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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나님은

청향고은 2024. 1. 28. 16:16

보라, 하나님은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요즘 소리훈련에서 택하여 부르는 가스펠송인데 세미와 같이 이틀을 부르는데 낙단루동굴에서 극진하게 부른다

 

소리를 할 때와 가사를 올려 소리를 펼 때와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해 보면 안다. 소리통을 기루는 과정을 거치고 그 다음의 단계가 뚫은 소릿통을 바탕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인데 나는 가사를 붙여 소리를 하는 이 과정이 ‘진인사’ 하는 기도구나 한다.

 

진인사 하고 대천명이라는 말에서 내가 하는 진인사가 바로 요즘 '보라 하나님은' 을 부르는 것이구나 하는 앎 그리고 이 진인사를 하고 대천명이 순서인데 진인사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은 양심에 어긋난 일이고 욕심이라는 것이지

기적수업을 독송하고 나서 세미에게도 기적수업을 건내려고 새벽에 만나 낙단루동굴로 가서 보라 하나님을 같이 삼창을 하는데 그간 뚫은 소리통을 바탕으로 극진해내는 것 가슴은 터질듯하고 위장도 짤리는 듯이 아프고 라는 그래서 이 과정을 같이하면서 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리라이고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긷는다이구나 서로 힘들어 헉헉거리면서도 해냈다는 그런 뿌듯함으로 다음 코스 기상청으로 간다는 것이지

 

해맏이에서 해를 만나고 낙단루동굴에서 진인사를 하고 기상청으로 가서 손뼉치며 주를 찬양이라고 우리가 추구하는 천국 또는 행복이라는 언어값을 풀어낸다

새해 첫날 낙단루동굴에서 만나 순희랑 같이 새해맞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세미가 통과해야 하는 무게를 털어내는 일 세미에게 법화경 삼독을 하라고 하게 되고나서 세미가 삼독을 한 것이 내가 기적수업 일독을 완료한 날과 같았더라 삼독 끝 기적수업 입학이 되는 것이구나 그래서 기적수업책을 전달을 하고자 만나게 되고 그 전에 보라 하나님은 을 검색해서 불러보라고 했는데 그 가스펠을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지

 

나도 소리통을 훈련한 것은 ‘가스펠송’을 부르기위한 준비였다는 것이고 복음 즉 구원의 샘에서 물을 깃기위하여 두레박을 만드는 과정이고 이제 두레박에 줄을 달아 영생의 샘 청춘의 샘에서 물을 깃는 것을 시도하고 있구나 해석이 되더라. 가스펠에서 보라 하나님은 이라는 이사야 12장 1절의 문장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진인사하기에 참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가스펠을 부르지만 전심전력하기에 좋은 곡이고 나에게 잔소리를 한 열매로 센소리로 하늘을 울리게 하는 가사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처음 예수를 따르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으로 겟세마네 기도를 도전했다 매일 매일 찬송을 그렇게 불러댔는데 당시 성악가냐? 어디서 활동하냐 하는 물음에 찬양소리가 참 은혜롭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듣기평기가 있기도 했다. 너의 찬양을 듣고 있으면 참 은혜롭다 라고...

 

당시 나는 음치라고 생각하였는데 왜 찬양을 기도방법으로 선택했는가는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겟세마네 기도라 생각해서다 그렇게 예수를 따르는 길을 가스펠 찬송을 부르면서 왔고 점차 소릿통을 넓히는 방법을 훈련했고 늘 가스펠송으로 소릿통 점검을 하곤 했는데 세미와도 가스펠로 소리통을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빛결도 보라 하나님은 을 부르면 참 좋다고 기도를 이 가스펠로 한다고 한다 같이 같은 곡으로 기도하는 ‘팀’이 되는 것이고 이 체험을 통하여 내가 소리를 전하여 닿아야 하는 목적이 보라, 하나님은을 같이 부르기가 되는 것이구나

 

내가 해석하는 이사야 12장 1절은 법화도 담고 기적수업도 담고 옥추보경도 담고 성서도 담고 모든 정보를 다 담아낸다. 들어가는 ‘보라’라는 선언이 관세음이자 관자재이지 하나님은 99을 다 포함하여 온(100)이 된 이라는 것이고 내 설명으로는 소릿통의 고저장단을 뚫어 쇳소리가 나도록 된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내리지 않는 극과 극에 닿은 주파수와 파동이라고 설명한다. 소리선을 훈련함으로 얻은 것이 나의 구원이 된 것이지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기위하여 매일 매일 고함을 질러냄으로 그 고함에 공명하시는 성령의 하울링을 가피로 하여 힘으로 구원으로 노래로 온 것이 우리의 온 길이고 걷는 오늘이고 갈 길이라는 것이지

멋지고 찬란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의식이라는 것을 내가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 이젠 가스펠을 불러내면서 스스로 체크하는 것

 

오늘 세미가 소리할 때와 가사를 올려서 부를 때와의 차이를 이야기하길래 소리뚫기도 힘들지만 뚫은 소리로 온 몸의 기운을 다 뽑아 가사로 토하는 것은 더 힘들다고 소리는 내지르기만 하면 되지만 가스펠은 가사가 가진 에너지에 따라 굴곡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소리는 찬송을 부르기위하여 훈련하는 것이고 찬송은 내 안의 하나님이 자기선언을 하는 방법이기에 전심전력을 한다는 것이지 온전한 하나님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된다는 극진함으로 발현된다. 이것을 그대가 공명하려면 나와 같이 소릿통을 뚫어내는 과정을 같이해봐야 된다. 빛결과 이 과정을 통해 가스펠을 부르고 세미도 이제 가스펠을 부른다

 

이번에 내가 알게 된 것이 나는 찬송을 가스펠을 부르는데 합당한 몸이 되도록 훈련을 시키는 선생이구나 소리를 뚫는 과정에서 얻는 것은 육체의 건강함과 강건함이다. 건강함이 목적이라고 하게 되면 ‘건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되묻는데 영과 혼과 육이라는 성부 성자 성령이 일체가 되는 것을 건강함이라 하고 이 건강함이 가스펠을 불러봄으로 스스로 체크해간다는 것이구나 알게 됨이다

 

곡을 가르치는 것에는 가사가 붙을 때 그 가사가 담은 에너지 뜻을 알아야 제대로 길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리라 땀이 변하여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이것이 천국이자 영화이자 영생이구나 하는 것

어제 세미 만나 기적수업 건네고 내일은 봉무동 갈거라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먼저 주문했던 방울을 오색실에 꿰어 방울고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하나 건네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와서 신단으로 갔다. 방울 두개를 오색실로 팔찌를 짜서 달아서 차고 댕기는데 남편은 나에게 너는 고양이냐 방울을 딸랑거리고 다니냐 하여 맞다야 고양이다 한다

 

왜 고양이에게는 목에 방울을 달게 되는가?

이것을 화두로 삼으면 엘리야의 호렙산 동굴기도에 닿게 된다 고양이는 기척에 없이 다니기때문에 방울을 달아 기척을 삼는다고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지성소에서 신탁을 들을 때 신탁이 방울소리로 나타난다는 것이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이 문장은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이다

방울은 고양이의 기척을 알아내기위한 도구다 무당의 방울도 신탁을 공수받는 도구다. 그리고 내가 다시 해석하기로는 방울은 동자신이라 하고 부채는 선녀라고 하는데 동자는 정자를 선녀는 난자를 뜻하구나 푼다 그리고 다시 정자는 흰빛을 난자는 불빛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풀어낸다

 

오늘 세미에게 구슬고리를 건네면서 오십개 구슬과 오색실로 고리를 만들어 구슬을 단 것은 음양합일에너지이고 동자선녀에너지로 동맥과 정맥에너지라고 무속에서는 부채와 방울의 본디값을 설명해주지 않으니 스스로 그 값을 찾아내어야 한다고 그렇게 설명하고 기적수업과 짝이 이 구슬고리다는 것 나처럼 이렇게 영과 혼과 육을 꿰어 삼위일체로 설명하는 선생은 나 외엔 없을 것이다. 성령에게 배우면 다 나처럼 설명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같음이기도 한데 나처럼 설명하지 못한다면 스승이 보혜사 성령이 아니라는 것이지

기상청에서 시간을 엮어서 손뼉으로 공기중에 결을 이룬다 지나가던 분이 우리의 손뼉에 쳐다보시지

복음이 내 배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나는 훈련이니까 구원의 샘에서 물을 깃는 기도니까 그대의 기도법을 체크해보라

 

붓다의 가르침은 생기인 무명에서 시작하여 노사인 무에 닿는다. 즉 몸이 태어나 숨을 쉬기 시작하는 육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가의 이론엔 영혼개념이 없다고 하는데 육에서 출발하는 철학체계이다고 한다. 다시 설명하면 불가의 무는 숨 즉 생기의 다른 표현이다고 내가 이해한다. 태어나 숨을 시작하여 노사에서 숨이 멎는 때까지의 여정을 십이연기로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불가는 ‘영혼’은 알 수 없다는 것이지

 

영혼을 다루는 곳은 성서에서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했는데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창조가 되었고 사람에게는 생기가 생령이 되도록 하는 원리를 심어두셨다는 것이 구약의 생령 즉 영혼에 대한 설명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즉 하늘 생령과 땅 생기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동물들은 생기로 창조하고 아담은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다는 것인데 다른 창조는 생기로 존재케 하여 피조물이라고 하게 되고 아담에게는 생기가 생령이 되게함으로 생기의 피조물이면서 생령의 하나님이 되도록 하였고 그리하여 생기로 움직이는 창조물들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였다는 것

피조물이라는 자리에서는 생기를 공유하는 존재로서 삼라만상과 같은 에너지로 움직이지만 삼라만상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누림-다스리고 지킴-명예’는 생령이라는 창조주의 속성을 담아야 가능한 것이니까

 

붓다의 철학은 만물에 깃든 보편성 ‘생기’에서 출발하고 예수의 천국은 존재의 특별성‘생령’에서 출발한다고 내가 풀어낸다. 태어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궁구한 철학이 불교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조이고 태어난 육에 깃들이는 울음소리를 딛고 생령이 되는 영혼의 길을 선택하여 설명하는 것이 태초에 사운드가 있었다 소리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영생이고 천국이고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지 육신의 길은 식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영혼의 길은 기도를 따라 위로 올라간다는 것인데 육신은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붓다는 ‘생기’가 부음된자로 만물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고 십이연기로 순환되는 생기의 법칙을 설하신 것이고 여기서 고.집.멸.도라는 것이 생긴다는 사성제를 설하신 것이고 이것을 나는 열 두달 사계절로 이해한다는 것. 고는 봄, 집은 여름, 멸은 가을, 도는 겨울이라고 나는 이해한다네 계절의 흐름이 사성제이고 천문사신도로 근거를 삼는다는 것이지. 그리스도는 기름부음받은 자 즉 생령이 된자로 다스리고 지키는 원리를 가진 주인이다는 것이다. 가르침은 숨을 불으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라는 생령에서 영에서 시작하기에 영생에 닿는다

 

불교는 사람의 학문으로 철학이라고 하는 것으로 생노병사하는 ‘물질 몸’이 철학의 바탕이어서 도달하는 곳은 ‘무’ 즉 숨에 닿는다 육을 생노병사를 있게 하는 근원이 ‘숨’이라는 것이고 불가에서는 그것을 ‘무명이라고 했다 숨이 행-식-명색-입-촉-수-애-취-유-생-노사 라는 인연이 생긴다고 가르친다. 예수의 노사에서 출발하여 생-유-취-애-수-촉-입-명색-식-행-무명에 닿고 거기서 빛이 있으라는 숨에서 빛을 창조하여 생령이 되는 복음을 딛고 영생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붓다의 십이연기 끝의 노사에서 되집어 돌아가 첫자리 무명인 ‘숨’에 닿아 그 자리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는 ‘생령’이 된지라에서 영생으로 이어지는 구원을 제시한다

 

붓다의 십이연기는 ‘육’의 길이고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은 ‘영’의 길이다 붓다는 태어남으로 시작되는 십이연기에서 노사에 닿는 몸의 길을 관조함으로 통합철학을 만들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사람이 사람을 연구한 가르침이라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성’-‘사유’를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경지를 사유를 이루는 문자언어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고, 그것을 득 아뇩다라샴막삼보리 깨달음이라고 했다 사성제 십이연기는 문자언어에서 생기는 사유이니 이 세계를 벗어나면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불가의 최대깨달음은 침묵 즉 모른다이다.

 

언어도단을 알게 되면 실재는 언어밖에 있다하고 실재는 불립문자라 하여 문자로는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 하게 된다 그대의 존재는 문자나 언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숨빛’으로 이뤄진 ‘생명’이다는 것이지 붓다의 가르침 십이연기의 12노사를 예수는 생명으로 출발하게 된다는 것이지. 붓다의 바통을 예수가 받아서 달리는 길은 영생천국이라고 하고 또는 산상팔훈 마음공부라고 정리해주는 것이지. 붓다도 전래되는 선각들의 가르침을 딛고 자기만의 존재를 철학하여 학문으로 통합한 것이고, 그리스도도 전래되는 선각들의 정보를 통하여 자기만의 천국을 창조하였다는 것이지

 

붓다의 철학없이 예수의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예수는 붓다의 후대정보이니까 당연히 붓다의 철학을 디딜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신약의 예수의 가르침에는 예수이전에 활동한 붓다의 정보가 포함될 수 밖에 없고 붓다 역시 석가모니 이전에 활동했던 전생부처님들의 정보가 포함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이런 확장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후대인 그대와 나는 그리스도보다 확장된 정보체라는 것이고 그리스도 이후 확장된(연구된)정보들을 담고 있음으로 예수를 해석하거나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니 예수로부터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는 것이지

 

예수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내가 예수 이후 출생하였음으로 당연히 가능한 것이고 내가 만날 수 있는 첫번째 스승이고 그리고 예수를 만남으로 예수안에 있는 붓다를 만나는 것이니 두번째 스승이 붓다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거슬러가면서 만나는 스승들을 법화경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법화경은 ‘영계, 즉 성령’의 세계다 법의 꽃이라고 하는데 법은 몸인 육이고 화는 영이다고 내가 해석한다 묘법은 몸이고 연화는 영이라고 해석할 때 묘법연화가 성령이 가르치시는 ‘천국’이거나 ‘마음’이구나 알 수 있다

 

극진한 찬양이 극진한 기도다. 찬양의 언어들은 정갈하고 아름답고 힘있고 강하다. 전심으로 부르는 노랫말이 아름답고 맑고 밝아야하지 않겠는가? 긍정적인에너지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가장 큰 소리로 가장 큰 울림으로 아름다운 찬양을 하고 그 울림을 우리로 삼아 일상의 잔잔한 소리울림이 방울소리처럼 짤랑짤랑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듯이 겟세마네를 해야 성령이 걸어오시면서 찰랑이는 소리를 내가 듣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세미한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내 소리에 공명하시는 하울링이다 하울링은 섬세하고 고요하고 은밀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를 노래한다는 것. 이전에 많이 불러대던 가스펠에서 우릉찬 곡을 다시 훈련하여야겠다 한다

체험, 경험, 영험

 

체험은 몸이 겪는 일이고

경험은 혼이 느끼는 것이고

영험은 영이 아는 것이다

 

체험은 주관적인 해석이고

경험은 공유적인 해석이고

영험은 객관적인 해석이다

 

체험은 촉이라 하고

경험은 감이라 하고

영험은 지라고 한다

 

체험을 몸짓이라 하고

경험을 소리짓이라 하고

영험을 숨짓이라 한다

 

이 셋이 하나로 해석되어 이해될 때 삼위일체 또는 삼신돌기 또는 삼보에 귀의한다고 한다

세미가 법화삼독을 하고 기적수업에 들어가는 체험장이 외적으로는 합천의 악산 그리고 광주 무등산 오늘은 영동의 민주지산 그리고 그 다음엔 태백산으로 산을 타는 체험을 경험장을 같이하는데 빛결이 한라산으로 팔공산으로 산을 타고 다니는 것과 내가 가람산을 다니는 것과 서로 같은 기운이 가동되어 ‘산’을 다니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구나

 

기적수업을 놓고 나는 일독하면서 봉무동 가람산으로 다니게 되었는데 같은 기도팀이 된 세미도 산으로 다니면서 ‘산기도’를 뚫는 것이고 빛결도 그러한 것인데 ‘산’이라는 에너지는 어디나 같은데 산에 주어진 이름으로 산의 값을 계산하게 된다. 영이신 하나님은 무엇을 그릇으로 삼으시는가? 이름을 딛고 하신다. 이름은 빛이 모여 결을 이룬 것으로 ‘이름’을 ‘명’이라 한다. 너무나 초보적인 해석이지만 빛이 사라진 때 너를 찾아내고자 하는 수단이 이름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고차원적인 내 해석으로 오면 이름이란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이름으로 드러나신다 고양이가 소리도 없이 지나갈 때 방울소리가 인식표가 되듯이 하나님이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매달아야 하나님의 영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목에 방울 달기를 외연에서는 ‘신굿’이라고 하고 성경에서는 마가다락방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받음이라고 한다. 체험은 내 몸이 겪는 것으로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했다. 그래서 객관공유가 불가능한 것이다. 경험은 너와 내가 같이 겪어본 것의 총합으로 객관공유가 가능하며 같은 공명을 만드는 해석이다 객관경험을 객관화하는 방법이 ‘글’이라는 것으로 서로의 경험이 ‘글’이란 것으로 제시될 때 아하 그렇구나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보고 아하 그렇구나 하게 된다면 먼저 그 글을 이해할 수 있는 객관경험이 선행되었다고 설명한다. 글이 쉽고 즐거운 이해가 된다면 그 글은 먼저 이해를 한 것의 확인이기때문이고 글이 어렵다는 것은 아직 그 글을 주관체험하지 못하고 있어서라는 것이지. 주관체험이 쌓여서 객관경험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몸이 닿아서 얻은 정보들이 반복에 반복을 함으로 객관화가 될만큼의 에너지가 생성되면 그 에너지가 당겨들이는 객관정보가 ‘책’이라는 것으로 온다는 것이라고

 

그래서 주관체험을 책이란 객관에서 확인하는 것을 경험이라 하는 것이고 이때 경을 지날 경經을 쓰는데 주관체험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을 경전이라 하고 그것을 보고 얻는 느낌을 경험이라 하는 것이지. 그래서 경전독송을 하면 체험의 에너지장이 살아나 그 에너지가 책을 보면서 감동하고 감사하고...라는 깨달음 객관공유가 일어난다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너에게도 소리선을 같이 하여 소리통을 확장하는 체험을 딛고 ‘기적수업’에 들어가서 소리체험을 객관경험하라고 하는 것이지

 

영험은 영이 겪는 것으로 이 영험의 판단은 타인이 한다. 체험은 피에서 생기는 것이고 경험은 눈에서 생기는 것이고 영험은 물에서 생기는 것이다. 체험은 안에서 밖으로 라는 방향성이고 경험은 밖에서 안으로 라는 방향성이고 영험은 안과 밖을 포함한 에너지라고 본다

 

영검하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카리스마 아우라 후광 광배라고도 하는데 그 사람만의 고유한 무엇으로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멋’이라고 하는 것일게다. 주관체험은 ‘맛’이라면 영험은 ‘멋’이라는 것이고 ‘맛’을 ‘멋’으로 만드는 통로를 경험이라고 하는 ‘글이거나 말’이라는 수단이라고 본다

 

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글도 많이 쓴다 그만큼 주관의 객관화를 내 스스로 한다 말은 체험이고 글씀은 경험이다 내가 말한 말을 객관경험으로 다시보기를 하는 것이고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 나만의 맛난 말 멋진 소리를 다듬는 내가 나를 채짹질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독송을 한다는 것과 같고 내가 나에게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보니까 어떤 말을 함으로 복덕을 쌓아 내 영의 양식으로 하여 영험이 되게 할까가 된다. 영험에 따라 성령으로 나타나기도하고 악령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성령은 평화와 온유와 행복의 에너지로 나타나고 악령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가 어떤 말을 어떻게 반복훈련하였나에 따라 성령으로 나타나는 방향성이 있고 악령으로 나타나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지

 

소리선을 내가 가르치지만 이 소리가 양날의 칼같아서 성령의 길로 가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악령이 쓰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소리통을 절차탁마하는 일도 어렵지만 절차탁마하여 만든 궁전(소리통)을 무엇에 쓰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나는 소리통을 ‘가스펠’을 불러올리는데 쓰라는 권면을 한다. 잘 딱은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단으로 쓸 때 그것을 아름다운 화관이라고 한다. 너에게 자랑하려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성령과 하나됨으로 영험하기위해서 하라는 것이지

 

너에게 들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고 멋지고 아름다우려 가스펠을 부른다는 것이지

이번에 내가 알게 된 것이 소리를 매기고 노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마중물을 부어서 신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지만 아무에게나 하면 안된다는 깨우침이다 다시 말하면 밑빠진 독에 물을 붓지마라라는 현장확인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고 자기를 거룩하게 하고자 하는 뜻 세움없는 자에게 돼지에게 진주를 건네지 마라는 것이다. 이론으로는 너무나 잘 알지만 기운이 섞여 있으면 실천은 어렵다 그래서 기운을 나부터 가름을 해야 하는 것이고 나는 성가를 부르기에 합당하도록 나를 훈련시켰기에 성가를 부르는 현장을 만들어가야 하구나 하는 것

 

이제 처음 예수를 불러 손잡았을 때 찬송을 그렇게나 불렀던 그 밑바탕이 나타나는 것이구나 내가 찬송하고 내가 지휘하는 그 웅장하던 영험이 그간 먹물가름을 하느라 묻혀있었다가 먹물이 다 희석되고 이제는 영험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지. 며칠 간 꿈에서도 지시하시는 것 오늘의 새벽 꿈에서 무엇인가 내 에너지가 다르구나 하는 것 인연의 크기에 따라 같이 가는 길이도 달라진다 시절인연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한 인연의 길이가 나의 길과 같이하는 길이가 되지 않으면 저절로 끊어진다

그렇지 않은가? 인연의 길이의 장단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언니가 미국행을 한다는 것을 간접으로 접했는데 당시 신탁이 건강상 그 시점(정초)에는 좋지 않은데 하는 것이지만 나에 대한 관점들이 부정적이라 말을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손녀의 생일에 맞춰서 미국행을 했다고 하더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미국에 있을 때 내 에너지를 통해 성령의 가피를 둘러주는 것이어서 매일 내가 부른 찬송을 보내주거나 하였다. 빛결에게도 늘 소리를 한 것을 보내주는데 그것이 나는 천군천사를 보내 가피하도록 결계를 하는 나만의 중보기도다. 귀국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나도 결계를 걷게 되다라 내 할일은 미국에서 잘 지내다가 오게 하는 것이였다는 것

 

영험하다는 것은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체험과 경험이 이중나선으로 꼬여져 겹겹으로 길이로 영력을 만들고 점점 확장되는 영험이 영검으로 나타날 때 그것을 예언이라고 하는 것인데 미래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악령의 길이고 내가 쓰는 ‘말’이 어떤 근거- 경험을 딛고 이는 것인지 먼저 쓴 에너지는 어떤 것이였는지를 찾아내는 것이지 예언은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있기 이전에 있던 ‘글’을 마주하여 글값을 찾아 제대로 부림하는 공부다. 미래예언 쪽으로 에너지를 굴리는 것이나 남을 쪽집어내는 것에 쓰는 것을 악령이라고 한다 성령은 늘 나를 보게하고 내 안에 걸림됨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내어 매듭이 없게 하도록 가르치신다. 그래서 성령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의 길을 가는 사람은 외부의 마술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 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하고 찬란하고 아름다웁기를 공부하는 것이지

경전은 경험영역이다 체험없이 경전만 달달배운다면 뿌리없는 허상이 되고 체험을 하고도 경전에 비추임하지 않으면 객관성을 갖추지 못해서 너에게 전할 수단이 없다. 내가 체험한 것을 경험으로 객관화하기위해서 책을 읽는다 그대가 끌리는 책은 그대의 체험을 경험으로 맛보기위한 것이다 그래서 네가 어떤 책을 보느냐를 보면 너의 레벨이 나온다는 것이지. 먼저 체험을 해야한다 그리고 경험을 하고 그 다음 영험이 있다. 나는 소리로 체험장을 열고 글을 쓰면서 경험장을 딛고 이제 나에게 일어난 기적이 무엇인가를 기적수업이라는 책을 딛고 확인하고 새로운 길을 나선다 나는 노래하는 순례자구나. 내가 나를 글꾼이나 말꾼으로 인식하였는데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그 훈련은 영험한 노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도록 하기위한 공부과정이였구나 하는 인식이다.

새벽 꿈 어떤 광장같은데 신단일 것이다. 일요일마다 출근하여 소리훈련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인데 일전 일요일 사건이 있어서 시간을 달리하여 출근을 했는데 이런 저런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저 아랫길쪽에서 어느 분이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겠다고 해서 무엇을 요? 했더니 25년후의 오늘은 어떠하겠냐? 하여 오늘과 똑같을 것이다 했더니 '명도' 다 자기가 부처님께 받은 답과 같다고 하면서 내가 어느 절에 다니냐 물어서 절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 분은 자기가 저어기에 촛불을 켜고 공양을 한다고 하길래 지나가는 길이니까 동행을 하는데 도리이문 이 있는 계단에 촛불 두개를 켜서 세운 곳이 자기의 기도터라고 하길래 손모아 관세음보살 두번을 하고 가겠다고 했더니 본사는 저어기라고 보살들이 모여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쪽 얼굴들이 봉무동에서 만나는 여사님들이더라. 그곳을 지나치려니 우택이 여사님이 그곳에서 나오셔서 그냥 가면 안된다 나랑 놀다가라 하시길래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른 꿈들...

연이틀 자그마한 할머니이기도 하고 우택이여사님 같으신 분이 나타나는데 우택이여사님은 연세가 90이 되시는데도 기운이 맑고 아름답고 건강하다 나를 만나면 늘 복많이 받아라고 하시고 이 나이에 나같은 친구를 만난 자기의 복이라 하시는 분이신데 이 분을 가람산테크에서 만나면 우택이 화잇팅 하고 춤도 같이 추고 ..하는데 못뵌지가 넉달이 넘어간다. 다시 꿈 중에서 내가 든 부채의 꿴 철사줄이 풀려서 부채살이 빠져나길래 움켜쥐고 집에 가서 다시 손봐야겠구나 하면서 할머니에게 이거 고치려고 집에가봐야 한다고 헤어지는 꿈. 부채가 풀렸다... 부채는 여성성이고 바람을 일으키는 신물로 쓰임이 된다. 오늘은 봉무동으로 가서 가스펠을 훈련할 생각이다

https://youtu.be/4iwzm-_sGkw?si=TdOLsEQ4HnGsum2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