각할 수 있는가? 세치 혀끝에서 나오는 ‘말’이 살리고 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때 살리고 죽이고는 물로 이뤄진‘존재’다 피로 이뤄진 생명은 사람의 말로 살리고 죽이지 못하지만 성령의 언어에 훈련이 되어 생명의 에너지를 다루는 힘을 기르게 되면 피로 창조된 생명도 살리고 죽이게 되는 권세가 있게 되고 이런 레벨을 말에 온전한 자 의인이라고 했다

 

특히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우리나라의 언어살이는 몇 겹의 의도를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학력은 높아도 무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글 구조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지는 석삼극무진본원리로 가동되기때문에 한 글자를 놓고도 발성 위치에 따라 은값이 달라지는 것이고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육성을 통해 육언이 너에게 전달되는 육신의 문명살이와 영성을 통해 영언이 우주로 전달되는 영의 문화살이를 우리는 좌우 음양으로 디디고 잡고 살아간다

 

발은 피의 출발이고 손은 물의 출발이다. 피는 물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되고 물은 비 물질을 파악하는 힘이 된다. 피는 수소가 융합하여 26번째 철에서 탄생하는 무거운 원소지만 물은 수소와 8번 산소가 만나 만들어지는 것으로 철보다 18배가 가벼운 정보 에너지다 산소에서 18번을 융합해야 26번 철이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물을 기반으로 하는 존재 정보에서 철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철’들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자궁안에서 창조된 피의 생명이 태어나 탯줄을 자르고 물에 씻김으로 시작되는 ‘존재’ 생명은 태안에서 시작되지만 존재는 태어나 물이 씻김으로 시작된다는 것에서 물세례나 무속의 씻김굿이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은 반복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지만 탯줄을 자른 존재는 씻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지 영원한 반복이라는 것이지. 존재는 영원반복이고 생명은 알파와 오메가다.

 

피가 생명의 바탕이지만 이 피는 안을 돌고 물은 존재의 힘이기에 밖에서 흐른다

생명은 안에 있고 존재는 밖에 있다. 이 원리를 알게 되면 성령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시고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나간 것이구나 그래서 생명을 알고자 한다면 부르짖고 존재를 인식하고자 한다면 방언을 훈련하라는 것

 

육성은 육의 소리다

영성은 영의 소리다

쉬운 상식이다

 

영성은 영설을 딛고 발화하고 육성은 육설을 딛고 발성한다 영성은 영언(방언)을 통해 우주로 퍼지고 육성은 육언(정언)을 통해 너에게 퍼진다. 영언은 생명의 근원에 닿고자 하는 의지이며 육언은 존재의 자각을 이루려 하는 의지다. 존재는 너를 통해 인식되며 생명은 홀로일 때 인지된다. 존재를 자음으로 나는 설명하고 생명을 모음으로 설명한다. 독처하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아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 역시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드신 것. 모음은 홀로지만 그 홀로는 외로워 자음을 낳아 둘이 되는 것. 자음은 어딘가에 닿아야 존재증명을 할 수 있는 원리라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아담의 손끝이 닿을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되는 것이지

 

재미난 것은 영언인 방언은 말하는 나도 무슨 개념인지 알 수 없고 듣는 너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언은 생명의 근원인 피를 딛고 나오는 말임으로 피에 기록된 정보를 우주로 모음파동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생명을 존재로 체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오직 한 길이라고 하는데 존재를 생명으로 생명을 존재로 체험하는 길은 유일무이하게 ‘소리’를 통하지만, 존재를 자각하는 방법은 ‘논리’를 만드는 22자의 조합만큼이나 다양하다

 

생명은 오직 한 길인 만큼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고 피가 중력을 딛고 작용하는 에너지이므로 중력장으로 체험되는 진리가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피에 생명이 있고 피는 중력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공부는 너와 내가 같아야 하고 같을 수밖에 없어야 하는 것이지. 길은 오직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한 길.,..이기에... 숙명을 하나님의 뜻, 정해진 변치않는 원리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명 각성은 피의 농도에 따라 발화되는 에너지의 차이가 있다 피의 농도가 정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물을 더하여 희석을 하든지 물을 털어내어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생명이 피에 있듯이 죽음도 피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고 병의 근원은 피가 탁해지거나 묽어지게 되면서다

 

생명은 피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존재는 물에서 출발한다. 에덴에서 네 강이 발원하는데 에덴은 생명 근원이고 피의 정보라면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강은 존재 현상이고 물의 정보다 인류의 문명 발상지라고 배우는 것이지 문명이 존재 현상을 각성하게 되면 나타나는 것이기에 생명이 태어나면 그 생명은 존재의 강줄기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먹고 마시면서 성장하게 된다. 탯줄을 자르고 젖줄을 잇듯이 생명 자리를 털고 나와 존재 자리에서는 젖줄이 명줄이 되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하지

 

배 안에서야 입을 것 먹을 것 마실 것 염려가 없는 엄마가 하나님이지만 배 밖에서는 태안에서 염려하지 않았던 먹고 입고 자고를 해결해야 하는 ‘문명’게임이 시작된다는 것이지. 태어나 젖줄을 물어서 생명유지를 하고자 하는 것이 본능인 것처럼 몸의 온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생명의 본능이듯이 몸이 어딘가에 갇히고자 가주할 곳을 찾아들어가는 것도 본능이다는 것이지

 

집이라는 것이 확대된 문명의 자궁이고 옷이라는 것이 변형된 문명의 태반이며 젖줄이 새로워진 문명의 탯줄이고 그것을 요구하게 되는 육체는 문명의 ‘본질’-나인 것이다. 에덴에서 발원한 네 개의 강이 의식주를 추구하는 운명의 ‘나’를 설명하는 것이지. 존재 자각은 물을 딛고 알아가는 것이어서 바다에서 거슬러 올라 태일 생수에 도달해야 비로소 존재감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모든 것이 낮아져 바다로 모인 자리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 높은 곳에 우뚝 서게 되는 것 말씀에 막힘이 없을 때를 정상에 선다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

 

생명은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힘이다. 아기가 자궁을 벗어나는 것은 힘이다. 힘이 있고 그 다음에 존재감을 출발한다. 생명력과 존재감. 모양과 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