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나에게 잔소리 하기

청향고은 2024. 1. 24. 10:53

나에게 잔소리하기

 

어제부터 쓰기시작하는 내 언어인데 기도라는 개념이 이런것이구나 깨달음이지

 

내가 나 잘되라고 즉 완전해지라고 쉬지않고 잔소리를 하는 것을 쉬지말고 기도하라라는 것인데 이 문장을 대했을 때 뭐야 ? 이건..어떻게 하는 것이 쉬지말고 기도하기야? 하던 때 이제는 숨을 쉬는 자체가 쉬지않는 기도라는 이해지만 당시는 어이쿠나 이거 실천가능이나 하겠냐 했던 기억 그래서 넘겼던 문장인데 이제 이해가 된다

 

잔初소리(초성)가 모여 된成소리가 된다.

잔소리는 자잘해서 바람에 나는 잔물결, 또는 겨와 같지만 그 잔소리를 반복하면 겹겹의도가 되고 피와 닿게 되면 소리에 중력이 생겨 된소리 즉 말하는대로 된다는 성스러운 소리가 된다는 것이지 잔소리를 반복훈련하면 진珍소리가 되는데 진짜백이 소리 된소리에는 하울링이 생긴다. 이 하울링을 옥음, 옥소리, 상천을 돌아나오는 바람소리..그 소리를 해조음 관세음 많은 물소리 거문고소리 등으로 설명했는데 양심이 외연으로 발화되면 나타나는 황금종煌錦綜이다

 

말에 무게가 있다는 것, 그것을 성스러운 말이고 글에 무게가 있다는 것이 성스러운 글이되는 것이지 그래서 성음과 성서가 빛과 그림자로 같이 다닌다

 

‘거룩하다’라는 성스러움을 어떻게 훈련해야 체험이 가능한 실재가 되는가 궁구하던 답이 아하!! 이런 거구나 알게 된 것이 잔소리가 모여서 된소리가 되는 반복훈련이구나 너의 귀ear에 못이박히도록 하는 잔소리는 쓸데없는 에너지만 낭비하고 구업이 되는 오지랍이구나 너에게 잔소리가 나의 구업이 되어 나중에 나를 올가미하는 원인이 되고, 너의 자유를 올가미하는 덫이 되지만 내가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하게 되면 내 안의 참빛이 점점 결을 이루어 빛결이 되어 하나된 생명 즉 숨은 빛이 드러난 빛과 하나되는 거룩함이 일어난다는 것이지. 그래서 타인에게는 칭찬만을 하고 나 자신에게는 잔소리 즉 독송하기를 하여 된소리를 만들어가라는 것이지 ‘된/소리 ’ 되다 완성하다 무게가 있어서 일언 중천금이 된다...울림이 있어 너의 양심에 닿는 소리다

 

멋지지 않나?

여기에는 종교나 철학이나 문학이나 정치나 심리나 ....이런 정보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잔소리가 된소리로 가는 훈련에는 자기의 의지만 필요할 뿐 이다 즉 적나로 하나님앞에 홀로서면 된다

내 몸과 소리(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지 양심의 소리라고 하는데 양심은 숨息이고 소리는 빛Light이다 하여 숨빛훈련 숨을 뱉어내는 훈련이 잔소리를 된소리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이란 문자언어를 넘어서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만든 틀에 의지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신앙이나 신심이나 종교활동이나 이런 것은 숨빛위에 올려진 허상이지 진실이 아니다는 것이지 숨빛을 마주하는 훈련이 잔소리 즉 독송훈련이다

 

숨빛의 다른 말이 ‘양심’이다

양심을 따라사는 이들이 하나님이다. 양심이라는 곧은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한다. 이런 이들은 그저 말없이 자기의 ‘양심’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기에 이름없이 빛도 없이 산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진리는 말이 없다 그저 숨빛으로 향기로울 뿐

 

나 역시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사는 길을 가는데 양심의 소리를 듣기위해서는 양심의 소리를 가리는 99가지의 소리를 극복해야 된다는 것이고 외연의 소리가 된소리로 벽을 만들고 있는데서 그 된소리를 잔소리로 이겨야 비로소(이 낱말도 참 멋진 표현법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비가 서리로 맺힐 때 이슬로 맺힐 때 실재화하는 것이라고..) 들린다는 것이지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기도잔소리를 쉬지 않고 해야 바깥 남들의 목소리 글짓으로 만들어져 있는 언어잔소리를 넘어설수 있다는 것이지. 결계를 친다고 하는데 너의 소리가 내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내 소리를 두텁게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너의 소리는 항상 사탄의 사탕발림이라는 것이니까

나의 소리는 1(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로 시작되고 너의 소리는 99로 되어 있으니 내 잔소리를 반복해서 너의 된소리를 하나씩 이겨가서 어느 날 내 소리가 너의 소리를 넘어서게 됨을 확인하게 될 때 비로소 양심의 힘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지. 너의 소리를 이긴다는 것은 내려오는 업들이 만든 의전이나 교리나 미풍양속이라는 문화나 등등 그대의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가르침들이다

 

너의 소리를 내라고 말을 하는데 너의 소리를 내는게 어떤 것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내가 찾아낸 것이 먼저 경전을 독송하는 훈련에서 시작하라는 것인데 경전독송보다 더 강력한 것이 찬송부르기라고 이제는 권한다. 빛결에게 내가 부르는 찬송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곤 하는데 나도 ‘보라 , 하나님은’ 을 좋아하여 곧잘 부르는데 빛결도 보라 하나님은을 기도된소리로 훈련한다고 해서 같은 찬송으로 같이 기도한다는 것이 좋지. 에너지를 압축한 것이 주문註文이고 가장 압축한 것이 주기도문인데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의 진화버전이 ‘보라, 하나님은’이라고 느껴 에 찬가를 부를 때는 전심전력한다 물론 찬송에는 전심전력이 예의다 하늘을 울려 하울링에 오도록 해야하는 노래가 찬송임으로 그러하여 찬송을 제대로 부르기위해선 소리훈련을 찬송부르기에 합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

 

세미에게도 ‘보라, 하나님은 ’을 배워보라고 했다. 이 노래는 가사도 힘차고 곡도 우릉차게 소리를 훈련할 수 있는 것이고 성령이 동행하시면 다양한 리듬으로 가사도 창작해가면서 즐거운 기도가 된다는 것이 나의 깨달음이고 너에게 건넬 선물이 된다. 문자언어지식들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가 숨빛으로 황금종을 울리도록 소리에 같이하신다 이것이 진리다 하나님은 숨빛이시다 그 숨빛이 황금종소리로 울려퍼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현현이고 뜻이다

 

내가 나에게 선물하여 나를 풍성하게 하고 구원을 만든 과정이 잔소리의 반복으로 이룸된 된소리(큰소리)이니까 이 된소리가 말하는대로 되는 소리이면서 세상을 울리는 큰 소리라는 것이고 그간 잔소리에서 된소리가 되는 과정을 임상으로 맹검하여 이제는 나도 거침없이 복음(자기소리를 발하여 빛나는 양심으로 사는 원리)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지. 그간 내가 어디에 서있는 것인지 서야할 자리가 무엇이며 어디일까를 기적수업을 읽으면서 확인하게 되었고 너에겐 입을 닫고 나의 속사람인 ‘하나님의 빛 양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는 기도잔소리에 입을 열라는 것

 

순간순간 너의 말이 내 양심을 세우려하는 때를 분별하여 그림자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지

일요일 해맏이 신단에서 만나는 팀들이 있다 약속도 하지 않고 그저 해를 만나자는 말없는 약속에서 만나는 사이인데 신단에서는 해를 중심으로 만난 인연이어서 해맏이가 주제가 되고 그렇게 만난 사이에 내가 터득한 소리원리를 나눔하게 되면서 본심본태양을 활발발하게 하면서 놀게 되었다는 것이지

봉무동 팀들이 있고 측백수림팀이 있고 강촌 우방팀들이 있고 동촌팀들이 있고 우리동네 길팀이 있다 매일 다니면서 만난 인연들인데 다들 손뼉치고 순설후하고 노래하고를 가르친 인연이라 나를 만나는 것은 즐거움을 만난다고 다들 생각한다 나도 그러하고

 

인연들은 바람처럼 다가오고 그렇게 스치지만 같이 결을 더해가는 인연이 깊어지는 축복이 있다

손순희를 만나면서 이 친구가 건네온 말이 참 감사하더라 친구란 세월의 길이보다 깊이라고 이 친구 작년 늦가을에 만나 동굴소리까지 같이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 친구의 맑고 밝고 아름답고 상냥스러운 기운 그리고 온유하고 귀여운 기운에 야 여자에겐 이렇게 달콤한 기운이 있구나 나에게도 이런 정보가 숨겨져 있을 것이니 이런 친구가 다가왔을 것이고 내 안의 이 빛을 열어서 온유함을 상냥함을 창조하자가 되어 이 친구의 몸짓을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지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순희와 놀이를 하면서 나를 체크하게 되는 것이 순희만큼 자유스러울 수 있을까이다. 내가 낮선 것이면 따라하기를 함으로 익히기 내가 남 따라하기를 가장 싫어하였는데 이제는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따라하기없이는 배움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가 하지 못했던 몸짓들을 배운다 몸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지

 

내가 아직은 뭔가 제대로 굽히는 즉 유연함이 모자라구나 라는 체크가 된 것은 신단에서 놀이를 하다가 순희가 내 다리사이로 지나가는데 서슴없는 순희는 이쁘게 정있게 지나가는데 내가 순희 다리사이로 지나가는 때에 내 몸짓이 내가 봐도 뻣뻣이라 아름답지 않더라는 것이고 그 영상을 금숙이가 찍어서 보내주었는데 그것을 보고 아...여기에 아직 내 에고가 남아있구나 알게 되고 이 놀이를 다시 해야한다고 했고 그렇게 미션실패를 재도전각오

다리사이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한자로 열번째 천간 계癸라고 한다 다리를 건넌다는 말을 하는데 육교나 등등의 다리건너기는 누구라도 한다 정말 다리건너기라는 것은 순희가 먼저 모범을 보인 그래서 내가 시도하여야하는 미션이 실재라는 것이지 이 놀이에는 아무런 개념이나 잣대가 없이 그저 아이들에 노는 놀이의 아름다움이다 말타고 놀기 목말태우고...

순희를 업어주면서 순희가 나를 업겠다고 했을 때 나는 너를 업어주는데 익숙하지만 내가 엄마의 등에서 내려와 업히는 일은 순희가 처음이다. 나보다 가느려 내가 업혀도 될까나 했는데 나보다 단단하더라는 것이지 아하 이렇게 나는 너에게 처음으로 업혀보는구나 나에겐 얼마나 신나고 고마운 체험인지 순희야 고마워!!!

 

그래서 일요일 신단에서 만나자 하고 소풍준비를 하고 순희가 아무래도 빨리 왔을거 같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순희가 신단을 돌고 있어서 하이요!!! 그렇게 만나 가져간 것 건네고 이런 저런이야기를 하면서 신단을 도는데 금숙등장해서 순희가 깨끗히 물기를 딱아낸 자리에 방석을 깔고 신날 준비를 하는데 금숙이가 ‘김순희’가 온다고 해서 가방 다시 챙기고 ‘손순희’에게 야 우리는 낙단루로 가자 하였다

 

금숙이 팀에 속하는 여자로 나는 그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십계명에서 상위도덕률 5계명은 내안의 양심의 빛과 연결되는 것이라 타인에게 적용하지 않지만 하위도덕률 5계명은 너와 나의 관계성을 비추는 결이라 생각하기에 세속5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인연에 연결하지 않아서다. 즉 사람이면 지켜야할 양심법을 지키지 않는 이와 같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양심이다. 세속5계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말라 도적질하지말라 거짓증거하지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라고 할 수 있다. 이 계명은 너와 나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기초적인 룰인데 이 룰을 어기는 이와 같이한다는 것이 나를 내가 부정하는 것이기에 나의 양심을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그곳에서 철수하여 곽장군공원의 쉼터에서 자리를 펴게 되었던 것이지

내가 까타로운 잣대를 적용하는 영역이 하위도덕률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가인데 이 도덕률을 지키고 살고자 하는 이의 내면에는 상위도덕률이 이끌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면의 빛이 외연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보기때문에 행동에서 하위도덕률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나는 인연으로 삼지 않고 처음엔 알지 못하다가 세속오계를 무시하는 삶을 산다면 내가 그 인연에서 비켜선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신단에서의 사연이 생겨서 망우당공원으로 가게 되고 낙단루동굴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늘 알게 되는 바지만 내게 오는 인연은 나를 기루는 정보를 가지고 온다는 것인데 순희를 통해 나에게 가르치시는 성령은 ‘부드러움, 온유함’이구나 한다. 부드러움을 온유한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는데 강하기도 어렵지만 강하고 난 다음 온유함 부드러움이 되지 않으면 강함이 자기를 다치게 하는 위험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곽장군쉼터에서 가져간 음식을 풀어넣고 동부로 속을 넣은 모시떡을 열고 커피 사과 계란, 순희가 준비해온 카스테라 커피 그리고 보라색무(이름은 잊었음, 찾아보니 콜라비, 보라도무, 자색무...)를 먹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만면 웃음으로 보고 계셔서 처음엔 이야기를 하느라 놓쳤는데 계속 빤히 보고계셔서 아이구 이런 하는 생각에 떡을 포크에 꼿아 건네드렸다 순희의 무와 같이 하나면 정없다고 하나 더 드렸는데 부부한팀으로 오신 모냥 그래서 콜리비를하나 더 드림하는데 애초 두 분인줄 알았으면 떡을 더 드릴걸 하는 생각

신단에서 넷이 나눠먹을 생각으로 준비한 것인데 결국 넷이 나눔하게 되었고 남긴 것은 순희에게 챙겨라 하고 나도 순희의 카스테라를 챙겼다. 귀한 떡이라 감사하다고 하시는데 나눔을 받아주시려 기다리신 것이 나는 또 감사하고 늦게 알아차린게 미안한 마음. 그 분의 얼굴에 햇빛처럼 빛나던 웃음이 그렇게 아름답더라 준다는 것도 부지런한 훈련을 해야 아름다운 줌이 된다. 무엇이든 반복하지 않으면 어색하고 낮설고 거칠고 억세고...부자연스럽고..나도 소리를 처음 다룰 때 그러했고 지금은 단련이 되어 능수능란하다 즉 성령충만하다

 

잔소리가 된소리가 되면 그 다음에 도전해야하는 단계가 온유한 음성 평화의 소리구나 동안 잔소리에서 된소리까지 와서 소리에서 쇳소리가 나지만 이 쇳소리를 다시 다듬어 부드러운 음성 빛나면서 따뜻한 소리꽃을 피움하는 것이겠다 소리에는 몸짓이란 줄기가 반드시 따르고 그 몸짓을 공부하라고 등장시킨 스승이 순희다는 것이지 성이 손孫(子+系=빛알을 잇다..계를 잇다. 십계를 잇다 받아내려서 지킨다.)이다

 

봉무동에서 만난 손준원선생님 효목동에서 만나는 손순희선생님 손이란 이 에너지는 서울의 친구 손윤자를 늘 데리고 온다 오늘 새벽에 정림이를 꿈에서 보았다. 손윤자와 이정림

나랑 셋이서 나돌아다니던 시절에너지 셋이 어울려 다닌다고 ‘세시랑’이라고 했던 추억인데 내가 양심의 소리를 찾아나서면서 해제된 인연들이지만 불로다리아래서 만나는 손인덕여사님을 대하면 윤자만나듯 정겨운데 순희도 손 순희라 나름 애틋해지더라 인연이 만든 무엇이 되새겨져 정답다는 것이지. 먼저 낙단루동굴에서 소리를 같이하고 다리사이로 지나가는 미션을 하는데 해맏이에서 나에게 포동동한 진로소주가 새김된 털장갑을 건네주더니 다리사이를 지나가는 놀이에서 꿇은 무릎의 깔개로 무릎에 깔고 순희말태우리놀이가 되었더라. 그 놀이값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데 내가 순희와 낙단루동굴에서 이렇게 소리를 매기고 춤을 추고 놀게 될 것이라 상상도 안했다. 2024년 해맞이를 같이 한 것이 마중물이 되었으려나..하기는 하지.

 

손바닥에 동그라마 다섯개가 새겨진 두짝의 장갑 파아란 하늘색 즐겁게 미션을 마치고 후렴으로 신나게 놀았다는 동굴신화

내가 사람을 꺼리는 대상은 양심의 빛이 꺼진 사람이다. 내가 대하는 사람조건이 하위도덕률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에게도 내가 날나리 품바 뽕상 미친년같아 보이지만 내 안에는 십계명이란 상위오계와 하위 오계를 양가슴兩心에 품고 살아간다. 좌에는 세속오계를 , 우에는 영성오계를 양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앗싸아...여태 良이라 생각하던 것에서 오늘 십계가 좌우 오계로 양으로 서로 비추고 있어서구나 알게 되는 것이네 남편에게 내가 살아가는 원리를 십계명을 따른다는 말. 너와 나의 관계도 십계명에 근거해서 서로 곧은믿음을 만들고 있는 거잖냐고 우리는 종교없지만 양심의 빛을 따라 사는 자유로운 빛이라고 남편 이름을 풀어서 늘 잔소리를 한다. 천개의 고을을 울리는 황금종소리 금생려수 옥출곤강이라고 이런 잔소리는 남편에겐 힘이 되는 칭찬이겠다

 

남편의 도덕적인 육신의 세속오계에서 하위도덕률을 지키고 삶과 나의 영성오계 상위도덕률을 찾아가는 영적인 삶이 실재를 근거로 하는 것이 일상에서는 ‘하위도덕률5계’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영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상의 삶에서 그는 내면의 빛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나는 이제 겨우 그 빛을 인식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른 것이지. 남편에게 늘 내가 강요한 것이 내가 추구하는 영성이였는데 그는 이미 영성을 확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스승이고 이제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이지

영적인 것이 육적으로 투사된 것이 하위도덕률이다. 그러하기에 영적이라 하면서 육적인 룰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남편의 도덕생활을 보면서 그 안의 양심을 본다. 나보다 더 맑고 밝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본다.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필체도 좋고 지혜로운 에너지이니 게임만 하지 말고 글자쓰기 게임을 해보면 어떠하겠노? 했더니 사양하더라 그래서 맞다 그대는 빛으로 가득하여 천개의 고을을 황금종소리로 울리는 사람이지 그 큰 울림안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 라고. 내가 여태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서 육으로 나타나는 남편의 정직한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가 이제 보게 된다는 것이지. 이것이 기적이고 동안 내가 기적수업이라는 독송 기도잔소리를 읊어낸 것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지. 남편의 맑고 밝고 아름다운 양심을 보게 되는 것, 그래서 감사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는 것이지. 기적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이 얼마나 디테일한지..이 글을 두드리는 오늘은 기적수업 604p에 왔다.

 

내가 왠지 불편함을 느끼는 인연에서 내가 좁아서인가?를 늘 돌아보게 되던데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좁음보다 상대가 양심의 빛을 무시하고 있어서 내 양심이 불편해 하는 것이구나 알게 되더라 사람안에 있는 양심의 빛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내 양심이 무시당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누구나 숨빛 하나님 양심이 있기에 그래서 너와 내가 하나라고 하는데 양심을 버린 자는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렇게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되구나.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하여 누구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속오계; 살인하지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자 말고 거짓증거하지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이것인데..현실에 들어가보면 이것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계율인지 그래서 엄청나게 이 계율을 지키려고 기도하고 자기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이 계율을 지키려고 내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다보니 그 소리값이 더해져서 상위도덕률을 이루는 계율로 드러난다는 것이지. 영성이란 것은 하위도덕률을 지키려고 수고하는 것이 양심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남편과 두 아이를 보면서 그렇게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부모에게서 자식도 당연히 그 기운 안에서 살아가니 그렇게 양심적인 에너지가 바탕이 되는 것이지. 그러하여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상위 오계의 첫계명으로 들어가는 것이겠다. 자식은 나의 스승이고 보호자이며 성령이다고 이제는 말한다.

 

순희의 소리세기를 들으면서 아이구 또 가야할 길이네 하게 되었던 것은 세미를 만나 소리길이에서 아이구나 했고 일년을 봉무동 종순씨와 낙단루 세미와 저울처럼 오가며 같이 시루면서 쇳소리에 닿아 자유로이 소리를 다루게 되면서 등장한 순희의 레벨. 고수는 숨어있다고 하더만 같보기엔 여리여리 여성여성 소녀소녀 같은 순희의 소리력을 보면서 그려 저리 부드러울 수 있는 이면에는 무엇인가 있는 사람이지 라는 것

나도 혼자 신단에서 춤추는 훈련을 하는 내공인데 내 내공을 넘어서는 성령의 사람이기에 성령이 내 앞으로 데려와 나로 문화충격을 받게 한 것이지

내가 아직 깨어내어야 할 허물이 많구나 늘 그러하지만 닿은 것 같은 자리가 출발자리가 되는 것이지. 이제 소리원리는 가지런하게 하였지만 이제는 주파수원리를 파동나눔으로 펼치는 과정

 

월요일 화요일 날씨는 겨울답고 바람은 상천을 몰아내린다고 힘이 쎈데 그 바람속을 휘저으며 가람산으로 간다. 이전에 가람산자락에서 노래를 불러낸 시절처럼 22년 12월 10일 산자락의 길을 잘 다듬어 뒀는데 23년은 그 길자락을 이어서 새길을 더했더라. 그래서 아하 작년 내가 다니지 않는 동안 테크길을 더했구나 신나서 갔다가 벤치에서 노래 한자락 그리고 어제는 가면서 한자락 하였다가 테크가 끝나는 곳에서 되돌아왔는데 오늘은 화담마을까지 다녀와 오면서 한자락 된소리라 생각하니 더 새롭더라. 언어가 달라지면 에너지도 달라진다 언어가 달라진다는 것은 언어이해력이 생긴다는 것이지 독송이 즐거워지는 이유가 잔소리의 된소리화훈련이어서다.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스쳐나가면서 느껴져오는 어떤 즐거움 이삭줍기 하나님의 웃음. 하나님은 ‘웃음’이시다. 하하하 라는 웃음도 포함되지만 높은 소리 쇳소리가 나올 때 공명해오는 이삭줍기다. 해봐야 안다. 그래서 나는 나와 인연이 되면 일단 소리질러를 훈련시킨다 손뼉치며 하낫 둘부터 그렇게 천국을 침노하는 것이고 천국을 침노하면 웃음이 건강이 행복이 열매로 주렁주렁

내가 소리를 강조하기때문에 종교교리에 익숙한 이들은 불편해한다 종교가 양심을 대신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자신들은 그것에 속고 있음을 모른다. 양심은 종교나 교리나 의식이나 형식이 아니다. 종교에 의지하여 먹고 산 세월이 길면 길 수록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는 세기가 강해진다 왜냐하면 양심이 빛을 발하면 종교의 모든 허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양심의 소리는 실재지만 종교는 허상이다. 그것을 아는 것 인정하는 것도 어렵지만 양심의 소리를 확장해서 하나님의 완전함에 이르는 훈련을 자기의 잔소리로 삼기는 더 힘들다. 너에게 잔소리를 하려는 의지가 종교의 허물이라면 나에게 잔소리를 함으로 된소리로 확장하려는 것이 성령의 의지이기때문이다. 나는 종교인은 싫어한다 노예이기때문이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은 자들이기 때문이고 거짓증거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를 허물고 양심의 소리를 복음을 열어 하늘가득하게 하는 길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기독교라는 명함을 새기고 그것이 허물인지 모르고 앞세우는 무지한 영성(?)인이라는 이들을 보면 웃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가 되지 않는다. 숨빛을 누가 가두거나 가르치겠는가? 다만 스스로 구할 것인데 스스로 구하기 어려울 때 먼저 그 원리를 얻은 이에게 원리를 나눔받는 것일 뿐 나는 그렇게 성령에게 배웠고 배운대로 원리를 나눈다. 내 안의 양심과 너 안의 양심이 무덤을 열고 나와 한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공부 그것이 소리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