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신앙 信仰과 철학 哲學
청향고은
2016. 9. 11. 08:22
신앙 信仰과 철학 哲學
지승의 글집을 세권 사서 2권을 클리어 3권째 들었다. 사상은 철학에서 나오고 철학은 경전연구에서 나온다. 경을 앎의 대상으로 놓으면 진리탐구 철학이되어 자기인식이 되고 경을 삶의 대상으로 놓으면 복된소리 종교가되어 자기의식이 된다. 선택한 경을 삶의 푯대로 삼고 경의 가르침을 체험하는 공부를 몸공부라하고, 경을 이룬 문장행간에 숨어 숨쉬는 무엇을 감각하는 것을 알음알이 체득이라 하는 것이리. 깨달음은 철학체득이고 깨달음의 행위는 종교체험이라는 것.
깨달음이 종교체험되지 않으면 말과 글에만 머물게 된다. 앎을 몸으로 의식하는 길이 가장 멀고 먼 길이라고 한다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길이 목이다. 삶에서 경험한 것을 경과 비춰서 깨달음으로 인식하는 길도 오르기 가장 힘든 가파른 길이다. 상부인 머리는 관찰을 통하여 인식을 하고 하부인 몸에서는 느낌을 통하여 의식을 한다.
인식이 의식과 만나고, 의식이 인식을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 한다고 하자. 제대로 된 인식을 불가에서는 팔정도,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의식을 유가에서는 역시 격물, 치지, 성심, 성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로 말한다.
예수의 산상팔훈도 있고, 우리나라 무가 巫家 삼신사상의 구체적인 가르침(참전계경)에서는 인식과 의식의 하나됨을 성 誠, 신 信, 애 愛, 제 濟, 화 禍, 복 福, 보 報, 응 應으로 말한다. 역에서는 팔괘 건 乾, 곤 坤, 감 坎, 리 離, 손 巽, 진 震, 태 兌, 간艮 우리나라사상은 불가와 유가..들의 모든 가르침을 포함한다. 동양의 유가는 불가와 숨맥을 맞추고 우리나라 무가는 힌두사상과 숨맥을 맞춘다.
종교는 발생한 나라의 기후풍토 氣候風土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내 유전자에 맞는 종교가 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와 북위와 남위의 차이를 아는 것을 지리풍수 地理風水를 안다고 하는데 지리풍수를 알면 지리풍수가 만들어낸 종교의 모습이 이해된다.
종교란 으뜸. 꼭지. 마루라는 높은 가르침이지만 세상에 높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붓다의 깨달음은 힌두교에서 가지를 친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에서 가지를 친 것이다. 불가의 계율과 유대교의 율법과 유가 예법이 언어만 다를 뿐 같은 가지에 핀 꽃이며 힌두의 베다나 우파니샤드 예수의 천국 우리나라의 무가 역시 언어만 다를 뿐 같은 나무에서 맺힌 열매다. 내가 그리 본다.
예수가 좋은 것은 씨앗에서 열매까지 인식과 의식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편을 가르쳐 주신 즉 마루인 인식을 골짜기인 몸의식과 선을 잇고 거기와 여기 사이에 막힌 벽을 헐어 선을 잇는 법 + 을 가르쳐 주시기때문이다. 인식과 의식이 분리되는 것이 이분법이며 통합되는 것이 일자. 일신 유일신사상이 된다. 유일신하나님이란 상하좌우+ 가 몸 ㅅ 에서 의식될 때를 말한다. 신앙은 의식을 성장시키는 방편이며 철학은 인식을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언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으면 의식의 성장을 구체화하지 못한다.
誠을 정성 성이라 하는데 정성은 무엇인가? 言의 이룸 成 이다. 言은 말씀이다. 말씀을 이룸하는 것을 정성이라 하는 것이다. 말씀이 뭔가? 말씀을 이룸이라고 하는 것이니 무엇을 이행하라는 명령이 선행되어있을 것이다. 제시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다스리고 지키라인데 무엇을 어떻게 다스리고 무엇을 어디에서 지켜야하는 것인지를 알아서 그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信은 믿을 신인데 뜻인 믿을은 무엇인가. 성은 말씀을 이룸이고 신은 사람의 말이다. 사람의 말이 믿음이란 것이다. 나는 믿음이 무엇인가...정말 열심히 궁구했다. 답을 눈 앞에 두고 등을 돌리고 찾은 셈인데 내 말이 믿음이고 내 말을 성취하는 것이 정성이라는 것을 이제 확실하게 안다. 그 다음 愛는 사랑이라 하는데 사랑은 뭔가. 어원은 떠나면서 있던 곳을 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랑은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 내 말을 내가 어떻게 이룸하는가를 돌아보는 것,
제 濟는 건너다는 것이다. 건너는 것, 내가 나를 돌아보아 모자란 부분을 보고 결핍된 것을 보고 이룸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떠남, 성장이다. 삼수에 齊(엄숙할 제)를 썼다. 결핍이나 부족함 허물 경망함을 씻고 엄숙함을 갖춤이다. 엄숙嚴肅(엄할 엄 嚴, 엄숙할 숙肅)인데 嚴은 내가 내놓은 말들을 다시 당겨서 내 귀로 들어보라는 것 取, 그 방법이 붓을 들고 기록하는 것이라는 것. 내가 한 말을 기록하여 봄으로 뜬말과 뜻말을 가려보라는 것이다.
말을 한 후의 결과 뜬 말과 뜻말은 스스로가 안다는 것 뜬말에는 화 禍가 뜻말에는 복 福이 갚음 報으로 온다 應는 것이다. 뜬말에는 화가 오고 뜻말에는 복이 온다는 것. 禍와 福. 화는 남의 뜬말에 따라다니는 것이고 복은 자기 안에서 나오는 뜻말을 누릴 수 있다. 화는 자기가 하는 말이 모두 뜬말이 되고 복은 자기가 하는 말이 뜻말이 것이다. 참말인데도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카산드라, 캐샀터라..카더라..이고 복은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같은데 설득이 되는 말이다. 뜬 구름잡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내 전력을 기울이는 것. 지금 나는 불치병을 기도로 고쳐보겠다는 뜬 구름잡은 선택을 하였고 그것에 진력한다.
좋은 말과 글은 몸이란 용광로에 담구어서 금도금을 하지 않으면 가벼워서 날아가 버린다. 보고 들은 말이 귀에서 끝나는 것. 그게 화다. 보고 들은 글이나 말이 단전까지 들어와 씨로 뿌려지는 것이 복이다. 너의 미사려구가 귀너머로 날아가게 되는 경우 너의 정보가 몸물에 담구지 않고 나오는 가벼움인지 나의 귀멀음으로 무게값을 재지 못하는 것인지..를 가려봐야 한다. 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귀가 중요하다 오금. 귀 빠진 날이라 한다..생일을 ...귀가 나온 날..귀가 열린 날..하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날을 생일이라 한다. 귀는 어떻게 빠지나...잡아 당겨야 된다. 取라는 글자가 귀를 잡아당기는 것. 복된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늘여 당겨내야 한다. 철학은 언어를 다루지만 신앙은 소리를 다룬다. 철학은 관하는 거이고 신앙은 음을 듣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철학과 신앙을 하나로 맺는 바람을 담은 주문이다. 눈을 감고 귀를 여는 것 그것은 복음의 활동에 따르는 방법이고 귀를 닫고 눈을 여는 것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를 잘 저울질하여 서로의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게 조화다. 하모니. 한몸. 하나님. 다스림과 지킴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
재세이화, 세상을 살면서 다스리며 지킴을 실천하는 것이 홍익인간이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 지킴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그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참다운 덕목 홍익인간이다. 내가 나임을 감사하는 것이 홍익인간의 실천이다. 다른 홍익인간을 말하는 것은 뜬말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내가 나를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는 것.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너를 감사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고...나는 그리 이해하고 산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일이 홍익인간이라고...이제는 내가 나를 구원했으니..너를 보는 것이고...
지승의 글집을 세권 사서 2권을 클리어 3권째 들었다. 사상은 철학에서 나오고 철학은 경전연구에서 나온다. 경을 앎의 대상으로 놓으면 진리탐구 철학이되어 자기인식이 되고 경을 삶의 대상으로 놓으면 복된소리 종교가되어 자기의식이 된다. 선택한 경을 삶의 푯대로 삼고 경의 가르침을 체험하는 공부를 몸공부라하고, 경을 이룬 문장행간에 숨어 숨쉬는 무엇을 감각하는 것을 알음알이 체득이라 하는 것이리. 깨달음은 철학체득이고 깨달음의 행위는 종교체험이라는 것.
깨달음이 종교체험되지 않으면 말과 글에만 머물게 된다. 앎을 몸으로 의식하는 길이 가장 멀고 먼 길이라고 한다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길이 목이다. 삶에서 경험한 것을 경과 비춰서 깨달음으로 인식하는 길도 오르기 가장 힘든 가파른 길이다. 상부인 머리는 관찰을 통하여 인식을 하고 하부인 몸에서는 느낌을 통하여 의식을 한다.
인식이 의식과 만나고, 의식이 인식을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 한다고 하자. 제대로 된 인식을 불가에서는 팔정도,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의식을 유가에서는 역시 격물, 치지, 성심, 성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로 말한다.
예수의 산상팔훈도 있고, 우리나라 무가 巫家 삼신사상의 구체적인 가르침(참전계경)에서는 인식과 의식의 하나됨을 성 誠, 신 信, 애 愛, 제 濟, 화 禍, 복 福, 보 報, 응 應으로 말한다. 역에서는 팔괘 건 乾, 곤 坤, 감 坎, 리 離, 손 巽, 진 震, 태 兌, 간艮 우리나라사상은 불가와 유가..들의 모든 가르침을 포함한다. 동양의 유가는 불가와 숨맥을 맞추고 우리나라 무가는 힌두사상과 숨맥을 맞춘다.
종교는 발생한 나라의 기후풍토 氣候風土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내 유전자에 맞는 종교가 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와 북위와 남위의 차이를 아는 것을 지리풍수 地理風水를 안다고 하는데 지리풍수를 알면 지리풍수가 만들어낸 종교의 모습이 이해된다.
종교란 으뜸. 꼭지. 마루라는 높은 가르침이지만 세상에 높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붓다의 깨달음은 힌두교에서 가지를 친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에서 가지를 친 것이다. 불가의 계율과 유대교의 율법과 유가 예법이 언어만 다를 뿐 같은 가지에 핀 꽃이며 힌두의 베다나 우파니샤드 예수의 천국 우리나라의 무가 역시 언어만 다를 뿐 같은 나무에서 맺힌 열매다. 내가 그리 본다.
예수가 좋은 것은 씨앗에서 열매까지 인식과 의식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편을 가르쳐 주신 즉 마루인 인식을 골짜기인 몸의식과 선을 잇고 거기와 여기 사이에 막힌 벽을 헐어 선을 잇는 법 + 을 가르쳐 주시기때문이다. 인식과 의식이 분리되는 것이 이분법이며 통합되는 것이 일자. 일신 유일신사상이 된다. 유일신하나님이란 상하좌우+ 가 몸 ㅅ 에서 의식될 때를 말한다. 신앙은 의식을 성장시키는 방편이며 철학은 인식을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언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으면 의식의 성장을 구체화하지 못한다.
誠을 정성 성이라 하는데 정성은 무엇인가? 言의 이룸 成 이다. 言은 말씀이다. 말씀을 이룸하는 것을 정성이라 하는 것이다. 말씀이 뭔가? 말씀을 이룸이라고 하는 것이니 무엇을 이행하라는 명령이 선행되어있을 것이다. 제시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다스리고 지키라인데 무엇을 어떻게 다스리고 무엇을 어디에서 지켜야하는 것인지를 알아서 그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信은 믿을 신인데 뜻인 믿을은 무엇인가. 성은 말씀을 이룸이고 신은 사람의 말이다. 사람의 말이 믿음이란 것이다. 나는 믿음이 무엇인가...정말 열심히 궁구했다. 답을 눈 앞에 두고 등을 돌리고 찾은 셈인데 내 말이 믿음이고 내 말을 성취하는 것이 정성이라는 것을 이제 확실하게 안다. 그 다음 愛는 사랑이라 하는데 사랑은 뭔가. 어원은 떠나면서 있던 곳을 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랑은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 내 말을 내가 어떻게 이룸하는가를 돌아보는 것,
제 濟는 건너다는 것이다. 건너는 것, 내가 나를 돌아보아 모자란 부분을 보고 결핍된 것을 보고 이룸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떠남, 성장이다. 삼수에 齊(엄숙할 제)를 썼다. 결핍이나 부족함 허물 경망함을 씻고 엄숙함을 갖춤이다. 엄숙嚴肅(엄할 엄 嚴, 엄숙할 숙肅)인데 嚴은 내가 내놓은 말들을 다시 당겨서 내 귀로 들어보라는 것 取, 그 방법이 붓을 들고 기록하는 것이라는 것. 내가 한 말을 기록하여 봄으로 뜬말과 뜻말을 가려보라는 것이다.
말을 한 후의 결과 뜬 말과 뜻말은 스스로가 안다는 것 뜬말에는 화 禍가 뜻말에는 복 福이 갚음 報으로 온다 應는 것이다. 뜬말에는 화가 오고 뜻말에는 복이 온다는 것. 禍와 福. 화는 남의 뜬말에 따라다니는 것이고 복은 자기 안에서 나오는 뜻말을 누릴 수 있다. 화는 자기가 하는 말이 모두 뜬말이 되고 복은 자기가 하는 말이 뜻말이 것이다. 참말인데도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카산드라, 캐샀터라..카더라..이고 복은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같은데 설득이 되는 말이다. 뜬 구름잡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내 전력을 기울이는 것. 지금 나는 불치병을 기도로 고쳐보겠다는 뜬 구름잡은 선택을 하였고 그것에 진력한다.
좋은 말과 글은 몸이란 용광로에 담구어서 금도금을 하지 않으면 가벼워서 날아가 버린다. 보고 들은 말이 귀에서 끝나는 것. 그게 화다. 보고 들은 글이나 말이 단전까지 들어와 씨로 뿌려지는 것이 복이다. 너의 미사려구가 귀너머로 날아가게 되는 경우 너의 정보가 몸물에 담구지 않고 나오는 가벼움인지 나의 귀멀음으로 무게값을 재지 못하는 것인지..를 가려봐야 한다. 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귀가 중요하다 오금. 귀 빠진 날이라 한다..생일을 ...귀가 나온 날..귀가 열린 날..하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날을 생일이라 한다. 귀는 어떻게 빠지나...잡아 당겨야 된다. 取라는 글자가 귀를 잡아당기는 것. 복된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늘여 당겨내야 한다. 철학은 언어를 다루지만 신앙은 소리를 다룬다. 철학은 관하는 거이고 신앙은 음을 듣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철학과 신앙을 하나로 맺는 바람을 담은 주문이다. 눈을 감고 귀를 여는 것 그것은 복음의 활동에 따르는 방법이고 귀를 닫고 눈을 여는 것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를 잘 저울질하여 서로의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게 조화다. 하모니. 한몸. 하나님. 다스림과 지킴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
재세이화, 세상을 살면서 다스리며 지킴을 실천하는 것이 홍익인간이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 지킴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그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참다운 덕목 홍익인간이다. 내가 나임을 감사하는 것이 홍익인간의 실천이다. 다른 홍익인간을 말하는 것은 뜬말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내가 나를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는 것.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너를 감사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고...나는 그리 이해하고 산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일이 홍익인간이라고...이제는 내가 나를 구원했으니..너를 보는 것이고...