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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름, 엘리야 에너지

청향고은 2024. 2. 18. 12:23

 

다시 여름

 

생각공부와 마음공부

이제 개념이 정리가 되네

 

생각은 외연에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고찰

마음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에 대한 성찰

 

내가 경전중심의 생각공부를 부차로 하고

마음중심의 말씀공부를 주로 하여왔구나

 

마음은 소리를 통하여 수업이 진행되고

생각은 경전을 통하여 학습이 이뤄진다

 

내 길이 마음공부의 길이어서 생각공부의

길을 가는 이들과 길이 달라진 것이구나

 

마음공부의 방법은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딛고 하는

것이어서 내면공부라 하고 생각공부는 텍스트를 놓고

하는 것이다.

 

엄마는 소리중심의 마음공부를 했고 경전은 부차로 하였다면

아버지는 경전중심의 생각공부를 주로 하였고 마음공부를 부차적으로 했다고 본다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는 마음을 주로 하자고 주장하고

아버지는 생각을 주로 하여야한다고 주장하여

우리집은 늘 부모님의 주장이 부딪히는 현장을 보곤 했는데

나는 여자여서인지 엄마가 주장하는 기도(마음)를 주로 하고 경전을 부로 하게 되었다

 

물론 기도중심으로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

경전중심으로 공부를 했다

 

너무나 재미난 공부여서 퐁당했는데 경전은 외부공부이고 기도는 내면공부구나

깨달음이 오고나서 순서를 기도를 선으로 하고 경전을 부로 하였다

이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서른 다섯해를 와서야

무릎을 탁 치게 된 것이지

 

그것이 내가 형제들과 친척들과 관계를 정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기도를 앞세우는 나는 기도원리를 찾아내고자 경전을 마주한 것이지 

 

엘리야의 갈멜산의 기도와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가 나에겐 화두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그 기도를 나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화두가 되어 매일 찬송을 열심히

불렀다.

 

주여 삼창 통성기도 등등은 삼대 기독교 집안이기도 하고

청교교육에 철저한 문화여서 나에겐 습된 아주익숙한 문화였다

 

원하여 길들인 습관이 아니라 가정가풍 문화가 그러하였기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물들게 된 습관인 것이지

이런 타성에 젖은 삶이 고달프고 재미가 없어서 이 습관을 객관화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고

그 의지가 엘리야보다는 예수의 기도가 나에겐 도전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예수에게 겟세마네기도를 가르쳐 주십사 극진하게 빌었던 것

 

비는 방법이 매일 찬송하고 고함지르기였다

환란날에 부르짖으라고 한 그 가르침에 의지한 것이고

그렇게 시작된 예수와 나의 사귐이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기도가 먼저다

그리고 경전공부다는 순서

마음공부를 주로 하고 생각공부는 부차적으로 한다

 

생각공부를 하다가 길을 잃게 되는 경우 내면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으니 순서를 바로 하라는 뜻이다

 

이런 개념이 생기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내 글은 나만 쓸 수 있는 것인데 나도 이런 글을 내가 쓴다는 것이 신기하다

 

마음공부를 먼저 하기때문에 마음이 당겨오는 정보를

글로 만들어내는 것 즉 생각공부가 되는 것이지

하여 나는 경전은 기도로 깨우치게 된 것을 담을 어휘력으로 쓰기위하여

참고하는 것이지 경전공부는 따로 안한다

 

이전에 성서를 제법 많이 독송하고 사경하고 하던터라 성경의 흐름은 대략알고 있다

마음공부를 이끌어가고 있기때문에 특별히 경전은 권하지 않는다

경전의 결론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고 황금율로 요약되기때문이다

 

내가 소리공부 즉 마음공부를 이끌어가는 과정을 오면서 생각공부가 닿는 곳은 선악과이고

마음공부가 닿는 곳은 생명나무라는 것이구나 내가 정말 걸어온 소리공부의 열매

그 열매를 너에게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거운 복이구나 한다

 

경전은 선악과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생명나무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선악과다

이 순서를 지키는 것이 질서를 지킨다는 것이지

경전중심의 생각공부의 길은 결국 선악과가 된다는 것

 

빛결과 늘 기도방법을 같이 하고 연구하고 실험하였다

마음공부라는 것이였구나 지금 정리하게 되지만

서른 다섯해를 여전히 기도를 앞세우고 간다

 

생각공부는 자기가 타고 온 사주팔자 숙명에 따른 취향이다.

불경을 택하든지 성경을 택하든지 사서삼경을 택하든지 그것은 자기의 선택이고

마음공부는 한길 밖에 없으니 엘리야의 기도를 봐도 한나의 기도를 봐도

다니엘의 기도를 봐도 예수의 기도를 봐도 기도는 가장 바닥에 있을 때 한다는 것이고

바닥은 죽음을 앞둔 때라는 것이지

 

죽음이란? 내가 길을 잃었을 때이다

그런 때 내면으로 돌이키라라는 것이고 내면으로 돌이키는 것이

생각공부에서 마음공부로 길을 바꾼다는 것이다

스물아홉까지 생각공부는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길이 없더라 그래서 예수에게 길을 보여달라

고함고함 질렀다 겟세마네...그렇게 기도법을 공부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서 외부의 지식에 습된 모든 잣대들을 버리게 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고

그것이 오늘까지 내 이야기를 생각으로 내 경전으로 만든다 즉 경전은 거울열기다

마음공부를 하고 그 공부의 현장을 비춰내는 경전이 내 글이고 글이 내 생각이다

 

마음공부를 하면 경전은 보너스로 따라온다

경전공부를 한다고 생명나무가 자라는 것은 아니다

생각공부인 경전중심의 과정은 외부에서 들어와 나간다

반복에 반복을 해서 새김되면 그것을 자기생각인줄 착각하게 하는 것이 선악과효과이다

 

마음공부는 출발은 미약하지만 반복에 반복을 하면 점점 소리력이 강해진다

 

내가 지금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마음공부의 열매 생명력이다

경전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내 글이라도 잊어버리지만

소리는 훈련한만큼 나의 내공이 되고 생명력이 된다

 

이것을 알기때문에 나는 너에게 마음공부 즉 겟세마네기도원리를 전한다.

이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을 공부하려면 기도원리를 배우라 한다

 

경전은 생각공부 텍스트다 닿는 곳은 선악과다

경전공부 아무리해도 생명을 만들지 못한다

그것을 일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다. 즉 생각공부는 생명나무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경전파기를 앞세우지 말고

기도파기를 앞세우라고 가르치는 것이고

그래서 경전공부를 앞세우는 이는 나의 주장을

불편해 한다. 나야 기도하고 다음에 경전이라

어떤 풀이든지 내가 풀어내는 레벨의 생각을

만나지 못했다 즉 마음공부를 먼저 하면 경전은 덤이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생각공부를 하고

죽음을 앞에 둔 이는 마음공부를 한다

죽음을 앞두면 생명을 구하게 된다

나는 스물아홉에 죽음을 앞에 두었고

그래서 겟세마네라는 기도를 잡았다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기도를 했기에

 

그래서 내 복음은 길을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치는

것이고 ‘길’이라는 것이 기도하는 질서다

기도법을 가르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소리공부 3년째 세미의 성장

 

처음만난 것이 2022년 10월

2024년 2월에 이르러 다듬어가는 소리통

 

낙단루에서 화담송광신단으로 확장

세미는 봄 소리인 보라를 익혔고

여름소리인 갈멜산에서 쌓은 번제물을..로

소리력을 확장한다

 

보라를 익힐 때 힘들었던 과정에서

보라를 딛고 갈멜산은 더 힘든 수업이다

화담마을 산기슭에서 오늘 갈멜산을 익히고

근아와 만나기로 하여 만나 태을주수련을 하고

근아의 보라부르기를 듣고 같이하기

소리력 확장하는 훈련을 산에서 하는 이 시간이

산기도이며 신불림이며 영력기루기라는 것이라고

 

종순씨는 참여하지 못했고

셋이 전심전력하는 소리가 산자락을

쩌렁쩌렁 울렸다

 

다음에 만나자 하고 헤어져 돌아오면서 나누는 이야기들

세미의 소리력

그리고 이룸고교 앞의 홍매 열그루 피는 곳에서

홍매열림을 보고

 

내일은 어디로 갈랑가

봄꽃보려가야지

 

 

 

 

 

 

 

기도원리를 먼저 배워야 그 원리를 따라 생각공부를 할 수 있다.

 

선행후사라고 하는 것인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순서를 안다는 것이고 물질세상을 살아가게 되면

물질세상의 운행원리를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다.

 

몸은 물질이고 몸이 살아가는 환경도 물질이다 숨을 쉬는 그 숨 공기도 물질이다.

 

보이는 물질과 보이지 않는 물질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보이는 물질은

보이지 않는 물질이 모여서 드러난 것이니 보이는 물질이 흩어지면 보이지 않는 물질이 되는 것이지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개념이 정리된 것이지

결국 내가 비물질이라는 낱말에 대한 개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구나

이제 아하 그렇구나 하게 되면서 그동안 희미하던 것들리 명료하게 정리가 된다는 것이지

 

보이는 상태를 물질 색계라 하고 보이지 않는 상태를 비물질 무색계 또는

영계라 하는 것인데 보이는 것은 눈에서의 정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귀에서의 정보라는 것이지

 

소리는 비물질이라는 것이지

이런 것이구나 그래서 나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궁금해하여 소리를 공부하고 있구나

믿음공부가 보이지 않는 물질을 보이지 않는 소리로 풀어가는 공부

 

믿음은 소리를 알아가면서 생기는 결과구나 하는 것이고

소망은 논리를 밝혀가면서 생기는 지혜구나 알게 되는 것이고  

사랑이란 소리와 논리가 내 생명의 에너지가 됨을 체험하는 현장공부라는 것이지

사랑은 생명을 만드는 창조작업이라는 것

그래서 물질몸에서도 섹스라는 사랑이 물질몸을 창조하는 방법인 것이어서

숭고하고 거룩하고 빛나고 찬양되어지는 하나님의 일이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물질을 모아서 보이는 물질몸으로 드러내는 일이 사랑이라면

보이는 몸을 보이지 않는 물질로 풀어내는 사랑도 반드시 있는 것이고

그것을 나는 겟세마네 기도 또는 엘리야의 기도 또는 울부짖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고

기도가 섹스다고 하는 것이지

물질몸을 창조하는 섹스도 이인일조가 되어야 가능하듯이 몸을 보이지 않는

물질로 풀어내는 과정인 기도에도 구성과 구령이 천인위일 성령불이라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기도를 안다는 것이 섹스를 안다는 것과 같은 것이고 섹스를 한다는 것이

기도를 함과 같은 것이다 탄트리즘이라는 방법으로 구도의 길을 설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섹스가 물질 몸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일이듯이 기도가

몸을 풀어 보이지 않는 물질화하는 하나님의 일이다

 

나는 몸을 창조하는 섹스를 통해 아이둘을 낳는 창조활동을 했고

그리고 그 원리를 소리에 적용하여 모음과자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창조하는 일을 한다

 

물질 몸의 창조과정이 신비이듯이 보이지 않는 물질로 풀어내는 창조과정이

기적이라고 보이는 물질 몸으로 보이지 않는 물질을 ‘소리’로 창조해가는 것을

신의 길을 간다 제자의 도다 신불림이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해진다

말에 온전하다 등등으로 설명하는데 보이는 사람은 ‘몸-아담 붉다 흙’이라고 하며

보이지 않는 물질을 ‘하나님- 뜻 빛’이다 한다 몸이 하나님의 뜻이고 빛이며

하나님이 몸이고 붉은아담인 것이지

 

내가 하나님이고 하나님에 몸이라는 등식에 이렇게 성립된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가? 를 묻는 것은 ‘몸’이고

나는 하나님이고 창조를 통하여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는 답을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물질인 하나님 영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고 하는데

믿음=물질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한 말이 풀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 몸으로 발현되시기에 물질몸으로 체험되는 것들이 기쁨이 된다는 것이지

정신승리라고 하는 것은 생각 즉 보이지 않는 물질정보로 음이라 하는 것이고

체험장이라고 하는 것이 보이는 정보로 양이라 하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드러난 정보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정보를 추론하는 것이고

그렇게 추론한 정보값이 물질몸과 같은 값이 될 때 영적이다고 한다.

영적은 보이지 않는 물질정보를 해석하는 힘이다

내가 나를 해석하는 능력이 올라갈 수록 너에게 투사하는 정보가

맑고 밝고 아름다와지게 되는 것인데 내가 나를 풀어내는 방법이

‘기도’외에는 없다는 것이 내 설명이다

 

그대가 경전을 들고 공부하는 것은 보이는 물질을 물질이 풀어보려 하는 물질살이다

글자도 보이는 물질이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유일한 물질은 ‘소리’이고

소리는 그대도 나도 알다시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보이지 않는 물질이다 

 

내면을 말하는데 내면은 ‘소리’로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 보이지 않는 물질인 소리로 나타나는 것을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빛이 있었다 말씀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이지 이제 그대도 정리가 되었기를

 

소리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고 영이라 한다고...

그래서 생령이 된지라 즉 영생은 소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불로응답하소서 응답하소서라는 간절한 기도에 오순절성령이 임하듯

엘리야의 기도에 불이 내리듯 그대도 기도에 전력을 다하면 세찬소리에 따른

열기가 온몸에 가득한 엘리야의 번제물에 불로 응답하심이 된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 이제 야 이렇게 순서가 된 것을 나는 책안에서 길을 찾으려 헤매었고,

즉 생각공부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던 경전해석에서 먹물 물질을 벗어나

빛물 소리를 가득 채움으로 이제 제대로 된 길 마음풀이에 질서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경전중심에서 기도중심으로 길을 오도록

성령이 인도하신 안내에 대하여 아!!!!!!그렇구나

 

경전에 퐁당했다가 기도로 회귀하게 한 사건을 딛고

내 공부가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공부하고 마음공부를 딛고 경전거울에

나를 비추임했구나 하는 정리가 되었고 내가 이제 발을 세운 곳이 ‘마음’이 길을 만들어

닿게 된 ‘영성-성령’공부마당에 들어섰구나 하는 정리

 

화담송광신단에 모으라고 한 신탁이 나에게는 엘리야의 갈멜산의 기도에너지였고

그 모임을 위하여 가람산을 타고 다니면서 부르짖음을 그렇게 훈련한 것이었구나

각자의 곳에서 소리를 공부하던 에너지를 모아본 소리제단쌓기

 

참 좋았던 제사이고 나만의 새로운 마당이 열리었듯이

저마다 새로운 에너지가 업데이트 된 기도제사였던 것이지

목요일 세미와 종순 나와 삼합을 해보고 토요일 세미 근아 나와 삼합을 해보면서

각자의 소리장을 파악해보는 것도 화담송광신단에서 올린 하늘소리에 대한

에이에스가 되는 것인가 한다.

 

나는 소리기도를 하고나면 늘 후기를 쓰고 그 기록을 물질로 삼는다

몸이 내놓은 소리가 글이라는 물질로 정리하는 일이 내 일이기도 하다

 

길을 잃고 헤맨 것을 허물이다 죄이다 무지다 하게 되는 것이고,

길을 찾아 바로 가게 되는 것이 진리다 빛이다 의이다 하는 것이다.

글은 보이는 물질이고 길은 보이지 않는 물질이다.

내가 여태 글에 대한 정의를 명료하게 하지 못하였다가 이번에 글이란

땅에 그린 것이니 보이는 물질이고 길이란 하늘에 피운 꽃이니 보이지 않는 물질이란 정리

 

물질과 비물질이란 언어에서 헷갈리던 것에서 정직해진 것이지

헷갈린다는 것이 정직하지 않음이다 실가닥을 나란히 할 때 가닥이

서로 걸리는 것을 헷갈린다고 하는데 이번에 오색실을 사서 땋기를 하면서

실이 길어질 수록 가닥이 헷갈리게 되구나 헷갈린다는 것을

풀어가는 것이 정직함이구나 새로운 이해

 

생각이 복잡한 것을 잡념이라 하는데 허물이라고도 한다

죄라고 한다 생각이 죄다가 되는데 그대의 생각이 집념이 되면 행동이 되는데

행동으로 되지 않는 생각은 잡념이고 그 잡념이 죄의 출발이된다

그래서 많이 생각하지말라 생각은 단순(깊게)하라고 하는 것이다

한 우물을 파라는 것

 

생각은 단순한 맑음 마음은 열열하게 밝음이 되는 훈련

생각을 물질 글에서 얻으려 하면 탁해진다 마음을 너의 목소리에서 얻으려하면 답답 갑갑해진다

그러니 글에서 길로 옮기고 너의 목소리에서 내 목소리로 주인공을 옮기면 생각은

단순하고 마음은 열열해진다는 것이 내 체험이고 그리고 나와 같이 마음을 열고

열열하게 부르짖은 도반들의 체험이다 최소한 일곱은 같은 길을 가면서

하나님을 누리는 이런 공부를 나는 하고 있다

 

빛결, 용자, 세미, 종순, 근아, 재희(또는 순희 ...또는 그 때마다의 인연)그리고 나

 

헤매는 것과 헤매지 않는 것의 역할이 있다

헤매어봐야 헤매지않음을 알 수 있다. 헤맴이 먼저이고 헤매지 않음이 그 다음이다는 것

허물을 알아야 참물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니 잘 헤맨 내가 감탄스럽고 대견하지

남들은 헤매지 않으려 남들이 정해준 길을 의심없이 따라갈 때

나는 남들이 안전하다 만든 울타리를 벗어나 길 잃은 한마리의 양이 되었고,

그렇게 헤매임에서 나만의 갈 길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지

 

헤맨다는 것은 생각이 많다 즉 잡념이 많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염려 근심 걱정이 많다는 것이지

현실을 보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 생각이라는 잡념인데 그대 생각을 잘 들여다보면

그 생각이 망상 공상 허상 ...으로 두려움이나 불안 공포라는 느낌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잡념이 불안 공포 두려움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지 그런데 재미난 것은

잡의 ㅏ를 ㅣ로 바꾼 집념은 한가지의 생각을 잡고

한우물을 파는 것이어서 불안 공포 두려움이 아니라 힘과 즐거움과 성취감을 만든다는 것이다

집념이 만드는 행동이 부르짖음일 때 말이다.

 

환난날에 부르짖으라는 것이 비책중의 비책이다

환난을 당하면 길은 부르짖는 것외엔 없다.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더 이상 잡념이 사라지고 살아야겠다는 위기의식만 가동된다

위기의식이 만드는 것이 부르짖음이다 매일 죽노라고 하는 죽음의 의식이 부르짖음이다

그대의 죽음이 무엇인가? 위기를 인식할 때의 두려움 공포 불안이지 않나?

하루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 선물을 열어보는 것을 나는 위기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하루라는 선물을 나는 어떻게 쓰야 창조가 될까라는 것을 깨어있는 의식이라 하거나

위기관리대처능력이라고 하거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점이 더해지면 방향성이 밖으로 팽창하여 망상 공상 허상 상상 등등의 잡념이 되고

점을 베어내는 울부짖음의 힘이 한 우물을 파는 길이 되어 실상 현실 사실을 마주하게 한다

잡에서 점을 떼어 집에 되게 하는 것을 나는 울부짖음이라 하는데 엘리야의 하나님이란

가스펠이 잡을 집으로 만드는데 정말 좋은 기도주문이더라

보라 하나님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기도주문이지만 엘리야의 하나님은

불말과 불수레 오순절성령 오화에너지를 가동시키는 주문임으로 소리를 전력으로 해서

하늘 불이 몸에서 불태우리를 해야 한다는 것

 

어제 불태우리를 하는 과정에서 근아의 체험이 나왔다

물로 채운 엘리야의 제단에 불태우리가 일어나듯이

몸에서도 그러한 체험이 된다는 것

 

몸이 용광로 광천수가 된다는 것이지

예수와 도마가 같은 광천수를 마시듯이 화담 꽃물에 송광 솔빛빛나도록

울림하는 저마다의 소리샘이 더해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에너지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면 님이되는 것처럼

밖으로 향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지금 여기 나의 숨소리에 집념하면

그것이 만드는 것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치게 하는 한 우물을 파는 길이 된다는 것이고

한 우물을 파는 현상을 한자로 그린 것이 빌 공이다.

 

구멍을 뚫는 일 샘을 파는 일이다

한자를 들여다보면 늘 감탄하게 될 때는 한자를 내 몸이 체험하였을 때이다

한자가 물질이고 글자들은 물질이다

물질에 욕심을 낸다는 물질은 ‘돈’이라는 몸을 유지하려고 하는 유통의 ‘화폐’가 아니라

땅위에 그린 글자를 알고자 하는 의지다

땅위를 기는 것을 성서에선 뱀에게 준 벌이라 했다.

물질 글은 땅에 속한 것이고 저주를 받았다고 했는데 저주란 낮은 주파수를 말하고

땅을 구르는 파동을 의미한다 뱀은 땅을 기고 그래서 글자를 그리는 곳이 되었다

 

예수의 행적에서 유일하게 땅에 무엇인가 글적인 이야기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군중들에게 예수의 생각을 건네기전에 한 것이다 땅에 무엇인가 그렸다 지움이라는 것이

오늘 그대와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

 

간음이란 물질 몸이 물질 몸을 만나 에너지를 융합하여 생명을 일구는 창조원리를 어긋난 일이다

섹스는 생명창조라는 원리를 설명하는 하나님의 나투심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에 의해 심판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대와 나의 몸에서 추구하는 생명창조의 의지가 섹스라는 에너지로 발현이 되는데

이 에너지를 어디에 썼느냐의 문제에서 예수는 너에게 먼저 투사하지말고

자기에게로 돌이키라고 가르쳐 주려고 섹스는 땅의 에너지라는 것을 그려주고

그 에너지를 끌어올릴 때 눈에 보이는 물질인 너에게 투사하지말고 보이지 않는 물질인

자기정체성 소리 생명창조에 먼저 투자하라는 것이 예수의 권면이다는 것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즉 섹스로 투사할 것인가 소리로 투사할 것인가의

선택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그것은 자기의 선택이고 선택에 따른 열매도 자기 몫이라는 것이지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개념이 정의 되니 공부가 한결 쉬워진다

 

빌 공이다 알때와 구멍혈穴과 장인공工이구나 알 때와 장인공工이

여와복희의 곡자와 직자라는 것을 알 때 생기는 이해가 다르다 즉 디테일해진다는 것이고 정보를

해독하는 과정이 섬세하여질 때 엘리야가 호렙산 동굴에서의 세미한 음성으로 들리는 것이지

정보가 깊어지는 것은 소리에서 소리자리가 발바닥 용천혈까지 내려갈 때이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에너지를 지기가 하고 그 지기를 글에너지라 하는 것이고

죽은 것을 끌어올려 살아나게 한다고 한다는 것

맨발걷기가 유행하는 것은 외연에서는 어싱함으로 몸의 활성산소를 흙으로 투사하는 것으로 알지만

나는 걷기를 흙에 새겨진 정보를 당겨올려 생명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본다

걸으면 지기가 용천혈을 타고 위로 오름하는데 그것을 잠룡이 현룡하고

비룡하여 항룡이 된다고 한다 지기는 올라오고 천기는 하강하여 가슴에서 만나는 것

 

많이 걷는 것은 지기를 당겨올려 머리를 두드려 열려 함이고 울부짖는 것은

천기를 당겨내려 발바닥을 열려함이다

훔치훔치 태을주를 발바닥을 두드리면서 하게 되는 것이

천기를 용천으로 당겨내리려 하는 것이지

 

태을주는 정말 힘있고 아름답다 언제 해도 에너지가 넘치는 주문이다

태을주는 발바닥을 치면서 해야 가장 잘 된다는 것이 내가 해본 체험이다

태을천은 발바닥이다 상원군은 손이다 그렇게 발바닥을 두드리며

훔치 훔치를 노래해봐라 얼마나 흥이일고 기운이 샘솟는지..

 

남이 만든 길에서 벗어나면 다른 길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내가 만드는 길은 나만의 새로운 길이 된다 이것을 일러 자기창조라고 하는 것

 

남이 만든 길을 따라가는 것을 넓은 길이라고 한다 물질 글을 따라가는 것을

사망의 길이라 넓은 길이라 한다는 것이지

내가 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좁은 길이라 한다

좁은 문 좁은 길은 깊이 파들어가는 한 길이고 한 우물을 파는 소릿길이다

 

그리고 헤맨다고 하는데 ‘몸’은 절대로 헤맬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이고

헤매는 영역은 ‘생각’이라는 것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도 된다

 

몸은 몸의 질서를 따른다. 이것을 벗어나는 ‘몸’은 없다

몸의 질서를 벗어나는 것은 ‘생각’이라는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을

성서에서는 ‘이름’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름을 짓는 자 그가 여호와다는 문장은 아담에게 이름짓는 능력을 부여하신 것으로 나타나니

아담이 여호와다는 이해가 가능하고 아담에게 동물을 데리고 와서 어떻게 이름을 짓는가 보려 하셨다고

한 것에서 여호와의 능력이 아담에게 주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담에게 이름짓는 능력을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고 하는 것에서

생령 즉 영생이라는 개념은 ‘이름을 짓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생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름을 짓는 자’ 이름에 들어있는 생령을 아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영생 생령

성령 영성..

어순만 바꾼 것이다

 

오늘 내가 깨우침을 얻는 것이 영생이 생령이고

생령은 ‘이름’이라는 것인데 이 이름을 짓는 자를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는 것으로 나는 자기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해석을 한다

그래서 소리를 하고 그 소리(생기)의 끝에 서명을 하는 것이

자기 이름을 부름으로 생령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소리의 주인은 누구누구다는 인을 치는 것이 소리를 하고 자기이름을

세번 불러 새김하는 것이라고

글로만 전해오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기전에 길인 몸에 부여받은

내 이름을 지극정성으로 부르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지

부처님의 이름을 연호함보다 살아있는 몸에 주신 면류관인 내 이름을

극진하게 부르라는 것이지 이것이 생령이다

생령이 영생이다

 

몸에게 주신 선물이 ‘이름’이다 이름을 부르는 자 영생얻는다

구원얻는다고 했다 누구이름? 살아있는 몸에게 주신 이름 그대이름 내 이름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무당이었다

물론 무당이라는 낱말에 내가 투사한 이미지나 생각이 현장파악을 통한 것이 아니라

세뇌된 주입된 지식에 의한 것이어서 부정적인 것으로 투사를 하게 되었던 것인데

내 길을 마주하게 되면서 즉 숙명인 사주팔자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보면서

아하 나라는 존재값은 이러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구나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얼굴을 보지 못하는 존재다 물론 거울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거울에 투사하는 나는 내가 보고싶은 ‘나’로 내가 나를 꾸며낸 허상이라는 것이지

 

나라는 존재를 비추는 실상을 ‘숙명’이라고 하는데 숙명을 사주팔자라고 한다는 것이고

이 숙명을 해석하는 도구가 운명이라고 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숙명이 반 운명이 반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었다

 

물질 몸이 이 땅에 태어남을 출발로 년월일시라는 자리가 주어진다

자기자리라고 하는 것이지 출발자리. 정해진 자리를 숙명이라 하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가는 삶을 운명이라 하는 것인데

몸을 지칭하는 것이 ‘이름’이라는 것이지

 

사주팔자란 숙명위를 운명이 걸어가는 것이 나라는 고유한 생명이다

 

내가 헤맨 것은 내가 출발한 자리 가야하는 여정인 사주팔자 사원의 네 기둥이라는

주어진 정보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이름값을 고지받지 못하고

외연의 정보에 세뇌되고 학습되고 반복되어 내 길은 묻힌 채 종교의 창시자들이

말하는 남의 길을 다녔기때문이다

 

살부살조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된 것이 내게 주어진 숙명이 사주팔자

년월일시라는 것을 이해하고나서 부처든 예수든 누구든 다 버리게 되더라

내가 나를 마주한다는 것은 일가친척아비의 집을 떠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고

일가친척아비의 집이란 내 출발자리가 아닌 남이 정해준 자리를 걷어내고

내 출발자리에 내가 선다는 것이지

 

자기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숙명과 운명을 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예순 다섯이 되는 올해 그간 내 공부의 길을 살펴보면서

헤매던 세월과 길을 찾아 너가 주입한 너의 이야기가 숲을 이룬 길에서

내 자리를 찾으려 헤치내던 과정과 그리고 숙명을 마주하던 시절

즉 내 사주팔자를 마주하여 공부하면서 운명을 개척하던 시절

 

나는 내 운명인 이름을 바꿈으로 길들여졌던 낡은 부대를 새부대로 바꾸었다

 

나의 여정을 보면 내가 신기하다 어떻게 예순 넷이 되던해에 개명을 하라는 신탁이 들어오고

개명을 하게 되었던 것이 그 이름바꿈을 통해 내가 ‘길’을 새롭게 새부대에

새술을 담을 에너지로 쓰고 있구나 하는 것

 

햇살고를 윤

달빛영롱할 영

 

어제 화담송광신단에서 수업을 마치고 이름불러 할렐루야 아멘

 

나를 만나면 늘 이름을 부르자

 

어제 채순자여사님 여소원 여사님 만나 반가웠음

나더러 신기가 많다고 하는데 활기가 넘친다이지 늘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도록 고함을 지르는 산기도를 다니기 때문이다

 

요즘 내 언어가 ‘산기도’다닌다 는 것에 대한 것이다

산기도는 산에게서 하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기도라는 것

산을 울려내도록 쩌렁쩌렁하게 하는 소리침

 

세미와 삼년째 공부인데 소릿통을 들어보면 흠 잘 기루고 있군 한다

종순씨와 근아가 보라 하나님은을 통해 소리근력을 뿌리내리고 있다면

세미는 갈멜산으로 불 용광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지

 

매일 이렇게 살아있는 기도로 영생을 누리고 즐기고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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