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6월 15일 일기
어제(14일) 글을 다 두드리고 올리기를 하는데 오류가 발생해서 글이 날아가버렸다. 몇날 며칠 글문도사님이 외출을 하신 것인지 글이 잡히지 않아서 쉬고 있다가 시작한 글인데 자료 검색해가면서 열심히 두드린 글이고 흐믓한 마음으로 올렸는데...뭐 이렇게 날아가는 것에 아쉬워한들 뭣하겠는가 아마도 이 글을 글양탄자를 타고 설기해야하는 무엇이 날아나간 것이구나 해석을 하고 일주일을 공들임하고 기도하면서 풀어내고자 한 무엇이 글양탄자를 제물로 삼았구나 해석하고 나니 가벼워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빛결이 겪는 설기와 세미가 겪는 설기(아가서 히브리어로 독송 세번하고 온 설기), 그리고 내가 겪는 설기. 셋이 동시성으로 무엇인가 오래 오래되어 세포를 잠식하고 있던 기운이 그간의 독송을 따라 풀어져나와 밖으로 나가는 것이구나
글을 두드리고 있는데 경자가 연락을 해와서 잠시 만났는데 신비복숭아와 옥파와 청치마를 가져와 건네주었다. 나는 농막에 오는 이들과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과자하라고 비스켓을 건넸다. 글을 두드린다고 했더니 잠시 보자해서 보고 들어와 글을 마감쳤는데 그렇게 날아가버리다니..글이 날아가도 그 글은 탁기를 싣고 나가는 용도라고 풀어내고 나니 내가 하루종일 겪는 설기(洩氣, 누군가의 탁기를 받아오면 설사를 한다)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를 추적을 하게 되더라.
우리동네 여사님 팀들과는 에너지를 건네면서 별달리 다른 느낌이 오지 않았는데 수연이를 만나 수연이의 실에 깃들인 에너지가 어떤지 주욱 진단을 했을 때 느낌이 좀 와서-임신초기 입덧같은 느낌- 수연이 요즘 뭔가 문제가 좀 있나..했더니 기운이 좀 없어진다고 하더라. 구역질이 좀 올라오는데 속에 탁기가 쌓여서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때 나타나는 증상인데 지금 이 기운을 털어내어야 한다 했더니 어떻게? 라고 하길래 내가 늘 설명하는 순설후 하고 손뼉치고 크게 웃고..라고 하면서 같이 해보자 했더니 집에 가서 한다고 하는데 집에가서 한다는 사람치고 하는 사람없다 지금 해보고 가라 탁기가 쌓여서 뿌리를 내리면 그거 뽑아내기 힘드는데 자리내리기 이전에 풀어내어야 된다고..그리고 손바닥 치기하고 손깍지 껴서 손등진단해보고..다른데는 별로 문제가 없는데..했더니 수연이 본인이 화가 차여서 그렇지 않을까 하길래 그러면 설음하고 순음을 많이 해라 심장에 화가 차면 불어 내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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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무동 지인들이 꿈에 우르르 등장해서 봉무동 다녀와야겠구나 해서 가는 길에 수연이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 즉 어제 다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진단을 하게 된 것인데..오늘은 수연이가 나오지 않았더라. 여소원여사님과 김점분 여사님의 에너지는 오늘 두 분을 만져주고 왔는데 별다른 설기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니 어제 설기는 수연이에너지에서 만들어진 것이구나..진단이 나오는 것이지.
이번 봉무동길에서 우리동네 여사님팀들(천잠순, 조귀행, 송윤영, 안백남..그리고 한분은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과 그리고 불로동에서 수연이 상예회장님, 다섯분의 여사님들(이타임, 정곡지, 김순조, 김점분, 여소원님)이 건강하신 것을 보게 되고 어제 김옥희여사님, 오늘은 김화열선생님 이 두분은 내가 어디로 이사를 갔나 생각했다고..그리고 황정자 여사님 만나고 산길에서 김창현사장님 만나고..봉무동은 여름엔 다니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전엔 어떻게 매일 그렇게 열나가 다니면서 소리를 가르친다고 했던 것일까나..가는 길에 남천나무들 손을 보아 단정하게 만들고 있는데 어디를 가도 내 손은 부지런하기도 하지. 기상청의 아카시싹을 뽑는데 봉무동에서도 부지런하지. 그곳의 여사님들은 내가 늘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다니는 것을 보시니까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다닌다고 이뻐하신다.
제가 다니는 길이고 여사님들이 다니시는 길인데 단정하면 더 보기 좋지 않냐고 했더니 생각도 이쁘고 하는 짓도 이쁘고...그렇게 이쁘다 해주신다. 여소원 여사님은 나를 공주야..라고 하신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받았던 느낌이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여전히 똑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시면서 자기가 보는 눈은 있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 분도 공부를 하시는 분이시고 기를 늘 맑고 밝게 아름답게 하시려고 하시는 분이시어서 이 분을 만나면 이름을 부르면서 여사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로 저는 참 감사하다고 제 기도제목이 일여소원 사사명시인데 여소원이라는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이 분이 살아오시면서 행하신 일들을 들어보면서 배우는 것. 그리고 김점분 여사님에게 배우는 것. 이 분들에게 사탕을 공양할 때는 늘 즐겁다. 맛있는 사탕이라고 좋아하시고 김점분여사님은 사탕 주세요..하고 귀여운 액션도 하시는데 김점분여사님이나 여소원여사님의 기운은 수행을 오래하셔서 청정비구니같기도 하다는 생각.
여 소원여사님을 만져보고 김점분여사님은 뒤에서 안아올려보면서 여사님은 탈이 없는데 여소원여사님은 기가 많이 쇠하셔서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점분여사님이 나에게 운동기구에 앉으라 하시길래 왜요? 했더니 내 어깨를 만져주시겠다고 에이구 젊은 저를 여사님이요? 했더니 자기에너지도 만만치 않으니 한번 대보라고 해서 앉았더니 어깨를 만져 주시더라. 남들 만져주고 다니면 어깨가 뭉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여사님도 앉으시라고 제가 어깨주물어드리겠다고..그렇게 오가는 정다움. 여소원여사님을 만져보면서 여사님 기가 많이 낮아져 힘이 없으시다고 기를 충전해드리겠다고 세 번을 꼭 안아서 으라찻차...기운아 충전되어라..했더니 아침부터 기운을 다 뺏어가서 우짜노? 하시길래 저야 직통으로 충전하는 기능체라 여사님께 충전하고 나면 저 곳 신령계에서 바로 이 곳으로 충전을 한다고 염려하시지 말라고..그랬더니 그런 자신감을 어디서 오노? 하시길래 매일 산으로 다니면서 고함을 질러대니까 가람산 신령이 도우시고 금호강 수호령이 도우시어서 하지요..했다. 그랬더니 다섯여사님들이 다들 맞다..그래주신다. 그래서 다섯분 앉으시면 순설후 하시라고 아침에 나와서 서로 순설후하면서 웃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내가 달라진 것은 김순조, 이타임, 정곡지 여사님에게 손을 대지 않고 사탕공양만 하는데 이 세 분은 기운이 좋으시다. 정곡지 여사님은 작년보다 올해 더 건강해뵈인다 했더니 작년에는 늘 아프다고 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아프다 소리를 별로 하지 않으신다고 하시길래 순설후 많이 하시라고 여사님들 같이 모여서 앉으면 순설후 하시라고 그래야 아프지 않고 잠자듯이 건너갈 수 있는 거라고..저승 꽃가마적금이 순설후를 하는 것이라고..나이드신 분, 저승길이 가까운 분에게는 저승꽃가마적금이라고 설명하고, 젊은 사람에게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원신채우기방법이라고 하고, 몸이 약한 이들에게는 탁기를 털어내는 청소법이라고 하고..같은 방법 하나를 놓고 저마다에게 설명을 하는 것인데 일단 순설후를 하게 되면 저마다 기운이 좋아진다는 것은 말을 하니까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다고..부작용이 전혀 없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서 내가 열심히 한다.
그러하기에 나이가 들어도 항상 젊고 활기롭고 생생하게 나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순설후를 하라고 전도를 하는 것이지. 나에게 다른 복음이 없다. 그냥 순설후 많이 하고 손뼉치고..크게 웃으라고..그게 가화만사성에 평화가 있으라가 된다고 사람의 정신이 맑고 언어가 밝고 몸의 움직임이 아름다우면 된다는 것이고 이 진선미를 만들어가는 훈련이 순설후라고 하는 것이지. 서른 여섯해를 공부하면서 임상실험을 하면서 엣센스로 정리한 것이다. 정곡지 여사님의 얼굴이 올해 많이 펴진 것 같더라. 내가 건넨 사탕을 다른 이에게 나눔하시길래 다시 충전을 해드렸더니 안줘도 된다 하시면서도 좋아하시는 것. 젊은 이에게서 사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하시니까...그런데 사탕이 맛있다고 더 좋아하시니.
이런 정다움때문에 사탕공양을 멈추지 못하는 것 같다. 불로동 강길을 다니면서 만나는 인연을 통해 내가 배우는 것들. 길에서 만나 길을 배우는 것이라고 ...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데 나는 영생Sound life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두고 공부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성서에서 영생을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이해하기로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고 영은 히브리어로서는 알레프ℵ, ا, Aleph 아랍 문자와 히브리 문자의 첫 번째 글자

모양은 '소의 머리' 모양에서 비롯하였다고 하는데 히브리어가 나타나게 된 시대가 황소자리시대여서라고도 한다.
'신과 인간이 손을 맞대고 있는 모양'을 상징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천지창조라는 그림에서 아담과 신의 손이 닿는 모습으로 알레프를 그려놓았다. 신의 손길은 보이지 않는 형상이고 나의 손길은 보이는 모양이다. 알레프라는 기호는 무형의 형상과 유형의 모양이 닿아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히브리어에서는 묵음이 되지만 한자에서는 소 牛로 나타나고 지구에 문자가 나타나게 된 시대를 황소자리에너지일 때라고 하기도 하는데 황소자리 에너지를 견우라고 하고 견우 알타이르와 직녀 베가와 만나는 칠월칠석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동화가 나오는데 알레프라는 히브리어가 만들어진 에너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알타이르 견우와 직녀 베가가 만나 만들어내는 것을 글짜라고 하는 것이라고..
알타이르와 베가가 만나게 되면 그 다음에 한글의 '그'와도 닮은 히브리어 베트

히브리어와 한글을 서로 비춰보면서 에너지값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공부가 된다. 나에게는 말이다
'ㄱ+ㅡ=그=이 되는데 한자를 찾으면 其로 나온다. 그 其인데 히브리어 베트는 한자에서 곡식을 까불어 껍질은 밖으로 알곡은 안으로 들이는 도구라는 것에서 베트를 나는 안에 있는 탁한 기운을 밖으로 뱉어내는 에너지라고 설명을 한다. 알레프, 즈 숨을 들이쉬어서 몸안에 있는 무거운 기운을 토하여 내는 에너지. 그래서 한자에서는 其라고 하는 것이고 키를 까불어본 체험이 있으면 뱉는다는 것이 밖에서는 키를 들고 좌우로 까불어가면서 톡톡 두드려가면서 껍질과 알곡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는 에너지인 것에 공감할 것이다. 키질을 한다는 말이 '그질'을 하는 것이고, 베트가 되는 것인데 베트에서 나가는 언어연상으로 야구경기에서 날아오는 공을 치는 방망이도 베트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내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베트이고 밖에서 날아오는 공을 쳐내는 것도 베트이다. 맞추는 것. 공을 맞추듯이 안에 있는 무엇을 잘 토해내는 것.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베트함으로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것이 숨을 뱉다가 된다는 것이지. 혀舌을 키라고 했다는 것인데 키라는 것이 베트가 되는 것이니 이런 한글과 히브리어의 연관성을 보면 에너지값이 '그'와 베트가 같은 것이고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그'는 He, Adam. 이 되는 것도 이해할 것이다.
나는 공부텍스트를 '성서'로 하지만 더 들어가게 되면 한글 한자 히브리어 영어 알파벳을 주 텍스트로 한다
경전으로 구성되는 글귀들보다 글귀를 이루게 되는 알파벳의 원리를 찾아내어보자는 것이 공부라는 것이지. 다시 설명하자면 이야기로 구성되는 경전들이나 책들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알파벳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고 어떤 쓰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인가를 찾아가는 것
영생에 대한 내 이해가 살아계신 하나님은 알레프로 숨이고 그 숨에서 나오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음이구나 모음에서 자음이 나오게 되는 원리를 알아내는 것을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이다. 내 이 설명에 그대가 고개가 끄득여진다면 그대는 예수가 로고스이고 전달한 것은 '가스펠Go-spel'이라고 한 그 복음이 바로 말씀 즉 자음이 생성되는 철자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이 말이 숨이 말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런 이해가 된다면 문장공부보다 자음원리를 풀어가고자 하게 된다는 것이고 히브리어 22자가 자음으로 이뤄진 원리도 이해할 것이다. 히브리어 22자는 자음이고 상형자라고 하는 이유다. 모음이라는 형상에서 자음이라는 모양이 드러난 것이 히브리어 22자다.
성서를 텍스트로 하고 예수의 복음인 겟세마네 기도를 방법으로 하여 서른 여섯해를 공부하고 있는데 올해 유월에 들어서면서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36궁 도시춘이라고 서른여섯해를 돌다보니 그간의 공부들이 점점 선선 면면으로 출발했던 자리에 닿게 되었다는 것일까나. 히브리어에 다시 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실체가 이런 것이였어....구약을 기록한 글자가 히브리어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 22자라는 것이지. 이 글자를 사용하여 스토리를 만들어내어 기록한 것이 구약성서라고 하는 것이고..
어제(5일)낙단루에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를 하게 되더라. 유월에 들어서면서 공부의 마디가 하나 나고 한걸음을 더 들어가게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다보니 공부가 어려워질 수록 기도가 간절해지는 것이기도 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집중하여 에너지를 당겨들이거나 안에 있는 기운을 베트내는 것.
풀을 뽑고 해맏이로 와서 살구서리를 하고 매실을 보고 있는데 운동나오신 분이 매실 따려하냐 해서
쓸만한 녀석이 없어서 고개 젖히기 운동삼아서 올려다 보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도 목운동도 되고..하면서
이야기가 오고가게 되었는데 이 분(이명희님)은 20여년을 천식으로 고생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61년 신축년 정유월 병오일 정유시로 어이구 이 분도 대단한 에너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라. 사주명리를 공부하다보면 인연이 들어오면 사주명식을 물어보고 만세력에 넣어보고 50%의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내가 보는 너의 정보를 아는 것.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나이를 묻고 이름을 묻고 이름의 한자를 묻고..하는 것은 그 사람의 바탕정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본다.
미장원을 하시다가 43살 되던 해에 길에서 쓰러지게 되었고 그 이후 천식과 더불어 살아가는 중이라 하더라. 미장원을 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밤 늦은 시간까지도 일을 하였다고 손님도 많고 ..당연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지만 동부정류장 근처 길에서 쓰러지게 되었고, 그때 시작된 천식이 지금까지 같이 오게 되었고 어느 순간 남편도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남편이 엄청나게 긍정파라고 하더라
재물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 순식간이더라고 하던데 명희님에게 살아가는 가치와 목적을 무엇에 두고 있는가 물었더니 친정엄마는 불교인이였고 자신은 천주교에 발을 들였다가 결혼을 기독교인과 하게 되면서
기독교가 되었다고 하더라.
기독교인으로 살 때에는 매일 찬송을 하고 살았는데 천식이 오고나서는
종교들에 대하여 회의감이 왔는데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연이 신천지에 들어갔다가 5년을 거치면서
코로나시국이 되면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 이 분의 사주명식을 보니 축유오유로 축오귀문이 있고 음금인 신금유금유금에 화가 넷이나 되니 이런 에너지를 딛고 살아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구나..
이야기가 길어져서 근처 벤치에 앉아서 내가 주로 가르치는 정보를 풀어 주었는데 이 분 어떤 경우에서든지
성서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영생'을 추구하는 이를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는데
그것도 천식을 앓고 있는 분이어서 나로서도 연민이 생기어서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천식으로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 고통을 찬양을 하면서 소리를 하게 되면서
천식은 하늘이 나에게 하늘가는 길을 만들어내라고 주신 하늘밥이라고 해석을 하게 되었으니..내가 나를 설득하고자 한 해석법이고 그리고 하늘의 밥을 먹으려고 찾은 방법이 나로서는 겟세마네 기도밥이었다고
물론 겪고 있는 분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과한 나에게는 죽어라 고함지르고
노래해보라고 권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해서 천식을 축복으로 하여
지금 이렇게 우릉찬 소리통을 얻게 되었기에...물론 천식이라는 병증이 당겨온 것이 '영생'을
얻고 싶다고 하는 바람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생긴
반작용이 '영생'이라는 것이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원리가 오류가 발생한 것이고 숨에서 오류가 발생하였기에 당연히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능이 가동하지 않게 된 것이니 숨을 제대로 쉬고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의지가 발생한 것이고 그래서 살고 싶어서 겟세마네 기도를 도전한 것이겠지. 예수도 죽음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기도를 했던 것에서 나는 나의 죽음을 놓고 겟세마네를 한 것이라고..그리고 그 선택을 통하여 숨과 말의 관계를 배우는 길을 걸어 지금도 걷고 있다는 것이지.
어린시절부터 늘 죽음에 대한 의문이 나를 갈굼질한 것인지 이제야 아하..어릴 때 겪은 천식이라는 고통에 대한 반작용이였구나..라는 것이지. 내가 결혼을 하고나서 공황장애를 겪으면서도 그것이 공황증이라는 것을 몰랐다. 즉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증상을 공황증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린시절의 기록이 진화가 되어 공황증으로 나타나게 되어 그것이 나로 다시금 겟세마네에 접속을 하도록 한 것이고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고 하였듯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도록 내 목줄을 누르는 무엇..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자 기도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겠다. 어릴 때는 천식을 나이가 들어서는 공황증을 겪으면서 그것을 기도로 이겨온 것이구나 하는 돌아봄이 생긴 것이지.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잡고 영생을 소망하게 된 것이 천식이나 공황증이 만드는 두려움때문이였구나
서른 여섯해를 오면서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면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성서에서는 이야기하지만 무속에서는 신내림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우리집은 아버지대에서 강신 즉 성령받음을 통하여 영적인 세계로 들어와 어린시절부터 영적인 정보를 늘 듣고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령을 받으심으로 영성계 정보를 풀어내시는 길, 기도의 길을 선택하시면서 자녀들도 당연히 기도훈련이 강제되었다는 것이고 습관적으로 훈련되었던 부모안에서 배우면서 자라던 길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성령과의 관계를 형성하여 성령에게 배우기를 추구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성령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겟세마네를 통하여 확인하게 되고 그렇게 나는 성령과 동행하는 길을 걸어왔고 그러면서 성령의 역사가 어떤 언어로 이야기 되는지도 두루찾아보면서 결국 나는 부모님이 걸으신 성령의 세계를 분별하고 이해하면서 부모님이 닿으신 자리에서 다시 가지를 내어 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구나 하는 것.
숨(알레프)을 제대로 쉬지 못할 때 생기는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것이 숨을 제대로 쉬고자 하는 바람이였고 그것이 '살고자 함(베트)'의 의지였던 것이고, 그 의지가 예수를 불러 잡으려 한 것이고 예수에게서 겟세마네기도를 배우게 된 것이구나..죽음을 앞에 둔 기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
부르짖음. 내가 기도한 것은 겟세마네기도에 이끌린 것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기 때문이였구나 하는 인식. 사는게 두려워서 기도하고 살게 된 것이지.
하루를 숨쉬고 살아야 하는 것이 숨쉬기가 힘든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고 두려움인지 천식을 앓고 있는 이를 만나 되새기게 되었다는 것이지. 요즘도 가끔 어쩌다 숨을 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숨을 쉬는 훈련을 매일 기도 점검을 하는 것으로 것이지.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즉 기돗줄이 약하거나 탁해서 막히면 다시 천식이라는 고통이나 공황증이 생길 것에 대하여 늘 기도줄을 점검함으로 숨쉼에 대한 고통을 대처하는 것이 내가 매일 기도하려 다니는 이유다. 숨을 제대로 쉬고 싶은 소망이 겟세마네 기도를 잡았고 그 기도를 배워가면서 이제는 고통없는 숨을 쉴 수 있는 것이고 보너스로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하는 것이지. 숨쉬기가 얼마나 축복인지를 아는 사람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고통을 겪은 이들이다. 숨쉼의 축복..그래서 숨쉰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지.
이 분이야 43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였다가 갑자기 천식이 왔다는 것인데 영성쪽으로 풀게 되면 사주에 화다하니 불같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된다고 그리고 음금이 많으니 정보를 가름하는 잣대가 반듯하여 빛나는 정보가 아니면 인정하지 못함으로 늘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인데 명희님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을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해주니 자기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
예수의 가르침, 멍에는 가볍고 쉽다는 것이다 황금률만 지키면 된다는 것인데 황금률Golden Rule을 지킨다는 것은 앞에 자기를 다스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인데 내 이웃을 사랑하는 정도가 내 몸을 사랑함이라는 것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고 사기라는 말이지. 공자는 황금률을 恕라고 하는데 서(恕)는 여심(如心)으로, 상대방과 같은 마음을 지닌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다스림이라는 것이 되고 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우리의 모양을 따라 지킴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네
성서에서 예수가 가르친 용서의 방법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하신 것인데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기위해서는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내 생각에 아카시싹이 올라오는지를 점검하듯이 기상청에서 아카시싹을 뽑는다.
출발할 때보다야 지금 나는 어질고 따뜻한 마음이지만 늘 한켠에서 가시처럼 너를 찌르고자 하는 것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한다. 너를 찌르려고 하는 것은 내 시주에 유금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
이 찌름이 너를 상처내는 찌름이 아니라 너의 고름을 찔러 고름을 짜고 치유하는 용도로 쓰고자 하는 것이 내 소망이기도 하지.
내가 너에게 찔려봄으로 아픔을 알지만 내 고름이 너의 찌름으로
피고름을 짜내게 되는 열림이 되었다는 것 너의 찔러 줌이 내가 알지 못하고
길러 온 종기를 찔러주어 피고름을 짜내고 뿌리까지 뽑아 새살을 돋게 하는 출발이 되어 주었다는 것에서
항상 감사하고 감사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충언은 내 영혼의 교만이나 오만의 피고름을
짜내게 한다는 것이지. 칭찬은 하기 어렵지만 충언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칭찬을 하면 내가 값이 오르고 충언을 받아들이면 내 영혼이 영생을 얻는 길에 마디를 더하게 된다.
충언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 충언을 할 때는 너에게서 되돌아올 때
그 충언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충언이라고 하지만 너가 들을 때는 저주라고 인식할 수 있기때문이다.
무엇이든 어떤 말이든 내 입에서 나가는 것은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지
을목을 나타내는 나무가 대나무다. 풀인데 마디를 만들면서 수직으로 올라가는 그런...
이런 말씀을 속에서 해 주시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올곧게 자라려고 하는 이 과정이 풀이면
누워야 하는 것이지만 풀이면서 나무가 되고자 하는 것이어서 마디를 만들어내고자 기도하는 것이라고..
인체의 뼈를 대나무라고 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는 것이지. 인체를 나무라고 하였다.
즉 드러난 몸을 갑목이라 하였고 이 몸을 민들어내는 을목을 뼈대라고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갑을목이 살과 뼈라는 가르침을 받으면서 감탄하게 되더라. 뼈는 대나무 살은 소나무..이렇게 알게 되는 것. 뼈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을 영성공부라고 하고 살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을 관상공부라고 한다.
뼈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공부하는 것이고 살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은 하나님의 모양을 공부하는 것이다. 뼈는 소리를 통하여 그림자를 만들고 살은 움직임을 통하여 열을 만든다. 뼈를 丁이라고 하고 살을 丙이라고 한다. 사주에서 병화와 정화의 장소가 다르다는 것이지. 정화는 안에 병화는 밖에..
그래서 정화는 용암이라고 하기도 하고 병화는 태양열이라고 하는 것이고..
내 일주가 을축인데 음의 속성으로 인해서 남들이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내면적 완성을 이루는
유연한 기운인데 축토가 금고지이면서 외연에서는 가장 추운 겨울에너지에 해당이 된다.
차가운 계절을 푸르게 곧게 자라 올라가고자 하는 에너지라고 나는 해석을 하는 것이고
나만의 올곧음을 통하여 풀이면서 나무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는 나의 영생이라고 해석을 한다
엇그제 경자가 죽순을 나눠주었는데 남편이 소고기를 사서 죽순소고기 불고기를 해주었다
그날 경자를 만났을 때 어깨와 등을 만져주었는데 시원하다고 했다.
다음날 상추 필요하면 줄까나 해서 죽순불고기해서 상추에 싸먹으면 되겠다 해서 콜 했는데
마트 앞 커피점에서 만났다.
경자는 계유시주를 가지고 있고 나는 을유시주를 가지고 있는데 경자의 삶을 꾸며가는 모습을 보면
꿈의 동산을 만들어 다양한 이들에게 힐링장이 되도록 해가는데 나는 기상청 정원을 내정원이다 하고
그저 손보탬 조금하고 주어진 축복을 향유하고 있다.
일요일 순희를 만났을 때 순희 생일4월 27일 음력)월요일이다 해서 당겨 축하했는데
경자생일이 4월 26일(6월 2일)이였구나. 카페에 앉아서 경자의 어깨와 등과 허리를 두드림해주면서
경자 너는 건강체이다. 어깨가 결리면 노동량이 많아서니까 푸욱 쉬어주면 된다. 그리고 행복하게 너의 삶을 창조하고 살아가니까...계유시주의 선물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
나는 을유이기에 대나무잎으로 달빛에 마당을 쓴다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의 기운이 내 몸이 오기때문에 내 탈란트가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탈란트구나 생각하고 있다.
요즘 와서 내가 기를 잘 타는 사주구나..라고 이해를 하게 되고 상대방의 기를 내 몸으로 탄다는 것에서
몸으로 기를 타게 되는 근거가 무엇인가? 를 찾으니까 축오귀문에 자유귀문에..그 중에서 유금이 활동하게 되면 그러한 에너지가 발생하구나 하는 것이지 酉는 醫라는 열매를 맺는 씨앗이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치유에너지라고 하는 것이 유금이라고. 을유시주를 약사여래에너지라고 하기도 하더라는 것이지. 약병에 버드가지를 담고 그 버드가지로 성수를 뿌려서 땅을 정화하는 일,
몸이 먼저 안다는 것은 그 기운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찾아 내어라는 것이 되는 것이고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보면 내공이 단단해지게 되는 것이겠다. 어제 수연이의 에너지장을 건드리고 나서 내가 겪는 몸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너의 기운을 내 몸으로 당겨와 다스리고 지키는 훈련을 해봐야 하는 것이구나.
영적으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면 영이 병들어 육으로 그 병증이 나타난 너를 만나게 되면
영을 진단하여 치유할 수 있는 레벨이 되지 않을까 한다.
너의 영혼이 병이 들면 육신이 병든다는 원리에 따라 육신의 병증을 딛고 영혼을 진단한다는 것이지.
물론 영생을 추구한다는 목적이 있는 경우에 나와 인연이 닿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신의 형상과 모양을 알고자 하는 것, 즉 영생이기에
너 역시 그러한 추구를 하는데 영생을 배울 수 있는 스승 성령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으면
성령을 소개하고 같이 성령안에서 영생을 공부하자고 하는 것이되는 것이지
보혜사성령을 스승으로 하여 영생을 배우는 학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을 나는 찾고
만나면 겟세마네기도를 설명하고 같이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게 내 삶을 경영하는 것이 다스리고 지킴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이지.
내가 해야하는 사명이라는 생각이어서 소리를 훈련하여 대통을 만들고 마디를 만들어
풀이면서 나무가 되는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이구나 나의 사주에서 일주를 이해하는 것이지.
내가 타고 온 사주를 풀어가는 것이 살아가면서 할 일이라고 하듯이..
주어진 여덟글자를 밑천으로 하여 열 네 글자를 당겨와 풀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을
팔자를 푼다고 하는 것이다. 사주 팔자 여덟글자는 밑천이고 한달란트라고 하는데
이 달란트를 가지고 열 네 글자를 가져와 자산이 되도록 하는 것을 사주팔자 풀면서 산다고 하는 것이다.
일이 꼬이고 안될 때 툭 내뱉는 말들이 "아이고 내 팔자야.."인데 자기 팔자를 들여다보기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하는지...
성령세례를 받아야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고
이 공부를 통하여 너와 내가 같은 마음이 될 때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지.
가장 쉬운 진리인데 실천하기는 내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니..그래서 기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겟세마네 기도를 배운다는 것이지
성서문장을 외우거나 풀어내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 본다.
예수가 하신 기도를 내가 따라하는 것을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이고
예수의 성품을 담는다고 하는 것이라고 나는 설명한다. 그래서 나는 소리를 가르치면서
내가 성령에게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정보를 너와 내가 공유하는 언어로
정리하여 지식을 피드백한다. 지식을 얻는 것은 너를 판단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판단하고자 하는 나의 교만하고 무지함을 마주하기위한 거울로 삼기위한 것이지.
천식환자를 만나 성령의 일하심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게 되면서
야 이것도 참 재미난 비추임이구나 하는 생각. 같이 설음과 순음을 하는 방법, 몸을 진동시키는 방법,
손뼉치기..다양한 정보를 나눔하면서 같이 찬송도 부르고 방언이라는 것이 어떤 용도인지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도 하고..그렇게 점심시간이 되도록 떠들었는데 자기에게 너무나 유익한 정보를 주어서
고맙다고 점심을 사주겠다고 해서 같이 용천사 앞에 있는 칼국수집에 가서 들깨메밀칼국수를 먹었는데
들깨를 가득 넣었고 양도 많았다.
이런 인연을 하늘은 왜 만들어 주셨을까나.. 나에게 하늘이 이어주는 인연은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 처럼 영생을 추구하는 이를 이어주신다는 것이지. 영혼이 건강해진 내가 병든 영혼을 보게 되면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이 사랑이고 자비이고 연민인지도..건강한 자에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는 들리지 않지만
영생을 추구하는 병든 영혼은 스폰지에 물스미듯 그렇게 스미게 되는 것이지.
사주에서도 내가 경자이고 명희님이 신축이니 경신 금이고 자축 방합이고 육합이어서인지 첫만남인데도 점심을 같이하자는 말에 선듯 그러자 하게 된 것인지도.. 내가 기독교인들은 가능하면 거리를 두었는데 이분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에너지여서인갑다.
내 영혼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그 동안 지식정보들을 배우느라 돌아다닌 것이라면
이제는 인간철학에서 영성철학,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영생을 얻는 복음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것이구나 한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설명하고 그 길을 이끌어가는 것.
영생= 영적생활Spirit life과 몸생=몸적생활physical life을 보는 방법
영靈과 몸鯍을 지시하는 신의 기표를 肉(6획, 冂=2획,人=2획, 人=2획)이라고 하는데
영을 성경에서는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고, 몸을 우리의 모양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형상은 다스림의 원리로 우리의 모양은 지키는 원리로 흙으로 만든 아담의
갈비뼈로 심겨진 것이라고 이해한다.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하는 말씀에서
생령이 된 하나님의 '영'은 아담의 어디에 깃들어 있었고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파들어가다보니
생령의 기능은 만들에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하신 것, 그 말씀이 생령이 되어 아담에게
깃들임으로 천지를 다스리고 지키는 원리가 되게 하신 것이라는 것이지
그 생령이 깃든 곳이 하와를 만든 갈비뼈라고 나는 이해한다.
창세기 1장 26~28절을 딛고 내가 창조된 가치와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아 하나님이 엿새동안 창조하신 만물들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자 하신 것이고, 생기는 히브리어 "רוח(루아흐)"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 "Πνευματος/Πνευμα(프뉴마)"인데, 사람이 죽을 때,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생명의 근원인 "생기, 호흡, 혹은 생명력이나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생기가 생령이 될 때 생령 또는 성령은 헬라어로 '프뉴마'(pneuma)이다.
'프뉴마'는 신약성경에서 성령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로서
구약성경의 '루아흐'(ruach)와 대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여 갈비뼈를 빼내어 하와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 그 정보를 나는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한 그 문장에서 불어넣으신 생령의 자리가 갈비뼈였기에 그 영을 빼서 하와로 드러낸 것이 아담에게서 하와를 만들어내는 제 2의 창조가 되었다고 이해한다. 다스리고 지킨다는 명제를 이행하기위해서는 다스림의 메뉴얼과 지킴의 메뉴얼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지. 몸Body이라고 한다
6월부터 첫자리로 돌아와서 한걸음 더 들어간 설명을 하게 된다.
영생은 영적인 생활의 줄임말이고 육생은 육신생활의 줄임말이다. 영성은 뼛소리이고 육생은 몸짓이라고 해석이 되지 영성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몸짓은 하나님의 모양이라고 이해를 하게 되면 그대와 나는 자신의 소리와 몸짓을 찬찬히 살피고 공부하게 되지 않겠는가? 내가 나를 안다는 현장이 바로 내 소리와 몸짓을 마주한다는 것이지 그 외에 내가 나를 무엇으로 통하여 알 수 있겠나..나는 생각하는 것이지. 나의 영성은 소리를 통하여 나의 육신은 행동을 통하여 마주하는 것이라고..그렇게 나는 내 소리를 동영상으로 담아서 분석하고 내 몸짓을 살피면서 소리와 몸짓과의 관계를 풀어가거나 맺어가는 공부를 하면서 이것이 내가 현실에서 체험하거나 경험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알아가는 영생공부구나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인연이 닿으면 그렇게 설명을 하고 소리를 같이하고 몸짓을 가르치는 것이겠구나.
내가 체험하는 것을 객관화하는 공부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사람마다 체험하는 것은 다 같다고 하여 오온이 공하다고 하였다. 색성향미촉을 체험하는 안이비설신은 누구나 같아 ‘공=’하다는 것이지
오온이 공 空(共)한데 서로 같이 체험한 것을 표현하는 ‘문자어휘력’이 다름에서 생기는 것이
‘무无’ 라고 할 수 있다. 즉 같음이 없다는 말이지. 공하나 무다. 영은 공하나 몸은 무하다
공은 바람이 울려 소리가 나온다 몸은 움직인다. 무라는 것은 춤춘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숨을 드내쉬면 몸은 당연히 움직이게 되어있는데 숨이 소리가 되면 그 소리값에 따른 몸짓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그 몸짓을 춤출 무..라고 했고 이 무가 없을 무로 이해되는데 없다는 것은 기억이나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우주의 파동으로 남는 정보라는 의미다. 그래서 무는 없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나 기억으로 전달한 방편이 없다는 것이지.
즉 영은 너와 내가 같지만 그래서 하나라고 하지만 몸은 언어에 따라 생기는 개념에서 같음이 없음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지 영은 같고 육은 같음이 없다는 이 쉬운 말이 공이나 무라는 낱말로 가게 되면 각자가 인식하는 어휘이해에서 다양한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이 생기듯 이야기들에 꾸며져 나오게 되는데
이야기들을 만들어냄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영 즉 오온이 공하고 육에선 영과 같음이 없다는
이분적인 사유에서 영과 육은 같은 것이 있음을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씨앗에 자라 가지끝에서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안에 씨알을 품듯이...
흙속에 묻힌 씨가 꽃이 피어 열매가 되어 열매안에 씨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공’에서
‘무-씨앗이 형태를 바꿈으로 씨앗의 형상을 버림-’를 거쳐 열매안의 씨앗으로 흙위로 씨앗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을 ‘유有’라고 한다는 것
흙위 가지 끝에 맺힌 열매안의 씨앗에겐 과육이 흙이고 과피가 흙과 하늘의 경계가 되겠지만
흙속에서 열매안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장을 우리는 구원의 여정이라 한다
흙속의 씨앗잇 때와 열매속의 씨앗이라는 것에서 그대가 보아야 하는 것
뭐 말장난이지만 사실 그대가 문자어휘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글자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한 옛 선인들의 의식을 맛볼 수 있다.
글자 하나로 자신의 열매를 삼은 것이고 그 한 글자가 ‘한’이 라고 하거나 ‘뜻’이라고 하거나... 한다
한 글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때..그런 의식이 될 때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라고 하는 것이다
‘공’이라는 글자에서 나는 ‘ㄱ~ㅎ’까지의 한글 자음을 본다. 내 글을 보는 그대도 이젠 그럴 것이다 ㄱ과 ㅎ까지는 하나로 합한 기호가 ‘공Gong’인데 영어는 알파벳이 네개 쓰인다. 한글은 ‘공’이라고 한자라 하지만 획수로 헤아리면 역시 4획이다. 그런데 오온이 공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의식수준을 나타내는 ‘무’라는 것은 한자로 無 灬(연화발 화) + 卌(마흔 십) + 𠂉(-) + 一(한 일)가져오면 열 두획이다 영어로 하면nothing일곱자고 한글로 없다인데 없다는 것은 같음이 없다 즉 너와 나는 같은 숨을 쉬지만 그 숨에 부여하는 몸짓은 다르다는 말이다.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무이다. 나와 내가 행동 몸짓을 하지만 그 값을 알고 하는 것인지 그냥 하는 것이지..는 스스로에게 물을 일이라는 것이기도 하고
의식이 다르다는 말이 ‘무의식’인데 의식을 나타내는 언어에 대한 이해력이
서로 다를 때를 나타내는 말이고 잠재의식이란 공한 오온을 표현한 문장이나 언어에 대하여
공명하는 정도를 의미한다고 본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 때 그 언어의 빛깔 무늬 향기 울림 을 알아채는 정도라고 의식은 누구라도 오온이 공하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라고
누구나 같은 체험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그것을 표현해내는 도구인 ‘문자언어’에 대한 이해력에서 ‘무의식’이 되거나 ‘잠재의식’이 된다는 것이지
너와 나의 문자언어에 대한 공부를 서로 파악하는 과정을 통하여 같음이 없는 상태에서
잠재의식으로 이해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고 잠재의식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고
잠재의식에서 정점 즉 느낌과 문자언어가 일치하게 되는 때를 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등정각 깨달음 구원 성불 천국...언어이전으로 들어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숨이 언어가 되고 문자가 되어 언어바다를 이루고 우리는 그 바다를 헤엄치고 살고 있다
예수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한 말이 이제 이렇게 풀어지구나
육안으로 보고 읽는 성경을 어떻게 영안으로 해석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
하나님은 영이시고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것이지만 영의 감동으로 씌여져 영으로 해석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영적인 해석이라는 것에서 영적이란 ‘문자’를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해석’이라는 문자도 풀어지는 것이 된다. 해석이란 오온이 공한 체험을 하고도 의식의 접점이 없는
무의식에서 말하지 않아도 느낌적 느낌으로 통하는 잠재의식을 거쳐 같은 느낌을
공유할 때를 ‘있다’라고 하는 것이고 유의식이라고 하거나 태초에 빛이 있었다라고 한다는 것이구나
무란 즉 없다는 것은 같은 것을 체험하고도 그 체험을 확인할 어떤 방법을 알지 못할 때이고
유는 오온이 공함을 알고 그 공함을 서로 비춰볼 방법이 있을 때를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다가 되는 것
한자 12획
영어 7자
영은 소리를 형상으로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라고 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영이라고도 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 ‘소리’다. 태초에 사운드가 있으니라고 한 그 사운드는 ‘모음’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음이고 모음은 방향성이라고 하거나 고저장단 사성이라고 하거나 무색계 4천이라고도 한다
모음의 방향을 동청룡 남주작 서백호 북현무로 설명하는데 동청룡을 모음 ㅏ, 남주작을 모음 ㅗ 서백호를 모음 ㅣ 북현무를 모음 ㅜ라고 한다 고 나는 설명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하는 우리가 모음의 방향성이라는 것이고, 우리의 모양은 우리의 형상 모음에 닿아서 나는 자음을 지시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모음은 형상이고 자음은 모양이다 모음도 방향에 따른 소리값이 있어서 우리의 라고 하고 자음도 닿는 곳에 따라 소리값이 생성되기때문에 우리의 모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라고 하는 것은 입안에서 혀가 어디에 어떤강도로 닿게 되는가에 따라 몸짓이 나타나고 그 몸짓을 보고 기록한 좌표를 ‘자음’이라고 하는 것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는 그 의도에서 형상과 모양의 실체가 무엇인지 찾아내게 된 것이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자연을 말씀으로 다스림하고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한 생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존재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밥과 말씀
숨과 소리
하나님의 형상인 숨과 모양인 말씀이 사람인 밥과 소리를 통해 자기가 지으신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다. 창세기 1장의 우리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하나님이 다스림과 지킴이라는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위치와 가치 즉 다스리고 지키는 것은 법과 밥으로 요약된다는 것이지. 밥을 먹기위해 자연을 다스리고 법을 알기위해 ‘숨’이 생령이 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
자연의 이치를 과학이 실험검증을 통해 밝혀가 어떻게 자연을 다스리어야 하는지
자연을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에게 열려진 세계이고
이 자연원리를 동양에서는 사주명리라고 잘 설명한다
자연을 다스리기위해서는 계절을 알아야한다는 것이고 계절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설명한 정보가 사주명리가 된다는 것이지 일년 열두달 사계절 석달씩 ..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계절학이라고 하고 계절을 아는 학문이라 하여 제왕학이라 하였다
계절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시절을 같이 가는 것이다
내가 여태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면서 계절속을 살아가는 몸이기에
몸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이구나
즉 아담에게 이름짓는 능력일 주신 것이 다스림원리이고 계절공부란 ‘이름’공부구나 닿게 된다
시인이 되려면 식물이름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하듯이 시인이란 이름짓는 자인데
이름을 푸는 짓는다는 뜻은 이름값을 풀어낸다는 것도 알게 된다
누군가 이름을 짓고 누군가 그 이름의 의미를 이해한다
꽃이름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사람 이름에도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이름이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지 내 이름이 내 영혼의 정체성이다
이름을 부름은 영에너지라면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몸에너지로 이름을 쓰고 부른다는 것이
영육이 소통하는 원리가 되는 것이지
그대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영이 있다는 것이고 그대가 그 이름을 부르고 쓴다(풀어낸다)는 것을
생령이 되게 한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짓게 되는 이름이 있고 외부에서 부여하는 이름이 있다.
외연에서 부여한 이름은 너의 소망이 담긴 것이고 내가 짓는 이름은 내 소망이 담긴 것이다
너의 소망대로 살아가는 길이 있고 내 소망을 살아가는 길이 있다는 것인데
육의 이름으로 살다가 어느 날 영의 이름을 얻게 될 때가 있다
영의 이름을 얻게 될 때를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는데
미간사이의 통로가 열리게 되면 자기 영에 맞는 ‘이름’이 오게 된다고 했고
그것을 예수도 베드로를 게바라고 개명을 해주면서 천국의 열쇠라고 했다
반석을 사주에서는 경금이라고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돌무덤, 돌베개..성서에 나타나는 돌들의
의미를 동양 오행에 와서 찾으면 이해가 가능하다. 모세오경이 오행을 설명하는 이야기라고 풀어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오병이어도 음양오행에서 풀어진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