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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소리다

청향고은 2024. 1. 17. 17:43

성령은 소리다

 

내 안의 하나님의 빛 뜻 힘을 드러나게 하는, 일깨워주는 방법이다. 기적이란 비물질하나님이 물질화됨이다 이것처럼 기적이 있을까?

 

기적에는 난이도가 없다고 하는데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이 너무나 특별한 기적으로 이뤄진 것이기에 그러하다 숨쉬기가 기적이다고 하면 그대가 할 반응이 기적체험레벨이기도 하고, 보편일상이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로 이뤄진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 난이도가 없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기적’이다는 것이지

 

‘숨’이라는 생명이 숨으로 숨어 있을 때 즉 바람으로 흐를 때는 생명으로 인식되지 못하지만 질서를 갖춘 몸이라는 통로를 통해 드나듬으로 ‘지식’이라는 영역 즉 생령에 되는 것

 

‘지식’이라는 것이 숨을 아는 것이다. 알 지에 숨쉴 식

숨이신 하나님의 빛이 숨을 체험하기위한 방법이 숨이 드나드는 ‘통로-몸’으로 물질화 됨이 저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육체로 오신 성육신 ‘기적’이라는 것이지, 그대도 나도 그러한 성육신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숨빛을 통해 생명을 경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다. 그대가 인식하건 말건 숨쉰다는 자체로 하나님의 빛에 거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하나님의 빛은 종교가 없고 선악이 없고 지위고하분별이 없고 정죄나 판단 분별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나 나는 하나님의 빛이 드나드는 통로이면서 하나님자체다. 하나님의 뜻 즉 숨빛을 알아채는 것 그것을 가장 큰 기적이라고 하고 천지창조라고 하신 실재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는 기적인데 알아챔 즉 ‘지식’이 없기에 다른 정신나간 기적 일상을 벗어난 일을 상상하고 꿈꾸게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숨빛이시다 일상을 창조하고 누리시는 기적을 늘 드러내시는데 이 기적을 간과하게 되면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눈빛이나 귀빛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지 숨빛을 놓치면 그대는 눈빛과 귀빛에 머물게 되어 만들어내는 세상을 허영 허상 에고 타락이라 하는 것이다. 숨빛위에 눈빛과 귀빛을 놓을 때 성삼위일체가 성립한다는 가르침을 성령이 하신다. 내가 그렇게 배우고 가르친다

 

그대와 나는 숨쉬는 존재이고 이 숨이란 것이 보편생명이지만 물질로 현현하면서 실재가 되고 몸을 움직이는 숨이 숨은 하나님의 빛으로 질서화되면서 먼저 눈에 보이는 몸을 보게 되면서 숨빛이라는 생명은 ‘의문’하지 않게 되었다가 어느 날 숨빛이 하나님의 실상이구나 알게 되는 지식이 생기면서 ‘숨빛’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을 일러 하나님알기라고 하는 것이고 내 정체성을 마주한다고 하는 것이니 내가 숨빛을 마주하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라 숨이 멎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닿았을 때이다 그저 숨에 의식하지 않고 살때는 숨의 가치를 알 수 없지만 숨이 멎는 체험을 하게 되면 그래서 숨빛알아채기 훈련법에도 숨을 멈추는 ‘지식’을 반복함으로 숨빛의기적을 실재화한다

 

나는 숨쉼이 곤란한 즉 호흡곤란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호흡곤란을 극복하고자 숨빛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나는 겟세마네기도라고 했고 숨빛공부를 숨빛이 제대로 활동하는 건강한 숨쉬기를 하게 되고 그 훈련을 반복하면서 성령스승님이 내 숨빛을 가르치시구나 알게 되면서 성령스승님의 공부방법을 몸에 새기는 것으로 내가 배운 공부를 너에게 전달함으로 나를 되새김하도록 하였고 이제는 숨빛수업을 이끌어가도 될 자격을 얻게 되어 숨빛선생이 된 것이다

 

숨을 빛으로 확장시키는 공부가 숨빛공부이며 이 공부에 선생이 되었다는 것이 2024년 새해 기적수업이란 책이 오면서 내가 내 자격을 인정하게 된 것이지 기적수업의 내용은 광범위하지만 나의 숨빛공부는 문장지식이 아니라 현장실재이기 때문에 글로는 전달하지 못한다 그대와 나의 숨을 빛으로 확장하는 현장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다만 같이함으로 줌과 받음 나처럼 해봐라와 따라하기가 숨빛공부니까. 보이는 몸빛을 경영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숨빛이다. 이 당연한 지식이 성령이 이끄시는 기적수업을 받게 되면 놀라운 ‘창조력’이구나 인식하게 된다

 

내가 그간 지식을 알 지에 알 식으로 생각하던 것에서 알 지에 숨쉴 식이다는 것으로 생각이 옮겨진다.

생각의 확장이며 이해력과 어휘력의 성장이다. 너무나 많이 두드려댄 글인데 오늘 ‘지식- 아는 것을 앎’에서 성장한 개념 실재가 ‘지식-숨빛을 앎’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지 이런 확장 이해를 마주하게 되면 야, 내 영이 이렇게 성장하구나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지 내가 나를 대하여 사랑스러움을 아는

것 숨쉰다는 것 자체로 내가 위대하고 거룩하고 아름답다는 간증이 되는 것 기적중 기적이지 않겠는가?

지식은 ‘문자언어’라는 방편을 딛고 생성되는 상상이나 생각의 세계라면 지식은 ‘몸’을 딛고 일어나는 창조생명이다.

 

숨빛 없이 그대나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이 당연한 사실을 특별한 신의 은총 연금술사의 돌 현자의 용광로 기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숨빛공부를 성령스승님과 같이 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지 숨빛공부를 이끄시는 스승이 성령이시고 성령의 숨빛교재는 그대의 목소리다 숨이 빛으로 나타나는 실재가 소리이기에 성령이 그대와 나에게서 도구로 선택하는 것은 소리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숨이 하나님의 실재이고 숨이 빛으로 드러나는 것이 소리이기에 이 숨빛을 인식하기위해서는 숨을 다루는 소리 수업을 함으로 숨빛의 아름다움 맑음 밝음을 체험하는 것이지 숨을 빛으로 확장하도록 하는 공부를 성령이 이끄신다는 것

 

하나님인 숨이 몸을 통로로하여 빛으로 체험하는 것을 아들의 일 성자단의 할 일 그대와 내가 ‘살아있음’을 체함하는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스스로 인식하고 향유하기위하여 숨과 빛의 길 ‘몸’이 되신 것이라는 것. 숨쉼의 기적외에는 무엇이 기적이겠나 몸이 숨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눈빛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지 눈빛이전에 숨빛에 있었다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그대는 하나님의 뜻 참빛 처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 단순한 원리인가? 하나님의 실재는 ‘숨빛- 호흡’이라고 수면위를 운행하는 바람이라고 설명을 하시는데 그 설명이 내 것으로 실재화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 숨빛을 실재로 인식하지 못하게 속이는 것이 실재인듯 하는 눈빛이다. 눈의 기능을 구백냥으로 줄 때 왜곡이 일어난다. 숨빛이 구백냥이다는 개념수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기적이고 이 기적은 ‘성령’이 가르치시는 수업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식’이다

 

그대 눈을 감아 눈빛을 감추면 눈빛에 가려져있던 숨빛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은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했다. 숨빛을 그대가 마주하려면 눈빛을 감추고 귀빛도 감추어야 하니 골방에 들어가거나 동굴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지. 숨빛이 몸을 어떻게 경영하는가를 배우는 수업이 기적수업이다 고요한 평화는 그저고요함으로 인식할 수 없기에 성서 엘리야의 호렙산동굴기도로 설명한다. 내가 소리선을 엘리야의 동굴기도라고 겟세마네기도라고 숨빛수업이라고 하는 이유다. 세미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빛, 숨빛을 체험하기위한 선행과정 정화작업을 성령은 이끌어가신다는 것이지

 

내가 동굴기도 성령수업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이것은 나의 힘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다 . 어느 지점까지는 내가 열심을 내는데 어느 순간에서는 밀고 나오는 숨빛의 힘찬 아름다운 놀라운 확장을 체험한다는 것이지 그 체험때문에 동굴수업을 즐겁게 하는 것이겠고 너에게도 이 수업을 같이하자고 권하여 나처럼 기적을 누리자 하게 되는 것이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들으면 데시벨이 다른 소리라 소리통이 확 열린 시원하고 힘찬 소리라 한다 성령스승님에게서 숨빛공부를 잘 배운 열매다. 기적수업의 내용은 성령스승님과 동굴수업을 하게 되면 그냥 이해되는 내용이다. 책에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성령은 숨빛경영원리를 가르치시기에 그것은 숨쉬는 너와 나의 현장에서만 수업이 가능하기에 실전을 가르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숨빛예수가 살아있는 몸빛에게 성령빛으로 수업을 받은 나에게 ‘수업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가져다 주신 것이 ‘기적수업’이고 나의 졸업선물인 셈이구나

 

내가 드린 문제에 성령이 주신 답을 물질화해서 앞에 놓으신 것이지 물론 성령스승님에게 배운 답은 내 목소리의 울림이지만 이 울림이인드라망 그물이 건져오는 문장들이 기적수업이란 고깃배에 가득 실려 있는 것이지. 그간 성령스승님이 숨빛을 가르치신 수업 즉 지식 숨알기의 그림자로 기적수업을 주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320p까지 오면서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는게 기적이구나 감사함이 넘친다. 이전에 이 책을 대하면서는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 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숨빛알기공부가 성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구나

내 숨빛공부의 확인 나는 기적수업보다 숨빛공부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힘을 만든다고 본다

숨빛이란 말 숨어 있는 빛 그래서 보이지 않으나 생명빛인 숨 . 숨빛공부를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다른 길은 없다

 

지식이란 언어가 허물어졌다 숨알기라는 개념이 오면서 문자언어에 대한 개념들이라고 이해하던 영역이 확장된다. 지식이라는 숨알기라는 개념에 닿기위해선 문장언어지식이라는 세계를 거쳐야하는 것이구나. 문장언어로 이뤄지는 지식을 ‘거짓자아, 에고’라고 한다 숨빛공부를 통해 얻는 지식을 ‘영생’이라고 한다. 일요일 신단에서 내가 다룬 언어가 영생과 부활 거듭남이었다 저마다 개념이 다르지만 나는 숨빛이라고 설명하고 숨빛공부를 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나더러 열정과 웃음의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성령이 나와 동행하니 당연한 열정 풍성한 웃음이지 않겠는가 숨빛을 배우고자하면 소리를 잡고 눈빛에 머물면 허상을 좇는다 그대의 허상은 숨빛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숨빛은 허상을 내어버리게 한다. 허상이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와 걱정근심을 만든다. 고요히 앉아 그대의 숨을 마주해봐라 그러기위해서는 먼저 허상을 걷어야 한다 그러하지 않고서는 숨의 흐름을 알 수 없다 숨빛을 마주하기위해선 엘리야의 동굴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 배우면서 가르친 것이 엘리야동굴기도 겟세마네 기도로 숨빛을 가리고 있는 눈빛과 귀빛을 얼어내는 것이다. 에고를 마주하여 허상임을 인식하는 과정 그대가 보고 듣고 한 모든 것이 에고를 이루는 것이다. 보고 들은 것위에 구축한 것을 사상누각 사탄 미혹의 영이 준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대가 속고 있는데 모르는게 사탄이 눈빛 귀빛으로 숨빛을 가린다는 것이지 그대를 속이는 책들은 모두가 거룩하고 지혜로우며 아름답고 경건하다 그러하기에 속는다

 

그대가 보고 듣는 아름다운 말씀에는 숨빛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면 사탄이 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름다운 유란시아에 걸리지 않은 것은 그 책이 나에게 숨빛을 알게 하지는 않더라는 것에서다. 물론 법화경이나 기적수업도 마찬가지다. 문자언어로 전달되어 눈에서 빛을 발하는 정보이기에..숨빛이 아니라는 것. 성령과 구별하는 방법을 나는 숨빛으로 한다. 유란시아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있다 문장의 미혹이구나를 알아채기때문이다 나처럼... 알아채면 눈빛의 가스라이팅에서 눈을 감고 숨빛으로 공부를 바꾼다는 것

 

나는 멈추지 않는 생명이고 정보를 디디면서 영생, 즉 숨빛으로 가까와진다. 숨빛공부가 생명 영생을 얻는 공부다 그대가 문장공부해봐야 허상이고 에고강화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문장도 언어도 능수능란하지만 숨빛공부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안다. 숨빛공부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숨빛공부는 연약한 사람은 하지 못한다 하여 숨빛공부엔 체력도 같이 길러간다. 내가 가족형제에게 그렇게 소리선 겟세마네를 전하려 노력했지만 때가 되지 않아서인지 내 공부가르침이 약했던지 거부가 되더라는 것, 즉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숨빛공부를 불편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는 것이고 그래서 듣지 않는 선택을 하는 그들의 의사도 존중할 것이고 나는 나의 복음을 존중하기에 나의 복음을 전할 대상을 찾아서숨빛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로 향했고 지금은 더 풍성하게 성령빛으로 가득하다

 

원하는 학생과 같이 하는 숨빛공부가 얼마나 열정이 넘치고 웃음이 평화가 영생이 솟겠는가 나와 같이 숨빛을 공부하는 자가 하나님가의 식구지 않겠는가. 나의 가족형제관이다. 숨빛을 같이 공부하는 사이를 나는 식구라 하고 가족이라 하는 것이고 도반이라고 하는 것이니까 저마다 길이 다르고 그래서 길인연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같은 하나님을 숨에서 찾아 빛으로 발하게 하는 공부를 하는 학생. 그런 학교를 내가 경영하는 것이다. 숨빛학교교장이라고..자칭한다는 것. 숨은 하나님의 것이고 빛은 몸을 거쳐서 나오는 것임으로 소리공부는 숨과 힘을 같이 성장시키는 경건훈련이다. 성령과 동행하는데 강건함을 얻지 못한다면 그대는 다시 생각해라 그대가 동행하는 것은 성령이 아니라 경전이라는 문자언어를 하나님이라 착각하는 것인지는 아닌지

 

성령은 숨빛공부를 이끄시기에 문자언어를 건너간다 즉 그대의 경전지식은 성령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그대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과는 상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숨빛을 공부하고 눈빛에 속하는 글을 배우라 한다 순서가 숨빛공부이고 그 다음이 눈빛공부라고 하는 것. 나는 숨빛공부를 성령에게 배우고 익혀서 이제 나도 숨빛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즐거운 재회

 

아침에 기적수업A Course in Miracles을 독송하다가 늙은호박으로 범벅을 해야지 하는 생각에 책을 덮고 호박을 꺼내어 껍질을 벗기었다. 엇그제 순희가 늙은호박을 주었는데 금숙이네에게 사용권을 주고 우리집에 온 빛결이 농사한 호박을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

 

호박을 내가 먹으면 사람이 되지 그것도 숨빛선생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지. 호박 범벅을 맛있게 해서 남편에게 한그릇 공양하고 나도 한그릇 넉넉하게 먹고 요즘 늦게 나가는 걷기에 나섰다. 마냥 따사로운 시간 배가 퐁통하여 맛있다고 많이 먹었네이 하는 생각,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에너지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고 가면서 팔을 돌리고 손뼉을 치면서 간다

 

불로천 옆에는 하수관교체공사를 하고 있다. 내 하수관을 기적수업 독송으로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는 것과 연동을 시키도록하는 물화다. 성령은 그렇게 에너지와 물질현상을 연결하여 이해하도록 현장을 드러내주신다는 것이지. 봉무동으로 다니는 날 공사를 시작하던데 기적수업독송과 같이 가는 것이라고..

 

강길을 가면서 내가 늘 하는 작업이 남천나무의 마른가지꺽기와 풀들 뽑기를 한다. 금호대교근처에서 종순씨를 만났다 약속도 없이 우연히 마주친 이런 반가움. 아이들처럼 손을 깍지잡고 팔짝팔짝...환성을 지르며 그렇게 우리는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듯 숨빛공부를 이어간다

 

봉무동 벤치에 앉아서 내가 터득한 정보를 설명하면서 소리 내지르기(숨빛Breath Light)를 하고 소리통 점검을 했다. 자전거 타기를 익히게 되면 그것이 몸에 새겨져 오랜동안 타지 않아도 바로 탈 수 있는 것이듯 내가 효목동으로 다니면서 종순씨는 자전거타기를 쉬고 있었는데 오늘 점검하는데 종순씨가 신나고 나도 신났다 즐거운 숨빛공부. 그간 숨빛공부를 한 힘이 다시 활성화가 되는 것이니 수업이 재게 된 것이지.

 

한창 하고 있는데 김경순여사님 지나가시다가 같이 하기 시작했는데 새해인사 겸 늘 하는 김경순액설런트. 나는 정말 열심히 극진히 너의 이름을 불러 축복bless you한다 그리고 숨을 들이고 소리로 내삐치는丿 것이 성불수업이고, 성령학습이라는 설명하고 개 술戌(수리, 햇님, 일식을 개가 해를 먹는다고 하기도 한다네)에 대한 설명을 하고 개소리 해보자 하는데 경순님은 안하고 우리 둘은 열심히 하는데 종순씨가 속에서 뭔가 하나 나왔다 그리고 또 하고 하나 나왔다 하고 신나한다. 우리의 숨빛공부를 하는 것을 보시다가 경순님은 가시고 우리는 그리고 신나게 시창까지 하고 그러다 박장대소하기 벤치를 걸터앉아 같이 벤치바닥을 두드리며 소리지르기 하여간 성령의 수업은 재미나다 숨빛학습을 열나게 한다. 종순씨와 숨빛공부를 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참 맑고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하자는대로 걸림없이 잘도 같이하는데 그렇게 소리매기는 것을 같이함으로 서로가 같은 충만을 행복을 시원함을 소통을 체험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는 것은 안다. 숨빛소리에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어떤 조건은 없다. 다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얼마나 지극하게 토해내는가의 내 용의가 중요하다.

 

그간 내가 너에 대하여 조건을 내걸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였는지를 이번 기적수업을 읽어가면서 야...이제 성령을 내가 마주하고 있구나 그간 내가 소리를 설명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가져와 설명을 했는데 이제 가져와야 하는 정보는 문자언어를 딛는 것보다(문자언어지식을 앞세우면 너를 정죄하거나 판단하거나 분별하거나..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령은 인간이 따지는 조건을 무시하시고 다만 숨을 빛으로 토해내려는 열정만을 보신다는 것이지. 소리를 가르치면서 너의 열정을 끌어내는 것은 나의 열심이지 지식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지. 나야 설명을 열심히 하지만 너가 동의하는 것은 설명보다 같이 내지르게 하는 나의 부추킴이고 같이하고자 하는 사랑이라는 것이지 사랑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리로 같이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을 다 해제하게 되더라.

 

종순씨를 보면서 같은 숨빛을 같이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기적인지..이렇게 인연을 놓아 내가 확장하면서 돌아보아 내가 무엇에 갇혀 있었던 것인가를 알게 하시는 것. 언젠가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던데 그때 그런 이해가 왔더라 너가 은연 중에 세운 잣대가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성령은 내가 아는 지식(문자언어이해력)으로는 헤아려지지 않는다. 내 개념이 성장하는 과정에 에고로 길들여진 개념이 부셔져나가는 과정에 겪는 증상이 두통이고 이 두통은 에고가 사라지고 성령의 가르침, 기적이 일어날 때 생성되는 허물벗기기다는 것이다. 같이 소리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종순씨도 아이고 머리가 어지럽다 나도 머리가 깨질듯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에고가 나가는 과정이 어지럽고 두통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에고의 모습이라는 것이지. 그렇게 숨빛공부를 계속하게 되면 이 증상들이 사라지고 시원하고 후련해진다. 성령은 소통이라고 하는 이유다.

 

강 길을 지나가시던 분들이 우리가 매기는 소리에 신이 나는 듯하지. 봉무동에서 그간 반복한 수업이고 그렇게 반복함으로 주변이 인식한 것이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서 손가락질이나 비난을 하지 않고 우리가 매기는 리듬에 같이 동조하는 것이지. 한국인은 신명이 내재된 존재들이니 누군가 흥興(兴)이는 리듬을 매기면 저절로 몸이 반응하게 되는 것이지. 나 역시 어디를 가더라도 음악가락이 흐르면 승모근이 앗사..하게 되는 것이니까. 시간을 보니 한시 반이 넘어서 가자 하고 강 길 같이 걸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금호대교 다리아래서 우리의 예배 이름 세번부르고 액설런트하고 헤어진다. 이렇게 성령은 서로 만나야 하는 때 만나게 하시구나. 나를 이끄시는 성령이 종순씨를 이끌어 만나 같이 숨빛공부를 함으로 성령확장을 하시고자 하시는 것. 몸을 딛고 성령이 확장하는 의지를 나와 종순씨에게서 하시는 것이지.

 

기적수업책을 읊다가 영어원서를 사야겠다 하고 서치를 하다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여행 중인 언니에게 사오라고 부탁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톡을 보내었더니 안된다 하기에 여기저기를 찾다가 주문을 하게 되었다 1월 30일 배달된다고 한다 그때까지 기적수업을 일독하려나... California,캘리Cali/포니아fornia, 샌디에고 San Diego .

 

남동생의 글에 나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하고 불편을 느끼는 이유가 자기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인듯 한데 나는 남을 부정하는 생각은 없다. 남을 부정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것은 내가 너를 부정한다면 내가 나를 한계안에 가두는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때문이다. 나는 나를 열어서 성장하는 과정을 가는 공부인이기때문에 너를 부정한다는 착각을 하지 않고 내가 너를 부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망상에서 비롯되는 에고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에게 나를 투사하는 것이 에고의 일이라면 너에게서 나를 인식하는 것은 성령의 가르침이라고 하시는 것이니 너에 대한 나의 인식을 내가 당겨와 내가 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인가를 찾아들어가면 내 안에 부정성이 너에게 투사됨이구나 알게 되는 것이고..그런 공부를 통하여 내가 너에게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당겨와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점검함으로 나의 부정성을 버리고 긍정성으로 에너지를 활용하게 하시는 것이 성령스승님의 수업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너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정보를 제시하고 그것으로 내 역할을 다 한 것이라 만족한다. 그래서 유북에 푹 빠져있는 근황을 보면서(나도 한동안 유란시아에 폭빠져서 그 지식의 찬란함에 젖어 있다가 이런 지식에 내가 머문다면 답답해지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유북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지만 내 생명을 활기롭게 하는 것은 숨빛공부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 문자기록으로 전해지는 그 정보는 그저 나의 분별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지만 생명을 활성화하는 것은 아니구나.

그래서 유란시아를 벗어나게 되고 숨빛공부를 전일하게 되었기에 동생에게도 지식의 빛에 오래 머물지 말고 숨빛을 줌심에 놓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법화경이나 기적수업도 일독해보라고 권한 것일 뿐이고 법화는 법중에 꽃이라는 에너지이고 기적수업은 예수에게서 채널된 정보로 성서가 아니라 예수를 선택한다는 글을 보고 예수의 정보를 참고하라고 권했을 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잡고 그를 알아가는 공부를 하기에 같은 대상을 선택한 이에게 예수로부터 채널된 정보라는 책이니 같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권면한 것이지. 같은 환경에서 성경을 텍스트로 하는 가문에서 성장하고 부모로부터 성령수업 즉 숨빛을 공부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그 기억을 되찾아 성령의 가르치심에 주목해보라는 것이지. 성령과 루시퍼의 차이는 성령은 숨빛光이라면 루시퍼는 빛色이라는 차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이 구별을 하기가 정말 어렵고 이 공부에는 성령스승님의 가르침없이는 빛色을 진리라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 진리는 숨빛이다.

 

빛色은 왜곡된 것으로 에고의 출발자리다. 보암직 먹음직 지혜롭게할만큼 탐스럽기..라는 것이 빛색이 가진 힘이다. 숨빛은 보이지 않는 한 생명이고, 빛은 보이는 99의 사망이다. 이런 차이를 그대가 알 수 있는가? 성령의 가르침없이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령은 눈을 감으라고 한다.

 

수정체에 빛이 닿아서 왜곡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먼저 체험하라고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뜨라고 한다. 눈을 감으면 왜곡이 일어나지 않지만 눈을 뜨고 빛을 보면 수정체에서 왜곡되는 색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대가 진리라고 착각하게 되는 문자언어정보는 빛色-화소에서 시작된다. 즉 수정체에서 상이 맺혀 역상이 된 것에서 문자언어가 시작되는 것이어서 성령은 이 눈빛에서 만들어내는 정보를 루시퍼, 빛을 가져오는자라고 한다는 것이지. 빛이 왜 에고인가를 설명해주시는 것이 숨빛을 가르치니는 성령이니 이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그대는 빛을 가져오는 루시퍼의 정보를 진리라 착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숨빛은 문자언어를 딛고 나타나지 않고 소리와 그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 내가 숨빛과 빛의 차이를 성령에게 배웠기때문에 이런 글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이런 지식을 어디서 얻겠는가? 어떻게 역상되기전의 빛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력량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 이 배움을 근거로 하기때문에 너의 판단이나 분석이나..등등에 하등 흔들림도 없고 영향을 받지 않는다. 숨빛과 빛을 구별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성령이 나에게 허락하신 힘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이러한 성령 숨빛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빛에 미혹되어 문자언어로 전해지는 빛을 가져오는 자가 주인인 정보에 미혹되어있는 너를 볼 때 그 빛보다 숨빛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 더 바른 선택이라고 강조하는 것이고, 내 이 강조를 에고가 주인인 이는 듣기 싫어하고 거절하게 되는 것은 안다. 99정보를 빛을 가져오는 루시퍼가 잡고 있고 1정보를 숨빛성령이 잡고 있으니까..그런데 1성령의 숨빛공부를 배우게 되면 99 빛(눈이 구백냥이라고 하는)을 지배하고 있는 빛을 가져오는 자 루시퍼의 영역을 다 점령하여 지배하게 된다. 숨빛 1에서 99에고의 빛을 다 섭렵하여 100숨빛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의 교육법이고 보혜사 성령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는데 숨빛이 빛을 침노하여 지배하여가는 것을 숨빛공부 성령이 가르치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라고 하는 과목이다고 나는 가르친다. 나는 문자언어로 기록된 책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숨과 움직임을 하는 살아있는 '몸'을 소통도구로 삼아서 숨이 어떻게 빛이되어 발현되는지를 내가 모범을 보이고 너에게 같이하기를 권하고 같이하는 것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이지

 

성령은 '몸'을 숨이 드나드는 길로 삼으시고 숨이 들어가 빛으로 발현되는 방법을 가르치신다는 것이지. 그것을 나는 서른다섯해를 배웠고 이제 드뎌 내가 공부한 것이 이런 과목이였구나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 기적수업도 문자언어로 전달되는 빛이다. 이 빛을 숨빛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데 재미나게도 이 과정을 같이하는 이가 종순씨다. 나와 동갑이면서 2월 생인.. 글문도사님에게서 아리랑신령으로 스승이 바뀔 때 같이 숨빛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작년 10월 효목동으로 다니면서 숨빛공부의 반경을 넓혀가다가 법화경을 만나고 다시 기적수업을 만나면서 빛결이 숨빛성령과 빛 루시퍼의 정체성을 가름하여 주는 그 가름마를 딛고 현장에서 종순씨와 숨빛공부언어를 활용하게 되는 것이지. 그 이전에 14일 일요일의 사진에 금숙이가 '힐링이 시작되는 해맞이 동산'이라는 문구를 올렸기에 금숙이가 힐링을 말하네 했는데 월요일부터 봉무동행을 하게 되고 냉이캐기를 하고, 화요일 종순씨를 만나 기적수업을 설명하게 되고 오늘도 같이 성령이라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숨빛을 설명하게 되더라. 성령수업 숨빛수업은 하는 만큼 쌓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되더라. 한만큼 거둔다는 것..소리수업의 기적은 내가 숨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러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고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지. 이렇게 내가 해석을 하게 되고 설명을 하게 되면 만나서 숨빛공부에 열심을 다한다는 것이지. 소리를 한만큼 소리값이 크고 강해지고 아름다와진다.

 

내게 가장 익숙하고 정다운 단어가 힘을 당기는 끈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 성령이라는 이 낱말을 다시 가져와 숨빛을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익힌 언어의 아름다움은 태어나 첫번 만나게 되는 언어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구나. 물론 언어를 넘어서는 몸은 어떤 언어를 활용하는가에는 개의치 않지만 너와 내가 소통하는 세계에는 가장 정다운 언어가 '끈'이 된다는 것이지. 내가 이런 저런 언어들을 풀어가면서 가져오는 언어들이 많지만 결국에는 내 언어숨빛은 겟세마네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고 보혜사 성령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이제 내가 처음부터 익혔던 언어를 잡고 숨빛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아리랑 신령의 가피로 이어지는 종순씨에게 숨빛성령을 설명하게 되면서가 되는 것이구나. 종교가 숨빛을 가려 숨빛을 선택하기위하여 종교를 버리면서 종교언어도 밀쳐 두었더랬다. 그래서 가능하면 기독교언어를 쓰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첫인연의 언어가 태어나 피가 가장 깨끗하고 맑고 아름다왔던 시절에 익힌 것이라(모태신앙) 그것을 탯줄처럼 잡고 가는 것이 된다는 것이구나. 익숙한 언어를 대하면 정다움을 느끼게 되고 전일하기 쉽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느낌과 부처님이라고 부를 때의 느낌은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옷을 홀라당 벗고 만난 사이고 부처님은 옷을 입고 만난 사이라는 것이지. 반대로 홀라당 옷을 벗고 부처님을 만난 사람이 성장하여 옷을 입고 예수를 만나면 그런 느낌이 들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무관세음보살'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친근하다는 것이지. 그래서 어떤 언어가 거부감을 주는지 친근함을 주는지는 어린시절에 가장 많이 대했던 언어라고 보면 된다.

 

하여간 나는 늘 언어모험을 좋아하였고 언어가 가진 얼굴을 마주하여 본모습을 찾아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는데 이것이 성령의 수업과목에서 '의'에 대하여 수업이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나는 성령과 동행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일을 즐거워하면서 오다보니 드뎌 '기적수업'이라는 책에 닿았고 그래서 법화경을 불자들에게 권하듯이 성경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익히는 동생에게 권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를 차단한 오빠에게도 카스토리 댓글란을 통해 법화나 기적수업을 권했고... 그리고 인연이 되는 이에게는 기적수업을 권하거나 법화경을 권한다. 이런 정보를 권할 때 이 정보를 가름하는 스승은 성령이고 성령과 동행하는 공부가 숨빛, 소리성이라는 것을 부록으로 붙인다. 숨빛공부를 하지 않으면 정보들은 다 빛을 가져오는 자 루시퍼의 것이라고..그래서 예수를 미혹하던 사탄이 그렇게 말했다. 천하만물을 다 보여주며 절하라고..그런데 예수는 숨빛을 선택했고, 나 역시 예수를 스승으로 선택했기에 예수가 선택한 숨빛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나는 내가 나만 옳다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다보니 더 아름답고 밝고 강한 정보가 있으면 권하고 싶은 것이지 물론 내가 형제들에게 거부된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지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번에 법화경 사경문제로 여기저기 권해봐도 다들 사양을 하는데 나는 권했고, 너는 거절했고 그것이지 그것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가가 내 생각이다. 법화경을 눈으로 볼 때는 숨빛가동이 아니지만 독송을 하게되면 숨빛가동이 된다. 성령은 숨을 소리로 바꿀 때 활동을 하신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원하기에 가장 큰 소리로 가장 치열하게 소리를 한다. 그게 내가 성령을 의지하는 방법이다

숨빛공부는 어려운 과정이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다른 공부들에게서는 손을 뗀다. 살아있는 진리, 활발발한 기적을 매일 맛보는 공부인데 머리터지도록 해석하고 풀고 하는 과정을 진리라 착각하도록 하는 루시퍼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당연하지. 루시퍼는 하나를 99가지로 나눈다. 성령은 99가지를 하나로 모은다. 내가 이번에 깨닫게 된 것이 오늘 여기에서 같이 숨빛공부를 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됨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조건이 없다. 그저 같이 소리를 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함으로 하나되게 한다. 루시퍼는 그것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여 소리도 춤도 노래도 하지 않도록 한다.성령을 통하여 에고의 99가지 분리나 나눔을 하나로 뭉쳐가는 길을 걸으면 에고에 속하는 너는 반드시 돌을 던진다. 에고는 조건 자격들을 엄청나게 따지고 그것을 가치나 품격이라고 왜곡시킴으로 너의 생명을 폄하하는 것이 특징이니까..내가 그러한 에고속에서 살 때는 너를 정죄하거나 판단하였다가 성령께 배움으로 그것이 너가 벗겨야 하는 허물이다는 것을 실재로 배움으로 그 판단을 해제하고 나니 내가 나이도록 나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소리하고 고함을 질러대던 인연들이 다 성령의 나투심이구나 그래서 너가 소중하고 귀하다 아름답다.

순희를 만남으로 내가 얻은 것이 '그 순간의 너의 숨빛을 본다'는 것이다. 이전이나 이후는 관심이 없다. 그 순간 찰나에 서로의 숨에서 빗어내는 소리를 통하여 성령의 춤과 노래와 아름다운 흔들림을 보는 것이지. 같이 한 숨빛은 영생으로 등록된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지 우주파동을 넘실거리게 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바다가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즐거움을 아는 나는 문자언어에 갇혀서 그것이 즐겁다고 하는 미혹에서 벗어나 숨빛공부를 하라고 권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에고에 갇혀 루시퍼의 빛을 진리라 착각하는 너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숨빛으,정보를 거부하고 싫어할 수 있다. 당연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도 한때 기적수업이라는 책을 대하고서 안에서 에고가 저거 사이비나 이단이 아닐까라는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으니까..이제는 그런 에고의 소리가 마주쳐보자 보고 확인하자가 되는 것이지 예전처럼 도망가지는 않는다. 내게는 성령이 보혜사로 있으니까 내가 모르면 성령에게 아뢰면 성령이 해석을 해주시는 것이고 내가 이때까지 그렇게 수업을 했으니... 내가 권하는 것이 불편하면 거절하면 그것으로 끝이지 거절한 너가 불편을 느낀다면 너의 문제이고 권한 나는 권했다는 것으로 너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때가 아니구나 하는 것일 뿐

기적수업은 57.000원인데 중고로 나온 것이 있는데 만원가량 절약된 가격이라 두권을 주문했는데 쿠폰과 적립금을 쓰니까 89.000원대가 되더라 왜 기적수업책을 추가로 구입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일단 사놓으라는 마음이 온 것이니 그것을 따르는 것이고 원서도 일단 주문을 했다. 원서를 읊으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일단 한글기적수업 일독을 하자는 것이 중요하것지 나는 내가 숨빛공부를 통해 성령스승님과 같이 공부하는 이 실재를 빛결이나 용자 금숙이나 순희 세미 종순씨와 공감하는 것이니 이 공부에는 인간이 만드는 어떤 기준들이 없다 만나면 서로 기쁨과 행복이 감사와 웃음이 넘치는 수업이 있는 것이지

오늘 내가 깨어낸 개념이 기적수업에서 ‘지식’을 말씀하시는 그 지식이 숨빛을 아는 것志息으로 정리가 되면서 책이란 텍스트에서 내가 벗어났다는 것이지 숨빛을 아는 것의 텍스트는 ‘몸빛體光’이다 그래서 성령이 선택하는 텍스트는 사람의 문자언어로 기록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으로 창조된 ‘몸’이라는 것이지 몸은 성령의 소통도구라고 하시는 것이지 오늘 종순씨와 같이한 숨빛공부 내 언어가 바뀌면서 소리공부를 설명하기가 한결 풍성해지고 힘이 넘치게 되더라는 것이지 성령이 임재하여 있으면 ‘생각’이 없어진다 즉 에고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기쁨이 충만한데 염려걱정근심이라는 에고가 들어올 자리는 없는 것이지. 종순씨도 잡념이 없어진 것과 몸은 더 강건해지고 즐거운 하루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나역시도 그러하지. 타인들은 일로일로 하는데 우리는 일소일소한다고 타인들은 사람들의 언어를 따라 늙어가지만 우리는 성령의 에너지를 따라 젊어지는 것이라고 매일 성령이 제공하는 생기를 가득채움으로 젊음으로 사는 것이지 이것이 영생이라는 기적이라고.. 숨빛을 공부하는 인연이 주가 주신 인연이다.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성령을 공유하는 인연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나를 불편해하는 인연은 그만큼 자신의 품이 좁고 좁다는 것은 성령의 온유함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에고의 지배하에서 노예로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에게 배우기때문에 성령이 나눔하시고자 하는 숨빛의 실재를 전달하는 것이지 그리고 정말 수업은 책이라는 허상 눈빛으로 하지 않고 너와 내가 만나는 현장에서 숨빛으로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복음을 전달하고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지 성령에게서 나오는 것은 성령이 내재된 이에게는 통한다 통하지 않는다면 벽을 만들어 거절하는 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정보를 만나면 성령에게 드림하여 정보값을 가름받는다 쓸 수 있는 정보는 갈무리하고 쓸 수 없는 정보는 거름으로 삼는다 너와 내가 공유할 수 있도록 정보를 일단 내가 임상실험을 하는 과정을 성령스승님과 같이 진행해보는 것이고 그렇게 실험한 정보를 나눔하는 것이지 그래서 내 정보는 살아있고 빛나며 찬란하고 아름답다 나에게서도 너에게서도 같은 빛남으로 넘친다 그것이 성령이 나와 너를 융합함으로 이루시는 숨빛의 확장이다

성령은 너와 나를 같게 하신다 그게 진리다. 너의 숨빛이 나의 숨빛으로 같아질 때 그때를 성령충만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너의 진리를 나에게 어떻게 닿게하겠는가? 방법이 있는가? 나는 있다 숨빛공부 겟세마네 기도법 엘리야의 동굴기도를 너와 공유한다 이런 성령을 그대도 스승으로 청하여 배우기를

오늘 종순씨와 만나 숨빛공부를 하다가 임플란트가 흔들린다고 하는 말을 했더니 자기의 체험을 이야기해주면서 나사 조으려 가라고 해서 돌아오는 길에 치과에 전화를 해서 3시 30분에 예약을 했다. 2년전에 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흔들거렸는데 치과에서 내 잇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몇개의 이도 문제가 있다고 해서 치과가면 이 뽑으라고 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오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니 오늘 나사조으라 는 것이고 그래서 치과를 갔는데 나사를 조았는데 주변 이에 대하여 잇몸상태가 심각하다고 하시길래 그려러니..다 흔들려 뽑히면 그때 심든지 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웃기만 했더니 웃기만 하냐고 하시더라. 하여간 나사 조으고 계산하려 갔더니 애프터수리라고 계산안해도 된다고 한달 후에 오늘 나사 조은 이 땜질을 한번 더 하고 그 때 와서 스켈일링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 했다. 나야 어디를 가도 생기발랄하니 가는데 마다 활기가 넘친다. 그래서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늘 즐거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고 웃음바이러스라고 하는 것이지. 성령은 웃음이다. 그래서 나는 심각한 것은 싫어하게 되었다 성령스승과 공부를 하게 되면서 진지하고 심각하던 내 성정이 가볍고 활달하게 바뀐 것이고 어디를 가도 찰랑찰랑 까불까불..아이처럼 잘 논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숙이는 언니는 까불이다 이렇게 귀엽게 까불수 있나 하는데 지정애 여사님의 꿈에도 내가 팔을 팔랑팔랑휘저으며 오더라고 한다.

어제 종순씨와 수업강도가 얼마나 강했든지 초저녁에 강의를 듣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경자가 전화를 해서 생닭을 한마리 가져다 주었는데 그것을 오늘 남편이 백숙으로 만들어놓고 나더러 맛나다 먹으라 하더라 감사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