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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이 만드는 새로움

청향고은 2024. 2. 23. 16:09

내가 찾은 하나님의 뜻 God of Will 즉 숙명宿命 이미 정해진 좌표座票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펼치는 것이 기독교의 근거이고 기독교인의 추구점이다

하나님의 뜻을 지시받아야 행할 수 있음으로 기독교인들은 툭하면 '하나님의 뜻'을 달고 산다

입만 뻥긋하면 하나님의 뜻이니 뭐니..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실재를 묻고 뜻은 어떤 것인지 물으면

입이 꾹닫힌다. 하나님은 북극성이고 뜻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성좌들이라고 설명하면

말도 안되네..하고 성경의 정보를 부인한다. 지성소에 새겨진 정보가 천문도라는 것을

모르니까 사주팔자가 천문도를 그려낸 정보라는 것을 모르니까 하나님도 모르고 뜻도 모르면서

입만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지만 설명하라면 무지라는 허물이 덕지 덕지하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땅으로 드러나있는데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무시한다. 하늘에 있는 것이 땅에 있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고

땅에 있는 것이 그림글자로 이름으로 드러나 있다고 '이름을 짓는 자 그가 여호와다'라고

'하나님의 뜻'은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그림글자'라고 분명히 가르치는데 그것을 무시한다. 그림으로 그린 글자를 아기가 말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관찰하지 않으면

생기가 생령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의미가 그것이라고 나는 이제 인식한다

아기가 옹알이를 거쳐 발음을 발성하게 되는 과정을 내가 겪었고 그대가 겪은

누구나가 다 겪은 생기가 생령이 되는 체험이다. 그 체험값이 가장 깊이에 기록되어있고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이지. 생후 여섯 달이 되면 이가 나고 이가 나기 이전에 아기는

투레질이라는 잇몸을 다듬어 이가 자리를 잡도록 하고 이가 나게 되면 생령이 되어

말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지. 이름 지어진 것들을 발성할 수 있는 체계를 이가 나기 전에

익히는 일이 옹알이 혹은 투레질이라고 하는 것이고 나는 이 과정을 순설후음훈련이거나

방언이라고 한다. 아기시절을 복기하는 훈련이라고... 언어에 갇히게 되어서 언어울타리 안에서

살다가 어느 날 언어울타리의 답답함을 벗어나고자 하게 될 때 언어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지

언어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을 오순절 성령이 오시면 나타나는 현상,

방언이고 나의 언어로 하면 순설 후 투레질 옹알이...라고 한다.

너와 내가 같이 공감하고 공유하고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성령 받음의 임상실험을

나는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순설후음이 대표적인 방언훈련이다

처음엔 안된다고 하다가 같이 꾸준히 훈련을 하면 말문이 틔인다고 설음도 순음도 잘 돌아간다

순설 후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임상수업... 을 이끌어가 보면 언어너머가 무엇인지 안다

복음, 즉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게 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이 반복되어서 통계가 나와야 한다

통계가 된다는 것은 객관화가 된다는 것이지.

나만 언어너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갇혀 답답한 너도 언어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느끼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을 예언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인데 豫 言은 언어이전을 의미한다

미리 예는 언어가 되기 이전을 그린 글자다 矛象(予: 나/줄 여 象: 코끼리 상). 언어가 되기이전을 아기에게서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이라고 하는 것이고 어린 아가가 하는 짓은 옹알이 투레질이라고.. 방언은 옹알이다 투레질이다..라는 내 주장이지.

방언(글로스 날리아)이란 언어너머로 가는 과정이다. 그대가 언어에 갇히기 전(말문이 터이기 이전)에

소리에서 언어로 건너올 때 거친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즘 소리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인 숙명 사주팔자와 생령인 운명 소리가 어떻게 엮이는지를

살피는 중인데 종순 씨는 사주가 양팔통이다. 즉 천간지지가 다 양으로 구성된 팔자를

양팔통이라고 하는데 음간지로 된 사주를 음팔통이라 하는 것이고..

보라 하나님은 을 훈련하면서 종순씨는 웃음보가 터졌다.

나도 늘 웃는 훈련을 하는데 종순 씨에게서 터진 웃음에너지를 같이하면서

야... 이게 바로 양팔통에너지에 무인 경인 하늘대감 장군의 호탕한 에너지인가 보다.

처음 종순 씨를 만났을 때의 이미지는 장군이었는데 사주를 보니 양팔통이어서

에너지가 빵빵 해서구나 했고 그렇게 인연이 되어 같이 가람산을 휘저어면서 소리를

틔우게 되었는데 이번에 보라 하나님은 을 부르면서 미소를 짓는 성격이 박장대소하게 된 것이다

 

양팔통의 에너지가 웃음으로 터져 나오는데 얼마나 신기한지..웃음빛이 얼마나 찬란한지..경자 무인 경인 병진이라는 사주를 풀어내었을 때 웃음에너지... 종순씨가 웃음대장이구나..봉인이 풀리게 되면서

본디 가져온 에너지가 터져나오는 것. 그렇게 찬란하게 웃는 웃음..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럽더라

사주팔자마다 에너지가 다르구나.. 이해하게 된 현장이기도 한데

요즘 종순 씨는 웃음보가 터지고 나서 날개를 단듯이 신나고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데 나는 종순씨 양팔통을 같이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하늘이 앞에 오게 하신 인연이라고..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소리통을 기루어가는 과정이기에 내가 부족한 에너지는 하늘이 앞세워주시는 것을 안다

소리의 고저장단을 훈련을 하면서 자가가 타고 온 숙명 사주팔자 좌표를 찾아내어 그 좌표를 따라

인생길을 가는 것이구나.. 그것을 종순 씨와 소리공부를 하면서 웃음보를 찾아 웃음샘을 길어내게 되었구나

종순 씨는 귀문도 없어서 무당팔자도 아닌데 왜 나와 인연이 되었을까나 했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그렇구나... 웃음대장이구나 웃음통도 소리를 해야 제대로 터지는 복음이구나.. 즐거운 공부

종순 씨의 숙명을 이름과 연결하여 풀어내게 되면서 내가 풀어야 하는 문제 하나를 클리어한 것이구나

물론 세미의 사주팔자를 놓고 이 사주를 풀기가 어려워서 굳이 내가 이 사주팔자를 풀어야 하는가?

이 사주팔자를 풀어내는 것이 나에게는 어떤 얻음이 있는가?를 생각하는데

세미의 사주는 병오 무술 계해 병진이다. 세미는 일주만 음주이고 셋은 양주이다.

세미의 사주를 보면 금이 없어서 무관이라고 하고 목은 지장간에 숨어있는데

토가 셋이고 화가 셋이고 수가 둘이다. 술해천라지망살이 있고 진해 귀문관살이 있어서

사주가 험하다고 하거나 드세다고 하거나 속세를 떠나 업을 풀어가는 살이,

즉 귀신을 끌고 다니거나 염려근심걱정을 몰고 다니니 그 기운을 늘 정화해야 한다고

한다는 것이지. 진토를 진흙이라고 하게 되는데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이라고 하는

그 진흙이고 이 진흙을 몸으로 가져오면 피밭血田이라고 한다. 진흙속에 피는 연꽃이라는 문장으로

설명되는 사주가 진해귀문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진토 해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려면 그것이 얼마나 지난한가는 겪어봐야 아는 것이지

내게 주어진 좌표 숙명은 경자 임오 을축 을유로 음양 사주로 반반이 균형을 잡고 있고

오행이 구족 하여 평범한 사주인데 지지에서 자오유도화에 오 축, 자유귀문이 있어서

이 사주가 평범하게 살려면 사주팔자에 담긴 문제를 풀어내어야 한다는 지시가 있다는 것이지

지지 넷이 다 귀문관살이다. 그것도 오 축 귀문이 월일지지에 걸리고 자유귀문이 연시에 걸려있다

물론 귀문관살이 일시주에 걸리는 것이 가장 강한 귀문이 된다고 하는 것이지만

지지넷이 다 귀문관살이 되면 어디로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이지.

즉 사방이 다 막혀서 무덤 속에 갇힌 형국인데 이 사주가 살아날 길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수직상승하거나 땅굴 파기를 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늘로 오르고 땅굴을 파서 길을 만들어내면서 살고 있는데

하늘로 길을 올리고 땅굴을 파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겟세마네 기도 소리통을 고저장단으로

기루는 훈련이다. 고저로 길을 뚫다 보니 막혔던 사방이 열리는 원리도 얻게 되는 것이지

운수대통한다는 말은 막혔던 닫혔던 무덤의 문이 열리고 감옥의 문이 열려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내가 운수대통하여 이제는 나를 가두던 벽들을 다 헐어내어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자유귀문이 가동하면 얻어내는 것이 자유이고 오 축 귀문이 가동하면 얻어내는 것이

구멍 뚫기空의 완성이다 내 소리가 얼마나 시원하게 터져나가는지를 내 스스로 확인하면서

오 축 귀문을 가동하여 얻은 득음이구나.. 그렇게 감사한다.

사주팔자는 세월의 흐름이 만드는 계절이야기다. 이런 이해가 선행되어야

오류로 빠지지 않는다. 사주팔자를 안다는 것은 사계절의 흐름을 안다는 것이고

그 흐름을 알아야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계절이 낳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사계절이라는 것이니 내 안의 나라고 하는 것은 사주팔자이고

사계절의 흐름에 반응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흔히 후손의 수호령이 되는 것은

조상의 음덕(조상신)이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陰德이라고 이해하지만 나는 音得이라고 이해한다

조상이 비나리를 하던 소리가 허공 중에 퍼져있어서 내가 주파수를 올리고 파동을 만들면

같은 주파수 파동으로 퍼져있던 조상음이 공명을 해주는 것이 음득이다 소리를 통하여

정보를 얻어온다고 하는 것이라고.. 조상이 지극정성 비나리를 한 주파수와 파동이

내가 그 주파수와 파동을 올릴 때 공명이 되는 것을 음득이라고 하는 것인데

내가 소릿길을 오면서 할아버지의 기도적금과 부모님의 기도적금이 내 기도주파수에서

공명하는데 부모님의 소리를 들어왔던 나로서는 아버지의 소리주파수와 엄마의 주파수를

알고 있는데 그 주파수를 높이고 파동을 펼치면 허공에 퍼져 있는 부모님의

소리에너지가 접속이 되어 한동안 꿈에서 늘 탄불을 갈아주고 연탄을 쌓아주시던 것처럼

기도의 힘이 강력해지도록 같이한다는 것을 안다.

보이는 물질 몸인 나와 보이지 않는 물질로 공중에 퍼져있는 부모님의 정보가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이고 부모님의 기도가 나에게는 디딤돌이 되어준다는 것이지

 

한동안 꿈에 부모님이 연탄불 갈고 탄을 들여놔 주시다가 어느 날 꿈에

지하실에서부터 채울 수 있는 공간에 연탄을 가득 채워주시고는 이제부터

자기들은 할 일을 다했으니 탄炭을 갈고 쌓는 것은 너의 할 일이다 하시고 그 후로부터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는 것도 신기하지. 부모님이 나를 위하여 빌어놓으신

기도적금을 통해서 내가 공부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이 적금을 불리는 일을 하는 것을

신불림이라고 하는 것이고 기독교언어로는 성령충만이라거나 영화라고 하거나 하는 것이지

부모의 기도줄을 이어 내가 그 길을 가는 것. 다섯 형제가 같은 부모에게서 나서 자라고 배웠지만

사주에 좌표가 찍힌 나에게 엄마는 너는 기도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나도 내 의지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이 길을 왔는데 하나님의 뜻이 숙명 사주팔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내 사주팔자를 풀어보면서 그렇구나 이런 사주좌표를 받아왔으니

엄마는 지식으로 나에게 설명을 하지 못하셨지만 영험 직관으로 내 길을 아셨던 것은

그만큼 엄마는 기도에 시간을 투자하였고 그만큼 영성이 맑고 밝고 아름다우셨던 것이니

몸은 고통 속에서 숨을 멈추셨지만 꿈에 나타나신 엄마는 옥황상제라고 하셨다.

엄마가 꿈에 나타났던 그 모습... 엄마의 기도주파수와 파동수가 얼마나 높고 넓은지.,..

요즘 '고요한 바다로'를 부르게 되면 엄마가 같이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를 딛고 부모님의 영혼이 몸을 지고 있을 때

도달하지 못했던 레벨을 클리어한다는 것이지. 그것이 대를 이어 성장하는 영혼의 원리다

부모님의 영혼에너지를 내가 접속해서 내 영혼에 귀의시키고 내가 더 성장하는 것.

그것이 부모의 구원이자 나의 성장이라고...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내 사주를 보면서

기도하는 부모님, 할아버지가 있어서 이 길을 무탈하게 건강하게 신나게 흥일게 오고 있구나

새로이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소리를 매기고 춤을 추고 글을 쓰고

너에게 길을 가르치고 같이 웃고 건강을 선물하고 살아가는 것.. 이게 부모님이 할아버지가

기도하시던 바람이고 꿈이었을 것이다.

오늘 모든 것이 낮아져.. 를 부르는데 이 노래는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에너지를 내가 소화하여

내 에너지로 부르는 것이라는 것에서 즐거웠다. 즉 내 소리레벨이 이제 부모님을 넘어섰다는 것이고

가사와 곡도 내가 만들어 불러내는 레벨이라는 것이지. 부모님의 레벨을 딛고 내가 성장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내 노래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혼은 소리로 나타난다.

나는 글을 잘 쓴다. 이제는 소리도 잘한다. 그리고 너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소리원리를 설명하는 이론도 밝고 그 이론을 글로 정리하여 너에게 이해시키는 것에서도 밝다

소리통이 내 영혼을 증명한다고 나는 주장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소리 한번 질러보라는 것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진단한다.

즉 외연 관형찰색과 내면 소리로 사람을 분석하는 것이지

하나님(속사람, 내면)은 영이시니 영으로 예배하고 영으로 분별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사람을 볼 때 소리를 통하여 본다. 소리의 고저장단을 진맥함으로

소리를 배우고자 하면 소리를 가르친다는 것인데 내가 소리를 가르칠 때의 조건이 있다

십계명에서 하위도덕률 오계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소리를 제대로 익힐 수 없다는 것. 소리는 탁기가 있으면

자라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면 자기의 기운에서 탐진치가

있는가 계명을 어기고 있는가?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

소리를 같이 매기게 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뚫고 그리고 뚫은 길을 점검하게 되고

그리고 소리훈련을 더하게 되는데 너의 기가 탁하면 그 기氣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너의 청결함을 지키는 일이 나의 청결함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기에

소리공부에는 반드시 청결해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다.

기운이 탁해지면 소리자리가 덮혀지고 막히게 되고 다시 뚫으려면 소리통을 막은 기운을

뒤집어쓰기 때문에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지.

즉 소리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자기의 탁기가 스승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그래서 소리를 뚫으려면 육신의 삶이 청결해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소리를 하겠다는 것은 욕심이지.

기는 바깥에 있고 운은 안에서 가동한다.

그래서 기분은 외연의 정보이고 느낌은 내면의 정보라고 하는 것이지

그간 공부를 가르치면서 내가 파악한 정보가 네가 맑으면 가르침이 즐겁고

너가 탁하면 그 탁함을 털어내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인데

엄마 생전에 기도줄이 탁해지지 않도록 늘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한 말씀과

한번 탁해지면 그것을 정화시키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기가 탁한 곳에는

발길을 들이지 말라는 것. 그것이 시편 1편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외연의 신의 길을 가는 선택을 한 이들도 산천을 다니며 기도를 하는 삶을 통하여

자기를 청결하게 함으로 신령이 좌정하게 하는데 성경에서도 성령이 좌정하도록 하는 것을

설명한다. 신이 좌정하여 신의 영역을 확장하도록 하는 것을 신불림 성령충만 거룩함에 도달함

온전한 인격이 된다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완전하심 즉 좌표인 숙명을 풀어서 물질살이에서도

맑고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누림을 이루는 것

성경의 구원의 길이나 외연의 무당으로 신내림을 받아 신불림의 길을 것이나

결국에는 자기를 완성하는 것. 자기 안의 신령(성령)의 인도를 따라 영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된다

물질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물질과 보이는 물질과의 관계를

풀어내는 길을 가는 것

사람의 체면 때문에 영이 더럽혀지는 것을 선택하느니 사람에게 미움이 되더라도

기도줄이 청결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 시편 1편의 가르침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원리가 그러하다. 사람의 눈으로 인연을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길을 가는 것이지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길이지만

그렇기 때문이 즐거운 길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내 행동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나는

너를 좋게 하기 위하여 나를 더럽히는 선택은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너에게 욕을 듣더라도 나는 나의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관계를 정리한다.

나에게 더러움이 되는 인간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나를 위한 사랑이라고,..

그래서 그만큼 인간관계가 단출해지는데 이런 길을 수지청 즉 무어라고 한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다. 청결한 사람을 추구하면 옆에 더러운 사람이 없다. 청결한 길을 갈 때는

더러운 곳을 집으로 삼는 귀신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대가 귀신을 부르기 때문에

귀신이 오는 것이고 그대가 귀신을 부른다는 것은 그대가 탐진치라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귀신 들림은 그대가 부름에 대한 답이다. 욕심이 죄를 잉태하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

그래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늘 조심하여 다루라고 나는 권한다

청결한 언어생활을 해야 귀신이 붙지 않는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

부적이니 퇴마를 달리 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최고의 주문이고 부적이다.

사람이 좋다는 것은 양심을 지킨다는 것인데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불륜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불륜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면서 자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라 착각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왜 나쁜 일이야?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을 보면...

결혼을 할 때 약속을 하는데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이 양심을 어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하여 성실하고 약속에 대하여 성실하라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말을 하지 말고 말을 내었으면 그 말을 식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세속오계의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 가르침을 실천하기가 쉬운가?

그래서 나는 세속오계를 지키기 위하여 내 힘으로 안되니까 이 계명을 지키고 산 앞선 이들의

에너지를 당겨서 내 힘으로 삼는 것이라고... 그것이 기도라고 하는 것.

하늘이 내신 십계명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 찾으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은 '유혹자가 건넨 선악과'인 것인데 그것을 모른다

그대가 경전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한다면 그대는 유혹자의 먹어라 하나님같이 된다는

꼬드낌에 귀를 판 자, 예수를 은 30냥이 파는 가룟유다가 되는 것이지.

예수의 길은 기도의 길이고 바예수의 길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다.

순서의 문제라는 것이지. 먼저 기도를 행하고 그다음에 선악의 가름을 내 삶에서 하라는 것이지.

너를 판단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신실해서 돈주머니를 맡았던 가룟유다. 가장 많은 지식을 학습하여 예수의 그룹에서 물질을 관리하였다는 것인데 물질에 예수를 넘겼다는 말이나 하와가 선악과를 땄다는 것이나 같은 의미이고

지금 그대가 경전을 파고 있으면 그대 안의 예수를 은 서른 양이 팔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기도하고 그리고 자신의 언어를 살피라. 그대가 경전을 보는 것으로 공부를 한다고 착각하지만

정작에 자기가 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살이다. 내가 하는 말을 정말 알고 하는 것일까..

그저 타성에 젖은 말은 아닌가.. 를 성찰하는 것을 말씀공부라고 한다고 나는 가르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은 하늘의 천문이 땅으로 떨어져 땅에 감추어졌기 때문에 찾으려 하는 것인데

이 이야기를 예가 쏘아 떨어트린 아홉 개의 해 이야기로도 전해온다

 

하늘에 열개의 해가 뜨서 즉 십간이 펼쳐져 있는데 천제가 열개의 해가 다 뜨서

삼라만상이 피폐해 백성이 곤고를 당해 하늘에 신원함으로 상제가 예에게 활로 쏘아 떨어트리라 했단다

그래서 명궁인 예가 아홉개의 화살로 정확하게 아홉개의 해를 쏘아 떨어트렸단다

이 신화에서 구이 족이라는 말과 주몽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한다는 것이고, 구이九夷족이란 활을 잘 쏘는 큰 사람이란다.

 

동이라는 이 이夷자가 큰 활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몽이나 예羿(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궁수의 신. 항아의 남편이며, 비극적인 영웅이었다. 《좌전》에는 이름이 이예(夷羿)로 기록되어 있다. 예(羿), 혹은 존칭의 의미로 후예(後羿)라고 불리는 이 영웅은 원래 천신이었다가 천제(天帝)의 미움을 사서 지상으로 떨어진 영웅이다. 羿는 善射者也라 志는 猶期也라 彀는 弓滿也니 滿而後發이 射之法也라 學은 謂學射라)를 기린 글자이고 동이란 봇짐을 등에 매고 길을 떠나는 사람을 그린 것인데 봇짐이라는 것이 화살을 담은 전통箭桶이라는 것이지

 

활과 살이 있어야 활을 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활로 화살을 쏘아 정보를 제공하는 이야기는 다윗과 요나단이라는 친구관계에서도 나온다

 

활의 노래란 정보를 쏘아 얻으려는 과정을 설명하는 정보다 알 수 있다

주몽이야기 예의 이야기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를 카드 한 장에 담은 것이 타로카트 0번이다 도망자이다

주몽이 도망을 하고 예가 도망을 하고 다윗이 생명을 찾아 도망을 한다

도망을 한다는 것은 살던 것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즉 살 길이 없을 때 새로운 길을 찾아 새 삶터를 찾아 옛길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길을 떠나는 것은 울타리 안에서 안일하게 살다가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이다

그런 때가 언제인가? 왜 99마리는 우리 안에서 보호받는데 한 마리는 우리 밖으로 나오게 되는가?

99마리의 세력에 밀침을 당해서거나 그 울타리가 좁아서 스스로 나왔거나 둘 중의 하나지만 전자든 후자든 그 울타리라는 그물(羅網라망)에서 나와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 되는 것이다

 

정해진 숙명을 99마리가 있는 양우리라고 한다면 정해지지 않는 운명을 울에서 벗어난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는데 다시 내 이해로 풀어낸다면

99마리는 해아래 드러나 있는 숙제 정보라면 1마리는 이 정보를 풀어야 하는 학생이라고 본다

문제지를 받은 학생이라는 것이지 타로카드 0번의 바보카드는 지고 있는 봇짐(東)에 들어있는

문제지를 풀어야 하는 길을 나선 것이다

문제도 답도 모르는 길을 나섰기에 카드 이름이 바보 Fool카드라 한다

예의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것은 해를 쏘아 떨어트려야 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듯

바보카드의 보자기 안에는 바보가 마주해서 풀어야 하는 ‘숙명’이 기록된 두루마리가

들어있다는 것이고 이 숙명의 두루마리를 풀 때 현자가 된다는 것이지.

21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자기가 바보라는 인식을 한 바보는 자기의 숙명

즉 99마리의 양이 있는 울타리를 지고(동양에서 이런 상황을 천라지망이라고 한다)

이 숙명을 풀어야 하는 원리를 찾아 나선다

 

예수가 길 잃은 양 한 마리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길’ -타로카드 10번 운명의 수레바퀴 포춘-이다

99마리가 들어있는 울타리는 숙명이고 그 숙명을 풀어야 할 문제로 인식한 ‘나’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인데 이 양에게 필요한 것은 숙명이란 문제집을 풀어서 답을 얻는 일인데

이 일을 운명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숙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운명은 이 문제의 보따리를 풀고 그 안에 들어있는 양들을

하나씩 만져觸 ‘이름’을 지어야 하는 해야 할 일인 것이다.

99마리 양에게 이름을 짓는 일이 바보가 풀어야 하는 문제이고

아담에게 동물들을 데려와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려 하셨다는 이야기다

운명이란 ‘이름을 짓는 일’이라는 것이지

운運 Destiny은 움직일 운이고 명은 목숨 명인데 목숨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운명개척이라는 것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고

생령이 된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되었던 것이고 이름을 받은 동물들은

아담이 다스리고 지키게 되는 대상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이고 이름을 부여받은 자는

이름을 준 자에게 속하게 된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너를 내 소유라고 새기는 인침이다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그대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숙명이란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한 이전부터 지금까지 영생하고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 또는

일흔 두 개로 전해온다는 야훼의 이름이다. 히브리민족에겐 72수가 합하여 9수가 되는 약속이고

동양에서도 아홉수는 약속의 수인데 9가 2개라 구이 족이라고 하기도 한다

9가 2개라는 것은 나와 나 음양의 숫자이고 합이 18이 되고 다시 9가 되어 히브리인과 동이족이

같은 수비체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지

물론 해 아래 이 수비체계가 수학의 바탕인 것은 인체의 손발가락에서 수는 출발해서다

상수는 손가락이고 하수는 발가락이다

좌우 다섯 개씩 오행을 지시하고 있다

한의학언어가 한자로 이뤄져서 어려운데 몸을 지시하는 언어를 한글로 바꾸면 쉽다

그렇게 번역해서 쓰면 오랜 기득권 먹물로 권위와 밥통을 삼은 그들의 바탕이 날아가게 되니까

한글로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종교언어도 일상언어로 바꾸면 너무나 쉬운데

마찬가지로 앵벌이 할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한글로 통역을 하지 않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무덤에 묻힌 세계를 사는 것이지

한자라는 무덤을 열고 한글로 통역이 되면 일상의 삶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천국인지

구원의 샘인지 그저 느낄 수 있다 한자는 그릇이고 울타리다 한글은 알맹이고 길이다

 

한글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한글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용이 그릇에 담겼으니 내용을 맛보려면 그릇부터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낙단루에서 세미와 모든 것이 낮아져를 같이 부르면서 한글값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발성해야 하는 것인지 발성에 따른 몸짓은 어떤 것인지를 같이하는데

소리를 이끌어내는 몸짓을 지휘라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지휘자의 손끝과 지휘봉의 방향에서

흐르는 것이라고.. 소리통을 뚫게 되면 이제 그 소리통을 통하여 나오는 소리들을

아름답게 연주하도록 훈련하는 것. 그것을 연습하는 것이 한글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숟가락이 음식맛을 모르지만 혓바닥은 음식맛을 안다

숟가락에 해당하는 한자이고 음식과 혓바닥에 해당하는 것이 한글이다 한글을 맛보기 위한 혓바닥이다

한글인 몸이 한글인 맛을 만나려면 그 가운데 있는 숟가락이나 그릇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것

한자공부는 겉공부 즉 그림공부지만 한글공부는 속공부 행동공부가 된다

 

그대의 몸을 그리고 내 몸짓을 그리네 글을 그려 움이 돋네

 

한글공부가 어려운 이유가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고 입에서 하는 말을 자기는 알고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공기를 의식하지 않고 드 내쉬듯 한글을 그렇데 쓰기 때문에 숨을 훈련해야 한다는 말과 한글발성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것인만큼 한글발성공부를 해야한다는 나의 주장은 낯선 것이다

 

한글발성공부를 위한 밑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겟세마네 소리를 훈련함으로 폐활량 강화에 있다는 것이지

폐는 넋이 오가는 집이다 즉 정신의 집이 폐라는 것이지 머리에서 수신하여 정보를 저장하는 곳을

집이라 하는 것이고 숨을 저장하는 집을 폐라고 하고 폐에 집을 짓는 숨을 넋백이라 하는 것이다

숨을 희다 즉 숨어있는 에너지다고 한다 그리고 폐를 집으로 삼는 넋 spirit에 대하여

심으로 집을 삼는 넋 soul을 피다 붉다라고 하는 것이고 혼을 불꽃이라 하는 것이지

심에는 혼이 집을 짓고 폐에는 영이 집을 짓는다

심폐기능을 보고 영혼상태를 파악하는 이유

내 글은 같은 정보의 반복이다. 숨을 반복하여 생을 유지하듯이 반복하는 글을 통하여 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대가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같은 것을 반복해라. 재미나게도 같은 것을 반복하는데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 그것을 플랙탈이라고 하는데 반복을 더해갈수록 맑고 밝고 아름다워진다

같은 소리를 하지만 그날그날 소리의 결과 맛과 색과 향기가 다르다

글을 두드리면서 같은 내용이지만 아하... 이런 의미도 담을 수 있구나 알아채게 된다

반복을 해보라 새로운 것은 한번 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같은 것을 반복하면 생기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 정말 재미난 원리 아니겠는가?

익숙해질수록 새로워진다는 이 원리가...

오늘 불러낸 모든 것이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이다

얼마나 힘 있고 아름답게 불러낼 것인가.. 반복훈련

https://youtu.be/FOUKVauGbHs?si=FHZncpNokELMQ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