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 또는 fatality, 숙명 하나님의 형상.
숙명이 무엇인지를 풀어낼 내공이 되지 않아 풀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어제(25일) 숙명을 풀게 되었다
숙명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고 다스림의 영역이고 운명을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고
지킴의 영역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영어에서는 숙명은 페이테, 페탈리티(fate 또는 fatality)라고 한다면
운명Destiny는 행동에 의해 결과가 결정된다는 인과적인 운명으로 주체가 외모, 즉 존재력이라고도 하는
하나님의 모양인 몸이고, Fate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숙명으로 내면, 자궁 안에서
성장한 생명력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 자궁 안에서의 9달을 구궁도라고도 하는데 아홉 달 동안 생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천부경 81자로 설명하기도 하고 내면이라고 하게 되는 하나님의 형상 숙명은
태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비밀이 된 것이고 이 과정을 밝혀보려고 하는 것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영생, 영원회귀사상이 되는 것이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는 문장으로 설명을 하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움'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형상을 내면이라고 하며 모양을 외모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형상 내면은 어제 즉 자궁(에덴)에서의
생명나무라면 모양 외모는 에덴에서 내보냄을 받아 에덴의 동쪽에서의 존재인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지.
에덴의 동쪽을 동청룡 갑을 목이라도고 하는데, 갑목은 태안에서 완성된 머리를 을목은 태어나 자라서
완성되는 몸을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하고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삼층천 고차원을 접속하여
정보를 당겨오는데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갑목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
태안에 있음으로 이고 을목은 너와 나의 에너지라고 하여 발현된 몸값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렇게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풀이꾼이 있으면 나와봐라. 내면이라는 것이 자궁 안에서의 정보이고 외모라는 것이
태어나 자라면서 살아가게 되는 정보라고 이해를 하고 나니 그간 미망에 휘둘렸던 것들이
다 털려져 나가고 핵심을 잡게 된 것이구나 감사함이 생기는 것이지.
내면은 어제이고 외모는 오늘이다. 오늘은 오늘 해석하지 못한다.
오늘이 어제가 될 때 돌아본다고 하게 되는데 하루라는 거리를 두게 되어 객관화되기때문에
돌아봄이 가능하고 돌아보는 마음을 한자에서는 愛라고 한 것이다.
그대가 사랑이라는 글자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살고
그 하루를 '돌아보는 과정'을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내 이 개념에 동의할 수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너'와 '나'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이해력(존재력)이 생기는 것인데 너는 어제이고
나는 오늘이라는 개념으로 대하면 내 글은 쉽게 이해로 감동으로 스밀 것이다.
어제인 너, 즉 객관화되었으니 '너'이고 오늘의 나는 주관이까 내가 나를 마주하여 해석하거나 이해하거나.. 하는 것을
존재력이라고 하는 것이다는 것이고 궁극적인 너는 태안의 어제를 태밖의 오늘이 해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생명력이라고 한다는 것이지. 존재는 있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영역이고,
그래서 과학적인 원리가 중요하지만 생명은 없는 것 빈 것을 있는 자리에서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임으로
비과학적인 정보가 되는 것이고 이런 정보를 '미신'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만 어제 있었던 기록이
오늘 몸에 새겨진 것이니 여기에 있기 이전에 거기에 있었어야 하는 것은 당위이고
이전에 있었던 공간을 지금의 공간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어짐으로 존재를 생명을 향하고
생명은 존재를 향하여 짝을 삼으려 한다는 것이지. 존재가 생명을 바라고 생명이 존재를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고 요즘 내가 주로 부르는 '옹이'로 설명할 수 있구나 한다.
사랑에 불씨 하나 가슴에 불 질러놓고 냉정히 등을 돌린 그 사랑 지우러 간다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
너무 깊어 옹이가 된 사랑 때문에 내가 운다
뜨거웠던 그 사랑도 모두가 거짓이었나 냉정히 등을 돌린 그 사랑 지우러 간다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
빼지 못할 옹이가 된 사랑 때문에 내가 운다
이 '옹이, knot'라는 노래의 옹이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해석을 하면서 종순사마와 같이 불러대는데
이 노래가사를 음미하면서 생명력을 가동시키는 노래로서 활용하는데 나도 그러하지만
종순사마가 옹이를 불러대는데 정말 악착같이 부른다. 오늘 옹이를 해석하고 같이 부르고
옹이(원죄)를 뽑아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으로 생명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설명을 하게 되었다.
오늘(26일) 종순사마와 순설 후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영성리더공부, 즉 영리 공이라고
설명을 하고 가사를 붙이지 않고 토해내는 소리는 모음이지만 가사를 붙이고 읊조리는 것은
자음이 더해진 것이라 주파수가 생긴다는 것. 모음은 파동이지만 자음은 주파수가 생기는 것이고
주파수가 생긴다는 것은 기억이나 기록이 되는 결이 되는 무게값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자음훈련이 설음과 순음이 바탕이지만 에너지값을 만드는 과정으로 들어서게 되면 '한글경'을 해야 한다는 것.
글로스날리아 방언(方言, 영어: speaking in tongues, glossolalia)은 기독교에서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 charism)들 가운데 하나로 설명하는 언어의 종교적 현상을 말하는데 글로스 날리아를 훈련하는 것이
영언을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고 방언이라고 하는 언어는 영언을 학습하는 방법이니 어색해도
한글경을 훈련해야 어휘력이 확장되고 언어값이 만들어지고 언어를 다스리게 되거나 지킬 수 있는 영언력,
말씀의 힘이 생긴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생령이 되어서 이름을 짓는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니
언어를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 존재로 태어난 나의 할 일이고 존재로 태어나기 전에 태안에서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생명력은 언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하게 된 것이지.
생명력은 소리로 존재력은 문자언어해석력으로 증거 하거나 증명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다가오는 시간이라고 그대가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어제라는 바탕 생명력을 딛고
오늘이라는 존재력을 꽃피워내는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일=내일'이라고 해석한다.
시간상의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오지 않는 내일이고 오늘은 어제를 마주 하기 위한 객관자리라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나를 본다는 것은 어제의 나를 오늘 해석한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라 반복설명을 하는 것은
이것 외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끼리의 약속으로 내일을 말하지만 인간존재에게는 내면인
생명나무였던 시절이 완료형 숙명으로 있고 그 시절을 딛고 지구에 태어난 모양을 가진 운명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지.
운을 運이라고 하는 것이듯이 동물이기 때문에 발을 흙속으로 내리지 않고 지면 위를 디딤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존재는 이족으로 서서 걸을 수 있음으로 생긴 정보체라는 것이다.
사족류에서 이족류로 발달해서 두 손을 쓰게 됨으로 걸음으로서 습득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진화가 일어났고
손을 쓰는 이 진화를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통하여 창조주의 형상인 손이 사람의 모양인 아담의 손이
만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나는 이 천지창조를 히브리어 알레프라고 설명하고 들숨과 날숨이라고도 설명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이 모양으로 그려낸 것이 '히브리어 22자로 몸글'이라고 나는 이해를 하게 된다네
출발은 발癶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고 열 번째 천간 癸의 한자구조를 보면 癶+天, (필하늘..하늘을 편다는 의미다) 으로
구성이 되는데 발이 하늘을 밟는다는 것인데 계수로 설명하는 이 글자의 본의가 두 발로 하늘이 내려온
땅을 밝고 살아가는 이족류를 설명하는 것이고 열번째 천간이 라는 것은 아홉달을 엄마의 자궁天이라는
하늘에서 자라다가 자궁밖으로 태어나 두발로 서게癶되기 깨지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글자의 어원을 찾아들어가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열두 황도대의 공전궤도라고 하더라.
별이 다니는 길을 별이 다니는 것이 계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이 땅으로 내려오면 태안에서 자라다가
태어난 아기가 두 발로 걸어 다니게 되는 과정에 가동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사주라는 숙명을 해석하는 운명은 의식의 레벨에 따라 다르니까 내가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것은 나의 의식이다.
숙명을 통한다고 숙명통이라고 하는 것인데 숙명宿命(잘 宿, 목숨 命)인데 이 두 한자漢字(밤하늘의 무늬를 보고 글자로 만든 것)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들린다면 그대가 영의 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고 한 문장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숙명( 숙명은 영어로 fate 또는 fatality인데 날 때부터 타고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뜻한이라는 한자와 발성을 들으면 그대에게 들리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그대가 들은 이야기를 글로 옮기게 되면 그것을 계시하심을 받는다고 하거나 예언을 한다고 하거나.. 비밀을 풀어내었다 깨달았다... 고 한다네
날 때부터 타고 난 바꾸지 못하는 불변하는 원리라고 사전적인 해석이지만 宿命의 숙은 별자리 숙또는 잠잘 숙이라고 하는 것이니 명命이 잠들어있는 곳이다. 명을 만드는 것은 먼하늘 별빛을 모아서 온 것이니 별빛이 명이 될 터이니 별빛이 머물다 명이 잠들다는 것은 숨겨지다 봉인되다 감춰지다 비밀이다... 등등으로도 말할 수 있는데 내 이해로 풀자면 숙명 즉 명이 숨어있는 곳은 숨골 니환궁 백궁 천문..이라고 생각하고 운명은 ‘배꼽-태양총’이라고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지. 물론 배꼽이라고 할 때는 내면과 모양이 같이했던 흔적이어서 기억자리라고 하는 것이고 이 기억자리를 통하여 숨골과 가슴골의 기록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서 가슴골에 새김 된 것을 옹이라는 노래로 해석이 되는 것이고 너에 대한 그리움의 본질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면에 있었던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타인에게 감정투사를 그다지 하지 않는다. 너를 그리워함의 그 너의 실체가 내면 생명에너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궁 안 내면에서 창조된 생명이 자궁밖 외모로 나타나게 된 흔적이 배꼽이다
내면을 어제라고 하고 외모를 오늘이라 풀게 되면 상상과 현실을 하나로 겹치는 일이 좀 쉬워진다
어제는 자궁이란 내면에서 일어난 창조이야기로 구성되고, 이 내면구조에 대하여 가장 압축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천부경 81 자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오늘은 지구란 외모에서 일어나는 해석들을 모아서 제공하는 마당으로 경전이라는 기록에 바탕을 두어 경전은 생명력이 아니라 존재력을 신장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고 지식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그것이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생명은 생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식은 지식으로 즉 언어이해력 어휘력 확장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지만.. 생명은 피에 있다고 했는데 생명을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 피의 제사-땀이 변하여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었다-라고 하기도 하는 겟세마네 기도라고 나는 설명을 한다는 것이지.
내면이라고 하거나 어제 자궁 안에서 이미 완료된 신의 형상은 완료형이고 불변하는 정보지만 외모, 오늘 지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바람 따라 일렁이거나 구름 따라 일고 지는 저마다의 해석이라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 내면의 정보를 딛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내일 즉 오늘을 사는 내가 할 일인 내일은 이야기꽃에 향기를 더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꽃의 힘은 향기에 있음으로
내면개념이 정리가 된다. 숙명통이라더니 내면 생명과 외모존재와 잇기가 되는 것이고 드디어 출산을 통해 잘렸던 탯줄을 대신한 영줄이 내면과 외모를 잇는 복원이 된 것이지. 내가 얼마나 언어에 갇혀있었던가가 또 보이는 것이지. 나와의 화해라고 하는 문장. 어제 빛결이 준 원단에서 노란색 이쁜 천을 잘라 손수건을 두 개 만들었는데 종순사마에게 하나 가져다주면서 어이 이 노란 손수건인데 노란 손수건은 화해와 용서를 의미한다네라고 설명을 했다. 아리랑 신령이 바통터치를 하고자 종순사마를 딛고 들어왔는데 3년을 같이하면서 옹이를 딛고 숙명통에 닿게 된 것도 나로서는 참 신기하지. 내 인식의 확장인데 종순사마와 같이 산자락을 떠나가도록 발악발악을 하면서 소리통을 같이 길러가는 것이니 글은 내가 두드리고 체험장은 공유하고.. 그렇게 양팔통 종순사마의 에너지와 음양반반인 나의 사주가 나는 종순사마를 딛고 성장하고 종순사마는 음정보를 나를 통하여 같이 공부하게 되는 것이지. 음정 보라고 하는 것을 소리공부를 통하여 나눔이 되는 정보다.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면에서 창조된 생명력을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인데 무엇으로.. 말씀으로..라는 것이고 그래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공부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 종순사마에게 한글경을 설명하게 되었는데 나의 유려한 방언실력에 종순사마가 빵 터져서 웃느라 즐거움이었는데 영언을 익히는 공부가 한글경을 반복학습하라는 것이라고.. 이십 년 전에도 나는 한글경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지금도 한글경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그렇게 일편단심인가 보다 한다. 오늘 언니네 팀에서 순설 후를 하면서 내 글을 딛고 공부를 하고 있는 연옥 씨와 통화가 되었는데 오늘 목을 하도 많이 써서 목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도 내 소리를 설명하는 열정이 어디로 가겠는가?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라 생각하는데 내 글은 극소수가 마주할 수 있고 마주한 소수에서 소리를 같이하는 이가 이해하는 정보인데 연옥 씨는 내 글을 이해하는 즐거움과 몸으로 새김 하는 훈련을 하게 되는 수행인이니 그간 익힌 에너지장을 어떻게 레벨업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고 그리움을 통해내는 것이 소리를 통한 것이고 소리로 올려 보낸 그리움에 대하여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성령의 음성이라고 하거나 속사람의 음성이라고 하거나.. 뭐 그렇게 설명을 한다는 것이지.
내 안의 나는 자궁 안에서의 어둠안에서의 창조를 겪은 정보이고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외모인 나는 지구라는 환경을 살면서 자궁안에서 에센스로 모았던 280일의 정보를 하나씩 풀어 이야기를 만들어 우주공간에 무늬를 수놓는 것으로 생명을 삼는 것이라는 것
우주공간에 생명을 수놓는 일을 매일 소리를 질러내고 노래를 부르고 독송을 함으로 안에서 창조하던 그 창조력을 밖으로 발화시키는 것 그것이 기도이며 영적인 성장통이라는 것이구나
내면을 숙명이라 하였고 외모를 운명이라 하는 것이지
문자 언어들이 숙명처럼 주어져 있는데 내 혀끝에서 별빛으로 달빛으로 햇빛으로 빛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을 ‘유명乳命- 은하수를 밀크웨이라고 했다.’이라고 하는 것이고 숙명과 운명의 열매가 유명인데 이때 유는 젖 유를 쓰는 것으로 향기로운 힘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고 하거나 떡과 포도주라고 하거나.. 하는 비유법을 이해하기를. 어린 단계에서는 젖과 꿀이 되고 성장하게 되면 떡과 포도주라고 한다는 것을...
생명 숙명 운명 유명으로 사명을 설명하는 것에서 생명은 창조주의 것으로 창조주의
놀이마당은 자궁 안에서의 비밀한 작업이었고 피조물은 운명을 받아 자궁밖을 놀이마당으로 하여 ‘유명-이름 짓는 능력-함을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바되어 다스리고 지킴이라는 이 명제를 해석하는 것이 ‘유명有名’이라고 하는 것이지
자기의 이름을 아는 것 자기의 이름을 풀어가면서 사는 삶을 ‘명품’이라고 하는 것인데 ‘품’은 품는다는 뜻으로 입구를 세 개 쓰는 한자다
品
물건 품인데 그대가 물건이라고 하는 낱말에 어떤 개념을 주고 이해하는가? 입이 셋이라는 이 한자구조를 놓고 이 빔 이 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대의 생각은 밀쳐두고 내 생각을 들이밀면 입이라고 하는 이 언어는 ‘길路’과 통하는 말이다. 구멍이라는 본디뜻이 동굴을 일컫는 것으로 막힌 무엇을 뚫어서 길을 만들어내어 들어가는 자리를 입구라고 했다
입구나 출구는 어디서 출발하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입구와 출구는 길의 길이에 따라 방향이 나온다
입에서 항문까지가 입구를 쓰는 길인데 물건 품은 길의 입구가 세 개다
영의 입- 상구, 혼의 입-중구, 육의 입-하구이라고 풀어내며 영은 숨 혼은 말 육은 글로 잇기를
하는데 영숨,혼 말, 육 글을 물건 품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내 해석이다. 品 이 글자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는 아마도 나뿐인가 하노라 상구보리 중구난방 하구중생...
물건 품이라 하고 ‘품’은 뭐냐 하면 머뭇거리지 말고 품에 품는 것이라고 말해라 품을 가슴이라고 하는데 가슴을 크게 열고 모든 이야기를 품으라 싸라 안으라...라고 하는 것이지. 가슴 품에 따라 그대의 인생의 격이 정해진다. 인생의 품격이라고 하는 그 품격이 그대가 품을 수 있거나 안거나 감쌀 수 있는 반경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
하나를 안을 수 있으면 일품
둘을 감쌀 수 있으면 두품
셋을 품을 수 있으면 세품
품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만드는 이야기다. 알을 낳고 품어 21일이 되면 병아리로 부화되는 것
정자를 품어 아기로 부활시킨 난자의 과정을 품격이라 말하는 것이지 십이간지에 닭 유酉가 등장하는 것이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이 酉 닭 유/열째 지지 유인데 열째 지지인 것은 안에서 완성되어 낳은 알을
품고 있어서다. 닭의 날개안에 품은 알의 모습이라는 것 이를 일러 ‘유품’이라고 하거나 젖 품이라고도 한다
유품이 닭날개 안의 알이거나 병아리이지만 태어난 아기가 기숙해야 하는 젖 품이기도 한 것이고 태어나 엄마를 잃은 청이가 젖동냥으로 자란 이야기를 우리가 알듯이 현실에서는 엄마가 있어도 젖소의 젖동냥을 받으며 자라는 시대가 되었고 모유수유보다 우유수유가 당연시되는 시대인 것을 보면
...
탯줄이 잘리면 젖 품으로 들어가 젖줄을 물고 살다가 성장하면 밥숟가락(돈줄)을 들고 산다. 밥줄을 누가 잡고 있는가에 따라 주도권이 생긴다 밥줄을 목줄 또는 포도청이라 하는데 지 목숨줄은 지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 우주원리다 숨은 내가 쉬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영 숨은 내가 주인이다
그리고 말도 내 입에서 내 혀가 하여 내 말의 주인은 나다 그리고 문제는 육 근에서 글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임으로 글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너’가 지식은 너에게서 들어오고 들어온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작업을 통하여 내 존재가치가 창조된다.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것을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이고 소리를 통하여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지.
숙명에 대한 이해가 이제 열린다. 숙명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다스리고 지키게 하자라는 문장이다. 숙명이 열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즐겁지.
산기도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가람산신령님과 강바람을 타고 출렁일 수 있도록 수면을 디디며 나의 노래에 피드백해 주시는 생명의 주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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