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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이 가고 갑진년이 오고

청향고은 2024. 2. 9. 16:18

 

모든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내면으로 돌이키라고 하는데 다들 여행을 떠나거나 고대유적지

들이나 유명한 사찰 성당 교회.... 들을 순례한다.

 

외연에 담아둔 뜻, 파편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행위이기에 내면으로 돌이키기 위한 마중물이라 나는 이해한다.

생명이라는 원리가 그렇더라 행동하고 생각한다.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평가가 나온다라는 것이고

현대말로 하자면 즉 감정이 발화되고 나야 그다음에 이성이 가동한다.

나는 내가 극히 이성적인 사유자인 줄 최근까지 착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벗삼아 글을 연인삼아 살아오는 훈련을 한 터라 이성적인 존재라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가

올해 내가 마주하게 된 것은 내 사유장은 내 이성이라고 착각하게 하던 지식, 어린 시절 책에 갇혀 살면서

책벌레로 먹물을 몸에 문신처럼 새긴 습관, 먹물을 희석시키는 과정을 거친 것이구나..

그래서 글을 무수하게 쓰면서 그간 내 세뇌된 지식을 맑게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고

먹물희석작업이 글을 씀이라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열정적으로 꾸준하게 실천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겟세마네기도에너지구나 하는 것이다.

즉 내가 내 인생의 바닥에서 기도한 일여소원 사사명시 예수를 알기 원합니다라는 서원을 올리고

예수와 손 잡고 온 길이 먹물인생을 샘물 삶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는 것이지. 그 세월이 서른다섯 해.

 

좁은 문(앙드레 지드)을 생의 첫 책으로 먹물에 들어선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 있던 낡은 책이었는데

그 책을 내가 몇 살 때 봤을까.. 열 살이 되던 해였을까. 돌아보면 나의 열 살 1970년은 아버지의 회심과

나의 좁은 문과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정보가 유입된 시기였고 그 시절인연, 좁은 문이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고 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좁은 문이 아니라는 것을 엊그제 화요일 세미와 낙단루에서 보라 하나님은 을 세 번을 부르게 되면서

문정열門(文)精烈이라는 이름인연을 설명하게 되면서 그리고 와이캔케이캐라마이신이라는 주문을 하게 되면서

1970년 나의 봉인이 이제는 풀어진 것이구나 이해하게 되더라.

아버지의 회심에 따른 가족들의 새로운 에너지로의 변환, 그 변환에 따른 나의 길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라는

소설을 딛고 속세를 살아가야 하는 적응유전자가 봉인이 되었던 것이고,

'영생유전자'가 발현됨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물괴, 사탄, 루시퍼, 유혹자가

먹물로 이뤄진 땅을 기는 문자라는 것이고 이것을 통과하는 것이 좁은 문을 지나가는 것이었구나

이제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

 

서유기의 경전이 강을 지날 때 물에 빠져 그 경전에 새겨진 글자들이 물에 씻겨져 흰 종이만 남게 되는 결론.

그리고 모든 경전들의 가르침이나 성장기소설이나 영화나 문화 예술들의 주제가 남에게서 벗어나는 것

자기로 설 것이라는 이 닿음은 물괴를 만들어 이 세상을 덮은 이 속세의 기운인 먹물을 씻어내는 과정을 좁은 문,

좁은 길은 협착하고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신 그 말씀이 좁은 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좁은 문, 또는 좁은 길이라는 실재가 바로 먹물로 이뤄진 문자라는 것을 이제 마주하게 된 것이지

108개의 미혹을 통과하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통과하여 비로소 경전을 얻게 되는 과정이 있는데

이 경전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물에 퐁당(심청이 인당수에 풍덩)하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먹물들이 모두 물에 희석되어 사라지게 되는 과정이 있고, 흰 종이만 남는 것,

본성자체가 불성, 등정각, 공이라는 것이 설명되는데 그 불성에서 연꽃에 실려 심청이가 올라오는 과정이

법화경의 이야기이고, 예수의 부활승천이야기가 되는데 '좁은 문'을 통과하게 되면 경전에 닿고

그 경전이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간 먹물로 문신된 먹물을 씻어내는 물에 풍덩 물세례,

인당수심청..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고 이 물세례과정을 심청이 용궁에서 선도수행을 한 것으로 설명하고

예수에게서는 지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설명이 되며 법화경에서는 땅에서

다보탑이 허공으로 솟아올라와 부처님의 법화를 듣는다는 것으로 나온다.

문신처럼 새 져진 먹물을 나는 이성인줄 알았더라

 

그런데 먹물희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문장지식을 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는 것이고

아는 척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더라. 즉 지식에도 뿌리가 있는데 뿌리 없는 지식이 선악과라고 하는 것이고

괴물이나 물괴 에고.. 허상 허물이라고 한다는 것. 그간 아는 척하는 오지랖을 부리면서 살아왔고

어느 순간 내가 너를 위하여라고 하는 이 언어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고

사탄의 언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더라. 내가 나를 위하여 너를 거울로 삼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이지.

너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는 것 그래서 본디 경은 鏡(거울 경) 八咫를 비춰보는 거울이라 하였다.

 

거울이라는 말과 팔지라는 말이 같은 것이다. 거울은 얼굴을 비추는 것이라면 팔지는 몸짓을 비추임하는 것이고

팔찌 bracelet(브리슬릿, brace는 팔(arm)을 하는 라틴어 bracchium의 복수형,

let동사는 "...허락하다, 허용하다"라는 을 가진 동사 )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팔목에 채워 맥박을 체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 팔찌와 시계의 용도를 모르고 값비싼 팔찌니 시계를 팔지경으로 차고 다니게 되는데

실제로 시계나 팔찌가 비싸다고 핏돌이 가 빛나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고,

핏돌이 가 건강하고 밝고 아름다운 이들은 명품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스스로가 명품이고 가치가 높기 때문에 그러한 치장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대의 허영이 명품을 추구하게 하지만 그대의 성령은 자기 자신을 명품으로 인식하는 체계를 가동하기 때문에

나에게 부속되는 모든 것이 명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무엇에서 명품이 되는가?

그대의 이름의 품격을 스스로가 높여갈 때다. 名品인데 네이밍벨류라고 한다.

그대의 이름값을 그대가 스토리텔링하는 만큼 그대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이 소리를 하는 이에게 항상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훈련을 같이 한다.

이름을 부르는 자 그가 하나님이고 상천하늘에 거하시는 뇌성보화천존 옥청진황이라고

 

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 너라는 대상이고 팔지가 무엇이냐 물으면 일본 신화전해지는

미쿠사노카무다카라(삼종신기) 중 하나. 야타의 거울. 야타노카가미가 돌거울이라고도 하고

쇠거울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불명이고 재작년대도 불명.

하지만 아무래도 청동 재질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서기≫ 권1 신대(神代) 상 7단의 본문에 따르면 스사노오가 천상계 타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깽판을 치다가 아마테라스를 다치게 하자, 아마테라스는 동굴에 들어가 돌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세상에는 태양이 비치질 않는 재앙이 일어났다.

신들은 어떻게 해야 아마테라스를 밖으로 나오게 할까 궁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노카구산(天香山)에서 나무를 뽑아 붉은 옥으로 만든 방울을 달고,

가운데 가지에 야카노카가미를 달고 천을 걸며 요란스럽게 꾸몄다.

그리고 신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소란을 떨었다.

또한 아메노우즈메(天鈿女命)는 위로하는 춤을 추었다.

아마테라스는 '내가 여기에 숨었으니 하계에는 기나긴 밤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왜 아메노우즈메는 기뻐하며 춤을 추고 있을까?' 생각하며 의아하게 여겨서

슬쩍 돌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이때 타치카라오(手力雄神)는 돌문 옆에서 숨어있다가

아마테라스의 손을 잡고 재빨리 문 밖으로 끄집어내었고,

다른 신들이 문에 금줄을 걸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야타노카가미(八咫鏡)란 이름은 '8아타의 거울'이란 뜻이다.

八(야)咫(아타) 노鏡(카가미)를 줄여서 '야타노카가미'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원래는 특별히 큰 청동거울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였던 듯하나,

후에는 이세 신궁 내궁에서 모시는 '그 거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여기서 '아타(咫)'란 글자는 8치(0.8척)를 가리킨다.

咫란 한자는 한국 한자음으로는 '지'라고 읽는다. 2세기 중국 후한 시절의 서적 설문해자

지(咫)를 부인네들의 손길이로 주척(周尺) 8치라고 설명했다.

주척이란 중국 주나라에서 사용하던 길이 단위 (尺)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척을 중국 한나라의 척과 같다고 간주해서 1척이 23 cm라고 본다.

이 기준에 따르면 1지는 23 ×0.8 = 18.4 (cm)가 된다.

 

그런데 설문해자가 지(咫)를 설명하며 쓴 주척(周尺)이란 단어를 일본에서 '주나라의 척'이 아니라

'원둘레(周)를 재는 척'이란 뜻으로 해석했다는 설이 있다. 지름 1척짜리 원의 둘레가 4 지라고 한다.

원주율이 약 3.14인데, 직경 1척짜리 거울의 둘레가 4지(32치 = 3.2척)라면,

의 직경과 둘레의 비가 1:3.2로 실제 원주율의 근삿값이 된다.

이 설을 따르면 야타노카가미, 즉 '둘레가 8아타인 거울'이란 명칭은

지름 2척(약 46 cm) 짜리 둥근 거울을 가리킨다.

 

그리고 일본에서 정말로 딱 이 정도 크기인 청동거울이 발굴되었다.

1965년 일본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히라바루(平原) 유적의 고분군에서 지름이 46.5 cm에 달하는

대형 청동거울이 나온 것이다. 대략 3세기 일본 야요이 시대 후기에 제작된 물건이라고 추측한다.

거울의 뒷면에는 동심원 여러 개와 8머리 꽃 같은 무늬가 있는데,

당시 중국 후한에서 유행하던 청동거울의 형상을 따라 고대 일본인들이 히라바루

유적의 거울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처음에는 청동거울을 제작할 기술이 없었으나,

한반도나 중국에서 들어온 동경을 접한 이후로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제작한 듯하다.

 

양식이 거의 같은 거울이 중국은 물론 한반도의 낙랑고분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연호문경(連弧文鏡)이라고 부름이 보통이다.

거울 뒷면에 활 모양 호(弧)가 연이어서 문양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거울을 일본에서는 내행화문경(内行花文鏡), 즉 안쪽에 꽃무늬가 있는 거울이라고 부른다.

히라바루 유적의 거울은 연호문경들 중에서도 유독 크기 때문에 주목받는데,

다른 발굴품과 함께 2006년 '후쿠오카현 히라바루 방형주구묘 출토품(福岡県平原方形周溝墓出土品)'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내행화문경 자체는 일반명사이기 때문에 해당

거울을 '국보 내행화문경' 또는 '히라바루 유적의 내행화문경' 등으로 부르곤 한다.

 

팔지경이 팔찌와 시계로 일상의 도구가 되어서 누구나 착용하지만 의미를 알고 착용하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지. 에너지가 부여된 특별한 계급(제사장이나 왕)들의 부적이거나

주문용으로 쓰임하던 것들이 자본주의가 되고 계급문화의 특성인 장신구가 계급을 허물게 되어

누구나 만들어 착용하거나 싼값으로 사서 차게 되는 시대가 되었고 값이 비싸고 싸고의 차이만 있을 뿐

기능이나 기본 에너지값은 같다는 것에서 그 가치를 알고 착용을 하는 것과 가치를 모르고

착용하는 가에 따라 돼지목에 진주목걸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대가 상징을 알고 쓸 때는 가치가 아름답게 발현되지만

모르고 착용할 때는 돼지목에 진주목걸이가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요즘의 명품의 추세가 명품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네이밍을 감추게 된다는 것이지.

 

팔찌를 차면서 사주팔자를 누가 알려고 하고 시계를 차면서 천문사신도를 그린 것인지를 알기나 하는가 말이다.

반지가 가진 에너지나 목걸이가 가진 에너지를 안다면 반지를 넷째 손가락에 끼는 이유도 안다면...

목걸이에 알을 앞에 무게추로 달게 되는 이유도 안다면,... 값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의미가 가게 된다는 것이지. 찾아봐라..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들이

부적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 장신구를 대하는 그대의 눈이 새로워질 것이다.

 

외연으로 나돌다가 답이 없음을 알게 되는 오지라퍼.. 그렇게 사람들이 지은 건물들을 조성한 풍경들을

모아든 기록들을 순례하는 일을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데 인간관계에 적용해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일을

미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된다. 자기를 마주하기 전에 외연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는데,

사람이 결혼을 해도 자기가 살던 곳을 한 바퀴 돌아서 떠나고,

상喪이 나가도 자기가 살던 곳을 한 바퀴 돌아서 나가고 그리고 임사체험자들의 같은 이야기에 태어나서

죽음의 순간에 닿을 때까지 찰나적으로 인생이 지나간다고 했다.

한 바퀴 두르고 나간다는 것이 周走. 돌다는 것이 360도를 돈다가 되고 한자에서는 口라고 하게 되는데

고리라고 한다는 것이 팔목고리 손가락고리 발목고리.. 고리를 環이라고 하는 것이고.

 

반지를 지환指環이라고 하는 것이지. 육십갑자를 지내면 한 바퀴를 돌았다고 회갑이라고 하는데

인생사 육십 바퀴를 돌아보면 한 바퀴이고 다시 출발하게 될 때는 되감기 바퀴를 돈다고 하게 되는데

살아온 삶의 여정을 되짚어간다는 의미로 이때를 내면으로 돌이킨다고 하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던 길을 돌아서 살아온 길을 되짚어가는 것. 廻來走

 

일체유심조壹軆籲諶肇

 

壹, 한 일 -> 士冖豆

軆, 몸 신-> 身曲豆

籲, 부르짖을 유-> 籥(竹人一口口口冊(侖을 벌린 자리에 口가 셋이 들어가 있다)頁

諶, 믿을, 참 심-> 言甚

肇, '비롯할 조'라는 한자로, '비롯하다'를 뜻한다, 肇 [...]始也。. ->

지게 호(戶)와 또 우(又)로 구성되어, 손으로 문을 열어젖히는 모습에서 '열다'의 뜻을 그렸고,

이로부터 열다, 개척하다, 통하다, 알리다와 聿

 

외연에서 회자되는 일체유심조는 일체유심조란 한자로 풀이하면 一(한 일) 切(온통 체) 唯(오직 유) 心(마음 심) 造(지을 조)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라는 말로 초기 대승불교의 핵심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나에게는 식상한 정보여서 나만의 한자를 가져와 일체유심조를 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것이지.

외연의 일체유심조에 대하여 설명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 한자가 궁금한 이들은 그들의 정보를 참고하면 되고

나는 내가 실행하고 있는 일상을 통하여 나의 일체유심조를 나의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이고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딛고 너도 너의 일체유심조를 만들어보라고 권하려는 것이지

 

籲라는 한자가 부르짖을 이라는 것이라고 해서 부르짖다와 겟세마네를 같은 의미로 쓰는 나로서는

여태 겟세마네라는 언어를 통하여 소리원리를 설명했는데 이제 한자의 부르짖을 籲를 가져와

예수의 복음을 풀어내려는 것이지.

 

복음이라는 것도 종교에서 왜곡이 되어 있으니 예수가 설명하는 가스펠은

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는 현장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증명하고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이지.

복음은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 영생수를 스스로 파서 목이 갈한 자들이 마시는 것이라고..

청춘의 샘을 스스로 파서 길어 마시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 복음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

 

가스펠 Go/spel(綴字)이라는 것이고 철자를 하기 위해서는 뱃심이 만들어내는 힘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

철자하기라는 것은 알파벳 만들기라는 것이지. 숨소리가 언어가 되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가스펠이라는 것.

생각해 봐라 속이 답답하고 갑갑할 때 속 시원해지는 원리를 알게 되어 속심을 토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이고

좋은 소식이지 않을까 변비환자에게 복음은 쾌변 할 수 있는 방법이듯이..

 

사람이 속이 답답해지고 갑갑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예수는 알아서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스펠을 전한 것이지. 예수는 말 Logos이 어떤 것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의 원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서 말/씀을 예수에게서 배우기 위해서 예수의 복음을 따르게 되는 것이라는

내가 만나서 같이 공부하게 된 예수의 복음이다. 말 Word/Logos을 어떻게 마주하고 배우고 익혀서 쓰야 답답하거나

갑갑하지 않고 속 시원하고 늘 샘물이 안에서 넘쳐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지.

내가 예수에게서 배운 것이고 배우는 것이고 배울 것이라고 안다.

 

이 공부를 서른다섯 해를 해오면서 언어의 쓰임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언어에 갇혔던 의식에서 언어를

넘어서는 의식이 되면서 모든 문제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말에 대한 성찰이

점차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지. 모르고 하던 말에서 말을 배우고 쓰임을 배우고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훈련하는 공부를 통하여 말에 온전한 의인이 되고자 하는 길. 그간 나름대로 의인의 길을 왔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죄罪의 길을 뚫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른다섯 해 허물에 대하여를 배우고

올해 2024년부터 의義에 대하여를 공부할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한 것이라는 것이지.

 

죄라고 하게 될 때와 허물이라고 하게 될 때 그대가 인식하는 느낌은 다르지 않을까?

허물은 욕심의 다른 말이다. 그에 대하여 의는 샘물이고 양심의 다른 말이다.

허물이나 샘물에 '물 Water, 水'이고 水는 기체 액체 고체로 온도에 따라 변형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허물은 탁한 물로 마실 수 없는 물이고 샘물은 맑은 물로 마실 수 있는 물이다.

그대는 그대가 마시는 물인데 그 물이 허물인지 샘물인지는 그대는 모르고 하지만 그대의 마신 물이 허물이면

욕심으로 쌓이고 샘물이면 양심으로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양심대로 산다는 것이 십계명을 지키고 산다는 것이고, 십계명은 '황금률'로 압축되고

그리고 '용서'로 압축이 된다는 것이지. 용서 Forgive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말이 딛고 있는 '글'을 먼저 알아야 하고 글은 먹물로 기록된 것이고

그 먹물을 샘물로 희석시키는 과정을 '죄에 대하여'라고 한다는 것이고

이제 말과 쓰임에 대하여 기초적인 공부가 되었으므로 그 기초를 딛고 '의'에 대하여를 배우자 하시는 것이지.

 

죄에 대하여의 저울이 '양심'으로 내가 그간 어진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십계명을 품고 지키고자 하는 의미를 양심이라 하는 것이다. 글을 두드리다가 걷기를 나섰다.

봉무동 길에서 종순 씨랑 만나 가람산으로 가는데 벤치에서 소리 한 자락을 할까나 했더니

선점한 이들이 있어서 화담마을까지 가서 그곳에서 소리 지르기를 하는데 종순 씨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그럼 평상 있는데 가서 앉아서 하자 하고 솔나무를 빙 둘러낸 자리로 갔다.

화담마을로 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소리를 훈련하곤 해서 이 자리에도 내 주파수와 파동을 놓았던 자리라

둘이 앉아서 소리훈련과 이야기를 겸해가면서 하고 있는데

남자 두 분이 오셔서 자기들이 단전훈련하는 자리라고 하시더라.

 

30분 정도씩 단전호흡을 하신다고 3월 13일이 되면 이 산을 다닌 지 1년이 되는데

이 산이 정말 좋은 에너지라고 하시더라 가람산의 60% 이상이 소나무로 되어있고

소나무의 껍질이 터지는 이유가 산소를 터져내어서라고 하는데 소나무가 산소를 내뿜는 시간이 해가 올라오면 시작된단다

소나무가 해가 올라오면 산소를 내놓아 너무나 좋은 곳이라고 하시더라.

 

우리와 말이 오가면서 내가 너스레를 잘 떨어내니 즐거운 이야기가 오가지.

그리고 우리가 이 자리 선점했으니 오늘은 우리 자리라고 단전호흡수업은 여기서는 안 되겠네요.. 했다.

그렇게 두 분은 내일 송광사로 가신다고 해서 송광사가 달리 송광사나 솔나무가 햇살에 반짝이는 것이 송광이고

그런 곳에 건물을 지은 것이 절이지 않나. 굳이 전남 순천의 송광사라는 절을 갈 필요가 없이 지금 이 자리

솔나무로 동그랗게 동심원 고리를 만든 자리 앞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이렇게 명당에서 소리 한 자락 하는 것이 바로 송광사라고..詩라는 것이 절에서 읊조리는 파동이라고 하는 것이지..

내가 어디에 막히겠는가.. 한 분은 검단에서 오시고 한 분은 이시아 쪽에서 오시는 것인데 대구가 고향이라고 하시더라.

 

두 분 다 졸혼을 하시고 나서 자유롭게 사신다고 하시는데 이시아 쪽에 계신다는 분은 근처에서

칼국수집을 하신다고 언제 한번 오시면 맛있는 칼국수 대접하고 노래방도 같이하고.. 하자고 하시는데

노래방은 내가 싫어하는 곳이라 여기서 고함을 지르는 것이 훨씬 더 맛있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하고

검단동에서 오시는 분은 얼굴에 점을 빼신 모양으로 파스를 네 군데 붙이고 계시더라.

풍수공부를 오랫동안 하시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분들은 단전호흡을 수련하신다고 하시길래

우리는 소리선을 수련한다고 했다. 우리가 소리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분들이야 일 년을 댕기신 것이지만 

나는 5년을 헤아려가는 것이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매일 오는 것이라고.. 나야 뭐 바람 따라오는 것이지만..

 

그렇게 우리 차지가 되고 소리를 매겨가는데 오늘은 소리가 정말 잘 나가더라.

종순 씨도 이제 소릿꾼이 되어 소리의 흐름을 파악하는 영성인이 되어서 그날그날의 기운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공부.

오늘 이론공부는 영기와 혼기와 육기 그리고 명절날 우주에 있는 귀신들이 총출동하기 때문에 소리를 매기는 이들,

즉 영성인들은 이 귀기들이 설치는 시기에 결계를 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엄마 생전에 늘 그렇게 말했던 것을

나도 말하게 되더라. 영성인은 명절에 평소보다 아홉 배는 더 일을 해야 한다고 오늘 이렇게 소리를 세게 매기는 이유가

올 해의 에너지가 청룡에너지임으로 그 에너지가 무탈하게 안착하도록 가이드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계묘가 나가고 갑진이 들어오는 에너지교차가 되는 시기에 불협화음 내지 않고 순조롭게 바통터치를 하도록 하는 것에

먼저 내가 순조롭고 그다음에 가족이 순조롭게 가 되는 것이 순서라고..

 

종순 씨와 같이 소리 매기는데 정말 신나게 잘 나가더라.

내 이야기도 하고 무묘앙에오 이야기도 하고 종순 씨도 단전호흡을 해봤다가 나와 소리선을 하게 되면서

단전수련은 졸업하게 된 것이고, 소리를 하다 보면 할수록 달라지는 체험이 신기하기도 하다는 것이지.

서른 다섯 해를 하고 있는 나도 늘 새로운데... 리다양과 만나 소리를 섞어보고 나서 그리고 나름대로 소리력을

갱신하고 종순 씨와 소리를 매겨본 오늘.. 나도 놀랍고 종순 씨도 놀라고.. 소리를 하고 가족 이름 한 사람씩 부르고

할렐루야 하기를 함으로 계묘 보내기를 하는 것. 그렇게 그렇게 즐거운 설날 이브를 했다.

오늘 이 에너지를 몰아서 내일도 한 번 놀아보자 갑진 맞이하기를 하자는 것인데 내일은 내일이니까...

그렇게 돌아오는 길이 즐겁지. 어제 낙단루에서 부른 모든 것이 낮아져를 설선물로 인연들에게 띄우고

나도 다시 듣기를 하면서 내가 부르지만 정말 잘 부르네.. 하고 감탄하기.

 

참 어제 율하를 갔다가 낙단루를 거쳐 기상청을 들러 돌아오는 길에 경자와 딸 문주 양을 만났다

잠깐 스쳐가는 것. 사탕을 건네고 왔는데 오후에 경자의 전화. 딸이 나를 본 후기를 톡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전화로 해야겠다고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나의 인상을 보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 같다고 했다고..

해서 우와 그렇게 보았다는 말이지.. 나는 늘 까불까불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하는데.. 하였더라.

 

오늘 종순 씨와 나눈 이야기에서 나는 내가 글을 쓰고 늘 분석하고 해석하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라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엄청 열정적인 인간이더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불같다는 것은 불타고 있는 안에 있을 때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불에서 나와야 불같은 성격이군.. 하게 되는 것이고 물에서 나와야 아하 내가 되게 냉정한 성격이군 하게 되는 것이지.

내 삶은 항상 행동이 먼저였고, 지금도 행동이 먼저다. 강 길에서 종순 씨를 만나 커다란 목소리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이성적인 행동은 아니지. 남들의 시선이나 견해는 일절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남이야 놀라든지 말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인사를 커다랗게 하고

공원골프를 치시는 분들에게도 갑진년 새해 청룡 한 마리씩 다 안고 행복하올시라 복을 빌어주는 것이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은 열정적이 되는 것이고 머리가 차가운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인데

가슴은 불타고 머리를 차가운 이런 극성을 가동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그런데 나는 이 두 개를 가동하는데 소리를 지름으로 열정을 꽃피우고 이렇게 가동한 에너지를 당겨들임으로

가지런하게 정리를 함으로 내가 불태 우리 함으로 불사조로 다시 살아나는 영생의 정보를 하나씩 담아내어

구슬로 삼는다는 것이지. 나의 월주가 오화이니 불타는 여름이고 이 여름의 극성에 겨울이 있는 것이라

열정적이어야 이성적인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고 하지에 겨울기운이 생기고

동지에 여름기운이 생긴다고 하듯이 열정이 이성을 낳고 이성이 열정을 낳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라는 것이고 태극원리라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