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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청향고은 2024. 2. 5. 11:19

 

 

 

역발상

 

낮익은 것을 낮설게 하는 방법이 역발상이라거나 역지사지 또는 타로 12번 행맨 거꾸로 달린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물구나무서기 훈련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역발상을 하기위한 것이겠다.

 

거꾸로 보기 물구나무서서보기라고 하는 이 관점은 수정체에서 빛을 왜곡하여 홍채의 화소로 화경을 만들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봄’을 다시 ‘본다’는 뜻이다. 이것을 리멤버Remember라고 하는데 영어의 Re를 재귀대명사(reflexive pronoun)는 인칭대명사에 self(복수면 selves)를 붙힌 형태를 말하며 주어와 목적어가 같을 때 목적어로 사용되는 대명사, 한자어 '재귀(再歸)'는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옴')라고 하여 다시 또는 돌아감이다.

 

되돌아가서 보는 것을 다시보기 재견再甄(살필 甄,뜻을 나타내는 瓦(기와 와)와 소리를 나타내는 垔(막을 인)이 합쳐진 형성자, 기와는 암기와와 수기와를 겹쳐서 덮는데 다시 덮다 겹치다..가 된다고 나는 설명을 하네)이라고 하고 다시 볼때는 역지사지하여 본다는 의미가 있다. 내 관점에서 보는 보기와 너의 관점으로 보기

 

보기視와 다시보기複視를 하는 일을 팔자를 풀고 맺는다고 하는데 제대로 보지 못하면 매듭이 되고 제대로 보게 되면 8이 풀려 0이 되는 것이지. 너를 보고 내 관점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를 복시, 재견, 리멤버라고 하는 것인데 너를 보고 만드는 이야기는 나의 투사다는 것을 기억하기를..남의 말을 한다고 하는데 결국 자기안에 있는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점사를 본다는 것은 점사를 보는 이의 의식이 드러나는 것이지. 점사를 보려 간 사람의 의식은 아니라는 것이지. 내가 늘 조심하는 것이 내게서 나가는 말은 내 감정을 투사하는 것이다는 것이고 투사된 감정이 같은 파동을 당겨서 돌아오는 것이 '기분이나 느낌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을 해서 기분이가 나쁘고 무겁다면 그대안에 탁기가 가득하다는 것이고 말을 하고 기분이가 좋아지면 그대안의 기운이 청하고 아름답다는 것이지. 그래서 말을 하고 나서 내가 느끼는 것이 나의 감정이거나 이성상태라는 것. 느낌이 홀가분하다 이야기가 명쾌하다..는 결론에 닿아야 한다는 것이지. 내가 소리를 끌어낼 때도 속이 시원하다 개운하다는 상태까지 끌어가고 설명을 할 때도 내가 명료해질 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하게 된다는 것은 내가 나에 대한 사랑이고 정성이고 극진함이라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이 단순함을 실천한다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게 되는데 하늘에 별을 따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어지럼증이다. 머리가 어디에 부딪히면 별이 반짝 지구가 빙글이라고 그려내듯이 내가 나를 사랑함에 극진하게 되면 어지럽다. 이것은 내가 소리를 하면서 늘 느끼는 증상이다. 소리에 극진하다보면 숨이 끊어질듯한 단계가 되고 마지막 숨을 끌어내게 되면 어지럼증이 생기니까..극진했다는 사인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얼굴에 실핏줄이 올라오고 목이 쉬고 붓고..그러한 체험을 하는 것이지. 기와겹치듯 반복하게 되면 기와집瓦堂이 완성되듯이

 

꼬인 것이 다시 꼬이고 다시 꼬이게 되는 것을 편견이라고 하는 것이고, 꼬인 것을 풀어서 보는 것을 정견이라고 하는데 눈은 왜곡 즉 꼬임을 통하여 화경畵景을 만들기 때문에 이 원리를 따라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항상 보정 즉 다시보기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르게 본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늘 훈련을 해야 하는 습관이 된다. 정견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영안이라고도 하고 3의 눈이라고 하기도 하니 바르게 본다는 것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 관점이라는 것이지

 

물론 귀도 회절을 통해 자기만의 듣기로 듣기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되묻기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고, 되묻기는 너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여 끝에 ?를 붙여서 보내는 것이다 너의 말은 이런 말인데 맞냐? 라는 것 그러면 ‘응’이 든지 아니면 다른 해석이 붙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또한 되물어가는데 이것이 심리치료원리다. 심리라는 것은 내 말투나 언어를 너의 입으로 다시듣기라는 것이다. 마음은 말로 드러나니까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너에게서 들을 때 나의 반응이라는 것인데 심리란 내 말을 너가 그대로 따라 할 때 내가 보이는 반응이라는 개념을 세우게 되면 심리心理라는 낱말을 그대가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심心은 이제 별은주주라고 이해할 것이고, 理라는 한자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를 그대는 찾아야 한다. 별은주주는 소리를 통하여 체험하는 글자다. 그러면 理는 玉里 즉 구슬 옥이 부수이고 마을 리인데 옥玉같은 얼굴이고 마을은 몸이다. 즉 머리와 몸을 뜻하는 것이 理인데 머리가 몸을 다스리든지 몸이 머리를 지배하든지..어떤 구조가 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머리가 몸을 지배하게 되면 이성적인 인간이 되고 몸이 머리를 지배하면 감정적인 인간이 된다. 이성과 감정을 80:20으로 시작하는 것인데 50:50의 균형을 이루고 나서 51;49로 행동하게 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사람됨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이성이 2%가 되는가 감정이 2%가 되는가에 따라 냉철하다거나 열정이라거나 한다는 것이지.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다 생각을 했는데 착각이였고 이제와서보니 생각을 감정이 지배하는 감정적인 현장을 살고 있더라는 발견을 올해들어와서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지. 남편이나 아이들이나 다들 너같이 급急하고 화 잘내고 지멋대로인 인간은 없다고 해도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보고 분석하는 성향이라 착각을 하고 있던 나로서는 그런 견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이제와서 내가 나를 객관화하여 보니 소리를 하는 만큼 불같은 열정적인 인간인 것이 맞구나. 그리고 사주를 공부하면서 내 월주가 오화인데 열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왜 내가 나를 논리적인 인간이라고 착각을 한 것일까? 뭐 결국은 열정적인 것을 마주하는 것은 냉정한 것이니 열정적인만큼 반대거울에서 냉정하다고 판단한 것이 되는 것이지.

 

이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나를 직시하게 됨 즉 물구나무서서 보기가 된 것이다. 요즘도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소리를 하는 목적은 우주최강 백수건달(간다르바)이 되어 우주를 휘젓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고로 잘 노는 에너지가 되자는 것이지. 가장 수승한 에너지는 즐기는 것이라는 것이니 하여간 내가 나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영성(열성)적인 인간이였고 이제 영성의 원리를 파악하고 나니 이제부터 이성적인 인간이 되어보자가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지. 새로운 출발. 그간 내가 냉철하다고 생각한 것은 너의 정보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는 것이고 이제부터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꽃에 대한 반응은 마스터했으니 솟아나오는 복음의 샘에 대한 반응을 해보자는 것이 되는 것이렸다. 먹물에서 나와서 이제는 샘물에서 길어올리는 물을 두드려보자가 되는 것이지. 지나가는 길에 만난 인연들이 나에게 들려준 투사들..이 그래서 그랬구나..불같은 열정을 어떻게 풀고 사냐 신기가 만발한데 그것을 글로 풀어내구나..등등..내가 오화월주이니 그러하구나..그래서 같은 오화빛결을 만나 둘이 화화활활..하면서 거침없이 이 세상을 불태우리 하고 온 것이기도 하고 이제 청룡이 들어오시는 어제 입춘, 2월 4일 그렇게 보라를 불러냈던 것이기도 하구나 한다.

 

https://youtu.be/f1WZntBscz8?si=R29yAIPTbcUOCrQt

 

 

너의 말을 내가 제대로 들었는가를 너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을 통해서 자기언어를 되듣게 하는 것

자기가 하는 말과 말투를 다시 듣기를 하는 방법으로 자기목소리 녹음하여 듣기를 하라고 권한다 해 봐야 안다.

내 말이 나갔다가 무엇엔가 무엇에 부딪혀 돌아오는 것을 반응이라고 하는데 반응은 되물어 옴이거나 '응'이라는 공명이거나로 나타난다. 되물어 올 때 그 말이 너의 말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이구나를 알아채게 되는 것이 내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이 된다.

 

자기안의 말 내면의 소리를 듣는 방법이 내가 내놓은 말을 너의 소리에서 들을 때 내가 하게 되는 반응反應이라는 것. 너가 일차적반응을 한 그 되돌림에 내가 이차적인 반응을 하는 과정을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정 반 합이라는 관계가 형성 된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대화들은 되묻기라는 과정보다 일방적인 토해내기라고 보는데 나같은 경우는 내가 한 말을 다시 가져와 내 말투나 선택한 언어가 가시가 들어있지는 않았나 올바른 언어를 제대로 쓴 것이였나 를 곱씹는다. 그리고 나는 누구를 만나든지 일방적으로 떠들어내는 성향이고 그래서 열정적이라고 하는 것이 된다. 이성적인 사람은 듣기를 잘한다. 떠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한 쌍이 되어서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 내가 떠든 말이 들은 너에게서 돌아올 때 그렇게 감동스러울 수가 없다. 빛결에게서 오는 말이 나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울림이 되는지..내가 한말인데도 빛결에게서 올 때 그 공명값. 엇그제 종순씨가 소리는 비워야 할 수 있는 것이다는 말에 내가 느낀 울림. 내게서 나갔지만 너에게 닿아서 되돌아올 때 하나가 나가 99개를 거느리고 오는 것임으로..내 체험이 너의 체험이 되어 다시 나에게로 올 때 이것을 이심이체에서 일심동체가 되는 하나님이 되는 성불인 구원을 받은...것이 된다는 것이지. 영성을 기반으로 하게 되기까지 내가 그간 나를 탈탈 털어내는 과정들이 소리선을 통해서였고 이제 다 털어낸 비워진 나의 본질에서 내 샘을 파는 것이 구원의 샘파기..이성공부 계시가 된다는 것이되는구나..오만함이 만든 것이 무엇인가? 수박겉핥기를 아는 것으로 착각한 것에서 이제 착각을 벗고 마주하는 것. 이성공부는 내 어투와 선택하는 언어에 대한 이해력정도라고 본다.

 

내가 내 어투와 언어에 걸림이 되면 어떤 투로 어떤 말을 해야할까를 생각하고 같은 상황을 만나면 이전 말투와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써봄으로 내 어투와 언어의 관계를 살핀다. 내 말투와 언어가 서로 합하면 시너지가 생기고 서로에게 메리트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언어값이 맞지 않거나 표현법이 맞지 않을 때 어쩐지 기울어진 운동장같다. 내가 내 말이 어색하다 라는 대미지, 가시라고 하게 되거나 걸림 불편이라는 내 스스로의 촉이 나온다. 난자로서 정자의 정보를 마주하게 되도록 그간 내가 난자만들기라는 과정을 거쳐온 것이라고 본다. 난자의 구조를 보면 오행에 사주를 품고 사주에 삼신을 담고 삼신에 음양을 담고 음양에 무극을 담고 있는데 정자 즉 80%의 물정보를 압축한 에너지를 뱀巳으로 설명하고 이 정보의 문을 열어낸 기호를 己라고 하는데 반을 열어낸 기호를 이미 已라고 하는데 그대가 자세하지 않으면 기와 이의 차이가 뭐야 하게 되는데 자기己와 이미已는 巳의 앞에 닫힌 봉인을 반을 열어내었다고 이미 이라고 하는데 이미 있는 것이 반이고 그 반을 내가 다 열어야 己가 되는 것이고 이미 열린 상태를 방치하게 되면 다시 탁기가 쌓여서 巳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는 것이지. 그대와 나에게는 이미 已가 선각들의 공부에 의해 주어져 있다. 뱀이던 봉인된 정보가 반이 열려 내가 반만 수고를 하게 되면 자기己가 되는데 이런 원리를 예수의 보혈에 의지한다 선각들의 공력에 의지한다 타력공부다 하고 하는데 반은 내가 해야하는 자력공부다는 것이지. 뱀巳는 성서에서 뱀의 유혹으로 원죄라고 해석을 한다. 이미 已는 예수가 제시한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 자기己는 예수가 열어낸 길을 내것으로 하여 반을 더 열어낸 것을 설명한다 한자 셋으로 구약과 신약과 나를 잇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나의 이 놀라움 이게 기적이지..무엇이 기적이겠는가?

말을 다룬다는 것은 살아있는 너와 나의 관계이지 죽은 자의 기록인 문자와 나의 관계는 아니다. 말은 살아있는 사람과의 피의 발화가 만드는 인연이고 글은 물에 담겨 흘러오는 것 그래서 글은 죽었고 말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지.

 

야 그 언어에 그 말투는 아니지 라는 점검 언어를 가다듬는 훈련을 자기를 보살피는 훈련이라 한다. 몸을 가다듬듯이 말을 고르고 살펴서 고운 말 경우에 합당한 말을 사용하는 훈련이 자기공부라는 것이지. 그렇게 나는 내 말살이를 관찰하고 다듬고 현장실험하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힘들다는 말습관을 고쳐가고 있다. 언어에 온전한 사람을 의인이라고 한다고 하는 것이고 믿을 신이란 언어言가 온전해진 사람人을 나타낸 기호라는 것. 내가 너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될 때 의인, 양심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는 가슴에 십계명을 품고 그 빛을 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지

 

너가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나를 신뢰하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 같음이 형성된 이에게 동일한 적용이 된다. 나는 나를 믿는다는 이 말에 나의 에너지값을 같이 누리고 즐거워한다는 것이지. 같은 푯대를 향하여 같은 방법으로 같은 길을 걷는 것이 ‘하나됨’이니까. 내가 걷는 길을 같이하는 소릿꾼 복천에서 길어 올린 광천수로 온천욕을 같이하는 사이. 예수와 도마가 그러한 관계였다고 하듯이 나도 나와 같은 샘물을 떠서 마시는 이들과 믿음동료가 되는 것이지.

 

이 관계에는 일가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영생을 추구하는 길에서 만나는 하늘인연이어서 공부방법인 소리수업엔 극진하게 진력을 다한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인연이 하늘이 주시는 인연이다. 나로 머물게 발목을 잡는 인연은 그대의 욕심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 소리공부를 함으로 성장하면서 내 앞에 나타난 인연들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나를 이끌어가고자 가이드로 하늘이 내시는 것은 항상 안다. 내가 그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새로운 인연이 등장하여 내 길을 잇게 하는데 그것이 참 신기하다 생각한다. 매일 신기하구나..어떻게 빛결이, 어떻게 용자가, 어떻게 종순씨가 어떻게 세미가..그리고 경자가 이제는 순희가 등장하여 나로 빛나게 하는가..내가 나를 모르던 영역을 스승을 등장시킴으로 학습하게 하는 것 이것이 나는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 기적을 오늘 남편에게 당신의 아름다움은 양심을 지키고 사는 것이라고 비로소 그대의 아름다움이고 빛남이고 가치가 보인다고..나도 양심을 지키고 살아가려고 여태 공부한 것이구나 한다고 그대 역시 양심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아 그것을 지키며 산 것이 우리의 신뢰이고 서로에 대한 너그러움이다는 것임을 이제야 인식한다고 그간 공부가 나의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힘을 기룬 것이라는 것. 그간 같이오면서 이 양심에서 서로가 걸림이 없었다는 것이 서로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자기싸움을 하면서 온 것이라는 것 일부일처를 지키고 산다는 것이 당연한 것에서 이것을 지키기위해서 고군분투를 하는 것이 나로선 기도하는 삶을 습관으로 기루고 공부하는 것으로 지키고 온 것이구나..그리고 그래서 내 주변엔 양심의 빛이 빛나는 이들이 있는 것이고 양심을 더럽히는 이들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구나 알게 되는 것

 

오늘이 입춘인데 곽장군공원의 벤치로 공부마당을 옮긴다 오늘 학생은 손 순희와 순희의 딸 채 리다 양인데, 리다양의 에너지를 파악하느라 일주일을 산기도다닌 셈인데 어제 종순씨와 소리를 하는데 전날과 달리 얼마나 무겁고 힘들든지 날씨 탓인가 이렇게 기운이 무겁냐 나로서는 리다양을 당기고 있어서구나 알게 되지만 종순씨도 오늘 에너지는 되게 힘들다 혹시 저쪽에너지가 실려서인가 하길래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내일 공부가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

 

하산하여 돌아와 얼마나 힘들었던지 잠을 잤는데 종순씨도 너무 힘들어 잠들었더라고 내가 만나는 인연은 나를 기루는 인연이다는 생각이기에 리다양을 만나는 인연을 스무네해를 젊게 하는 반로환동이구나 일단 해석을 하고 있다. 되돌아감이니 24년을 되물림 즉 24절기를 섭렵하는 에너지인갑다 감사하지 그만큼 에너지 다루기를 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지만 오늘 리다양과 같이 소리를 하면서 참 즐거웠다. 어여쁜 아가씨의 맑고 상큼한 기운을 내가 받아오려 그렇게 그릇넓히기 비우기를 한 것이라고

 

시절인연 계절인연 절기인연

하늘인연은 사철 열 두달 이십사절기 사십여덟 별빛들을 내 몸에서 찾아내어 잇기를 하여 나에게서 다 풀어지거나 묶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지. 너에게서 나를 보는 것 내가 너에게 투사한 것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서이기도 하겠다 청춘을 찾은 뱀과 같다고 하는 이 뱀은 물길을 상징한다. 고인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오른다. 타로카드 10번 포춘 운명의 바퀴.

 

쿤달리니에 또아리 틀고 있다는 영사聆巳(들을 영聆)는 고인물이라면 물길을 열어 숨골로 오름하는 과정을 일곱개의 샘 챠크라로 설명하는데 물길을 뚫어 숨골로 흐르게 할 때 그것을 영생聆泩의 길이라 한다는 것이지 숨골을 열고 나가는 그 과정을 용(미르, 미륵, 미래...)의 승천이라고 하는 것이고, 쿤달리니 영사가 용이되어 날아오름을 부활 승천이라 하는 것이고, 공부를 하다보면 퍼즐조각맞춰지듯이 맞춰진다 이 재미로 공부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오늘 리다양을 만나 내가 점치는 방법은 노래를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음악점이라고 내가 마중물을 붓고 순희와 리다와 셋이서 금호강을 앞에두고 소리수업을 했는데 천강홍의 곽장군의 신선에너지를 기댐이기도 하구나. 나는 소리치유를 하는 에너지라고 내가 알고 있고 그래서 나는 소리를 질러라고 가르치고 다니는 것인데 소리를 질러내면 혈액에 쌓인 활성산소를 풀어내게 되고 신경을 누르고 있는 물의 무게를 수증시켜 가볍게 한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몸이 무겁고 답답하다 하면 나를 따라 소리를 지르시라고 하는 것이고 이것이 내가 전하는 복음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리다양에게도 일단 노래한 곡불러보라..하고 소리에너지를 파악하고 바로 내가 시전하는 소리지르기로 연결을 하고 같이하는 것이지

 

리다의 소리력에서 아이구야 지난 일주일 동안 소리력을 강화한 이유가 있었구나 소리도 이쁘고 맑고 소리길이도 얼마나 긴지. 소리에 힘만 좀 얹으면 영성인으로 영적지도자로서의 그릇이구나 하는 느낌 그리고 반가왔던 것은 갑자년생 쥐띠가 쥐띠를 만난 것인데 경자인 나와 갑자인 리다양의 에너지가 동서로 춘추에너지라고도 하는데 춘추라는 에너지 멋지지

 

갑자년 병자월 임인일 신축시

리다양이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내가 리다양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서 같이하게 되는 때 에너지에서 걸림이 없고 내가 텃치를 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더라는 것이 신기하더라. 정말 열심히 소리수업을 하고 순희는 미나리 약속이 있다고 해서 헤어지고 나는 커피한잔 마시고 화랑교를 건너 황토마사길 완비한 길을 걸어왔다

우리동네에서 화랑교까지의 맨발걷기길을 만들었는데 완성된 길을 오늘 주욱 걷게 된 것도 나는 의미가 되고 입춘날이라는 것에서도 즐겁더라는 것

 

내가 24년을 젊어지도록 하는 미션 저리 깨끗하고 이쁜 에너지 순희의 에너지를 리다양에게서 보기도 하는 것인데 순희는 만나서 같이 소리를 해보면 내 생각을 항상 넘어서는 크다람을 본다는 것이지 오늘을 같이하여 주어서 감사함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 들어서는데 재희를 만나 같이 되돌아걷기 요즘 늘 만나게 되는 임금출 설영순여사님 만나 이름부르기하자 해서 같이하고 가방안에서 사탕 찾아 건네고 오늘도 즐거우시라 하이파이브하고 그런 나를 보면서 곽교주 또는 곽박사 만나면 누구라도 코가 꿰여 즐거워진다고 좋은 일하는 거라고 재희와의 세월도 다섯해로 들어가는 갑다. 노래공부를 하면서 운동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소리지르기라고 재희도 설명한다 전신에너지를 다 당겨내어야 하는게 소리훈련이니까 노래를 부른다가 아니라 소리를 지른다이다고

 

역발상이라는 것 나보다 24해를 늦게 온 정보에서는 그만큼 열린 이와 내 에너지를 연결해보는 수업이였구나 나이를 거슬러가는 것 순희가 리다양과 같이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가 좋은지...

 

 

 

제사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복을 주는 행위이다. 즉 몸이 없고 기억이나 기록으로 있는 자에게 몸을 주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육신의 일이지 영혼은 육신이 없음으로 음식과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제사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그날 하루 몸을 주는 것이라고 풀면 제사의 허구도 바로 파악할 것이다

산자가 죽은 자에게 하루 몸을 주는 행위를 하여 그 몸을 조상으로 하여 그 조상의 에너지를 복이라고 생각하여 복을 받으려 하는 의전으로 설명하는데 그대가 살려내는 조상에 그대로 그대에게 물림이 된다면 과연 그 조상의 모든 것을 백프로 받고 싶은 것일까 생각해보라는 것이지

 

몸없이 귀신으로 있다가 제사상을 받는다는 것이 몸을 받음 죽은 자가 산 후손에 의해 일시적으로 복을 받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대가 조상을 대하는 개념도 생길 것이다. 나는 나보다 늦게 태어난 이들이 나보다 더 진화되고 확장된 에너지들이라 생각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한 말처럼 선대보다 후대가 더 아름답고 부요로웁기에 선대가 후대로부터 복을 받는 것이 제사라는 것이지 현실에서도 노인을 젊은세대가 공양하듯이 즉 힘이 약해진 이는 힘있는 이의 힘에 기대게 되는 것이듯 죽은 자는 산 자의 베품에 일시적으로 힘을 얻는 것이라고, 그래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음식이라는 것을 먹음 배를 채움이라는 행위를 통해 저승과이승의 경계를 없애는 행사라는 것이지

 

죽은 자를 제사하는 이 문화를 보면 상당히 재밌는 것인데 산자는 매일 복을 받고 있지만 즉 배를 채우지만 죽은 자는 어쩌다 음식상 제사상을 받는다. 즉 복을 받는다는 것은 밥상 음식상을 받는다는 것이 본디 뜻이다. 이것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이 일본의 문화인데 이들은 죽은 자를 모시고 매일 복을 준다 . 이 행위 뒤에 있는 숨은 뜻은 이렇게 복마지를 할 수 있도록 구천에서 밥값을 구걸해서 가져 오시오 라는 거래다. 천도나 제사에 담긴 상행위다. 내가 잘살려고 조상을 귀신으로 부리는 방법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예수는 그런 습을 버리라고 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리는 일을 하지 말라 그것이 거짓증거다는 것이라고. 산자는 산자와 거래하고 죽은 자는 죽은 자들끼리 거래하라고..그것이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산 자는 산 자에게서 생명을 피워내는 원리를 배우는 것이다.

 

제사는 몸이 없는 귀신에게 몸을 주는 행동을 통해 복마지를 받으려면 살아있는 내게 밥마지를 하도록 물질을 당겨오라는 거래라는 것 즉 산사람이 죽은 귀신을 부려먹기위한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지 이런 의미를 알게 되면 재미나지

 

죽은 자에게 복(밥)을 줌으로 그 값을 돌려받으려는 거래를 하게 되는 문화가 왜 시작되었을까? 죽음이 사실은 없다는 증거이게도 하다 밥을 채려 제사를 하면 죽은 자가 와서 밥공양을 받는다는 것이니 .. 밥을 먹지 못하면 죽은 자이고 밥을 먹으면 산 자라는 이 단순함 제사는 어떤 의지에서 시작되었을까? 사람이란 종은 생존과 생식에 유리함을 선점하기위하여 모든 스토리를 만들어내어 문화 풍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그것을 기득권이라 한다 내가 생존과 생식에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위해서는 죽은 자도 부린다는 것이지 귀신들을 식신으로 부리거나 사령으로 부린다고 하거나 할 때 귀신을 부리는 방법이 ‘음식’을 차려 귀신에게 너도 몸이 있다고 착각을 시키는 것이라는 것 귀신의 조력을 받으려는 욕심이 만든 것이 제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부탁할 일이 있으면 밥 한그릇 하자 하는 것이나 같은 원리다

 

귀신이 뭐냐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서양에서는 천사라고 하고 동양에서는 귀신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법에 산사람이 죽은귀신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산 사람이 죽은 귀신을 만들고 부리기 때문이다. 귀신은 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고 귀신이야기를 하면 귀신들이 자기들 이야기를 한다고 모여든다고 하는데 귀신이야기를 반복하다보면 귀신이 일상이 되어서 이런 이들은 온데서 귀신을 보고 듣고 하게 되는 세계를 만든단다. 즉 자기가 보고자하는 것을 보고 듣고자 하는 것을 듣는 것이니 귀신도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지 나더러 신기가 있다고 하는데 신기가 없는 사람이 있냐 되묻는다. 신기란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니 사람마다 신기를 가지고 있으니 즐겁게 웃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물론 내가 생각하는 신기는 그런 것이지만 타인이 나에게 말하는 신기는 다른 것일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의 신기는 없다. 근래 나를 보고 신기가 너무나 강하다 고 하는 말을 듣는데 나에게 그분들의 기운을 투사한 표현이라 보기에 아 이 분들이 신기가 강하구나 하여 그런 신기로 저를 한번 리딩해주세요 하니 천기누설은 하지 않는거라 하거나 차츰 알아가면 이야기한다고 하시길래 그쪽의 정보는 내가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귀기 무기 신기 영기라고 하는 사기를 다 풀고 있는데 너의 말이 궁금하것는가 귀기를 겨울, 무기를 봄, 신기를 여름, 영기를 가을로 연결해서 나는 이해하지. 겨울은 춥고 냉하니 귀기라 하고 봄은 만물이 춤추는 에너지니 무기라 하고 여름은 푸르고 푸러지니 신기라 하고 가을은 모든 것이 열매로 압축되니 영기라 하는 것이지 오늘 리다양에게 타고 온 에너지가 영기가 강하여 영성인의 길을 가야한다고 근거는? 리다양의 시주가 신축辛丑으로 천간이 신금이어서라고 신금은 가을에너지이고 축토도 가을에너지를 갈무리한 금토라고 하는 것이어서라고 나 역시 시주에 유금이 있어서 영적인 에너지를 추구하고 축토가 있어서 소리력으로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원리를 알고 그 원리를 너에게 가르쳐주는 일을 할 뿐 너에게서 귀신을 본다든지 ..그런 신기는 없다.

 

내가 공부해 본 것에서 외연에서 귀신이라고 하거나 뭐라하는 것이 생성되는 바탕을 보니 태어나 살면서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굶어 죽어서 배부르게 먹지 못한 한이 있다고 후대가 생각한 것에서 죽어서라도 후손의 손을 빌어 배라도 채우시라는 그런 공양이지 않나 하는 것이지 그래서 음식공양은 배고파 죽은 조상에게 동냥을 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니 어쩌면 조상욕보이는 일이라고 해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 나같은 경우 음식차려 제사를 한다고 하면 에이구 살아서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굶어 죽었구나 라는 눈으로 대한다. 죽어서 구천을 떠돌면서도 배 고파서 일년에 어쩌다 한번 채려주는 밥을 먹으려 오는 조상으로 만드는 것이 후손들의 제사라는 것이니 참 비참한 조상이구나 조상을 걸뱅이 만드는 짓인데 그것을 모르니 ... 그리고 또 하나의 굶음이 만든 귀신이 섹스에서 굶어서 한이 남았다고 후대가 생각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굿’이라는 문화다. 제사는 밥공양이고 굿은 섹스에너지를 풀어내는 행위공양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밥을 먹고 잉여가 생기면 생식에너지로 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그 한을 풀어내는 것을 살아서 하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 한을 풀어내는 문화가 ‘굿’이라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이해하기에 나는 제사도 굿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 조상은 굶어 죽지도 않았고 섹스결핍으로 눈이 뻘건 귀신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밥을 굶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섹스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제사와 굿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지 내가 밥을 먹고 잉여의 배설욕구를 섹스로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문자와 언어값이 어떤 것인가 문자에 제사밥을 올리고 언어에 섹스굿을 하여 죽은 문자를 풀어서 공양하여 내가 사령이나 식신으로 부리고자 하는 것이고 언어값을 찾아서 나의 영을 창조하여 기루는 에너지로 삼는 굿을 하는 것이지 내 몸이 모든 것이 낮아져 바다로 모인 것이고 이 몸에 깃든 하늘이라고 몸은 문자라는 바다에서 놀고 그 바다에서 깃든 하늘이라고 언어라는 동아줄을 타고 하늘과 바다를 오가는 놀이를 하는 삶을 경영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가치라고 한다.

 

어제 봉무동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천개의 고을을 울리는 황금종소리 복음의 길인 하나님 저도 산기도 다녀오겠습니다 했다 내가 나를 보면 오래전에 엄마 생전에 나에게 너는 영적지도자로 점지받았다고 했는데 지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나는 신기를 딛고 영성을 공부하는 길을 가야하는 에너지라는 것이 엄마의 예언이고 그 예언을 따라 공부의 여정을 통해 오늘 종순씨에게 귀기위에 무기 무기위에 신기라고 삼단계로 풀어내던데 내가 공부해보니 신기위에 영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겨울에서 출발하여 가을에 닿았다는 것이지 경자에서 을유로 경금에서 유금으로 연결이 되는 내 팔자풀이 어제 종순씨가 나에게 이 길을 공부하게 된 까닭이 뭔가 물어서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돌아보니 내가 나를 모르고 앞만보고 왔는데 주변에서 신기가 많다 무당으로 봤다 처사다 . 기타등등의 말을 들었어도 나에게 닿은 적이 없었는데 올해 들어서면서 언어에 갇혔을 때는 내가 싫어하는 말을 거부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제는 뭐라 말하던 언어너머에 있으니 신기라하든 무당이라 하든 뭐라하던 괘념치 않게 되었는데 이제는 영기넘쳐 영험하고 영력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 되더라.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이 길이 결국은 영성에 닿게 되고 엄마가 말한 영적지도자가 되어있구나 하는 것 그리고 리다양을 보면서 이 친구도 영적인 리더구나 하는 것. 영적인 리더가 가는 길은 무당의 길과는 다르다 영적인 리더가 가는 길은 예수가 뚫은 겟세마네 기도를 딛고 자기가 타고온 영성을 발화하여 빛으로 드러내는 길이다. 이 길은 문자언어라는 흙을 딛고 소리라는 영에너지를 잡고 가는 길이라 아무나 가지 못하고 점지가 되었으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지

 

아양교다리아래서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관휴님 영적인 리더가 되기위해선 소리공부가 기본이다 이 친구를 성령은 어떻게 이끌지 즐겁게 볼 일이다

 

일단에서 구단까지 계단이 있다. 일단을 알려면 이단이 이단을 알려면 삼단이 삼단을 알려면 사단이...라는 원리가 있다. 구단까지 올라가는 것이 성장이다 일단에 머무는 이들은 그 단 외에는 없는 줄 알기때문에

자기가 아는 것외의 다른 해석을 듣게 되면 다 부정한다 자기가 아는 것이 일단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다양한 단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내가 열려야 가능하다. 내가 고단수구나 하게 되는 때는 남이 제공하는 정보에서 얻을 게 없구나 하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그렇지 않은가? 여태 남이 쓰다버린 쓰레기줍기(경전줍줍)를 하다가 보게 되는 것이 모든 경전은 ‘문자조합’이구나라는 것이고 이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에 예수가 땅에 무엇인가 그렸다가 지운 것으로 가르침을 주었고 그 쓰레기줍줍을 돌로 들고 간음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치려고 한 이들에게 예수의 울림이 퍼진다는 것이지

 

예수가 든 돌은 경전쓰레기줍줍을 들고 온 이들에게 너나 잘하세요 라는 되돌림이다 너에게 돌을 던지고자 할 때 내가 주워든 돌이 쓰레기줍줍인지 내 안에서 그려낸 양심인지부터 파악하라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내 안의 소리를 따라 길을 가기때문에 경전쓰레기를 들고 너를 판단하거나 세상을 정죄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다 저마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지...라는 것이고 내가 돌을 던지고픈 욕구가 발생한다면 내 안에 무엇인가 매듭이 있어서라고 해석하도 그 대상에 나를 투사한 것이기에 나의 무엇을 당겨와 마주하여 해제할 것인가? 를 생각한다. 나는 십계명의 상위도덕률이 하위도덕률 실천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하위도덕률을 범하는 사람은 멀리한다 가르쳐 고치면 된다는 착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전엔 하위 도덕률은 양심인데 이것을 어긴다고? 라는 생각에 이 룰을 어기게 되면 가르치려고 했는데 그게 내 안의 것이 너에게 투사되어서 나타나는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반응을 멈추었다

 

하위도덕률을 범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자신에 대한 존귀함 소중함 거룩함...을 인식하지 못하기때문에 나타나는 자기유기 자기비하 열등감...에서 비롯되는데 초기에 싹이 오를 때 뽑아내지 못하면 어느 순간 퍼져 습이되고 그것이 삶의 무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이를 만나지 않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복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복있는 사람은 십계명을 품고 지키는 사람이다

 

내가 남을 고쳐보려 무던 애를 쓴 대상이 금숙이다. 물론 내가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서 보은하고자 하는 생각에 내가 가르치는 소리선을 같이하면서 금숙이의 삶을 알게 되면서 하위도덕률에 걸리는 삶은 그만두고 양심을 따라 살기공부를 해라고 잔소리를 하게 되어서 잔소리를 한 나는 내 말이 지켜지지 않아 불편하고 내 소리를 들은 금숙이는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습을 버리지 못해 불편해하고 하게 되면서 갈등이 생겼더라. 그래서 어느날 내가 너를 판단하지 말고 만나면 소리를 열심히 하면 스스로 알아채겠지 하였고 사심없이 판단없이 최선을 다해 같이 소리하는 만남을 재개했고 즐겁게 지내면서 금숙이 건강도 환경도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더랬다 내 안에 금숙에게 돌을 던지고자 하는 투사가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 뺏어 차고 다니지마라 백해무익이고 반드시 돌맞는다 남이 던져서가 아니라 지가 스스로 만드는 돌의 무게에 침몰한다고..알았다고 했는데 인연이 이어지면서 아 이 아이는 습관이구나 이미 삶의 루틴이 되어 고치긴 어려운 상태구나 하게 된 것이 이번에 우리의 소리수업에 같이하겠다고 온다고 한 여자와 뗄 수 없는 단짝인 것을 알게 되면서다. 초록은 동색이라 금숙이 지 입으로 그 여자의 행실을 말하면서 같이 다니는 것이 나에겐 이해가 되지않았던 것인데 내 입장이고 금숙이야 양심이니 십계명이니 이런 것은 생각도 없는 자유로운 이이니 나같이 십계명 질서에 갇힌 이에겐 맞지 않구나 인정을 하게 되면서 정말 칼로 무베듯이 감정이 딱 잘라지더라는 체험이 왔다. 즉 갈등요인을 베어냄이 나를 자유롭게 하더라는 것이지 그래 나는 내 양심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이 나의 자유이니까 내 자유를 누리자가 되었던 것이고 그렇게 갈등투사는 끝났다. 그리고 더 이상 금숙에게 양심이니 계명이니 라는 도닥률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게 되고 내가 비켜서면 되는 것이지 그간 내 갈등이 내가 너를 고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만든 내가 내 발에 건 올무였음을 인정한 것이지

 

나의 오만이 갈등의 매듭이더라 이것을 알게 되니 그 매듭에서 자유로와지게 되니 책임에서도 벗어나게 됨이지 어제 순희와 리다양과 소리수업을 하려고 하는 때 우리가 앉은 벤치를 지나가는 금숙이가 보였다 내 루틴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고 해맞이가 아니면 곽장군벤치 낙단루 기상청이라는 여정을 알기에 이제 해맞이로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에 다음 현장을 보려 온 것이겠다 생각하지만 이젠 내 생각속에서 지우기를 했음으로 우리공부를 했고 공부를 마치고 화랑교를 건너가는데 금숙이가 단짝여자와 오는 것을 보고 화장실에서 비우기를 하고 가방속정리도 하고 나왔는데 그 여자를 지나 가는데 두번을 부르는 것 쌩까고 내 길을 걸었다 그 말을 들은 귀가 더럽혀진 느낌이어서 더 빠르게 가게 되었다. 물론 이들의 속내를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고 금숙이 속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내 지혜라는 것이지

 

만나서 신나게 놀고 활기찬 에너지를 줍줍하는 인연은 소중하다 그 에너지를 십계명을 품고 살아가는 힘으로 쓸때 자기가 빛나고 아름다와진다는 것을 알아 에너지를 쓰야하는데 그 에너지를 다시 똥통에 들어가는 힘으로 쓴다는 것이 나는 나에 대한 모욕이라 인식하는 것이고 이젠 내가 나에게 모욕을 주지 않으리 결심한 것이지. 사실 남에게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것은 내 생명을 건다는 것이다 생명을 거는 현장은 소리를 가동할 때이고 내 에너지가 살아움직이는 것이다 이 에너지를 공유하는 관계를 나는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라 하는데 사실 이 에너지외에는 너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살아있는 에너지는 피를 끓어올리는 소리에 있고 이 힘외에는 너와 나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이 광천수를 마시는 이를 가족이라 하는 것이지 내 에너지와 상관없는 이들은 내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마중물을 붓거나 같이 하는 이에겐 내가 생명을 걸기에 십계명을 가슴에 품어 양심으로 하라 권하는 것이고 그것이 거절될 때 내 생명을 투자하는 일은 당연히 멈추는 것이다. 몇 년간의 갈등을 올해 풀고 잘라서 자유로와졌다. 나는 경전줍줍하고 있는 이들에겐 관심없다 왜냐하면 생명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글나부랭이니까. 내 글도 마찬가지인데 내 글은 소리를 같이한 이들에게 소리후기같은 음후감 같은 기능이어서 소리를 같이한 이만 아하!!!하게 된다.

 

세미나 종순씨도 소리를 같이하고 내 글을 보면서 내가 건내려는 에너지가 어떤 것이구나 체험하는 것이지 나는 실천과 이론을 하나로 하여 일단에서 구단까지 상승하는 과정을 간다는 것이지 그래서 내 눈엔 내가 가는 길을 같이 하는 이만 보인다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라고 하듯이 인연에서 나를 보지 못하면 보라를 열나 불러야 한다. 어제 리다양과 보라를 몇번이고 같이하면서 빛밝기를 확산하였던 것 보라 하나님은 이 여섯자가 얼마나 놀라운 화력인지 해 봐라 그래냐 경전줍줍이 얼마나 어두움인지 안다 경전은 먹물로 씌여졌으니 검지...나는 현실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니까. 글은 검다 그 검음을 흼으로 바꾸는 힘이 소리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