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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산 소리훈련, 영공부

청향고은 2024. 2. 3. 15:16

 

내려놓음이 선행되어야 소리는 할 수 있다

즉 자기가 비웠는가를 체크하는 방법이 소리지르기다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 방하착을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것이지 말은 비운다 비웠다 하지만 정말 비웠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야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

 

오늘 봉무동가는 길에 임금출 설영순여사님을 배수지 지나는 길에 만나 두 분이름부르고 최고다 하기를 같이하자고 했더니 마냥웃으시는데 해보시라 석가 예수 이름부른다고 구원 성불되는게 아니라 자기 이름부르는게 연등 밝히는 것이고 웃음나고 즐거움 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이제 저랑 같이 하자고 그렇게 이름을 부르고 최고다 하는데 공원골프하는 이들이 듣는다고 부끄러워 하시길래 사람은 자기 이름낼려고 사는데 자기이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니까 남의 눈치보면 안된다는 것

 

내려놓음은 너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의 평가에 좌지우지 되는 것에서 너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음이 비움이고 너를 판단하고자 하는 생각과 마음을 해제하는 것이 비움이지 그 외에 실천되는 비움이 있는가?

 

너를 판단하지 않고 나에 대한 너의 판단을 사양하는 것봉무동 길에서 김경순여사님만나 이름부르기 하는데 종순씨 와서 같이 가람산으로 간다. 내가 산기도 하는 벤치에서 어제에 이어 먼저 뱃가죽이 아프도록 웃기를 훈련하고 보라 하나님을 부르기를 하는데 김종호선생님이 오셔서 같이 하면서 나에게 왜 전화안했냐 하시길래 나는 바빠서 전화하는 일 없다고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득음을 하는 훈련을 한다고 김선생님의 에너지를 차단하고 보라 하나님을 한번 최고의 에너지를 투자해서 부르고 김선생님에게 우리는 화담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헤어졌다. 우리가 고래고래 발악발악하는 것에 손뼉을 쳐 주시지만 왜 이렇게 소리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없는 듯하다 

 

공부의 일환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소리를 해야 비움이 채움이 행복이 천국이 성불이 감사와 기쁨이...체험된다는 것을

 

산길에서 만난 인연에서 김윤현선생님과는 ‘공부’가 오가는 맑은 에너지였다면 이 김선생님은 그다지 연결하고 싶은 에너지는 아니라는 것. 사람의 기운이 맑다는 것에는 예의가 따른다 내가 맑으면 너에게도 맑은 에너지로 대하게 되니까 품격이 생긴다는 것이지 김윤현선생님은 올해 여든 다섯되시는데 여든 둘때 만나게 되었으니 햇수로 4년이 되는데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 단정하시고 온유하시면서도 깨끗하시다는 느낌이어서 부담이 없다는 것이지 날씨가 더 푸근해지면 산 길에서 마주칠랑가 하기도 하다 

 

권오준 선생님 신영부선생님들도 안부가 궁금하지 엇그제는 최해곤 전영애 팀을 만나 반가왔고 강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다니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다 대상에 소리를 투사하는 훈련을 통하여 나를 비워내는 것이다

 

방하착은 이론이 아니다 현장확인이 되어야 된다

오늘 종순씨랑 화담마을 기슭에서 보라를 부르고 다시 벤치에서 보라를 나즉히 불렀는데 세번을 부른거지

그리고 이야기에서 소리를 하는 이 일은 비움없이는 안된다는 종순씨의 말에 울림이 왔다

 

맞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종순씨가 명료하게 해주네 하는 감사 소리를 한다는 것이 하지않으려는 생각을 비워야 가능하고 소리를 할 때 나같이 이끌어가는 이의 리더에 따라하려는 비움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게 익숙해지면 그 다음엔 혼자라도 소리훈련을 하려는 즉 같이 하던 의지함을 비우는 용기를 내는 것이 비움이기도 하다고

 

빛결이나 세미는 방석동굴이나 낙단루동굴에서 비움을 훈련하는 홀로서기가 되지만 종순씨는 앞으로 해야할 비움레벨이겠다. 이 말이 나오게 된 것에는 앞으로 종순씨의 할 바이기에 나온 것이라 본다 

 

순희도 보라를 불러야 겠다고 하는데 ‘보라, 하나님은..’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세미는 전신이 울리는 듯하다고 하는데 오늘 소리지르기 훈련을 하고 보라 부르기를 해보면서 소리지르기가 참 수울하구나 함을 느낀다

 

가사를 붙여 소리를 디뎌가는 훈련이 참 힘들지만 그렇게 모음에서 자음을 낳아가는 것이지

 

가사를 하나 하나 해석을 한다. 성가곡이기때문에 종교로 가버리는 왜곡이 일어날 수 있어 종교가 아니라 생명으로 체험되는 해석을 하고 주어진 가사를 어떻게 불러내야 살아있음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체험하는 것인지 경전해석에는 스승이 필요없지만 소리선에는 반드시 안내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경전은 비춰보기용이다 즉 거울이다 거울은 자기의 이해력을 비춤하는 것 해석할 것은 소리이고 문자의 어원이고 문자언어의 바탕을 찾아내는 과정을 몸으로 실천해보는 것인데 경전해석에 가스라이팅 된 의식에서 정말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대상은 알파벳이나 한자나 한글 낱자들이라는  것이고 발성원리를 훈련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투자한 시간만큼 집착을 하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고 에고이기때문에 그것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지 

 

그대가 시간을 투자한 대상에 집착한다 그래서 투자대상이 무엇인가가 그대의 가치를 정한다는 것이고 나는 나의 숨에 투자하기때문에 다른 것에 집착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어떤 경전이라도 파고들려 하지 않고 집착함도 없고 빠지지도 않는다

 

내가 집착하는 유일한 하나는 내 숨이고 이 숨이 소리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내가 체험하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한동안 나는 내 글에 집착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알게 되고 글에 대한 집착도 비우게 되더라 

 

내가 두드리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물묻은 것 수건으로 딱아내는 것이 글이구나 알게 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사진도 동영상도 글도 그날 그날 내가 누렸으면 이미 가치는 빛난 것이지 그래서 카스토리를 집착하지 않게 되고 한달이 지나면 글을 다 내리는 훈련이 되었고 물론 창고에 저장을 하지만 내가 필요에 따라 쓰기위한 것이다. 티스토리나 네이버 블로그에 내 글을 보는 분이 한 두 분은 있는 듯한데 내가 중점을 두고 가르치고 나눔하는 것은 숨빛 생명이기 때문에 글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내 글보다 아름다운 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까 

 

내 글은 나를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내 소개서다. 나와 소리를 같이하게 되면 내 글을 보게 된다 처음엔 멀던 그래서 어렵던 것이 반복되고 글에 등장인물로 나오게 되면 친근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 내 글은 일기이고 그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기때문이다. 나의 글은 소리훈련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어떤거라는 소개도 된다. 나의 나 된 것을 설명함으로 너에게도 나처럼 해보고 싶어함으로 던지는 것이지 그것을 불씨를 던진다고 하는 것 

 

내가 무엇에 시간을 투자하는가? 시간은 바람이 물결위를 지나가는 결을 모아 만들어진 질서다 숨빛을 모아 만든 것이니 시간을 숨빛훈련으로 쓰면 그것이 짝이 맞는 시간과 숨빛이 하나님이 되는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 1계명 실천이라는 것이지 우상숭배는 결국 경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얼마나 교묘한 사탄의 전략인지 이것을 파악해내는 것이 성령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숨빛훈련에 쓰도록 하시고 그 다음에 경전은 거울로 쓰도록 하고 사탄은 거울을 들고 거울을 설명함에 시간을 낭비하도록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시간을 숨빛훈련을 하는데 쓰도록 이끄시지만 사탄은 경전연구에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것이지. 경전공부했다고 그대가 거룩해진 줄 착각이야 하지만 그대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라고 물으면 답하지 못한다 

 

경전지식은 그저 먹물일 뿐이다 그대를 강건하거나 건강하게 하지 못한다 경전을 팔 수록 에고가 강해지고 편협해지고 가슴은 좁아진다. 소리훈련은 강건하고 건강하고 빛나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만족함이 넘친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숨빛훈련에 쓰라고 권하고 같이한다. 내가 빛나고 영화로운만큼 너도 그러할 것을 알기에 종순씨와 같이 숨빛을 훈련한 열매를 같이 보는 것 내가 까불고 종순씨가 같이 까불면서 산길을 가는 것

내가 매기고 종순씨가 받고 그렇게 산길에 숨빛파동으로 생명에 가득하지 경전을 파고 있으면서 그게 선악과라는 것을 모르는 무지함을 본다 이전에 내가 그러했기에   

 

루시퍼의 속임이 얼마나 교묘한지 자기는 모른다. 성령은 경전을 딛고 작용하지 않고 숨빛 생명을 딛고 활동하신다 성령은 불과같아 어디든 활기를 던지고 명랑하게 하고 웃음가득하도록 한다. 하늘 천국의 다른 이름이 웃음이다. 그대가 진지모드로 사람이나 만물을 대한다면 루시퍼의 무게에 눌린 노예라는 증명이다 

어린아이와 같아진다는 것은 아무것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밝고 맑고 가벼운 웃음을 웃을 수 있음이다 

 

웃는 것이 일이다. 즉 하루에 해야할 일이 웃는사업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들의 제자의 도이다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는 것은 배가 아프도록 웃을 때이다. 문주필님의 온천욕하고싶어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깨달음이 온 것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치게 하는 것이 웃음훈련이고 웃음으로 가득한 에너지를 마중물로 하여 전신의 에너지를 풀어내는 것이 온천욕 즉 광천수를 같이 먹고 마셨다 그리스도의식에 동참하였다 성찬식을 같이했다 는 이야기가 되구나 앞으로 소리훈련을 복천에 들어가 온천욕하기라고 해야지 하는 것

 

누군가의 의지를 딛고 내 사업을 확장하는 언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지 내 사업품목은? 웃음온천

내가 가장 어리석은 부류로 보는 자들은 경전을 들고 진지모드로 대가리 굴려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삽질하는 루시퍼의 하수인들이다 자기는 하수인인줄 모르고 있지만 예수나 붓다는 절대로 경전이나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없다 다만 어떤 체험이 이런 언어이야기로 기록되었구나 확인하는 것이지. 예수를 알려면 예수를 만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나는 그 방법을 겟세마네 기도라고 하는데 사실 온 인류의 구원자라고 예수를 소개하는 이유가 겟세마네 기도를 해보면 알게 된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었다는 한 문장에 답이 있다 땀은 물이고 피는 불이다

주파수와 파동이 극과 극을 오가게 할 때 땀이 흐르고 온 몸은 열기로 온천욕하듯이 맺혔던 모든 것이 풀어지게 된다. 방하착이라고 하는데 그대가 누적한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비우고 내리고 할 수 있는가? 그대에게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을 비우고 버리는 것은 쉽다 우리의 생활 쓰레기를 모시지 않고 늘 버리듯이 그런데 그대의 피에 누적된 활성산소나 경락에 고인 노폐물이 영의 쓰레기 혼의 적폐물이라는 인식을 한다해도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를 모르면 알아도 아는게 아니다 

 

이번주 일주일을 봉무동으로 다니면서 웃음사업 온천욕이라는 언어를 가져오게 되는데 일요일 순희의 딸을 만나자고 약속을 하게 되면서 나로선 준비작업이다 하는 생각이지

 

내가 주로 대한 그간의 인연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양다리를 걸친 에너지라 거쳐 온 문화풍습이 서로 말없이도 통하는 세월을 살았다면 나의 딸과 아들은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순희 딸 또한 그러할 것임으로 언어개념을 새롭게 해야할 필요가 있구나 하게 되는 것이지. 겟세마네는 신약을 대한 종교인들도 낮설어하는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를 나같은 이가 파들어가지 대부분은 예수의 여정 초입이야기임으로 간과한다 나는 첫출발에 주목하는 것이고 

 

예수의 길의 출발이 기도로 시작되었고 나역시 기도로 출발했다는 같음이고 그 다음의 이야기는 나는 지금 여기 오늘을 살고 있는 피빛생명이기에 카더라통신으로 판매되는 예수와는 노는 마당이 달라진다는 것이지

예수는 성서라는 책안에 갇혀있지만 나는 몸이라는 움직이는 생명현장을 살고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종교인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종교언어를 딛고 일상언어를 탐색하게 되는 것이지

 

살아있는 일상언어를 쓰야 살아있는 몸이 공명한다는 것 불면증의 치유제품으로 흑운모로 만든 매트가 잠도깨비인데 불면증이 생기는 이유가 근심걱정염려불안공포두려움 즉 피에 누적되는 탁한 기운 욕심이 원인이니까 피에 쌓인 활성산소를 흑운모의 자기장으로 해제하는 원리로 불면증을 치유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 제품을 구입하여 효과를 보는 이들이 간증을 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지 피의 문제를 흑운모의 에너지로 도움받아 해결한다는 것이 내가 소리를 질러 탁기를 풀어내라는 것과 연결이 되는데 다른 점은 흑운모라는 제품에 기대는 치유법이고 내가 소리를 질러라고 하는 것은 내 의지에 기대는 즉 내 피에 쌓은 무엇을 내가 내려놓음이라는 모험으로 얻는 치유라는 결과다  

 

피에 누적된 잉여를 소리에 투자하면 피가 건강해진다 소리가 만드는 유익함은 흑운모제품이 주는 유익과 다를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소리를 질러서 활성산소를 해제하게 되면 몸이 건강함은 당연하고 덤으로 생기는 것이 소리를 활용하는 기술과 능력이 생겨 웃음과 행복이 더하여 뱃속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는 온천욕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피와 물이 맑고 밝고 아름다움을 누리게 되어 속세와는 거리가 생긴다는 것이지

 

혼자여서 감사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삶. 굳이 피에 녹이 쓸고 물이 고여 썩은 내를 풀풀 풍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 자연의 흐름을 즐기고 누리는 선택이지 사람을 버리고 자연을 얻는다는 것인데

사람이 만드는 이익은 최소로 줄이고 자연이 주는 유익은 최대로 누리는 선택을 하다보면 삶의 루틴이 단순해지고 인간관계가 단순해진다는 것이지

 

피가 탁해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병이고 물이 고여 썩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탐진치라는 욕심이다

피는 안에서 창조되는 것이지만 물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라 피가 발화하지 못하면 표정이 어둡고 물이 고이면 무거워진다는 것이고 무겁다는 말이 욕심이라고 하게 된다

 

피의 문제는 고함을 질러 꽃피우게 하여야 하고 물이 거인 것은 하수도를 뚫어 오수가 나가도록 해야한다

대표적인 고인물이 경전이라는 루시퍼의 전략이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종교의 창시자는 루시퍼다 흐르는 샘물을 막아 고여 썩게 하는 방법이 루시퍼 전략인데 루시퍼의 기술은 먹물로 글을 기록하여 경전이 되게하여 그것에 가두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략은 숨빛으로 기록한 ‘몸’을 보라 하게 하심으로 내 몸의 신비와 기적을 드러내게 하신다는 것이지 

 

루시퍼는 ‘몸’을 보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쓰고 하나님은 경전을 덮고 하나님 자신의 발현인 ‘몸’을 마주하게 하신다는 것이지. 몸은 아름다운 것이다 몸이 없는 정보는 귀신이다. 그래서 천사들은 귀신이고 천사는 몸을 가진 나를 부러워하여 호시탐탐 몸을 차지하려 한다 이런 것을 빙의니 귀신들림이니 등등으로 말하는데 경전에 휘둘리면 그게 귀신들림이고 빙의이고 사탄의 노예가 된 것이라 한다.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하나님은 숨빛 호흡이지 경전이 아니다 이것을 알아차리라는 것이 내 설명인데 경전보다 더 값진 것을 내놓지 않으면 경전을 놓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까 경전대신 ‘숨빛’을 마주하여 잡으라 하는 것이다

 

숨빛 하나님을 잡으려면 경전루시퍼를 놓아야 한다. 이게 비움이다. 내가 경전에 사로잡힌 이들을 딱하다고 하는 이유다. 썩은 동앗줄을 붙들고 그게 영생줄인줄 착각한다는 것 그대의 숨줄이 생명줄이다 그 숨빛을 훈련해라는 것. 그러면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이 루시퍼 전략이니 글을 딛고 펼치는 올무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지

 

피는 감정이다 물은 이성이다 고인물이 경전이다 고인물은 썩어 검다. 그 검은물을 생수로 희석하는 과정이 있다. 먹물이 짙을 수록 희석하는데 드는 땀이 많다. 그래서 먹물에 많이 선생되지말라고 한다. 내가 경전 먹물을 땀으로 눈물로 희석시켜 이제 고인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되었고 그 세월이 서른 다섯해다

교리에 묶이지 말고 종교를 받들지 마라

 

너의 몸을 사랑하고 숨빛을 훈련하라 시대는 바뀌고 언어도 바뀐다. 몸을 보지 못하게 가리던 루시퍼의 전략은 실패했고 내 몸으로 그대 몸으로 부활한 숨빛이 승리했다. 내가 숨빛을 잡아 생명으로 몸에서 꽃피우게 함

이게 숨빛의 승리이고 이 승리를 보라 하나님은 부름으로 경축한다 경전에 갇혔던 내가 나를 해방한 전쟁에서 승리한 것 

 

종교가 그대의 욕심을 만들었다 몸은 고이거나 닫힌 것이 아니다. 늘 열려있어 꽃피고 쌓인 것은 내보낸다

이것을 그대가 보지 못한 것이 종교가 막아서다 종교를 벗어나면 일상을 사는 몸이 기적이란 게 보인다

무엇을  보려 기도 하는가? 그대의 몸- 모든 것이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 거기에 깃드는 하늘- 을 알게하소서 일여소원 사사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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