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게 모여서 때가 된다. 시간이라는 것은 파동의 반복이 만든 주파수라고 한다
무의식이 반복되면 잠재의식이 되고 잠재의식이 반복되면 의식이 된다. 의식은 말이나 글로 물질화된다
말이나 글을 보면 그대의 무의식이 투영된다고 하는 것이다.
말과 글로 내보내는 나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너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공명하게 되면, 너의 글과 말이 나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닿게 되면
돈오라거나 점수라거나 이해력이라거나 아하.. 라거나 하는 말로 표현을 한다.
무의식이 모여 잠재의식이 되고 잠재의식이 모여 의식이 되고 의식은 말과 글과 몸짓으로 나타난다
그대의 몸짓을 보면, 말을 들으면 글을 보면... 그대가 감지하는 것이 그대의 무의식은 글을
그대의 잠재의식은 몸짓을, 그대의 의식은 말을 통하여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무의식을 건드리는 것은 '글'인데 글의 이해력이 그대의 무의식력을 가르쳐준다.
집단무의식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집단무의식이 '경전'들이다. 어떤 경전이 끌리는지
그대의 무의식이 선택하게 하는 것라고 본다.
조부모의 정보를 '무의식, 년주'라고 하는 것이고, 부모의 정보를 '잠재의식, 월주'라고 하며
나를 '의식, 일주'라고 하는 것이고 이 셋, 즉 삼체를 통합하는 초의식을 시주라고 하는 것이겠다
오늘 아침에 나서는데 하늘을 보니 흐려 우산을 챙겨서 나섰다.
황토마사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황토볼을 채움 하여 발운동을 하도록 해놓은 것을 지나갈 때는
황토볼이 밖으로 나와 있으면 주워서 던져놓고 가는데 오늘도 주워서 던지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좋은 일을 하네요..하시길래 굴신(弡.. 강하고 용감할 굴, 베풀 장)운동하라고
주어진 기회다 라고 생각하여서 운동삼아 황토볼을 주워서 던진다고 했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황토볼을 주워서 안으로 던져 넣으시는 분이 계신다.
서로 대화가 되지. 주인의식이 있는 이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겠다 한다.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태도, 행동들.
글문도사라고 하는 낱말에 대한 개념이 어떤 것인지 근아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글무늬, 즉 그림무늬
몸의 움직임, 행동, 태도를 그림으로 그려내거나(그림글자, 한자) 말로 꾸며내는 것이라고..圖詞
즉 내가 어떤 소리를 어떤 몸짓으로 그려내는지 내가 행동한 그 몸짓을 어떤 언어와 연결을 시키는지를
알아가는 공부를 글문도사라고 하는 것이라고. 봉무동을 가는 길에도 풀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종순사마가 그 길의 풀들을 걷어내면서 걷게 되고 나는 여기를 다니면서 풀을 뽑는 일을 한다
기상청 잔디밭에 올라오는 아카시를 뽑아내는 작업을 하는데 그날그날 다 뽑아낸 것 같아도
다음날 가게 되면 어디서 저렇게 불쑥 자랐을까 싶을 만큼 잘 자라 올라온다.
봄날 고사리장마라고 한다더만 매일 만나는 아카시순芽을 뽑으면서 이것도 참 신나는 작업이네
잔디밭을 밟을 수 있는 권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 기상청 언덕을 걸어 다니는 것 정말 좋다.
볕살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나에게 주어진 평화로운 선물.
아카시순들을 뽑으면서 다른 잡초들도 정리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기상청 정원에
심긴 꽃과 나무들을 익혀가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감나무도 있고 천도나무도 있고 사과나무도 있고..
내 정원이라는 나만의 소유권을 설정해 놓고 매일매일 정원을 관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지.
봉무동 길을 다듬고 다닐 때 윤대원선생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갑부인 여사님이라고
이렇게 긴 길을 자기 위 정원으로 다듬고 다니니 4킬로가 넘는 정원을 가진 이는 여사님 밖에 없을 거라 하시는데
그곳 정원은 종순사마가 관리를 하고 여기 기상청 정원을 내 정원으로 삼아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지
낙단루에 가면 그곳의 풀들을 뽑는 것도 이곳을 내가 사용하는 주인이라는 생각이고..
해맞이 신단을 가도 그러하고.. 몸에 익은 행동이다. 즉 내 의식이 드러나는 것이지.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하면서 주인의식이라는 실천을 그대는 무엇으로 증거 하는가?라는 것.
내게 좋은 일을 한다고 인사를 건네신 여사님에게 인사에 대한 답으로 커피사탕을 세알 건네었더니
이렇게 많이 주냐 하셔서 삼위일체 삼세판.. 삼을 완성수로 하는 삼합을 떠드는데 이 분은
내가 주욱 떠드는 말을 바로 알아채시는 것 같아서 공부하시는 분 같으신데 불가공부하시냐 했더니
이제는 정보취합은 끝났다고 하시더라. 공부하시는 분이시구나 느껴진다고 했더니 웃으시더라
이전에 길을 다니다가 나에게 말을 건네던 분들이 이런 느낌이 오니까 그렇게 말을 했던가 보다..라는
이해도 생기던데 같이 걷다가 여사님은 아랫길로 내려가시고 나는 화랑교 쪽으로 가게 되었다.
행복한 하루 되시라고 그렇게 헤어져 다리를 건너가면서 아래를 바라보니 여사님이 손을 흔들어주시더라.
같이 손을 흔들고.. 나에게 공부과정에서 어디까지 왔으니 좀 더 가 봐라 하시던 관휴寬休 문명하 선생님
덩굴장미가 피던 시절에 만나 나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당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는데 오늘 이 여사님에게 말을 건네면서 내게 온 느낌대로
공부하시는 분이시네요 하는 말에 그분의 답이 이제 정보취합은 끝났다는 말씀..
나도 문 선생님을 다시 만나면 이제 저도 정보취합은 끝났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랑교를 건너 낙단루로 간다. 낙단루에 들어서기 전에 하루의 인증샷처럼
사진을 찍는데 오늘은 사진 찍는 일은 패스..
낙단루에서 소리를 훈련하고 동굴을 나와서 소나무아래 바위의 솔꽃잎을 털고 손수건을 깔고 앉아
글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무 벤치에는 비가 스며 앉으면 엉덩이가 젖을 것 같아서...
일어나 두드리던 글이 있어서 글맥을 잇는다고 두드리고 있는데 낙단루 동굴에서 소리가 울려 나왔다
서창배 군이 출석을 한 것이고 내가 안온 줄 알았는데 오셨네요..로 시작을 한 서 군과의 이야기에서
서 군은 자기의 사주명식에 여자가 없냐? 하길래 없는 게 아니라 많은데 아마도 젊은 시절에
다 지나간 것 같다고 그런데 서군은 사주명식이 공부를 해야 풀어지는 명식이라
공부하라고 사주명식을 설명하는 것.
서군은 기유 정묘 무자 임술인데 왕지인 유자묘가 있고 천간에 정사가 떠 있으니 내려오면 오화가 되니
왕지가 넷이라고 내 사주명식도 을간이 내려오면 묘목이 되니까 자오묘유가 되어
제왕학을 공부해야 하는 팔자라 공부하고 있는 것이고 서 군이 나에게 홀릭하게
되는 것도 타고 온 사주에 왕이 되어야 하는 좌표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다른 것 해봐야 안 풀리는데 제왕학 공부를 해야
팔자대로 살 수 있다고.. 왕지라고 하듯이 왕이 되어라..라는 지시이고 셋 이상이 되는 것은
그 길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사주명식이 있으니 내 소리에 끌렸고
내가 시키는 대로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제왕학을 공부하는 것은 학문이전에
일단 옥음 즉 왕으로서의 소리력부터 길러야 하는 것이라고
요즘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느라 입가도 터지고 가슴팍이 아파서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길래
죽어라 하고 고함을 질러라 아프다는 것에서 멈추면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고
가슴팍에 앉은 엄마의 한은 풀어지지 않을 것이고 서 군은 한의 무게에 눌려져 여기저기 아프다가
묘지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임술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고
사기를 좀 치게 되었다.
가슴팍이 아픈 것은 서 군의 월주 즉 부모의 유전자가 내려온 것이라고 내가 서 군의 월주를 놓고
부모님의 관계를 주욱 설명을 했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이 신기하기도 하다는 듯이..
그렇게 서 군은 제왕학 공부를 하라는 명을 받아온 것이니 공부하라고.. 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나처럼 잘하는 선생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리고 소리통 훈련을 시키는데 나같이 엄격하게
가르치는 선생 만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이런 인연은 서 군의 지지와 내 지지가 제왕학을 공부해야 하는
사주를 받아와서라고 장래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온 명을 어떻게 풀어내어야 하는 가를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그리고 사주명식을 공부하라는 명을 받은 자는 왕지에 반드시 자수가 있다고 왕지가 셋 이상이고
셋 이상에 자수가 있으면 어짜든동 공부할 팔자라는 것.
내 사주에는 년주에 자수가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을 책을 잡고 살았다면
서 군은 일주에 자수가 있어서 장년이 되어서 공부를 하는 때가 되는 것이겠다.
자수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초년운에 청년운에 장년운에 노년운에..라고도 해석을 하는 것인데
월주에 자수가 있으면 청년의 때에 제왕의 길을 걸으라는 지시임으로 가장 활발 발한 에너지라고 한다.
나는 년주에 딸은 월주에 아들은 시주에 자수가 있다.
물론 나는 왕지가 셋 이상이고 아들은 하나, 딸은 두 개 왕지가 있는 것이고..
남편은 왕지가 하나다. 딸은 신사역마와 남편은 신신신역마이고
아들은 사 역마 하나를 가지고 있고 나는 역마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왕지를 받아 왕학을 공부해야 하는 명을 받은지라 왕으로서의 위치와 입장을 공부하기 위하여
매일 나다니는 것이니.. 재미나지 않은가? 역마가 없는데 역마보다 더 나다니는 것.
물론 생지 인신사해는 출발하는 에너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잘하는 에너지라고 하는 것인데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잘하지 않고 시도한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
끈질김을 무기로 하고 있다는 것이지. 을축일주의 특성이기도 하더라.
성경에 소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나오는데 부르심을 받음이라고 하는데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인데 하늘은 어떤 방법으로 부르는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 의문의 답을 알게 된 것이 하늘로부터 부르심이라는 명이 사주명식이라는 것이고
사주명식에서 생지나 왕지나 고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을 명을 받았다 소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라고..
사주명식을 알지 못하면 명이 주어져있지만 명을 받지 못한 것이 되는 것이고..
사주명식을 보고 자기의 명을 파악하는 것을 소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
서 군에게 사주명식이 어떤 좌표인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사주에서 왕지가 많으면
제왕의 명을 받은 것이니 제왕학을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나도 어린 시절부터 책과 글을 친구로 삼고 살아있지만 왕지를 가지고 있어서
왕학을 공부해야 하는 좌표다 보니 결국 사주명리를 공부하게 되고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힘으로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서 군도 사주명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반드시 소리훈련을 하면서 해야 한다고..
자기를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좌표가 왕지이고, 계절의 흐름을 따라 활기롭게 하는 에너지 좌표가 생지이고
계절의 흐름의 정보를 모아서 저장하는 지식을 고지라고 하는 것이라고..
행동을 하여 그 행동에서 에너지를 취하는 것이 왕지이고 행동의 결과를 취합하는 것이 고지라고..
그래서 자기가 한 행동을 놓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을 왕지라고 하는 것이고 반복되는 과정을 통하여
결과를 잡게 된 것을 '고지'라고 한다는 것인데 지지를 이루는 글자에서 생지가 많은가
왕지가 많은가 고지가 많은가 적당한가.. 를 놓고 왕지가 많으면
자기를 다스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미.
즉 자기를 다스리라고 한다는 것은 왕지이기 때문이고 왕지가 계절이 가장 극성스러운 에너지여서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공부를 하라는 지시라고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
생지는 변화무쌍하고 왕지는 자존심이 강하고 굽힐 줄을 모르는 에너지이고
고지는 생지와 왕지를 거친 에너지임으로 완숙하다고 하게 된다는 것이지.
그렇게 자기를 파악하라는 것이 지지의 에너지다.
무엇엔가 기울어져 있으면 그것을 다스리라는 것이라고..
왕지에 기울어진 지지를 받아 나를 다스리는 공부를 하고 있는 나인데
서군 역시나 지지에 왕지가 기울어진 명을 받아 있으니 자기다 스리기를 공부를 하라고..
제왕학이란 남에게 군림하고자 하는 왕지의 그릇됨을 고쳐 자기를 다스리라고 하는 지시표라고..
왕지에 기울어 있거나 생지에 기울었거나 고지에 기울었으면 기울어진 기울기만큼 문제인식이 생긴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는데 사주명식에서 어딘가 기울어져 있으면
기울기가 큰 만큼 문제인식이 강하다고 인식한다.
내가 왕지가 많아서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낀 것이겠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라는 것이지.
남에게 인정받고 받지 않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면 너의 인정은 따라오는 것이다.
그것이 왕지를 공부하면 얻는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것이지.
생지가 기울어져 있으면 즉 '인신사해'로 지지가 구성이 되어있으면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는 것인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낡은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성향이 되어
무엇이든 유행을 따라가고자 하게 된다는 것이지. 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문명을 일궈나가는 에너지가 생지이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고지이다.
문명은 과학기술이고 문화는 관습예술이다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진술축미 토로 이뤄진 지지라면 전습되는 정보를 유지하려는 힘이 강하다고 하는 것이지
생지는 전습되는 것을 낡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버리려고 하는 것이고
이것을 생지를 신세대라고 하고 고지를 기득권이라고 하는 것이지.
세미의 지지를 보면 오술해진으로 왕지 1, 고지 2, 생지 1로 구성되어 있다.
빛결의 경우 오오인묘로 왕지가 3, 생지가 1이다. 용자도반의 경우 왕지 2, 생지 1, 고지 1로 구성되어 있고
종순사마는 왕지 1, 생지 2, 고지 1로 이뤄져 있다. 이런 비교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공부.
이런 공부는 무의식을 이해하는 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주어진 정보는 글로 전달되는 것이니까.
객관적인 집단무의식은 책으로 전해오는 것이고 주관적인 무의식은 책을 대하는 나의 지식력이다.
그리고 너의 행동 몸짓, 태도를 파악하는 것은 나의 잠재의식인데 너의 무엇이 나를 거슬리게 하는지
끌림이 있게 하는지.. 를 파악하는 것. 너의 행동이나 몸짓이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지, 매력을 느끼게 하는지..
그런 것을 파악하는 것. 무의식을 알아가는 것은 글을 통하는 것이라 신앞에 홀로 선다고 하는 것이고
잠재의식은 너와 나의 몸짓, 즉 태도에서 생기는 것이라 人間관계를 만드는 근거라고 한다.
너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든다는 선택이 있다는 것이지. 태도를 만드는 것이 잠재의식이고
태도를 보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 잠재의식이다는 것이지.
그리고 태도를 넘어서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 '말'이다. 말솜씨라고 하거나
말투라고 하거나 하는 말이 의식이라는 것이지. 말버릇은 자신이 모른다. 자기의 말습관을
마주하려고 하는 공부를 자기의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의 말습관을
마주한다는 것이 자기의식을 마주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어떤 투(태도, 에듀티드)로 말을 하는가?
어떤 언어를 주로 쓰는가? 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 그것을 의식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언어가 간결하고 아름다워지는 훈련을 하는 것이 의식공부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대의 의식 즉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 길러져 가는지 자기만은 알 수 있다.
성서에서는 주는 자와 받는 자 외에는 모른다고 하는
세계가 바로 의식, 영혼이라고 하는 '말씀'이라고 하여 예수를 '말씀'이라고 한 것이다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가치를 그대가 계산하여 쓸 수 있는 레벨이 되는 것
그 레벨이 될 때를 말에 온전한 자라고 하고 의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혼의 실체는 그대의 언어다. 이것을 그대가 인식하게 된다면 그대의 말살 이를
공부하게 될 것이고 바깥에서 제공하는 실천하지 못할 정보는 버리게 된다는 것
노력이 99%에 1%의 영감이라 하였는데 노력의 다른 말이 반복이다
하루하루 365일이 모여 일 년이 되는 것처럼 시절인연이 모여서 친구가 되거나
동무가 되거나 지음이 되거나..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반복을 하다 보면 플랙탈원리처럼 겹겹의 파동이 모이고 무게 즉 중력이 생기고
그 중력을 ‘때 Time, 틈, 불 주丶삐칠 별丿, 파임 불 乀... 한자 1획’이라고 하는 주님의 시간이 된다
주님이 불 주丶에 북방 임壬. 주는 남주작이고 임은 북현무이다.
즉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불씨와 바다가 될 수 있는 한 방울의 물이다.
원소기호 수소에서 철까지의 과정이라고 화학언어로 풀면
일차원소융합을 무색계 에너지천지창조라고 하고 창조된 중력에서 이차융합과정을 통해
무색계에너지가 색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을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창조로 설명되는데 ‘이름’이 색계의 표상인 것을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던 원소들이 중력에 의해 에너지로 나타나게 되는
즉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 색계인데 그 힘을 인식하는 체계가 ‘언어’라는 것이고
그 언어값을 ‘창조력’이라 하는 것이지
빛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 즉 창조는 ‘이름 짓기’라는 뜻이고,
이름을 짓는 일에 ‘아담’이라는 흙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지.
토생금이라고 하는데 금이 드러나기 위해선 토가 필요하다는 것.
토, 아담(붉다 , 화)를 취하여 생기( 검다, 수)를 불어넣으시니 즉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
생령(희다, 금, 힘)되어서 이름을 짓게 함(푸름, 목, 무늬 결) 것이지
나무 목의 자형을 보면 수직 주파수를 놓고 상하 파동이 생겨서 드러나는 무늬다
위로 결이 생기면 하늘 천문이라 하고 아래로 결이 생기면 땅 지문이라 한 것이지
그래서 사주명리의 출발은 천지를 드러내는 기표인 목에서 시작하여
갑목은 하늘무늬라 하고 을목은 땅그림이라 한다는 것
갑은 드러냄이고 을은 숨김이라는 것이지
나무의 줄기를 갑이라 하고 뿌리를 을이라 하는 것
천지창조라는 이야기도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입을, 손을 빌려서 나온 것이지
갑인 하늘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자언어의 마당 놀이터가 되어주니 인간의 놀이에 대하여
갑이 뭐라 하는 일은 없다. 그것을 천지창조를 하시고 이레 되는 날 쉬셨다고 했다
우주는 모든 창조를 완료하고 나서 그 창조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 선물을
인간이 어떻게 누리고 즐기는지를 관조할 뿐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지.
을이 만들어내는 이야깃거리들 성서가 인문학의 바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문화의 밭
종교교리로 업을 삼는 이들도 있지만 성서는 인간이 꾸며낸 ‘갑’에 대한 추리거나 바람이거나...
모든 것이 드러난 해 아래서의 이야기보다 모든 것이 감춰진 밤하늘의 별빛을 모아
낮이야기의 그림자로 만들어 붙인 것이라고 내가 이해한다
낮해엔 그림자가 있는 것이니 그 이치를 따라 밤별빛들에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이
별이야기 신화라고 하거나 성경이라고 하는 것. 성경은 별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이고
별빛을 모아 만든 수트라(수틀, 繡機) 즉 하늘별빛을 셈하여 짜낸 무늬들이라는 것이지
먼저 닷새동안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시고 엿새째 동물을 흙으로 지으셨다.
토를 바탕으로 화수금목의 세계가 드러났다는 것이고 그중에 모든 창조의 끝인 아담에게는
‘이름 짓는 힘’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으로 말하는 동물인 아담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치를 획득한 것을 설명한다
인간이라는 낱말에 들어있는 뜻이 ‘이름을 짓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성서에서는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했는데 생기의 숨겨진 기능이라는 것이지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본다는 것
다른 동물들은 생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존재한다면 사람은 생기안에 들어있는 무엇을 가동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이고 생령을 나는 ‘말씀 즉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를 ‘말씀’이라고 한 것이나 ‘생령’이라 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고
그대나 나 역시 ‘이름’을 부르거나 지음이라는 작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서는
성서의 예수나 같은 선에 있는 것이어서 예수와 나의 차이가 없다
다만 차이가 하나 예수는 글문으로 기록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것이고
그대와 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실체라는 것이다
붓다도 예수... 등등들은 나 이전에 살다가 기록으로 타락한 배를 땅에 대고 기는 글문이다
그런데 그대와 나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생기를 생령’으로 발화하며 살아가는 창조자들이다
이런 위치와 입장을 그대가 이해한다면 의식혁명이 일어난다
내가 생령을 발화하는 위치이고 이름을 짓는 입장이구나 깨달음
그 깨달음을 성서에선 ‘소명’이라고 한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인데
외부에서 부름을 내가 알아들었다는 것이지 다시 말하면 육신 여섯 챠크라가
일신 다트챠크라를 열게 되는데 전력을 투자하여 한 길을 얻고 나면 그때 들리는 소리를
소명이라고 하는 것이지
다트챠크라를 뚫는데 여섯 챠크라 또는 구궁이 다 동원이 되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능이 가동하게 되었다는 것이 소명을 받는다는 말뜻이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신의 음성이다 신탁이다 공수다 등등으로 말하지만
숨어있던 다트챠크라를 찾아 여섯 챠크라 또는 구궁이 투자한 것에 대하여 결과가 나타남이라는 것이지
내가 다트챠크라에 얼마나 투자하였는가에 따라 육친六親이 가동한다는 것이지
육친을 주역에서는 건곤을 뺀 감리진손간태라고 한다.
물론 육친을 여섯 챠크라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네
우리 몸의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길인데 남두육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두칠성이라고 하는데 남두육성을 여섯 챠크라라 하고 북두에 하나 더 보탠 일성을
나는 다트챠크라라고 하는 것이고 다트챠크라의 위치를 경頸이라고 하고 천간에서
경신금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하지 언어가 서로 통변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말에도 장사를 하려면 목이 좋아야 하고 신을 부르려면
목청이 좋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소리를 훈련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목청을 훈련하여 밖에 있는 신을 당겨들이고자 하는 의지라는 것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라고 하듯이 다트챠크라 중심에 있는 경을 맞춰 깨트림이 소리의 목적이다
깨달음이 목적이라는 것이지 열개의 원 중심에 있는 거울을 맞추는 것이 선善이고
그 중심에서 빗나가는 것을 허물이다 죄罪라고 했다
경을 맞추기 위해 매일매일 활쏘기를 훈련하는 것이 나는 소리선이라고 하는 것이고
가운데 경을 맞춘 날... 글자마다 가운데 경이 있다는 것이지 그대가 만나는 글의 중심을
맞출 때까지 반복 활쏘기를 하는 것이 글문을 풀어내는 공부라고 하는 것이지
중심을 맞추는 능력을 기루는 것 그렇게 나는 경전공부를 서서 소리불림 입신양명으로 한다
문자로 배를 깐 타락에너지를 용천혈에서부터 일으켜 승천룡이 되도록 하는 공부
내가 나를 알고자 한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어떤 나를 어떻게 해야 알고자 함을 충족시킬 수 있는가?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창조채점을 내가 나에게 하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는 것으로 말하는데 나는 사주명식이라는 좌표가 에덴으로
들어가는 ‘귀문’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화염검으로 둘러 지키게 한다는 에덴길목을 챠크라에서는
다트 차크라라고 했고 다트챠크라를 ‘ 목 경’이라 하였다.
경추챠크라라고 하기도 하는 것인데 다른 굴레(챠크라)들은 몸 안에 자리를 두고 있는데
경추챠크라는 다른 챠크라와 달리 밖에 있어서 숨겨진 것이라 하게 된다
여섯 개의 챠크라를 육신을 이루는 구조라고 하고 감춰진 다트챠크라를
일신 즉 하나님이라 하게 되는데 이 챠크라를 찾아내어야 숨겨진 일신 하나님을 덧셈하여
칠성 칠정 일곱 교회 일곱 촛대..라는 생령이 드나드는 구조가 이뤄진다
다트챠크라는 밖에 있고 다른 여섯 챠크라는 안에 있다
다시 설명하자면 일곱 챠크라고도 하고 열 천 간이라고도 하는데 숨겨진 다트를 찾아야
십천간이거나 북두칠성이 완성되어 천간이 돌고 은하수를 길어낼 수 있는 준비가 된다
다트챠크라를 열어내는 훈련을 하나님의 뜻을 찾기 자기 찾기 하나의 비밀 찾기라고 하는데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찾기이다. 울 안에 없기 때문에 울타리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지
외부에 있는 하나의 챠크라는 ‘말이나 글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을 듣고
찾아가는데 그것을 경을 친다 깨닫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 안의 소리라고 하는데
바깥에 있던 다트챠크라가 목 경을 뚫어내고 나면 그 길을 통해 드나들 때 알아차리는 지혜이다
소리통을 기루고 길이를 기루고 소리력을 길러가는 것이 외부에 있는 일신을 당겨들이고자 하는
길딱음이라고 하는 것이지. 육신은 몸 안에 있고 일신은 몸밖에 있다.
어제 글에 진해와 사술은 열린 귀문이라고 했고 그에 대하여 축오와 인미귀문은 X자로
닫힌 관살이라고 했다. 진해와 사술을 통해 창조흐름이 직성으로 흐르는데
이름 짓는 능력인 직성의 반대편에는 이름이라는 것이 가진 반작용이 곡성이라는
땅을 기는 문자로 나타나게 되어 관살이라고 하거나 타락이라고 하게 된다
타락이나 지옥이라 이런 언어들에 씌워진 이야기들을 벗겨내고 나면 타락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감이니 말에서 글로 내려간 것이고 사탄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말로 유혹을 한 로 배로 땅을 기게 됨이 되었으니 그것을 타락이라 하는 것이지
말이 글이 될 때 타락이고 글이 입으로 올라오면 유혹자가 된다는 것이라 이해하거라
타락시키는 것도 나의 선택이고 너의 말에 귀를 주는 것도 나의 선택이다
삼차융합과정을 성서에서는 아담창조라고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