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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찾아내는 방법

청향고은 2024. 1. 10. 15:51

법화경을 한문으로 독송하는데 재밌다 어렵다 드디다 낮설다. 낮설다보니 버벅거리고 다시 반복한다 나름 한자는 읽는다 생각하는데 예서체로 쓰인 글자라 멋스럽고 그림보듯 즐거운데 눈에 익은 명조체랑은 다르다보니 헷갈린다.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생기는 즐거움이 꿈이다. 물론 늘 꿈으로 공부를 하기때문에 꿈의 변화를 통해서 멘탈 ,아스트랄계의 정보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헤아리는데 멘탈계의 정보가 아스트랄계 꿈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법화독송 파동이 어떤 화소를 모아 꿈이라는 화경을 이루는가? 그것을 파악하는 즐거움이 코잘계(원인계)에너지렸다 

 

원인계 -붓디계-멘탈계-아스트랄계-바디계로 나누는 것이 오행이다. 신지학에서 쓰는 언어를 동양학으로 가져오면 수-지-화-풍-토가 되는 것인데  오행이 칠요(七曜, 챠크라)로 레벨이 있다는 것이지. 수의 칠요가 두우여허위실벽, 지의 칠요가 규루위묘살자삼, 화의 칠요가 정귀유성장익진, 풍의 칠요가 각항저방심미기로 사대칠요라고 하고 이것을 하나로 꿴 것을 토의 칠요 북두칠성(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무곡, 파군)이라 하는데 토는 바디체이고, 수는 코잘체 지는 붓디체 화는 멘탈체 풍은 아스트랄체로 연결하면 된다 

 

몸이라는 이 토圡안에 지수화풍이 운행을 하는 것이고 지수화풍을 저쪽에서는 코잘 붓디 멘탈 아스트랄이 가동한다고 하는데 그 깊이와 넓이를 가름하는 언어가 차원이다 일차원에서 칠차원으로 또는 33차원으로 또는 야곱의 사다리로 또는 천국의 계단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저마다 계에 차원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칠차원이라 설명한다는 것이지 하여 사단칠정으로 이십팔수 천문도를 설명하는 것이고 이것을 몸에서 설명하는 것이 내경도라고 한다는 것이 내 이해다. 법화경은 천문도를 설명하는 천문노래라면 내경도는 인체의 무늬 오장육부의 기능과 가치를 노래하는 몸의 노래라고 하는 것이지

 

천문이 땅으로 내려온 것이 지문이고 천문과 지문을 하나로 담은 것이 인문인 몸이고 이 셋을 운용하는 에너지가 풍수 즉 바람과 물 또는 불과 물이라 하는 것이다. 불을 혈통이라고 하고 물을 신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이 피에 있는 것이고 피흐름을 따라 생명의 질과 량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본다. 물은 맑게 즉 신경은 맑게 불 피는 밝게..즉 혈통은 밝게라는 것이지.  

 

법화경을 독송하다보면 아하 이게 천문도를 이야기하는 것이구나 알게 된다. 하늘에 펼쳐진 별들이 인간세를 구성하게 되는 원인이니 이 계를 코잘계이야기를 인간의 언어인 붓디계로 설명하는 것인데 이 언어를 어떻게 알아 듣는가?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멘탈체의 의지가 아스트랄계에 닿게 되면 아스트랄이 바디계에 신탁 또는 공수 하여 읊조림이라는 소우주를 경영한다는 것이지. 신탁이나 공수의 원리를 찾아 올라가면 바디에서 아스트랄감정에서 멘탈이성으로 올라가고 아스트랄을 공명하는 붓디계와 멘탈을 공명하는 코잘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 코잘계가 어떻게 가동되는지는 문자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법화경은 우주를 풀어놓은 한 방편이고 읊조린다는 것은 우주를 몸으로 끌어당김을 하여 몸을 소우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몸을 소우주라고 하는데 무엇을 그대는 대 우주로 인식하는가? 눈 앞에 펼쳐진 세계? 그 인식에서 눈 앞에 펼쳐진 우주를 색계라고 하는데 그것을 의식계 즉 코잘계 원인계로 당겨들이는 것이 무색계 즉 귀의 들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코잘계는 귀Ear의 세계이고 붓디계는 눈Eye의 세계이고 멘탈계는 귀와 동기動期하고 아스트랄계는 눈과 동기同機하게 된다고 본다.

 

눈은 보아도 차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족함이 없다 차지 않고 족함이 없는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고, 우주나 몸이나 늘 변화하기때문에 변화하지 않으려하는 반작용이 생성되는 것이고 그 반작용이 낳은 것이 ‘기록’이라는 ‘참積과 머뭄止, 즉 쌓음과 죽음’이라는 변화에 대한 반작용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지 

 

우주는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 변치 않는 원리라고 하는데 이 원리의 반작용이 변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나타나고, 변함을 생이라 한다면 변하지 않으려는 것을 죽음이라고 일컫게 된다는 것이지. 변함과 변하지 않음이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 변하지 않음은 변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고 변하지 않음에서 변하려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니 우주는 변하면서 변치않는 그런 음양으로 흐른다는 것이지 그것을 태극으로 그려준 것이다. 

 

신지학은 바디 즉 토인 몸을 중심으로 펼치는 정보다. 외부 원인 -과정을 내면 정신과 혼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생명의 의지를 따라가는 이들이 설명하는 정보다. 저어기를 말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대와 나의 몸안에서 일어나는 하늘이야기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법화경에서 즐겁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지. 천문도를 밟으며 생각을 한다. 요즘 십이지신의 머리 가슴 앞치마로 가린 아스트랄 그리고 발을 밟고 돈다 

 

머리는 원인 코잘계에너지이고, 과정 븃디계는 가슴이며 멘탈은 앞치마로 가린 곳으로 비밀의 정원이라고 그리고 아스트랄은 두 발로 연결하는 것이지. 코잘과 붓디는 외연공간이라면 멘탈과 아스트랄은 내면 시간이라고 나는 이해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몸이란 바디체를 일불승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지 

 

물론 육체를 낮은 에너지라 설명하는 지식들이 많지만 육체없이는 코잘도 붓디도 멘탈도 아스트랄도 설명하고 체험할 수 없다는 것에서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을 하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에서 ‘사랑’이란 ‘사람’이고 사람이란 ‘바디’다는 것을 인정할 때 신지학의 신이 바로 몸 신이구나 육체안에 아기 즉 영체를 품은 모습을 설명하구나 알게 될 것이고, 몸을 알아야 영을 안다가 되고 영을 알아야 몸을 안다가 되는 음양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음양을 이해하는 레벨을 일불승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코잘계라고 하는 것이고 이 계를 설명하기위한 언어는 없다 언어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러면 원인계는 어떻게 접속하는가?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예수의 복음이다 

 

원인계에 들어선 이들에게 필요한 표현법을 가르친 것이 예수의 복음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원인 즉 씨알에서 열매까지는 현상을 확인하게 되는 외부이지만 씨안에 들어있는 형상모양은 껍질안에 숨겨졌음으로 내면이고 이 세계를 설명하려면 언어가 아니라 그 씨앗자체가 되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을 일러 거듭남이라고 한다는 것이 내 이해다

 

변치않는 원리다고 하는데 태극원리가 우주원리이고 몸의 원리다 변함과 변치않음이 반복되는 것이 윤회나 환상이나 거듭남이나 라는 언어를 딛는 것인데 그대의 숨과 소리와 움직임이 코잘체 너머에 있는 정보를 만드는 창조다는 인식이 생기면 태안에서 태아의 성장과정을 태밖에서 이해하고자 한 의지가 신지학으로 또는 영성이라는 정보로 전해오는 것이라 본다. 인체핵심발생학과 황정경이나 인체내경도를 법화경으로 설명하고 있구나 짐작이 된다. 인간의 행복은 건강함에 있다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병들었기 때문이다 병들었다는 것은 ‘모름’이라는 것인데 무엇을 모름인가? 그것을 찾아 풀어가는 것이 신지학 영지 영생 내면 자기찾기 내면귀향..등으로 말하는데 욕심을 외연화시켜도 만족함이 없을 때 욕심을 양심으로 내면화시키고자 하게 되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고, 이것을 거듭난다 돌이킨다 회개한다 등등으로 말한다. 하늘만 보다가 땅만 보다가 하늘과 땅을 모아 태어난 ‘몸’을 마주하는 것이 ‘신성공부’라고 하는 것이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을 뜨겁게라고 하는 것이 신성공부로 그대를 신으로 자각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대는 인간 즉 사람사이에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사이를 살아가는 주체는 그대의 나의 ‘몸’이다  

 

이제 몸을 공부하는 시대가 왔고 일러 신성회복이라고 하는데 물병자리에너지라고 한다

하루하늘이 천문도이고 하루 땅이 그대의 공간환경이다 그리고 그환경에서 별을 딛는 발걸음을 통해 별을 달을 해를 노래하는 울림을 살아가는 것을 ‘원인’을 만드는 에너지라고 하는 것이다

 

원인을 만드는 것은 내 숨과 소리 움직임에너지다 이것이 겹겹이 모여서 원인체가 된다 원인을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산다 말하게 되는 일불승 하나님 나를 나로 사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정보들을 보고 듣는 것은 외부환경에 대한 성찰이다 그런데 정보를 보고 읊는 것은 외부환경을 내면으로 당겨 원인을 만들려하는 창조작업이다 무엇을 보고 듣는가는 지나가지만 보고 읊는가는 내 안에 결로 모이게 되고 코잘계가 된다는 것이지

 

많이 읊조리라는 것, 눈으로 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입으로 읊조림은 더욱 쉽지 않지만 자기창조를 하고자 한다면 해야할 수행이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읊조리기보다 부르짖기 고함지르기를 함으로 고주파와 저주파 파동의 반경을 확장하여 원인계만들기를 한다. 소리를 한다는 것은 그래서 무지를 맞서는 용기를 기루는 방법이라 설명하지 모름에서 앎으로 나를 창조하기위한 투자

 

신지학의 정보랄 주욱 살펴보면 여자로서 남자가 된자라는 도마서의 가르침을 딛고 남자가 된 여자들의 용기있는 창조정보들이구나 한다.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들을 낳기때문이고 남자가 여자가 되어야 구원을 얻는 것은 여자에게서 태어났기때문이다

도마서 114장이 참 울림이 크다

남자안의 여자

여자안의 남자

음양 언어가 단순해지면 그안은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고 밝고 찬란하다

하위멘탈계는 문자로 구성되고 하위아스트랄계는 언어로 드러난다 상위멘탈계로 가면 춤으로 나타나고 상위아스트랄계로 가면 노래로 나타난다 그래서 자기창조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춤추고 노래하라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도 춤추고 노래함으로 나를 창조하는 하루를 산다. 자기를 창조한다는 것은 몸이 가진 신비를 열어내는 것이다. 신비주의란 몸의 비밀을 찾아가는 공부를 하는 길이다는 것이지 즐겁지 않은가? 허공을 치지 않는 유일한 공부가 몸공부이며 텍스트가 그대 자신이라는 것에서? 다른데서 찾고 구할 필요가 없이 법화경 들고  읊조리기를 시작해봐라 그 울림에 모여 그대영이 된다 그리고 혼이 공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